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귀비貴妃 편
숙각황후를 깊이 사모하여, 대소 신료들의 간청에도 후궁을 들이지 않았던 황제가 황후의 정궁이었던 원앙궁을 새로 단장했다. 원앙궁을 차지한 것은 고 귀비(高貴妃)였다.
귀비 고씨는 멸망한 북제의 황족이었다. 북제 말제의 사촌인 청소군왕의 막내딸, 손성군주로 전란 중 행방불명되어 있었는데 사실 황제가 그를 거두었던 것이다.
막대한 총애를 입은 손성군주 고씨는 내명부의 최고 품계인 일품 귀비가 되어 원앙궁에 입성했다.
장안을 울리는 무성한 소문이 있었다. 바로 화제의 고 귀비에 대한 소문이었다. 그동안 내로라하던 도성의 미녀를 물리고 고 귀비를 품으니, 그 미색을 자연스럽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소문에는 고 귀비 얼굴이 숙각황후와 닮은 경국지색이라 하였다. 말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가 천년 요호인 포사와 달기를 닮았다고 떠들곤 했다.
“요호는 무슨 요호?!”
효성이 깊은 숙각황후의 독자인 동궁, 태자가 아비를 홀린 여우에 격분하여 고 귀비를 죽이려 전각에 침입하는 일이 있었다.
“차라리 선강(善姜)이라면 모를까!”
원앙궁의 궁인들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태자를 막는 몸짓은 간절했으나 격한 몸부림에 뚫리고야 만다.
선강은 위선공이 아내로 삼은 위선공의 며느리다.
“어찌 아비가 아들의 여인을 탐한단 말인가!”
산발이 된 태자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에 분노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태자의 입에서 격분한 목소리가 터졌다.
“부황께서 내게 어찌 이러신단 말인가?!”
정상적으로 사람을 아끼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태자였으나 그 마음만큼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 짧은 생애 오로지 위희평, 그 스승만을 욕망했다.
첫 경험을 위희평과의 정사로 마쳤다. 그리고 태자는 그 후 아무도, 심지어 궁인 또한 품지 않은 채 위희평을 열망했다. 오로지 갈구한 것은 오랫동안 연모했던 스승의 몸이다. 태자의 눈에서 뚜둑 핏줄이 터진다. 그리하여 그 혼사의 성립을 뛸 듯이 기뻐하지 않았던가? 혼례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태자에게 들려온 것은 위희평이 마차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뒤를 이은 것은 황제의 총애받는 후궁, 고 귀비의 입궁 소식이었다.
태자는 직감했다.
첫 만남 때 부황의 무릎 위에서 철퍽철퍽 엉덩이를 내리찍던 위희평의 모습. 그는 분명 모후의 비녀를 끼고 모후의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가.
‘연선, 나의 연선.’
부황은 그리 부르짖으며 스승의 입술을 빨았다.
소식을 듣고 태자는 한참을 멀거니 서서 넋을 빼고 있었다.
위희평은 고연선과 닮았다. 그는 고연선의 사촌이었으니까.
‘고, 고 귀비는…….’
단순한 망상이 아닌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엉망진창이 되는 바람에 결국 무산이 된 혼례식에 격분한 태자는 고 귀비의 원앙궁에 뛰어든 것이다.
“당장 나와라! 소훈! 네 어디 다른 서방을 섬기려는 것이냐!”
“아, 아니 되옵니…… 아악!”
궁인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건장한 태자의 손길에 무산이 되고야 만다.
우당탕!
나무 빗살로 만든 문이 뜯어지고 태자는 눈에 잉걸불을 켜며 대노한 얼굴로 침전에 발을 디디었다.
그리고 태자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아스라이 코끝을 스치는 것은 달콤한 정향의 내음이었다.
이제는 귀비궁이 되었으나 원앙궁은 황후의 정전이었다. 한때 황후의 옥좌였던, 화려한 봉황이 양각된 긴 의자 위에 얼굴을 하늘하늘한 면사로 가린 귀비가 누워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태자에게서 흐른 소리였다.
면사로 가려진 얼굴은 그 영롱한 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아하게 휘어진 눈은 속눈썹이 풍성하고 그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간, 붓으로 그린 듯한 눈매다. 눈썹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귀비는 어쩐지 흐리멍덩해 보이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스, 스승.”
태자는 결코 색욕 때문에 침을 삼킨 것이 아니다. 가끔 그가 위희평의 염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몸을 탐하여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사타구니를 부풀린 적이 있으나, 오늘은 결코 그런 것 때문에 동요한 것이 아니었다.
태자는 넋을 잃고 의자 위에 나른하게 누운 귀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면사 위 드러난 고혹적인 눈도, 면사 아래 슬쩍 비치는 앵두같이 붉은 입술도, 그 높은 콧대나 우유를 부은 듯한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도 아름답다. 높게 솟은, 풍성한 흑발이 금강석을 촘촘히 박은 비녀로 고정되어 있었다. 화려하게 올린 머리의 무게가 한눈에도 육중해 보였다. 그 장신구와 풍성한 머리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머리카락이 살짝 비스듬하게 내려온 상태였다. 귀비가 붉은 입술 사이로 작은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면사가 살짝 흔들리고, 작은 옥구슬이 잔뜩 달린 떨잠이 파르르 떨렸다.
귀비가 입은 옷은 소매가 넓고 치렁한, 붉은색 황후의 예복이었다. 금색 봉황이 수놓아진 찬란하고 화려한 붉은 옷은, 치마가 겹겹이 둘려 있고 복(福) 자가 달린 옥패를 패용한 것이다. 치마 사이 살짝 드러난 발은 사천에서 진상된, 귀한 촉금으로 만든 신발에 싸여 있었다.
태자는 그를 바라보며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이것이 스승이 맞나?’
염기가 뚝뚝 흐르는, 그러나 어쩐지 멍해 보이는 눈이 태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매에서 위희평과 유사한 점을 살필 수 있었으나, 지금 위희평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내의 복식을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저것은…….
태자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침을 삼켰다.
귀비의 옷을 입은 채 의자에 누워 있는 위희평을 바라보노라면 짙은 염기가 느껴졌다. 더욱이 누워 있는 자세 탓에 그 키마저 짐작할 수 없어, 여장을 한 위화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태자는 한참 동안 살랑이는 면사 아래 도톰한 아랫입술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마치 요호에 홀린 사람처럼. 한참을 귀비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태자는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귀비의 입술이 살짝 달싹일 때였다. 두 붉은 꽃잎이 움직이는 요염한 움직임에 아차 하고 이성을 되찾은 태자가 다시 눈에 잉걸불을 켰다.
태자가 귀비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네가 여기 있는 것은 온전히 너의 뜻이더냐?”
그 말을 하고 태자는 귀비의 동그란 어깨를 거세게 부여잡았다. 귀비의 몸이 맥없이 흔들렸다.
“말해라! 소훈.”
태자의 눈에 동요가 스쳤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태자가 분노와 절망이 담긴 눈으로 귀비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물기를 머금고 울화를 삼킨, 치기 어린 아이의 눈이었다. 귀비는 면사 위 몽롱한 눈으로 태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종잇조각처럼 흔들리는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양 방관하며 귀비는 멍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네, 네가 아니지?”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울먹이는 목소리.
“네가 원해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지?”
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처절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태자가 귀비의 어깨를 흔들었다.
“스승님! 아니지요? 스승님이 원하신 것이 아니라 말하십시오! 빨리!”
그리 말을 하곤 태자는 몇 번을 더 귀비의 몸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미친 듯이 고함을 토해 내며, 원앙궁에 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제 여인을 빼앗긴 사내는 울부짖었다.
“빨리 말해! 당장! 어서!”
귀비는 그저 흔들릴 뿐이었다. 면사 밖으로 드러낸 눈이 요요하다.
“빨리 말해!”
귀비는 오로지 감흥 없는 눈으로 태자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울화를 토해 내던 태자의 입에서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흘렀다. 충혈된 눈에 분노가 죽죽 흐르고 있었다.
“네 왜 안 말하느냐!”
노성을 지르고 태자는 눈을 매섭게 부라리고야 만다. 그 부리부리하게 떠진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익숙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 악물린 입 안에는 미미한 피가 고여 있었다. 태자는 입 안에 스치는 쇠 맛에 고조되어 손을 놀리고야 말았다.
커다란 손이 거칠게 귀비의 황후복을 부욱 찢고, 그러나 태자는 욕망에 따라 귀비를 범하지 못한 채 얼어붙고야 말았다.
잠깐의 깊고 무거운 침묵이 있었다. 태자는 경악에 찬 눈으로 귀비의 몸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충격을 드러내고 있다. 면사 밖으로 드러난 눈이 그제야 둥글게 휘며 감정을 드러냈다.
“이, 이게 무슨?!”
경악에 찬 목소리가 원앙궁을 울린다.
귀비가 나른하게 의자에 누운 채 태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그게 무엇입니까?”
저절로 존대를 하고야 만 태자다.
태자가 뒷걸음질을 치며 일렁이는 눈으로 귀비의 찢긴 옷 사이 몸을 바라보았다.
탐스럽고 도톰한 가슴 위에 달린 고리는 분명 태자가 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태자가 선물한 것이 아니었다. 은색 고리에는 홍옥이 아닌 무거운 추가 달려, 새빨간 유두를 손가락 한 마디만치 늘어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고리에 이어진, 은으로 만든 사슬은 고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태자는 시선을 아래로 향해 마침내 핏기가 가신 얼굴을 하고야 만다.
“그것은…….”
수풀 사이 늘어진 붉은 성기 끝에 반짝이는 금강석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금강석으로 장식한 요도 마개다. 태자는 성기 끝에 매달린 고리에서 아비의 흔적을 느끼고 입술을 벌렸다.
귀두에 달린 고리에 사슬이 매여 있었다.
등골에 소름이 올라온 순간이다. 스승의 가슴에 고리를 뚫고 정조대를 채운 태자였으나, 그는 이 순간 그 흔적에서 광기 어린 집착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고야 말았다. 바뀐 장신구와 성기를 관통한 마개에서 그 질척질척한 감정이 전해지는 듯했다.
‘부황은…….’
