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어플-6화 (6/303)

〈 6화 〉# ‍h‍t‍tps:‍/‍/t‍.me‍/Li‍nkMoa

일요일의 아침이 밝았다.

“끄응, 잘잤다…….”

잠에서 깬 나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뒤,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 일요일, AM 08:21 ]

“휴.”

다행스럽게도 늦잠을 자지는 않았다. 혹시 몰라서 9시에 알람을 맞춰 놨는데, 쓸 일은 없어 보였다.

‘드디어 오늘이네.’

어제 아침.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히로인 어플을 통해 아이템들을 얻은 나는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보았다.

실험해 본 것은 주로 아이템들의 효력.

카페에 나가서 스스로 사탕을 먹어보거나, 물을 마셔보는 식으로 실험을 하여,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또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를 통해 어떻게 데이트를 할지 동선을 짠 나는,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에 유정이 누나한테 만날 자세한 시간과 장소를 코코아톡으로 보냈다.

혹시나 사탕의 효력이 떨어져 갑자기 안된다고 할 가능성도 있어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속은 11시니까. 아직 조금 여유롭네.‘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히고는, 오늘의 일정을 상상해 보았다.

11시에 데이트.

엄밀히 말하자면 그냥 내가 밥을 산다는 단순한 약속이었지만, 내게는 그 의미가 달랐다.

오늘 잘해야, 키스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돌려 책상 위를 바라보자, 책상 위에는 하트 모양 사탕 몇 개와 치약 통처럼 생긴 튜브, 봉투에 담긴 가루, 작은 물병에 담긴 물과 함께, 립스틱 모양의 레이저 스틱까지 존재했다.

전부 어제 실험을 마친 뒤, 오늘을 위해 준비해 둔 물건들이었다.

“좋아. 할 수 있다.”

나는 잠시 휴대폰의 미튜브 동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9시가 조금 넘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샤워를 빡빡 한 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옷을 골라 입었다.

그리고 작은 가방들 안에 미리 준비해둔 물건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 …이렇게 물건들을 챙기니 뭔가 범죄 같네.‘

물건을 넣던 나는 갑자기 든 생각에 피식 웃었다.

’아니, 흠… 어쩌면 진짜 범죄가 맞는 건가?‘

잘 모르겠다.

사실 신비한 어플에서 나온 마법같은 아이템이라 그렇지, 어쩌면 그 성분은 마약과 같은 걸 수도 있었다.

이상한 약물을 통해, 순진한 여성을 꼬시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돌연 약간의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소설에서만 보던 신비한 어플이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어쩌면 이걸로 앞으로의 내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도 있었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 윤리의식 같은 것은 일단 접어두자.

’그리고 뭔가 부작용이 있다면… 분명 아이템 효과에 적혀 있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 납득한 채,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10시 46분.

조금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늦게 도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를 약속 장소 앞에서 서성이듯 기다리고 있자,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진현아. 일찍 도착했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미소를 짓고 있는 유정이 누나가 보였다.

‘와…….’

나는 누나의 모습을 본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의 매일마다 보는 얼굴이긴 했지만, 교대할 때 잠깐 보는 것뿐이기에 이렇게 차려 입은 사복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누나는 연한 오렌지 색부터 흰색까지 그라데이션으로 내려오는 반팔 티셔츠와 옅은 회색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싱그러운 여름의 물씬 풍기는 패션이었는데, 향수도 은은하고 달콤한 오렌지 향을 뿌리고 왔는지, 상큼함이 묻어났다.

상당히 간편하고 캐쥬얼한 복장이었지만, 그럼에도 얼굴과 몸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예뻐 보였다.

이쁜 여자라면 많이 보기는 했지만, 나와 단둘이 만날 약속으로 이렇게 이쁜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누나의 모습을 보자 돌연 긴장이 되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살짝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나는 누가 봐도 굉장히 예뻤지만, 나는 평범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긴장하지 말자.’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어제 퀘스트를 포기하고 재시도하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남은 재시도 기회를 모두 사용해버렸다.

만약에 오늘 성공하지 못하고, 남은 제한시간인 6일 동안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퀘스트를 실패와 더불어 더 이상 진행할 수 있는 퀘스트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진행할 퀘스트가 없어져서.’

이 신비한 어플을 더는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긴장을 푼 채 웃으며 인사에 대답했다.

준비는 완벽했다. 남은 것은 자신감뿐이었다.

“네. 조금 여유롭게 도착했어요. 또 지각하면 안 되니까요.”

“풋. 그건 그렇지.”

누나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지각이라…….’

처음 어플을 받고 이것저것 해 보다가 지각했다. 덕분에 명분을 만들어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잘 된 지각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맛있는 걸 사드릴게요.”

나는 자연스럽게 마주 웃음 짓고는, 발걸음을 옮겨 첫 장소로 향했다.

“어디서 먹을 거야?”

“가 보면 알게 될 거예요.”

나는 누나와 함께 길거리를 걸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였다.

많은 커플들이 팔짱을 끼며 길거리를 돌아다녔는데, 나 또한 그런 사람들에 나름대로 섞여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도착했다. 여기에요.”

한 건물 앞에 선 나는 건물의 3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간판에는 ’루마샤브‘라고 적혀 있었다.

“헤에. 샤브샤브?”

