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三. 축생도(畜生道) (3/17)

三. 축생도(畜生道)

“태자! 제가 어찌 태자의 아비입니까.”

피비린내 나는 대궐 안에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다면 제가 이리 음탕할 수가 없잖습니까. 태자가 위 씨라면 제가 태자의 남근을 받고 당당히 교성을 낼 수 있습니까? 부자라면 어찌 그렇게 속궁합이 맞을 수 있습니까?”

어, 어어. 처절히 울음을 터뜨리는 청년의 보송한 뺨을 쓰다듬으며 위희평은 울며, 혹은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태자의 남근을 잘 조였잖습니까? 제 속살이 맛있으셨습니까?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금수도 아닌데. 태자와 저는 하늘이 내어주길 잘 맞는 몸입니다. 태자의 남근에 평아가 자지러지게 울었지요.”

“태부, 태, 태부.”

“그리할 수 없어요. 아, 아아. 금, 금수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어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하는 말. 귀비의 옷을 헤쳐 탐스러운 가슴을 내보이고 하는 말.

자아, 만지세요.

그 말에 태자는 경련을 일으키며 처절한 울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런 그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제 가슴 위에 누르며, 위희평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흐, 흐윽. 저, 저는.”

“자아, 여기 만, 만져 보세요. 그, 그럴 수가 없어요.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그래,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는 노릇이지.

“아, 빨아 주세요. 빨, 빨아 주세요. 흐응. 전, 전하. 전하의 첩이 되겠습니다.”

“태, 태부. 태부.”

“태자, 태자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황제의 후궁이 되겠습니다. 신첩을 가져주세… 아아아!”

절망이 무르익고, 바야흐로 꽃이 개화한 날이었다.

* * *

그때는 몰랐지, 그게 진정한 시작이란 사실을.

* * *

효정(孝正) 원년(元年), 원앙궁(鴛鴦宮).

“헛소리를 지껄이고 당신을 고문했던 그년의 사지를 찢어 죽였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비의 궁을 울린다. 처참히 산발을 한 사내가 입술이 버석 까진 초췌한 모습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폭풍이 휘몰아친 그날에, 원선화와 자진해서 몸을 섞고 난 이후 그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금철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처분하여 입을 막았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 터무니도 없는 말은 퍼져 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날에 죽은 사람처럼 생기를 잃어가는 위희평을 고요하고도 집요한 눈으로 바라보며, 원선화가 느릿하게 입술을 연다.

“건녕전으로 처소를 옮겼습니다.”

“…….”

“그곳에 방이 많더군요. 스승님이 머무실 장소도 마련했습니다. 호화로이 방을 꾸미라 명을 했으니……부족하실 것 없으실 겁니다.”

“…….”

“원앙궁은 불길하니,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위희평의 몸이 잘게 떨리곤, 그의 두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온다. 흔들리는 눈으로 원선화를 바라보며 잠시간 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는 어느 순간 느릿하게 입술을 열어 ‘태자’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원선화의 몸이 멈칫하고, 그의 입가에 우는 듯한 미소가 서린다.

“……화랑이라 불러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그리고 돌아온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위희평은 잠시간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윽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화랑.”

그리 말을 내뱉는 위희평의 청아한 얼굴엔 허탈한 미소가 감돌아 있었다. 원선화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잠시간 입술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어둠이 드리운 사내의 얼굴에 일견 감정이 요동치고 동요가 서린다.

침묵 끝에 원선화는 숨을 들이켜며 다시금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추후 스승님을 후궁으로 들인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설령 지위를 보장치 못한다 하더라도 제 마음속 정인은 스승님 한 사람뿐인 걸 잊지 마십시오.”

“…….”

“오로지 스승님만을 연모합니다.”

“…….”

“스승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 드리겠습니다.”

굳건하게 입술을 다물던 위희평이 입을 뗀 때였다.

“그럼.”

“…….”

“……아닙니다.”

그러나 위희평은 그 사이로 온전한 말을 내뱉지 못했다. 말을 망설이다가 입술을 다문 위희평에, 그 순간 원선화의 눈이 한층 어두워진다.

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원선화의 입술 사이로 흐른 말이었다.

“스승님.”

“…….”

“저를 사랑하시지요?”

그 말에 위희평은 망설이지 않았다.

“태자.”

