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유란주호가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궁 안팎, 나아가 도성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권문세가의 후계자가 사지가 절단되고 도륙당한 사실만으로도 놀라 까무러칠 지경인데, 그 시신이 매달려 있던 곳이 왕비의 침전 안이란 것에 사람들의 입방정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어찌하여 왕비님의 방이냐, 이것은 회임하신 왕비님을 부정케 하는 것이 아니냐는 둥, 사람들은 둘 이상만 모였다 하면 숙덕거려 댔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고, 사람들의 쑥덕거림도 도를 지나쳐 갈 때쯤 대비전에 상주복을 입은 유란 가주가 들었다.
“공빈 짓이 분명합니다!!”
“…….”
무엄하게 인사도 없이 가타부타 그리 소리치는 유란태진의 얼굴은 그새 많이도 상해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새빨갛게 물든 그는 피가 끓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그놈의 목을 치소서, 마마!!”
“앉으세요.”
“마마!!”
“차를 내오거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치는 유란태진에게서 시선을 돌린 대비가 대기하고 있던 지밀상궁을 향해 명했다. 그러자 정중히 읍한 상궁이 은근히 내려진 명에 따라 방 안에 있던 모든 궁인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것을 확인한 뒤에야 대비는 유란태진을 돌아보며 일갈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 더 언행에 주의하셔야지요!”
“마마!!”
“목소리도 좀 낮추도록 하세요.”
그렇게 경솔하게 굴어서야.
쯧쯧, 못마땅함을 드러내며 낮게 혀를 찬 대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유란태진을 외면하듯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이 기가 막혀, 유란태진은 헛바람만 들이키다 대비의 앞에 거친 동작으로 주저앉았다.
“마마! 우리 주호가… 제 아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살해만 당했습니까? 그 주검이 욕되었고, 효시되어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어찌 죽어서라도 편히 잠들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제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 호소하는 유란태진을 무심히 바라보던 대비가 입을 열었다.
“공빈 짓이라고 확신하십니까?”
“그 잡놈 외엔 또 누가 있단 말입니까!!”
지금 그들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것은 분명 그뿐이다 자신하는 모습에 대비는 실소했다. 깊이 생각지도 않고 범인을 색출하는 모습이 어이없긴 하나, 대비 또한 이번 일이 공빈의 소행이란 것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궁의 여인입니다. 그를 잡으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함을 모르시지는 않으실 터인데요.”
“심문하소서!”
답답하다는 듯 유란태진이 되받아쳤다. 하! 그에 가볍게 콧방귀를 낀 대비가 차가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무슨 근거로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공빈의 소행이라 하며 심문을 한단 말입니까. 지금은 내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 본디 무관이었던 자요. 그런 자를 심증만으로 심문했다가는 무관들이 들고일어나는 것도 시간문젭니다. 그걸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
궁 안의 고관대작들이 그녀의 사람들이라 하나, 묵묵히 칩거하고 있는 이들까지 그러하란 법은 없었다. 그런 사람들 중엔 이미 낙향하여 노후를 보내고 있는 실권자들도 있었다. 전대 백가의 가주 또한 그에 속했다.
“전대 백 가주가 상소문이라도 하나 올렸다간 그간 조용하던 무관들이 일어납니다.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오나 마마……!”
“그리고 잊으셨나 본데, 그와는 오래전 한배를 탄 적이 있지 않습니까.”
비록 지금은 서로 안부조차 묻지 않는 사이라 하나 한때나마 그의 도움을 받은 처지였다. 함부로 등 돌릴 수 없는 인사였다.
“그럼 제 아들은요? 억울하게 죽임당한 제 아들은 어찌합니까!”
대비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답답함을 호소하는 유란태진을 향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리 혈육의 정에 얽매여서야 어찌 큰일을 도모한단 말인가. 본디 필요하면 핏줄이라도 내쳐야 하는 법이거늘.
그녀가 그러했듯 말이다.
“젊은 나이에 그리 간 것이 안타깝기는 하나, 이것으로 공빈이 우리에게 반기를 든 것을 확인하였으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다행이라니요, 마마! 주호가… 우리 주호가 고작 그런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죽어야 했단 말입니까?!”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듣나,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대비가 말했다.