태자의 얼굴이 새하얬다.
‘내게 왜 스승을?’
아비의 음습한 눈을 깨닫고야 만 순간이다.
모른 척했던 모순을 깨닫고야 만 순간이다.
그 음울한 웃음을, 그 질척한 시선을 깨닫고야 만다. 능글거리는 말과 자신을 고조시켰던 뱀의 말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더라도 세세한 부분에서 어긋났던 아비의 말.
태자는 진실의 일부를 엿보고 압도당해 있었다.
‘부황은 대체……?’
귀비는 오로지 사이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태자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귀비의, 위희평의 드러난 엉덩이를 손에 쥐었다.
사과를 쪼개듯 엉덩이를 벌린 태자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갈색 주름을 팽팽하게 펼치며 장난감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 끝에 금강석이 빼꼼 항문 밖으로 삐져나오고 있었다. 화려하게 보석으로 마감된, 귀비의 몸을 꾸미는 데 충실한 장신구.
그리고 장난감의 끝에 작게 달린 고리와 고리에 이어진 쇠사슬. 쇠사슬은 유두와, 성기와, 항문에 이어진 것이었다.
태자의 경악에 찬 시선이 회음부에 새겨진 글자로 향한다.
[선견지처(璇絹之妻)]
선견의 아내.
태자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혼돈에 찬 말이 흘러나올 찰나였다.
“감히 아비의 여인을 범하려는 거냐!”
노성이 원앙궁을 울렸다.
그제야 태자는 소란에도 어쩐지 조용했던 궁인들을 떠올렸다. 부황께서 계셨구나. 태자는 아랫입술을 짓씹고야 만다.
고함이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태자는 얼굴을 굳힌 채 제게 성큼 다가오는 황제를 마주했다.
“부황…… 으윽!”
철썩!
매섭게 태자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손에. 태자가 바닥을 무참히 구르고야 말았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새하얘지는 독한 손길이었다. 태자가 벌건 뺨을 감싸 쥐고 눈을 크게 부릅떴다.
“부, 부황!”
바닥에 벌레처럼 뒹구는 태자를 바라보며 황제가 음울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황제의 여인이다.”
고통에 뺨을 움켜잡았던 태자의 몸이 굳어졌다. 황제는 그 모습에 날카로운 조소를 흘리곤 태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야 만다. 황제는 긴 의자에 누운 귀비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귀비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관조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정도, 영혼도 없는 인형처럼.
커다란 손이 뺨을 쓰다듬었다. 아끼는 고양이를 쓰다듬는 듯 다정한 손길.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렀다.
“귀비, 태자가 만행을 저질렀구려. 혹여 놀라진 않았소?”
귀비는 말없이 눈을 깜빡일 뿐이다. 태자에게 흔들려 흐트러진 풍성한 머리카락이 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황제는 다정하게 웃으며 귀비가 앉은 의자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소, 안심하시오.”
황제는 다정한 연인이 되어 창백한 귀비의 손을 쓰다듬고 동그란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귀비를 품에 안고 혹시나 그가 놀랐을까 걱정하는 기색이다.
“쉬이, 쉬.”
황제의 얼굴에 진심이 엿보이고 있었다. 태자는 바닥에 엎어져 넋을 놓고 그 기막힌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나.
충격을 먹지 않을 수 있나.
태자는 입술을 벌리며 넋을 잃었다.
“걱정 마시오.”
황제가 마주 댄 손을 깍지 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대는 영원히 나의 여인이니. 내가 보호하리다.”
그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겨울나무에 스쳐 가는 바람인 양 귀비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흥 없는 얼굴에도 황제는 귀비를 향해 애정을 듬뿍 담은, 다정한 시선을 보냈다.
다독임 끝에 귀비가 몸을 숙였다.
하얀 손이 황제의 허리띠를 푸르고 바지를 끌러 내렸다.
“아, 아아.”
태자는 못 볼 것을 본 양 핏기가 가신 얼굴을 한 채 손으로, 제가 짚은 바닥을 더듬었다.
바지를 내리자 위용을 자랑하듯 튕겨 나온 두툼하고 검붉은 살 기둥이 귀비의 콧잔등을 때렸다. 귀비는 작은 입을 앙 벌려 살 기둥의 끝 삿갓을 야무지게 물었다.
“으, 으.”
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뺨을 매끄러운 흑발이 가리고 있었다. 귀비는 미미한 홍조를 뺨에 띤 채 앵두 같은 입술을 있는 그대로 벌려 남근을 입에 머금고 오물거렸다.
귀비는 태자를 힐끗 보고, 그리고 눈을 내리깔아 쭙쭙 불기둥을 빨아 재꼈다.
곧 방 안을 울린 것은 음식을 먹는 듯한 소리다.
“으음, 귀비.”
향락에 젖은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귀비가 소녀처럼 뺨을 물들인 채 남근을 빨고 입에서 굴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당과라도 되는 것처럼 맛깔나게 우물거리며 먹어치우면서.
태자는 끝끝내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으아아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분노와 절망, 충격과 경악이 교차하고 있었다. 태자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몇 번을 뒤로 기어 물러가다가 몸을 일으켰다.
후다닥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태자를 흘낏 바라보는 요요한 눈이 있었다.
타아앙!
문이 닫히고 적막이 자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온전한 음행의 소리가 적막 사이 희미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보드라운 입술이 남근을 죽죽 빠는 소리.
양껏 벌려진 입술 사이로 거대한 살 기둥이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황제는 결국 탄식을 내뱉고야 말았다.
“하아, 귀비.”
폭포수같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다정했다. 황제는 다리를 벌린 채, 의자에 기대어 귀비의 애무를 받았다. 귀비가 귀엽다는 듯이 가끔 뺨을 톡톡 쓰다듬고, 붉은 입술을 더듬고 머리카락을 쓸면서.
위희평의 얼굴을 여기저기 쓰다듬던 손은 눈가에 이르러 멈추고야 말았다.
츠으읍, 츄으읍.
축축한 속눈썹에 매달린 물방울.
손가락에 걸린 따뜻한 액체에 황제는 더 이상 손가락을 놀려 귀비의 얼굴을 애정을 담아 쓸지 못했다. 그는 눈가에서 손가락을 멈춘 채 얼어붙어 있었다.
동상이 된 사내의 호흡이 멈춰 있었다.
한껏 벌어진 앵둣빛 입술 사이로 불그죽죽하고 흉측한 크기의 남근이 들락거렸다. 타액에 젖은, 푸른 핏줄이 불거진 흉흉한 남근은 터질 듯이 우뚝 솟아 있었으니. 위희평의 목구멍을 찢어발길 듯이, 작은 입술을 터뜨릴 듯이 그것은 막대한 크기로 화가 나 좀처럼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황제가 위희평의 눈가에서 손을 거두었다.
귀비는 머리채를 잡는 손길에 강제로 남근을 뱉어내야 했다.
“아!”
타액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입술에서 뱉어지는 탄식.
사아악. 황제는 붉은 혀로 귀비의 젖은 눈가를, 눈물을 핥으며 귀비의 허리를 두꺼운 팔로 끌어안았다. 휘청이며 황제의 품에 쓰러진 귀비가 곧 안정을 되찾고 황제의 품을 파고들었다.
“평아.”
단단한 가슴에 뺨을 기대고 눈을 깜빡였다.
“애정하고 있다, 평아.”
잔뜩 쉰 목소리가 떨려 왔다.
“평아, 나의 평아. 희평아. 너를, 너를.”
황제는 말을 잇지 못해, 참다못해 위희평의 뺨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이밀고야 만다. 남근을 빨던 입술을 망설임 없이 물어뜯으며 황제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더운 숨결과 함께 유연한 혀가 입술을 파고들어 입 안을 헤쳤다. 그 새빨간 입술 사이에 자리한, 깊고 달콤한 샘을 파헤치며 황제는 황홀함에 젖은 얼굴을 했다.
짤랑.
커다란 손이 통통한 가슴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추가 달려 늘어진 가슴이 손안에서 짜부라지고, 고리와 추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열락에 찬 숨소리를 뚫고 흘렀다.
“평아, 희평아.”
짙은 사내의 열락이 담긴 목소리로 부른 이름이다. 황제는 마침내 그 입술을 거칠게 물어뜯으며 귀비의 몸을 긴 의자에 눕혔다.
“연모한다.”
부우욱, 태자가 찢지 못했던 옷을 마저 찢으며 황제가 짐승의 눈을 빛냈다. 황제의 손에 어깨가 잡힌 채 귀비는 눈을 감고야 만다. 황제는 그 눈부시게 빛나는 흰 살결을 한참 동안 노려보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벌어진 앵두 같은 입술 사이 흘러나온 날카로운 교성!
“아, 아!”
잠시 후 원앙궁을 울리는 소리에 궁인들은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아주 높고 끈적한, 여인의 것인지 사내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길디긴 신음을 알려 하지 않고 궁중의 노비들은 그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원앙궁에 흐른 교성은 끊길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길게 길게 이어졌다.
마치 울부짖는 짐승과 같은, 교미의 쾌락에 넋이 나간 금수와 같은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것이 사내를 유혹하는 요호의 소리라 했다. 환관들의 없는 양물을 세울 만큼 음탕한 소리라, 영혼까지 홀리는 여우의 교태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원앙궁에 요호가 산다 쑥덕거렸다.
귀비를 이르는 말이었다.
* * *
세간의 소문이 맞았다.
충격적인 소문을 듣고 달려온 북문위사는 그 자리에 있던 어림군 총독에게 사실을 확인받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야 말았다.
“그, 그것은.”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북문위사를 차마 바라보지 못해 고개를 떨구는 이들이 많았다. 금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잘근 문다.
