〈 11화 〉# https://t.me/LinkMoa
“괜히 기대하게 만들고 있어…….”
오리주댕이처럼 입술을 삐쭉 내민 나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목록을 탐색했다.
“그럼 대체 누굴 공략하냐.”
역시나 여성의 이름은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생각되는 몇몇 모르는 여성들의 이름이 지나갔는데, 솔직히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게다가 목록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거나 못생긴 여성들이었다.
유정이 누나와 데이트를 하고, 오는 길에 장예화를 마주치니 여자들의 프로필이 죄다 오징어로 보였다.
“없는 건가…….”
아쉬웠다.
나는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이제 목록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목록의 마지막을 탐색할 즈음, 문득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 강수정?”
나는 강수정의 프로필을 바라보았다.
[ 이름 : 강수정 ]
[ 나이, 성별 : 22세, 여성 ]
[ 직업 : 트위블 TV 스트리머, 미튜브 크리에이터 ]
[ 호감도 : 09 ] [ 연분도 : 11 ]
“아.”
그러고 보니 강수정을 잊고 있었다. 위층에 사는 개인 방송을 한다는 여성.
나는 프로필에 떠올라 있는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예쁘긴 참 예쁘네…….”
그녀는 나와 사이가 좋지 않긴 했지만, 얼굴은 참 이뻤다.
프로필 사진에서 그녀는 팔짱을 끼고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는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통해 가슴까지 내려왔고, 순해 보이면서도 또렷한 눈매는 그녀의 매력을 증폭시켜 주었다. 연갈색의 눈동자는 나를 치켜 올려보는 구도였다.
그녀는 지금 놀러 온 그녀의 친구인 장예화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굉장히 이쁜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나 압권은 가슴. 팔짱을 낀 팔 위로, 가슴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얹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
아마도 이 풍만한 가슴과 얼굴 덕분에 방송도 잘 유지가 되는 것이리라.
언젠가 궁금해서 한번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별다른 컨텐츠 없이 주야장천 레전드 리그라는 5:5 AOS 게임만 계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나름대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씩 억울하게 죽으면 비속어도 사용했는데,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 욕설에 흥분하며 자기에게 해달라는 변태도 있었다.
“…해볼까?”
나는 스윽, 하고 그녀의 프로필 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제 그녀를 클릭하면, 그녀가 내 히로인이 되는 것이었다.
‘히로인으로 설정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혹시나 그녀의 친구인 장예화처럼, 등급 때문에 등록을 못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그녀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 삑
[ 인물, ‘강수정’을 ‘히로인’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
[ 한 번 설정하면, 번복할 수 없습니다. ]
[ ( 예 / 아니오 ) ]
“오.”
되네?
“직업으로 등급을 구분 짓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장예화는 안 되는데, 강수정은 되는 것인가.
강수정과 장예화의 확연한 차이는 직업밖에 없었다. 나이도 성별도 같았고, 심지어 호감도는 장예화가 강수정보다 높았다.
스트리머와 미튜브 크리에이터가 건물주보다 등급이 낮은 것인가?
아니었다.
건물주도 건물마다 버는 양이 확연히 다르고, 스트리머도 스트리머에 따라 버는 양이 천지차이였다.
물론 강수정이 이런 원룸에서 방송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렇게 많이 버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직업이 아니라, 등급을 나누는 히로인 어플만의 기준이 따로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서는, ‘예’ 버튼을 터치했다.
- 꾹
[ 인물, ‘강수정’을 히로인으로 설정합니다. ]
[ 인연의 실을 연결합니다. ]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두근
“뭐지?”
그때, 문득 심장으로부터 하나의 붉은 실이 나타났다.
그 붉은 실은 마치 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천장을 뚫고 위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뒤, 심장에 다시 한번 커다란 두근거림이 찾아온 뒤에, 붉은 실은 사라지고 마침내 어플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 인물, ‘강수정’을 무사히 히로인으로 등록했습니다. ]
“이걸로 된 건가?”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조금 전의 실은 뭐였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실이 나왔다가 사라졌었다.
하지만 의문을 가질 시간도 없이, 어플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히로인 공략 모드’로 들어갑니다. ]
[ ‘공략 스타일’을 정해주세요. ]
[ 히로인마다 선택할 수 있는 ‘공략 스타일’이 다르며, 선택한 ‘공략 스타일’에 따라 각기 다른 ‘스킬’이 주어집니다. ]
“공략 스타일?”
