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효애기자(梟愛其子)
당신이 나를 만들었지.
당신의 죄가 이어져 피비린내 나는 짐승의 세계를 살고 있다.
“…왜.”
이 모든 게 당신의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근원에 당신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당신을 향해 뛰는 이 심장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건 당신의 죄로 인한 인과니까.
“왜….”
……그런데 어째서?
“내가, 내가 어떻……”
음성은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귀는 먹먹하고, 시야는 암담하게 흐려만 진다. 믿기 힘든 현실을 응시하는 이의 얼굴에 충격과 공포가 물들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넌 책임을 지려 하지 않지?
이제야 미래를 약속받았는데……. 우리가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할 수 있는데…!
곤룡포 위에 툭 떨어진 힘없는 손을 부릅뜬 눈으로 응시하던 사내의 얼굴이 뒤틀리고.
“왜…!”
그리고 마침내 절망에 일그러진 사내의 입술 밖으로 궁궐 안을 쩌렁하게 울리는 처절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왜, 왜, 왜!!”
목청을 찢는 절규였다.
사내의 품 안에 힘없는 몸이 늘어져 있었다. 소중한 연인을 부둥켜안으며 원선화는 우짖는 짐승처럼 절규할 뿐이었다.
“왜애애애애!!”
그의 마음을 더욱 나락에 빠트린 것은, 품 안에 늘어진 연인의 얼굴이 지독히도 평온하다는 사실이었다.
언제고 본 적이 없던 얼굴.
해방을 알리는 그 얼굴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혼이 있었다.
* * *
꿈을 꾸었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무언가를 속삭거리는 꿈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죄인이 아니었다. 학살은 없었고, 고연선과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원선견은 그의 주군이자 친애하는 벗이었고, 고연선은 남편과 자식을 얻은 것으로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서서히 평화를 되찾고 있었다.
그 세상에서 위희평은, 그리고 위희평이었다.
원앙궁 고 귀비도, 천작궁 위 미인도, 위 소의도 아닌,
그냥 위희평.
위희평의 눈꼬리에서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였다.
“소평.”
환상에서 깨어나고, 위희평이 웃음을 짓는다.
절망이 도래한 순간이었다.
* * *
위희평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 * *
“소평?”
불안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신이 드느냐?”
무어라 더 말이 이어졌으나 위희평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시선이 희미하게 흔들거린다. 위희평은 외부의 자격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소평, 소평.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황제의 말을 무시한 채 그는 그저 두 눈만을 뜬 상태 그대로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으니까.
“소평.”
그리하여 황제의 얼굴이 굳어질 때였다.
“흐….”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소평?”
황제의 얼굴이 굳어진 때였다.
위희평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살았어? 내가 살았다고?’
실로 끈질긴 목숨이 아닌가?
창백한 얼굴에 도래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진득한 절망이었다.
피식, 피식 잔웃음이 흐른다.
죽음은 허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이불을 쥔 손이 새하얗게 변모한 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영원한 휴식을 바라며 안도하던 사내가 눈을 뜨고 마주한 현실은…… 실로 잔악한 것이었다.
“흐, 흐흐.”
그리하여 위희평은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황제가 흠칫하고 궁인의 얼굴에 불안이 스치게 한 그 미소는 시간이 갈수록 진해지고 음산해져 갔다. 침상 위에서 구부정하게 몸을 웅크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광인의 것과 같다. 그에 황제는 얼굴을 굳히며 두 눈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흐, 흐하하.”
“소평!”
“흐하하하하, 하하하!”
마침내 그가 몸을 고꾸라트리며 웃은 순간 황제는 불안에 찬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정색하고야 말았다.
“흐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소평, 소….”
병석에 야윈 몸을 뒤틀어가며 처절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사내를 눈에 담고 있었다. 황제의 얼굴이 서서히 뒤틀렸으나 그를 모른 채,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위희평은 광소를 터뜨릴 뿐이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위 소의.”
낮게 흐른 목소리다.
그 경고의 뜻이 역력한 말이 들린 순간, 방 안에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제 그만해….”
“뭐?”
황제의 눈이 흔들린 순간, 위희평이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라고, 이 소름 끼치는 새끼야!”
짜악 소리와 함께 뺨이 돌아가고, 위희평의 입가에 날카롭고 예민한 조소가 걸린다.
아슬한 정적이 흘렀다.
“……뭐 하는 짓이지.”
