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하늘이 내린 존재
그 존재의 기원은 상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기록은 주나라의 서왕이 태산을 오른 것이다. 서왕이 산등성이에서 겁에 질려 떠는 지극히 아름다운 용모의 날개 달린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궁으로 데려오니, 그것의 이름을 천인이라 부르며 어여뻐 했다. 천인이 주나라 왕궁에 머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궁 안에는 향기가 가득 찼고, 사람들은 그 향기를 맡고 모두 천인에게 홀리고야 말았다.
기록에 따르면 천인은 불로불사하고, 서왕이 늙을 때까지 아름다운 용모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서왕은 천인을 지극히 사랑하여 죽기 전에 신하들에게 그를 순장시키라 명령했으니, 천인의 다섯 자식이 모두 아비의 말에 순종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서왕의 천인, 그러니까 후대에 시천인으로 알려진 천인은 양 날개가 잘린 채 서왕의 무덤에 묻혔다.
그 잔혹한 최후가 그들의 고향이라는 하늘 위에 알려진 탓인가?
이후 거짓말같이 천인은 잠시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전쟁이 끊이지 않던 춘추시대가 이르러서였다. 문명의 발전으로 산과 들을 개척하던 나라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발견하고 사료에 기록된 천인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주로 제후들의 시첩이 되었다. 그 당시에도 천인은 귀중했으므로, 그때 제후들 사이에서는 천인을 거느리는 것이 제 권세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때 알려진 충격적인 사실이, 바로 천인들이 여성기와 남성기 모두를 가진 양성구유란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여성의 특징을 가진 사내에 가까웠다.
기록상에 회임을 한 사실이 있어 여인인 줄로 알려져 왔던 시천인. 그에 천인은 환상적인 용모의 여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타구니에 양물이 달려 있었고, 여성기가 없는 기이한 생명체였던 것이다.
그 대신 그들에겐 아기집이 배 속에 자리하고 있어 회임과 출산을 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가슴이 여인처럼 부풀고 젖이 나왔다. 또한 그들의 뒷문에 자리한 두 갈래의 길 중 자궁과 이어진 하나가 여성기과 비슷한 기능을 보였으니 그 점이 범인 사내와 차별될 뿐이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하면 천인의 다른 신체적인 조건은 사내와 같았다. 그들의 용모는 지극히 아름다웠으나, 양물은 제 기능을 했고 심지어 사내로서 번식을 할 수 있었으니까.
시녀와 사통하여 여인을 임신시킨 제후의 시첩 또한 기록상에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 그들의 정체성은 사실 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인이 사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게 무슨 기이한 생명체냐? 배가 부르고 젖이 흐르는 사내가 어디 있단 말이냐? 저건 필시 하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혹은 금수의 한 부류일 것이다!”
사람들은 음양이 합쳐진 해괴한 모양새의 천인이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전국시대 말기에는 천인을 짐승으로 취급하여 사냥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으니, 이는 그들을 우리에 가두어 즐기는 제후들 사이의 새로운 풍조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리하여 진귀한 가치를 지닌 천인을 사냥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차츰차츰 천인의 수가 줄어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시황제가 진나라를 세우고 난 후엔 그 숫자는 손에 꼽을 만치 줄어들어 그저 시황제의 후궁에 서너 명, 아니 서너 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들 또한 시황제가 죽고 순장되어, 그 이후에 남은 천인의 기록은 거의 없었다.
한나라 시기 드물게 그들이 포획되었다는 말이 나왔긴 했으나, 그것은 야사일 뿐 정사로 전해지는 기록은 없다.
마치 전설상의 짐조(鴆鳥, 깃털에서 독이 흐르는 새)와 같이 그들은 분명 한때 이 땅에 있다는 건 확실하였음에도 사라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후대의 사람들은 지극히 아름다웠다는 천인을 동경하였고, 또다시 그들이 나타나기를 원했다. 잔인한 옛사람들을 원망하며, 그들을 하늘의 자식으로 포장하고 또 온갖 상서로운 설화를 붙이면서, 그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옛날과 달리 지극히 아껴 주리라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수백 년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천인은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천인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나라가 종말을 맞이하고, 또다시 이 땅에 크게 전쟁이 벌어진 때의 일이었다.
대위의 3대 황제가 즉위하기 백오십 년 전부터 천하 곳곳에 도는 말이었다.
“어느어느 산에 천인이 내려앉았더라! 날개 달린 모습이 영락없는 문헌 속의 천인이라더라!”
지역과 목격자는 달라도 비슷한 유형의 말이었다.
날개 달린 사람을 목격했다는 말은 확실히 확인된 것이 아니었으나 소문은 무시하기엔 지나치게 기승을 부리며 대륙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소문으로 남은 실체가 불분명한 말에 주목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반드시, 반드시 그들을 찾아라! 반드시 살려서 짐의 앞에 끌고 오너라!”
그가 바로 대위의 3대 황제, 효정제였다.
* * *
효정 원년(孝正 元年).
효정제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후궁을 간택하기 전 어느 날 밤, 황제의 침궁 안 밀실에서 있던 일.
“천인을 보았다는 말이 또다시 돈다 합니다.”
어둠을 꿰뚫고 사내의 목소리가 진득한 욕망을 품은 채 낮게 울렸다.
“스승님.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만약 스승님이 소문의 천인이 될 수 있다면…….”
짐승의 눈이 번뜩이며 침상에 매달린 사내를 훑고 있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붉은 끈으로 온몸이 꽁꽁 묶여 다리가 활짝 열린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사내였다.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늘씬한 나신은 붉은 끈으로 관절이 묶이고 가슴과 둔부 주위가 칭칭 감겨 있었다.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흐드러지고, 두 눈은 안대로 가려진 채 사내는 산(山) 자를 거꾸로 돌린 모양으로 허공에 대롱 매달려 입에 문 재갈 사이로 뜨거운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뛰어난 작품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붉게 연지를 바르고 재갈을 문 입술 사이로 타액이 뚝뚝 떨어져 턱선을 타고 흐른다.
“태자를 이 배 속에 잉태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젊은 황제는 기이한 욕망을 불태우는 눈에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 배 속에 당신과 제 씨를 품을 수 있습니다.”
후욱, 후욱. 붉은 끈에 묶인 사내의 입술 밖으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온다. 짐승처럼 타액을 질질 흘린 채 그는 오랜 시간 허공에 매달린 고통에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고통에 움찔거릴 때마다 드러나는 몸의 곡선, 물결치는 허리와, 흔들리는 둔부의 선정적인 움직임.
발가락이 차례대로 곱아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땀에 젖은 산발 사이로 더러워진 사내의 얼굴이 드러나 있다. 번져 나간 연지와, 흘러나온 콧물과, 땀에 흠뻑 젖은 얼굴.
공포에 질린 듯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인 사내를 굶주린 눈으로 쓸쓸 황제는 어느 순간 붉은 초를 들고 사내를 향해 다가가며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제 자식이 바로 연모하는 당신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그 다정한 말을 내뱉고 황제는 제 앞에 자리한 눈부신 나신 위에 붉은 초를 기울였다.
뚜욱, 새빨간 촛농이 새하얀 몸 위에 번지는 그 순간,
“―――!!”
그리고 쏟아져 나온 짐승의 소리.
“우우우우웁――!”
“소평.”
허공에 덜렁거리는 다리가 미친 듯이 흔들거린다. 사내의 코에서 콧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항을 해 보았자 풀려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사내는 사지를 버둥거리고 울부짖으며 고통에서 저항하려 했던 것이다.
“우우우우우, 우우우웁!”
“짐은 널 사랑하고 있노라.”
그야말로 금수가 된 듯 우짖는 사내를 향해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을 보내며, 황제는 날뛰는 그의 몸 이곳저곳에 촛농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마침내 고간 위에 촛농이 떨어졌을 때, 사내의 얼굴은 근육이 완전히 뒤틀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달을 조각한 듯 아름다운 몸 위에 붉은 구슬 같은 장식이 알알이 떨어져 있다.
황제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중얼거리며 초를 들지 않은 다른 손을 움직였다.
“……기억하기 힘든 아주 먼 과거부터.”
손은 허공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줄을 잡아당기는 손의 위치에 따라 허공에 매달린 사내의 몸이 서서히 변한다. 그의 정수리가 바닥을 향하고, 발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산(山) 자를 뒤집어 놓은 듯했던 몸이 올바른 산(山) 자를 되찾았던 것이다.
달칵, 소리가 흐를 때 손에 든 줄을 놓은 황제가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제 앞에 거꾸로 매달린 사내를 본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아래로 솟구치고, 체액으로 더러워진 새빨간 얼굴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황제의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굴곡이 도드라진 커다란 두 개의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제가 비소를 흘리고, 손에 든 붉은 초를 살 무덤 사이에 밀어 넣는다. 토실한 엉덩이에 꽂힌 새빨간 초가 파르르 떨리고, 촛농이 그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그 선정적인 색의 촛농이 혹사당해 부푼 밀부에 닿는 순간, 황제의 입가에 서린 잔잔한 미소가 진해진다.
“끄우우우욱――!”
공재갈을 까득, 물며 사내가 마소처럼 울부짖은 때였다.
새하얀 달빛 아래 붉은 양초를 꽂고 춤을 추듯 씰룩거리는 둔부가 빛나는 순간 사내의 두 눈에 분노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 * *
“허억!”
두 눈을 번쩍 뜨며 위희평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크게 떠는 그가 헐떡거리며 숨을 토해 냈다.
“미인!”
“헉, 허억.”
황급히 달려온 궁인이 침상 위에 두 눈을 부릅뜬 채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위희평을 발견하고 숨을 죽인다.
“미, 미인. 무슨 일이십니까?”
위희평은 그 말에 물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구, 구월 칠 일이옵니다.”
핏기가 가신 귀신 같은 얼굴에 서글픈 웃음이 서린다. 악몽의 기원을 찾은 위희평이 쓴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예?”
영문을 모르는 궁인이 눈을 껌뻑거리며 위희평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더 이상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럴 정신도 되지 않았다. 끔찍한 꿈을 꾸었다.
억지로 인간인 척 살아왔던 짐승이 제 거죽을 벗어던지고 본성을 내보인 날.
