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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우연(偶然) (13/49)

12장 우연(偶然)

“흐음.”

길게 숨을 내쉰 서엽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제 턱을 슥슥 긁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도무지 말을 움직일 길이 없었다. 또 어느 틈에 이리 판이 바뀐 것인지, 분명 일다경(一茶頃) 전만 하더라도 승리를 확신하였거늘.

“그만 포기하십시오.”

“사내대장부가 포기가 웬 말입니까?”

“기다리다 목 빠지겠습니다. 어서 움직여 보시던가요.”

심드렁한 기하의 음성에 발끈하려던 것을 멈춘 서엽이 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또 무슨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그리 본다고 없는 수가 튀어나옵니까?”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또 수를 쓰신 것이지요?”

“뭐라고요?”

“분명히 조금 전까진 소장의 승리가 눈앞에 있었단 말입니다.”

“형님은 그게 문젭니다. 승리가 눈앞에 있으면 뭐해요? 잡아야 제 것이지.”

탁. 가볍게 차(車)를 움직여 초(楚)를 에워싼 기하가 빙긋이 웃었다. 영락없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였다. 기어이 머리를 푹 숙인 서엽이 통탄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졌습니다.”

“소원 하나 추갑니다.”

그놈의 소원은 허구한 날 쌓였다. 그렇잖아도 전장을 누비던 시절 켜켜이 쌓아둔 것들도 어마어마한데, 도대체 무슨 무시무시한 소원을 들어 달라 하시려 이러시는지.

“한 판 더 두십시오.”

“됐어요.”

“한 판 더 두십시오. 매번 이기고 나면 그만하자 하시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게, 한 번에 이기면 오죽 좋습니까? 오늘은 되었어요. 목이 뻐근해.”

느긋하게 몸을 기대앉은 기하가 방긋이 웃었다. 아직 바깥출입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태의의 진단에 줄곧 처소 안에만 틀어박혀 몸이 무거웠다.

그나마 서엽이 함께 장기라도 두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현 상궁에게 붙잡혀 바늘에 찔려가며 수를 놓고 있었겠지. 수틀을 아주 멀찌감치 던져놨으면 좋겠다.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여인이라니까. 5년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으면 그만 포기할 때도 되었는데.

“날이 좋으니 나가서 영이 달이 좀 뛰어놀게 해주어요.”

“마마께서도 함께 나가십시오.”

“바깥출입은 아직 아니 돼.”

“도대체 어디가 어찌 미령하시다는 것입니까? 소장이 보기에는 당장 범이라도 쏘아 죽이실 정도로 강녕(康寧)해 보이십니다. 그러지 말고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십시오. 후원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서엽은 생각보단 몸이 앞서는 사내였다. 태어날 때부터 줄곧 함께 자라 눈빛만 보아도 생각을 알 수 있을 만큼 막역한 사이였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어진 만큼 그와의 틈도 벌어진 것 같다.

사실 태의에게 치료를 받으면서부터,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는 호전되었는데, 어쩐지 무기력하고 모든 것이 귀찮은 것은 전과 같았다. 종일 옆을 지키는 서엽이나 이것저것 권하는 현 상궁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내내 침상에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곤하십니까?”

“조금.”

“너무 그리 꾸벅꾸벅 졸면 아니 되십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셔야지요.”

“그리해서 뭐하게요. 전장엘 나갈 것도 아니고.”

시무룩한 기하의 음성에 서엽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린 나이였으나, 기하는 전장에서 높은 자질을 보였다. 비록 왕세자의 그늘에 가려지고, 혁혁한 공을 세우기에는 몹시 어린 나이였기에 용맹스러움으로 이름을 떨치기에는 무리였지만, 그는 매번 병사들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늘 선봉에 서서 아군을 호령하던 멋진 대장이었다. 지금 이런 무기력한 모습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전장에 나가시지 않으면 좋은 것 아닙니까?”

서엽의 태평한 말에 기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남들은 서엽이 그저 우직한 사내인 줄만 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를 쓰고, 게으름을 피우고, 하기 싫은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방탕한 사내인 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나라든 전쟁이 없는 것이 좋습니다. 마마께선 제국에 당장 전쟁이 나길 바라시는 것입니까?”