방 안에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 원선화의 몸이 멈칫하고야 만 때였다. 원선화의 두 눈에 눈조차 깜빡이지 않은 채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이는 기이하리만치 창백한 얼굴 위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저는 이 세상에서 태자를 가장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 말을 내뱉은 위희평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원선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몹시도 다정한 손길로 태자의 아직은 솜털이 남은 앳된 얼굴을 쓰다듬었고,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숙여 태자의 입술에 입술을 맞췄다.

눈을 감은 위희평의 눈썹이 잘게 떨리고 있다. 마른침을 삼키는 그의 목젖이 떨려 오고, 느릿한 숨결이 입술 사이로 흐르고.

그때까지도 눈을 뜨고 있던 원선화가 어느 순간 눈을 감고 암흑 속에서 입술에 이어지는 온기를 즐겼다.

접문이 끝나고 제 앞에서 힘없이 웃는 위희평을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며 원선화는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저희는 사랑을 할 겁니다.”

위희평의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가 번지게 한 말이었다.

* * *

“오라버니.”

교교한 달빛을 닮은 여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린다. 구렁이처럼 단단한 사내의 몸을 양팔로, 그리고 양다리로 얽으며 여인이 새빨간 입술을 사내의 귓가에 들이댄다. 그리고 속삭거리기를.

“선아의 안에 들어오세요. 오라버니의 양물을 넣어주세요.”

그 순간 사내는 풍만한 가슴을 단단한 가슴으로 짓누르며 헉헉, 더운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 년 후 어느 날 도래한 축생도.

* * *

‘…연선 누이.’

마디가 도드라진 큼지막한 손이 부드럽게 옷고름을 풀어 내리고 있었다. 새하얀 옷깃 사이 살결은 눈처럼 희고 보드랍고, 언뜻 보이는 통통한 갈색 유두는 보석이 꿰어져 있다.

“스승님.”

무언가를 깊게 갈구하는 듯한 목소리에 오발선빈(烏髮蟬鬢)의 머리를 늘어트린 아름다운 사내, 위희평은 고개를 들어 투명한 보석 같은 눈으로 호롱불 빛이 드리워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간절함이 섞인,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애타는 청춘의 얼굴.

그를 바라보던 위희평의 얼굴에 균열이 희미하게 서린다. 균열 사이로 보이는 것은 그리움에 젖은 사내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봉합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희평이 문득 몸을 움직여 사내의 입술에 보드라운 입술을 맞춘다. 그 순간 아스라한 탄식이 누군가의 입술 밖으로 흘렀고, 말캉한 입술을 핥는 원선화의 얼굴은 곧 황홀경으로 젖었다. 호박색 불빛 아래 위희평의 창백한 얼굴에 조금은 불안한, 그러면서도 간절함이 서린 미소가 스쳤다.

호롱불 아래 넘어지는 몸.

접문이 끝나는 순간 원선화가 완전히 이성을 잃고 위희평의 어깨를 두 손으로 밀어 침상 위로 넘어트린 것이다. 허겁지겁, 조급한 손길로 옷을 풀어헤치고 이윽고 원선화가 제 허리춤을 끌어내려 두툼한 성기를 꺼내고 속삭거린다.

“넣어도, 넣어도….”

더듬거리는 말이었다.

순간 희미하게 일그러지는 원선화의 얼굴에 위희평이 어깨를 움찔하다가, 몸을 서서히 돌려 등을 보인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를 들으며 위희평이 한 일은 바로 기름진 살을 손에 쥐어 양껏 벌리는 것이었다.

원선화의 시야에 드러난 자극적인 광경.

풍만한 엉덩이 사이.

그곳에는 모든 게 있었다.

그 모든 게.

숨을 멈춘 사내의 귓전에 아스라이 흐트러지는 운무와 같은 목소리가 더듬더듬 흐른다.

“예에, 태자. 내게 넣어도 됩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선화는 그에게 달려들어 검붉은 성기를 새하얀 둔덕에 푸욱 깊게 꽂아 넣었다.

* * *

“오라버니.”

백합을 닮은 여인이 슬픈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화를 꼭 지켜줘야 해요.”

선명한 붉은색의 입술을 달싹거리며 내뱉은 말이었다.

“당신과 나의 화를. 우리의 화를 당신이 꼭, 꼭 지켜줘야 해요.’

그때 위희평은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맹세했었다.