나라의 영웅이었던 자는 음란병에 들어 이른 아침에 마차에 올라 기이한 음행을 펼쳤다. 스스로 다리를 묶고 옻으로 엉덩이를 쑤셔 자위하고, 산란하는 모습을 추태도 모르고 수하들에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 고금을 통틀어 들은 바가 없는 충격적인 음행에 넋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 혼미한 정신에 계란을 족족 내뱉는, 벌름거리는 항문을 보고도 가릴 생각을 못 해 망부석이 되었으니. 정신을 차린 안국후의 옛 수하들은 장포로 그의 몸을 덮고 소란에 밀려온 인원을 통제하려 들었으나 이미 그들의 옛 상관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기절을 한 후였다. 다리를 추하게 벌리고, 그 액이 뚝뚝 떨어지는 벌름거리는 항문을 보인 채로.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당황과 충격,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해 설전을 이르던 이들 중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금철은 그것에 속으로 갈등하였으나 북문위사의 보고를 받은 황제가 자리에 도착하면서 논의는 끊기고야 말았다.
“안국후의 음란병이 그리 이르렀단 말인가!”
“폐, 폐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기이하게도 서늘한 아름다움이 흐르는 얼굴에 침통함이 감돌았다. 황제는 침상에 늘어진 안국후를 바라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안국후는 짐의 오랜 동료이자 벗이었다. 모를 리가 없지.”
“허, 허면…….”
황제는 한동안 말을 삼키고 위희평의 창백한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 시선에는 깊은 애정이 있었다. 금철은 또 다른 소문을 알았지만, 그 진실로 정이 깊은 얼굴에 말문을 닫고야 말았다.
“어찌하면 좋으냐.”
황제는 탄식을 흘렸다.
“일이 이리되었으니. 짐이 평아를 죽인단 말인가.”
“그편이 안국후에게도 명예로운…….”
“짐에게 어찌 그런 고통을 감내하라 하는 것이냐!”
쩌렁한 노성에 사색이 된 무관이 무릎을 꿇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뒤이어 무관들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그러나 황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의 의사를 드러냈다.
“평아를 죽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는 공신이니 죽일 수가 없다!”
칼날같이 서늘한 눈을 번뜩이며 황제가 단호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흘렸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말을 함구하라.”
이어진 목소리에 북문위사와 좌장군 금철, 어림군 총독이 고개를 조아렸다.
“알아서 말을 잘 막겠지?”
황궁에 흐를 피를 예감하고 있었다. 황실의 친위대인 어림군 총독이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몸을 엎드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연병장에서 마차 사고가 일어난 날의 일이었다. 말이 안국후가 탄 마차에 달려든 것이다. 전복된 마차에 안국후 위희평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미친 말을 관리하지 못한 하위 무장 스물셋과 병졸 쉰둘이 즉시 참살당했다.
바로 다음 날에 원앙궁에 고 귀비가 들었으니 고위 무관들은 그 정체를 짐작하였으나 군부의 추태를, 차마 상관의 추태를 거론하기 어려워 입술을 조개처럼 다물 뿐이었다.
그렇게 황제는 위희평을 고 귀비로 만들었다.
“나를 원망하느냐.”
“…….”
“나를 증오하느냐.”
“…….”
“아니면 후회하느냐? 지난날을? 태자를 아꼈던 날들? 고연선을 사랑했던 날들?”
말에는 날이 서 있었으나 그 행동은 다정하기 짝이 없다. 손수 붉은 포도알을 새빨간 입술에 먹여 주며 황제는 위희평의 뒤에 누워 귀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귀비가 포도알을 우물거리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황제가 입술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퉤. 입술 밖으로 뱉어진, 타액에 절은 씨와 껍질을 손에 쥐고 황제가 작은 웃음을 흘렸다.
“아니, 상관없나?”
귀비의 눈이 나른하게 깜빡였다. 황제는 손바닥에 모은 포도 껍질과 씨를 탁상 위 빈 그릇에 버리고 하얀 천으로 손을 닦았다. 귀비가 말똥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손을 닦으면서 황제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내게 준 상처는 모두 대갚음하였지. 아니 그 이상을, 연선과 네게 다 갚았다.’
핏덩어리와 상간하고 크나큰 모욕을 얻은 것. 지극히 순수한 사랑이 더럽혀지고 과거의 영광을 함께하던 수하들 앞에서 처절한 굴욕을 맞이한 것. 결국 그를 지탱하던 지고의 사랑과 과거의 영광은 업의 성벽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황제는 입 밖으로 복수의 종언을 내뱉지 않았다. 위희평에게 승리의 미소를 흘리지 않았다.
승리라고?
원선견은 웃을 뿐이었다.
이게? 이런 게?
남은 것은 황무지가 된 마음. 그리고 몸도 마음도 병신이 되어 버린 단 하나밖에 없던 벗. 가슴에는 짐승처럼 고리가 뚫리고, 뒷물이 아니면 분변조차 불가능한. 그저 성노리개가 되어버린 사내. 제가 그리 만든 것이었다. 원선견이 쓰라린 웃음을 흘렸다.
그날 위희평은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소군, 소군의 계집이…….’
울음을 터뜨리며 하는 말.
‘살려 주세요, 소군, 제발, 제발!’
태자에게 처음으로 겁간당하던 날 말이지. 그때 위희평은 바닥에 웅크려 하염없이 울었다. 그를 바라보며 고소를 흘리려 했건만 원선견은 그리하지 못했다.
‘왜? 왜 그러게 날 배신했지?’
나오는 건 처절한 절규와도 같은 목소리일 뿐이다. 위희평은 그를 돌아보지 않고 몸을 웅크려 짐승처럼 울었다.
그리고 지금 원선견은 침상에 누운 채 자신을 응시하는 위희평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내도 여인도 아닌 모습을 하고 있는 그를. 고혹적인 몸을 하고, 사내를 홀리는 염기 어린 눈을 하곤 순진무구하게 의자 위에 늘어진 자태를 보며 원선견은 실실 광인의 미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더럽혀진 사랑은 태자와 위희평 사이의 것뿐만이 아니다.
그 긴 세월 간 오염된 마음이 하나 더 있었다. 광소를 흘리며 원선견이 위희평을 노려보았다.
“너를 놓을 수 없다.”
복수의 마지막을 기획하고, 그 후의 일을 상상하기 두려워했다.
“너를 놓을 수 없어.”
그러나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놓을 수 없는 것을.
애증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강렬한 증오를 품은 동시에 누구보다 강렬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원선견은 웃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 혹은 생존 두 갈래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연선을 연모한다고?”
원선견은 피눈물을 흘리며 토로했다.
“네 그 마음이 연모라고? 그렇다면 이 마음도 연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자아, 평아! 나는 너를 연모하고 있다. 너를 씹어 삼키고 싶고, 그 살점을 뼈대에서 발라먹고 싶어. 오독오독 척추마저 잘근 씹어 위장에 넣고 싶다. 네 절망마저 함께하고 싶다. 내가 있는 지옥으로 너를 끌어내리고 너와 함께하리라 다짐했다. 너를 억겁의 날까지 범하고 싶었다. 너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산 채로 불살라 구워 먹고 싶었어. 그 살점 하나마저 내 것이 되게!”
부욱!
거친 손이 가슴팍을 가린 옷을 찢어발긴다. 변모한 몸이 원선견의 시야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원선견은 귀비의 나체를 보는 순간 ‘하!’ 일그러진 웃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이의 피부처럼 말랑말랑한 몸과 추에 늘어진 도톰한 가슴, 손가락 마디만큼 커다랗게 변모한 유두와 눈부신 나신을 장식한 은사슬. 그리고 은사슬이 이어진 사타구니.
원선견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의 귀비는 헐벗은 몸을 드러낸 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텅 빈 유리알 같은 눈을 보며 원선견은 분노하고 또 웃음을 터뜨렸다.
저 껍데기만 남은, 인형이 된 위희평의 회음부에 문신을 새기고 성기로 꿰뚫으며 생각한 것은 영원히 그를 가지겠다는 집착이었다.
더럽혀진 애정이다.
“소군과 평아는 없지.”
원선견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몸을 무너트렸다. 귀비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황제와 귀비만이 있을 뿐.”
원선견이 위희평이 앉은 의자 앞에 무릎 꿇었다. 그 희디흰 발을 조심스레, 소중히 거머쥐곤 고와진 발끝에 경건히 입맞춤을 했다.
귀비가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역시나 그의 귀비는 말이 없었다.
원선견은 하얗고 말랑한 발을 붉은 혀로 길게 핥아 올렸다. 그 도톰한 발바닥의 살을, 움푹 파인 부분을, 발뒤꿈치에 남은 굳은살의 흔적을 혀로 누비며 눈을 감고 그 살에 배인 체취를 훑었다.
향료를 달인 우유의 맛이 남아 있었다.
“평아.”
더운 숨을 내뱉고 게걸스럽게 발을 핥았다. 손으로 얇아진 발목을 더듬곤, 그 고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종아리를 핥았다.
“평아, 나의, 나의 홀로 남은…….”
엄지발가락을 정신없이 죽죽 빨고 있었다. 황제는 그 아름다운 발을 미친 듯이 빨며 중얼거렸다.
평아, 나의 평, 오로지 나의 것이 된, 내게 홀로 남은…….
발을 내어 준 채 그저 유리 인형처럼 무감정한 얼굴을 하던 위희평의 얼굴에 한순간 웃음이 스쳤다.
황제가 복사뼈를 앙 깨물던 와중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네게, 네게 모든 것을 주겠다……. 너를…… 평아 네게……. 너를 이제…….”
위희평은 제 종아리를 타오르는, 징그러운 혀를 느끼고 싸늘한 조소를 흘리고야 말았다.
위희평은 잘 알고 있었다.
“아, 아아.”
곧 터져 나온 음란한 신음. 꺾이는 고개와 또르르 눈초리로부터 떨어진 한 줄기 물방울. 위희평은 제 허벅지 안쪽 살을 더듬는 손길에 굴복하여 순순히 다리를 벌렸다. 원선견이 위희평의 다리 두 짝을 강인한 손으로 벌리곤 그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평아, 평아!”
제 이름을 부르짖는 사내의 음성이 격하다. 위희평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쾌락에 그저 조소를 흘릴 뿐이다.
“흐, 흐응.”
사내의 근육이 도드라진 등을 쓰다듬으며 위희평은 속으로 생각했다.
‘잘 알고 있지. 그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을.’
날름 회음부를 핥는 말캉한 혀에 위희평이 ‘아, 아!’ 교성을 흘리며 둔부를 들썩였다.
“후우욱.”