침묵 끝에 돌아간 얼굴을 다시 돌리며 황제가 건조한 눈으로 위희평을 내려다본다. 차가운 눈에는 불꽃이 서려 있었다.
살기가 일렁거리는 사내의 얼굴을 마주한 위희평이 이불을 걷어차며 짓씹는 말을 내뱉는다.
“벌레 같은 놈.”
“…벌레?”
굵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너, 너 때문이야.”
분노에 흰자위가 도드라지는 황제의 눈을 마주한 위희평의 숨이 가빠져 갔다. 그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까뒤집고 말을 토해 내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어 이 더러운, 더러운 벌레 같은 놈!”
그 말을 내뱉곤 위희평은 황제의 어깨를 밀치며 그의 얼굴을 향해 퉤 침을 뱉었다. 그러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상 아래로 발을 디디려다가, 황제의 손에 손목이 부여잡혀 몸을 휘청거리고야 말았다.
황제의 무릎을 향해 무너지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위희평이 황제를 향해 악다구니를 이어간다.
“이 짐승 같은 놈! 얼마나 더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려 해!”
황제의 손아귀에 부여잡힌 손목을 빼내기 위해 그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난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
“네가 다 알고 있다며! 죽을 마음도 들지 않는다며!”
눈을 까뒤집고 분노 어린 말을 잇던 위희평이 묵묵히 말을 듣는 황제의 몸을 밀치며 빈정거린다.
“그럼 됐어. 난 할 만큼 했어.”
그 순간 황제의 광대 위로 타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해! 이 애새끼야. 이 연인 놀음도……”
그리고였다.
“뭐.”
위희평의 눈이 크게 떠지고, 발악을 하던 그의 몸이 자리에서 우뚝 선 것은.
“음.”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무언가를 본 것처럼 위희평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억 소리를 내지 못해 버석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하던 위희평이 시간이 흘러 간신히 말라비틀어진 목소리나마 말을 내뱉는다.
“뭐…… 하는 거야.”
시선이 닿는 곳에, 광대뼈에 달라붙은 침을 손가락으로 걷어 입술에 밀어 넣는 황제가 있었다.
망부석처럼 우뚝 굳은 위희평의 손목을 억센 손으로 부여잡으며, 황제는 타액이 묻은 손가락을 빨며 입술 끝을 비틀어 능글맞은 웃음을 흘린다.
어쩐지 가벼워 보이는, 해방감이 서린 얼굴이었다, 그것은.
평소 그 얼굴에 잔재했던 초조함은 사라지고 사내의 얼굴에는 진실로 즐거운 미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뭐, 뭐 하는 거냐고…!”
그리고 흘러나온 선율과도 같은 목소리.
“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입술 밖으로 느릿하게 손가락을 빼어내곤 내뱉은 말이었다.
“간단한 이야기인데. 그걸 이해 못 해?”
부드러운 음성을 끝으로 황제는 손을 뻗어 위희평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곤 그를 침상에 내팽개쳤다.
“악!”
이어진 건, 굳이 말을 해야 하는가?
“아, 아악! 이거 놔!”
“말을 해도, 해도, 해도 들어먹지를 않지.”
“이거, 이거 놓으라고!”
“짐도 이렇기 싫다. 짐 또한 이렇게 하기 싫어. 후우. 이것도 힘이 드는 일이야.”
그러곤 황제는 위희평의 머리채를 부여잡아 흔들곤 손을 들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퍼억 소리와 함께 피가 흩뿌려진다. 황제의 얼굴엔 피로함이 가득했다.
“말 안 듣는 첩년을 다스리는 일로 이렇게 심력을 쓸 줄은 몰랐지.”
그리고 이어진 폭력이었다.
위희평이 울부짖었다.
“날 그렇게 부르지 마! 악! 원선화! 악!! 아악! 이거 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얼굴에 주먹세례를 맞은 위희평은 다리가 양옆으로 억지로 벌어지져 흐느낌을 흘렸다. 황제는 그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그의 이마를 침상에 쾅쾅 박았고, 그에 위희평은 잠시간 정신을 잃고 축 몸을 늘어트려야만 했다.
위희평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퍽퍽, 소리를 들으며 물에 젖은 종이쪼가리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으어어어어! 으어어어!”