‘걱정 말거라. 나는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 아이를 지키겠노라고.

* * *

“하흑!”

꽃같이 달아오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신음이 애간장을 녹일 듯 교태롭다.

새하얀 이불보에 얼굴을 비비며 위희평은 짙은 속눈썹을 잘게 떨었다. 침상 귀퉁이를 애처롭게 부여잡으며 그는 흐릿한 두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뒷문을 꿰뚫는 살 몽둥이. 익숙해지지 않을 만큼 무지막지한 물건에 쑤셔지며 위희평은 숨을 하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키고 있어요. 누이. 나는 지키고 있어.’

고통인지 쾌락인지 알 수 없는 강렬한 자극에 휘말려 울부짖으며 속으로 되뇐 말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따랐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날 놓아달라고! 나를 놓아줘!’

그 순간 마음속에 맴도는 의심.

“하윽!”

침상에 네발로 엎드린 짐승이 산발이 된 머리를 숙이며 허리를 익숙히 움직였다. 폭포수 같은 머리카락 사이 두 눈이 부릅떠져 있었다.

‘과연?’

그것은 새빨간 입술로 호선을 그리는 여인의 환영이었다.

‘정말 과연 그걸 내가 원했다고요?’

경멸이 스치는 창백한 얼굴을 마주하며 위희평은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 화와 붙어먹을 수 있지요?’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나는!

진실을 직시한 순간 영혼은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만다.

“욱, 우욱…….”

구역질을 삼키며 위희평이 몸을 숙인다.

그는 날개뼈가 도드라진 채 몸을 떨었으나, 원선화는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정사에 심취해 무너지는 그의 둔부를 억센 손으로 부여잡아 당기고 철퍽철퍽 둔덕을 범할 뿐이었다.

“아, 아음!”

뱀처럼 몸이 뒤틀리고, 사내는 마침내 구역질이 아닌 교성을 흘리고야 말았다. 항문을 범하는 거물에 뒤를 내어준 채 서서히 그는 흥분에 젖고 있었다.

음행에 익숙해진 몸은 사내를 짐승으로 만들었으므로.

그는 곧 아무런 생각도 있고 정사의 열락에 젖어가 ‘아, 아!’ 높은 교성을 지르고 울부짖었던 것이다.

장지문 사이, 두 인형의 그림자가 서로 흘레붙는다.

‘암컷’은 궁둥이를 치켜든 채 뒤를 내보였고, ‘수컷’은 그의 뒤를 찌르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저 원초적인 짐승의 정사였고 또 축생도였으니….

“아, 태자. 아! 흐윽!”

교성을 흘리는 이의 살결에 코를 묻으며 원선화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곤 향기에 취한 얼굴을 한다.

기름진 둔덕에 질퍽한 소리를 내며 철근 같은 성기가 왕복한다. 양물을 받는 이는 허리를 요염하게 흔들며 기교를 부리는 중이었고, 그 방사에 능숙한 움직임에 이끌려 성인이 된 지 이 년이 채 되지 않은 사내는 빠져들고 있었다.

“태, 읏. 아, 태….”

둔부를 뭉근히 돌리며 입술 밖으로 흘리는 교태로운 목소리. 그의 골반을 부여잡고 움직이던 거구의 젊은 사내가 헉헉 더운 숨결을 내며 짓씹듯 말을 내뱉는다.

“이제, 황제입니다.”

그러곤 그는 뒤를 쑤시는 움직임을 거칠게 하며, 제 앞에 웅크린 암컷의 울음소리에 박차를 가했다.

“아, 으으음!”

암고양이처럼 높고 길게 울음을 터뜨리는 스승의 가는 허리를 솥뚜껑같이 두꺼운 손으로 잡으며 사내가 신음을 흘리고,

“화랑(華郞).”

그의 입술로 흘러나온 중저음의 목소리가 강요하는 것.

“화랑이라 부르셔야 합니다, 이제.”

위희평의 눈에 문득 보석 같은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어둑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사내가 문득 조용히 고개를 숙여 힘없이 우는 이의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댔다. 화인을 입을 듯 살결이 뜨거워지고, 곧 위희평은 모든 고민을, 아니 모든 정신을 놓고 정사에 몰두하며 허공에 높게 치켜든 엉덩이를 양방향으로 흔들며 양물을 아랫구멍으로 먹어 삼켰다.

