煎夜(전야)
후욱… 후욱…….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새빨갛게 물든 시야에 잡히는 것은 전무했다. 아니, 무언가 보이긴 했으나 그것이 그의 뇌리까지 파고들진 못했다. 비틀비틀, 그는 정처 없이 떠돌며 손안에 쥐고 있던 것을 다잡았다. 어디 있느냐… 어서 나오너라. 그는 잔뜩 갈라지고 터진 입술을 달싹이며 큭큭 어깨를 떨어 웃었다. 빗물에 젖은 옷자락이 축축 늘어져 몸을 감쌌으나, 애초에 한서(寒暑)를 잊은 몸은 문제 될 바가 없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심장이 호소하는 것을 따르는 것만이 중요했다.
핏줄이 터졌는지, 비와 함께 그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붉었다. 피눈물이었다. 그의 한이 서리고, 애증이 섞인. 그것을 닦아 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헤매었다. 이 손안에 들린 것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를… 그렇게 찾고 있었다.
쏴아아-
차가운 빗줄기 소리조차 그에겐 달리 들렸다. 경화야… 경화야……. 그리 부르는 어미의 목소리가 빗속을 뚫고 그를 괴롭혔다. 심득이 뒤틀리고 애써 내리누르고 있던 증오가 꿈틀거리며 전신의 기혈을 타고 맴돌았다. 답답한 가슴을 아무리 내리쳐도 사그라지지 않는 그 감정에 몸을 맡기고 걸었다. 질질… 바닥을 긁는 검을 다잡을 생각도 없이 그는 굶주린 아귀처럼 피를 찾아 헤맸다. 어디냐… 어디로 가면 되느냐……. 어디로 가야 지독한 방법으로 저를 버린 어미를 찾을 수 있는가.
나와 아비를 버리고 잘 살아지더란 말이냐……. 천하의 다시없을 비정한 어미여…….
죽이고 싶다. 진정으로 그녀를 죽여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헤매었을까.
아득한 곳을 헤매고 있던 그를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저승에서 온 사자인가?’
귓가를 파고드는 것은 아직은 앳된 목소리였다. 빗소리마저 구분하지 못하고 있던 그가 정신을 차렸던 것은 그 말 때문이었다.
저승에서 온 사자… 복수를 하고자 돌아온 사자(死者)는 제가 아니던가.
‘…어마마마를 모시러 온 게야?’
대답 없이 선득한 낯으로 저를 바라보는 이를 향해 아이는 계속해서 물었다.
‘아무도 보내 주는 이가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저승에선 길 잃지 말라 하여 널 보낸 것이냐?’
‘…….’
‘죽어서는 고달프시지도 박해받지도 않으시는 게지?’
횡설수설 그리 저 할 말만 하는 아이의 얼굴도 저와 마찬가지로 빗물에 잔뜩 젖어 있었다. 마치 그처럼 어딘가를 헤매고 오기라도 한 듯이. 붉게 달아올라 뜨거운 숨을 내쉬는 모습은 단단히 앓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대답 없는 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비척비척 그를 향해 다가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찌하지. 혼을 걷으러 온 것이라면 잘못 왔다.’
이미 아이의 어미는 초라한 나무 관에 실리어 제대로 된 장례조차 없이 군관들의 손에 들려 궁을 나간 지 한참이었다. 울어 주는 이 하나 없이, 향 하나 피워 주는 이 없이 그리 쓸쓸하고 서글프게 가 버렸다. 그에 혹 애써 찾아온 이 착한 사자가 헛걸음하고 돌아갈까, 그러다 죽은 어미의 혼이 갈 곳 잃을까 아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아이는 제 어미가 어디에 묻힐지 몰랐다. 전염병으로 죽어 버린, 연고 하나 없는 말단 후궁이 제대로 된 양지에 묻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이는 설움에 눈물만 뚝뚝 흘렀다. 이 차가운 궁에서 위안이 되던 유일한 이를 잃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제 어미의 무덤조차 알지 못하다니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하랴.
‘불효다…….’
천하의 다시없을 불효자다. 관을 옮기는 군관들을 막지도 못하고, 감히 그 뒤를 따라갈 생각조차 못 했으니 이보다 더 큰 패륜이 어디 있을까.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이를 무심한 낯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리 슬프면 함께 가면 될 일.’
무미건조하고 써늘한 목소리가 정녕 지옥의 그것과 같았다.
벼락을 맞은 듯 놀라 몸을 떤 아이의 두 눈이 홉떠졌다. 그러다 서서히 본래의 크기대로 돌아오더니 그 나이에서 보기 힘든 체념이 서린다.
‘그래… 나를 데리러 온 거로구나. 그러하면 같이 가자꾸나.’
‘…….’
스릉- 그는 말없이 늘어져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죽여 달라 다가오는 이를 굳이 살려 보낼 필요는 없었다. 일단 이 아이의 피로 검을 데우리라. 그 생각에 그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들어 올렸던 검을 내리그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듯 두 눈을 내리감던 아이의 입에서 힘없이 흘러나온 말이 없었다면… 분명 그의 검은 아이를 양단했을 것이다.
지친 듯… 처연한 듯… 한숨 쉬듯… 포기한 듯 흘러나온 그 말… 그가 내뱉지 못했던 그 말…….
‘죽어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움찔, 검을 내리치던 손길이 멎었다. 그것을 모르는 듯, 아이는 여전히 지친 두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사는 게 왜 이리 힘든 것이야… 저승에 가면, 이보다는 숨 쉬기가 편할까?’
‘…….’
‘그렇다면 데려가 다오… 사는 게 지옥과 다름이 없으니 무엇이 겁나겠는가.’