“네.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으으응~ 단지 의외라서. 나는 파스타집 같은 곳 갈 줄 알았거든.”

확실히 정곡을 짚었다.

나 또한 처음에는 양식 레스토랑에 가서 먹을까 생각해 보았으니까. 기껏 기회를 잡았는데 해장국 같은 걸 먹기에는 조금 그랬고, 파스타 같은 게 누구나 떠올릴 만한 무난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고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럼 들어갈까요? 예약은 해놨어요.”

“응. 좋아. 나 샤브샤브 좋아하는데, 잘됐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건물의 3층 전체가, 전부 샤브샤브집이었다.

“몇 분이세요?”

“2명이요. 예약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천진현입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이쪽으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깔끔한 옷을 입은 사람이 창가 쪽 자리를 안내해줬다.

루마샤브는 나름대로 유명한 샤브샤브 가게였다. 주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인기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뷔페식이라는 것.

샤브샤브를 시키면, 샐러드 바를 무료로 먹을 수가 있었다.

“누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으음. 너는 뭐 좋아하는데?”

“오늘은 제가 사과할 겸 사드리는 거니까, 누나가 취향대로 골라봐요.”

“알았어. 그러엄...... 해물로 먹자!”

나는 벨을 눌러 해물 샤브샤브를 주문했고, 우리는 그 뒤로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샐러드바에서 먹을 것들을 떠왔다.

“잘 먹을게, 진현아.”

“네.”

샤브샤브를 먹고,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우리는 각자 후식을 가져왔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가져왔고, 유정이 누나는 과일과 조각 케이크, 커피를 가져왔다.

그렇게 서로 먹고 있을 때, 나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가져오게?”

“빙수요.”

나는 웃으면서 말하고, 빙수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우…….’

나는 빙수가 있는 자리에서 서서 유정이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과일을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적당한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배에 무언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 보였다.

예약할 때 나는 일부러 구석의 창가 쪽 자리로 예약했다.

그 자리에서는 샐러드 바 쪽이, 특히 빙수 등 후식이 놓여있는 곳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루마샤브는 친구들과 함께 몇 번인가 와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이거였지.”

나는 가방 속에서 가루가 든 봉지와 튜브를 꺼냈다.

이게 내가 바로 루마샤브를 고른 이유였다.

‘좋아.’

나는 내가 먹을 빙수를 간단하게 만들고는, 누나가 먹을 빙수도 만들기 시작했다.

얼음을 뜨고, 팥과 연유를 얹었다. 몇 개의 인절미와 젤리로 장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봉투에 든 가루를 끼얹고 튜브를 짜기 시작했다.

‘잘 되겠지.’

가루는 히로인 어플로 얻은 사탕을 잘게 부순 사탕가루였으며, 튜브는 내가 어제 직접 만든 시럽이었다.

기존의 딸기 시럽에다가, 히로인 어플로 얻은 사탕을 녹여서 섞어 만든 놈이었다.

어제 카페에 나가서 실험해 본 내용 중 하나로, 사탕은 그냥 먹어도 효과가 적용되지만, 가루를 내거나 사탕 자체를 녹여서 무언가와 섞어서 먹더라도 효과가 무사히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탕 1개 정도의 양을 섭취하는 것.

사탕 1개 정도의 양을 섭취하게 된다면, 그 양을 섭취하는 동안 바라본 대상에 대하여 효과는 무사히 적용되었다.

‘하마터면 알바생한테 고백할 뻔했지.’

나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남은 12개의 사탕 중 5개를 실험에 사용했었는데, 실험 장소로 정한 것이 바로 카페였다.

장시간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

카페에 앉은 나는 혹시 몰라서 가장 평범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첫 번째 타겟으로 잡고 그 여자만 바라보면서 실험해봤는데, 아마도 내가 이 사탕의 효과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슴이 요동쳤었다.

‘설마 사탕의 효과가 중첩될 줄은 몰랐어.’

하나를 먹었을 때는 조금 끌리는 느낌만 들었는데, 아예 처음 보는 사이에 얼굴과 몸매도 평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탕 두 개를 먹으니 굉장히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더이상 먹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그 뒤로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실험을 마저 진행했었다.

‘다 됐다.’

나는 완성된 빙수를 바라보았다.

빙수에 뿌린 가루는 사탕 1개를 빻은 것이며, 빙수에 뿌린 시럽은 사탕 2개를 녹여서 섞어 만든 놈이었다.

총 3개의 사탕이 들어간 작품이었지만, 사탕 3개의 효과를 노리지는 않았다.

‘아마 남길 거야. 딱 두 개 정도의 양은 섭취해줬으면 좋겠는데.’

사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탕을 그냥 주는 것이지만, 사탕을 먹을 때마다 나에 대한 호감이 바뀌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사탕의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이렇게 음식에 섞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따라서 달콤한 후식이 있고, 손님이 직접 음식을 뜨는 이 뷔페 형식의 루마샤브야 말로, 내게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여기요. 누나 것도 만들어 왔어요.”

나는 빙수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 내 자리에는 일반 팥빙수를, 누나의 자리에는 사탕가루와 시럽을 뿌린 빙수를 내려놓았다.

“응. 고마워.”

누나는 웃으며 대답하고는, 바로 빙수를 한입 떠먹었다.

나는 속으로 침을 삼키며, 누나가 빙수를 떠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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