그날 이후로 위희평은 원선화가, 황제가 인간이 아닌 금수임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잘게 떨리는 어깨에서 옷이 흘러내렸다. 위희평은 몸을 웅크리며 꿈의 잔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간의 일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위희평이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원선화가 행했던 일. 그의 구멍에는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물건이 들어갔다 나왔고, 들어갈 수 없는 몇몇 물건도 넣어진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짐승처럼 살았다.
그 끝에 위희평은 결국 원선화에게 매달려 자비를 애원했다. 폭력에 굴복하여 총비로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로 원선화는 거짓말처럼 다시 상냥한 사내가 되어 위희평을 ‘어여삐’ 여겨 주었다.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휘황찬란한 보화를 선물하고, 관례를 부수고 미인에게 천작궁을 하사하며, 매일 밤 무수히 많은 후비를 제쳐 놓고 위 미인의 녹두패를 뒤집으면서 말이지.
다시 그는 다정한 연인이 되었고, 정사를 나눌 때를 제외하고선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위희평은 예전처럼 그런 나날들에 위안을 얻지 못했다.
그는 이미 원선화의 진면목을 보았으므로.
짐승의 본성을 엿본 그가 어찌 원선화의 사랑에 예전처럼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영혼이 닳고, 닳고, 또 닳을 뿐이다.
위희평이 창백한 얼굴을 손에 묻은 채 몸을 웅크린다.
소실을 느꼈다.
정체성이 사라지는 기분. ‘나’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위희평은 저 자신을 잃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원선화의 애타는 보살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하루가 다르게 썩어 비틀어 죽어가는 고목나무처럼 굴고 있지.
비소를 흘리며 위희평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쓰러져서 차라리 죽고만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비관적인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그런 암울한 마음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거세지고 있었다.
바로 지옥의 기점.
지고한 사랑을 하고 있다, 자기 연민에 취해 있던 그가 현실을 마주한 날. 불타는 오두막에서 쓰러졌다가 일어나고 밀실에서 깨어나 죄악의 대가를 시작한 때.
고연선이 죽은 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연선 누이.’
위희평의 턱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헐떡거리던 숨결은 이미 진정된 후였으나 그의 눈은 아직도 공황에 차 있었고, 마음은 아직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환관의 장엄한 목소리.
“황제 폐하 납시오!”
위 미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천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평!”
“읍!”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위 미인이 갑작스럽게 저를 움켜쥐고 입술을 탐하는 황제의 행동에 몸을 파르르 떨고야 만다. 다시금 거칠어진 호흡을 빨아당기며 황제는 한참을 그의 입술을 격정적으로 탐했다.
그러곤 입술이 떼어진 순간 황제는 희열에 물든 얼굴로 위희평의 옷을 넘어트리고 그의 발목을 양손으로 붙잡아 옆으로 쩍 벌렸다.
잠옷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위 미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황제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엉덩이 사이에 둔중한 무기를 꽂았다.
“헉!”
그의 안은 항상 향유로 젖어 있어 언제고 황제를 받을 수 있었다. 잠을 자기 전에도 흠뻑 적신 구멍은 흉흉히 발기된 물건을 삼키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이 갑작스러운 삽입이 버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으므로. 위 미인은 물건이 제 내장을 퍼억 찍을 때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펄떡거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제는 허공 높이 위 미인의 양발을 치켜세우며 허릿짓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짐승의 정사가 이어졌다.
“소평, 으음.”
철퍽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향유가 흥건하게 침상을 적셨다. 위희평이 아, 아, 짧은 신음을 흘리며 황제의 손아귀에 잡힌 다리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황홀함에 물든 얼굴로 황제가 그를 내려다본다. 실로 기쁨에 찬 그 얼굴을 위 미인은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으나, 이어진 말에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찾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흘러나온 말에 위 미인의 땀에 젖은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제야 그는 황제의 얼굴이 평소와 몹시 다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황제가 제 본성을 숨기지 않고 위 미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후, 그는 마치 원선견처럼 감정을 철저히 숨기며 사람들의 두려움을 샀다.
그러나 지금 원선화의 얼굴은….
“감진산에서 천인을 추포했다 전령이 왔다.”
위 미인의 얼굴이 횡액을 당한 사람의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다. 윽, 윽. 신음을 흘리는 입술이 새파랗게 변모한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평, 그대가 짐의 아이를 잉태할 길이 열린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리는 사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격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얼굴에 가득 찬 희망의 불꽃, 감정의 해일.
“이 태내로.”
들락날락하는 성기의 윤곽이 도드라지는 납작한 아랫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사내가 환희에 찬 미소를 짓는다. 위 미인의 입술 밖으로 색색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충격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어찌 해석했는지, 황제는 실로 광분에 찬 미소를 흘리며 허리를 놀릴 뿐이다.
‘천인을, 천인을 잡았다고?’
아, 아. 소리를 흘리며 위 미인이 이불보를 발끝으로 밀곤 몸을 뒤튼다. 음험한 목소리가 몸 위로 떨어져 내릴 때, 위 미인은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짐은 반드시 그대의 태에서…….”
황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 * *
고연선의 기일이 다가왔다.
위희평이 그의 벗을 완전히 배반했던 날이었다. 그녀와 도망치기로 했던 날.
‘나가면 저는 죄인입니다. 폐하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을 증오합니다. 소군.’
그러나 그날 고연선은 불타오르는 오두막과 운명을 함께했고, 동시에 상장군 위희평도 죽었다.
‘연선 누이, 누이… 흐어어엉!’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밀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천자는 그에게 말했다.
네가 죽은 황후를 대신할 것이라고.
‘평아, 대가를 치러야지 않겠느냐?’
날이 다가올수록 진해지는 악몽.
“아, 아아악!”
“미인, 미인!”
어느 날부터 천작궁에는 불안한 기류가 흘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작을 일으키는 주인 때문이었다. 평소 황제에 순종적이고 노비들에게 자비로웠던, 아니 사람이 아닌 것처럼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순응했던 위 미인은 황제가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발악하곤 했다.
“쉬이, 쉬이. 진정하시오. 미인.”
“흑, 흐으윽.”
다행히도 황제는 그런 위 미인을 ‘관대하게’ 달래곤 했다. 커다란 가슴으로 그를 껴안고 속삭이곤 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어. 더 이상 고통은 없어.”
고통이 없다고?
위 미인은 그의 품에 안겨 속으로 고소를 흘리고 있었다.
생지옥에 살고 있는데 이 고통이 고통이 아니면 무어라 한단 말인가!
“짐은 그대에게서만 자식을 얻을 것이오. 꼭 그대의 태에서 태자를 얻을 것이오.”
아니, 아니 나는 원하지 않아!
그러나 위 미인은 그의 말에 답변하지 못한 채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황제는 무수히 많은 금은보화를 선물하고, 그에게 달콤한 연인의 말을 속삭이며 달래려 들었다. 밤 또한 부드러워졌다. 천인의 일에 마음이 너그러워졌는지, 혹여 정말로 연인을 애정하는 마음 때문인지 황제는 위 미인의 식은땀이 난 이마를 닦으며 그를 간호하려 들었지 더 이상 그를 때리지 않았다.
“미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 말이었다.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될 것이오.”
사경을 헤매면서, 밀실에서 받았던 굴욕을 되새기면서도 위 미인은 그 말을 듣고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반발감을 드러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야. 누구보다 단란한 가정을.”
그런 그의 팔을 꽉 부여잡으면, 황제는 집요하게 그에게 속삭인다. 황홀. 그에 빠진 사내의 목소리가 홀린 듯 위희평의 귓전에 떨어졌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의 아이와 함께.”
아, 그때의 마음이란….
‘다 틀렸어, 다.’
축생도(畜生道)!
그것을 마주하고 있었다.
위 미인은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문안을 가지 않고 열병에 시달리며 침상에 누워만 있었다.
황제와의 정사도 끊긴 지 오래. 그러나 황제는 천작궁에 발을 끊지 않고 그저 그를 조용히 간호할 뿐이었다.
위 미인은 황제에게 간호를 받으며 천작궁 한편에 쌓인 하사물함을 보았다. 모두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호사였다. 황제의 손에 땀이 닦여지는 것, 동침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밤을 함께하는 것, 황후도 갖지 못하는 진귀한 보물을 하사받는 것.
그러나 위희평은 그 모든 호사를 누리면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우울감에 시들어가고 있었다.
‘복에 겨웠군’이라 빈정거리는 궁인의 뒷말을 알면서도 말이지.
‘괴로워.’
그리고 고연선의 기일 전날 밤, 천작궁에 도착한 전갈이 있었다.
“위 미인은 성지를 받으시오!”
바로 미인 위씨를 소의로 올린다는 황제의 성지였다.
* * *
“신첩이 왜 그 금수 같은 자와 같은 반열에 들어야 합니까!”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위 씨가 발걸음을 멈춘다.
“그대의 억울함을 내가 다 아네.”
“신첩은, 신첩은 문하시중의 딸입니다.”
그를 호종하던 궁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소의. 당황에 차 중얼거린 환관의 말에 위 씨는 답변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위 씨의 등장을 고할 때를 놓친 환관이 창백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 천륜을 저버린 짐승과 같은 소의가 되어야 합니까? 그 창녀가 어째서 소의입니까?”
표독스러웠던 목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절절한 말로 변하고야 만다.
“어떻게, 어떻게 천자께서 이러실 수 있습니까!”
울분에 찬 말을 쏟아내는 주 소의의 말을 황급히 끊어내며 환관은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위 소의께서 드시옵니다.”
황후의 정궁. 원앙궁 안에 거짓말처럼 죽은 듯한 정적이 서렸다. 짧은 침묵 끝에 나직한 음성이 울린다.
“들라 하라.”
상석에 자리한 창백한 얼굴의 여인을 위 씨는 죽은 자의 것같이 혈색 없는 얼굴로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의 모후인 숙각황후의 기일이었다.
황후를 필두로 한 내명부의 후비들은 모두 몸을 정갈히 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 준비를 마친 후였다.
“가세.”
그들은 아침 일찍 원앙궁에서 나와 마차에 올랐다. 황실의 사찰인 원각사로 향했다. 바로 숙각황후의 위패를 모신 절이었다.
“황후 마마를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심성 주지. 예를 차릴 필요가 없어요.”
“나무아미타불.”
