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장 별리(別離) (18/49)

17장 별리(別離)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말에 오른 황제는 여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삐를 잡았다. 벌써 수 시간째 쉬지 않고 달린 터라 말이 지친 상태였다.

이제 산을 하나만 더 넘으면 황도에 들어선다. 험한 산의 초입, 서서히 속도를 늦춘 황제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잠시 쉬었다 가자.”

“예, 폐하.”

산세가 좋았다. 녹음이 우거진 산속에선 하늘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금세 비라도 내릴 것 같아 기하는 걱정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목을 축여.”

“예.”

수통을 내미는 황제의 손끝이 아스라이 손등에 닿았다. 어젯밤 불현듯 울음이 새어 나와, 불꽃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침상으로 숨어들어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서인지 줄곧 당기던 뒷머리도 한결 나아졌다. 아마 예전 체력이었더라면 이깟 말을 타고 달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환궁 후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매일 수련해야겠다는 생각 따위를 하던 기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황제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머리는.”

“예?”

“아프지 않고?”

“아… 이제 괜찮습니다. 어젯밤에 푹 잤더니.”

푹 잤다는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황제의 모습에 기하는 웃던 얼굴을 금세 지웠다. 또 제가 뭔가를 실수한 모양이다.

“그래, 잘 자더구나. 코를 골고 이까지 갈면서.”

“예? 제가 언제 코를 골고 이를 갈았습니까?”

“어제.”

“아닙니다. 소인은 아무리 곤해도 코를 골거나 이를 갈지 않습니다.”

“네가 직접 보기라도 했느냐? 뭘 그리 자신해?”

“하지만 전장에 있을 때도……. 아! 서엽이 압니다. 서엽, 서엽 이리 좀.”

“됐다. 알긴 뭘 알아?”

이것이 정말. 잠버릇을 안다는 말을 어찌 그리 자신 있게 말해? 수치도 모르는 것 같으니라고. 천방지축도 유분수다, 이놈아.

“그리 꽥꽥거리는 걸 보니 곤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만 출발하자.”

입술을 삐죽하게 내미는 얼굴은 심술 가득한 어린아이 같다. 저렇게 늘 소리치고 말대꾸하는 것이 황자는 곧잘 보살핀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정신연령이 비슷해서일지도 모르지.

“가자.”

푸드덕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한 황제의 뒤로 금룡대가 다시 줄줄이 따라붙었다.

“이랴.”

기하는 말의 옆구리를 가볍게 차며 고삐를 붙잡았다. 황궁으로 가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고생하였다.”

기하는 말고삐를 금룡대에게 넘겨주기 전, 며칠간 저를 태우고 다닌 풍의 등을 쓸어주며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그것에 화답하듯 연신 푸드덕대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녀석의 갈기를 쓸어주자, 금룡대 하나가 꾸벅 머리를 숙이며 짐승을 끌고 갔다.

“들어가라.”

수신전 앞은 소란하지 않았다. 예정보다 길어진 황제의 일정에 비빈들을 비롯한 후궁들이 마중 나와 혼잡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기하는 황제를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황궁이다. 이제는 아마, 어제와 같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연신 욱신거렸다.

“아, 빈.”

막 돌아서려던 기하가 황제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는 황제에게 이끌리듯 다시 가까이 다가가자, 황제는 뒤에 서 있는 금룡대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순간 그림자의 품에서 나온 익숙한 모양의 봉투를 기하는 아리송한 얼굴로 바라봤다. 저것은 분명―.

“가져가라.”

“이것은…….”

달콤한 냄새, 화려한 빛깔, 예쁜 모양. 분명 저자에 내동댕이쳐졌던 꽃사탕이었다. 그전보다 두 배는 많아 보이는 양에 봉투가 묵직했다.

“어서 가.”

“폐하…….”

꽃사탕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품에 안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붉은 얼굴에 황제는 가볍게 미소했다. 그리 좋은가, 겨우 사탕 하나에.

