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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국 귀동자 오진해 (정미려 편) (17/18)

고산국 귀동자 오진해 (정미려 편)

“경하드립니다, 패자 저하!”

“우리 사이에 딱딱하게 무슨.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했어. 안 그래도 사부가 어젯밤부터 계속 우리 사손 안 오냐고 물어 대서 귀에 못이 박일 정도거든.”

진해는 월국과 고산국의 무력 협정을 성사시킨 이래 처음으로 고산국에 발을 들였다. 좌부 오천협과 함께 왔으면 좋았겠지만 오천협은 강백서와 재회한 이후 줄곧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 해소되었던 각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어졌고 강백서는 그로 인해 조금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진해는 효자답게 절대로 밤에는 문안을 가지 않았고 해 떠 있는 밝을 때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어쨌거나, 진해가 이렇게 해국보다 먼 고산국에 온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사조인 고산패왕이 다시 오라고 떼를 써서도 아니고, 새롭게 월국과 고산국 사이에 생겨야 할 뭔가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미, 미려 공자아!!!!!”

다름이 아니라 바로 저놈. 조반편, 아니아니, 이젠 귀하디귀한 몸이 되신 전직 학사 관리 조관림 때문이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이렇게 미려 공자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패자부군께 인사 올립니다.”

“그, 그러지 마세요! 무릎 상하십니다, 자, 어서, 어서 안으로!”

사실 오늘은 고산패자 제갈군무와 패자부군 조관림의 정식 혼롓날이었다. 월국에서 약식으로 치렀을 때는 진해가 통 크게 여해루를 하루 빌려줬었다. 그뿐인가. 조관림한테 찔리는 게 많은 진해는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악공이며 음식이며 예물 등을 월국 풍습을 모르는 제갈군무를 대신해 바리바리 갖다 바쳤다.

“패자 저하께서도 강녕하셨는지요.”

“음.”

왜냐면 진해가 조관림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절대로 둘일 수가 없는 아름다움 양인을 소개해 주는 바람에 조관림이 오랫동안 가슴 아픈 짝사랑에 시달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양인은 현재 진해의 짝 중 하나가 되었다. 진해는 제갈군무와 조관림이 연애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누구보다도 쌍수를 들어 환영한 사람이었다.

“헤, 헤헤. 저, 실은 해원공 마마가 남부 시찰을 가셔 가지고, 헤헤, 우리 삼랑이는 슬슬 배가 부를 때라, 하, 하하…….”

조관림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꽃잎 바구니를 들어 미려 앞에 뿌려 주는 걸 보며 진해는 곤란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나 다를까, 조관림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제갈군무가 웃는 표정으로 싸늘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미려는 귀한 분이 되신 조관림이 제 앞길에 꽃을 뿌리자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반쯤 돌아보는데 그게 또 기가 막히게 예뻤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오 소협이 내 연적을 갖다 바친다거나?”

“아이고! 사숙! 어찌 그런 소리를 하세요! 제가 사숙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우리 미려 역시 사숙을 엄청, 엄~ 청 존경한답니다, 제가 괜히 미려를 여기 데리고 왔겠어요?”

“흐음.”

진해는 미려에게 얼른 들어가라며 빠르게 손짓했다. 미려는 진해와 함께 들어가고 싶은지 입술을 살짝 오물거리며 순진한 표정으로 진해와 눈을 마주쳐 보였다. 그러는 옆에서 조관림이 미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니, 저 썩을 놈은 왜 혼례식 날에 남의 강아지한테 저런 눈빛을 보내고 지랄이란 말인가.

“흐으음.”

미려가 들어가지 않자 조관림도 들어가지 않았고, 주변 시선이 조관림의 지나치게 초롱거리는 눈빛에 모여들었다. 제갈군무는 미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뭔가를 따져 보는 듯했고 진해는 연약한 강아지가 다칠까 봐 더럭 겁이 났다. 꽃으로도 때릴 수 없는 어여쁜 미려인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봐 겁이 나는 미려인 것이다!