“이번 일로 앞으로의 일을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마! 마마의 질자(姪子)가 죽임당한 것입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냉철하다 못해 비정한 대비의 말에 유란태진이 목청이 터져라 항의했다. 연이은 그의 무엄한 언행에도 불구하고, 대비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래서요?”
“……!”
“울기라도 하오리까?”
냉정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비의 물음에 유란태진은 말문이 막혔다. 어찌 저리 비정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럴 수는 없을 텐데……!
말문이 막힌 채로 입술만 달싹이다 헛숨을 토하는 유란태진을 향해 대비가 덧붙였다.
“아들 하나를 잃긴 하였으나 가주에겐 손자가 생겼지 않습니까. 죽은 아들의 흔적이라도 남겼으니 다행이지요.”
하……!
유란태진은 태연한 대비의 말에 아찔한 감각을 맛보다가, 등을 타고 흐르는 한기에 몸서리쳤다.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냉혹한 여인이다. 그래, 그런 여인이다. 저 자리에 앉기 위해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 웃으며 제 아들의 목을 친 이가 바로 저 여자다. 그런 이가 조카의 죽음 따위에 눈 하나 깜빡일 리가 없었다.
‘잔악한 년! 역시 천한 피는 속이지 못하는구나!’
새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유란태진을 향해 대비가 나름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유란주호의 복수는 확실하게 해 줄 생각입니다.”
“…….”
그사이 조금 더 늙은 낯의 유란태진이 저를 마주 보자 대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말이지요.
조용한 방 안에 퍼져 가는 대비의 웃음 서린 목소리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실로 불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 * *
백경화는 이연을 뒤에서부터 단단히 안은 채 연신 부드러운 손길로 이연의 배를 쓸었다. 축 늘어지다시피 하여 백경화의 품에 안겨 있는 이연의 안색은 말이 아니었다. 창백하게 질려 파리한 낯에서 고통이 묻어났다.
그 관자놀이에 입술을 부비며 백경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전하, 아직도 많이 아프신지요……?”
“…….”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기에, 이연은 거짓으로라도 괜찮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에 안타까운 듯 짧게 신음한 백경화가 더욱 정성스러운 손길로 이연의 배를 문질렀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되뇌며 치성을 드리듯 이연의 말랑한 배를 문지르던 백경화는 속으로 쯧, 혀를 찼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그의 실책이다. 배 속에 정액이 남아 있으면 배앓이를 한다는 사실을 어찌 몰랐단 말인가.
피로 물든 몸을 깨끗이 씻은 후 다시 이연의 몸을 끌어안고 잘 생각으로 방에 들어섰던 그가 제일 처음 목도한 것은 이불 위에서 잔뜩 몸을 말고 있는 이연의 모습이었다. 대경하여 다가가자 배를 잡고 끙끙 앓고 있는 이연의 안색이 말이 아니라, 백경화는 더욱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전하, 어디가 편찮으신지요? 배가 아프신 겝니까?’
어디가 아프냐, 혹 잘못 만져 더 아프게 할까 싶어 손 하나 쉽사리 대지 못한 채 그리 묻던 백경화는 대답 없이 앓기만 하는 이연의 모습에 애가 바짝 탔다.
백경화의 속이야 어떻든 이연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이마를 이불에 문지르며 앓았다. 배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했다. 창자가 끊기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입을 벌리고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는 이연의 모습에 창백하게 질린 백경화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게 누구 없느냐! 여선아!!’
큰 소리에 대기하고 있던 여선이 단번에 내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신음 하나 내지 못한 채 배를 부여잡고 있는 이연과 그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백경화의 모습이다. 여선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그 곁으로 다가섰다. 그러는 중에도 백경화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남겨 놓고 간 호위들을 족쳐 댔다.
‘전하께서 언제부터 이리 앓으셨는가! 이리될 때까지 너희는 무엇 했더란 말이냐!!’
‘…주군.’
‘날 부를 틈이 있거들랑 얼른 달려가서 태의나 끌고 와라!!’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