“어서 가래도.”

“아껴 두겠습니다. 폐하께서도 꼭 드시러 오세요.”

“일없다.”

“맛있는 차도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니, 예?”

물끄러미 기하를 바라보던 황제는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천연덕스럽게 제 감정을 드러내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저렇게 내내 웃고 있으면 차라리 나을 텐데, 이제 곧 불어닥칠 시커먼 먹구름 같은 일이 가슴에 번진다. 아마, 무척 마음 아파하겠지.

“그래.”

화사하게 번진 웃음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천천히, 기하에게 손을 뻗은 황제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토닥토닥, 가벼운 손길이었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기하의 시선을 외면한 황제가 먼저 등을 돌렸다. 그 뒤를 따르는, 승지를 비롯한 금룡대가 기하에게 짧은 눈인사를 건넸다. 텅 빈 수신전 앞엔 멍한 얼굴의 기하와 그 곁을 지키는 서엽만 남았다.

태화당 앞마당엔 모든 식솔이 나와 있었다. 기하는 일렬로 늘어서 있던 이들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했다.

“마마, 오셨습니까.”

현 상궁이 먼저 넙죽 머리를 숙이자, 그 뒤로 십여 명의 아이들이 나붓이 절을 올렸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손을 내저으려던 기하는 며칠 만에 돌아온 곳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코끝이 찡해져 입을 열 수 없었다.

“다들 잘 지냈나?”

“예, 소인들이야 잘 지냈습니다. 옥체 미령하셨다는 소식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릅니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이리 홀로 돌아다니셔도 되시는 것이옵니까?”

“응, 이제 괜찮아.”

“어서 오르셔요. 다들 걱정이 컸습니다. 대체 서 중랑께서는 마마를 어찌 보필하셨기에…….”

화살이 서엽에게 돌아가자, 기하는 미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워낙에 남의 말에 무딘 사내기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가 몹시 얄미웠던지, 현 상궁은 흉흉한 시선으로 서엽을 연신 타박했다.

“내 탓이네. 사냥 중에 정신을 놓고 있었으니.”

“어서 오르십시오.”

“응. 한데…….”

이제 막 미시(未時)에 들어선 까닭인지 황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황자는 당연히 이곳이 아니라 수신전에 들어 폐하께 문후를 올려야 함이 옳았다.

“정연군도 잘 지내고 있겠지?”

“예. 황자 저하께서도 내내 마마를 그리워하셨습니다.”

“아, 이건 절반 덜어서 다들 나눠 먹고 절반은 내게 줘.”

“이것이 무엇입니까?”

“꽃사탕이라네. 예쁘지? 맛도 아주 좋아.”

들고 온 것을 현 상궁에게 넘기며 방 안으로 들어오자, 훈훈한 온기와 익숙한 풍경이 이내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서엽의 말이 맞나 보다. 이제는 저도 완전히 제국 사람이 된 것 같다. 죽을 날까지 북성을 잊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북성에서 지냈던 방의 구조라든가, 그곳의 풍경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온욕을 준비했습니다.”

“응. 한데, 영이 달이는?”

“아… 그것이…….”

“이 녀석들 또 사고 쳐서 갇힌 건 아니겠지? 아니면 자고 있나?”

“예. 별일 없었습니다.”

“영이 상처는 이제 괜찮아졌나?”

“의원이 매일 상처를 보아준 탓에 잘 아물었습니다. 한동안 잘 먹질 않더니, 요즘은 그래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잠도 잘 잡니다.”

“내내 걱정하였어.”

영과 달, 그리고 황자를. 꼭 어미 없이 홀로 떨어진 새끼들 같아서 마음이 쓰이고 불안했다. 이따금, 아주 이따금 너무 행복해서, 너무 따뜻해서, 그들을 잊어버렸던 순간을 뒤늦게 깨닫고 미안함에 화들짝 놀랐을 만큼.