제 살 둔덕을 꿰뚫는 꼬챙이에 위희평이 울부짖는다. 하늘 높게 치솟아 양옆으로 벌려진 다리는 사내의 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고통은 쾌락이 되어 위희평의 하체를 잠식했고, 그 끔찍한 열기를 느끼고 위희평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절규해야만 했다.
“그만해애…!”
그러나 황제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비웃을 뿐이다.
“미친년.”
골반이 당길 만치 벌려진 다리를 억지로 닫으려 했으나, 위희평은 제 내장을 찔러대는 성기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려야만 했다.
검붉은 성기가 내장을 찔러댄다. 위희평은 제 뱃가죽이 불룩 튀어나왔다가 평평해지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고환이 잘려 나간 성기가 양물이 제 안에 꽉꽉 들어찰 때마다 묽은 정액을 뿜으며 덜렁거리는 게 보이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절규해야만 했다.
끔찍한 비명이 천작궁을 울렸으나, 황제는 신경 쓰지 않고 제 욕망을 휘둘렀다.
“이리했어야 했지. 더 이상 널 봐줄 필요가 없었어.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는데.”
“미친, 윽, 미친 새…!”
“완벽한 미래를 준비할 시간도 모자란데…… 왜 내가 등신같이 네년의 눈치를 보고 있었을까, 응?”
색열이 들떠 일그러진 얼굴.
“건방진 년!”
색욕인지, 분노인지 무를 강렬한 감정으로 핏줄이 두드러진 관자놀이.
위희평을 노려보는 핏발이 선 두 눈.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위희평이 섧게 울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낀다.
“하지, 하지 말라고…….”
긴 혀가 위희평의 뺨을 핥고 있었다.
“흐흐.”
황제의 웃음이 그의 귓전에 내려앉는다. 징그러운 듯 몸을 부르르 떨던 위희평이 처절한 목소리로 절규를 터뜨리고야 만다.
“그만……. 이제 그만해!”
절규는 이어졌다.
이제 충분하잖아!
충분히 고통받았잖아!
나는 할 만큼 했어….
그 처절한 말들.
그 끝에 위희평이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울부짖는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제발…!”
죽고 싶어!
이제 더 이상 살기 싫어!
고연선과의 약속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까지 내 안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어. 위희평은 이제 제가 그에게 정이 남아 있는지 확신조차 못 했다.
원선화를 위해 살아가자고 했던 마음마저 의심하고 있었다.
정녕 제가 그를 사랑해서 살아가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관성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던 건가.
하루하루 익숙해진 일상에, 폭력에 길들여져 수치에 익숙해진 건가.
“죽여 줘! 제발!”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냥, 그냥 이제 모든 게 회의감이 들었다. 그저 죽고 싶을 따름이었다.
“죽여 줘, 죽여 달라고…… 제발!”
그냥 모든 걸 끝내고 싶어…….
그게 위희평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황제에게 발악을 하며 소리친 가장 큰 이유였다. 마음의 고통과 한이 담긴, 그런 간절한 마음.
그러나 황제는 그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은 듯했다.
“지금 죽여 주고 있잖습니까? 제 창으로 스승님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잖습니까, 스승님? 응? 아니면 아버지라 해야 하나?”
“으아아악! 아아악!”
“언제고 짐의 아래서 소의는 죽을 테니. 소의는 보채지 말거라. 그리 짐의 물건에 꿰뚫려 죽고 싶으냐?”
“아, 아악!”
고통을 호소하며 발작하는 그의 항문을 육중한 성기로 가르며 황제는 능글맞은 웃음을 흘릴 뿐이었으니.
아니 그는 성욕을 풀기보다는, 마치 그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 미소를 마주한 위희평의 얼굴에 번져 나가는 굴욕, 절망, 배신감…….
그리고.
“네가, 네가 어떻게!”
황제의 얼굴에 희열이 스치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피가 실린 절규가 흐른다.
“흐흐.”
“아아악!”
퍽, 퍼억.
성기가 닳디 닳은 구멍을 가를 때마다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 근육을 뒤틀면서. 그러면서도 위희평은 악다구니를 멈추지 않고 이어 갔다.
“네가,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핏발이 선 눈에 증오가, 한이 서려 있다.
아악, 아아악!
진실로 분노를 참지 못해 사지를 뒤틀며, 사내는 강간을 당하는 내내 울부짖고 있었다.
그 피를 토해 내는 우짖음.
“내가 널 위해 어떤 지옥을 살아왔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이, 이…….”