뜨거운 숨결이 민감한 부위를 스치고 곧 몸을 잠식한 것은 지독한, 지독한 수위의 쾌락이었다. 아래를 유린하는 말캉한 감각에 위희평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몸을 펄떡일 뿐이었다. 속으로는 그 지독한 황제의 사랑을 알아 조소를 흘리면서.
위희평은 원선견을 몹시 잘 알았다. 태생부터 고귀한 사내는 천부적인 황제의 자질을 타고났다. 그 오만함이란 벗인 위희평이 지극히 잘 아는 것이었다.
위희평은 저를 범하는 말캉한 혀에 고개를 꺾고 ‘하악!’ 더운 숨을 내뱉었다.
“폐하, 폐하!”
원선견은 상대를 살피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원선견의 사랑은 오만했다.
마치 태자의 것처럼, 아니 어떤 면에서는 태자보다 더욱 오만하고 폭압적이겠지.
위희평은 눈을 감고 완전히 쾌락에 몸을 맡기고야 만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연선 다음 나의 차례인가?’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그러나 어찌 되었건, 그 안에 품은 추악한 마음이 어찌 되었건, 그 속이 어떻게 썩었든 간에 황제의 사랑은 겉으로는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귀비, 나의 귀비.”
어깨에 흘러내린 치렁한 흑발을 쓸어 올리며 하는 말이다. 향유로 닦아 내린 폭포수같이 풍성한 머리칼을 빗으로 쓸며 원선견은 온화한 낯빛을 했다.
“네게 말 대신 여덟의 말이 끄는 마차를 주리라.”
귀비에게 황후의 마차를 내리던 날. 문무백관이 편전에 엎드려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아니 되옵니다! 이는 예법에 맞지 않는 일이옵니다!”
원선견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예법에 맞지 않는 건 황명을 거역한 네놈들이겠지.”
반대를 하는 신하들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끝끝내 계단에 머리를 찍은 상서 하나의 목을 베곤 원선견은 원앙궁에 있는 귀비의 발을 씻겼다. 원선견은 우아한 눈썹을 내리깔며 귀비의 하얗고 부드러운 발을 핥았다.
귀비가 그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아. 검 대신 내 남근을 쥐어라. 꽃 같은 입술에 내 손가락을 물어라. 네게 못 해 줄 것이 없다.”
백비단 같은 뺨을 쓰는 부드러운 손길. 원선견은 붉은 비단을 뺨에 대며 웃었다.
“네 얼굴이 하야니 역시 붉은색이 어울리는구나.”
원선견이 비단을 물리고 중얼거렸다.
“촉금 비단으로 네 몸을 휘감을 것이다.”
금사로 봉황을 새긴 황후의 예복.
순금으로 만든, 여의주를 문 용봉비녀.
화려한 천 송이의 모란이 가득한 정원.
흰 담비 천 마리를 죽여 꼬리를 모아 만든 모피.
유리 항아리가 묻혀, 밟을 때 청아한 소리가 나는 마루.
기산이석을 뽑아 장강의 배를 타고 운송된 어화원의 수석들.
원선견이 선물한 진귀한 것들이다.
귀비는 그리하여 원앙궁의 침전에 벌거벗은 채 앉아 원선견이 제게 선물한, 화려한 금은보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눈부신 나신은, 가슴은 살짝 봉긋하고 엉덩이와 허벅지는 탐스럽게 살이 오른 상태다. 팔과 다리는 길고 늘씬하며 허리를 비틀고 앉아 자연스럽게 그 푹신한 둔부가 부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유두를 꿰뚫은 은고리.
은고리에 이어진 무거운 옥구슬이 가슴을 아래로 늘이고 있었다. 젖꼭지는 이미 퉁퉁 부어 손가락 마디만큼 커져 있었다. 마치 미더덕을 반으로 자른 것만 같이, 물면 터질 듯 살 오른 젖꼭지가 둥글게 휘어져 있다.
유두를 꿴 고리에 치렁하게 이어진 은사슬은 수풀 사이 남근 끝에 뚫린 고리에 이어져 있었으며 동시에 살 둔덕 사이 박힌 거대한 남근, 황제의 것을 본뜬 장난감의 끝에 달린 고리에 이어졌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회음부. 고환과 항문 사이에 새겨진 글씨 ‘선견지처(璇絹之妻)’는 황제가 손수 바늘로 찔러 새긴 것이다.
사내를 홀리는 몸이었다. 그것은 명백히 사내의 성욕을 북돋게 하기 위해 개조된 몸이었다. 궁인들은 그 요염한 몸을 씻길 때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곤 하였다.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인형처럼 자리한 귀비의 모습이 여인인 궁인에게도 제법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귀비의 몸은 궁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성적인 부분만을 강조한 음란한 것이었다.
“이것 보시어요, 또 폐하께서 귀비께 선물을 바치셨나이다.”
나신에 흰 담비 모피 하나만을 두른 채 위희평은 유리알 같은 눈을 깜빡였다. 유례가 없는 총애에 기뻐하던 궁인들은 주인의 그 시큰둥한 반응에 입술을 꼭 다물고야 말았다. 위희평은 그저 시큰둥하게 침상에 모로 누워 모피에 몸을 비빌 뿐이었다.
“마마, 기쁘지 않으십니까?”
궁인의 손에 걸린, 고운 옥 목걸이를 보며 위희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궁인은 속으로 저런 무감한 인사가 어찌 애교를 떨지 않고도 황제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지 의아해했으나, 그녀는 염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몸을 보고 의문을 풀었다.
‘하기야 저런 몸뚱이를 품에 안는다면야.’
교태 따위는 부리지 않아도 되리라. 궁인은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궁인의 짐작이 옳은 것인가, 원앙궁에서 귀비는 수치도 모르고 그 요염한 몸을 드러내고 다녔다. 원선견은 귀비가 나신을 드러내는 것을 기꺼이 여겼고 그 몸에 얇은 천을 덮게 하거나 혹은 아예 옷을 입지 않게 했다. 가끔 화려한 황후의 예복을 입게 하였으나 대부분 위희평은 헐벗고 음탕한 옷을 입고, 고리에 뚫리고 장식 당한 젖꼭지와 치부를 드러냈다.
그리고 원선견이 원앙궁에 발을 들이면 귀비는 무릎을 꿇고 몸을 숙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유려한 목소리에 원선견의 그윽한 시선이 귀비를 다정하게 쓸었다.
“귀비.”
오직 원선견만이 그 음란한 몸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 아아!”
퍽! 퍽! 퍽!
골반을 거세게 잡아당겨 엉덩이를 으깨듯이 아랫배로 뭉개고 있다. 귀비가 침대에 누워 엉덩이를 치켜든 채 침상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우웅, 소리가 흘러나온 곳은 입에 물린 둥근 옥 재갈과 타액을 흘리는 입술 사이였다. 붉은 입술에 재갈을 문 채 귀비는 줄줄 타액을 흘리며 몽롱한 얼굴로 침상에 뺨을 비볐다.
“허억, 헉!”
원선견은 깊은 내벽을 거대한 흉기로 쑤시며 그 떡같이 부드러운 엉덩이를 커다란 손으로 주물렀다. 손에서 잘게 부스러지는 것만 같은 푹신한 살을 양옆으로 벌리며 원선견은 잘게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후응, 흐으응.”
재갈 사이로 음란한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흉기가 들락날락하는, 벌름거리는 항문에 질척한 액이 흐르고 핏줄이 불거진 거근을 휘감는, 녹진한 붉은 살이 선명하다.
철퍽철퍽.
허연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게 손을 놀리며 원선견이 상체를 고꾸라트렸다.
“아흐응!”
절정의 순간 원선견이 귀비를 짓뭉갰다.
귀비는 엉덩이를 치켜든 채 사지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수풀이 무성한 사내의 고간에 찹쌀떡 같은 엉덩이를 비벼 대며 귀비는 몽롱한 눈을 풀었다.
재갈 사이로 후응 사내 애간장을 태우는 소리가 맑은 타액과 함께 흘렀다.
“귀비, 나의 귀비!”
퍼어억!
깊숙한 내장에 남근의 끝을, 깃발을 꽂듯 박아 넣으며 원선견은 눈에 불을 켰다. 집착이 뚜욱뚜욱 흘러내리는 귀신의 눈을 하곤 원선견은 귀비의 하얗고 부드러운 등을, 그 동글게 만 어깨를 바라보았다.
내장 안을 범한 남근 끝에 정액이 터진 순간이었다.
“후우웅, 우으응.”
입에 재갈을 문 채 귀비가 침상에 뺨을 대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볼은 색열이 돈 흔적이다. 등 뒤로 묶인 손이 몸에 남아 있는 쾌락에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귀비는 색색 숨을 내뱉으며 동그란 엉덩이로 원선견의 남근을 품고 있었다.
“후우우.”
원선견은 한참을 귀비의 내부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달아오른 숨을 골랐다. 치켜든 귀비의 엉덩이에 익다 만 사과처럼 자르르한 붉은색이 감돌고 있었다. 풀린 눈에 스친 것은 오직 쾌락.
색사의 열기가 죽지 않은 때.
침묵 끝에 원선견은 입을 열었다.
“포기한 것인가?”
귀비는 답이 없었다. 원선견은 인형같이 색색 숨만 내쉬는 귀비를 바라보며 쓰라린 웃음을 흘렸다.
“정녕 그리 살다가 내 곁을 떠날 것인가.”
새하얀 둔덕 사이로 검붉은 남근이 빠져나왔다. 뚜욱 뚝 수풀 사이로 물방울이 맺혀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삿갓이 주름에 걸릴 때 귀비는 몸을 움찔거리고야 만다. 원선견은 완전히 귀비의 안에서 빠져나오곤 낮고 긴 숨을 내뱉었다.
“…….”
엎드린 귀비의 등을 바라보며 원선견은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당신은.”
묵직한 저음이 흘렀다.
“그렇게 살다 일찍 죽을 것처럼 보여.”
“…….”
“그렇게 내가 내버려 둘 것 같나?”
“…….”
“내게 남은 건 너 하나뿐이다.”