아… 달싹, 거친 숨만 내쉬던 백경화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들렸던 검이 힘없이 내려온다. 그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옥은 편하지 않다. 항상 가슴 저미는 고통이 그를 괴롭혔으니까.
‘…그렇지 않다. 거기도, 이곳과 같으니.’
‘……그러면… 어디로 가면 쉴 수 있느냐?’
그의 대답에 절망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아이는 차분하게 그리 물었다. 어디로 가면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고. 그는 답할 수 없었다.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도 몰랐다. 어미를 죽이고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는 것인가. 그리 끝을 내야만 정말로 이 절망이 사라진다면… 그는 정말로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인가.
그런 의문 속에서도 그는 한 가지 답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네가 바라는 행복 따윈 어디에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고통과 절망뿐이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그리 답하자 아이는 열 오른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버려진 아이처럼 빗속에 서서 그리 하염없이 울었다. 그 절망을… 그는 알고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 끝,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저 사는 것… 그 위에 서서 버티는 것 그 하나.
그가 그러하듯이.
그렇기에 그는 잡고 있던 검을 놓았다. 제 앞에 서서 비에 젖어 울고 있는 아이를 향해 머뭇머뭇 손을 뻗었다. 단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미지의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듯─ 그러나 그 손은 끝내 아이에게 닿지 못했다.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 손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손을 잡아 온 것은 그보다 훨씬 작은 손이었다.
‘그러면… 그러면 나 데리고 가지 말아라……. 어디든 마찬가지라면 더 살련다.’
나는 더 살아 보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가 되어서라도… 조금 더 희망이 있는 이곳에서 살아 보련다.
청하듯 잡은 제 손에 힘을 주는 작은 손은 뜨거웠다. 쉽사리 뿌리칠 수 있는 작은 손인데, 그는 그리 한참을 잡혀 있었다. 살아 무엇이 변하느냐. 어차피 끝은 같지 않겠느냐…….
더 살아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그의 말에 아이는 울면서 답했다.
‘그래도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인간답게 살아 보고 싶다.’
이리 아무것도 없이 죽는 게 아니라.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인간다운 무언가 하나만은 가지고 가고 싶었다. 구차하고 비참해도 그러고 싶었다. 살다 보면, 무엇 하나는 이 손에 들어오지 않으랴.
아이는 미약한 희망을 품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았기에, 지금 그대같이 따뜻한 사자도 만났지 않느냐…….’
‘…내가, 따뜻하더냐?’
‘그대가 산 자들보다 따뜻하다…….’
그는 순간 급히 터져 나온 숨을 삼키지 못했다. 이 아이가 무슨 소리를 하나. 친어미를 베어 죽이고자 온 이를 향해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인단 말인가. 그러나 아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가 산 자들보다 훨씬 따뜻해. 비정한 현실보다 그대가 있는 이곳이 더욱 평안하다. 그런데 이것 또한 구걸하며 살아남았기에 느끼는 감각이 아니겠느냐. 이전에 죽었다면 그대같이 다정한 사신은 만나지 못하였겠지.’
그러하니 조금만 더 살아 보련다. 혹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며.
‘더 살아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어찌할 셈이냐?’
어리석다. 어찌 이리 어리석나. 그리 당하고도 아직 모자라더냐. 머릿속으론 그리 쏘아붙이면서도 그는 동요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미처 그를 깨닫지 못한 아이는 희망을 짓이기는 그의 말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 희미하게 웃었다.
‘더 이상 살아 바뀌는 것이 없다면, 그때도 그대가 데리러 오너라…. 그 하나로도 나는 지옥이 두렵지 않을 듯해…….’
다정한 그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는 미동도 없이 아이의 넋두리 같은 말을 듣고만 있었다. 분명 이 아이는 열이 올라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탓에 그는 생각도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고 말았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네 눈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 그는 되묻고 싶었다. 친어미에게 버림받고 수라도를 걷고 있는 짐승으로 보이지는 않느냐고.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아이가 소리 없이 던져진 물음에 답했다. 눈앞의 사자가 사신이 아니라면 그는 그냥.
‘그냥 내 눈엔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보인다…….’
비록 상처받고 슬퍼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을 잡아끄는.
열이 올라 발개진 눈으로 그리 말한 아이가 덧붙였다.
‘슬프고 괴로워서… 그래서 길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런데도 그 와중에 내게 위로와 위안을 건네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야.’
아이는 몽롱한 두 눈을 깜박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귀기 서린 사내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괴기스러울 만도 하건만 아이는 그 피눈물이 안타까워 저도 모르게 손을 뻗고 말았다. 흥건한 피눈물을 닦아 낸 아이가 그 뜨거움에 놀라 두 눈을 홉뜬 것은 그다음이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의 정체는 하나였다.
‘그대는 진짜 사람이구나. 살아 있는 사람이었어…….’
사람이야, 그리 되뇐 아이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그는 저도 모르게 받아 안았다. 제 품 안에 뜨거운 열기를 품은 작은 몸이 안겨 들었다. 그 체온이 차갑게 식은 그의 몸을 데워 주었다.
그에 어쩐지 울음이 터져 나와서 그는 작은 몸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새까맣게 속을 얼리던 한기가 걷혀 가는 것이 느껴진다. 정체성을 잃고 날뛰던 짐승이 사람의 탈을 쓰고 그의 안에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순종하듯, 혹은 본래 그랬던 것처럼… 이를 드러내면서도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죽어 있던 시야가 깨어나자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저가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인지도… 멀어졌던 이성이 눈을 뜨며, 품 안에 있는 아이의 존재를 가리켜─ ‘구원(救援)’이라 하였다.
비가 걷히고 써늘해지는 공기 속에서 그는 정신을 잃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멀리, 새벽이 밝아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흉악한 것 하나가, 인간으로 거듭나던 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