“등을 밀어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다 하면 부르겠네.”

“예, 마마.”

훌훌 옷을 벗어 던지고 탕 안으로 들어간 기하는 따뜻한 물에 노곤해진 몸을 푹 기댔다. 늘 답답하고 불편하게만 생각했던 궁은, 생각보다 훨씬 아늑했다. 이내 익숙해진 탓일까. 이제는 완전히 이곳이 제집이라 생각해서일까.

이리 저를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내내 자신을 기다렸다는 어린 황자, 그리고 영과 달. 지켜야 할 것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가볍게 웃으며 뜨거운 물을 제 얼굴에 끼얹은 기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온욕을 하고 한잠 달게 자고 일어나니, 해가 어두워졌다. 언제부터인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이제 곧 여름이 올 징조라 했다.

저녁 수라를 올리겠다는 현 상궁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연신 창밖을 바라보던 기하는 내내 고개를 갸웃했다. 정연군이 찾아올 때가 지났는데. 게다가 영과 달도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현 상궁.”

막 기미를 마친 현 상궁이 고개를 들고 기하를 마주 보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기하의 표정에, 그녀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잠시 숨을 골랐다.

“예, 마마.”

“정연군은?”

“황자 저하께서는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으신 줄로 압니다.”

“영과 달은 어디 있나? 영이는 몸도 성치 않은데. 게다가 이리 비까지 오고.”

“…….”

“현 상궁.”

“마마. 그것이…….”

“말해보게. 지금 내게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불안한 기분은 늘 끝이 어긋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어둠을 더욱 짙게 했다. 기하는 저를 연신 붙잡는 현 상궁의 손을 뿌리치고 빗속을 걸었다. 겨우 몇 발자국 떼었을 뿐인데 온몸이 흠뻑 젖었다.

“마마, 마마. 고정하십시오.”

“이거 놔.”

“이리 가시면 아니 되십니다. 폐하께서 절대로 마마께 함구하라 명하셨사옵니다. 폐하께서 직접 판결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니, 마마…….”

“서엽.”

“예, 마마.”

“현 상궁을 붙잡아. 지금부터 내 앞을 막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용서치 않겠다.”

싸늘하게 일갈한 기하는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등불도, 우장도, 우산도 하나 없이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기하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던 현 상궁은 자신의 앞을 막는 서엽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고 그를 지나쳤다. 마마, 하는 현 상궁의 애달픈 부름이 빗속에 잠겼다.

기하는 몇 번이나 저를 붙잡다 지친 현 상궁이 우산이라도 씌워주려 하는 것을 거절하고, 서엽의 만류를 뿌리친 채 추국장으로 향했다. 판결은 술시(戌時) 정각에 내려진다 하였으니 시간이 없었다.

금룡대 추국장 앞마당은 쏟아지는 비로 인적이 드물었다. 문 앞을 지키던 문지기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기하 일행에 놀라 움찔하는 사이, 안에서 막 나오던 승지가 놀라 얼굴을 굳혔다.

“마마.”

“날 좀 안내해 주시오.”

“어찌 예까지…….”

“어서.”

난처한 얼굴로 잠시 생각을 고르던 승지는 이내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기하를 보니 걱정이 앞섰다. 아직 완쾌조차 되지 않으신 분이, 어찌 이런.

“이러다 고뿔에 걸리시겠습니다.”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했을 때―.”

추국장 안으로 들어서자,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곳곳에 환한 불을 밝혔으나, 바깥보다 한기가 들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제 흔적을 남기는 기하에게 바투 선 승지는 파리하게 질린 그의 얼굴에 연신 고개를 저었다. 혹여나 그가 이곳을 찾거든 길을 막지 말라는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한데 정말로 직접 찾아오실 줄이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폐하께서, 명하셨습니까.”

“예, 마마께서 걱정하실 거라 여기시어…….”

