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장 진격(進擊) (39/49)

38장 진격(進擊)

바스락대는 소리에 겨우 눈을 뜬 기하는 눈동자를 가볍게 굴려 주위를 살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탓에 주위는 온통 캄캄했다. 새벽의 찬 기운이 막사 안을 헤집었다.

“폐하?”

황제는 홀로 갑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시중드는 사람 하나 없이 매무새를 가다듬던 그는 기하의 무거운 음성에 고개를 돌리며 미소했다. 잠이 유난히 많고 잠귀가 어두운 탓에 이대로 두면 아침까지 제법 잘 자리라 생각했던 판단이 어긋나자, 황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여 일부러 어젯밤 늦게까지 정을 나누었는데, 그마저도 소용없었나 보다.

“더 자지 않고.”

“어디 가십니까?”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 말고 얼굴을 찌푸린 기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상체를 납작 엎드렸다. 끙, 하는 소리가 귀여운 강아지 같다. 두껍지 않은 비단 기수로 벗은 몸을 가리고 연신 앓는 소리를 내는 기하의 옆으로 다가가니, 어여쁘던 눈을 사납게 찢으며 흘겨보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더 자렴.”

“어디 가시느냐고요, 이른 새벽부터.”

“군장이 되어서, 전장에서 늦잠을 자며 게으름을 부릴 수는 없지 않으냐.”

그것은 황제의 말이 옳았다. 기하는 물끄러미 정인을 바라보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어젯밤 아무렇게나 내던져둔 옷을 찾았다. 보나 마나 반은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져 입을 수도 없겠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신첩도 얼른…….”

“그대는 예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뾰족해지는 기하의 시선에 황제는 너그럽게 웃었다. 허리를 낮춰 눈을 맞추고 뺨을 쓸어주는 손길은 무척 다정했다.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손길에도 기하는 쉬이 웃지 못했다.

“싫습니다.”

“그 몸으로 어딜 움직이려고?”

“신첩이 침상만 지키려고 따라나섰습니까?”

“오늘은 그대 몸이 좋지 않아.”

“일부러 그러신 것이지요? 따라나서지 못하게 하시려고 일부러 그러셨지요?”

“어허, 목소리를 낮춰. 밖에서 다 듣겠다.”

억울했다. 이러려고 이 먼 곳까지 따라나선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만이 그 이유는 아니지 않은가.

“싫습니다. 폐하와 함께 갈 것입니다.”

“그대 몸 상태가 좋지 못해서 그래. 자는 내내 앓았다, 열도 났고.”

황제의 단호한 표정에 기하는 몇 번이나 입술을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은 황궁도 아니었고, 자칫 그를 거슬러 노여움을 샀다가 사소한 실수로 황제께서 다치시기라도 한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기하야.”

“…….

“서연의 군이 밀접해 있다. 서진하가 먼저 출발했다. 짐은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멀리 가지 않아.”

서연의 군대는 고작 천오백이 전부였다. 이만이 넘는 뛰어난 군사들이 황제를 지켰다. 만약에라도 황제께서 위험에 처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저…….

“이휘감이 잘못을 시인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예전 북왕을 섬겼던 것처럼 서진하와 북성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는 아버님의 충신입니다.”

“북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임금에 비할 바가 아닌 사내지.”

기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황제는 미소했다. 밤새 물고 씹었던 입술이 거칠게 갈라져 입을 댈 때마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흔한 찡그림 하나 없이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기하를 와락 끌어안으며, 황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정인의 불안감이 제 마음마저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폐하, 소장 임승지입니다.”

막사 바깥에서 들리는 금룡대장의 목소리에 황제는 눈으로 천천히 기하를 훑으며 그의 목 끝까지 기수를 둘렀다. 겨우 얼굴만 달랑 내밀었으나, 정인의 흐트러진 모습을 다른 사내에게 보이려니 기꺼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무슨 일이냐.”

“동쪽 막사에서 불길이 치솟아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임승지의 다급한 보고에 황제는 얼굴 가득 짓고 있던 미소를 지우고 허리를 곧추 세웠다.

“들어와라.”

휘장(揮帳)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임승지의 얼굴은 퍼석해 보였다. 며칠째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인지 피부는 까칠했고,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까지 더해지자 평소보다 훨씬 사나운 인상이 되었다.

그는 막사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다 침상 가운데에 기수를 뒤집어쓰고 오도카니 앉아 있는 기하를 보고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뭐가 어찌 되었다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불길을 잡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번지는 터라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미리 대비하고는 있으나, 만약을 위해 잠시 피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병사들은. 피해가 큰가?”

“다행히 모두 일어나 출정 준비를 하고 있던 탓에 큰 피해는 없었으나, 폭발한 막사 하나는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아마 그곳에 폭약이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하는 임승지의 보고를 경청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발화 속도가 빠르고 파급력이 뛰어난 폭약은 북성의 큰 무기였다. 그들이 매번 전장에서 승리하는 주원인 또한 그것이었기에, 폭약 하나만 있어도 군사 수백은 가볍게 쓰러트릴 파급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대지를 물로 적시라고 하세요. 막사 안은 물론 행군하는 모든 길에 물을 뿌리라 하세요.”

다급한 기하의 목소리에 임승지는 짧은 숨을 내쉬며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새로운 북왕께서도 같은 명을 하셨습니다.”

