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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하로(夏爐) (16/17)

외전 1. 하로(夏爐)

푹푹 찌는 여름이었다. 황제의 벗이자 나라의 공신인 사내. 전 상장군이자 현 태자태부 위희평이 야속할 만치 따가운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람 하나 죽일 날씨군.”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수도 보수 공사에서 사람이 벌써 둘이 죽어 나갔다. 이런 일에 민감한 간관들이 상소를 올리고 있으니 이번 여름이 유독 더운 것은 확실했다. 단정한 얼굴이 찌푸려졌다. 위희평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더위를 유독 힘들어하는 볼 발간 어린애였다.

‘선화가 죽어나겠군.’

요즘 들어 유독 칭얼거림이 잦은 태자였다. 위희평은 어제 강연에서 천자문을 외우기 버거워 끙끙 앓던 원선화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이제 다섯 살이 되는 어린 태자다. 얼굴이 분홍색이 되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데도 원선화는 싫다는 소리 한번 않고 착하게 자리를 지켜 글월을 외우려 했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했다. 위희평이 속으로 생각했다.

‘모비가 나한테 면박을 주셨지.’

한족과 융화가 되었다곤 하나 북제의 귀족들은 유목민 출신이다. 차가운 북녘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으나 그 습성은 여전했다. 글을 읽는 것보다는 무예를 가꾸기를 좋아하는 습성. 위희평은 문무겸전의 사내였으나 조상의 피가 짙게 내려오는 황족인 탓인지 더위를 몹시 싫어했다. 그 정도가 심해 모비는 어찌 그리도 더위에 약하냐, 안타까움에 위희평에게 면박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며 위희평은 원선화가 저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더워하면서도 미련스럽게 강연을 이어 나가려는 것도 그렇고. 위희평은 오묘한 얼굴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가슴에 잠시 파도가 울렁거렸다. 망망대해에 배를 띄워 놓고 있는 듯했다. 홀로 넓은 공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유리된 듯했다. 아니면 황무지에 자리한 기분.

어째서일까?

위희평은 가끔 쓸쓸함을 느끼곤 했다.

‘모든 것을 감내하고자 했는데.’

위희평은 백합을 닮은 여인을 떠올리고 쓰라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오랜 벗이자 주군의 씩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입매를 굳혔다.

그래. 오랜 벗을 배신하면서 사랑을 구하고자 했지.

그 아름다운 미소에, 그 순수함에 홀렸다. 위희평은 아련한 얼굴을 했다. 원선견이 혼인을 슬그머니 말할 때 위희평은 어물쩍 말을 돌렸다.

“너는 상장군이고 제일가는 공신인데 어찌 대를 잇는 중요한 일을 안 하려 드나?”

위희평은 말로 무마하였다.

“동생이 씨를 이었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 생각이 없습니다.”

죄책감이 배 속에서 피어올랐으나 끝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위희평은 발걸음을 뗐다.

‘어차피 고민해 봤자 답은 하나일 텐데.’

입술에서 피어오른 것은 죄악의 꽃이다. 위희평은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며 태자궁으로 향했다.

태자궁의 문턱을 밟자마자 들리는 소리에 위희평은 놀라 뛰쳐나갔다.

“으아앙!”

노상궁이 곤란한 얼굴로 울고 있는 원선화의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황제의 보모였던 여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는 원선화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한 채다.

“전하, 이것은.”

노상궁의 말에 너덧 살 된 어린아이는 고개를 절레 저은 채 히끅 울음을 터뜨렸다. 딸꾹질을 하는 폼이 심상치 않다. 위희평이 원선화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귀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린 태자는 한눈에 봐도 치렁한 무거운 옷을 입고 엉거주춤 팔을 벌린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위희평이 놀라 태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밀어 넣었다.

“태자, 왜 우십니까?”

태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예법은 아니라지만 노상궁은 그것을 말릴 생각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야 말았다. 태자태부야 황실의 특별한 사람이니 말릴 수도 없고, 중요한 것은 원선화가 태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힉, 태부, 히끅.”

노상궁의 예상처럼 원선화는 위희평의 품에 몸을 움츠리며 눈물을 서서히 그쳤다. 발발 떠는 몸을 자상하게 토닥이며 위희평이 몸을 살짝 흔들었다. 어미가 어린아이를 재우는 듯 능숙한 손길이다.

으응, 작은 소리가 품에서 흘러나왔다.

원선화는 금세 안정을 찾아 원선화의 옷깃을 고사리만 한 손으로 꼭 잡고 눈물을 꾹 삼켰다. 몸을 움츠리고 간간이 딸꾹질을 하는 모습이 처연해 보여 위희평은 안타까운 얼굴로 원선화를 바라보았다.