“한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히 시간만 보냈던 거로군.”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폐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무지함을 탓하는 것이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커다란 문 앞에 늘어선 상궁들이 보였다. 영빈과 일황자의 수족들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기하를 바라보며 쭈뼛쭈뼛 머리를 숙였다.

“문을 열어라.”

승지의 명에 거대한 철물이 열리면서, 비릿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서엽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으라는 승지의 말에 현 상궁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역정을 냈으나, 금룡대는 한 치의 틈도 없이 그녀를 막아섰다.

이곳에 남은 모든 이들이 그런 식으로 제 주인과 떨어져 발이 묶인 상태였다. 그러나 그곳은 황제의 추국장으로 당사자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기에, 반발할 여지조차 없었다.

“들어가시지요.”

문이 열리자 한기가 더욱 심해졌다. 기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며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황제,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목이 묶여 있는 달이 보였다. 순간 왈칵 울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물었다.

“이제야 소식을 들으셨나 보오, 무빈.”

한껏 비아냥거리는 영빈의 음성에도 기하는 반응하지 않았다. 괴로움에 끙끙거리는 달이를 바라보다가 겨우 고개를 돌리니, 얼굴에 발톱 자국을 달고 팔까지 다친 일황자가 보였다.

“폐하, 더는 시간을 주지 마시옵소서. 이깟 짐승 하나 죽이는 것에 폐하께서 직접 관여하시다니요.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습니다. 황자를 보시옵소서. 폐하의 장자이신 무영군이 자칫 화를 당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을 절대로 그냥 넘기셔서는 아니 되십니다. 저 사특한 짐승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태화당 것들과 애초에 저것을 황궁에 들인 무빈까지도 엄히 문책하셔야 도리가 아닙니까?”

까랑까랑 울리는 영빈의 말에도 기하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황자를 바라보다 이번에는 황제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어느새 저렇게 멀어지셨구나. 반나절 전엔 함께 곁에 있어 주시었는데…, 이것이 저분과 나의 거리구나.

“폐하.”

“시끄럽다.”

“며칠간 형을 미루었습니다. 이는 충분히 아량을 베푸신 것입니다. 어서 빨리 저것의 숨을 끊어 놓으시고, 감히 일황자를 해하려 사주한 태화당 것들을!”

“그대는 입을 좀 닥치는 게 어떻소, 영빈.”

“뭐야?”

덤덤한 기하의 음성에 영빈이 앙칼지게 대꾸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일황자의 얼굴이 단박에 구겨졌다. 어린아이, 고작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황자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한 번은 실수라 여겼거늘, 어찌 이리 잔인하단 말인가. 인간의 탈을 쓰고, 제국의 황자라는 아이가 어찌 백정만도 못한 짓을 한단 말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 기하는 소리 나지 않게 한쪽으로 걸었다. 뚝뚝, 물이 떨어져 그의 뒤로 촘촘히 물길이 그려졌다.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미 피투성이가 된 달이는 겨우겨우 눈을 떠 기하를 보고는 낑, 하고 울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뚝, 뚝, 눈물이 떨어졌다. 겨우 입을 틀어막으며 피로 물든 달이의 머리를 쓸었다. 떨고 있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련했다.

몇 해 전, 달이의 어미도 꼭 그런 얼굴로 저를 바라봤었지. 살아 있는 게 고통스러운 눈으로, 남겨진 새끼들이 걱정되어 차마 쉽게 눈을 감을 수도 없는 표정으로.

“무영.”

“예, 아바마마.”

“너는 어찌 한낮 짐승에게 그리 못되게 굴었느냐.”

“그것은 사실이 아니옵니다. 그것은 소자를 음해하려는 세력들의 거짓입니다. 소자는 억울하옵니다. 아바마마, 분명 저 짐승이 소자에게 먼저 달려들었습니다.”