기하는 그제야 안도하며 노곤한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아무리 기수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도 임승지와 이리 마주 보고 있으니 새삼 민망해진 탓이었다. 오랜 시간 황궁에서 후궁으로 지냈더니, 마음까지 유약한 여인이 된 것만 같다.

“북성의 화약은 일반 탄포와 다르다고 합니다. 폭발이 크지만, 폭발을 위해서는 화약 길을 따라 불을 놓아야 해서 대지가 젖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였습니다.”

“강이 지척이라 하나,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여 주둔지를 약간만 이동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병력이 적어도 북성의 화약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임승지는 얌전히 황제의 명을 기다렸다. 매사 진취적이고 명쾌한 그가 어쩐지 답을 내리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에도 참을성 있게.

“눈앞의 불씨를 피해 강물로 뛰어든다.”

“올해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예년보다 수위가 높지 않다고 합니다.”

“속단하진 마라. 물이야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으니.”

스무 배가 넘는 적군을 상대로 놓을 수 있는 최상의 덫은 무엇일까. 용맹함? 충성심? 아니다. 단지 마음만으로는 상대를 넘어설 수 없다. 위기에 처한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펑! 우르릉,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지의 흔들림이 느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화약이 다시 터진 것인지 바깥이 어수선했다. 임승지는 난감한 기색으로 황명을 기다렸다.

“예까지 잘도 숨어들어 왔구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매끈한 턱을 쓰다듬던 황제는 주먹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그다지 건조한 날이 아닌지라 불길은 크지 않았으나, 바람이 불어 다른 막사로 옮겨붙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서연은 영악한 자였고, 누구보다 문정을 잘 알고 있다. 포악한 흑마단을 직접 이끌며 수많은 전장에서 선봉을 지켰다. 수년간 밀정을 심어 두었으니, 언제 어디서 그의 존재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폐하.”

보다 못한 기하가 황제를 재촉했다. 지금은 사념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이대로 무작정 당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황제는 무심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려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는 기하와 시선을 맞췄다. 걱정으로 물든 얼굴이 어찌나 처연하던지, 당장에라도 온몸을 끌어안고 괜찮다 속삭여주고 싶었다.

“절반만 움직이고, 나머지 절반은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예후를 본다. 추적대에게서는 연통이 있었느냐.”

“아직 이렇다 할 보고는 없었습니다.”

“북왕의 움직임을 주시해.”

“그를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어쩐지 조심스러운 임승지의 말에 황제는 가볍게 미소했다. 불안감에 물든 기하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손을 뻗자 스스럼없이 눈을 감는다.

“의심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비니, 주시하고 있어 나쁠 것은 없지. 아무리 나라를 팔아먹은 위인이라 하나, 그는 하나뿐인 아비가 아니냐.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허물어질 게 빤해. 더욱이 북왕처럼 올곧은 사내는 천륜을 거스르기 힘들지.”

황제는 가볍게 기하의 뺨을 훑으며, 임승지를 향해 눈짓했다. 그는 단정하게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 거침없이 막사를 가로질렀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는 오롯한 적막만이 맴돌았다. 해가 뜨려는지 서서히 주위가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일어나자. 힘들더라도 오늘은 조금 움직여야겠다.”

머리를 쓸어주는 다정한 손길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 마음이 어지러운 탓에 정신이 혼곤했다. 손을 내미는 황제의 손끝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다리가 덜덜 떨렸다. 물을 먹은 솜뭉치처럼 허리 아래가 무거웠다.

“채비하는 것을 도와주마.”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 그러느냐?”

기하는 대답 대신 황제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어깨를 다독여주는 손끝이 어찌나 단단하던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제 끝이다. 끝이 보인다. 아마도 아버님께서는, 스스로 용서받길 원치 않으실지도 모르겠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오천의 군사가 강과 가까운 곳으로 주둔지를 옮겼다. 그곳은 초원이 넓어 별다른 것 없어 보이는 곳으로, 상대의 급습을 고려한 탓에 사방이 뻥 뚫려 있었다. 막사를 짓는 군인들을 먼눈으로 바라보던 기하는 장수들과 밀담을 나누는 황제를 지나쳐 주위를 살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혹여 비라도 퍼붓는다면 상황은 적진에 유리하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마마.”

복면을 뒤집어쓴 기하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얼마 없었다.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돌리니 평소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내던진 임승지가 목소리를 낮췄다.

“잠시 가보셔야겠습니다.”

“내가 말입니까?”

“북왕께서 귀환하셨습니다.”

“벌써요?”

“상대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 간단히 제압하신 듯합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기하는 딱딱하게 굳은 임승지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얼굴은 승리를 축하하는 기색보다는 염려가 가득했다.

“형님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어깨에 가벼운 부상이시온데.”

가벼운 부상? 한데?

난감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임승지를 향해 완전히 돌아선 기하는 멀리서 자신을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장수들의 보고를 받는 황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무리 뛰어난 장수도 죽음을 오롯이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전장이다. 수많은 대전을 멀쩡히 치르다 어린 병졸이 잘못 쏘아 올린 화살에 목숨을 잃는 것 또한 전장이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길 속에 내던져진 삶에, 그만은 오롯이 무사하길 바라는 지나친 이기심이 독이 된 것일까.

“어디 계십니까?”

“조금 전 막사로 들어가셨습니다.”

