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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어플-8화 (8/303)

〈 8화 〉# h‍ttps://t.me/L‍i‍nkMoa

‘망했다.’

나는 휙,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저기요.”

“아, 죄송합니다…….”

나와 어깨를 부딪친 남자는 자신으로 인해 내가 무언가를 쏟은 것을 봤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나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이내 말을 아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화를 내봐야 주변의 시선만 끌 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끙. 이거 비상용으로 많이 가져온 건데.’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누나의 음료수와 물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실수로 기존에 생각했던 양보다 두 배는 많이 넣어 버렸다.

‘어쩌지. 다 버려야 하나?’

욕망의 물을 마시면 일정 시간 동안 성욕이 올라간다.

키스를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흥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딱 적당량만 넣으려고 했는데, 이건 결코 적당량이 아니었다.

만약 이걸 다 마시면 성욕이 얼마나 올라갈지는 나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실험할 때는 나 또한 조금씩만 마셨으니까.

“진현아~ 예매했어! 자리 여유 있더라.”

‘앗.’

그렇게 음료수를 어떻게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영화 예매를 완료한 유정이 누나가 두 장의 티켓을 흔들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황급히 물병을 가방 안에 숨기고, 음료수의 뚜껑을 닫았다.

오랫동안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일단은, 내가 음료수에 무언가 공작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게 우선일 것이다.

“저도 샀어요. 이게 누나 사이다고, 이건 제 콜라. 팝콘은 그냥 카라멜 맛 중간 사이즈로 하나만 샀어요.”

“잘했어! 큰 거 샀으면 다 못 먹을 거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많이 넣은 편이 좋을 것이다.

“영화 시작이 얼마 안 남았네요.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너 갔다 오면 나도 갔다 와야겠다.”

나는 근처의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가방에서 ‘매력의 레이저 스틱’을 꺼냈다.

‘흠. 이건 효과를 아직 검증해보지 못했지.’

나는 립스틱 모양의 레이저 스틱을 바라보았다.

원하는 신체 부위에 3초 동안 쏘면, 2시간 동안 이성이 그 신체 부위를 볼 때 묘한 매력과 끌림을 느낀다고 했는데, 아직 실험해보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애초에 실험해볼 만한 대상이 없었다.

입술 같은 장소가 아닌 손에다가 쏜다고 쳐도, 지나가던 이성을 붙잡고 제 손 참 매력적이지 않으세요? 하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어플에서 얻은 아이템들이 모두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아마도 이 아이템 또한 믿고 사용하면 될 것이다. 효과가 얼마나 강력할지 모르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입술에 3초…….’

나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입술에 레이저 스틱을 쐈다.

립스틱 모양의 물건에서, 굵고 빨간 레이저가 나왔다. 나는 그 레이저를 피부에 바른다는 생각으로, 입술에 3초 동안 쐈다.

“아빠아. 저게 뭐야?”

“음… 아빠도 잘 모르겠네. 아마 엄마가 쓰는 화장품 비슷한 게 아닐까?”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생전 보지도 못한 레이저를 입술에 쏘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약간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입술 전체에 레이저를 쐈다.

- 지이잉

- 스르륵

“된 건가?”

입술에 무사히 3초 동안 레이저를 쏘자, 뭔가 쏜 부분들이 일순간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몰라서 아랫입술, 윗입술 모두 한 번씩 더 레이저를 쏜 뒤에서야, 나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유정이 누나. 저 왔어요.”

“어 왔어?”

나는 유정이 누나를 불렀다. 누나는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

“누나?”

“응? 어, 어! 그래. 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

‘흠…….’

누나를 불렀을 때, 일순간 누나가 내 얼굴을 보더니 찰나 동안 입술에 시선이 고정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효과가 있긴 있나 보네.’

나는 스스로 입술을 만져 보았다. 뭔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역시 신비한 아이템이었다.

“진현아. 나 왔어.”

5분 정도를 기다리자, 누나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와 누나는 각자의 음료수와 팝콘을 챙겨,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사람이 별로 없네.”

영화관 안의 자리는 제법 한산했다.

영화가 곧 시작할 텐데, 영화관 안의 사람들은 좌석의 2분의 1도 차 있지 않았다.

아무리 메이저 영화과 아니라지만, 주말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널널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차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3분의 2를 넘길 것 같지는 않았다.

나와 누나는 중간 열의 끄트머리 칸에 나란히 앉았다.

[ 영화 상영 중에는 앞 좌석을 발로 차거나……. ]

여러 광고에 이어서 영화관 주의사항, 비상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와 누나는 간간히 팝콘을 집어먹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안내방송이 끝난 뒤.

드디어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다.

[ 그날의 봄, 우리들은 헤어졌다. ]

슬픈 음악이 흐르며,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나레이션이 나왔다.

“…….”

영화가 시작된 후 몇 분.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흘긋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자신의 음료수를 빨대로 쪼옥 빨아먹으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많이 마시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약간 불안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어? 이 편지는…….” ]

[ “네가 어떻게 그걸……?” ]

영화가 시작되고 대략 20분.

“앗……!”

“…….”

나는 영화 중간중간에 누나와 팔을 맞대거나, 일부러 누나가 팝콘을 집는 타이밍을 노려 실수인 척 손을 건드리기도 했다.

평소라면 절대 못 할 대담한 행동이었지만, 누나는 이미 사탕 3개가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어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누나가 음료수를 얼마나 마셨는지도 확인할 겸 취한 행동이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누나에게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 “정말 떠나는 거야?” ]

[ “미안해…….” ]

‘음. 생각보다는 볼만하네.’