“헛소리하려거든 그 입 다물고 얼른 영이 달이 산책이나 하게 해.”

“마마.”

“내 딱 형님 같은 사내를 알고 있거든? 물론 형님처럼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아주 한결같아.”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옵니까? 마마께선 어리실 때나 지금이나 불리하면 말을 바꾸십니다.”

이제는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팩 돌린 기하를 따라 일어선 서엽은 제 가슴을 쿵쿵 때렸다. 속이 탄다, 속이 타. 애틋함과 그리움은 딱 하룻저녁에 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년 만에 만난 친우를 이리 박대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어디 가십니까?”

“그대가 싫다니 내가 가야지, 별수 있습니까?”

“왜 또 이러십니까.”

야행성인 영이와 달이는 햇볕을 받으며 깊은 잠에 들었다. 계절 갈이를 하는지 털이 듬성듬성 빠진 짐승의 엉덩이를 토닥이자, 느리게 하품을 하며 일어난 것들이 기하의 옷자락에 몸을 비비고 문질렀다.

현 상궁이 몇 번이나 청했지만, 영과 달의 목에 줄을 매는 것이 기하는 탐탁지 않았다. 얌전히 있을 아이들도 아니거니와 이제는 부쩍 힘이 세진 아이들을 제압하기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유롭게 산과 들을 뛰어다녀야 할 짐승들이 이리 갇혀 있는 것이 마음 쓰였다.

괜히 제 욕심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두고 싶진 않았다.

“자, 이리 온. 나와서 좀 뛰거라, 이 게으름뱅이들아.”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짐승의 발소리에 소제(掃除)하던 나인들이 흠칫 놀라며 머리를 숙였다. 반쯤 감은 눈을 어렵게 뜨고 입을 쩍 벌리는 짐승이 흉물스럽다는 듯 주춤거리는 나인들을 뒤로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 기하는 따뜻한 볕을 온몸으로 쐬며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싱그러운 풀 냄새, 포근한 햇볕 냄새가 참 좋았다.

“대체 우리 마마께서 어찌 이리 약해지셨는지.”

한숨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면서 짐승의 뒤를 따르던 서엽은, 기하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살펴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오지 않는 태화당은 늘 지나치게 고요했다. 이런 곳에서 5년이나 홀로 지낸다면 절로 울적해질 거다.

“마마.”

“응?”

금세 뒤돌아보는 기하의 머리가 바람에 나풀거렸다. 잠이 많기로 유명하였던 어린 시절, 그는 언제나 머리카락도 제대로 묶지 못하고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전영에 들어섰었다.

아침이면 늘 고약한 얼굴을 해서, 왕자라도 절대로 봐주는 법이 없으셨던 대장군께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들으며, 홀로 모래 가득한 진영을 돌기도 하셨다. 그리 힘들던 시절에도 늘 웃고 계셨는데.

“불렀으면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언제쯤이면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실 것이냐는 물음은 차마 하지 못하였다. 서엽은 그저 까칠하게 돋은 수염을 긁적이며, 게으른 얼굴로 뛰어다니는 짐승을 바라볼 뿐이었다.

“참, 그 아가씨는 잘 있습니까?”

“누구 말입니까?”

“누군 누구야, 형님 정인이지.”

“예하 말입니까?”

“이름이 그러했나. 사실 아직도 옛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황궁 근처에 집이라도 얻어 줄까? 사람을 보내 데려오면 될 것인데. 어린 동생이 있었지, 아마.”

“기녀가 됐습니다.”

“…응?”

놀란 얼굴의 기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녀가 되었다는 말보다, 너무도 덤덤한 서엽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비록 평민이었으나, 그녀는 몹시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이었다. 수를 잘 놓았지. 바느질로 어린 동생의 글공부를 가르쳤었고.

“북성을 떠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녀 스스로 정한 일 같지는 않았습니다. 몇 번이고 돌이켜 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비겁했네.”

“예. 도저히… 도저히 아버님을 다시 뵐 수 없었으니까요. 아마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좋은 남자를 만났을지도 모르지요. 적어도, 소장 같은 비겁한 놈은 아닐 테니 그녀에겐 다행입니다.”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입궁하기 전이었다면, 내가 막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입을 굳게 다문 서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쓰디쓴 미소가 그의 투박한 얼굴 가득 번졌다. 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안고 있었던 것인가.