소 황후는 주지에게 합장하여 인사했다. 본디 황후는 만인지상 일인지하라, 황제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위상을 지녔으나 시모의 명복을 비는 승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몸을 굽힌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능을 참배한 게 아닌 사적인 방문이었으므로. 불심이 깊은 소 황후는 주지에게 공양을 하고 자세를 낮추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회색 가사를 입은 중이 안내한 장소에서 비빈들은 죽은 시모 앞에 무릎을 꿇고 명복을 빌었다.
탁탁탁!
목탁 소리를 들으며 비빈들이 손을 모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태후라지만, 위패 앞에 무릎을 꿇은 이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물결치고 있었다. 정숙한 공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 황후 또한 어느 순간부터 얼굴을 희미하게 일그러트리며 물결치는 슬픔을 그 위로 드러내는 중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시모에게 무슨 효성이 그리 지극정성일까라는 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진심이든 아니든 후비들은 책을 잡힐 일을 하면 안 되었으니까.
더 나아가서 효성이 깊다 하는 황제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위선이라도 그들은 마음이 기울지 않는 상대를 위해 통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뜻밖의 사건은, 평소에 영혼이 없는 인형 같은 위 소의가 놀랍게도 그 순간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저것 보십시오.”
처음 그것을 발견한 이는 이 첩여였다. 속셈이 있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불심이 깊어 부처를 속이지 않았던 두 귀빈이 감았던 눈을 흘끗 뜨며 이 첩여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그녀의 턱 끝이 가리킨 이를 바라보며 그녀들은 놀라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음?”
주 소의의 옆에 앉아 있는 위태로운 인상의 위 씨. 성별이 구분이 가지 않는 중성적인 외모의 사내가 놀랍게도 처연히 눈물을 흘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두 손을 모아 불경을 외지 않았다. 명복을 빌지 않았다.
위 씨는 그저 보는 사람을 애처롭게 하는 맑은 눈물을 소리 없이 뚝뚝 흐느끼며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당황하여 두 귀빈은 입술을 딱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실로 놀란 이유는, 바로 저 위 씨가 소문과 다르게 아부와 아첨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성품이란 걸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저자가 왜…?’
당연지사 두 귀빈은 금남의 구역에 들어와 분탕을 치는 그를 싫어했으나, 그 무기력한 모습에 가끔 동정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지금 위 씨가 보이는 눈물에 얼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본 적이 없는 시모를 그릴 일이 무에 있어?
그리고 속삭거리는 이 첩여의 말.
“총애를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입니다.”
말을 받은 것은 임 미인이었다.
“후사를 생산하지 못하니 황제의 마음을 기를 쓰고 잡아야지 않겠나.”
“그러고 싶을까.”
속삭거리는 이 첩여와 임 미인에 두 귀빈이 미간을 찌푸린다. 조용한 법당에 이런 소란을 일으키나. 소 황후는 그들과 세 발자국은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그녀에게 말이 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불심이 깊은 그녀로서는 아무래도 탐탁잖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 험난한 황궁에서 귀빈이란 높은 자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았으므로. 그 말을 못 들은 척 기도에 심취한 듯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탁, 탁탁.
목탁 소리를 배경으로 그 순간 위 씨가 투명한 눈물을 말없이 흘리고 있었다.
그녀들이 하는 말을 사실 다 듣고 있었다. 본래 알면서도 그를 모른 척 흘려 넘겼던 위희평은,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가슴에 돌이 턱 쌓이는 듯한 느낌에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입술 끝을 파르르 떨며 위희평이 눈을 질끈 감는다. 피비린내가 목구멍에 번지고 있었다.
위패를 보는 시선이 흔들린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생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다. 맨 정신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위희평은 저가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며 살아가는 고통을 견디고자 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연선 누이.’
법당에 있던 황후 비빈들이 모두 떠났으나 위희평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우두커니 앉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넌 날 증오했었나?’
고연선(高淵善).
높은 곳에 자리한 위패. 그 위에 쓰인 이름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나라를 짓밟은 날 고통스럽게 하고 싶었어?’
그리고 그 끝에 흘러나온 차가운 미소.
‘……그럼 누이, 네가 이겼어.’
한참의 시간이 흘러, 주지가 ‘위 소의’ 하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불렀을 때,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일어섰다.
‘네가 이겼다고.’
터벅터벅, 위패를 향해 다가간 위희평이 입술 끝을 비틀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다. 고연선의 위패를 움켜쥔 위희평이 거칠게 손을 내뱉고 하늘 높이 손을 들었다. 그는 그것을 땅에 내리치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떴으나, 올라간 팔은 그 자리에서 굳은 채 부들거릴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위패를 든 손이 힘없이 내려앉는다.
땅을 향해 축 늘어진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위희평이 지친 얼굴로 제 손에 든 위패를 내려다본다.
고연선.
‘나는 지옥에 있다.’
음각된 문자를 힘없이 쓸며 위희평은 눈을 감을 뿐이었다. 한 줄기 눈물이 뺨을 가로질러 흘러내렸다.
고연선.
그것은 저주의 이름이었다.
저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갔고, 그녀는 내 모든 것을 앗아갔지….
그 뺏고 빼앗는 약탈전의 승자는 고연선이었다.
* * *
고연선을 사랑한다?
그런 쉬운 말로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있을까?
위희평은 위패를 품에 안고 마차에 올랐다. 왜 이리 늦었냐는 소 황후의 냉랭한 말을 흘려들은 채 그는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허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비빈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험담을 듣는 일은 이제 그리 참기 힘든 일이 아니다.
모욕은 수없이 많이 겪어 보았다.
다만 그의 생기를 앗아가는 것은 바로 인생을 농락당한 충격이었다.
빼앗긴 영광.
빼앗긴 이름.
빼앗긴 삶.
그리고 그것은 모두 한때 불처럼 사랑한 여인의 손아귀에….
‘……너는.’
끼이익,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마차가 흔들거린다. 창틀에 팔뚝을 댄 채 위 씨가 건조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듯 타오르는 붉은 불꽃. 그에 잠식된 오두막을 떠올리며 위 씨가 깊은 수면 아래로, 아래로, 침잠한다.
그날 밤.
그는 천작궁에 도착하자마자 쪽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소중히 품은 위패를 선반 위에 올려놓으며 그는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영광을 떠올리는 것도, 한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다.
허무함.
기만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었지.
정말로 우리는 사랑을 했다. 적어도 그 마음은 진심이었고 결실까지 맺었지.
위희평의 얼굴이 서서히 뒤틀려갔다. 몸에 오한이 들고 있었다. 근육이 뒤틀리고 꼬이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살을 침투하고 뼈를 에는 듯했다. 욱욱, 구역질을 참으며 위희평이 몸을 웅크리고 부드러운 뺨을 긁는다.
정말, 정말일까?
그동안 외면했던 것들을, 제 의심을 일깨우는 중이었다.
백합을 닮은 여인의 새빨간 입술이 눈앞에서 일렁거린다. 그 호선을 그리는 입술에 서린 것은 기만.
기만이 어린 조소.
‘너는 정말로 나를…?’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암담함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발간 입술 사이로 가쁜 숨결이 흐른다.
크나큰 충격을 받은 듯 그의 동공이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숨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빠지고 있었다. 위희평의 얼굴이 횡액을 당한 사람처럼 일그러지고 있었다.
목 뒤가 당기는 충격.
혈관이 확장되고 줄어드는 듯한 불안한 기분.
나무 위패를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던 위희평이 뺨을 손으로 짓누르며 얼굴을 쓸어댄다. 전력질주를 한 사람의 것처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 어느 순간부터 위희평은 개처럼 입술을 벌린 채 숨을 힉힉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순간 문밖에서 흘러들어 오는 소란.
“폐, 폐… 악!”
짜악!
손찌검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희평은 그에 신경 쓰지 않았다. 발걸음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도, 비명이 비산하는 것도. 궁인들의 울음소리가 천작궁을 채우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위희평은 그저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헐떡거릴 뿐이었다.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는 끊겼다.
이윽고 부드러운 음성이 흐른다.
“소의.”
실로 다정다감한, 아, 마치 꿈결 같은 목소리.
“짐이 왔노라.”
흐흐, 웃음을 흘리며 위희평이 산발이 된 머리 사이 얼굴을 손톱으로 죽 긁었다. 피비린내가 흘렀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위희평의 귓전에 어둠이 내려앉은 묵직한 소리가 내려앉았다.
“소의.”
답변은 무심한 목소리로 흘렀다.
“날 내비 두세요.”
이걸 평온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위태롭다 해야 하나?
“……이 문 열어.”
황제는 아마 후자를 생각하는 듯했다.
“소의!”
쾅! 콰왕!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 고성과 고함이 어두운 밤을 헤치고 천작궁을 울린다. 천자는 드물게 이성을 잃고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분노 어린 목소리로 저를 위협하는 천자를, 위희평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코웃음을 치며 소리칠 뿐이었다.
“날 내버려 둬!”
그건 찢어지는 음성이었다. 얼굴에서 손을 뗀 위희평이 분노에 가득 찬, 악에 받친 목소리로 문 너머의 천자를 향해 소리친다.
“날 내버려 두라고!”
너, 이년!
이 악문 목소리에 위희평이 넘어가듯 웃음을 흘리곤 두 눈에 흉광을 빛내며 고성을 질렀다.
“날 냅둬! 냅둬! 제발! 제발!”
살기를 품은 목소리였다. 지독한 마음을 담은 비명이었다.
“나 좀 살게 해달라고, 나 좀 살게!”
도끼를 가져와라.
허, 허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더욱 흥분하여 위희평은 미친 사람처럼 그를 향해 악에 받쳐 욕설을 퍼부을 뿐이었다. 반항하는 말. 절규하는 말.
쾅! 쾅!
도끼가 문을 내리찍는 소리, 너덜거리는 문을 바라보며 결국 위희평은 울음 섞인 웃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넘어트리고야 말았다.
“제발 날 내버려, 아으윽!”
“이 개 같은 년.”
부서진 문 사이로 핏빛 안광을 빛내는 사내가 성큼거리며 들어온다. 산발이 된 채 악을 쓰며 비명을 내지르는 위희평의 머리채를 거칠게 휘어잡으며 황제는 그의 몸을 흔들어대곤 그의 뺨을 솥뚜껑 같은 손으로 몇 번이나 후려갈겼다.