“강아지야~! 이리 온!”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었다. 조관림 저 눈치 없는 놈은 어차피 말해도 못 알아들을 터이니 진해가 나서 귀엽고 어여쁘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미려를 지켜야만 했다.

“형아도 참……. 바깥에서 그렇게 부르면, 부끄러워…….”

미려는 진해가 큰 소리로 강아지라고 부르자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잽싸게 진해에게 다가와 귓불을 붉혔다. 눈가를 은은하게 붉힌 채 살짝 흘겨보는 게 또, 예뻤다…….

“강아지야. 고산패자 저하는 내 사숙이기도 하셔. 고산패자라는 거창한 명패를 벗으셔도 내게 아주 가까운 분이시란 말이지. 그러니 우리 강아지도 가깝게 모셔야 해. 그렇죠? 그렇죠, 사숙~?”

“뭐, 그렇다 치지.”

“우리 강아지야, 그러니까 다시 한번 인사드리자. 이번에는 이 오진해의 어여쁜 짝으로 인사드리는 거야!”

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조관림의 시선이 진해의 뒤통수를 뚫을 것처럼 강렬히 노려보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조관림은 맞붙으면 이길 수 있었지만 고산패자와 붙으면 이길 수 없었다. 심지어 제갈군무에게는 천하의 오진해가 인정하는 광기가 있었다. 겉 멀쩡한 또라이라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사숙 어르신.”

진해가 어째서 인사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려는 아주 기쁜 기색으로 제갈군무에게 새로 인사를 올렸다. 진해가 강아지와 짝을 몇 번이고 강조하자 얼굴에 기쁨이 가득 서려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서해 옥가의 장자 옥정려, 인사 올립니다. 속세에서는 정미려라 불리고 있사오니 편하신 대로 불러 주시면 이 후배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모쪼록 사숙 어르신의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양인인데도 우리 오 소협의 이거란 말이지.”

제갈군무가 패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박하고 가볍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허. 우리 미려가 그렇게 쥐똥만 할 리가.”

진해는 제갈군무의 새끼손가락을 접고 손을 돌려 엄지를 세워 주었다.

“이야, 오 소협. 월국 사람들이 자네 아랫도리가 관대하다고 했을 때는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이런 거였어?”

“무슨 그런 남사스러운 소릴 하세요! 제가 얼마나 까다로운데요! 보세요, 우리 미려의 얼굴에 관대하다는 말이 어울리기나 하나요?! 물론 얼굴을 만천하에 보여 주는 것만큼은 관대하긴 합니다만!”

미려가 양인이라는 걸 계속 언급하자 진해는 살짝 속이 상했다. 아니, 자기는 저 눈치 없고 둔한 조관림한테 매달렸으면서 어딜 감히 우리 미려를 물고 늘어져?!

“우리 미려 보고 있으면 참 머리칼이 비단 같은 것이 어찌 이런 귀물이 다 있나 싶고, 반듯한 이마는 옥구슬이 굴러갈 것 같으며, 속눈썹은 나비 날개보다 풍성하고, 눈망울은 새벽이슬처럼 맑으면서,”

“그렇지!”

어느덧 조관림이 옆에 와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코는 오뚝한 게 앙 깨물어 주고 싶고, 입술은 화무십일홍이 아니라 화무천일홍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색이 좋으며 키는 훤칠한 게 눈이 즐겁고, 허리는 또 어찌나 늘씬한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데, 심지어 손도 예쁘고 발가락까지도 예쁘네!”

“맞아, 맞아!”

“그런데 이 얼굴의, 아니 이 존재의 어디가 관대하다는 말씀이신지! 제가 미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다 살펴봐서 아는데 우리 미려야말로 완, 벽, 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양인이 뭐 어때서요? 오히려 양인이기에 미려는 이 세상에 단 하나인 거예요! 음인이면 옥 가주 부군이랑 분위기가 겹친단 말이에요!”