“너와 정연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는데, 무작정 네게 달려들어 너를 물고 할퀴었단 것이지.”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보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 제 형제를 해하려 한 정연에게 앙심을 품고 달려들었으나, 아우가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소자가 막아선 것입니다.”

“그래?”

“예. 아바마마, 소자는 억울합니다. 소자가 만일 나서지 않았더라면 정연이 크게 다쳤을 것입니다. 한데 저 짐승은 무작정 소자를 할퀴고 달려들었습니다.”

억울함이 가득한 황자의 얼굴에, 황제의 표정은 한층 더 차가워졌다.

“그래. 짐이 보고받은 바와는 매우 다른 얘기를 하는구나.”

“아바마마.”

“나의 그림자와 정연의 말은 너의 증언과 다른데 말이다.”

서늘한 황제의 음성에도 황자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억울한 얼굴엔 눈물까지 차올라, 그 모습만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황자의 편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폐하, 어찌 무영군을 의심하시나이까. 무영군은 폐하의 하나뿐인 장자가 아니십니까. 그런 무영군이 폐하께 거짓을 아뢸 이유가…….”

“하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연이 내게 거짓을 고했단 말이냐. 나의 그림자가 무슨 연유로 내게 그런 거짓을 고할까. 그들이 거짓이라면, 무영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그 나이에 벌써 황궁에 적이 가득하단 말이냐.”

싸늘히 일갈하는 황제의 음성에 황자는 독기 어린 얼굴을 숨겼다.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제 잘못을 고하지 않는 모습에 황제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억지로 웃으며 황자를 다독이는 영빈도, 등을 보인 채 짐승을 살피고만 있는 기하도, 모두가 어지러웠다.

“회초리 맞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리 무모한 짓을 해? 너는 멍청한 것이냐, 성미가 그 모양이냐? 한낮 짐승도 품지 못하는 자가 제후국의 왕이 되면 백성을 어찌 품을지 눈에 빤히 보인다.”

“아바마마…….”

급기야 황자의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났다. 그것은 반성이 아닌, 억울함이었다. 작금의 상황보다는, 제국의 황제가 아닌 고작해야 제후국 왕이 제 몫이라는 아버지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아무리 황자가 잘못했다 한들, 감히 고귀한 황실 일가에게 해를 끼친 짐승입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죽이셔야 합니다.”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음에도 영빈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없다면, 하나씩 숨통을 끊어도 나쁘지 않을 거다.

몇 년간 그리 끼고 살며 애틋하게 굴던 짐승이 제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다면, 서서히 심신이 무너지고 있는 무빈이 더는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황제의 관심이 이따금 그에게 향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천불이 나려는 걸 애써 삭이는 중이었다. 다행히 미리 심어둔 금룡대에게 전해들은 바로, 초야 이후 잠자리엔 들지 않으셨다고 하니 관심은 금세 제게 돌아올 것이다.

“감히 폐하의 아드님을 해하려 하다니, 정말 끔찍한 짐승입니다.”

“황자가 아니라 황제라도, 저를 해하려 들면 발톱을 드러내는 것이 짐승이다.”

“하지만 폐하―.”

“그것이 본능이지.”

아무리 잘 치료해도 살지 못할 것이다. 살려둘 명분 또한 없었다. 그것은 영빈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본능에 가까운 짓이었다고는 하나, 감히 황족을 해하려 한 짐승을 살려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

기하는 소매 끝으로 제 얼굴을 문질러 눈물을 닦았다. 점점 미약해지는 달이의 숨소리와 괴로운 신음이 오래도록 잊힐 것 같지 않다.

“달이의 잘못이 맞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황자를 해하려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천천히 말을 잇는 기하의 무표정한 얼굴에 황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것은, 짐승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신첩의 불찰이기도 합니다.”

기하의 힘없는 목소리에 영빈의 입꼬리가 삐죽하게 올라갔다. 황제의 용안은 더더욱 어두워졌고, 짐승은 길게 울며 괴로움을 토했다.