악악 소리를 흘려대는 위희평의 몸을 바닥에 던지곤 황제가 문득 고개를 돌린다.
시선이 닿는 곳에는 위패가 있었다.
어둠 속에 짐승의 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 * *
축생의 밤!
황제는 미치광이가 되고, 위희평은 위패 앞에 잃었던 혼을 되찾고 절규했다.
“싫어, 싫!”
항상 죽은 듯이 늘어져 황제를 받았던 사내는 그 순간 황제의 강인한 어깨를 밀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들었다. 발악을 하는 사내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뺨을 몇 대 후려갈긴 황제는 그의 옷을 부욱 잡아 뜯었다.
“싫어, 싫다고…!”
그것이 무력한 일임을 알면서도 위희평은 그 폭압적인 손길에 굴복하지 않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오늘은 싫어……! 여긴 싫어!”
갈기갈기 찢어지는 옷자락을 움켜쥐며 위희평이 저항한다.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방문을 향해 도망가는 이의 가슴에서 잘그락 소리가 울렸다. 제 앞에 가득 차는 허연 둔부에 황제가 광소를 흘리며 손을 뻗는다.
“아!”
높고 가는 신음을 흘리며 위희평이 몸을 무너트렸다. 구멍에 꽂힌 손가락 두 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낄낄대며 웃는 황제의 커다란 손이 가는 발목을 잡아 그를 잡아당긴다.
바닥에 엎드려 질질 끌려가며 위희평은 처참한 얼굴을 일그러트리곤 울고 있었다.
“싫어……!”
황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허공에 높게 들린 엉덩이가 출렁거렸다.
“모후, 선화의 처입니다.”
흐, 흐흑.
눈물이 흐른다. 사내의 품에 안겨 다리를 벌린 채 위희평은 기진맥진할 만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황제의 손이 회음부 부근을 어루만지는 중이었다. 선화지처. 그 낙인이 찍힌 장소. 황제는 그를 과시하듯 위패에 보여주며 모후를 향해 말을 걸고 있던 것이다.
“이 물건이 바로 선화와 매일 밤 잠자리를 함께하는 선화지처입니다.”
수치심에 얼굴을 가리며 위희평이 고개를 숙인다. 알이 없는 매끈한 음경은 어느새 허공에 꼿꼿이 서 있었다.
“이걸 보십시오.”
손가락은 회음부를 뱅글뱅글 돌리며 문신을 자극하고. 목소리는 감미롭게 내려앉는다.
“여기에 선화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육중한 물건은 허공에서 위희평의 몸을 꿰뚫었다.
“아, 아, 아!”
익숙한 일이 이어졌다.
“싫, 싫… 흐윽!”
위희평은 사내의 양물에 꿰뚫렸고,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평소와 다르게 그는 몸부림치며 황제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강인한 손길은 그를 우악스럽게 잡아 허공에 치켜들 뿐이었다.
“소의.”
학, 악. 허공에 매달린 아슬한 자세. 그 상태에서 물건을 받으며 위희평은 힘에 버거운 듯 가쁘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흐르는 맑은 눈물. 그리고 흘러나오는 서러운 울음.
“이 음란한 몸을 모후에게 보여.”
떨리는 몸을 억지로 열며 황제가 그의 귓가에 속삭거렸다.
“네가 누구의 계집이 되었는지 고해.”
낮게 울리는 음성은 경고의 뜻이 담긴 것이었다. 그리 말을 내뱉곤 사내는 위희평의 몸을 쥔 팔을 움직여 그의 몸 위를 아래위로 들썩거리게 했다. 위희평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처절하게 쉰 목소리로 흐느낀다.
“아, 연, 연선 누….”
짜악!
그리고 커다란 손이 위희평의 쩍 벌어진 둔덕을 세차게 후려갈긴다.
“태후.”
낮게 울리는 음성.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엉덩이에서 질꺽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위희평은 도리질을 치며 그 말을 내뱉지 않으려 했으나 이어진 매정한 손길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짜악! 짜악!
“태, 태후, 힉, 태후 마마!”
폭력에 굴복하는 일이 익숙해진 후였다. 허공에서 성기에 꿰뚫리며 위희평이 울부짖었다. 흐느낌은 짙어져 가고 있었다. 굴욕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위희평이 끅끅 소리를 흘린다.
“태후, 흐, 태후….”
그러나 그의 말에도 위희평의 둔부를 때리는 손길은 멈추기는커녕 도리어 거세질 뿐이었다.
끄읍, 소리가 흐른다.
철썩거리며 얻어맞은 둔부가 혈관이 터져 시뻘겋게 변모해 있었다. 위희평이 몸을 비틀며 ‘그만해!’ 쉬어빠진 목소리로 애원했으나 황제는 그 말에 답변조차 하지 않은 채 손을 놀릴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희평은 그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흐흑, 구슬 같은 눈물을 또르륵 흘러내리며 위희평이 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간다.
“신, 힉, 신은.”
짜악!
하윽, 소리를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던 위희평이 다급히 말을 정정한다.
“신첩, 신첩은.”
짜악!
“폐하의 앙! 소의! 힉!”
양껏 벌어진 다리 사이로 힘줄이 불거진 성기가 송곳처럼 둔덕을 찌르고 있었다.
“폐하의, 폐하의, 비빈이, 으흐, 되었습니다.”
그 말을 할 때 위희평은 이를 악물고 으흑, 소리를 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뒤로 꺾인 목에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신다.
둔덕을 내리치는 손은 거두어진 지 오래다.
명백한 황제의 의도에 위희평이 가쁜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소의 위씨가 되어, 앙, 천작궁에서, 총애를 받고, 으응.”
그리고 문득 그의 입술에 내려앉은 뜨거운 감촉.
위희평이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누그러진 신음을 흘리며 순순히 입술을 벌리고야 만다.
농밀한 입맞춤이 잠시간 이어졌다.
그리고 입술이 떼어지고 흐른 몽혼한 말.
“총애를, 응, 받고 있어요…… 연선 누이.”
위희평의 얼굴이 열기에 후끈 데워져 있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을 흘리며 위희평이 풀린 혀로 중얼거린다.
“선화의, 우리 선화의 계집으로, 음.”
접문은 그의 영혼을 빼앗은 듯했다.
버둥거리며 거세게 저항하던 사내는 그 입맞춤 한 번에 거짓말처럼 온순해져 웅얼거리며 말을 잇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것과는 좀 다른가?
황제의 얼굴에 만족이 스친다. 위희평의 젖은 눈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동공이 풀린 눈을 점거한 건 짐승의 본능이었다. 색욕으로 물든 입술을 탐하며 황제가 입술 끝을 비튼다.
아! 아!
허리가 튕기고, 바닥에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연이어 흐른다.
“그래.”
허공에 묶여 비틀리는 새하얀 몸. 그를 뱀처럼 얽은 손.
“학!”
“그래, 소평.”
“흑! 흐윽!”
“……우리는 다정한 연인이야. 그렇지?”
나지막한 목소리를 끝으로 황제가 위희평의 땀에 젖은 목에 코를 들이댄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황제의 얼굴이 황홀함에 물들어 있었다.
헉, 헉. 짐승의 소리를 흘리는 위희평을 향해 이윽고 묵직한 말이 내려앉았다.
“모후에게 답변해라.”
항의를 용납하지 않는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네가 선화와 행복하게 지내노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움직임이 진해진다. 허공에서 흔들리며 아앙아앙 소리를 흘리던 위희평이 숨을 헐떡거리며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누이, 아아.”
그리고 뜨거운 숨결과 함께 내뱉은 말.
“걱정하지, 으응, 선화는. 선화를….”
시야는 어지러워진 후다. 마치 향이 코앞에서 타오르는 듯했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향기. 목덜미를 자극하는 뜨거운 숨결.
골이 녹는 듯한 강렬한 쾌감에 휩싸인 위희평이 억센 손에 벌려진 넓적다리를 더욱 열며 웅얼 말을 내뱉었다.
“선화랑 사랑을 하고 있…… 아아아앙!”
푹푹 저를 찍어 올리는 성기에 위희평이 곧은 다리를 쭉 뻗으며 높고 아찔한 교성을 흘린다. 흥분에 발그스레 달아오른 얼굴로 그는 저도 모르게 제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위희평의 사타구니 사이, 고환과 털이 제거된 매끈한 음경이 흔들리며 맑은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아아앙! 화, 화랑!”
완전히 이성을 잃기 전 위희평의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바로 위패에 적힌 세 글자의 이름이었다.
* * *
금수의 밤!
“응, 으응.”
“허억, 후욱.”
“아, 아…… 폐하, 폐하.”
몸이 들썩여질 때마다 기름진 가슴에서 짤랑짤랑 종소리가 울린다. 허공에 들린 몸이 성기에 쑤셔질 때마다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황제는 광소를 흘리며 위패 앞에 그의 넓적다리를 활짝 벌렸다. 검붉은 양물과, 그것에 꿰뚫리며 출렁거리는 살 둔덕을 자랑하듯 그는 위희평의 몸을 치켜들고 있었다. 황제가 물을 줄줄 뿌리는 음경을 치우고 회음부의 낙인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모후.”
눈물 콧물로 어질러진 얼굴. 발그스레한 홍조를 뺨에 띤 채 위희평이 풀린 혀로 중얼거린다.
“화랑…… 너무 좋아요……!”
초점이 풀린 눈이 본능에 잠식되어 있었다. 사내의 몸에 들려 두꺼운 성기로 쑤셔지며 그는 실로 기쁨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르는 중이었다.
“폐하의 옥근이…… 고추가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
아, 아아!
높게 울리는 목소리.
그에 입술 끝을 비틀어 짙은 미소를 짓곤 황제는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선화의 처입니다.”
그윽한 음성이었다.
“단란한 가족입니다, 모후…….”
그 말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고 위희평은 사내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정신을 잃었다.
* * *
그날 그의 꿈에서는 불타는 오두막이 등장했다.
* * *
위 씨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해가 뜬 오후의 일이었다.
으음, 소리와 함께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햇볕이 눈썹을 때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위 씨가 눈을 떴을 때, 황제는 그의 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고 있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짐이 흥분을 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흐르고, 위희평이 순간 창백해진 얼굴로 숨을 멈춘다.