가벼운 부상일 리가 없다. 그랬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황제 폐하를 알현했을 성정이니까. 초조함에 손끝을 떨며 다시 주위를 돌아봤다. 심각한 표정으로 장군들을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이 서늘했다. 늘 어깨 아래로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한데 묶어 높이 틀어 올린 그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형님을 뵈러 가야겠습니다. 안내해 주겠습니까?”

“예, 마마. 소장이 앞장서겠습니다.”

“폐하께는…….”

“가벼운 부상이라고 보고 드렸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앞장서 걷기 시작하는 임승지를 따랐다. 발걸음을 빨리할수록 속이 타들어 간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의 발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님은 끝끝내, 저희 형제를 버리려 하심인가. 적어도 형님은, 형님께는 애틋하셨던 분이 아니었던가.

“이쪽입니다.”

황제의 처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막사 주변에는 유난히 많은 북성의 깃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주위를 다시 돌아보아도 그런 막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잠깐만.”

막사 안으로 들어가려던 임승지가 발을 멈췄다. 출입문 옆으로 빙 둘러 깃발을 단단하게 옭아매던 병사의 손이 멈춘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는 굽혔던 허리를 바로 펴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기하를 향해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명한 일이지?”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북성의 깃발이 유난히 많아 묻는 말이다.”

“아아, 이것은 북성의 전통입니다.”

병사는 유쾌하게 웃으며 덥수룩한 수염을 쓸었다. 눈만 겨우 내놓은 기하는 누가 보아도 황제가 자랑하는 금룡대 그림자의 모습인지라,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북성의 전통을 운운했다.

“그리하면 군장의 위치가 적에게 드러날 텐데?”

“흑마단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는 사내들이 아니지요.”

너털웃음을 짓는 병사의 뒤로 다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치와 정을 들고 나타난 그 역시 반대쪽까지 깃발을 세운 후에 돌아온 참이었다.

“하면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꾸벅 머리를 숙이는 사내들은 거침없이 등을 돌렸다. 부는 바람에 따라 사납게 펄럭이는 깃발을 무심히 바라보던 기하는 뭔가를 이상하게 여긴 임승지가 제 곁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다시 그들을 불렀다.

“멈추라 했다.”

“어찌 그러십니까?”

열 걸음이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 채, 그들은 반문했다.

“북성에 그런 전통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

“하하하, 그렇습니까?”

“마치 이곳에 군장이 있다고 천하에 알리는 것 같구나. 멀리서도 아주 잘 보이겠어.”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내의 얼굴 가득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곁에 바짝 붙은 동료에게 눈짓하며 슬그머니 손을 뒤로 감췄다. 그 순간,

탕!

사내는 민첩하게 무언가를 꺼내려 했고, 기하는 화살을 빼 들어 단숨에 시위를 당겼다. 들이마신 숨을 채 내뱉기도 전, 찰나에 날아간 화살은 사나운 굉음을 내며 사내의 목을 관통했다. 사내는 분수처럼 터지는 피를 제 손으로 막으며 눈을 부릅떴다. 그의 무릎이 채 꺾이기도 전에, 기하는 다시 한 번 화살을 빼 들었다. 겁에 질렸음에도 도망치지 않은 다른 사내가 품 안에서 표창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탕!

그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 후, 다른 화살이 무릎을 꿰뚫었다. 그대로 고꾸라진 사내가 스스로 목을 베려는 순간, 그를 포박한 임승지는 입안에 천을 밀어 넣어 자해를 막았다.

사내의 발치에 선 기하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부들부들 떨며 고통에 경련하는 그의 숨통을 당장 끊어놓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 듯한 시선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그리 죽으려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죽을 것이니, 애쓸 필요 없어.”

“마마, 괜찮으십니까?”

임승지의 음성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기하는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으나, 그가 염려한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기하는 지나치게 냉정했고,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사나운 설움이 칼날처럼 심장을 짓이기는 것 같았다.

“시체를 치우고 주위를 정리하세요. 고통이 가시기 전에 죽으려 할 테니 잘 감시하도록 하세요. 묻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요.”

“예, 마마.”

바람이 분다. 가지가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내는 기괴한 소리는 영혼들의 구슬픈 흐느낌과 같았다. 혀를 길게 빼고 널브러진 시체를 지나치며 기하는 냉소를 머금었다.

찬란한 봄은, 끝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진하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미처 그의 부상 정도를 확인하지 못했던 임승지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번졌다.

최장명은 몹시도 분개하며 손수 서진하의 상처를 돌보았다. 군의는 상처가 깊으니 아물 동안은 곪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보는 눈이 많은데 이리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아니 되지. 그러다가 혹,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면 어쩌려고.”

걱정 가득한 서진하의 음성에도 기하는 쉬이 웃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피에 젖은 그의 어깨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버님의 뜻입니까?”

툭 내뱉어진 기하의 음성에 서진하는 침묵으로 답을 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파리하게 질린 얼굴은 퍽 지쳐 보였다. 그것이 서러웠다. 서럽고 서러워, 이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이것이, 아버님의 뜻이냐 물었습니다.”

“기하야.”

“소제가 미우신 건 당연합니다. 소제 때문에 북성의 수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문받고, 불에 타고, 사지가 찢겼습니다. 왕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차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아버님의 나라가, 우리의 나라가 찢겨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도, 소제는 오직 정의와 진실만을 생각했습니다.”