차마 더는 말을 물을 수 없어서 기하는 얇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러다 거칠게 갈라진 입술 새로 또 피가 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마음이 답답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놈들, 게서 뭐 하는 것이야?”

멀찌감치 떨어진 짐승들을 향해 서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말문이 막힌 기하는 괜스레 멋쩍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뛰어가는 서엽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마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을 거다. 어쩌면 간신히 잊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것을 아무렇게나 끄집어냈으니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풀 더미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두 놈에게 다가선 서엽이 발을 멈추었다. 아직 서엽에게 완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영과 달은 평소보다 예민하게 굴었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대는 것을 바라보던 기하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저놈들이 배가 고파 저리 예민한가 싶어 시간을 헤아리니 점심때가 한참 지났다.

“영아, 달아. 그러면 안 돼.”

천천히 걸었다. 햇볕이 따뜻해서 그대로 눈을 감고 오롯이 서 있고 싶었다. 풀 냄새, 꽃 냄새, 바람 냄새가 좋아 자꾸만 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으며 살금살금 걸어가니 이상한 표정의 서엽이 기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그리 놀라서…….”

풀숲 더미 아래에 작은 발이 보였다. 희고 통통한 맨발은 흙이 묻어 엉망이었다.

‘크르릉.’

입을 쩍 벌린 달이 조그마한 그림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검집으로 달을 쿵 내리친 서엽은 반동으로 꼴사납게 바닥으로 넘어졌다.

낑낑거리다 다시 으르렁대는 짐승에게 가볍게 손짓한 기하가 무릎을 구부렸다. 덜덜 떨면서 수풀에 몸을 숨긴 조그마한 아이의 지나치게 통통한 뺨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하얀 얼굴에 동그란 눈, 침까지 흘리고 있는 붉은 입술과 오동통한 뺨.

귀한 옷감은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고, 어디에 벗어 놓았는지 신발도 버선도 없이 맨발로 땅을 딛고 선 아이는 기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금세 울음을 터트렸다.

“누구냐?”

무릎을 굽히며 아이에게 물었다. 천성이 순한 것인지,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고위대관의 자제 같지는 않았고, 황실의 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먼 친척뻘일 수도 있으나, 어쩐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응?”

손을 뻗은 기하는 다정하게 웃으며 아이의 축축한 뺨을 쓰다듬었다. 여인의 손처럼 부드럽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따뜻한 손길이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아이가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그때마다 볼이 씰룩거려 몹시 볼썽사나웠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겨우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데, 덩치는 또 지나치게 컸다. 키가 크고 살이 쪄서, 그것으로만 보면 족히 예닐곱은 되어 보였다.

“짐승을 보고 놀란 것이구나.”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에게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실금(失禁)을 한 것인지 아랫도리가 축축했다. 땀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눈물 자국, 먼지가 묻은 손과 발을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리 온?”

“소장이 하겠사옵니다.”

기하가 당장 아이를 안아 들 것만 같아 서엽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꼴이 초라한 아이를 무작정 안으려는 기하를 잠시 물러서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일전에도 저런 꼬마 아이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가 크게 당한 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때는 마주치는 절반이 적이었던 험난한 전장이었지만. 겁을 잔뜩 집어먹은 꼬마가 무작정 기하에게 단검을 휘둘러 크게 다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엽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됩니다.”

“이곳은 전장이 아니야.”

“마마를 지키는 것이 소장의 소임입니다. 헤아려 주십시오.”

꼼지락거리며 손을 내밀던 아이는 기하의 앞을 막아선 서엽을 보고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올망졸망한 눈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기하는 슬며시 웃고 말았다. 귀여웠다. 볼이 통통한 것이 이제 갓 태어난 새끼 돼지 같았다.

“그댈 보고 울지 않아. 표정 좀 바꾸라니까.”

쯧쯧. 가볍게 혀를 차며 서엽을 물린 기하는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와락 품에 안긴 아이는 그늘에 너무 오래 있어서인지 체온이 낮았다. 좋지 않은 냄새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침소 안으로 들어가면 현 상궁이 또 잔소리할 테지.