햇살이 누비는 황제의 얼굴은 언제 광기를 터뜨렸냐는 듯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선이 굵은 사내의 얼굴은 위희평이 기억하는 세 사람을 닮아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위희평의 입술 밖으로 신음이 흘렀다. 그 순간 전율에 떨고 있었다.
위 씨는 제 끈적한 나신을 물수건으로 닦아 내리며 속삭거리는 황제의 어젯밤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황제는 모후의 위패 앞에 그의 다리를 훤히 벌리게 하곤 뒤를 음경으로 쑤신 잔악한 사내였다. 흠뻑 젖은 항문에 양물을 꽂은 채 네발로 바닥을 기어 다니게 했고, 종국엔 선화지처의 낙인이 훤히 보이게 몸을 연 채 그것으로 뒤를 자위하게 만들었지.
위 씨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져 간다.
어젯밤 위패 앞에서 황제와 저지른 만행을 떠올리며 절망하고 있었다.
가장 추악한 것은, 황제의 거친 행위에 중간부터 흥분을 느끼곤 정사에 호응한 저 자신이다.
어젯밤 위 씨는 전에 이를 바 없이 커다란 쾌락을 느끼곤 울부짖었다. 평소와 같이 시체처럼 늘어지지 않고, 위 씨는 되살아난 감정에 자극을 받아 몸부림치며 황제의 양물을 즐거이 받았다.
‘아, 화랑! 더! 더!’
거친 정사에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곤 성기를 아래위로 받아먹었던 저 자신.
“소의는 몸을 보중해야 하는데 짐이 과했군.”
그리고 지금 앞에 자리한 후회가 희미하게 서린 사내의 얼굴.
“몸을 보중하시오.”
그를 보는 순간 마음에는 파동이 울리고야 만다.
위 씨는 손을 잘게 떨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두툼한 손이 몸을 쓸어내릴 때마다 피가 식어 내리는 기분을 느끼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어젯밤 짐승이 위패 앞에서 얽히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사내의 두툼한 양물을 받으며 교태를 부리던 음란한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위 씨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 순간 그의 뺨 위로 부드러운 숨결이 내려앉았다.
“조만간 큰일을 겪어야 할 터이니.”
따뜻한 입술이 애정을 담아 뺨을 스쳤다. 위 씨의 입술 밖으로 떨리는 숨결이 흘러나온 때였다.
“소의.”
그 입술은 움직여 위 소의의 입술로 향한다. 건조한 입술이 움직여 묵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짐은 그대를 사랑하오.”
그러곤 황제는 고요한 눈으로 위 소의를 노려보며 그의 입술을 빨아당겼다. 접문은 길고 집요했다. 동시에 농밀했고.
입술이 떼어지는 순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흐른다.
“진실로 사랑해.”
이어진 말에 위 씨는 답변하지 않은 채 그저 지친 얼굴로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대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위 씨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고, 황제는 굳은 얼굴로 그의 몸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그날부로 황제는 천작궁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 * *
차라리 죽음을 바랐다.
진실로 죽음을 바랐다.
그 자극적인 정사의 열기가 뇌수를 녹여 더 이상 아침 해를 보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위희평은 살아남았고, 그 이후 위태로운 평화가 잠시간 유지되었다. 황제와 더 이상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인의 일로 할 것이 많다. 당분간은.”
황제는 천작궁에 발걸음을 멈추기 전 위희평에게 그리 설명했다.
“혹여 누군가가 그대를 괴롭히면, 성은에게 말을 하시오. 소의.”
긴긴 머리칼에 입술을 맞추며 내뱉는 말.
“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
다시금 도자기로 만든 인형이 되어 위희평이 무심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본다. 황제는 천작궁을 떠나기를 아쉬워하며 몇 번을 더 그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고, 중국에는 느릿한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를 떠났다.
침상 위에 홀로 남아 위희평은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문을 들었습니까? 천작궁이 총애를 잃었다 합니다.”
궁궐에는 말이 빨리 돌았다.
“몸으로 얻은 총애가 오래갈 터가 있나.”
“그래도 그 총애가 어디 그냥 총애였나요? 저는 한 삼 년은 더 갈 줄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실총하였군.”
가장 먼저 기뻐한 것은 비빈들이었다.
명문세가의 자손들. 그 나름대로의 사명을, 꿈을, 환상을 품고 궁궐에 들어온 그녀들은 좌절해야만 했다. 고작 거세한 사내에게 낭군을 빼앗긴 채 독수공방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가문에 힘을 실어 주긴커녕 그네들은 황제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쓸쓸하게 보내고 있던 것이다.
위 씨는 공공의 적이었고, 그에 이를 갈던 비빈들은 천작궁에 발걸음을 끊은 황제의 소식에 기뻐하며 지레짐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천작궁을 찾았던 황제가 갑자기 발걸음을 끊었다고 한다. 그날에 천작궁에 도끼를 들고 가는 환관을 누가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도도하고 건방진 위 씨가 황제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짓을 했을 거라 추측했다. 황후에게도 경의를 제대로 표하지 않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그 종자가 결국 황제의 허용치를 넘어서는 오만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반신반의하며 상황을 주시하던 비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로 황제가 석 달이 지나도 천작궁을 찾지 않은 것이었다.
완벽한 실총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황제의 밤을 차지했던 위 씨는 버림받은 신세였다. 비빈들 중 눈치를 보며 위 씨를 슬슬 건드는 이들이 있었으나 황제는 위 씨의 소식을 묻지도 않고 그저 건녕전에 처박힌 채 칩거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황제의 모습에 사람들은 확신을 얻었다.
위 소의는 확실히 황제를 상심케 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내무부였다.
비빈들 중엔 위 씨에게 원한을 가진 이가 많다. 그녀들은 또한 명문세가의 일원이었으므로. 후궁에 물자를 지급하는 내무부의 환관에게 뇌물을 주어 천작궁에 불이익을 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 천작궁에는 비단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땅히 배분되어야 할 연지, 장미유, 패물 따위의 하사품들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 음식은 거칠어졌으며, 기름마저 꺼져 유 상궁이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다.
“어전 태감에게 말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것은 황제의 뜻이 아니다.
그는 천작궁을 떠나며 혹여 부족한 물건이 있으면 어전 태감인 성은에게 고하라 말을 했으니까. 그러니 이것은 아랫것들이 뇌물을 받고 벌인 농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위 소의는 식은땀을 흘리는 창백한 얼굴을 휘저으며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수치도 모르는 것!”
수난은 이어졌다.
“창녀.”
“추물!”
“내 이럴 줄 알았다.”
비웃는 목소리들.
내가 뭘 그리 잘못했어?
목구멍에 맴맴 도는 말을 위 씨는 굳이 추하게 내뱉지 않았다. 그러나 등 뒤로 쏟아지는 조롱, 경멸의 시선을 모를 리가 없다. 위 씨는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실수인 척 뜨거운 물이 손등에 뿌려진 적이 있었다. 후궁 하나가 그를 넘어트려 계단을 구르게 한 적이 있었다. 말꼬리가 잡혀 높은 신분의 후궁에게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는 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소의, 소의.”
그때마다 유 상궁은 그의 옆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걸곤 했다.
“당장에 저들을 폐하께 고해바쳐야 합니다. 왜 소의께서 이런 대접을 받으십니까?”
위 씨는 창백한 얼굴 위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묵묵히 말을 흘릴 뿐이다.
“폐하께서 정말 완전히 소의를 버리신 걸까요?”
울먹거리며 유 상궁이 내뱉은 말에 문득 위 씨의 얼굴에 희미한 감정이 드러난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
그 고소 어린 말에 유 상궁이 눈을 끔뻑거리며 주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예……?”
정말로 뜻밖인 사실은, 그 순간 위 씨가 그간 유 상궁이 본 적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단 점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평소와 같았으나 본질적인 무언가가 달랐다.
‘이건…….’
유 상궁이 마른침을 삼킨다.
위 씨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마치 귀신을 본 것만 같이 동공을 흔들고 입술 끝을 딱딱히 굳힌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그런 주인의 얼굴에 겁에 질려, 유 상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홱 돌려 외면하는 그녀의 얼굴에 어지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화려하고도 장엄한 궁궐 위의 하늘을 바라보는 위 씨의 두 눈에 가볍게 날아가는 새가 있었다.
그의 눈에 희미한, 아주 희미한 빛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하늘 위로 자유로이 날아가는 새에 마음을 얹고야 만다.
멀리, 훨훨 날아가는 새에 스스로를 투영하고 다짐하기를.
‘아, 이제는 충분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위 씨가 그런 생각을 품던 바로 그날 밤에 황제는 천작궁을 다시 방문했다.
“소평!”
위 씨는, 저를 향해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뛰어오는 황제를 횡액을 당한 듯 초점을 흔들며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 방법을 찾았어!”
마침내 절망이 도래한 순간, 위 씨의 얼굴 위에 스치는 긴박함.
그 감정의 진정한 의미는….
위 씨의 일그러지는 얼굴에도 상관없이 황제는 희열에 물든 얼굴로 소리칠 뿐이었다.
“소평, 그대가 짐의 아이를 잉태할 길이 열린 거다.”
그때 황제는 위희평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암흑이 도래한 얼굴을 말이지.
* * *
또옥, 똑.
물이 떨어진다.
습한 지하 감옥의 계단을 금사가 수놓아진 화려한 비단신이 밟는다.
“쉬이.”
황제는 위 씨를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구슬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며 속삭이고 있었다.
“내 팔을 부여잡으시오.”
희미하게 떨리는 시선이 황제의 얼굴에 닿는다. 감옥의 어둠 속 유독 짐승처럼 빛나는 황제의 두 눈과 마주하고 있었다.
“소의는 몸을 각별히 조심해야 해.”
“…….”
“…이제 곧 태자를 생산해야 할 테니.”
그대는 몸을 보중하시오.
돌아온 말에 위 씨는 가식으로나마 미소를 짓지 못했다.
감진산에서 포획되었다던 천인은, 눈부시게 새하얀 날개를 가진 이였다.
창살 사이의 천인을 처음 보았을 때 위희평이 받은 인상은, 강렬한 거부감이었다.
‘그것’은 실로 아름다운 존재였다.
물결치는 흑발이 장막처럼 새빨간 뺨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팔다리가 길고 가는 미인이었다. 눈꼬리가 길게 빼어진 새 같은 눈매가 인상적이다. 한 번도 밟지 않는 눈밭처럼 새하얀 살결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투명하고 여린 살결은 실제로 감옥 안에서 빛을 흘리며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으니까.