“네, 네에.”

그러곤 이불보에 뺨을 비비던 중 문득 중얼거리길.

“네에, 화랑.”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원선화는 입가에 시원한 미소를 띠며 여유롭게 입술을 열었다.

이윽고 흘러나온 감미로운 목소리.

“그래, 평.”

“응, 아.”

“소평…… 나의 소평.”

사내의 두 눈이 어둠 속 훤히 번뜩거리고 있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빛나는 눈이 응시한 것은 침상 위에 형광으로 빛나며 물고기처럼 널뛰는 몸이었다.

땀에 젖은 몸을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그것’을 잠시간 노려보던 원선화는 문득 고개를 숙이곤 그의 어깨에 이를 들이댔다.

새하얀 이가 으드득, 소리를 내며 그 투명한 살갗을 문다.

“하으으윽!”

애처로운 신음이 연이어 방 안을 울리고, 유연한 몸이 뱀처럼 뒤틀리며 꺾이고야 만다. 마치 사냥을 당한 물고기처럼 몸을 펄떡거리던 위희평을 강렬한 눈으로 노려보며 침묵 끝에 사내가 입술을 연다.

그리고 애처로이 속삭이기를.

“……나의 소평.”

그를 끝으로 사내는 입가에 미소를 지운 채 충혈된 눈으로 위희평의 허리를 거칠게 부여잡았다. 그러곤 그는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며 짐승처럼 날뛰었고, 장지문 사이로 또다시 교태로운 비명이 흘렀다.

* * *

언젠가 백합을 닮은 그 여인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라버니는 누군가를 향한 격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수수한 바람이 불었다.

비녀 사이로 빠져나온 흑발이 흩날린 때였다.

“한시 한때도 생각하지 않으면 오장육부가 뒤틀릴 만큼,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제외할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을 모조리 활활 불태울 만큼 누군가를 격렬한 감정을 품은 적이 있습니까?”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고연선을 위희평은 그때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군에게 주는 용포를 짓고 있었으니까. 벗에 대한 신의를 배신한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위희평은 한 사람의 아내로서 행동하는 연선을 마주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원선견을 원망하는 마음을 속으로 품곤 했다.

‘왜 내가 아닌 네가 먼저 그녀를 발견한 거지?’

원선견을 볼 때마다 흐르는 증오를 참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그런 스스로를 비난하며 목구멍이 굴뚝이 된 듯 턱 끝에 걸린 말이 있었다.

‘폐하. 당신은 내게 당신의 것을 나눠 준다는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연선이 몹시나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저는 있습니다.”

황룡이 수놓아지는 용포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며 위희평이 잠시간 침묵을 지킨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었으며, 그와 정반대로 고연선의 얼굴은 호수와 같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나긴 침묵 끝에 흘러나온 떨리는 음성.

“있어.”

“…….”

“난 너를 그리 사랑한다.”

그 갈라진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때 고연선은 위희평을 향해 입술 끝을 휘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붉은 입술이 달싹거리며 흘린 것은 나른한 음성이었다.

“저는 세 사람을 내 안에 품고 있습니다.”

* * *

새하얀 손이 뜨거운 열기가 남은 사내의 너른 이마를 끈다.

위희평이 몽롱한 얼굴로 저를 붙들어 안은 사내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중이었다. 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위희평이 원선화의 두툼한 가슴 위에 엎어져 색색 마른 숨을 내뱉고 있었다.

제 가슴을 베고 제 몸 위에 얌전히 늘어져 있는 사내를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던 원선화가 문득 숨죽여 웃었다. 어쩐지 공허해 보이는 미소를 위희평은 그저 모른 척 흘려보낼 뿐이었다.

원선화의 웃음은 차가웠고, 비통과 절망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리고 수치 또한.

“화랑.”

문득 방 안에 자그마한 목소리가 울린다.

호롱불이 흔들린 순간이었다.

원선화의 얼굴에 서렸던 절망이 서서히 가시고, 그는 제 두꺼운 가슴 위를 고양이 같은 혀로 핥는 위희평을 향한 애정을 대신 드러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손이 강인한 사내의 가슴을 더듬고 위희평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거린다.

“그대를 제 안에 품고 있어요.”

그러곤 그는 가는 숨을 내뱉으며 두꺼운 가슴 위에 제 뺨을 비볐다.