“어찌하시려고요?”

“그대는 아무 말 하지 말고 있어. 그대가 입을 열 때마다 아이가 놀라잖나.”

품에 안겨 부들부들 떠는 아이를 안고 걸으니 유난히 영과 달이 낑낑거리며 기하에게 몸을 치댔다. 녀석들을 모르는 척하자 점차 강도가 심해져, 기하는 몇 번이나 옷자락을 붙잡는 영과 달 때문에 휘청거려야 했다.

“이제 괜찮다. 많이 놀랐나 보구나?”

“흑, 흐윽, 흑, 끅…….”

통통한 볼살을 가진 아이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나마 기력을 많이 회복하였기에 다행이지, 자칫했으면 그대로 나자빠질 뻔한 것을 인정하자 머쓱한 웃음이 샜다. 아무래도 이제 서엽 말대로 한낮에는 체력 증진에 힘써야겠다.

“길을 잃은 게로구나. 일단 좀 씻고 뭐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꾸나. 내 이름은 서기하다. 여기는 태화당이고, 나의 처소니 안심해도 돼.”

입술을 빵끗거리면서도 좀체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며 안으로 들어가자, 놀란 얼굴의 나인들이 길을 텄다. 윤이 나도록 바닥을 닦으라고 엄하게 명하던 현 상궁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뚱뚱하고 냄새나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상전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마…마마……. 마, 마마…….”

“아이를 좀 씻겨야겠네. 길을 잃었나 봐. 영이 달이를 보고 놀라 실수를 했지 뭔가. 얼른 더운물을 내오라 해.”

“예? 예, 예, 마마. 한데… 소인이 직접…….”

“내가 할 테니 자네는 식사 준비나 하게. 시간이 이리되었는지도 모르고 배를 곯았더니 허기가 져.”

“예, 마마.”

단호하게 손을 물린 기하를 의문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현 상궁은 슬그머니 서엽에게 눈짓을 했다. 복잡하고 답답하기는 서엽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머리를 저으며 현 상궁의 눈을 피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무슨 일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으니, 이 틈에 저놈의 짐승들을 어찌해야겠다. 현 상궁이 틈만 나면 몽둥이찜질을 한다던데, 매도 소용이 없는 것들은 굶기는 게 상책이었다.

“이리 따라와라, 이놈들아.”

형형한 서엽의 기세에 꽁지를 내빼려던 영과 달이 목덜미를 붙잡혀 낑낑 울기 시작했다.

현 상궁은 황당한 눈으로 기하를 바라봤다. 뜨끈한 물로 씻긴 아이가 뽀얀 얼굴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슬그머니 나인 하나를 불러 조용히 누군가에게 고할 말을 전했다.

아이와 함께 몸을 씻은 기하는 가벼운 차림으로 나와 상을 받았다. 실금한 탓에 다시 입을 수 없게 된 옷 대신 침방(針房)에서 구해온 깨끗한 새 옷을 입은 아이가 방긋거렸다. 생김은 과히 훌륭하지 않았으나, 통통한 뺨은 지나치게 따끈하고 말랑거렸다.

“천천히 먹어야지.”

멀찌감치 물러나 있는 현 상궁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기하는 오롯이 아이를 바라봤다. 아마 조카가 잘 자라고 있다면 딱 이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사내아이라 하였지.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을까.

“천천히.”

기하의 무릎을 차지하고 앉은 아이는 식욕이 과했다. 처음엔 단순히 배가 고파 그런 줄 알았더니, 마치 짐승처럼 양손으로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 입에 넣는 것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몇 번이나 말을 붙이려는 현 상궁에게 고개를 저어 보인 기하는 그저 아이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 배가 많이 곯았거나, 정에 지나치게 굶주린 탓이리라. 살펴본 바로 몸에 상처는 없었으니, 아마 후자겠지. 그렇다 해도 이리 숨도 쉬지 않고 먹어대는 것을 보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인데.

“아직 소식이 없나?”

“예?”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고서 보낸 것 아닌가.”