그의 눈은 별을 담은 우물과 같은 것. 영롱한 두 눈은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창살 밖에 자리한 두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것.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기에 위희평이 얄팍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굳힌다.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는 새를 부여잡은 듯해.
위 씨는 그것에게서 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비정상적인 아름다움, 그 성스러운 것에 위 씨는 홀려 그를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자아.”
그런 위 씨를 천인은 나풀거리는 눈썹을 깜빡거리며 순진무구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제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황제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부드러운 음성.
“네가 누구지.”
그 나직한 목소리에 감옥 한가운데 말없이 서 있던 천인이 새하얀 날개를 퍼드덕거렸다. 위 씨의 몸이 움찔한 순간이었다. 감옥 안에 새의 날개가 물결치는 장면은 위 씨의 넋을 잃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멍한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이게 꿈이 아니라고?
‘어떻게, 어떻게.’
그제야 위 씨는 천인에게 홀렸던 영혼을 되찾고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전율이 그를 덮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지금 그는 날개가 달린 사내를 마주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신성한 용모의 천인을. 그 상상 속의 동물을 마주하고 있던 것이다.
위 씨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친다.
이것은, 이것은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거야.
순백의 날개에 시선이 가고, 그의 물기를 머금은 두 눈에 시선이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선이 간 곳은 바로 천인의 아랫배였다.
위 씨의 턱이 잘게 떨린 순간이었다.
그의 등 부위의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던 와중의 일이다. 유리처럼 맑은 눈으로 창살 밖 두 사내를 응시하던 천인이 발그스레한 입술을 작게 움직였다.
“무고한 자.”
그것은 바로 황제에 대한 답변이었다.
목소리는 더운 여름, 시원하게 떨어지는 계곡물과 같았다.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내는 청량한 목소리에 위 씨의 눈이 크게 떠진다.
관능적인 몸짓.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올리며 천인은 연이어 말을 이었다.
“너희가 하늘 아래로 떨어트린 자.”
물 아래로 깊이 침잠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위 씨는 그 순간 모든 생각을 잊고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렇게 아름다운 목소리.
위 씨는 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해 얼이 나가 있었으나, 그것은 황제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듯했다.
황제의 얼굴 근육이 뒤틀린다.
뒤이어 철커덕 소리가 흘렀다. 황제의 손이 창살을 거칠게 부여잡는 소리였다.
“너는 짐을 위해 하늘이 하사한 물건이다.”
황제는 천인을 향해 시퍼런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말을 하는군요. 나를 취하고 싶습니까? 끅!”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천한 것아.”
위 씨가 멍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본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천인의 목을 조르는 황제가 거짓말 같았다.
짐승의 목소리가 흉악하게 이어진다.
“내가 네 천한 짐승의 몸을 보려 한 것은 그따위 하찮은 이유가 아니다……. 주제도 모르는 것아.”
붉은 기가 도는 흉흉한 눈.
이를 드러내서 웃는 사내의 눈에 스친 살기.
“나는 네가 아닌 나의 소평에게서 태자를 보려는 거다!”
목이 졸린 천인이 버둥거리고 있었으나 위 씨는 그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장 내게 말해.”
무엇보다 목이 졸리는 천인의 입술에 띠어진 그 실낱같은 미소……. 그게 너무나 걸려서.
위 씨의 얼굴에 감정의 파동이 물결친 때였다.
고소가 흐르고, 바닥을 기는 음습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네 그 몸뚱이의 비밀을 말해라.”
그리고.
“컥, 커억!”
분명히 고통스러울 텐데. 저렇게 사지를 버둥거리며 고통을 드러내고 있는데 무에 그리 즐겁다고 웃음을 흘리는 걸까?
어둠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천인의 얼굴은 분명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감옥 창살에 달라붙어 천인의 목을 조르는 황제의 흉흉한 기세. 그에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천인.
그들을 바라보던 위 씨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기이하게 일그러져 갔다.
“그렇다면 편히 죽게 해 주지.”
위 씨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바로 저를 곁눈질하는 천인의 두 눈과 문득 마주하고 일어난 변화였다.
어째서인가?
어째서지?
초조함이 번지는 위 씨의 얼굴.
겁에 질린 듯 흔들리는 동공.
천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 위화감이 들어 위 씨는 숨을 멈추며 동요를 삼켜야만 했다.
……어째서 저 천인은 황제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목이 졸리면서도 기이한 웃음을 흘린 건가. 또 눈알을 데구루루 굴려 저를 빤히 바라보았나.
그 홉뜬 눈에 자리한 제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천인의 웃음이 어쩐지 두려웠다.
“……으.”
어쩐지, 그게 불길함을 예고하는 듯해서.
창백한 얼굴로 떠는 위 씨의 귓전에 묵직한 말이 연이어 떨어져 내린다.
“더 이상 네 수양딸을 고문하지 않겠다. 그 계집의 힘줄이 끊긴 다리도 고쳐 주겠다.”
황제는 천인의 귀에 입술을 대고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거리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져 끝이 갈라지고 떨리는 그 쉬어빠진 짐승의 목소리는 진득하고 질척한 감정을 내포한 것이었다.
“네 껍질을 벗겨 죽이지 않겠다. 네게 안락한 죽음을 선사하겠다.”
음울한 말을 내뱉는 사내의 눈이 핏빛으로 빛나고.
“짐은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을 이뤄 줄 수 있어.”
연이어 달콤한 설탕으로 아이를 꾀는 듯한 상냥하고도 사악한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천인의 목을 틀어쥔 손의 검지가 움직였다. 새빨간 입술을 눌러 벌리며 황제가 음울한 미소를 지었다.
연이어 흐른 것은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네 앞에 자리한 내가 바로 하늘의 아들이다.”
그 순간 황제의 눈에는 광기가 들끓고 있었다.
위 씨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진득한 광기가 말이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천인은 굳은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다가 문득 날카로운 고소를 흘리며 감옥 안에서 날개를 퍼드덕거렸다. 깃을 세운 공작처럼 날개는 넓게 펼쳐져 위 씨의 시야에 가득 차 있었다.
그에 위 씨는 동공을 흔들며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미소를 흘리며 천인이 입술을 달싹거린다.
그리고 빙긋 웃는 얼굴로 속삭거리기를.
“내 피를…….”
위 씨의 눈을 부릅뜨게 한 말이었다.
실로 우아한 목소리로 속삭거린 말.
“내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시오.”
그 말을 내뱉을 때 천인은 위희평을 영혼을 꿰뚫는 눈으로 응시하며 웃고 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을, 미래를 읽은 것처럼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는 그 천인의 얼굴을 마주하며 위 씨는 그 순간 얼굴을 흉흉히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귓전에 울리는 낙음은 바로 마음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흔들리는 영혼을 응시하며 천인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황제는 만족에 찬 미소를 흘린다.
“소평.”
흥분에 고조된 사내의 얼굴을 고개를 들어 마주한 순간.
“이제야…… 우리는.”
환희에 뒤덮인 황제의 목소리에 위 씨는 결국 얼굴을 무너트릴 수밖에 없었다.
지하 감옥에 울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위 씨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어느 처절했던 날의 기억.
피투성이가 된 원선화를 껴안고 속삭였던 말들.
‘태자! 제가 어찌 태자의 아비입니까!’
아, 거기서부터가 잘못이었나?
* * *
천작궁을 밟자마자 위 씨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
칼처럼 단호한 말이었다.
위 씨는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작궁으로 돌아오는 내내 제게 다정히 말을 거는 황제를 무시하고 창백한 얼굴에 땀을 흘리던 그는, 궁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제 머리에 꽂은 비녀를 벽에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던 것이다.
그리고 예민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길.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말은 방황하고 있었다.
초조함이 스치는 얼굴. 이를 악물며 제 어깨를 부여잡은 황제를 노려보며 위 씨가 언성을 높여 다시 말을 내뱉는다.
“나는 그 역겨운 짓을 하지 않습.”
“할 수 있어.”
그리고 황제는 그의 뺨을 커다란 손으로 부여잡아 말을 막았다.
“할 수 있어, 너는.”
새까만 눈이 번뜩거린다. 위 씨의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대며 황제는 입술 끝을 비틀어 음울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돌연 사내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정적이 자리한다.
정색을 한 사내의 얼굴이 북풍한설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가 무얼 못하지?”
“…….”
“무얼 꺼릴 게 있지?”
그 순간 위 씨는 몸을 뻣뻣이 굳히며 긴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역겨운걸.”
벌려진 입술 사이로 떨리는 숨결이 흐른다. 위 씨의 눈이 풍랑을 맞은 돛단배처럼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황제는 진한 미소를 흘렸고, 그렇게 긴장된 침묵은 잠시간 유지되었다.
그 끝에 위 씨의 붉은 입술이 잘게 떨리며 열리고, 그 사이로 지독히 갈라진 음성을 흘린다.
“왜 그렇게 말을 하지?”
황제를 고소하게 만든 말이었다.
“우리는, 아니라 말을 했잖아.”
“그래? 아아, 맞아. 그랬어.”
위 씨의 귓전에 황제의 냉랭한 말이 내려앉는다.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에 위 씨는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황제의 팔뚝을 부여잡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우리는 스승과 제자라고!”
거의 절규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냥, 그냥 일탈을 저질렀던 것뿐이라고…….”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진다.
“너는 아니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왜……!”
그간 모른 척 위화감을 외면해 왔었다. 그러나 지금 제 앞에 자리한 황제의 의미심장한 얼굴에, 그 묘한 어감을 띤 말에 위 씨는 더 이상 저 자신을 속을 수 없어 울부짖어야만 했다.
“왜, 왜 그렇게 말해!”
그는 황제의 가슴을, 어깨를 때려대며 거의 절규하고 있었다.
그날 태자는 제 몸을 부여잡고 울어댔다.
정말로 당신이 모후와 사랑을 했냐고, 그럼 저의 근원이 누구냐…….
그리고 위 씨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원선화의 혼을 마주하고 그날 선택했다.
가슴을 헤쳐 새하얀 가슴을 보여주며 속삭이길.
자, 나는 음탕한 태자의 계집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흘러나온 사내의 감미로운 목소리.