원선견은 음울한 웃음을 흘리며 귀비의 늘어진 몸을 품에 안았다. 귀비는 맥없이 몸을 원선견의 품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너른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귀비는 나풀거리는 속눈썹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원선견이 그 몸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대는 죽어서도 나를 벗어나지 못해. 나는 그대를 짐승처럼 박제하여 가질 것이다. 내 아내로 둘 것이야. 시체마저 범하고 또 범해서 죽은 후에 내 옆에 묻으리라.”
쪽.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고 원선견이 묵직한 저음을 흘렸다.
“차라리 괴물이 되어라, 평아. 나처럼. 연선이 그랬던 것처럼. 차라리 괴물이 되어 보복하거라 내게.”
그 말을 마치고 원선견은 품에 안은 귀비를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얼굴을 동그란 어깨에 묻었다.
“…….”
단단한 품에 안겨 귀비는 창백한 인형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끝끝내 귀비의 입에서는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원선견 또한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귀비를 끌어안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황제가 귀비에게 막대한 총애를 베풀었던 시간이었다.
* * *
“부황의 사랑을 받으시니 기쁘십니까?”
태자의 지옥이었던 날이었다.
짹짹. 참새가 울어 대는 날이 쨍한 어느 초여름 날, 어화원의 그네에 앉아 있던 귀비를 본 태자가 참다못해 귀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흉신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태자가 귀비를 노려보았다.
끼이익.
귀비는 그저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로 태자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어엿한 사내였던 위희평은 어느덧 나긋나긋하고 고혹적인 귀비의 몸을 하고 있었다. 어화원에 앉아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그네를 까딱까딱 놀리는 모습은 궁인들이 힐끗거릴 만큼 어여뻤다. 태자는 그에 참지 못해 빠른 걸음으로 위희평에게 나아가 윽박질렀다.
“부황의 보석이 좋으십니까? 부황이 잠자리에 귀비를 만족시키십니까?”
태자는 울분을 참지 못해 시뻘건 눈으로 귀비를 노려보았다. 울분을 토하는 태자의 목소리에 피가 섞여 있었다.
“아니면 아예 제게 거짓을 말한 것입니까? 제가 못되게 굴어서 정이 떨어지셨습니까? 제가 그저 미우셨습니까?!”
말을 하는 태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귀비의 시선이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로 향한다. 태자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래서 부황에게 가신 겁니까?! 부황에게 순순히 안기시구요?!”
부황이 제 여인을 빼앗았다. 들려오는 소문은 귀비가 요호라는 것이었다. 태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피가 거꾸로 솟구쳐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숨을 헐떡이는 소년, 혹은 청년의 뺨에 솜털이 보송했다.
귀비는 앳된 청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뚝뚝. 굵은 눈물이 뺨을 흐르고 있었다.
분기를 참지 못해,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해 태자는 울고 있었다.
“연, 연모하고 있습니다.”
귀비는 그제야 웃고야 만다. 그렇게 학대를 해 놓고 태자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 모순을 귀비는 굳이 말로 지목하지 않았다. 그저 그 가련한 청년을 연민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아가야, 너도 참 불쌍하구나.’
태자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연모합니다, 스승님.”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태자는 길가에 내놓은 어린아이같이 서럽게 울었다.
“연모하고 있습니다, 스승님. 함부로 대해서 제가 싫어지셨습니까? 안, 안 그러겠습니다. 연, 연모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가…….”
태자가 더듬더듬 말했다.
“잘못한 것입니까?”
그동안 배웠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생각. 노상궁과 황제에게 배웠던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 세계가 무너져 내린 순간이다. 태자는 뚜둑 눈물을 흘리며 스승을 강렬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순백한 귀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태자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떨리는 시선과 그리고 요동치는 마음이 있었다.
귀비는 그네에 앉아 순진한 얼굴로 태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얼굴이 마치 죽은 자의 것과 같다고. 영혼이 털려 어디에 날아가 버린 것만 같이, 시체와 같이 그저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끼이익.
그네가 멈추는 소리가 울렸다.
태자는 눈물을 흘리며 귀비를 노려보았다.
“저, 저는.”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스승을 학대하고 제멋대로 굴리면서 불안한 마음을 품을 때가 있었다. 노상궁에게, 부황께 내 행동이 심하냐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절대 아니다, 그것은 사내의 몫이다, 지아비의 몫이다, 부정한 연인을 가르치려 손을 쓴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들었다. 그러나 태자는 가끔 서늘함을 느꼈고, 몸을 웅크렸던 모습을 보고 따끔한 가슴의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스승이 없던 그 공백의 시간 동안 태자는 분노와 함께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맑은 두 눈에서 사라진 애정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것이 감당하기 버거워 태자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대체 무얼 한 것이지?
“제, 제가…….”
태자의 말을 단아한 목소리가 끊었다.
“선화야.”
청명한 목소리에 원선화가 멍한 눈으로 그네에 앉은 위희평을 바라본다.
위희평은 온화한 얼굴로 원선화를 바라보며, 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나를 죽여다오.”
원선화의 얼굴이 얼어붙은 순간이었다.
아니라, 그럴 수 없다 소리칠 수 없었다.
위희평은 희미하게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너를 사랑했다.”
끼이익.
그네가 다시 움직였다.
“그러니 이제 죽여다오.”
태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충격에 물든 눈을 한 채 얼어붙어 위희평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끼익.
위희평은 그저 그 순수한 얼굴로 그네를 타는 것에 열중할 뿐이었다. 태자는 한동안 위희평의 앞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그 까딱까딱 그네를 휘저어 어린아이처럼 노는 것을 바라보던 태자가 어느 순간 공포에 물든 얼굴로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태자가 등을 보였다.
타다닥!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충격과 공포에 물든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곤 태자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으아아!
어느 순간 들려오는 비명에 귀비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어화원에서 도망치는 태자의 등을 바라보며 귀비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야 만다.
귀비는 곧 불청객으로부터 신경을 끄고 그네를 까닥이는 데 열중했다.
끼이익. 끼익.
그것이 그가 이 황궁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자유로운 일 중 하나였으니까.
“그네를 타는 것을 좋아하느냐.”
하지만 찬탈자는 그것마저 빼앗으려 했다.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고 줄을 당기는 손에 귀비는 눈을 깜빡였다.
나직한 목소리가 등 너머로 스쳤다.
“아니면 그네를 탈 때 풍경이 좋으냐?”
홀로 발을 까딱였을 때는 그저 아기가 장난하듯 움직이는 것만 하던 그네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야 만다. 창공 위에 풍성한 옷자락이 펄럭인 순간이었다.
원선견은 하늘 높게 그네를 띄우곤 손을 내렸다.
끼이익! 끼익!
몇 번을 힘차게 왕복하는 그네 위에 귀비가 그넷줄을 꼭 쥐고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 너머로 짙은 흑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흑옥 같은 눈은 저 너머 어디 멀리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원선견은 귀비의 그네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짓고야 만다.
‘너는 그래, 내 옆을 벗어나는 황홀한 상상으로만 웃을 수 있는 것이겠지.’
자유를 갈구하고, 해방을 갈구하는 오랜 벗의 얼굴에 순백한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끼이익! 끼익!
끼이이익.
그네는 한참을 힘차게 왕복하고 서서히 멈췄다.
원선견은 아쉬운 듯 침울한 얼굴을 한 귀비를 바라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자라의 뱃살을 요리하라 했다.”
귀비는 손에 쥐고 있던 그넷줄을 잠시 쓰다듬었다. 재촉하는 듯한 지긋한 시선에 귀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를 향해 다가오는 귀비에 원선견이 빙긋 웃으며 발을 뗐다.
“내일 할 급한 일까지 마무리하느라 늦었다. 내일 조례가 끝나고 시간을 낼 것이다. 계곡에는 오랫동안 가 보지 않았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뒤에서 보기에는 도란도란해 보였다. 정신을 놓아 버린 귀비는 순순한 얼굴로, 짙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황제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받았다.
끼이익. 끼익.
어화원에 남은 그네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 * *
원앙궁에는 요호가 산다.
달기도 포사도 얼굴을 꼬리로 가리고 도망갈 절색의 미녀가 산다. 내시도 발딱발딱 가운데를 세우게 만드는 요망한 미녀가 황제를 꾀고 있다. 호리병 같은 허리를 뒤틀고 아양을 떨면 황제가 껌뻑 넘어가 온갖 진귀한 보물을 다 바친다.
그런 소문이 장안에 맴돌고 있었다.
“어화원에 호수를 새로 팠다. 먼저 있던 것은 물이 더러워졌더구나.”
완전한 거짓은 아닌 소문이었다.
“그네를 탈 때 네가 볼 수 있는 모든 곳이 아름다웠으면 했다.”
원선견이 향기로운 머리칼에 코끝을 대고 작게 미소 지었다.
“평아. 너는 그네를 탈 때 웃느냐?”
아름다운 사내의 얼굴에 쓸쓸함이 감돈 순간이었다.
너울거리는 긴긴 머리카락. 바람이 불 때마다 정향을 흘리는 풍성한 머리채를 빗으로 쓸며 원선견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손가락에 치렁한 머리카락이 감기고, 그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는 것만으로도 불운했던 사내는 얼굴에 쓸쓸한 행복을 띄웠다.
그저 그뿐이면 족하리라.
머리칼 끝에 입술을 맞추며 원선견은 속삭이듯 말했다.
“이것으로 족하다.”
동그란 어깨를 쓸고 보옥을 다루듯이 귀비의 몸을 어루만진다. 욕망이 아닌, 온전한 애정이 담긴 손길로 그의 귀비를 쓰다듬었다. 원선견의 눈이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암울하게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잊으라 해도 잊을 수 없는 그들의 과거.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영광과 그리고…….
우드득.
하얀 어깨를 깨물며 원선견이 어깨를 가린 옷을 벗겨 내렸다. 동글고 하얀 어깨가 드러나고, 원선견은 어깨에 남은 잇자국을 말캉한 혀로 짐승처럼 핥고 백지같이 하얀 피부에 알알이 물든, 붉은 핏방울을 먹어 치웠다.