진해가 한바탕 미려 예쁨 자랑을 끝내자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조관림이 자기 남편도 아닌데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양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제갈군무는 어딘지 모르게 허탈한 표정이었다. 미려는 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그럼에도 진해의 자랑에 어울려 주기 위해 꿋꿋이 얼굴만은 들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미려가 악기를 얼마나―”

“아, 그만 그만! 내가 잘못했어! 내가 못된 놈이야! 내가!”

진해가 미려의 뛰어난 재주로 미려 자랑 이 절을 부르려 하자 제갈군무가 황급히 항복을 선언했다. 확실히 정미려는 껍데기에 무관심하다는 제갈군무가 봐도 눈이 커다래질 정도로 굉장한 미인이기는 했다. 문제는 그 미인을 갓 혼인한 자신의 남편이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다는 것이고, 또 지금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제갈군무는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조관림을 보다가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배 안 고파?”

온 대륙, 온 나라의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 끼니 이야기를 하자 주위를 둘러싼 고산국 무인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혼례식이라고 조관림의 혼수로 따라온 월국 요리사들이 삼 일 전부터 혼례 요리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고산국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는 일 외엔 별 관심이 없는 족속이라 밥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가, 생전 처음 맡는 향긋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반쯤 정신을 놓고 다니던 중이었다.

“미, 미려 공자, 이쪽으로, 조심조심!”

“패자부군 저하, 죄송하지만 오늘은 여해루의 루주로 온 것이 아니니 꽃잎은…….”

밥 이야기가 나오자 조관림이 누구보다 빠르게 미려를 상석으로 안내하려 분주히 움직였고 사람들이 우르르 그 뒤를 따랐다. 월국 하인들은 주인인 조관림의 명을 듣기 때문에 조관림이 가서 밥 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밥 한 톨 구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조관림이 이 혼례식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휴.”

어찌 보면 제법 흥겹다 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 단 한 사람만이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었으니, 진해는 그 사람의 곁에 서서 자신도 속으로 크게 한숨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휴! 아니 혼례까지 치렀으면 됐지 뭘 저렇게 독점을 못 해서 안달이람.’

정작 진해는 자신의 바람기 때문에 세 사람이 뭉쳐서 자신을 독점하기로 한 걸 모르고 있었다. 형제 결의를 맺은 세 사람이 아닌 다른 놈은 무조건 척살하기로 맹약을 나눈 걸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어험, 어험. 거 우리 미려가 아무리 어여쁘다고 해도 혼례식 날에 남편 된 분이 어찌 저리 방자하게!”

“늦었어.”

“저희 정말 사랑해요, 허락해 주세요!”

“둘이 벌써 지지고 볶고 깨소금 냄새를 풍기면서 뭔 소리야? 게다가 왜 내 허락을 구해?”

제갈군무는 진해가 뒤늦게 제 편을 들어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진해 생각보다 조관림을 더 많이 좋아하는 듯했다. 안 그래도 제갈군무가 먼저 쫓아다녀서 시작된 연애라고 듣기는 했다. 조관림은 제갈군무와 연애라는 걸 할 때도 그리 닭살 돋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했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갈군무의 기분을 풀어 주고, 또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사숙, 나중에 있다가 달이 저기, 저기 나무 위에 걸리면 저희 숙소 앞으로 지나가 주세요.”

진해는 제갈군무를 위해 큰 결심을 하고 그의 귀에 속닥거렸다. 와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 달라는 말에 제갈군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진해 말을 들어 손해 볼 것도 없고,

“달 보면서 조반, 아니 부군이랑 좋은 분위기도 잡아 보시고.”

연애에 대해 충고해 주기까지 해서 기껍게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고산국에서의 혼례 첫날은 지나가는 듯했다. 식장 안에 들어가자 조관림이 미려 옆에 딱 달라붙어 아양을 떠는 걸 본 탓에 제갈군무의 표정이 삭막해졌으나 진해는 괜찮다고, 오늘 밤만 지나면 우리는 이놈들과 영영 이별이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큰 소리로 외쳤다.