적막이 맴돌았다. 누구 하나 쉬이 입 여는 이가 없었다. 기하는 점점 잦아드는 짐승의 호흡만을 주시하면서 차분히 황제의 명을 기다렸다. 모진 고문은 모두 저 때문이었다. 아마 저들이 바라는 것은 기하 자신이 고통당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무지한 짐승일지라도 황족의 몸에 큰 상처를 낸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다. 하지만 무영, 너는 황자의 몸으로 한낱 미물에게 해를 가하였다. 더욱이 저 짐승은 무빈의 소유로 그가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폈다.”

“아바마마, 그것은―.”

“무영을 태의에게 보여 상처를 치료받게 하라. 무영, 너는 열흘간 처소에서 자숙하며 보내도록 해. 너의 삐뚤어진 성정이 네 아우들에게 해가 될까 저어된다.”

차디찬 황제의 표정에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붉은 입술을 몇 번이나 방끗거리던 아이는 결국엔 기가 잔뜩 죽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무영은 먼저 물러나라.”

“…예, 아바마마.”

“폐하, 이것은 너무하신 처사이옵니다.”

금룡대가 일황자에게 길을 알렸다. 바싹 약이 오른 영빈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끙끙거리는 짐승을 향해 사납게 손짓하는 영빈의 독기 어린 표정에도, 황제는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어찌 어린 무영군을 탓하십니까. 폐하께서는 어찌 이리 무영군에게 무정하십니까? 참으로 너무하십니다.”

“너무한 것은 그대다, 영빈.”

“폐하.”

“그대는 어찌 무영을 자꾸만 절벽으로 밀어내는 것이냐. 그대가 그리해서 얻는 게 대체 뭔가.”

“폐하, 신첩의 진심을 어찌 이리 몰라주십니까? 신첩은 단지 무영군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을 뿐입니다.”

“제 어미도 돌아보지 않는 놈에게 무슨 힘이 필요해. 어린아이다. 하나, 판단 능력이 흐리다 해서 그대가 함부로 할 아이는 아니다. 추후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그대에게 죄를 묻겠다. 그대 또한 열흘간 자숙하도록 해.”

“폐하!”

“영빈을 처소까지 안내해라.”

검은 옷을 입은 황제의 그림자가 영빈의 양옆에 섰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악다구니를 지르는 영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기하는 그저 눈을 감았다. 긴 숨이 겨우겨우 목구멍 사이로 내쉬어졌다.

“비록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하나, 황족에게 해를 끼쳤다. 저 짐승의 숨을 끊어라.”

황제의 명이 떨어졌다. 지나치게 평온하고 담담한 음성이었다. 기하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황제를 올려다봤다. 아무렇지 않은 음성에 비해 그의 표정은 퍽 어두웠다.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보내라.”

“예, 폐하.”

임승지가 검을 뽑아 들었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에 기하는 달을 돌아봤다. 피에 젖어 부슬부슬한 털이 축축하게 가라앉았으나, 흐릿한 두 눈은 올곧게 자신을 향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목구멍을 불쏘시개로 쑤신 것처럼 따끔거리고 아팠다.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기하는 연신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임승지가 걸음을 멈췄다. 황제와 같이, 표정이 어두운 그는 기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달아.”

제 형제인 영을 괴롭히는 황자에게 달려들었다가, 그를 비호하는 이들에게 맞아 이리 되었다는 현 상궁의 말을 떠올리며 기하는 무릎을 굽혔다. 천천히, 젖은 털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색색 내쉬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런데도 아직 따뜻했다.

늘 말썽만 부려 야단치기만 했는데. 늘 답답하게 후원을 뱅뱅 도는 녀석을 타박했는데. 모두가 제 잘못이었다. 모두가 제 욕심이었다.