“어리석게 사랑을 바라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정자 위, 원선견이 귀비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곱고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네게 사랑을 구걸하고, 돌아오지 않을 마음에 속을 앓지 않으리라.”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에 나락이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초점이 흐릿한 귀비의 눈과 마주했다. 새까만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미쳐 버린 사내가 웃고 있었다. 그날. 불이 타올랐던 오두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서러움에 미쳐 버린, 배신에 상처 입은, 그리고 괴물이 되어 버린. 결코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 버린 마왕이 있었다.
나락의 끝, 더 이상 추락할 수도 없는 바닥의 바닥을 기는 지독한 음성이 입술 밖으로 고요히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너를 탐할 것이다. 네가 끔찍해하든 아니든 상관없어. 나는 네 몸을 취할 것이고, 행복을 기원하는 기만의 말을 입에 담고, 연모를 속삭이는 지독한 말을 하염없이 되뇔 것이다. 추악하고 뻔뻔한 짐승이 되어 너를 품에 안을 것이다. 너를 영원히 놓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증오해도 상관없어. 마음을 돌려받지 않아도 돼. 네 미움이 내 삶의 이유가 되고, 네 증오가 내 기쁨이 될 테니. 그렇게 하거라. 차라리 날 살게 하라. 남은 것 하나 없이 황폐한 마음이지. 나는 그래, 그 여자를 베어 버리고 너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돼 버렸지.”
거친 입술이 하얀 목에 닿았다.
“추악한 괴물이 되어 너를 갈구하리라.”
내게 남은 것은 너밖에 없으니까.
들끓는 웃음을 흘렸다.
“그리하여 너는 괴물이 된 나와 함께할 것이다.”
꽃 같은 입술을 물어뜯고 거칠게 입술을 누볐다. 인형처럼 흔들리는 귀비를 품에 안고 원선견은 거칠고 뜨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귀비, 나의 귀비.
그리 말을 되뇌며 원선견은 치렁한 귀비의 옷을 벗기고 새하얀 나신을 탐했다.
뜨거운 열기가 원앙궁을 채웠다.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그리고 여인의 것인지 사내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높은 교성이 궁 구석구석에 울렸다.
“으, 흐응!”
새하얀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고.
“평아, 나의, 내…….”
매끄러운 다리를 잡아당기며.
“나를 영광의 자리에 올렸느냐.”
귓가를 스치며 숨결과 함께 하는 말.
“너는 나를 신의로 따랐느냐? 나를 애정 했느냐?”
목을 지분거리는 입술.
“나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아아! 높게 치솟는 교성, 근육이 도드라진 가슴팍을 타고 흐르는 땀.
“연선과 함께 죽으려 했던 것처럼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려 했던 때가 있었느냐? 불타는 오두막에 오붓하게 나란히 앉아 손을 붙잡았던 것처럼, 그때처럼 죽음을 불사하고 나를 향해 마음을 불태운 적이 있었느냐?”
부득 이를 간 원선견이 불타는 눈으로 제 아래 황홀경에 몸을 비트는 귀비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고연선이 뺏어 간 너의 애정이, 나를 향한 마음이 그리 깊었느냐. 연선을 향했던 것처럼. 그리 깊었느냐.”
배 속을 누비는 거대한 남근. 귀비는 그저 허리를 휘며 눈꼬리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좋아요, 흐응, 좋아…….”
거미줄에 벌레를 얽는 것처럼 귀비가 새하얀 팔로 원선견의 목을 휘감았다.
“좋, 좋, 하으, 흥, 좋, 아, 좆, 자지, 흐음.”
귀를 교란하는, 마음을 녹이는 목소리. 원선견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귀비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틀어쥘 뿐이다.
“하으응!”
철퍽철퍽!
검붉은 남근이, 봉긋한 살 둔덕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침상 위에 뱀처럼 얽힌 두 사람의 나신이 적나라한 살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친 사내의 몸이 새하얀 몸을 누르고 있었다. 위희평은 아아, 숨이 넘어갈 듯 높게 찌르는 목소리를 내며 남근에 꿰뚫리는 둔부를 들썩였다.
“더, 더 먹여 줘요! 당신…… 아아! 좋, 좋아!”
허어억!
숨과 함께 내장을 들쑤시는 불기둥. 귀비는 흐느끼듯 숨을 헐떡이며 원선견의 단단한 가슴에 뺨을 비볐다. 좋아, 좋아요, 아아, 더, 더 줘.
울음을 흘리며 하는 말.
“씨를 채워 주세요. 배 속에 씨를 주세요.”
원선견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산발이 된 머리를 한 채 고양이처럼 길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는 귀비를 노려보았다.
귀비가 팔을 벌려 원선견의 몸에 엉켜들었다.
울먹이며 하는 말.
가슴에 스치는 숨결과 함께 내는 말.
“평아의 배를 부르게 해 주세요. 잉태하게 해 주세요.”
원선견은 긴 침묵 끝에 입술 끝을 비틀고야 말았다.
“하하.”
귀비는 울며 원선견의 가슴에 눈물 젖은 뺨을 비빌 뿐이다. 애타게, 간절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붉은색 입술 사이에 흘렀다.
숨결이 가슴에 스쳤다.
“아이를…… 아이…….”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목소리.
원선견은 침묵 끝에, 제 몸에 엉킨 귀비의 몸을 꽉 붙잡아 침상 위에 거칠게 눕혔다.
“그래, 아이를 가지자.”
광소와 함께 원선견이 꽃처럼 붉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크하하! 높게 원앙궁을 울리는 목소리에 이어 발정기의 암고양이가 내는 것 같은, 길고 처절히 우짖는 음성이 흘렀다.
“하으으응!”
젖은 살이 치대는 음란한 소리가 화려하고 웅장한 원앙궁의 침전을 맴돌았다.
귀비! 평아!
나의 소유!
…….
웅웅 울리는 메아리 끝에, 희미하게 문틈 새로 흘러나온 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기나긴 서글픈 울음이었다.
원앙궁의 밤은 또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리고 또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낮, 원선견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귀비의 머리를 빗겼다.
“오늘 조찬은 우유를 탄 제비집을 들라 하였소.”
새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달콤한 웃음을 흘렸다.
“그대가 기뻐했으면 좋겠구려.”
황제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원앙궁의 고 귀비는 인형처럼 눈을 깜빡였다. 감정이란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마음도 없는 사람처럼. 그 어느 따뜻한 인간의 정이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 *
한 해의 끝이었다.
그리고 겨울이었다.
어화원의 정자에 앉아 얼음이 언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비의 시선은 그윽했고 수면에 낀 얼음 아래를 탐구하듯이 집요했다.
“추운데 어이 나왔소?”
원선견이 원앙궁에 없던 귀비를 찾던 중, 귀비의 추운 옷차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두꺼운 갖옷을 위에 덮어 주며 원선견이 세심한 손길로 옷을 여몄다.
“그대는 탕약 때문에 몸이 약해져 특별히 조심해야 하오.”
인형 같은 눈으로 얼음이 낀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주위에 황제가 없는 것처럼. 귀비는 쓸쓸한 눈으로, 혹은 묘한 눈으로 그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선견은 귀비의 옆에 앉아 발갛게 달아오른 손을 꼭 붙잡았다. 호호 입김을 불고 그 딱딱하게 굳은 손을 품에 넣어 주물러 주었다. 항상 서늘함이 감돌던 원선견의 얼굴은 어느 순간부터 부드럽게 풀려 걱정을 담고 있었다.
위선자.
귀비는 그 얼굴을 보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괴물.
인생을 파탄 낸 괴물. 복수랍시고 영혼마저 씹어 삼켜 버린 짐승.
“몸을 특별히 조심하시오.”
제 손을 주무르는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원선견은 살짝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대는 내게 남은 유일하게 소중한 것이오.”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
“귀비 나는…….”
그리고 말이 끊겼다.
원선견은 얼어붙은 손을 주무르던 중에 넋 나간 얼굴을 하고야 말았다.
“지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귀비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웃은 건가?”
귀비가 웃고 있었다.
감정 따위는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얼굴, 옥으로 빚은 듯 하늘이 내린 듯, 그저 아름다울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 기이한 요기가 감도는 그 얼굴 위에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어여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평아!”
원선견은 마침내 환한 미소를 짓고야 말았다. 손을 놓고 그의 귀비를 격하게 끌어안아 품에 안은 작은 몸을 움켜쥐었다.
“평아, 평아!”
으스러트릴 듯 그 몸을 껴안고 원선견이 눈물을 흘렸다.
“평아. 내가 네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다.”
귀비가 속으로 생각했다.
‘거짓말.’
원선견이 그 작은 몸을 품에 묻고 목덜미에 코를 댔다. 깊게 깊게 그 몸에 흐르는 정향을 들이마시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곧 어화원의 정자에 울리는 짐승의 처절한 우짖는 소리.
“평아! 내가 네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다!”
귀비는 속으로, 항상 황제는 그 입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을 품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는 오직 눈을 깜빡이고 저를 껴안는 황제의 품에 몸을 기댈 뿐이었다.
한겨울 오후의 일이었다.
살얼음이 어는 계절의 일이었다.
그해 겨울.
귀비와 황제는 도란하게 화로에 둘러앉아 밤을 까먹는 일이 잦았다. 한 이불을 덮으며, 원선견의 품에 안겨 추위를 잊는 일이 잦았다. 아름다운 귀비와 잘생긴 황제가 어우러져 손을 오붓하게 잡고 어화원을 걷는 일이 잦았다.
궁인들은 그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선남선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무언가 껄끄러움을 느꼈으나, 무언가 섬뜩함을 느끼곤 했으나 웃전의 일에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해 그저 입술을 꼭 다물 뿐이었다.
평온한 나날이 흐르고 있었다.
* * *
어느 날 원선견이 물었다.
“너는 나를 증오하느냐?”
귀비는 답하지 않았다.
“나를 증오하거라.”
원선견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거다.”
원선견은 그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부드러운 발을 정성스레 씻기며 원선견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한참의 정적 끝에 입술을 열었다.
“아니면, 아니면…….”
제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원선견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냥 미쳐서, 미쳐서…… 그냥 너 자신을 속이는 것은 어떠냐?”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찰박찰박.