* * *

음식이 동이 나고, 술이 동이 나기 시작하자 곧 사람들이 배정된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해는 조관림이 미려를 제 옆에 앉히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상석에 앉게 되었다. 조관림 멍청이가 옆에 앉은 제 남편을 챙겨 주지 않고 미려에게만 맛있는 반찬을 몰아주었고, 미려는 또 그걸 집어서 진해에게 먹여 주었다. 제가 준 요리가 진해 입에 들어가자 조관림의 눈초리가 세모꼴로 찢어졌다. 조관림의 뒤통수 너머로 제갈군무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미려야.”

“응?”

“너 오늘 어땠어?”

부른 배를 안고 진해가 침상에 뒹굴거리며 묻자 미려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좋았어. 오롯이 형아의 짝으로 있으니까 너무 좋았어. 물론 형아가 평소에 날 박대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날 무시한다는 말은 아니야. 그냥 아는 사람 앞에서 형아 짝이라고 그러니까 특별히 더 좋았던 거뿐이야.”

음……. 미려는 원래부터 진해밖에 안 보는 애였다. 조관림은 눈치가 없어서 그렇다 치지만 우리 미려는 원래 그런 아이인데 어찌 욕을 하겠는가. 진해는 미려라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다 조관림이 눈치가 없어서였다. 미려에게는 절대로 잘못이 없었다.

“아까 못 보던 거 집어 먹느라 술을 못 마셨는데 오랜만에 둘이 한잔할까?”

진해는 창밖으로 비치는 달빛을 보며 슬그머니 술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곧 제갈군무와 약속한 시간이었다.

“응, 내가 금방 준비할게.”

“같이 준비하면 되지, 뭘 한 사람이 혼자 바쁘게 움직여.”

미려가 탁자를 정리하는 동안 진해가 뒤집혀 있던 술잔을 바로 놓고 술을 따랐다. 손님 출출하지 말라고 놔둔 다과가 훌륭한 안주가 되었다. 검은깨에 꿀을 버무려 만든 것이었는데 둘 다 고산국에서 몇 안 되는 특산품이었다. 미려는 제법 입맛에 맞는지 술을 마시면서 몇 개 오독오독 깨물어 먹었다.

“여기 묻었다.”

술이 몇 잔 돌고 둘 다 미미하게 달아올랐을 때, 진해가 미려 입술에 묻은 검은깨 한 알을 발견했다. 붉고 매끄러운 입술 위에 콕 찍혀 반들반들하게 윤을 내는 한 알이었다. 진해는 미려에게 다가가 턱을 잡고 혀를 내 살짝 핥아 올렸다.

“형아…….”

“누가 뭐래도 우리 강아지는 내 짝이야. 내 강아지라구. 사실 오늘 고산국에 오기 싫었어.”

“왜?”

“조관림 그 작자가 자꾸 널 쳐다보니까 그렇지! 나도 뭐 그놈이 널 그렇게 보는 게 좋은 줄 알아! 내 강아진데! 내 짝인데! 나도 화내고 싶었다구!”

농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예전에 진해와 미려가 맺어지기 전에는 어떨는지 몰라도 미려는 지금 진해의 짝이었다. 그때도 조관림이 성에 찰까 말까 했는데 짝이 된 지금은 어떠하리. 진해는 제갈군무가 사숙만 아니었더라도, 조관림이 오랫동안 짝사랑에 시달려 노총각만 아니었더라도 그 자리에 누구보다도 방방 뛰며 화를 낼 자신이 있었다. 사실은 자랑이 아니라 화를 내고 싶었다.

“형아, 날 그렇게까지…….”

진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이자 미려는 가슴속 깊이 감동한 듯했다. 미려는 진해의 사숙에게 짝으로 소개받아 흠 잡히지 않기 위해 행동했는데 형아는 사실 미려를 위해 참고 있는 거였다니!

“앞으로 절대 고산국에 안 올 거야!”

“그러지 마, 형아. 여기는 형아와 연이 있는 곳이잖아. 난, 정말 기뻐……. 형아의 짝이 된 것도 과분한데 형아가 날 그렇게 사랑해 주다니!”

