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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 2: 소문들 (15/18)

종장 2: 소문들

성월공 월산이 정식으로 태자에 봉해진 뒤 월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태자 월산은 빈민들의 구제 활동과 자활에 큰 관심을 가져 잠춘동 일대를 순방하며 밤낮으로 노력을 아끼니 아니하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뽑자면 예전에 미려방이라 불리던 곳을 매입해 국가가 운영하는 직업소개소로 바꾼 것이었다. 원하는 이가 있다면 누구나 이곳에서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며 급료를 떼먹을 시 관군이 출동하여 업주를 구속하고 재산을 압류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업적을 들자면 잠춘동의 민가 한 곳을 그 일대 아이들을 위한 학당으로 꾸민 것이었다. 예전에 영찰어사 오진해가 살던 곳이라 이곳을 학당으로 꾸미자 그 기운을 받고자 하는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너 나 할 것 없이 이곳으로 보냈다. 게다가 이곳은 학비가 무려 무료였다. 이곳의 초대 강사로는 수많은 향시 합격자들을 제자로 거느린 학사 관리 조관림이 취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오 년을 채우지 못하고 혼인으로 인해 강사직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저희는 재밌었어요.”

강사 조관림의 눈물겹고 지긋지긋한 연애를 지켜본 학생들은 솔직히 공부보다도 그게 더 머리에 남는다고 말했다. 거기다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무려 동맹국인 고산국의 차기 패왕, 고산패자 제갈군무였던 것이다!

“아, 부탁이니 제발 다시는 저희 가게에 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차라리 제가 돈을 내 드리겠으니 다른 곳에 가 주십사. 조 학사님한테 유감은 없지만 제갈 돌, 아니 패자 마마가 좀 부담스러우셔야지요.”

여해루의 루주 대리인 옥청려는 한때 제갈군무가 여해루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때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제갈군무가 여해루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된 까닭은 태자 월산이 자리를 잡자 창명후 강절곤이 모든 병권을 반납하고 식솔들을 끌고 장강성으로 내려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고산국으로 돌아가도 되련만 태자 월산은 태자가 되자마자 고산국과 긴밀한 무력 협정을 맺고 싶어 했고, 제갈군무는 별궁에 질려 연이 있던 여해루에서 먹고 자고 하기 시작했다. 여해루 전주인 진해의 당부 탓에 모든 숙식이 무료였으니 제갈군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때, 운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여느 때처럼 미려 공자를 부르짖으며 기둥에 폭풍처럼 시를 써 내려가던 조관림이 제갈군무의 눈에 띈 것이다.

“솔직히 외양은 내 취향이 아니지. 대사형이나 칠 사형만 봐도 알잖아? 나 눈 높아. 그런데 내 취향은 껍질보다 속이잖아. 똑똑한 사람이 최고지. 그렇고말고.”

고산패자 제갈군무는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글은 읽을 줄만 알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제갈군무는 주변 사람들이 조관림의 시를 읽으며 감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강학 학사인 조관림의 직업의식을 자극했다. 조관림은 어린아이도 알 정도로 조리 있고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자신의 시를 풀어 주었고 제갈군무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세간 사람들이 우리 고산국 사람들보고 무식하다고 하는데 그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지.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해야지. 암, 그런 의미에서 관림은 내 짝으로 딱이야.”

그 뒤로 제갈군무는 심드렁하던 월국과의 무력 협정에 적극 동의하며 자신들의 사제와 고산국 무인들을 장기 대여, 아니, 월국의 무인들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고산패왕은 반대했으나 제갈군무가 오 모 씨에게 서신을 써 고산국으로 가 패왕을 설득해 달라고 청탁하자 순식간에 해결이 되었다. 고산패왕은 사손의 애교라는 새로운 경지를 맛보았고, 툭 치면 날아갈 것 같은(고산국 기준) 연약한 사손의 부탁을 뭐든지 들어주었다.

“게다가 우리 홍림이도 아직은 아버지 품에 있어야 할 것 같고.”

또한 제갈군무는 의외로 어조원의 홍패연리익에 제법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믿기지 않지만 일홍련과 고산홍패 사이에서 태어난 알은 달을 채워 무사히 깨어난 뒤 어조원 내관들과 만가헌 새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새끼 새의 주인인 제갈군무는 홍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후에 진해가 좌부인 천협에게 홍패연리익에 대해 물어본 바에 의하면 홍패연리익이 세대에 한 마리만 보이는 이유는 놀랍게도 독박 육아에 의한 부작용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홍패연리익은 고산홍패와 짝을 지어 알을 낳는데 홍패연리익이 고산홍패보다 태어날 확률이 적었고, 혹여 태어난다고 해도 고산홍패는 먹이를 먹일 수 없으니 좌부새 혼자서 새끼를 길러야 했다.

그런데 그 기간이 무려 이십 년이었다. 수명이 사람과 비슷한지라 성조가 되는 기간도 사람과 비슷했다. 이십 년 동안 손바닥 위에 올라오는 작은 새가 혼자서 밤낮없이 새끼를 먹이고 씻기고 지켜 가며 키우다 보니 새끼가 성조가 될 무렵에는 몸이 쇠약해져 과로로 죽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오천협과 홍련이도 홍련이의 아버지 새가 힘없이 죽어 가고 있는 와중에 만났다. 죽은 걸 묻어 주고 홍련이를 먹여 주고 성조가 될 때까지 돌봐 준 게 계기가 되어 홍련이가 오천협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여하튼 그리하여 무력 협정이 마무리될 무렵인 오 년 후에는 제갈군무와 조관림, 그리고 홍림은 무려 황제와 태자의 배웅을 받으며 고산국으로 떠났다.

“가르치면 알아듣는 돌머리를 외면하는 건……, 선현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 같았습니다.”