“어찌 그렇게 우십니까?”

품 안에 자리한 따뜻한 온기가 공허함을 채우는 듯했다. 죄책감과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모든 고통을 보상하는 듯했다.

어린아이는 말랑하고 따뜻했다. 경국이라던 어미를 닮은 원선화는 진한 속눈썹에 물기를 매달고 웅얼거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기는 무얼 잘못해. 위희평은 목구멍에 올라온 말을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원선화는 우울한 얼굴로 위희평의 가슴에 이마를 톡 기댔다.

위희평은 한숨을 작게 내뱉고 다정한 목소리를 흘렸다.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이 몸은 그저 놀란 것입니다.”

작고 말랑한 몸을 쓰다듬으며 위희평이 상냥한 말을 이었다.

“꾸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

연선을 닮은 길고 짙은 눈매, 저를 닮은 동근 이마와 옆선. 위희평은 자부할 수 있었다. 선화를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다. 목숨보다 심지어 주군이나 연인보다 더 아끼고 있었다.

넘치는 사랑을 알릴 수 없어 남몰래 애정을 듬뿍 담은 눈으로 바라볼 뿐이나, 위희평에게 선화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이였다. 그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무슨 생각을 했었나.

‘선화의 이름을 지을 수 있던 것이 나의 복이다.’

위희평은 원선화를 어화둥둥 달래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요한 삶. 영화로운 미래.’

선화는 그리 살 것이다. 선화는, 위희평의 소중한 아이는 그리 살 것이다. 사랑이 맺은 열매. 모두가 그를 떠받들고 또 사랑해 줄 것이다. 위희평은 코끝을 스치는 어린아이 내음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옷이 어여쁩니다. 태자.”

품을 파고든 선화를 다독이며 봄바람같이 살랑이는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여름에 입기에는 무겁지 않습니까? 조금 가벼운 옷을 입어도 태자의 권위가 딱히 손상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 말을 하고 위희평은 노상궁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상복을 가져와라.”

노상궁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오늘은 황후께서 선잠단에 제를 지내고 누에를 치시는 날입니다.”

귀족 여인들이 모이는 국가 행사란 것이다. 황제는 선농단에 제를 올리고 농사를 짓는 시범을 보이고 황후는 선잠단에 제를 지내고 누에를 치는 시범을 보이니, 국가의 근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자행되는 일이었다.

원선화의 나이가 어려 아직까지는 선농단의 행사를 따르지 못하니, 그것은 외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원선화는 아직까지 선잠단의 행사에 따랐다.

위희평은 그러나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장을 입든 예복을 입든 상관없지 않나? 주례에 선잠례에 태자가 입을 복식이 정해졌는가?”

노상궁이 머뭇거렸다. 위희평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더운 날에 귀한 태자의 몸을 상하게 할 셈인가? 가벼운 옷을 내오게. 폭염에 예법에 없는 일로 태자가 몸을 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네.”

단호한 말에 노상궁은 세 겹으로 된 얇은 경장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제 목에 칼을 들이댈지라도 신임할 것이라는 태자태부다. 노상궁은 황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위희평이 금룡이 치렁하게 달린 원선화의 옥대를 풀고 무겁고 치렁한 흑색 태자복을 벗겼다. 아홉 겹의 두꺼운 비단옷은 어찌나 무거운지 바닥에 놓을 때 털썩 소리를 흘렸다. 위희평은 고지식한 황궁의 법도에 얼굴을 찌푸렸다.

비틀거리는 선화의 몸을 잡고 위희평은 몸을 숙여 손수 어린 태자의 옷을 입혀 주었다. 어찌나 울어 댔는지 발간 뺨에 핏줄이 다 보이고 있었다. 위희평은 쓰라린 마음을 삼켰다. 태자로 살아가는 불쌍한 선화를 당장에 답답한 예법의 굴레 속에서 꺼내고 싶었다. 궁궐의 담장에 둘러싸인 채 살아갈 선화를 당장에 품에 안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위희평은 애틋한 마음을 억누르고 눈을 내리깔았다.

“태부, 잘못했어요.”

원선화는 위희평의 눈치를 보고 훌쩍였다. 위희평은 가슴이 따끔거려 입술을 깨물고야 말았다. 사슴같이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거리는 원선화는 황족답지 않게 사람들의 눈치를 몹시 잘 보았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위희평은 태자를 바라보는 뱀과 같은 시선을 떠올리고 불안한 마음을 삼켰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토록 사랑하던 연선의 자식이건만 원선견은 제 외동아들을 남 보듯이, 어디 돌을 보듯이 차가운 눈으로 훑었다. 위희평은 그것이 사뭇 불안했다.