물에 젖은 영견으로 아이의 손을 직접 닦아주는 기하의 덤덤한 음성에 현 상궁은 난처하게 말을 늘어뜨렸다. 꼼꼼하게 닦아준 손으로 다시 음식을 집으려 드는 것을 기하는 굳이 타박하지 않았다.

“생선은 잘 발라 먹어야지. 가시가 목에 걸리면 큰일 난단다.”

“물꼬기.”

생각보다 낭랑한 음성이었다. 아이는 그 말만 하고 배시시 웃었다.

“누군가?”

“황자 저하이십니다, 마마.”

고개를 갸웃하는 기하를 향해 현 상궁은 고요히 읍했다.

“황자? 이 아이가?”

“물꼬기.”

“예, 마마. 삼황자이신 정연(晶姸)군이십니다. 동복궁(東福宮) 박 상궁이 지금 이쪽으로 오는 길입니다.”

눈을 마주치자 다시 배시시 웃은 아이는, 기하가 찢어놓은 닭고기를 우걱우걱 입에 넣다 기름 범벅인 손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꼬기, 마시쪄.”

차마 손을 밀어낼 수도, 다시 붙잡을 수도 없어 가만히 바라보니 이번에는 기하의 뺨을 조물거리며 먹다 남은 고기를 직접 입에 넣어주었다. 방긋거리는 하얀 얼굴,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마주하니 잠시 걷혔던 미소가 다시금 번졌다.

“마마, 박 상궁이 당도하였습니다. 황자 저하를 모시고…….”

“황자께서 수라를 들고 계시지 않느냐.”

어린아이가 넣어준 닭고기는 평소보다 맛이 좋았다. 이미 엉망이 된 수라상을 내려다본 기하가 젓가락을 들었다. 아이가 헤집어 놓은 찬을 보자 문득 웃음이 나려 했다.

“기다리라 해.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니, 잘 대접해야지.”

“마마, 마시쪄.”

“그래요. 천천히 드세요, 황자.”

어쩌면 그것은 지나친 연민일지도 모른다. 제가 감히 제국의 황자에게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이었지만, 기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 어미를 잃고, 홀로 이 거대한 황궁에서 외로움에 떨며 자랐을 어린아이. 그 아이의 체온이 너무도 따뜻하여 불현듯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방긋방긋 웃던 아이는 어쩐지 주눅 든 얼굴로 자꾸만 기하의 품에 얼굴을 묻으려 했다. 스스로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아이가 혹여 탈이라도 날까 겨우 달래 상을 물렸더니, 한참을 울고 소리치며 급기야 발버둥까지 치는 것을 보니 측은함이 밀려왔다.

따뜻한 물을 가져오게 해 손과 얼굴을 닦을 때까지, 황자는 붉은 눈으로 덜덜 떨었다. 그런 황자의 울음이 잦아든 것은 아이를 보필하고 있는 상궁이 기하의 부름에 침소 안으로 들어설 즈음이었다.

“자네가 황자의 보모상궁인가?”

“예, 마마. 동복궁의 박 상궁이옵니다.”

딱딱하고 매서운 얼굴이었다. 아무리 훈육을 겸한 상궁이라고는 하나,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하는 표정은 인색해 보였다. 사람을 보이는 그대로 판단해서는 아니 되지만 정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어미 잃은 황자를 살뜰하게 돌볼 것 같지도 않았다.

엄 재인과는 서너 번 함께 다과를 든 것이 전부였다. 그다지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인도 아니었고, 세도 약했기에 운이 좋아 회임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잊혀 사라졌을 거라 말하던 얼굴이 이제는 희미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녀는 분명히 환하게 웃었다. 수려한 미인은 아니었으나, 심성이 반듯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을 줄 알던 여인이었다. 이런 듬직한 황자를 두고 어찌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

“마마.”

아이의 혀 짧은 소리에 기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상궁들이 하는 대로 마마, 마마, 중얼거리며 웃던 황자는 기하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운 듯 그의 앞섶을 붙잡고 얼굴을 숨겼다.

“황자 저하를 이만 모셔갈까 하옵니다.”

박 상궁은 묘하게 불손한 태도로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녀의 사나운 눈초리에 방긋거리던 황자가 일순 어깨를 움찔거렸다.