진해는 미려에게 거울을 갖다 주고 이 얼굴로 과분이라는 말을 하면 자신이 염치없는 놈이 된다고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보다 눈물을 글썽이며 기쁨에 젖은 얼굴을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저 예쁜 몸을 끌어안고 저 몸에 더욱 큰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치솟을 필요도 있었고.

“강아지야, 이리 와!”

진해가 양팔을 벌리자 미려가 와락 뛰어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는 통에 작은 탁자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누가 먼저라 할 새도 없이 서로의 입술이 겹쳐졌다. 두 사람의 입술과 입술이 포개지고 부드럽게 빨리고 문질러졌다. 진해는 꽃잎보다도 고운 입술 사이에 제 입술이 자리한다는 사실에 젖은 소리가 날 때마다 피부 위로 저릿하게 소름이 돋았다. 진해는 코에서 거친 소리가 나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미려의 입술을 더욱더 먹고, 또 먹었다.

[콰당.]

결국 탁자가 넘어졌지만 둘 중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진해가 미는 통에 미려가 일어났고 의자가 두 사람의 다리에 엉키듯 쓰러졌지만 그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

달빛이 희미하게 새는 창가에 등을 댄 채로 미려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물이 고여 반들반들 윤이 도는 눈동자가 진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물고 빤 입술이 살짝 부어 있었다. 입술 사이로 살짝 혀끝이 비쳐 보였다.

“사랑해.”

“하읏―”

진해는 고개를 숙여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미려가 목을 젖히고 가늘게 떨자 진해가 잡아당기듯이 미려의 옷을 벗겨 목이 드러나게 했다.

[덜컹.]

월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크게 난 창이 미려의 몸짓에 따라 덜컹거렸다. 진해는 창틈으로 달이 나무에 거의 다다른 것을 보고 헐떡이는 와중에도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을 콱 밀어 버렸다.

“아!”

창이 다 열리자 달빛이 환하게 쏟아져 미려의 머리를 물들였다. 동그랗게 눈이 뜨는 것과 동시에 버드나무 가지처럼 낭창낭창한 팔이 진해의 목을 끌어안았다. 진해의 코 속으로 미려의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미려야…….”

놀랐던 것도 잠시. 미려는 진해가 제 이름을 홀린 듯 부르며 허벅지를 어루만지자 눈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다리를 벌렸다. 진해가 천 위를 주무를 때마다 뜨거운 인두가 혈관을 지지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형의 냄새가 났다. 오진해의 향이 났다. 이렇게 가득 끌어안고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오로지 품에 안은 이 사람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이뤄지는 듯했다.

“아, 아…….”

진해가 길고 우아한 목에 자국을 남길 때마다 미려가 소리 내어 신음했다. 진해와 접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려는 몸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원하고, 또 원하는 이가 제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이다.

“예뻐, 우리 강아지는 정말 예뻐. 예뻐서 만지는 게 아까워.”

“으응, 안 돼, 더, 더 만져 줘.”

“예쁜데 야하기까지 해서 형아는 아주 돌아 버릴 것 같아.”

“아, 아아! 진해, 진해 형!”

진해가 목선을 탐하듯이 한참을 입술로 더듬어 대자 몸이 단 미려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 가슴속에 터질 것 같은 열기를 토해 내고 싶어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진해가 고개를 들자 미려가 진해의 뺨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미려는 눈을 꼭 감은 탓에 미려의 뒤를 보는 진해가 무엇을 봤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해, 미려야.”

작게 속삭이며 진해는 홍련이에게 장가보낸 고산홍패 대신 걸고 다니는 목걸이를 뜯어냈다. 목걸이는 호박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로 누런 황옥을 깎아 만든 것이었는데 겉은 진해가 황실에 속한 이임을 증명했고, 속에는 약이라든가 향 등을 담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진해는 당연히, 향유를 담았다.