비난은 감수할 수 있었다. 원망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분노를 오롯이 받으면서,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 그 죄를 갚자고도 생각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같은 피가 흐르는 이들을 모른 척할 수 없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물음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욕심으로 가족을 잃고, 나라를 잃고, 지위를 잃어버렸던 그를.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다. 제가 택한 결말은 정의가 아니라 연정이었다.

“하지만 형님은 아닙니다.”

스스로 떳떳하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늘 악몽에 시달렸다. 눈 코 입이 뭉그러진 궁인들이 밤마다 울부짖었다. 머리가 잘려 나간 이모님은 저주를 퍼부었다. 어머니는 늘 우시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셨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붙잡아주지 않으셨다.

“형님께서는, 아버님의 유일한 자랑이셨지 않습니까.”

두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아버지는 이따금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품에 안아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마는, 때때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다정한 말씀도 해주셨다. 그것으로 살았다. 그것으로 버텼다. 그런 분의 아들이라는 것이, 기하는 못내 자랑스러웠다.

“백성의 고혈을 짜내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왕이라도,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 눈을 가려 선인인 척 위장하며 살아온 가증스러운 사람이라도! 적어도, 형님께는 자랑스러운 아버님이셨습니다.”

“이리 가까이 와 봐.”

“아버님이 형님께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형님께는! 이리하시면 아니 되지요!”

마지막 끈이었다. 적어도 목숨보다 귀히 여기는 형님이 계시니, 살아가고 또 살아가다 벼랑 끝에 내몰리면 죄를 시인하고 돌아오실 줄 알았다.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실 줄 알았다. 그런데 어찌, 어째서.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푹 가라앉은 서진하의 부탁에 곁을 지키던 이들이 머리를 숙였다. 화려하지 않은 막사 안은 비릿한 피 냄새와 분노에 영글어진 쓰디쓴 눈물만이 맴돌았다.

“간자들이 주위를 맴돕니다. 북성의 기를 형님 처소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형님께서 가장 잘 아시겠지요.”

그것은 적장의 목을 베겠다는 흑마단의 도전장이었다. 북성의 오랜 전통이자, 수많은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그들의 마지막 선공이었다.

“제 손으로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들 목에 화살을 꽂았습니다.”

“…….”

“신분을 막론하고, 흑마단은 모두 같은 하늘 아래 피를 나눈 형제라 배웠습니다. 형제의 목에 칼을 꽂고, 살기 위해 그들을 죽였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형제를 죽음으로 내몰아야 합니까?”

“이것을 보아라.”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을 외면했다. 차마 그것을 다독여주기엔 저보다 한참 어린 아우의 가슴에 진 응어리가 너무 컸다. 서진하는 구깃구깃한 서찰 한 장을 기하에게 내밀었다. 얼룩덜룩 피가 묻어 겉으로는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출정하여, 우리에게 대항하는 오백의 군사를 모두 전멸시켰다.”

전쟁을 아무리 즐기는 자들이라도, 투항하면 살려준다. 그것이 북성의 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도우며 남의 목숨값으로 밥벌이하는 자들이라도, 사람 목숨은 귀히 여겼다. 순순히 투항하는 이들은 때때로 흑마단에 스며들어 북성의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것을 가장 기꺼워한 이는 다름 아닌 서진하였고.

“그들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싸우려는 의지가 아니라, 오직 우리를 죽이려는 살기로 가득했다.”

기하는 서진하가 내민 서찰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피에 젖어 엉겨 붙어 손을 움직이기 조심스러웠다.

목숨을 구걸하는 자는 모두 죽여라.

피가 준 환락에 젖어, 너를 해하려 하는 자들 또한 용서치 마라.

그리하면 너의 나라는 평온해질지니,

검은 피가 문정의 초원을 모두 적시면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분명, 서연의 필체였다. 수려하고 담담한, 그와 똑 닮은 필체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기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마지막 부분이, 피에 젖어 보이지 않습니다.”

붉디붉은 피에 젖은 끝자락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았다. 서진하는 침통한 얼굴로 기하의 시선을 외면했다. 목구멍이 가시에 찔린 듯 쓰리고 아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님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딘가에 계시겠지요.”

“대장군(大將軍) 이휘감과 표기장군(驃騎將軍) 윤한중이 모두 아버님 곁에서 떨어졌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너 또한 잘 알고 있겠지.”

그들은 서연의 수족과 다름없는 자들이다. 크고 작은 전장에서도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와 같은 이들이었다. 서연의 충신이었고, 그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등을 보일 수 있는 벗이었다.

“표기장군은…….”

“오늘 새벽, 그의 시체를 찾았다.”

묻고 싶은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 아직 하고 싶은 말 또한 많았다. 평생 속죄하며 용서를 구해야 할 이들도 많지 않은가.

목숨을 구걸하는 자는 모두 죽여라.

“그들은 모두 미쳤다. 악귀에 쓰인 사람처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임에도 죽을힘을 다해 퍼부어댔다. 예를 다하지 않는 장수는 백정과도 다를 바 없다 했지. 그들은 그저, 백정이었다. 인간이 아니었어.”

피가 준 환락에 젖어, 너를 해하려 하는 자들 또한 용서치 마라.