위 씨는 그 말에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거리다가 황제를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핏발 선 눈을 내려다보며 황제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견디고 있다 생각해?”
그런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위 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짓씹은 음울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황제의 반응은.
“고통?”
묵직한 목소리가 내려앉고, 고소가 흐른다. 위 씨의 얼굴이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거잖아!”
쨍그랑!
탁상 위에 놓인 화병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흥분한 위 씨가 의자에서 몸을 들썩거리며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속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응? 응?!”
그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일 년의 기억.
“그런데 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황제의 손에 얻어맞고 굴욕을 자초했다.
죽음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지친 영혼을 이끌어 이곳까지 왔다.
“왜…? 왜? 왜? 왜! 왜!!”
오로지 한 사람 때문에!
오로지 하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왜 그리 말을 해!”
발악하던 위 씨를 묵묵히 바라보던 황제는 어느 순간 얼굴에 띤 미소를 싸늘하게 지우며 그를 향해 빠르게 손을 뻗었다.
“날 사랑한다 했잖습니까.”
“하윽!”
위 씨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제 어깨를 부여잡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신음하는 그를 황제는 잔혹한 빛이 스치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날 사랑해서 내 곁에 있잖아.”
음산한 말에 위 씨가 산발이 된 얼굴 사이 드러나는 붉은 입술 끝을 비틀며 웃는다. 황제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가던 그 순간 말은 나긋하게 흘렀다.
“그래, 너를 사랑했지…….”
황제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코앞에 자리한 황제의 얼굴을 풀린 눈으로 올려다보며 위 씨는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말을 잇고 있었다.
“……널 정말 사랑했지. 너를.”
안개가 낀 흐릿한 눈은 추억을 회고하고 있었다. 그 눈은 황제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 영혼을 바쳐서 널 사랑하겠다 다짐했어.”
과거의 그 누군가를 보고 있었지.
“불쌍한 너를 사랑하려 했단 말이야…….”
그는 악을 모르던 순수한 영혼을 회고하고 있었다.
황제의 목젖이 잘게 떨리고, 총비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손등에 퍼런 핏줄이 돋았다. 황제는 충혈된 눈으로 마치 증오하는 것을 노려보듯 위 씨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위 씨는 그런 그를 입술에 가는 미소를 지으며 응시할 뿐이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실실 웃음을 흘리며, 차가운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지.”
그리고 마침내 정적을 깨고 흘러나온 음산한 목소리.
“그리고 일 년 새 깨닫게 되었습니다.”
“…….”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그 말을 내뱉고 황제는 힘없이 웃었다. 고개를 숙여 위 씨의 입술을 물어뜯곤, 피를 핥아먹었다. 바로 위 씨의 얼굴이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위 씨는 그 입술을 피하려 몸을 바둥거렸다. 진실로 그것을 끔찍해하며 몸부림을 치는 그를 향해 황제는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짐승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스승님.”
흑, 흐으윽.
고막에 내려앉는 서러운 울음소리에 황제는 허무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린다.
“스승.”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는 듯 잠시간 입 안에 스승, 스승. 말을 되뇌던 황제가 문득 차갑게 눈을 빛내며 눈물범벅이 된 위 씨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 주지.”
그러곤 눈물을 흘리며 버둥거리는 위 씨의 반항을 제압하곤 황제는 그의 얼굴 곳곳에 입술을 퍼부으며 그를 희롱했다.
“한때 진실을 견디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내가, 그깟 인륜에 얽매어 그대를 거부했던 적이. 그대를 사랑한 나를 거부했던 적이…….”
진해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위 씨의 어깨를 쥔 손에 그악스럽게 힘을 준 황제가 또렷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함께하던 나날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놔! 이, 이것, 아으으윽!”
“……사랑하는 마음에 그런 것 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는 위 씨.
제 총첩을 잠시간 내려다보던 황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대를 원해.”
그러곤 황제는 버둥거리는 위 씨의 허리를 두꺼운 팔로 감싸들곤 그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뜨거운 숨결이 위 씨의 살결에 스치고 음울한 말이 쏟아져 내렸다.
“사랑하는 날 위해 내 결핍을 채워 주시오.”
“아, 아아악!”
“천자의 사랑에 인륜 따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짐과 사랑을 하는데 그따위 것은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어떻게…!”
울부짖는 위 씨의 뺨을 핥으며 황제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허흐흑, 절규하는 그의 뺨에 뺨을 비비며 황제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미래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예?”
목소리는 황홀함에, 몽상에 잠겨 있었다. 마치 부모의 애정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황제는 칭얼거리는 어조로 말을 잇고 있었다. 그 애처로움, 연약함. 평소에 그답지 않은 모습을, 그러나 위 씨는 알지 못한 채 눈물 콧물로 더러워진 얼굴로 절규하고 있었다.
“미쳤어! 너는 미쳤어!”
미쳤다고?
황제의 입술 밖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렀다. 슬픈 빛이, 처연한 빛이 감돌던 얼굴은 단숨에 잔혹한 포식자의 것으로 변모하고야 만다. 의태를 벗어던지듯 그는 다시금 잔혹한 얼굴을 되찾고 입술 끝을 비틀고 있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빈정거리는 목소리.
“그걸 이제 알았어?”
“너, 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위 씨가 그를 노려본다. 황제는 그런 그를 조롱하듯 말을 이을 뿐이었다.
“짐의 총첩은 항상 어리석군. 천자가 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알지 모르다니. 짐을 거역할 수 없다는 걸 모르다니. 사내구실조차 할 수 없는 추접한 몸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하곤. 응? 왜 나의 소의는 주제를 모르는 건가.”
그 말은 위 씨의 눈을 돌게 만든 것이었다.
“너 이!”
짜악 소리가 흐르고, 황제의 뺨이 붉게 물든다. 도저히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체념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위 씨가 묻어 두었던 한을 폭발하여 광인처럼 굴었다.
“너, 이! 이, 이!”
짜악! 짜악!
그리하여 그는 악에 받쳐 몇 번을 더 황제의 뺨을 때리며 손찌검을 했고, 분노를 참지 못해 충혈된 눈을 부릅떴던 것이다. 감정은 폭발한 후였고, 그는 진심을 토로하는 자리에서마저 저를 조롱하는 황제를 참지 못했다. 황제는 그를 막을 생각은커녕 낄낄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소평, 소평. 왜 그걸 몰라?”
이제 충분한가? 이제 화가 풀려?
그리고 황제는 위 씨의 팔에 힘이 풀릴 무렵에 돌연 정색하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가는 손목을 부여잡아 비틀며 내뱉은 말.
“옛날의 과오와 단절하고 우리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위 씨의 얼굴이 새하얘진 때였다.
“너, 너 이 미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거라고.”
황제는 위 씨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애욕이 가득한 시선은 목적이 있다.
목소리는 고저 없이 흘렀다.
“당신의 배로 내 아이를 잉태하고, 나는 그 아이의 아비가 당신은 그 아이의 어미가 되어 행복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그 말을 내뱉곤 황제는 위 씨의 손목 안쪽에 뜨겁고 건조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걸 넌 왜 모르지?”
간절한 눈으로 위 씨를 올려다보며 황제는 긴 시간 손목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그를 지분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달아오른 입술을 떼고는, 작게 입술을 달싹거리며 속삭이듯 말을 내뱉기를.
“당신이 앗아간 내 것을 돌려줘.”
그 말의 간절함에 위 씨는 그저 처참히, 처참히 울 뿐이었다.
삶이 고통스럽다!
위 씨는 더 이상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삶이 너무 지독하여 더는 맨 정신으로도, 미친 상태로도 살아갈 수 없었다.
황제의 손이 손목을 놓은 순간, 위 씨의 몸이 마치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땅 아래로 꺼져 갔다. 폭포수 같은 흑발이 바닥에 너울 치고 있다. 몸을 들썩거리며 통곡하는 위 소의를 지그시 바라보던 황제의 입술에서, 침묵 끝에 느릿한 목소리가 흘렀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를 끝으로 천작궁 안에 짐승의 울음이 울려 퍼졌다.
* * *
사내는 간절한 염원에 움직이고 있었다.
실로 간절한 그 소망은, 바로 위 씨를 절망케 한 것이었다.
위 씨는 실로 경악하며 천인의 말을 부정하려 들었으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그저 열렬한 감정에 불타오르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당분간은 천작궁에 오지 못할 것 같다, 소평. 시험을 해 볼 것이 있어.”
그 말을 내뱉곤 황제는 또다시 천작궁에 발길을 끊었던 것이다.
그 시험이 무엇인지 황제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게 어떤 것인지 위 씨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는 눈이 멀었고, 또 잔학한 짓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내였으므로. 그리하여 그는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사람새의 운명을 동정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를 흘리며 그 생각을 거두고야 말았다.
누가 누구를 연민한단 말인가?
저를 측은히 여기는 천인의 눈을 떠올리며 위 씨는 그저 허탈히 웃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위 씨는 열병을 앓으며 천작궁에 칩거했다.
실로 심각한 열병을 말이다.
“소, 소의께서 잘못되시는 것 아닙니까?”
“폐하게 고해야 함이….”
유 상궁과 천작궁의 궁인들은 위 씨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허둥지둥하며 종국에는 황제를 찾았으나, 뜻밖에도 황제는 그에게 태의를 보낼 뿐 천작궁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태의는 위 씨의 몸을 고치지 못했다.
그가 진료를 대충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황제의 각별한 명을 받았으므로 위 소의의 몸을 꼼꼼히 살폈으나 병명을 찾지 못해 고개를 절레 흔든 것이다.
다만 황궁에서 뼈가 굵은 태의는 위 소의의 평소 좋지 않던 몸 상태를 알고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디 환관 중에서 이런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많소.”
“혹여 엄인(고자)이 되는 과정에서 무어가 잘못된 것입니까?”
“사람의 몸은 원래 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지. 양물을 도려내는 일은 위험하지만, 막상 엄인이 되고 난 후에 대부분의 엄인은 장수하오. 성별에 따라 치우쳤던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탓이지. 다만 엄인들은 본래 고질병이 있소.”
“그게 무슨?”
그리고 이어진 말에 유 상궁은 그제야 위 소의의 병명을 알 수 있었다.
“몸의 병이 아니지.”