후에 조관림은 우연히 만나게 된 정미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관림은 여전히 정미려에게 열광했고 그 탓에 하마터면 해국과 고산국 사이에 약간의 마찰이 일 뻔했지만 그저 스쳐 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밖에도 월국의 도성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는데 고산국에서 무인 하나가 살인을 자수하러 와 나라가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낭중과 그 남편을 죽였다며 죄를 고한 무인은 제갈군무의 참관 아래 재판을 받고 월국의 변방으로 유배를 갔다. 그는 그곳에서 죄를 뉘우치며 변방의 병사들 사이에서 국경을 지키다 형을 끝마친 뒤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또한 다른 사건으로는 방 도련님이 아기 준 도련님을 안고 곽열을 정실로 올려 달라며 가출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곽열과 손을 잡고 사이좋게 가출했던 방 도련님은 잠이 든 사이에 곽열에게 업혀 다시 집에 돌아왔다. 호부시랑은 방 도련님의 충격적인 가출…… 과 곽열의 조신함을 저울질하며 심각하게 처우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손자인 준 도련님이 너무 귀여워 서자로 두기 싫어지기도 했고.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태자의 좌부인 화석정군, 월산이 태자가 된 후로는 화석태왕정군으로 진봉했던 양지서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양지서는 오진해가 도성을 떠나자 진해의 재산 관리를 맡은 총관 집사에게서 오 어사 댁을 샀고, 그곳을 예전에 지순 황태공과 살 때처럼 꾸며 지내다 자는 듯 숨이 끊어졌다. 놀라운 건 화석정군이 죽은 뒤 삼 일이 지나지 않아 어조원의 유일청 역시 자는 듯 죽었다는 점이다. 궁인들은 유일청이 의리를 알아 옛 주인을 따라갔다 입을 모았다.

한편 도성 밖도 사건이 멈추는 일 없이 계속 흘러갔는데 큰 사건으로 들자면 해국의 것이 있었고, 작은 것으로 들자면 지방인 장강성의 것이 있었는데 두 사건 다 후사와 관련 있었다. 해국에서는 해국 왕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차기 보위를 앞두고 심각한 물밑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서해 옥가는 가주가 급히 출타한 뒤로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결정하지 못한 채 보류 중이라고 했다. 총비 옥백합은 상 왕자를 빙국으로 약혼 겸 유학 보낼 것을 심각히 고려 중이라고.

장강성 이야기는 의외였는데, 장강성의 차기 후사인 강백서가 아들 강해아를 놓아둔 채 양자를 들였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양자는 일가붙이 하나 없고 가문도 무엇도 없는 자로 이름을 한삼랑이라고 했다.

사실상 장강성을 강절곤으로부터 물려받은 강백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야. 나는 성질이 못되어 내 식구들 해 끼치는 자는 제거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또 어찌 이리 칼같이 끊어지겠니. 게다가 우리 해아도 너를 좋다 하고, 너도 해아를 좋다 하니 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야. 위자료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이 장강성으로 끝내 주렴.”

결과만 말하면 삼랑은 양자 제의를 수락했다. 강백서를 시중들던 정미려가 거절하려는 삼랑에게 눈을 접어 웃으면서,

“그럼 애만 두고 나가.”

라고 곱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삼랑은 자신이 저놈 말대로 곱게 꺼져 주면 자기는 고생만 실컷 하면서 서럽게 애를 낳아 혼자 기를 것이고, 나머지 두 놈은 진해를 물고 빨며 하하호호 웃으며 살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개자식 같은 생각이지만 형님들이 다 자기 잘 살게 하려고 그런 개고생을 했는데 그 동생인 자기가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차면 되겠냐고.

“씨발,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아버지 죽고 이 성 물려받으면 넌 국물도 없어!”

“아이고, 삼랑아! 잘 생각했다! 애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낳아야지!”

“해야, 왜 꼭 아랫목에서 낳아야 하느냐?”

장강성에 양자를 들였는데 왜 전직 어사 오진해와 해원공 안해산까지 장강성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강성은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온 집안이 북적거렸다. 강절곤과 오천협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그저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후에 삼랑은 음인 하나, 양인 하나를 두었는데 장자인 음인 아이는 이름을 금오라고 짓고 장오라는 별칭으로 불렀으며, 내무부 일등시위 동십사의 쌍둥이 중 하나와 혼약하였고, 둘째는 양인 아이인데 이름을 교오라고 지었으며 최연소, 최장 연임 어사로 활약하였다.

다만 삼랑은 후에 강백서가 사망한 후에도 성주를 맡지 않고 아들인 강금오에게 장강성을 물려준 뒤 계절마다 오고 가는 정미려와 오진해, 그리고 해원태공이 되어 근방을 영지로 다스리게 된 안해산과 더불어 살았다. 심지어 해원태공이 사신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는 해원태공의 독자이며 음인 공자인 안란오를 맡아 길러 주기까지 했다.

해원태공이 된 안해산의 곁에는 그의 호위인 황아무가 있었는데 황아무의 옆에는 해국 출신의 남편인 오호가 있었다. 오호는 자신이 따르던 주인에게 혼인을 허락받고 충성을 변치 않을 것을 약조한 뒤 황아무와 그의 늙은 유부를 모시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후에는 오호가 공자 안란오의 호위를 맡기도 했었다.

“어휴, 지긋지긋한 것들.”

아들 형제들만 해도 북적거리는데 정미려가 해국에서 데려온 어린 아우 옥지오까지 장강성에서 머물곤 했으니 장강성은 말 그대로 아이 소리 끊일 일이 없었고 웃음소리 끊일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먼 후대의 사람들이 말하길 다복하기가 장강성 사람들 같기만 하여라고 이야기하였다.

<『환태자 사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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