아버님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어찌 그런 짐승 같은 자들을 모두 끌고 이 먼 문정까지 오셨단 말인가. 어찌 북성을 그리 허무하게 버리셔야 했단 말인가.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하야.”

“아니요. 아닙니다, 형님. 아니에요. 아버님께서 자신의 죄를 씻고자 하셨다면, 폐하께 깨끗하게 승복하고 죗값을 달게 받으셨어야 합니다. 천하가 등을 지고, 천한 노비에게 돌팔매질을 당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형님과 제가 낙인찍혀 살아간다고 해도, 그리하셨어야죠.”

파렴치한 아비는 끝끝내 죗값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하면 너의 나라는 평온해질지니.

나라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백성이요. 나라의 밑거름은 탐욕에 찌든 어른이 아니라, 장차 빛나게 자랄 아이들이니. 그들을 섬기고, 그들을 받들며, 그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신 분은 아버지셨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아비를 잃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미쳐버린 어미에게! 엎드려 죄를 빌었어야죠. 그래야 사람이지요. 그래야! 적어도 형님과 저의 피가,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지요. 살아있는 것이, 이토록 죄스럽지는 않아야지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오롯한 분노를 드러냈다. 원망과 설움으로 일그러진 표정에 서진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처음 이 서찰을 받았을 때,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피로 얼룩진 마지막 글자를 어린 아우가 보지 못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휘장이 걷혔다. 작은 바람이 일렁이며 붉은 망토를 걸친 황제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그는 엄중한 얼굴로 서진하를 바라보다, 곧장 등을 돌려 서 있는 기하에게로 향했다. 몸이 불편해 비스듬히 앉아 있던 서진하가 미처 예를 갖추기도 전이었다.

그는 커다란 손을 들어 무작정 기하의 두 눈을 가렸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뺨을 쓰다듬는 손은 더러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여쁜 아이의 것과도 같았다.

“나의 빈께서 어찌 홀로 예까지 오셨을까.”

그것은 실로 다정한 음성이었다. 전쟁 중의 군장에게서 나올 법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진하는 마른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다행이었다. 아우에게, 저런 뜨거운 마음을 가진 정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함부로 돌아다니면 위험하다지 않았어?”

그대로 기하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마주 본 황제는 그의 얼굴에서 미련 없이 눈물을 거두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무런 걱정 또한 하지 말라는 듯이.

“내 랑랑과 잠시 함께하고 싶은데, 할 얘기가 다 끝났으면 빈을 데려가도 되겠지?”

“예, 폐하.”

기어이 침상 아래로 내려오려는 서진하를 향해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그대로 있으라는 신호를 보낸 황제는 숨죽여 눈물만 흘리고 있는 기하의 어깨를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몸조리 잘하시게.”

“살펴 가십시오.”

겨우 두어 걸음을 떼고서 휘청거리는 기하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으며, 황제는 가볍게 혀를 찼다. 어찌 이리 몸이 약하냐는 타박도 잊지 않고 연신 뺨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몹시도 장난스러웠다. 그제까지 굳은 얼굴로 눈물만 떨구던 기하는 겨우 표정을 수습하고 입술을 즈려 물었다.

물 냄새, 바람 냄새, 햇볕 냄새.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평온하고도 따스한 공기.

“그러다 피 난다.”

“폐하.”

“그대 입술은 짐의 것이지. 그리 함부로 물고 뜯으면, 혼나.”

허리를 낮춰 눈을 마주 보고 눈물로 얼룩진 눈가를 쓸어주는 얼굴이 어찌나 장난스러운지, 저도 모르게 황제의 품으로 뛰어든 기하는 귓가에 흐트러지는 웃음소리에 두 눈을 감았다.

북성의 검은 피가 문정의 초원을 모두 적시면,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이 전쟁은 끝이 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만, 지독한 이 길이 끝날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출정할 것이다.”

황제의 다정한 음성에 기하는 퍼뜩 눈을 떴다.

“폐하.”

“전쟁은 빨리 끝날수록 좋다. 그래야 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갈 것 아니냐.”

“함께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그대 청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 금세 돌아오마.”

“폐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돌아올 것이야.”

“…….”

“약속하마.”

모든 이야기는 언젠가 끝을 맺는다. 사람은 무릇 태어나고 죽는다. 생을 부여받은 모든 만물이 그렇게 살다 간다.

때때로 뜻하지 않은 죽음에 남은 이들의 삶이 피폐하고 척박해져도, 남겨진 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찾아 또다시 살아간다. 삶에 순응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쓰디쓴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자, 운명이라 생각했다.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그대 눈에서 다시 눈물 나는 일은 없을 거다. 금세 돌아오마. 그러니 울지 말고 기다려.”

아아, 우리의 인생은 어찌 이리 서글프단 말인가.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 때로는 원치 않는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리면서 뜻대로 살아가지 못함에 절망하는 우리는 어찌 이리도 가련하단 말이냐.

“금세 오셔야 합니다. 황자들이 보고 싶습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 환궁하면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편히 보내자꾸나.”

뺨을 어루만지는 손끝이 어찌나 뜨겁던지. 끝끝내 그 손을 부여잡지 못하고 가련하게 어깨를 떨자, 이마 위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기하야.”

“예, 륜.”

“다녀오마.”

“다녀오십시오, 랑랑(郞郞).”