설마 황제가 알았나?

그러나 원선견은 아침에 웃으며 위희평의 어깨를 두들겼다.

“네가 혼례도 없이 국무에 몸을 바치는데 내가 일신을 아끼겠느냐? 너나 잘해라. 더위도 잘 타는 것이.”

더위에 몸조심을 하란 위희평의 겉치레와도 같은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허물없는 대답은, 사랑에 눈이 멀어 우정을 잊었던 위희평의 마음속에 크나큰 파동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위희평은 구토감을 삼키고야 말았다.

‘연선을 생각해야 한다. 선화를 생각해야 해.’

어찌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찌 내가 금수보다 못한 짓을 저질렀을까.

사랑하던 벗을 배신하고 이토록 악한의 길을 걷고 있다.

입술을 깨물고 위희평이 중얼거렸다.

“잘못은 없습니다.”

훌쩍 울고 있는 선화를 끌어안아 들며 위희평이 성큼 걸음을 걸었다.

태자궁의 둘레길을 걸으며 위희평과 원선화가 조곤조곤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이 잘못을 말하십니까. 태자는 존귀한 신분입니다. 함부로 신하에게 사과하셔서는 안 됩니다.”

“어째서 스승님이 신하이옵니까?”

“스승이어도 신하입니다.”

“스승은 아버지와 같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스승은 아비와 같다지만 아비는 아닙니다.”

위희평은 말을 내뱉고 씁쓸히 웃었다. 내뱉는 말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스승이 아비만큼 존경해야 할 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피와 살을 준 부친만 하겠습니까? 아비는 아비인 법입니다. 천륜을 끊을 수는 없지요.”

위희평은 작은 침묵 끝에 중얼거렸다.

“천륜이 우선입니다. 그래요. 그것이요.”

원선화는 그 말에 침울한 얼굴을 했다. 원선화가 위희평의 옷깃을 낙엽같이 작은 손으로 살짝 붙잡고 중얼거렸다.

“스승님은 신하가 아닙니다.”

그 말에는 다섯 살 어린아이답지 않은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걸 눈치챈 위희평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냥 신하는 아니지요.”

궁궐 안 절대적인 권력자가 선화를 밉게 보고 있었다. 태자를 후원해야 할 황제는 겉으로는 그를 몹시 사랑하고 아꼈으나 가끔씩 선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싸늘함이 잔재해 있었다.

‘선청을 그렇게 봤었지.’

선황이 사랑한 귀비의 아들. 결국 그 어미를 산 채로 매장시키고 귀비의 일족을 쳐 죽인 원선견을 떠올리고 위희평은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제 아우이니 예쁠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면 미소를 짓고 당과를 주거나 좋은 활을 선물해 주며 생긋 웃던 원선견의 숨겨진 독기를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된 후 처음으로 한 일은 원선청의 두 눈을 뽑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눈으로 선화를 보고 있었다.

위희평은 바짝 마른 입 안을 느끼고 침을 삼켰다.

‘설마 알고 있는 것은?’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스승님이 좋아요.”

아. 위희평은 입술을 벌리고 멍청한 소리를 흘렸다. 복잡했던 머릿속에 찬물이 뿌려지는 느낌이었다. 품 안에 안긴 어린아이는 불안한 얼굴로 스승의 얼굴을 흘깃 살피고 있었다.

위희평이 몽롱한 얼굴로 선화를 내려다보았다.

발걸음을 멈춰 후정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선화는 분홍색 입술을 달싹여 말했다.

“모후보다, 선화는 모후보다 스승님이 좋아요.”

그 말에 위희평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에 휩싸이고야 말았다. 순수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이를 넋을 잃고 마주 보았다.

홀린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것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

한참 후에 위희평은 입술을 느릿하게 열었다.

“어째서입니까?”

원선화는 답하지 않았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며 위희평은 눈물을 참았다. 선화는 말을 못 해 색색 숨만 내쉬고 있었다.

울컥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려 했다. 위희평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입니까? 모후는 모후입니다. 천륜은 천륜입니다. 어째서 모후보다 저를 좋다 말하십니까. 그리 참담한 말은 제게 과분합니다.”

고사리 같은 손이 옷깃을 간절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선화는 웅얼 말을 하며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모후는…… 무서워.”

그 말에는 희미한 경계심이 드러나 있었다. 위희평은 선화에게 어째서 그리 생각하냐, 모후를 사랑해야 한다, 나는 그저 신하일 뿐이다, 란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말은 목구멍에 감돌았다. 그리고 스며든 서러움을 억누르고 있었다.