그리 말을 내뱉은 태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침상 위에 힘없이 웅크린 위 소의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유 상궁은 그저 쭈뼛거리며 위 소의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위 소의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그는 끼니를 거르며 침상 위에 웅크려 그저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 소의가 황제의 총애를 빼앗겨 성이 났다고 말을 하곤 했다. 천인이 갇힌 지하 감옥으로 가던 날, 황제의 방문은 비밀스럽게 진행되었으므로 육궁 사람들은 그가 지금까지 버림받았다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본디 문안도 거르지 않던 위 소의가 먹고 마시기를 거부하며 천작궁 침상에만 웅크려 있으니, 어느 날은 원앙궁에서 사람이 나오기까지 했다.
“어째서 위 소의는 궁의 기강을 이리도 무시하는가?”
황후의 측근 상궁은 위 소의의 무도함을 지탄하며 그에게 후궁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라 훈계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서도 위 소의는 꼼짝하지 않았는데, 그는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기운 없는 지친 얼굴로 원앙궁의 상궁을 바라보아 그녀의 두려움마저 불러일으켰다.
“위 소의가 조금 이상합니다.”
“뭐라고?”
본디 위 소의가 실망하여 떼를 쓰는 줄로만 알았던 원앙궁 상궁은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웃전에게 말을 올릴 수 있었다.
“그가 황제의 관심을 받으려 그런 게 아니냐? 정말 병이 들었어?”
“예에. 확실히 뺨이 홀쭉하여 야윈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혈색도 잿빛이라 마치 죽기 직전의 병자와 같았습니다.”
“……어째서?”
그야 모르지.
머뭇거리는 상궁의 얼굴에 그제야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을 깨달은 황후가 입술을 부리 닫듯 딱 다물었다. 상앗빛 얼굴에 감정이 물결치고 있었다.
상궁의 얼굴이 오묘한 빛으로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상궁이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는다.
“어째서 표정이 그러십니까?”
“……뭐를 말이냐?”
“그 추잡한 것이 실총했으니 기뻐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심스러운 상궁의 말에 황후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짤막하게 말을 내뱉는다.
“그런데.”
어딘가 예민해 보이는 말. 그에 상궁은 잠시간 말을 망설이다가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소 황후의 몸이 흠칫한 때였다.
“……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여인이 저도 모르게 뺨을 손등으로 쓸며 몸을 쭈뼛거린다. 상궁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황후의 얼굴이 심히 굳어졌다가, 이윽고 사납게 일그러진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매섭게 떨어진 말에 상궁은 이크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제 눈치를 보는 상궁의 얼굴을 황후는 희미하게 굳어진 얼굴로 바라볼 뿐이다.
“나가라.”
축객령을 듣고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여인을, 황후는 심란한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은 자세 그대로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점거한 것은 원앙궁에서 보았던 그 사내의 비통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소 황후의 단정한 얼굴에 순간 망설임이 스친다.
‘……내가 기뻐해야 한다고?’
그래도 사람의 인정이란 게 있지 않은가?
물론 위 소의가 먼저 무도하게 행동하여 문안을 거르고 황후의 존엄을 훼손한 것은 맞다. 그러니 측근 상궁의 말은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닌데, 어쩐지 소 황후는 그 말이 탐탁지 않다 못해 신경이 쓰였다.
원앙궁에서 보았던 그 쓸쓸한 얼굴이 계속 떠올라, 그녀는 차마 위 씨의 불행을 완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혹여 모함을 당하면 어찌하냐는 궁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천작궁을 방문한 것은.
“몸은 좀 괜찮은가?”
그리고 소 황후는 위 씨의 처량한 얼굴을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그에 대한 미움을 완전히 잊고 그를 동정하고야 말았다. 그는 침상에 앉아 지친 얼굴로 소 황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른 초반의 한창 열매를 매달 완숙한 외모와 달리, 그 얼굴은 팔순 노인네와 같아 소 황후는 차마 할 말을 잊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폐하…… 께서는 정무로 바쁘셔서 못 오시는 거야.”
참으로 배알도 없지?
제게 무수히 많은 조롱을 안겨 준 이를 동정하고야 말다니. 이것이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실로 무른 행동이란 걸 안다. 아버지께서 꾸중할 일임을 알고.
“폐하께 말씀을 드려 보겠다.”
그러나 어쩐지 저 흉측한 추물을 소 황후는 완전히 미워하지 못했다.
긴장을 삼키며, 애써 무너지는 얼굴을 수습하며 소 황후가 위 씨를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째서일까. 저 사내가 입궁하던 날 슬픔과 탄식이 서린 시선으로 절 바라본 게 신경이 이리 쓰이는 걸까? 그가 황제에게서 저를 비호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간간이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짙은 피로감이 거슬려서인가.
갖은 모욕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인형처럼 앉아 있는 그가 마치 삶을 포기한 듯하여, 껄끄러움을 느끼는 건가. 무한한 총애에도 그가 보이는 그런 무기력한 모습이 무언가 거슬려서.
……그래서 그를 동정하게 된 걸까.
“소의, 너를 더욱 신경 쓰도록.”
그리하여 소 황후는 그에게 선의로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그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뜻밖에도 위 씨는 소 황후의 그런 말을 힘없는 목소리로 끊으면서 눈을 감았다.
황후의 당황한 시선이 그의 얼굴을 쓸었다.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창백한 얼굴은 마치 죽기 직전 병자의 것과 같았다.
소의, 소의?
황후는 당황하여 그를 연신 불렀으나 위 씨는 결국 고개를 돌리지 않고 침상에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척추가 도드라지게 공처럼 몸을 만 위 씨의 얼굴이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황후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고 경악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폐하께서 너를 때리셨느냐?”
바로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곧은 목. 그곳에 보이는 푸른 손자국을 발견한 탓이었다. 기겁한 황후가 위 소의의 헐렁한 침의를 빠르게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다.
“아!”
그녀는 전율에 휩싸여 몸을 떨며 한참을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한참을, 한참을….
“황후.”
한참을 말이다.
“궁궐에서 그런 온정은 필요 없습니다.”
걷어붙여진 소매를 느릿하게 내리며 침상 위의 후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나는 그대에게 죄인입니다.”
“…….”
“……나는 마마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았습니다.”
조소를 흘리며 그는 어둠 속의 짐승과 같은 샛노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얼굴 근육이 뒤틀려 마치 수라와 같은 얼굴을 한 위 씨가 눈알을 굴려 입을 막고 몸을 움츠린 채 떠는 황후를 응시한다.
가엾은 것.
측은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사내는 말을 잇는다.
“사람처럼 굴지 마세요.”
황후는 비명을 삼키며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의 몸은 벌벌 떨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욱, 우욱. 헛구역질을 하는 그녀의 귓전에 느릿한 말이 내려앉는다.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살아야 합니다…… 마마.”
황후는 한참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을 떨어야만 했다.
위 씨는 알맹이가 없는 공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렇게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끝에 흘러나온 떨리는 음성.
“아, 아팠겠구나.”
바로 위 씨의 창백한 얼굴을 더욱 새하얗게 질리게 한 말이었다. 냉소하던 사내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시고야 만다. 실로 믿기지 않는 말을 들은 듯 그는 제 앞에서 몸을 웅크리며 공포에 떠는 작은 여인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을 먹은 솜처럼 젖어 들어간 먹먹한 목소리가 흘렀다.
“너는 아팠겠구나.”
그리 말을 내뱉곤 황후는 더 이상 참지 못해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파르르 떨리는 짙은 속눈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위 씨의 푸르스름한 얼굴엔 불신과 격정이 물들어 있었다.
“소의.”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가까스로 얼굴 표정을 수습한 황후가 몸을 펴고는 그를 물기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린다.
“너, 너는 폐하의 진면목을 알았구나.”
그리 말을 내뱉는 여인의 손에 위 소의의 손목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마르고 비틀어진 손을 노려보던 여인의 입술이 잘근 물리고.
“그래서 날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구나.”
그 순간 위 소의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져 간다.
그리고.
“너는 그래서 날 잘 대해 주었…?!”
짜악!
살을 부딪치는 소리가 울음을 헤치고 살벌하게 방 안을 울렸다. 황후의 눈이 불신으로 뜨인 때였다.
“너, 너…?”
경악이 물결치는 여인의 뺨이 붉게 물들어져 있다.
그녀는 지금 일어난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에 경악하고 있었다. 제 뺨을 때린 위 소의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며 황후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술을 연다.
“꺼져.”
그에 앞서 위 소의의 입술 밖에 흐른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뭐, 뭐?”
망연한 마음이 서린 황후의 말. 위 소의가 그를 노려보며 흉악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른다.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지라고!”
그리 말을 내뱉으며 저를 향해 베개를 던지는 위 소의에 황후가 식겁한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나가! 나가!”
더 무어라 말을 하려던 황후는 발작을 일으키며 저를 쫓아내는 위 소의에 결국 뜻을 꺾고 도망치듯 천작궁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여인이 떠난 자리.
위 씨가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발작하듯 몸을 떨며 웃어 재끼곤, 사지를 뒤틀다가 어느 순간 끈이 떨어진 인형처럼 침상에 풀썩 쓰러져 죽은 듯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침상에 늘어진 몸은 한참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흐른 그 어느 순간의 일.
“…….”
언제 발작을 일으켰냐는 듯이, 언제 죽은 자처럼 쓰러졌냐는 듯이 침상에서 스르르 몸을 일으키곤 사내는 평온한 얼굴로 침의의 허리띠를 풀었다.
그리고 사내가 한 일은 바로 탁자 위에 올라가 기둥에 허리띠를 묶는 것이었다.
* * *
“소평!”
천작궁 복도를 가로지르는 기쁨 어린 목소리.
“소평! 소평!”
천자는 어전 태감 성은자의 얼굴을 곤혹스럽게 할 만큼 체통을 잃고 행동하고 있었다. 실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쾅쾅쾅 복도를 밟고 천작궁에 들어선 황제가 문을 활짝 열며 기쁨 어린 목소리를 흘린다.
“됐다! 모든 게 끝났…….”
그러나 그의 기쁨에 찬 목소리는 문을 연 그 순간 끊기고야 말았으니.
“……소의?”
순식간에 새하얗게 식어 내려간 황제의 턱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먹먹한 목소리가 흐르고, 경황에 흔들리는 시선이 멍하니 대들보를 바라보았다.
“아.”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는 인형(人形)을 멍하니 바라보며 원선화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