내내 기세 좋게 먹고 울고 웃던 아이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처럼 벌벌 떨며 몸을 숨기려 했다. 기하는 잠시 황자의 등을 다독였다. 살이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작은 아이였다. 그 보드라운 살결과 따뜻한 체온이 좋아 저도 모르게 황자를 품 안으로 꼭 끌어안자, 박 상궁의 뾰족한 눈썹이 슬그머니 비틀어졌다.

“황자 저하, 이만 처소로 돌아가시지요.”

황자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울음을 꾹 삼키려 몇 번이나 애쓰는 모습이 가여워, 기하는 아이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저하, 어서 이리 오십시오. 금일 일은 웃전에 고하지 않겠사옵니다. 하니, 이만 돌아가시어 금일 일정을 마무리하셔야지요.”

뚝뚝 끊어지는 음성을 듣고 있으려니 절로 화가 나려 했다. 웃전은 무엇이고, 대체 저 오만한 말투는 무엇인가.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그것도 이 나라 황제 폐하의 아드님께.

“마마, 저하를 내어 주십시오. 마마께서 저하를 모시고 예서 시간을 보내신 일은 모두 없던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하나, 차후부터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혹여나 저하께서 또 이곳을 찾으셔도 절대로…….”

딱딱하게 말을 잇던 박 상궁의 입술이 일순 닫혔다. 그제까지 황자를 다독이느라 표정이 보이지 않던 기하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절로 말이 느려졌다.

“어찌 그리 보십니까?”

“내 앞에 서 계신 이가 과연 누구인가 싶어서 말이다.”

“무슨 말씀이온지…….”

“네년이 감히 내게, 그런 명을 내릴 처지더냐?”

웃음을 거둔 기하의 차가운 표정에 박 상궁은 완전히 얼어붙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주제에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기하는 가볍게 황자의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저년의 허리가 성치 못한 것 같으니 제대로 눌러주어라. 잘못을 고할 때는 무릎을 꿇는 것이 먼저 아니더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 황자의 통통한 뺨에 입을 맞추며, 기하는 다시 한 번 아이를 제 품으로 바싹 끌어당겨 안았다. 그제야 두려움을 걷어내고 느리게 하품하던 황자는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마마!”

“쉿.”

가물가물하던 눈을 완전히 감은 황자가 조금 더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기하는 몸을 반쯤 뒤로 젖혔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곁을 지키던 서엽이 박 상궁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 그녀의 어깨를 검집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다지 힘을 가한 것도 아니었건만, 기세 좋게 덤비던 박 상궁은 낭패 어린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보모상궁이라는 것이 어찌 황자께 눈을 떼었는지부터 고해라.”

“황자께서는 공부하기를 싫어하십니다. 오직 먹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혹여 음식 냄새가 난다 치면 무조건 도망치시기 바쁘십니다.”

“그런 황자의 성정을 알면서도, 너는 네 소임을 다하지 않았구나.”

“그것은…….”

“황궁에서, 이 나라 주인이신 황제 폐하의 아드님께서 어찌 홀로 맨발로 돌아다니시다 예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지.”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몹시 불합리하고, 몹시 불쾌했다. 멀고 먼 동복궁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나, 황자는 어린아이였다. 고작 네 살,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먹고 뛰는 것이 전부인 아이란 말이다.

“너는 네 상전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구나.”

궁에 있는 모두가 충신은 아니다. 진심으로 위하고 제 몸보다 아끼는 심복이 있는가 하면, 그저 밥벌이하기 위해 혹은 더욱더 잘살기 위해 사는 이들 또한 많다. 그런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다만, 말이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이 여인을 탓하고 싶었다. 상대는 어린아이. 어미를 잃은, 아비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다. 어른도 버티기 힘든 황궁에서 홀로 자라고 있을, 바보같이 순진하기만 한 어린아이.

“저년을 감찰 상궁에게 보내 죄를 묻게 해라.”

“마마! 소인에게 어찌 이러시는 것입니까? 이런 법도는 없사옵니다.”

“법도가 없으면 만들어야지. 황자를 감시할 명분이야, 없애면 그만 아니냐? 끌고 가라.”