진작 보내줄 것을. 넓고 깊은 산속에 숨어들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줄 것을. 황궁이 너무 외로워서, 이곳이 너무 무서워서, 욕심을 부리다 보니 이리 되었구나. 달아, 미안하다.

“폐하.”

푹 젖은 음성이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황제는 긴 그림자로 기하를 덮었다.

“제 손으로, 보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었다. 울음을 삼키며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는 기하의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흩어졌다.

“제 손으로, 신첩이 직접…….”

끼이잉.

죽은 듯 누워 있던 달이 몸을 움직였다. 피를 뚝뚝 흘리며 다리를 질질 끌고 다가온 녀석은, 굵은 쇠사슬에 목이 졸리는데도 부득불 기하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얼른 눈물을 훔치며 달을 향해 무릎을 굽힌 기하는 제 어미의 죽음을 목도한 그 순간처럼 제게 안겨오는 짐승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무런 힘이 없는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내가. 너와 네 어미, 네 형제를 모두 지키지 못한 내가.

“그만, 그만해라.”

울음이 툭 터졌다. 괴로운 듯 긴 숨을 토해내는 짐승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린 기하는 제 등을 단단하게 감싸 안는 체온에 눈을 감았다.

“제 손으로 보내게 해주세요. 그렇게 할 수 있게 윤허해 주십시오.”

“기하야.”

“폐하. 그리 할 수 있게…….”

“이 아이 그렇게 보내고, 너는 어찌 살려고. 안 된다. 물러나.”

어차피 살지 못해. 이미 늦었다.

담담한 황제의 음성에 기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컥 피를 토해내는 달의 눈이 서서히 풀렸다.

“편히 갈 수 있게 해주어라. 더 지체하지 마라.”

기하를 단단히 끌어안은 황제가 커다란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싫다고 발버둥 치는 그를 끌어안고 가슴을 다독여주자,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황제의 눈짓에 임승지가 가볍게 검을 움직였다. 짧은 정적을 뒤로하고, 헐떡거리던 짐승의 숨이 멈췄다. 차마 눈을 감지 못한 달의 눈에서 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아이, 깨끗하게 염해서 태화당 후원에 묻어주어라.”

“폐하,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로…….”

“황명이다.”

싸늘히 일갈하는 황제에, 승지는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황제의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났다. 길게 혀를 빼어 문 달의 사체를 안아 옮기는 움직임이 일사불란했다.

황제는 그제야 기하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은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눈물로 가득했다.

“…끝났습니까?”

“그래, 끝났다.”

“…편히, 갔습니까?”

“그래, 편히 갔다.”

“성은이, 망……, 흐윽…….”

울 자격도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무슨 자격으로 제가 운단 말인가. 지켜주지도 못하고, 아프게만 했는데. 이제야 겨우, 제 어미를 만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터인데.

“네 잘못이 아니다.”

“폐……, 흐윽… 흑.”

“쉿, 그만. 그만 울어라.”

가슴에 얼굴을 기댄 기하를 끌어안은 황제는 연신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절대로 이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듯이. 위로하고, 감싸 안고, 따뜻하게, 다정하게.

* * *

“마마!”

황자는 퉁퉁 부은 얼굴로 기하에게 달려들었다. 못 본 새에 살이 내려 빵빵하던 볼이 제법 갸름해졌다. 기하는 아이만큼 부은 눈으로 황자를 향해 웃으며 아이의 뺨을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잘 지냈습니까, 황자?”

“예, 잘 지냈……, 히익!”

울음기 묻은 음성으로 인사를 올리려던 아이는 기하의 뒤로 나타난 황제의 모습에 놀라 얼른 숨을 삼켰다. 단 한 번도 동복궁에 든 적 없던 황제였으니, 아이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예도 제대로 올리지 않고 무작정 기하의 품에 뛰어들었으니, 아마 크게 야단맞으리라 예측한 것은 황자뿐만이 아니었다.

“어찌 아비 얼굴을 보고 그리 놀라느냐.”