처참한 울음, 처참한 분노.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
충혈된 눈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위희평의 절규가 피에 맺혀 흐를 무렵 황제의 입술 밖으로 웃음 섞인 말이 흘렀다.
“네가 날 만들었다.”
“이, 이익!”
땀에 젖은 뺨을 핥으며 사내는 차분한 두 눈을 빛내고 있다.
그 고요한 눈에 서린 웃음기.
“내가 배은망덕하다고?”
제 위에 자리한 사내를 본 위희평의 두 눈이 크게 떠지고야 만다. 마치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바라보듯. 실로 공포심에 물든 얼굴로 퍼드득 몸을 떨어대고, 또 그는 양물을 받는 다리를 움츠렸다.
목소리는 다정하게 이어져 내렸다.
“나는 네 거울인데, 그리 말할 수 있어?”
“너, 너…….”
입술은 귓전에서 달싹거리고.
“위 태부.”
“으으으윽.”
분노에 시뻘겋게 물든 사내의 얼굴 곳곳에 혀가 누빈다.
“그대를 사랑할 자는 나밖에 없는 걸 왜 모르십니까?”
달콤한 미소를 흘리며 사내가 추삽질을 이어간다. 질척하고 음습한 소리가 울리고, 위희평이 팔(八) 자로 활짝 연 다리를 푸들푸들 떨며 처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길.
“배, 배은망덕한…….”
절규는 흐느낌이 되어 흐를 뿐이었다.
“이 배은망덕한 것…….”
그의 흐느낌은 황제의 입술이 붉은 입술을 빨아들인 후에야 멈췄다.
짐승이 흘레붙는 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 * *
사흘 후, 천작궁의 문 앞.
“으어어어, 어어어!”
궁인들은 익숙하게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어 장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도 그녀들은 등 너머로 들려오는 비참한 절규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그만! 아아아악!”
“이 새끼야! 이, 이, 패륜아가, 억! 어억!”
“내가,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었는… 악!”
그리고 그들 중 한 여인, 유 상궁의 얼굴에 두려움이 물들고야 만다.
“흐으으, 흐.”
입술을 손으로 막고, 몸을 가늘게 떨던 와중이었다. 소리는 갈수록 비참해졌고, 유 상궁이 참기 버거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바닥에 몸을 무너트리고 서러운 울음을 흘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악! 으아악!”
도저히 버틸 수가 있겠는가?
살덩어리가 맞부딪치는 소리, 구타음, 음란하고 추잡한 소리가 한데 엮여 지옥에서 흘러나올 법한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사흘째 이어진 처참한 소리는, 공명심에 눈이 멀어 주인을 사지로 내몰던 젊은 상궁조차 죄책감에 떨게 만들고 있었다.
조회조차 나서지 않으며 황제는 천작궁에 머물었고, 그 시간 동안 유 상궁은 그간 그녀가 몰랐던 황제의 본성을 톡톡히 알 수 있었다.
‘미쳤어, 미쳤어!’
황제는 그냥 엽색가가 아니다.
그는 추악한 짐승이었고, 잔혹한 폭군이었고, 또, 또….
유 상궁의 입술 밖으로 비명이 흐를 때였다.
“우웁!”
“궁궐에서 장수하는 방법을 잊었는가?”
누군가의 거친 손이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 상궁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어전 태감이 있었다.
입술에서 손이 떼어지는 순간 유 상궁이 흐느끼며 속삭였다.
“이건…….”
어전 태감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짜악!
매서운 소리가 울리고, 여인의 뺨이 돌아간다.
이어진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유 상궁은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가늘게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궁궐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음습한 목소리에 화음을 맞추듯 이어지는 목소리.
“아! 아아악! 야아아!”
“거긴, 거긴 쑤시지 마…! 어흑!”
“네가, 네가 어떻게…… 네가 어떻게 감히!”
입술을 틀어막으며 여인이 끅끅 소리를 흘린다.
“미쳤, 미쳤어……”
잔인한 현실을 참지 못해 털썩 주저앉는 유 상궁을, 노련한 환관은 비정하다 못해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속으로 저 계집이 황궁에서 오래 살기는 글렀다 짐작하면서.
허망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는 여인의 등 뒤로 참혹한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흘러나온 비통한 흐느낌.
“난, 난 네 첩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네….”
천작궁에서 비명과 구타음이 가신 것은 그로부터 나흘이 더 지나서의 일이었다.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