대야에 물이 흐르는 소리다. 복숭앗빛으로 물든, 아름답고 하얀 발을 소중하게 매만지고 있다. 원선견은 그 부드러운 발을 손으로 주무르고 발목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침묵 끝에 원선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를 그냥 사랑한다고 믿어라.”
끝이 떨리는 목소리였다. 굳은살의 흔적이 남은 발뒤꿈치를 수건으로 닦으며 원선견이 낮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된 거라고. 내가 너를 사랑했고, 그리고 과거는 기만이었고 너의 망상이라고. 태자도, 고연선도, 과거의 영광도 그저 상상력이 풍부한 원앙궁 고 귀비의 망상일 뿐이라.”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원선견이 부드러운 발끝에 입술을 맞췄다. 길디길고 경건한 입맞춤 끝. 원선견은 길고 아득한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고야 만다.
“그리하여 사실 현실은 내 품에 안긴 귀비의 삶이라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어떠냐.”
평아.
그 낮은 목소리에 수만 가지의 감상이 있었다.
귀비는 끝끝내 답을 하지 않았으나 원선견은 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지독한 마음에 회답을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배웠으므로.
그저 그는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쓸모없는 후궁의 건물을 헐고 평지에 대나무 숲을 세웠다. 네가 좋아하는 학을 풀 것이다. 그곳에 정자를 세울까? 여름이면 시원하게 피서를 할까?”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평아.”
역겨운 목소리. 그러나 귀비는 속에 담긴 말을 곧이곧대로 입 밖에 내뱉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귀비가 얌전히 원선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의 평아.”
원선견은 귀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귀비의 얼굴이 인형 같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고장 난 인형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가끔씩 원선견은 그 얼굴에 평온함이 서려 있다는 착각을 품었다.
그것은 실로 뻔뻔한 착각이었다.
‘그래 너는 완전히 망가지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지.’
원선견이 입술을 달싹였다.
“정무가 늦게 끝났어. 미안하다.”
따뜻한 뺨을 감싸 쥐고 다정한 목소리로 흘리길.
“항상 네 곁에 있어 줘야 하는데. 네게도 나 하나뿐인데. 내게 너 하나뿐이듯이 네게 남은 것은 나 하나뿐인데. 내가 이리 무정하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귀비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으며 하는 말.
“날 사랑하라, 귀비.”
기만이 가득한 나날.
그리고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화가 가득한 나날.
귀비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손을 원선견의 어깨에 올렸다.
느릿하게 단단한 어깨를 토닥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통뿐인 현실. 기만뿐인 망상.’
원선견이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 어느 것이 더 행복할까?’
그리고 귀비는 분명 그 질문에 대답했다.
“소군.”
꽃잎 같은 입술을 달싹이며, 색색 잠을 자는 듯한 깨끗한 숨을 내쉬며.
“석찬은 어화원에서 먹어요. 대나무 숲을 보면서…….”
그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놀란 얼굴을 하던 원선견이 곧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귀비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 석찬은 그곳에서 먹자꾸나. 그곳의 경관이 제법 아름답다.”
그리하여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서막이 오름과 동시에 종막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 * *
푸우욱!
그것은 원선견의 단단한 가슴팍을 파고든 단검이 알린 것이다.
“부황!”
짧은 극의 끝이었다.
“스승을, 스승을…….”
앳된 청년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아, 아아.
원선견은 갈비뼈 사이를 파고든 단검을 더듬으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분노가 죽죽 흐르는 눈, 증오와 화와 원망과 분노가 섞여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원선화가 편전에 쩌렁하게 울리는 노성을 질렀다.
“금철은 당장 외부인의 출입을 금해라!”
알현을 청하던 태자의 기습. 황제가 몸을 돌림과 동시에 옷깃을 잡아채 가슴팍을 열어 갈비뼈 사이 급소를 찌르는 매서운 손길. 억! 짧은 비명에 답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전에는 궁인이 없었다. 답변하는 이 없이, 그저 깜깜한 밤 등불에 흔들리는 그림자만이 보일 뿐이었다.
수백의 무장한 군인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우드득.
가슴에 꽂힌 단검을 비틀고 원선화는 부황의 가슴팍에 흐르는 시뻘건 피를 보며 으득 이를 갈았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피가 식어 내리고 있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갔다. 근육에 힘이 빠지고 단단했던 사내의 몸에 서서히 기력이 빠지고 있다. 물먹은 종이가 되어 깊게, 깊게 아래로 침잠하고 있다.
안 돼, 안…….
원선견은 가슴팍을 적신 축축한 피를 더듬고 얼굴을 일그러트리고야 만다.
“안…….”
죽음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았다.
“안 돼…….”
그리고 죽음보다 더 먼저 그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은 위희평의 새까만 눈이었다.
머릿속에 스친 것은 그저 한마디 말.
‘내가 없이 평아가 어떻게 살지?’
홀로 살 수 없는 종이 인형.
껍데기만 남은, 자신이 망친 사내의 모습.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을 하곤,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하곤, 원선견이 입술을 열어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안 돼……. 평, 평…… 우윽!”
우드득!
처절한 목소리에 원선화는 단검을 비트는 것으로 답했다. 뼈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흐르고. 원선견은 허억 거친 숨을 내뱉고 몸을 펄떡이고야 만다.
피와도 같은 눈물을 흘리며 원선화가 이를 악물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나를 스승과 상간케 했습니까?!”
숨결이 끊어지고 있었다. 원선견은 입술을 더듬어 중얼거렸다.
“그, 그것은…….”
원선화가 울고 있었다. 그가 망가트린, 그가 어그러지게 만든 고연선의 아들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습니까! 제가 알지 못한 진실이 무엇입니까!”
우욱!
칼날이 비틀렸다.
원선견은 입술 사이 왈칵 피를 쏟아 내고야 말았다. 창백해진 손이 벌벌 떨리다 용상의 팔걸이에 떨어져 내렸다.
무언가를 예감한 사내의 불안감이다. 원선화는 아비라 믿고 있던 자의 가슴팍에 쑤셔 넣은 칼날을 비틀며 소리쳤다.
“무엇입니까! 대체 무엇 때문에 부황은, 부황은 그리하셨습니까! 진실이 무엇입니까! 제가 모르는 게 뭐냔 말입니다!!”
입니다!
입니다!
니다!
……니다.
쩌렁하게 편전을 울리는 메아리.
원선견은 마침내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영원토록 너는 모르리라.”
원선견은 풀리는 혀를 간신히 움직여 간곡한 목소리로 마지막이 될 말을 내뱉었다.
“그, 그 아이는…… 풀, 풀어 줘.”
턱도 없는 소리. 원선화는 조소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원선견을 노려보았다.
“아끼는 귀비를 무덤에 끌고 갈 생각일랑 버리시오.”
쉬어 버린 목소리에 피가 묻어 나왔다.
“쉬게 해 줘…….”
원선화가 코웃음을 치며 단검을 뽑았다. 바닥을 향해 늘어진 단검에 시뻘건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내가 알아서 그를 행복하게 해 줄 테니. 신경 끄시오.”
“너는, 너는…… 패륜을.”
말을 하고 원선견은 말을 삼켰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다. 그 말은 하면 안 된다.
원선화는 ‘하!’ 짧고 높게 웃으며 원선견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저지른 죄는 내가 감당할 테니 부황은 신경을 끄시구려! 미련을 버리시오!”
패륜은 그것이 아니다.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쿨럭.
붉게 젖은 입술로 피를 흘리며 원선견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너는…… 너는…….”
그리고 말을 가로챈 것은 늙은 상궁이었다.
“뿌리 깊은 패륜아가 여기에 있구나!”
원선견의 눈이 크게 떠진 순간이었다.
“지가 범한 것이 누구인 줄도 모르고 날뛰는 천박한 망아지 같으니라고!”
모후를 따르고 저를 키워 준 보모가 우짖고 있었다. 입술에 붉은 피를 흘리며 원선견이 바람 새는 목소리로 다급히 외쳤다.
“그, 그만!”
그러나 늙은 여인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눈을 부릅뜬 채 피 웅덩이를 신발로 잘박잘박 밟으며 편전으로 향한다.
허억, 헉…….
원선견은 급박하게 숨을 몰아쉬며 척추가 도드라지게 몸을 웅크리고 입술을 잘게 떤다. 시퍼런 입술이 죽죽 갈라져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창백한 이마에는 사람의 온기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소리냐?”
노상궁의 말에 토끼 눈을 뜬 원선화.
원선견이 처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돼!!”
* * *
“봄이구려.”
“예.”
“오늘은 어화원에 앉아 석찬을 해도 될 것 같소.”
“그렇게 하십시오.”
“그대가 원하면 하는 것이지.”
“그럼 놓아주시겠습니까?”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원선견은 힘없이 웃었다. 귀비는 그의 비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저 사람은 그날 그때부터 늙지도 않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귀비는 아침때 동경에 비추어진 제 모습을 떠올리고 웃었다. 우리는 그때 이후로 늙지 않은 건가.
아름다운 귀공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귀비는 생각했다.
“놓아줄 수 없어.”
어쩌면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는 것이라고.
“놓아줄 수 없지…….”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살지도, 현재를 살아가지도 못하고 있노라.
“정말 놓아줄 수 없다, 평아.”
일그러진 원선견의 얼굴을 바라보며 위희평은 속으로 언젠가, 언젠가는 시간이 흐를 수 있겠지. 그런 참담한 자기기만의 마음을 품고 웃었다.
‘나는 정말로 나약하구나.’
그리고 원선견은 위희평의 뺨을 쓸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 웃거라.”
나의 벗.
나의 주군.
나의 원수.
위희평은 원선견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석찬 때 어화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원선견이 놀란 눈으로 위희평을 바라보았다. 위희평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허리띠에 달린 백옥 노리개를 손에 쥔 채 중얼거렸다.
“계절이 바뀌고 몸을 보신해야 하니 봉황탕을 먹어요.”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제 비겁하고 가증스러운 마음을 알기에 위희평은 원선견이 선물한, 술이 달린 취백산의 백옥만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원선견은 환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내 빨리 오리라!”
그리고 위희평은 식은 봉황탕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휘이잉!