또 겁에 질린 황자가 실금하지 않을까 염려한 보모상궁이 얼른 황자를 기하의 품에서 받았다. 그제야 황자는 뚱뚱한 몸을 납작 엎드리며 황제를 향해 예를 갖췄다.

“인사는 되었으니 이리 와서 앉아.”

상석을 차지한 황제의 명령에 아이는 쭈뼛거리며 다가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뒤늦게 움직인 기하가 황자의 곁에 앉으려는 것을 눈치챈 황제가 얼른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얘기는 들었느냐?”

한바탕 울고 난 후라 눈이 퉁퉁 부은 기하는 새삼스레 얼굴을 붉히며 황제의 옆자리에 앉았다. 단정하게 무릎 꿇고 앉은 어린 황자가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홀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 떠올라 측은함이 일었다.

“너 때문에 다친 짐승 말이다.”

“황자 때문이 아닙니다.”

“그대는 얌전히 있어.”

그리 말씀하시면 어린아이가 상처받는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황제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흉흉한 기세에 질린 기하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진이 빠질 만큼 울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린 후에 겨우 생각난 황자에게 가보겠다고 하였더니, 굳이 따라나선 황제가 내뱉는 말에 원망이 치솟았다.

“짐승은 죽었다.”

“예…….”

“네 어미처럼, 하늘로 갔어.”

고개를 푹 숙인 황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막만 한 손등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가까이 가려던 기하는, 또다시 제 앞을 막아서는 황제의 손길에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아직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말이었다.

“정연.”

“예…, 아바마마.”

“지난번 회초리를 맞으며 아비에게 약조한 일 기억하느냐.”

“예.”

“아비가 뭐라 했더냐.”

“숨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또, 위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또.”

“사내대장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무엇을?”

“응…, 소중한 거.”

제 얼굴을 얼른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코를 훌쩍이는 황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하는 미소했다. 이제는 제법 말도 잘 할 줄 알고, 기특했다. 다 컸어.

“너,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다 했더냐.”

“…….”

“괜찮으니 말해.”

“마마…….”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마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잘못…, 흐윽……. 마마, 잘못해쪄요. 달이한테 잘못…잘못했다고 했는데. 달이가…….”

“괜찮습니다, 황자.”

아직은 그 이름이 아팠다. 깨끗하게 씻기고 있을 아이. 아직은 몸이 따뜻할 아이. 장난이 심해 늘 자신을 당황스럽게 했지만, 또 그만큼 웃게 했던 아이가 떠올라서 기하는 눈물을 쏟아내며 제 품으로 찾아드는 황자를 끌어안으면서도 제대로 웃지 못했다.

책임지지 못한 것을 품에 안는 기분은, 참담하고 아득했다. 나는 어쩌면, 지금 내 품에 안긴 이 어린 황자도 지켜내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지킬 수 없다면, 그럴 수 없다면, 애초에 품에 안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달은 내일 아침 태화당 후원에 묻힐 것이다. 너도 잘 보도록 해. 반드시 참석해서 미안하다고 다시 사과하고, 편히 잠들라고 인사하거라.”

“흐윽……. 예, 예…….”

“그만 울어라. 사내놈이 눈물이 그리 헤퍼서 쓰겠느냐. 너 그리 울면 무빈도 운다. 그러니 그만 울어.”

황자는 울다 말고 기하를 바라봤다. 겨우겨우 눈물을 참으며 빙긋이 미소 짓는 기하의 얼굴을 제 소매 끝으로 문지르며 울지 마세요, 중얼거리던 아이는 끝내 품에 안겨 더 큰 울음을 쏟아 냈다.

“마마, 마마아…….”

아니, 아니다. 울지 않을 것이다. 무력하게 살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는 누군가를 허망하게 잃지 않을 것이다. 지금 품에 안긴 이 어린 황자도, 제힘으로 지킬 것이다.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리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음을 참아내는 일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