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https://t.me/LinkMoa
@6편-예비 주인공(6)
“음. 맛있네.”
빙수를 한입 떠먹은 누나는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빙수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어제 그토록 열심히 만든 시럽과 가루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누나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탕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탕을 섭취하는 동안 나를 가장 많이 바라봐야 하는 조건이 있었기에,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며 누나에게 말을 붙였다.
“그래서 제가…….”
“아하하.”
나는 누나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누나의 빙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빙수를 다 먹고 마침내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 나는 누나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휴. 배부르다.”
“푸짐하게 먹었네요.”
“푸, 푸짐~? 내가 그렇게 많이 먹었나……?”
“하하. 아뇨. 저 말하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누나의 빙수를 확인했다.
‘조금 남기기는 했지만, 이정도면 2개 이상은 먹었겠어.’
누나는 확실하게 빙수에 뿌려진 가루와 시럽을 섭취했다.
‘됐다.’
누나의 말투는 평소와 비슷하긴 했지만, 얼굴이 약간 붉었고, 무엇보다 묘하게 내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태도.
사탕의 효과가 무사히 적용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확인할 필요는 있겠지.’
잠시 말이 끊긴 동안, 나는 누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쳐다봐?”
누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애써 시선을 피하던 누나는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말했다.
“아뇨. 그냥 예쁘다 싶어서요.”
“뭐, 뭐어?”
내 대답을 예상치 못했는지, 누나가 당황하면서 되물었다.
‘확실하네.’
원래 내가 알던 누나의 성격이었다면, ‘네가 뭘 좀 아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반응은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 드신 것 같은데, 차나 한잔 마시고 갈까요?”
“어? 어. 그러자…….”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으음. 나는 허브티로.”
나는 차 두 잔을 타서 각자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차를 홀짝이며, 우리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지금부터인데…….’
나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차를 마시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약간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분명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울 거야.’
사탕 두 개의 힘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했다. 상대에 대한 강한 호감과 끌림을 느끼기에, 함께 있는 시간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울 것이다.
내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 되겠지만, 나는 조금만 짓궂게 굴어보기로 했다. 아마 저쪽이 먼저 붙잡을 것이다.
‘안 되면 내가 말하면 되고.’
나는 빠르게 차를 다 마시고는 컵을 내려놓았다. 사탕 두 개를 먹이는 데에 성공했다면, 이미 계획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누나도 찻잔을 내려놓았다.
슬쩍 누나를 바라보자, 마치 무언가를 결심한 듯 보였다.
“저기 진현아…….”
“네, 누나.”
“우리…….”
“아. 이제 슬슬 갈까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유정이 누나는 드물게 횡설수설했다.
“어, 우리… 어디라도 좀 걸을까?”
“네?”
“기껏 만났는데 바로 헤어지기는 그렇잖아. 소화도 할 겸…….”
누나가 약간 자신감이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누나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참 기묘했다.
평소에는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라고 생각해 사무적으로 교대만 했던 누나였는데, 나와 누나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다니. 참으로 신기한 운명이었다.
‘뭐, 이것도 어플에서 얻은 신비한 사탕의 힘이라는 게 좀 슬프지만.’
기회는 기회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잠시 걷다가 영화라도 볼까요?”
“영화? 응! 좋다.”
누나가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일어날까요?”
“그러자. 고마워 진현아. 잘 먹었어.”
“뭘요. 맛있게 드셨다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카드를 꺼내 밥값을 계산했다.
4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 나왔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점원의 인사를 뒤로한 채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안에 틀어져 있던 빵빵한 에어컨 바람이 없어지자, 더운 공기가 우리를 덮쳤다.
“으음. 그럼 산책 겸 근처 영화관까지 걸어갈까요? 공원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응. 그러자.”
나는 슬쩍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누나가 빙수를 먹은 것이 11시 50분쯤이었으니까, 적어도 오후 2시 50분이 되기 전까지는 누나가 내게 호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공원의 거리를 거느렸다.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기도, 조깅을 하는 사람도, 커플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가, 나는 불쑥 사탕을 내밀었다.
“응? 저번에 준 사탕이네.”
“네. 드실래요?”
“히히. 고마워.”
시럽과 부스러기로 사탕 2개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었지만, 키스를 하기 위해서는 1개 정도의 효과가 더 필요할 것 같았기에 나는 누나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이미 호감도가 오른 상태이고, 지금은 시럽이나 가루처럼 굳이 사탕을 숨기지 않고 그냥 줘도 좋을 것 같았다.
“도착했어요.”
“어? 여기에 영화관이 있었어?”
“네. 지하에 작게 있어서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아요.”
공원을 20분 정도 걷고, 한 건물 앞에 선 나는 누나를 안내했다.