어화원에 밤바람이 불고 초봄의 쌀쌀함이 어둠과 함께 내려앉았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위희평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친 순간이었다. 원선견의 집착은 널리 아는 지독한 것이다. 한 시진이라도 얼굴을 보지 못하면 안절부절 불안하게 여겨 귀비 귀비 앵무새처럼 말을 하던 사내 아닌가. 고연선이 살아 있을 때도 정무를 빠릿빠릿하게 처리하고 원앙궁으로 튀어 나가던 사내는 지금 위희평에게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집착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늦게까지 오지 않은 적이 있던가?
“…….”
하물며 위희평이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하자던 날이다. 위희평은 새까만 눈으로 빤하게 식은 석찬을 바라보았다. 궁인이 서둘러 위희평의 얇은 옷 위에 여우 갖옷을 덮어 주었다.
“귀비마마.”
오지 않는 황제에 안절부절못하던 궁인이다. 귀하신 웃전의 마음이 상했을까 봐 조마조마하던 궁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하구나.”
토옥.
찻잔에 떨어진 물방울에 위희평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앗, 봄비가 지금.”
토옥 톡 하나둘 머리를 때리기 시작하는 작은 물방울에 위희평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시커멓게 낀 먹구름을 바라보며 위희평은 멍한 얼굴을 했다.
달조차 보이지 않는 밤이구나.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날이구나.
그 순간 마음에 예견과도 같은 불길함이 스쳤다.
위희평이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그리고 어화원의 입구에서 미친 듯이 뛰어오는 사내 하나.
으아아아!
처절하디처절한 울음, 길디긴 짐승의 울음이 위희평의 마음속 불안감을 증식시키고 있었다. 먹구름을 바라보던 위희평이 고개를 돌리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위희평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누구…… 전, 전하?!”
귀비가 해를 입을까 황급히 귀비의 앞에 나서던 궁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산발이 된 채, 피 흐르는 맨발로. 원선화가 흉신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위희평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귀, 귀비는 황제의 여인, 허억!”
만류에도 원선화는 종이 인형을 뿌리치듯 그들을 밀치고 위희평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원선화의 소매를 잡아채려던 궁인이 피에 흠뻑 젖은 태자의 몸을 보고 높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피, 피?!”
쩌렁한 목소리가 어화원을 울렸다.
“당신이!”
불길함을 알아챈 위희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원선화는 눈물과 피로 흠뻑 젖은 얼굴을 하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당신이! 어머니와 사통했습니까?”
쿠웅.
무너져 내려가는 가슴.
무너져 내리는 세계.
위희평은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원선화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당신이 정녕 제 어머니와 사통했냔 말입니다?!”
아, 아아아!
귀신의 비명이 귓가에 감돌고 있었다. 숨이 막혀 위희평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누군가 목을 조르고 있다. 귀신이 숨통을 막고 있다.
핏줄이 터진 눈을 부릅뜬 채 원선화가 위희평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튀어나온 금기의 말.
피를 토하듯 폐부에서 솟구친 말이 위희평의 귓가에 쩌렁하게 울렸다.
“당신이, 당신이!”
으아아아아!
태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귓가에 우웅웅 무언가 진동이 울리고 있다. 위희평이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아, 아니.”
어린 청년이 울먹이며 하는 말.
“제가 원씨가 아니라 위씨입니까?”
위희평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 아닙…….”
챙캉!
손에 든 단도를 떨군 연선의 아들은 어린아이처럼, 그 옛날 사랑했던 선화가 되어 울었다.
“제가 위씨입니까? 태부, 태, 태부…… 당신이…… 제가 범, 범, 범…….”
말을 할 수 없어 더듬거리고 있다. 태자는 끄윽 끅 숨을 몰아쉬며 새하얀 얼굴로 위희평을 바라본다.
“범, 범한 사람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위희평은 처절한 얼굴을 하곤 태자의 뺨을 부여잡았다. 엉엉 울며 고개를 숙이는 원선화의 모습이 마치 일곱 살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그 어린 나이의 선화를 기억하고 있다. 아장거렸던 귀여운 그 선화를 기억하고 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원선화를 위해 살아왔다. 위희평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누가 그리 말합니까? 태자는 대위 황실의 적통입니다!”
“제가, 제가…….”
꺽꺽 가파른 숨을 내쉬며 얼굴을 창백히 물들고 있다. 위희평이 고개를 도리 저으며 울음을 흘렸다. 태자의 뺨이 움푹 파이게, 그 뺨을 감싸 쥐며 위희평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요, 봐요! 제가 연선 누이를 닮았습니까? 그래서 오해하신 겁니까?”
위희평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녜요. 저는, 저는 그저 사촌과 조금 닮은 것뿐이랍니다.”
위희평이 태자를 처절하게 다독이고 있었다. 그 뺨과 얼굴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마주 대는 가까운 거리에서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것 보세요. 제 어디에 태자를 닮은 구석이 있나요? 귀는 황제를 닮았고 발간 뺨은 연선을 닮았습니다.
“흐, 흐윽…… 흑.”
그러나 선화는 그저 공포에 질려 울 뿐이었다. 그 순간 위희평의 얼굴에 가늠할 수 없는 막대한 공포가 스쳤다.
무(無).
암연의 도래다.
“나는, 나는.”
피가 싸늘하게 식어 내리고 머릿속에 실이 헝클어져 있었다.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위희평은 기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실로 묘한 얼굴을 한 채로.
그리고…….
하, 하하하!
어화원을 울리는 높은 웃음이 있었다. 그것은 궁에 쩌렁하게 울리는 지독히 높은 광소다. 위희평은 원선화를 품에 안은 채 그 처절한 광소를 흘리며 입술 끝을 비틀었다.
“태자! 제가 어찌 태자의 아비입니까.”
위희평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귀비의 옷을 벗었다.
“아, 아버, 흐윽?!”
손목을 잡아당긴 위희평이 제 살 오른 가슴 위에 태자의 손을 올렸다.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그 눈에 광기를 죽죽 감고 위희평이 원선화의 거칠고 커다란 손에 부드러운 가슴을 비볐다.
“태자, 태자. 전 음탕한 스승입니다. 태자의 음탕한 스승입니다.”
달콤한 숨결이 보송한 뺨을 스쳤다. 원선화가 숨을 멈추고 제 코앞에 들이밀어진 위희평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다.
“어, 어어.”
귀신을 본 듯 새파랗게 질려 있는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위희평이 눈을 휘었다. 눈물이 새하얀 뺨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이리 음탕할 수가 없잖습니까. 태자가 위씨라면 제가 태자의 남근을 받고 당당히 교성을 낼 수 있습니까? 어찌 부자라면 그렇게 속궁합이 맞을 수 있습니까?”
위희평이 원선화의 뺨을 연신 쓸며 쉬쉬 달래듯이 말을 이었다.
“태자의 남근을 잘 조였잖습니까? 제 속살이 맛있으셨습니까?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금수도 아닌데. 태자와 저는 하늘이 내어 주길 잘 맞는 몸입니다. 태자의 남근에 평아가 자지러지게 울었지요.”
“태부, 태, 태부.”
“그리할 수 없어요. 아, 아아. 금, 금수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어요.”
“흐, 흐윽. 저, 저는.”
“자아, 여기 만, 만져 보세요. 그, 그럴 수가 없어요.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위희평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원선화의 손에 가슴을 들이밀었다. 거친 숨이 섞이고 있었다. 위희평이 눈물범벅 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태자의 좆을 뒤로 받고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태자가 위씨라면 제가 그럽니까. 음란한 탕부라 그런 겁니다. 사내에 미친, 엉덩이 싼 탕부라 좋아한 거예요.”
위희평이 태자의 뺨을 잡고 입술을 겹쳤다. 숨이 멈추는 순간. 위희평은 말캉한 입술을 헤치고 원선화의 아늑한 입 안을 혀로 누비며 생각했다.
쇠 맛이 난다고.
눈가가 일그러졌다.
농밀한 입맞춤 끝에 위희평은 입술을 물렀다. 원선화는 동시에 위희평의 허리를 단단한 팔로 끌어안았다.
“태부, 아, 아, 태부!”
원선화가 위희평의 허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사내는 그저 어이할 바를 몰라 위희평에게 매달려 폭풍과도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슴팍이 축축이 젖고 있었다. 흐트러진 옷 사이 우유를 부은 듯한 부드러운 가슴이 언뜻 보였다.
“아, 아, 저, 저는!”
휘청거리고 어화원의 풀밭에 넘어져 위희평은 먹구름이 가득한 초봄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허어엉! 서러운 울음이 스치고 있었다. 눈물과도 같은 비가 하나둘씩 떨어져 몸을 적시고 있다. 동시에 비 같은 눈물이 가슴팍을 적시고 있었다.
하하!
위희평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원선화의 숱 많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위희평이 그 뒤통수를 가슴에 누르고야 만다.
“빨아 주세요. 빨, 빨아 주세요. 흐응. 전, 전하. 전하의 첩이 되겠습니다.”
“태, 태부. 태부.”
“태자, 태자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황제의 후궁이 되겠습니다. 신첩을 가져 주세…… 아아아!”
흐트러진 옷 사이 보이는 봉긋한 가슴. 원선화가 하얀 이를 세워 붉은 유륜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위희평은 목을 뒤로 꺾고 ‘아아!’ 높은 교성을 흘리고야 만다. 백비단 같은 부드러운 가슴에 주르륵 붉은 피가 타고 내렸다.
태자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날름날름 짐승처럼 그 피를 빨아먹었다.
“스승님, 스, 스승님이지요?”
풍성한 머리카락을 쓸며 위희평이 울었다.
“예에! 저, 저는 태자의 스승입니다.”
태자가 그 말에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적갈색 유두를 잘근잘근 씹고 죽죽 빨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겁에 질려 어미의 젖을 빠는 어린아이같이 귀비에게 찰싹 달라붙어 통통한 젖꼭지를 쪽쪽 애타게 빨고 있었다.
아아아!
이윽고 교성인지 비명인지 모르는 높고 짧은 소리가 어화원을 울렸다.
태자가 성년이 된 지 일 년째 되던 날의 일이었으며.
위태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원앙궁 고 귀비가 죽은 날이었으며.
동시에 훗날 위 숙비로 불리는 이가 탄생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