침묵하며 그를 바라보던 원선화가 손을 뻗어 위희평의 뒷머리를 꾹 누른다. 색열에 취해 나른히 눈을 깜빡이며, 위희평은 제 뒤통수를 누르는 손길에 순응할 뿐이었다. 땀으로 끈적해진 몸과 몸이 서로 맞부딪치며 심장 소리를 서로 전하고 있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한데 엉킨 이들의 얼굴은 그 순간 상대가 모르는 곳에서 감정을 잃고 있었다.

* * *

“하늘의 비익조가 되고, 땅의 연리지가 되어.”

억센 사내의 손에 가는 머리카락이 감겼다. 느릿하게 흐르는 목소리에 제왕의 품에 안겨 미인은 가뿐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지고의 연인이 되어 서로 사랑하기를.”

* * *

사실은 말이야.

“누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사실은, 사실은 말이지.

……그 감정이 사랑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어.

그녀가 불상 앞에 앉아, 유리처럼 텅 빈 눈으로 힘없이 웃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그때 대위 상장군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연선은 몹시 지쳐 보였고, 그럼에도 위희평은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끌어안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누이. 누이는 나를 원망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전신을 뒤덮는 전율에 휩싸여 몸을 떨곤, 그는 그저 진실의 그림자에서 몸을 빼내려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으니까.

“시원하군.”

그리하여 도래한 인세지옥.

햇살은 계곡의 맑은 물에 금파를 수놓고 있었다.

계곡물을 손으로 떠서 세수하는 고연선의 자식을 위희평은 천막 아래 의자에 기대어 앉아 바라보는 중이었다. 종아리까지 바지를 걷고 계곡물에 들어간 아직 선 굵은 인상의 청년. 성년이 된 지 삼 년이 되지 않은 그의 얼굴에는 아직 특유의 혈기가 남아 있다.

녹음 사이로 흐르는 햇볕을 받으며 놀고 있는 그의 얼굴이 궁궐 안에서 보는 것과 사뭇 인상이 달라 위희평은 그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들어오십시오, 스승님.”

그러던 와중에 원선화가 고개를 들어 올려 위희평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 평온한 얼굴에 위희평은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삼켜야만 했다.

“궁 안은 이목이 많지요?”

그날, 원선화가 건녕전에서 고연선의 옷을 입고 원선견과 정교하는 저를 발견했던 날. 그 이전에 원선화는 저러했다.

조금은 난폭하고, 오만했어도. 그 나이 또래와 같이 평범한 소년이었다. 위희평의 앞에서 특히 신이 나서 재잘재잘 말을 하던 사랑스러운 제자.

“가끔씩 이리 나와서 같이 숨을 돌려요.”

그런데 한순간 관계가 뒤바뀌어 버렸어.

“거리에 야시장이 열린다 합니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지요. 성은은 그러지 말라 했지만. 저는 야시장의 우육면을 한번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

“기억나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 스승님이 저를 데리고 잠행을 나온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말에 이르러 원선화는 무언가의 상념에 잠긴 듯한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그 아련한 얼굴로 떠올리는 추억을 위희평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날 여덟 살 어린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야시장에 나섰다. 궁궐 안의 공기를 답답해하는 그의 마음을 풀어 주려 무리를 해서 궁궐 밖 잠행에 나섰다.

“기억이 드문드문 나긴 하는데……. 그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스승님, 저걸 먹고 싶어요.

제 손을 잡아당기던 맑은 눈의 어린아이를 떠올리며 위희평이 그 순간 헛웃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돌아올 수 없는 기억이다.

제 앞에 반듯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원선화는, 그때와 같으면서도 또 다른 인물이었다.

관계는 바뀐 후였다.

그 옛날처럼 순진무구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지만, 원선화는 이미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영혼을 잃은 후였다.

햇볕 아래 사내를 바라보며 위희평이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저도 그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 * *

“네가 만들어낸 참상을 보아라.”

비단을 타고 오르는 뱀처럼, 손은 매끄러운 살결을 쓸었다.

“네 죄의 대가다.”

어깨를 거머쥔 손길. 위희평이 숨을 헐떡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네 죄의 대가야.”

손은 참담함에 도리질을 치는 그의 얼굴을 억지로 부여잡아 고개를 돌렸다.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고 있었다.

위희평의 얼굴에 절망이 도래한다.