“근처 큰 백화점에 영화관이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는 손님이 별로 없어요. 시설도 나쁘지는 않은데.”
“헤에. 좋다. 이런 데는 어떻게 알았어?”
“하하. 친구가 알려줬어요.”
친구가 별로 없어 혼자서 덜 쪽팔리게 영화를 보기 위해 인기 없는 영화관을 찾아봤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확실히 주말인데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네.”
“네. 그래도 지금 바로 하는 영화도 좌석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좋다. 우리 뭐 볼까?”
누나는 영화 포스터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영화관에서는 꽤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 중에 있었다.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메이저 영화 2~3개에, 그런저런 영화들까지.
누나는 몇 가지 포스터들을 살펴보다가 액션 영화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스틸맨이라. 좋아하죠. 근데 그거 4편이라서… 누나 전편들 다 보셨나요?”
“아니… 사실 1편밖에 안 봤어.”
“하하. 그럼 다른 걸로 골라요.”
누나는 바로 다음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럼 이거는 어때? 깐깐한 여동생도 재밌다고 칭찬한 영화야.”
“헤에, 누나 여동생도 있어요?”
유정이 누나의 여동생이라. 필시 여동생도 예쁠 것이다.
“응. 고2야. 이거 볼래?”
최근에 굉장히 흥행하고 있는 메이저 영화 ‘기생자’였다.
“근데 그거 저도 이미 봤어요.”
“끄응…….”
누나가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미안해 누나.
사실 그거 아직 못 봤어.
애초에 인터넷과 게임이 인생인 내가 개봉이 일주일도 되지 않은 영화를 봤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다.
굉장한 명작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곧 보려고 한 영화기는 했지만, 기껏 누나와 단둘이 됐는데 보기에 적절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고심하는 척 포스터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한 가지 포스터를 가리켰다.
“이거는 어때요?”
“어디 보자… 헤에~ 그 날의 가을? 나는 좋은데, 너는 괜찮아?”
“네. 저도 이런 거 좋아해요.”
내가 고른 영화는 로맨스 영화였다.
어제 어떤 식으로 데이트를 할지 고민하다가 볼만한 영화들을 조사했을 때, 미리 점 찍어 둔 영화들 중 하나였다.
키스를 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는 로맨스 영화과 최고일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그 날의 가을’이라는 로맨스 영화는, 지금 상영중인 로맨스 영화들 중에 그나마 후기에 칭찬이 많이 보이는 영화였다. 후반에는 나름의 감동도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걸로 보자. 시간도 마침 20분 뒤 상영이라 딱 좋다.”
“네. 그럼 티켓 사고 올게요.”
“아! 아니, 아니야. 영화는 내가 낼게.”
누나가 손을 휘저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에이. 영화를 누나가 내면, 제가 사과의 의미로 밥을 산 게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사과, 사과인가…….”
누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문득 누나의 얼굴에 약간 아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팝콘을 살게요. 누나가 영화표를 사요.”
“아! 그거 좋다.”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팝콘을 사고 있을게요. 누나가 티켓을 구매해 주세요. 자리는 음… 이어진 자리면 아무 곳이나 좋아요.”
“응!”
나는 바로 팝콘을 파는 곳에 줄을 섰고, 누나는 영화 예매를 하는 곳에 줄을 섰다.
“커플 세트 A, 나왔습니다!”
팝콘을 받은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마침 자리를 고르고 있는지 여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이다.’
나는 얼른 누나의 음료수 뚜껑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어느 정도 비웠다.
그리고, 가방에서 물병을 꺼냈다.
‘반 정도면 충분할 거야.’
물병의 내용물은, 아이템으로 얻은 욕망의 물에 탄산과 설탕을 섞은 놈이었다.
당연히 어제 실험해 본 녀석 중 하나였고, 무언가를 섞어도 욕망의 물의 효과는 제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욕망의 물에 탄산과 설탕을 넣으니 맛은 사이다와 굉장히 비슷해졌다. 때문에, 일부러 누나의 음료수도 사이다로 주문했다.
쿠카콜라와 팝시의 맛을 눈감고 구분할 정도로 미각이 대단하지 않은 이상, 섞어도 그다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맛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딱 괜찮은 만큼 넣었다고 생각한 나는, 이제는 그만 넣으려고 물병을 세웠다.
- 툭
그때였다.
“아! 죄송합니다.”
뒤편에서 누군가가 휴대폰을 하면서 지나가다가, 나와 어깨를 부딪쳤다.
그냥 부딪친 것이면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나는 그 반동으로 물병 안의 물을 모두 누나의 사이다 안에 쏟아버렸다.
‘미친.’
그렇게, 나는 욕망의 물 범벅이 된 누나의 사이다를 아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