나는 무심코 반문했다. 그리고 물음과 동시에, 화면이 갱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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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인, ‘강수정’ 공략 스타일 선택 *
◆ 1. 친절의 유혹
[ 획득 스킬 : 강인함, 친절, 선행 ]
◆ 2. 꿈의 동반자
[ 획득 스킬 : 안정화, 응원, 보좌 ]
◆ 3. 이면의 가해자
[ 획득 스킬 : 블랙룸, 변신, 소환 ]
◆ 4. 그녀의 노예
[ 획득 스킬 : 피학증, 매혹, 흥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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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스타일은 총 4개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1번과 2번이 가장 정상적으로 보였다.
“뭘 고르지?”
나는 잠시 턱을 괴며 고민했다. 4번은 절대 아니고, 되도록 1번과 2번 중에서 뭘 고를지가 고민이 되었다.
“으으음…….”
그때였다.
- 띵동~ 띵동~
갑자기 집의 벨이 울렸다.
“뭐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 철컥
“안녕하세요.”
“?”
‘강수정?’
문 앞에는 위층의 여성, 강수정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의 친구인 장예화도 있었다. 두 명의 미인이 나란히 서 있으니, 허름한 빌라의 복도가 굉장히 화려해 보였다.
강수정은 눈매가 올라가 있는 것이 먹잇감을 노려보는 고양이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장예화는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예화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마주 인사를 해주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으음. 뭐라고 해야 하지… 그 혹시 빨간 선 같은 거 못 보셨어요?”
“빨간 선이요?”
“네.”
빨간 선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것인…….
‘아!’
그때, 문득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걸 말하는 건가?’
방금 히로인 등록을 했을 때, 내 심장에서부터 나타난 붉은 실. 위층으로 가길래 강수정과 연결되겠거니 싶긴 했는데, 설마 그녀에게도 보였을 줄은 몰랐다.
“못 봤는데… 빨간 선이 대체 뭔가요?”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강수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으… 빨간 실? 아무튼 빨간 색 선인데, 그런 게 있어요. 분명 밑에서 왔는데, 그쪽은 정말로 뭔가 본 게 없나요? 혹시 무슨 수작 부린 거 아니에요!?”
강수정이 나를 보며 게슴츠레한 눈을 했다.
“…….”
속으로 살짝 뜨끔했다.
수작을 부린 건 맞지. 너를 히로인으로 설정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수작은 무슨 수작이요. 하아~. 지금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었는데.”
“흠…….”
“뭐 착각한 거 아니에요?”
“아뇨! 전 분명히 봤어요. 붉은 선이 제 가슴에 와서 꽂혔단 말이에요! 그때 심장이 이상하게 벌렁거렸는데……!”
나는 장예화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는데, 예화씨는 뭔가 보신 거 있나요?”
“아뇨. 저는 못 봤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나랑 수정한테만 보였던 모양이네.’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이 예화를 보며 물었다.
“진짜. 진~~짜로 못 봤어?”
“응.”
“저도 그런 거 본적 없습니다.”
“이상하다… 확실해요?”
“아, 확실하다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강수정은 문 너머로 내 방을 훑어보듯 쳐다보았다.
아. 내 집 개 더러운데.
나는 그녀의 시선을 몸으로 막았다.
“뭐 하는 거예요. 술이라도 마셨어요?”
“멀쩡하거든요! 혹시 들어가서 확인해 봐도 돼요?”
“아니, 뭘 확인해요.”
“붉은 선이요.”
그걸 왜 안까지 뒤져가며 확인을 하냐. 이미 없어진 붉은 선이라 들킬 염려는 없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내 어질러진 방을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휴지도 나뒹굴고 있었는데, 저런 미인들에게 어떤 경멸적인 시선을 받을지 몰랐다. 갑자기 찾아와서 좀 귀찮기도 하고.
나는 마치 짜증 난 사람처럼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아 진짜. 그런 거 없다니까요. 빨리 가기나 하세요.”
“아니, 확인을…….”
“안 해도 돼요. 그런 거 없으니까.”
- 쾅
나는 문을 닫았다.
휴대폰을 바라보자 여전히 스타일을 정하는 화면이었다.
나는 공략 스타일 목록을 하나하나 다시 훑어보았다.
친절의 유혹, 꿈의 동반자, 이면의 가해자, 그녀의 노예.
“흐음.”
처음에는 1번이나 2번을 고르려고 했지만, 문득 3번 쪽에 마음이 갔다.
애초에 지금 태도도 그렇고, 그녀가 내게 품고 있는 호감이 너무 적었다. 그런 상태에서 친절의 유혹이나 꿈의 동반자라니. 뭔가 힘들어 보였다.
총 4개의 선택지 중에서, 나는 세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 ‘이면의 가해자’를 히로인, 강수정의 ‘공략 스타일’로 지정하겠습니까? ]
[ 한 번 설정하면, 번복할 수 없습니다. ]
[ ( 예 / 아니오 ) ]
나는 ‘예’ 버튼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