윽, 흑. 서러운 울음을 흘리며 위희평이 몸을 웅크린다.

휘장 사이에 자리한 것은 부정한 정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침상 위에 널브러진 볼 발간 청년이었다.

그의 영혼.

* * *

어둠 속 따뜻한 목소리가 울렸다.

“스승님, 주무십니까?”

사실은 자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위희평은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뿐이었다. 오늘은 몸을 섞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몹시 피로해서. 조금은 힘들어서. 그래서 그는 끈적한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흘리며 잠자리를 피하려 들었던 것이다.

“스승님.”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두툼한 손이 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위희평은 구렁이처럼 제 가슴팍을 더듬는 손을 느끼며 흔들리는 숨결을 애써 가다듬어야만 했다. 원선화의 손은 가슴 한 짝을 완전히 덮을 만큼 컸다.

그것이 유륜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은근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손가락은 오돌토돌한 돌기가 난 유륜을 반죽처럼 주물렀고, 또 가슴을 문질렀다.

“…소평.”

귓전에 스치는 열락이 섞인 목소리에 결국 위희평이 으읏 신음을 흘리고야 만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열리고, 두 눈이 마주했다. 어느새 위희평의 코앞으로 다가온 원선화가 그를 뜨거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가슴팍을 타고 내렸다.

신음이 거세진 때였다.

* * *

“스승님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느 날 그의 어린아이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리 말을 내뱉었다. 위희평은 그때 무너지는 얼굴을 수습할 수 없어 바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어이 그런 말을 하십니까.”

침묵 끝에 흐른 말.

그 말을 들은 붉은 옷을 입은 태자는 태부의 옷자락을 고사리손으로 잡아당기며 울먹거렸다.

그리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하기를.

“부황과 모후가……무서워요.”

아! 그때의 마음이란…….

* * *

“아앙, 아, 아아!”

높고 세찬 교성이 흐른다.

각진 어깨 위에 양다리를 걸친 채 위희평은 제 아래를 분탕치는 성기에 완전히 휘둘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신음을 내뱉으며 위희평은 눈을 감고 도리질을 쳐야만 했다. 뇌수를 녹이는 감촉은, 둔부가 찌그러질 때마다 더욱 강렬해졌다.

사내는 산처럼 거대한 몸으로 위희평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사내의 어깨에 올려진 다리가 마침내 침상 머리에 닿아 몸이 완전히 접혔을 때, 위희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락에 휩싸여 신들린 사람처럼 해석할 수 없는 말을 흘리고 있었다.

“아, 악! 죽어! 나, 나, 흐아아앙! 아, 앙!”

온몸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몸을 뒤틀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처절히 울부짖는다. 산발이 된 머리 사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였다. 힉힉 눈물을 흘리는 위희평의 시야에 저를 범하는 사내의 얼굴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제 둔부를 푹푹 찌르는 성기가 대단히 굵고 뜨겁다는 것을 기억했을 뿐이다.

“힉, 더, 하악, 아니, 아, 안 돼! 흐으으읍! 하아아앙!”

“스승님, 아… 스승……”

* * *

“태자를 지켜드리겠습니다.”

구중궁궐이 너무 넓어, 부모가 그를 사랑하지 않아 어린아이는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를 잘 알았다.

그런 그가 제게 부모의 정을 바라는 것도.

“제가 태자를 사랑합니다.”

그리하여 위희평은 품 안의 소중한 보석을 끌어안고 그리 속삭였던 것이다. 너를 지키겠노라. 네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 속으로 다짐하면서.

* * *

그러던 그들의 미래.

“헥, 헤엑!”

침상 위에 위희평이 새하얗게 눈을 까뒤집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다물리지 않는 입술 밖으로 혀가 빠져나와 있었다. 타액이 흥건히 흐르는 얼굴을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원선화가 중얼거린다.

“이런, 스승님….”

허공에 높게 치켜든 다리를 툭 놓아 떨어트리며 내뱉은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침상에 소변을 지리시면 어찌합니까?”

덜렁거리는 다리가 풀썩 침상 위에 쓰러진다. 원선화가 미간을 좁히며 개구리처럼 벌어진 다리 사이를 응시했다. 늘어진 성기는 원선화의 손에 잡혀 졸졸 노란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이불보를 축축이 적신 것이었다.

“완전히 어린아이 같습니다.”