빙긋이 미소 짓는 황제의 수려한 얼굴을 기하는 고요히 응시했다. 이리 웃고 있는 모습을 두 눈 가득히 담고 싶었다. 금세 돌아오실 테지만, 혹여 그 짧은 순간 그리움에 못 이겨 명을 거역하고 그를 찾아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서글픔은 잠시 잊기로 했다. 분노도, 미움도, 원망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 아니던가.

“무운을 빕니다.”

따뜻한 손길이 사그라진다. 가볍게 말 위로 뛰어오른 황제는 다시 한 번 기하를 내려다보고는 흑마의 고삐를 가볍게 틀었다. 뿌연 먼지바람이 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수천의 군사가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붉은 망토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 뒤를 따르는 황제의 그림자와 장군들의 모습이 흐려지려 했다.

“마마, 안으로 드셔 계시지요.”

“잠시만, 이대로 있고 싶다.”

기하의 호위를 위해 남겨진 그림자 둘은 물끄러미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뒤에서 머리를 낮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애틋하고 서글퍼 보여, 차마 더는 말을 붙일 수 없는 까닭이었다.

“결국엔 출정하시었나.”

참담한 서진하의 목소리에 기하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간신히 지혈하였더니, 금세 또 움직여 피가 배어나기 시작하는 서진하의 상태에 뒤따르는 최장명의 표정이 몹시도 흉흉했다.

“어찌 나오십니까. 안으로 들어가세요.”

“신하 된 도리로 폐하께서 출정하시는데 어찌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있겠느냐.”

걱정이 담긴 기하의 표정에 서진하는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제는 완전히 모습을 감춘 황제의 뒤를 따르는 수천의 군사들만이 제 존재를 드러내듯 대지를 쿵쿵 울리며 말을 몰았다.

그들이 사라진 서쪽 하늘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기하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단 한 번도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남겨진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그 애잔한 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폐하께서는 무사히 돌아오실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러실 게다. 그러니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자.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러는 것이 좋겠어.”

해맑게 웃기만 하던 아우의 눈동자에 잠긴 비탄을 끌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오롯한 믿음이었다. 단순히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 아니라, 그는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그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우의 눈에 어린 슬픔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어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형님께서도, 얼른 북성으로 돌아가 형수님과 조카님을 만나고 싶으시지요?”

어울리지도 않게, 웃고야 만다. 그 웃음이 퍽 따뜻해서 서진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로 그리웠다. 평온한 북성이란, 따뜻한 가족의 품이란……. 너무도 그리워 절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소제도 그렇습니다. 귀여운 정연군이 가장 보고 싶습니다. 폐하와 똑 닮은 무영군도 그립고요. 후원에서 뛰어놀고 있을 영이도 그립고, 현 상궁도 보고 싶습니다. 환궁하고 나면, 서엽과 연진 공주의 혼례를 올릴 수 있게 폐하께 주청 드릴 것입니다. 숙부님께도 허락을 받아야 하니, 형님께서 꼭 서엽의 편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형님께서도 보시면 흐뭇하실 겁니다.”

“그래, 그러마.”

두 사람 혼인은, 꽃이 만개하는 어여쁜 봄에 했으면 좋겠습니다. 황실에는 봄마다 붉은 봄꽃이 만개하는데 그것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아래 서 있으면 꼭 신선이 된 것만 같답니다. 그날이 오면, 모두가 행복하겠지요? 그날이 오기 전에, 아버님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형님.”

“그래.”

“아버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

“묻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아요. 어쩌면 영영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평생 서로 미워만 하면서 살지도 모를 일이지만…….”

희미한 먹구름이 하늘에 드리웠다. 푸른 초원이 검은 그림자에 짓눌려 허우적거렸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하의 표정은 허망함으로 물들었다.

“딱 한 번만, 뵙고 싶습니다. 딱 한 번만요.”

그것은 끝내, 외면할 수 없는 혈육의 정일지도 모른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어쩔 수 없이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깊고 무른 정.

서진하는 말없이 아우의 어깨를 다독였다. 피에 젖어 형체를 잃어버린 서찰의 마지막처럼, 서진하의 눈 또한 고요하게 젖어들었다.

아비를 용서하지 마라. 아비를 잊으라. 네 아우를 부탁한다.

* * *

말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대지를 흔드는 말발굽 소리는 세찬 바람마저 잠재웠다. 먹구름이 하늘에 드리우고 머잖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군대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용이 수놓인 붉은 기를 하늘 높이 쳐들며, 흔들림 없이 전진했다. 형형한 분노로 빛나는 적의 수는 고작해야 수백이었다. 개중에는 제대로 된 무기조차 갖추지 않은, 노쇠한 인영마저 보였다.

“투항하여 새로운 북왕의 수족이 될 법한 자들은 살리라. 하나, 그 뜻을 꺾지 않은 이들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해라.”

황제의 사나운 음성에 군사들은 땅을 울리며 환호했다. 잘 벼른 검은 비에 젖어 반짝임을 더했다. 황제의 주위를 에워싼 궁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 올렸다.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다. 추락하는 낙엽처럼 허물어지는 적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이 낮게 드리워졌다.

“폐하, 빗방울이 거셉니다. 잠시 뒤로 물러나시지요.”

온몸이 흠뻑 젖은 황제는 가장 높은 곳에 고아하게 앉아 허물어지는 적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엔 차디찬 감정만이 득실댔다.