위희평은 고요한 침묵을 이어 나갔다.

침묵을 깬 것은 낮은 목소리였다.

“사랑합니다.”

원선화가 몸을 움찔거렸다. 뒤를 이은 것은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였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태자가 가늠하지 못할 만큼.”

진실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 말을 마치고 위희평은 태자를 토닥이며 멈췄던 발걸음을 뗐다.

태자궁의 둘레길을 걸으며 위희평은 태자에게 속삭였다.

“선잠례가 끝나면 저랑 같이 침상에서 주무실까요? 퇴궁을 하지 않고 있겠습니다. 맛있는 당과도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 * *

당과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태부와 밤을 보내는 것이 기꺼워서일까. 선화는 칭얼거리지 않고 선잠례를 훌륭하게 마쳤다. 다섯 살 태자의 늠름한 모습에 귀부인들은 태자의 피가 고귀하여 그 자태가 품위 있는 것이라 말을 나누었다.

위희평은 태자궁으로 돌아온 선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살풋 웃었다.

“으응, 스승님.”

무슨 꿈을 꾸는 걸까?

통통한 배를 까고 웅얼웅얼 잠꼬대를 하는 어린 선화를 바라보며 웃었다. 선화는 작은 손으로 허리띠를 꼬옥 잡고, 스승이 혹여 일어나면 떠나지 않을까 품에 파고들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지.’

따뜻하고 말랑한 몸을 끌어안았다. 어린아이의 부드럽고 얇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등을 쓸다가 뺨을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우웅.”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화를 바라보며 위희평은 속으로, 태부가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위희평이 웃었다.

갓 태어난 선화를 끌어안을 수 있었던 것도, 이름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아장이는 태자를 끌어안고 토닥일 수 있었던 것도, 글월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것도, 어미 이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도, 같이 밤을 보낼 수 있는 것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바랄 만한 것이겠지.

그러나 위희평은 그것이 차고 넘치는 행운인 것을 알았다.

땀에 젖은 이마를 쓸며 위희평이 작게 뇌까렸다.

“태부(太傅)든 태부(太父)든 상관없겠지.”

어찌 해석하든 간에 태자는 저를 모후보다 사랑한다 했다. 지극한 사랑을 품고 위희평은 눈을 감은 채 흰 이마에 경건한 입맞춤을 했다. 새싹이 피어나는 듯 간질거리는 무언가가 배 속에 있었다.

태자를 사랑하고 있다.

원선화를 사랑하고 있었다.

위희평은 땀에 젖어 우웅 소리를 내는 원선화를 보며 얄풋 웃었다. 더위에 칭얼대며 얇은 이불을 짤따란 다리로 걷어차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위희평이 속으로 생각했다.

‘더워 죽겠으면서 나를 끌어안는 게냐.’

정에 굶주린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워낙 궁이 삭막하니 연선도 태자를 잘 돌보지 못했다. 황제야 원래 정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위희평은 가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살갗과 살갗이 맞대어 땀이 끈적이기에 위희평이 말했다.

“놓으셔도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선화는 위희평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포옥 묻었다. 위희평은 허탈하게 웃으며 원선화의 부드럽고 얇은 머리카락을 살살 쓸었다.

온기가 감도는 몸과 몸을 마주 대는 것은 화로를 가까이하는 것처럼 미련한 일일 터다. 밤에도 더운 바람이 불어 살이 맞부딪히는 부분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성인 장정이 견디기에도 힘든 날씨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뜨거운 숨이 입 안에 감돌고 있었다.

이 날씨에 서로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는 것은 고역인 일임이 틀림없었다. 여름날 화로(夏爐)를 가까이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

하지만 위희평은 더위를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청량한 얼굴로, 사랑이 가득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자애로운 얼굴로 선화를 보았다.

땀에 젖어 선화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며 위희평이 속삭이듯, 바람과 같은 목소리를 입술 밖으로 흘렸다.

“여름의 화로라면 젖은 옷을 말릴 수 있지 않습니까?”

동근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음에 사랑을 불태울 수 있지 않겠는가. 혼을 태우는 불꽃을 지를 수 있지 않겠나.

위희평은 말을 삼키며 품에 든 선화를 소중히 끌어안았다.

무더운 여름날 밤에 위희평은 화로같이 뜨거운 심장을 마주 대며, 온기에 미소 지었다. 만족한 사내의 얼굴에 평온함이 스며든 채였다. 묵직한 품 안의 뜨거운 온기를 느끼며 위희평은 눈을 감고 서서히 잠에 빠졌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훗날 위희평이 그렇게 돌아가길 갈구했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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