서슬 퍼런 독기를 내뿜는 여인을 모르는 척했다. 아마 뒤를 봐주는 든든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저리 바라보는 것이겠지. 이를 바드득 갈며 몸부림치는 박 상궁을 등지고 앉은 기하는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아마 곧, 풍랑이 불 것이다.

* * *

“어서 오시게.”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황후는 단아하게 웃으며 기하를 반겼다. 평소보다 창백한 얼굴빛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누워 있던 자리를 물리고 일어난 참이었다.

“옥체 미령하시다는 소식은 들었사옵니다. 소인의 무심함을 탓하십시오.”

“그대는 큰일을 겪었지 않은가. 얼굴이 이제 좋아 보이네. 다행이야. 직접 가보지 못하여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녀는 항상 온몸으로 진실을 말했다. 단아한 미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주로 북성에 대한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뿐이었지만.

“청하고 싶은 일이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송구합니다, 황후마마.”

“청이라니? 자네가 정녕 내게 청이 있단 말인가?”

“마마께 이런 청을 올려도 될지 모르겠사오나, 소인이 의지할 곳은 마마뿐인지라…….”

“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들어주겠네만……. 혹, 그것이 동복궁 박 상궁에 대한 일인가?”

“어찌 아십니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황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근심 어린 얼굴은 처음이라, 기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마 황후가 박 상궁의 뒤를 봐주는 인물은 아닐 테지.

“오전에 영빈이 다녀갔네. 어찌 된 영문인지 영빈이 박 상궁을 구명해 달라 청하였어. 죄를 명명 받아 감찰사에 넘어간 이상 혐의가 없어진다 해도 꼬리표는 남게 되니, 박 상궁을 연호당으로 배정해 달라고 청하더군.”

영빈이라. 영빈이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너무도 빤히 보이는 수였다. 더욱이 직접 황후마마께 찾아와 청을 올리다니.

“영빈과 박 상궁이 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 애초에 박 상궁을 동복궁에 배정한 것은 나네. 물론 내 수발을 들고 있는 윤 상궁의 천거가 있긴 하였지마는. 어쨌거나, 내 오래도록 지켜본 바로는 박 상궁이 그리 모진 사람은 아니야.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황자를 방치했으니 그 죄가 커. 명명백백 죄를 물을 것이네. 하니, 자네는 이쯤에서 물러서.”

“새로운 보모상궁은…….”

“내 잘 알아보겠네. 그간 나 또한 황자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으니 먼저 간 엄 재인에게 면목이 없어.”

“당분간이라도 태화당에서 황자를 보살피고 싶습니다.”

확고한 기하의 음성에 황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런저런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려니 송구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중간에서 몹시 곤란한 상태일 것이다. 절대 권력을 쥐지 못한 황후께서 후궁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시는 것은 퍽 보기에 어렵고 불편한 모습이었다.

“그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괜찮겠나?”

“말도 더디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먹는 것에 너무 집착하여 이성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저, 가엽고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폐하의 아드님이고, 이 나라의 황자인데… 안타까움뿐입니다.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황궁 안 사람들은 황자의 그런 행동을 ‘병’이라 규정지었다. 태의 또한 그런 황자의 병을 고치지 못했으니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개중에는 아예 황자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다.

“그저 모르는 척만 해주십시오.”

“알았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마마.”

“은혜랄 게 있나. 제대로 도움을 주지도 못한 것을.”

“그리고… 회임을 감축 드립니다.”

희미한 미소를 짓는 기하를 바라보며 황후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이내 볼을 붉게 물들이고 열이 오른 뺨을 문질렀다.

“어찌 알았나? 아직은 폐하와 처소 아이들밖에 모르는데.”

“우연히 들은 것이니 너무 야단치지 마십시오. 기척을 숨기는 것이 오랜 버릇이라, 그들 또한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 축하받기에는 이르다네. 이러다가 크게 실망했던 적이 세 번이나 있었거든.”

쑥스럽고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이 몹시도 처연하고 또한 애틋해서, 기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모하는 이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그런 감정이던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감정이 가슴에 와 닿았다. 딱딱하게 굳어 버렸던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이 생경할 정도이니, 그런 것은 잠시 덮어두어도 되려나.

“진실로 감축드릴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면,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문득 떠오른 황제의 얼굴에, 그저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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