“서연의 자취는.”

“추적 중입니다.”

언덕 아래는 이미 진흙탕이었다.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흑마단의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악다구니하며 달려드는 통에 황제군이 잠시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중 가장 가운데 서 있는 자는, 수염이 덥수룩한 장수였다. 아마도 지금 이곳의 수장인 듯한 그는, 보기에도 둔탁해 보이는 무거운 도끼를 어깨에 두르고 제 발밑을 구르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따금 그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아까운 황제군이 바람처럼 스러져갔다.

“시간이 없다. 죽기로 각오하고 덤비는 이들은 의외로 기가 세지.”

임승지를 힐끗 쳐다보던 황제가 곁에 있던 궁사에게 손짓했다. 적진을 향해 끊임없이 화살을 퍼붓던 궁사가 후다닥 달려왔다. 황제는 말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의중을 눈치챈 궁사는 들고 있던 활을 황제에게 바쳤다.

그것은 좋은 무기였으나, 평소 황제가 사용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시위를 당기는 힘 자체가 달랐음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꽥꽥거리는 산적 같은 놈의 입을 닫아 놔야 퍼붓는 비를 잠시라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임승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황제는 우아하게 팔을 뻗어 시위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가 비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장수의 왼쪽 목덜미에 박혔다. 겨우 얼굴을 구분할 정도의 먼 거리였기에, 수십 명의 궁사가 쏘아 올린 화살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덕분에 완전히 안심하고 있던 장수는 제대로 된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말 아래에 처박혔다. 꺽꺽거리며 몸을 떠는 장수의 주위로 모여든 적진은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가히 신이 내린 궁술 솜씨였다. 임승지는 저도 모르게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다, 황제의 사나운 시선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모든 전쟁의 승패는 적장의 죽음을 누가 먼저 손에 쥐느냐에 달렸다. 수많은 전장을 직접 지휘하며 선봉에 섰던 황제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무리는 손쉽게 허물어진다. 우왕좌왕하다 이내 자멸하고 말 것이다.

“멈추지 말고 진격해. 내일 해가 뜨기 전, 이 전쟁을 끝낼 것이다.”

황제의 전술은 지나치게 사나웠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황제에게 익숙했기에, 그의 명이 달갑지 않았다. 피에 굶주린 것은 비단 흑마단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전장에서 구르던 사내들이 수도성을 비롯한 황실을 에워싸고 보초나 서고 있었으니, 그 갑갑증을 풀려면 사흘 밤낮으로 칼을 휘둘러도 모자랐다. 천천히 그것을 즐기려 들떠있던 부하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임승지는 쓰게 웃었다.

“폐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알현을 청하옵니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말이었으나, 이곳은 전장이었다. 정체를 숨긴 이들이 수도 없이 전장을 돌아다녔다. 그중엔 제법 쓸 만한 간자들도 있었고, 돈이 되는 정보를 풀고 목숨을 구걸하는 장사치들도 있었다.

임승지의 눈짓에 황제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그를 에워쌌다. 황제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제 앞으로 다가온 몸집이 작은 소년을 내려다봤다.

“고(告)하라.”

임승지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으나, 무릎을 꿇은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다.

“고하라지 않아? 쉰 소리나 내뱉을 셈이면 지금 여기서 혀를 자르겠다.”

그제야 소년은 임승지를 향해 입을 벌렸다. 몸집이 작고 마른 아이가 입을 쩍 벌리자, 시커먼 입속이 보였다. 제법 가지런한 치아와 벌어진 목구멍, 그리고 응당 있어야 할 자리에 잔상만 남긴, 반쯤 잘려나간 혀뿌리. 임승지는 얼굴을 옴팡 찌푸리며 황제를 향해 돌아섰다.

“흑마단의 비밀 통신원입니다.”

소년의 팔을 붙잡아 황제의 앞으로 끌어당기자, 작고 마른 몸이 임승지의 우악스러운 힘에 휘청거렸다. 소년은 황제를 향해 가볍게 묵례하고, 그대로 돌아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목덜미를 덮었던 머리카락을 들추자 빼곡한 글귀가 보였다.

날카로운 칼로 그어 만든 글자는 더운 날씨에 상처가 덧나 질척한 피고름이 맺힌 상태였다. 그런데도 황제는 용케 그 뜻을 알아채고, 무심한 눈으로 소년의 목덜미를 훑었다.

마지막 해가 뜨기 전, 물줄기의 끝과 시작에서. ―北

“네 주인은 지금 어디에 있나.”

황제의 목소리는 빗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소년은 그제야 다시 뒤로 돌아 그의 얼굴을 바로 마주했다. 자신의 몸에 어떤 내용이 쓰였는지, 그 내용에 따라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를 운명에 처한 이들은 삶은 포기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 딸린 식솔을 생각해, 보통의 용병보다 서너 배가 넘는 몸값에 저 자신을 팔고 죽은 듯 살아가는 것일 테다. 그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이들이었다.

그 때문에 아직 열대여섯밖에 되지 않은 소년은 아흔아홉 먹은 노인의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도 소년은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비밀 통신원이 되기 위해 불에 달군 예리한 칼에 혀가 도려내진 후,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건져 올린 자신의 삶의 마지막은, 그런 거라 생각했다.

“이 아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게 붙잡아 두어라.”