영화가 시작된 지 대략 40분쯤 지났을까.

나는 팝콘을 씹으며 생각했다.

미연시나 판타지 같은 장르만 봐왔던 나였지만, 이런 로맨스 영화도 가끔 보니까 나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 둘 간의 사랑을 제법 잘 풀어냈다고 생각되었다.

‘누나는… 완전 몰입 중이네.’

슬쩍 옆을 바라보자, 누나는 긴장한 눈빛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근데 좀… 뭐라고 해야 하지?’

하지만 자세히 보자 평소의 상태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호흡이 약간 거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니까.

그리고 스크린에서 나는 불빛만으로도, 누나의 열굴이 약간 빨갛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렇게 생각할 무렵, 문득 내가 누나를 바라보는 걸 눈치챘는지 누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아.”

우리 둘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치자 누나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나 또한 영화를 안 보고 누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들켜 약간 부끄러웠다.

나는 멋쩍게 웃었으며,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역시 너무 많이 넣긴 한 것 같은데.’

일단은 뭐.

영화나 더 보자…….

[ “네가… 네가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 “닥쳐! 아무것도 모르면서!” ]

영화는 어느덧 클라이막스로 접어들었다.

빠른 심장소리를 유도하는 긴박한 음악이 흐르고,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갈등은 최고조로 달했다.

묘한 긴장감이 영화관 전체에 중후하게 내리깔렸다.

간혹 팝콘을 휘젓는 소리만이, 영화관에 짤막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흠.’

나는 누나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런데, 누나는 영화가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는 미약한 감탄성을 내었다.

“…….”

“…….”

우리 둘은 그렇게, 잠시 눈이 마주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누구 하나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묘한 분위기였다.

영화관의 적막한 공기와 함께, 돌연 나와 누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클라이막스에 달한 영화의 긴장감이 아닌, 또 다른 긴장감.

그 기묘하고도 아슬아슬한 공기 속에서, 나의 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뭔가 이상했다.

누나는 아까보다도 더 달뜬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며, 얼굴은 사과처럼 무르익었다.

언뜻 보면 흥분했다기보다는 아픈 듯 보이기도 했다. 눈도 아까 전과는 다르게, 약간은 몽롱해 보였다.

‘으…….’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무언가 행동을 취하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누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때, 누나가 문득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 진현아…….”

“…네?”

누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는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위태로움이, 나를 자극했다. 누나의 목소리에서는 달콤함이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도 들렸다.

“진현아 나…….”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누나의 눈은 떨리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시선은 문득 한곳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 떨리는 시선을 가늠해 보니, 종착지는 내 입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회인가?’

분명 분위기도 좋았다.

음료수를 마시는 것 또한 목격했기 때문에, 지금의 누나는 분명 흥분 상태인 것이 분명했다.

내가 만약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면 소변이라도 마렵나 싶어 화장실을 가겠냐고 물어봤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누나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해.”

“…….”

누나가 잠시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다가를 몇 번씩이나 반복하다가,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분명히 기회였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연애는 미연시나 소설로 봤을 뿐.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단1도 없다 보니 선뜻 행동이 따라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누나와 같이 고개를 돌려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

[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

[ “사랑해…….” ]

영화가 거의 끝나갔다.

클라이막스에서 벌어졌던 남주인공과 여주인공 간의 갈등이 해소되었다.

심신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솟았다.

아름다운 저녁노을 속에서, 한 쌍의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있었다.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로맨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키스씬이 나온다고.

여기서는 나 또한 집중해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퍼엉- 펑- ]

불꽃놀이의 불꽃이 두 사람을 비추며,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입을 맞췄다.

‘누나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 키스씬을 바라본 나는, 그렇게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응…….”

그 순간이었다.

‘어……?’

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누나의 얼굴이 커다랗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입술에 말랑한 무언가가 닿았다.

누나의 두 눈은 감겨 있었고, 달콤한 향수 냄새가 지척에서 풍겨왔다.

뜨거운 숨결이 코앞에서 느껴졌다.

입맞춤이었다.

그렇게 몇 초 동안 입을 맞춘 누나는, 영화의 불꽃놀이 소리가 끝나고 난 후에야 내게서 떨어졌다.

아니, 떨어졌다고 하기보다는 내게 무너져 내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하아… 하아…….”

“이, 이게…….”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아…….”

내 가슴팍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누나를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누나의 음료수 컵을 집어 흔들어 보았다.

음료가 남긴 했지만, 거의 다 마신 상태였다.

‘아…….’

나는 누나의 어깨를 붙잡고, 달래듯 흔들었다.

“누, 누나! 괜찮아요?”

“모… 모르겠어… 진현아. 몸이… 너무…….”

누나의 얼굴은 엄청나게 빨갰으며, 달뜬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누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누나를 두 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누나의 몸은, 상당히 뜨거웠다.

“…….”

“아…….”

그런데, 누나를 부축하는 와중에 또다시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나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고, 누나의 시야에서 또한 내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문득, 누나의 시선이 내 입술에 고정되었다.

“미안해…….”

“네?”

누나는 뜬금없이 사과했다.

나는 그 사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는 알지 못하겠지만, 누나에게 이상한 것을 먹인 것은 자신이었다. 굳이 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만약에 사과를 하게 된다면 사과해야 하는 것은 도리어 내 쪽이었다.

“미안해. 진현아…….”

나는 뭐가 미안하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그러나, 나는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으응, 하…….”

입이 입으로 막혔다.

누나의 숨결과 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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