흠 한 점 없는 매끈한 등에 검은 머리칼을 흩트리며 미려가 진해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리는 진해의 손길에 절로 벌어졌고, 진해가 향유를 듬뿍 덜어 어루만질 때마다 하얀 허벅지가 떨리면서 애틋한 교성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진해는 미려의 엉덩이 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원래 양인을 받는 부분이 아닌 만큼 미려가 견디다 못해 애원할 정도로 부드럽고, 또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다.

“앙, 아으응…….”

혀가 둥글게 말릴 때마다 진해는 상을 주듯 미려의 목에 자국을 남겼다. 늘어진 옷자락이 아깝지 않게 드러난 쇄골에도 입을 맞췄고, 이름만큼이나 예쁜 미려의 양물도 향유로 반들반들하게 길을 들여 주었다. 진해가 젖은 손가락으로 기둥을 거꾸로 쓸어 올리자 갈라진 틈에 희멀건 액이 고였다. 진해의 목을 안은 미려의 팔이 가늘게 떨렸다.

“쉬, 착하지?”

“혀, 형아, 형아―!!”

서늘한 밤공기에 감기라도 들세라 진해는 미려를 꽉 끌어안은 채로 느릿느릿하게 미려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몇 번이고 들락날락했음에도 미려의 속이 진해의 것을 잘라 낼 것처럼 꽉 물었다. 진해의 입에서 뜨끈한 숨이 터지고 미려의 허리가 뒤로 휘어졌다. 진해의 배와 미려의 배가 맞닿고, 두 사람의 배 사이에서 미려의 것이 줄줄 즙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앙, 앙! 형, 형아! 아응, 진, 앗, 아, 진해, 아앙!!”

천천히 시작된 움직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진해는 이를 악문 채 허리를 흔들었고, 미려의 교성이 귀에 쏟아질 때마다 눈앞이 새까매져 알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듯했다. 진해는 미려의 몸을 잡다 못해 미려의 엉덩이를 쪼갤 듯이 그러쥐었다. 헉헉 거칠게 숨을 쉬다가,

“아으응!!”

미려의 긴 목에 이를 박았고, 누구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어딘가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둘이 한 덩이로 뭉친 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창이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소리를 참지 않는 미려 탓에 고요한 고산국의 밤공기가 요염하게 물들었다. 얼마나 더 움직였을까 미려가 이를 악물며 몸을 떨었고, 진해 역시 미려의 입을 급하게 집어삼켰다. 두 사람이 꿈틀꿈틀 한 가지의 떨림을 공유했다.

“미려야, 감기 걸리겠다. 먼저 침대로 가.”

“……응, 형도 빨리 와.”

절대로 한 번만 하고 끝내지는 않는 진해가 미려의 가슴께를 엄지로 덧그리자 미려가 수줍게 웃으며 침상 쪽으로 향했다. 진해는 슬쩍 뒤를 돌아보다가 황급히 바깥을 살폈다. 시간은 이미 제갈군무가 지나가기로 한 시간을 훨씬 지나 있었다.

“허, 저런!”

아니나 다를까, 나무 뒤쪽 제법 떨어진 곳에서 뭔가 크게 부스럭대는 게 보였다. 숨을 죽이자 있는 힘껏 신음을 참는 소리와 나지막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쯔쯔. 사람이 말이야.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원래는 미려와 자신의 금실을 자랑해 조관림을 영영 떨어뜨릴 작정이었던 진해는 신혼인 두 사람이 수풀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보자 혀를 차며 얼른 창을 닫아 버렸다. 진해의 짝들이 들으면 진해를 빤히 쳐다볼 정도로 염치없는 말을 일삼으면서 말이다.

“형아, 빨리 와~”

“응, 알았어!”

그러나 진해가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조관림은 진해와 미려가 일 치르는 것을 목격한 뒤에도, 애를 셋이나 낳은 후에도 여전히 미려의 열렬한 추종자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관림이 제갈군무와 혼인하고 그 곁에서 평생을 맹세한 것은 변함이 없어 제갈군무는 나중에 머리가 반백이 되었을 무렵엔 이 시절을 회상하며 피식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머리가 반백이 되었을 무렵에야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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