황제의 명령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한데 그런 그가 내린 명은 참으로 다정하고 사려 깊은 것이었다.

대체로 제 몸 깊숙이 비밀 정보를 직접 새겨 넣은 정보원은 임무가 끝나면 제 살을 스스로 도려내 증거를 없앤다. 때로는 직접 불을 놓기도 했고, 살이 녹아내리는 약을 붓기도 했다. 가장 깔끔한 것이 스스로 도려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흑마단이 얼마나 잔인무도한 집단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소년 정보원이 족히 수백은 되었다.

소년의 얼굴엔 씻지 못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황제는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이 지루한 전쟁이 끝나면, 과연 행복하게 웃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여기서 고잔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아마 한 시진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문정의 마지막 언덕을 넘으면 바로 고잔이 아닙니까.”

푸른 초원의 문정과 모래바람이 사납기로 유명한 고잔은 그 경계가 맞닿아 있었다. 딱 열 걸음만 더 걸으면 푸른 초원과 폭포가 쏟아지는데, 고잔의 사막은 나날이 황량해졌다.

“오늘 밤은 그림자와 함께 그곳으로 간다. 승지 너는 이곳에 남아 마지막을 정리하도록 해.”

“아니 됩니다, 폐하.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이곳은 전장입니다. 어찌 소장더러 폐하의 곁에서 떨어지라 하십니까.”

“하면, 이 난장판을 누구에게 맡긴단 말이냐?”

심드렁한 황제의 음성에도 임승지는 평소보다 딱딱한 얼굴로 머리를 내저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숱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라 할지라도, 그는 장수이기 전에 제국의 주인이다.

“뒷정리할 장수야말로 넘칩니다. 소장은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시끄럽다. 같잖은 보호 따윈 집어치워. 네 눈엔 짐이…….”

“계속 그리 고집 피우시면 당장 군영으로 돌아가 무빈마마께 고할 것입니다. 폐하께서 옥체 보중하시지 않으시고, 전장에 홀로…….”

“그만, 그만.”

황제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주변에 말을 제대로 들어 먹는 것들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제국의 황제인데, 말끝마다 꼬박꼬박 토를 달기나 하고.

“폐하께선 간악한 서연을 당해내지 못하실 겁니다.”

“뭐야?”

“조금 전만 해도 보십시오. 저 볼품없는 것을 어찌 살리라 명하십니까?”

“그럼, 저 비쩍 곯은 불쌍한 아이를 다짜고짜 죽인단 말이냐?”

“당연하지요. 예전의 폐하셨더라면 단칼에 그러셨을 것입니다. 저것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저 아이는 그저 전쟁의 무기일 뿐입니다. 가난에 목숨을 판 것은 저들의 선택입니다. 세상 모두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런 짓을 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분명, 그런 자들을 척결하라 하셨습니다.”

황제는 변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천하를 호령하던 그는, 다정한 정인이자 따뜻한 아버지가 되었다. 문제는 그가 너무도 인간적으로 변모하여,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이들에게조차 관용을 베푼다는 것이었다. 그런 넘치는 호사를 내려봤자, 그들은 복수의 칼을 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을 찌를 것이다.

“하명해 보십시오. 서연을 어찌하실 것입니까?”

“살릴 것이다.”

“그 후에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용서라도 하실 것입니까?”

“할 수만 있다면.”

“무빈마마께서 그것을 바라십니까?”

황제는 말없이 말 위에 올랐다. 그의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황제와 같이 말 위에 오르자, 임승지는 물끄러미 그들을 올려다봤다. 황제는 변했다. 그리고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폐하.”

임승지는 황제를 향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그래 봤자 말 위에 올라선 황제와의 거리가 상당해서, 쏟아지는 빗방울에 가려진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서연은 북왕에게 마지막 서찰을 남겼습니다.”

출정 전 북왕 서진하가 황제께 전해달라던 서찰의 뜻을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진하는 몹시도 침통한 얼굴로 피로 물든 서찰을 보여주었지만, 임승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제께 고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후회한다고 해도, 이제는 너무 늦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를 살려둔다면, 언젠간 반드시 독이 될 거다.

“흑마단의 피로 문정 초원이 물들면,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지니. 목숨을 구걸하는 자는 모두 죽이라 했습니다.”

“빈에게 남기는 말은, 없다더냐.”

“없었습니다.”

붉게 물든 서찰 끝자락엔 무언가가 쓰여 있었으나, 내용을 묻지 않았다. 서찰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서연 스스로가 죄를 인정하고 마지막 서찰을 띄운 꼴이었으니, 차라리 이 지루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제 손으로 목숨을 끊는 것이 모두를 위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그자는 끝까지 어리석구나.”

황제가 가볍게 혀를 차며 고삐를 쥐었다. 그의 고집이야말로 어지간하다는 말을 목구멍 안으로 눌러 삼키며, 임승지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어느새 초토화가 되어버린 언덕 아래에서는 적장을 잃은 흑마단이 개떼처럼 뒤엉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저것들이나 잘 정리해라. 해가 뜨기 전에 끝날 것이다.”

임승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황제는 빠르게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그림자 여섯과 그들의 뒤를 잇는 금룡대 쉰이 전부였다. 황제가 홀로 움직이는 것치고는 너무도 적은 수였기에, 아수라장인 그곳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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