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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예비 정군 오진해 (12/18)

7부 예비 정군 오진해

진해는 호화로운 방 안에서 멍하니 병풍을 쳐다보고 있었다. 월산의 취향과는 다른 사치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자수 병풍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죽은 지순 황태공의 보물이 모두 월산의 몫이 되었다니까 어쩌면 저건 지순 황태공의 취향일지도 몰랐다. 진해는 이때까지 들었던 여러 가지 정보를 합해 지순 황태공이 월산과 얼굴을 닮았지만 성격과 취향은 정반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대인, 입맛이 없으셔도 좀 드셔야 합니다. 창명후 합하께서 걱정하고 계신다네요.”

진해가 있는 곳은 성월공부, 즉 월산의 저택이었지만 그의 시중을 드는 건 오 어사 댁에 있던 진해의 집사였다. 그는 진해의 시중을 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곳에 감금되는 길을 택했다. 진해는 딸린 가족이 있는 그에게 심히 미안해졌다.

“그래도 영 입맛이 없네. 거기 놔두면 있다 먹을게.”

“어제도 그리 말씀하셨잖습니까.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셔도 일단 먹어야 삽니다. 살아야 장래를 도모하지요.”

진해가 해산과 좋아 지내던 걸 알고 있는 집사는 진해가 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진해의 머릿속은 치정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월산은 진해가 찾아온 그 길로 진해를 자신의 저택에 감금했고, 입궁해 황제에게 진해와 혼인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정확히 말하면 장강성의 차기 후사인 강해아와 혼인하겠다고.

“……창명후 할아버지는 잘 계시지? 혹시 다른 소식은 없어? 그 집 도련님이라든 가.”

“예, 아직 별 소식 없습니다. 특별히 더 나빠지시지 않았대요.”

“좋아지지도 않았다는 말이네.”

“대인…….”

“나 잠깐만 혼자 있게 해 줘. 이건 꼭 먹을 테니까 걱정 말고.”

집사는 어두운 표정의 진해를 바라보다 말없이 방을 나갔다. 집사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친척인 영 집사로부터 진해가 어릴 때 행방불명된 강해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역시 전해 들었다. 그리고 현재 행방이 묘연한 해원공이 폐비 연씨 소생이라는 소문 역시.

그렇다면 진해는 대체 얼마나 복잡한 연에 얽힌 것인가. 원수를 아버지로 알고 살아 온 해원공도 기구한 팔자였지만 그 여파에 휩쓸려 좌부우부와 생이별하고 귀한 핏줄을 타고났으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온 진해 역시 정말로 딱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이제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이루려는 차에 사건이 터지고, 그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이별하다 못해 자신의 정적과 반강제로 혼인하기에 이르렀다. 창명후는 성월공의 구혼에 집안일을 핑계로 답하지 않고 있다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시간문제였다. 강백서가 숨이라도 거두지 않는 한 황제가 허락한 혼인은 반드시 이루어질 터였고, 진해 역시 살기 위해 그것을 따라야 할 터였다.

“가여운 대인…….”

집사는 저도 모르게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진해가 조금이라도 입맛을 찾을 만한 것을 구하기 위해 어딘가로 향했다. 저택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장차 성월공의 정군이 될 진해에게는 이 집의 모든 것을 허락한 지 오래였다.

“…….”

한편 진해는 모란인지 작약인지 모를 꽃의 자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며칠이 지났건만 진해의 머릿속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월산이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말했을 때의 기억에.

<『환태자사건』8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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