중얼거리는 말을 위희평은 듣지 않았다. 온몸이 성교에 익숙하게 개발당한 위희평은 이미 정사 중간에 정신을 놓고 비명만을 내지르는 짐승이 된 후였다. 흰자위만 남게 눈을 까뒤집고 경련을 일으키는 그의 몸에 성기를 묻고 있었다.

결국 오줌까지 지리고야 만 사내의 처참한 얼굴을 다정히 응시하며 원선화가 허리를 움직인다. 위희평의 배를 정액으로 가득 채우고도 그는 만족하지 않아, 아직까지 둔부에 성기를 파묻고 있었다. 퍽, 퍽. 살을 짓이기는 소리가 흘렀다. 골반이 뼈와 부딪쳐 고통을 안겼으나 원선화는 느릿하면서도 무거운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힉, 히익.”

경련을 일으키는 몸.

손안에 늘어진 성기를 주물럭거리며 원선화는 위희평의 더러운 몰골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원선화의 눈은 어둠 속에 매처럼 빛나며 위희평을 노려보고 있었다.

“음, 소평.”

부드러운 속살에 성기를 쑤셔 발기며 원선화가 중얼거린다.

“그래도 그대는 사랑스러워.”

* * *

위희평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욕조 안에 있었다.

“태자.”

신음성을 흘리며 위희평이 물에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떤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귓구멍을 제외한 온몸의 모든 구멍으로 물을 내뿜으며 절정에 허우적거리던 짐승을 떠올리며 위희평이 얼굴을 순간 일그러트렸다. 수치심에 가늘게 몸을 떠는 그의 허리에 굵은 팔이 둘려 있었다.

“화랑.”

등 너머로 들려오는 그윽한 목소리. 원선화는 욕조에 앉아 위희평을 제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던 중이었다. 제 몸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위희평이 눈을 감고 얼굴 위로 체념을 드러낸다.

느릿한 숨결과 함께 다정한 목소리가 흐른다.

“화랑이라 불러.”

목젖을 잘게 떨며 침묵하던 중, 위희평이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화랑.”

갈리진 목소리로 내뱉는 말이었다.

“화랑.”

원선화는 더 이상 애정을 참지 못했다. 그는 마치 봄을 맞이하는 소녀처럼 웃으며 위희평의 뺨에 쪽쪽 입맞춤을 퍼부었다.

“흐윽, 사랑해요.”

그런 그의 애정을 받으며 위희평은 울먹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직한 웃음이 귓가에 흐르고, 목덜미에 비벼지는 콧잔등을 깨달은 위희평이 뺨에 한 줄기 눈물을 흘린다.

“사랑해요, 화랑. 화랑을 사랑해요!”

목이 막힌 목소리로 말을 내뱉곤 위희평은 몸을 돌려 원선화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곤 그의 입술을 훔쳤다.

짐승의 사랑!

그를 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제 입술을 무는 위희평의 뺨을 쓰다듬으며 원선화는 물기를 머금은 입맞춤을 잠시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입술이 떼어진 순간 흐른 부드러운 목소리.

“소평.”

두 눈을 마주하며 위희평은 처연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평, 나 또한 그대를 사랑한다.”

그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 듯, 원선화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 * *

‘연선 누이…….’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살업의 대가로 혹여 제가 지옥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위희평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심하곤 했다.

‘나, 나…… 나 평화롭게 살고 싶어.’

가끔씩 돌아오는 차가운 이성. 그것이 억장을 무너트리고 심장에 빼곡히 바늘을 찌른다. 뒤늦게 사람의 양심으로 제 죄악을 판단할 때면 차라리 벽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충동을 막는 유언.

백합을 닮은 여인이 저를 보며 속삭였던 말.

‘이제 너무 힘들고 괴로워…….’

오라버니, 저희의 선화를 지켜주세요.

‘너무 힘들어…….’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뒤틀린 방식으로 약속을 지키고 있다. 축생도를 걷고 있다. 위희평은 황제가 된 원선화와 하루도 빠짐없이 몸을 섞었고, 건녕전 쪽방에 기거하며 공공연한 황제의 정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원선화는 온화함을 되찾고, 위희평은 더 이상 잔인한 대접을 받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치부를 내보이고 수모를 당하지 않았다. 원선화는 더 이상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비록 그가 아직 잠자리에서는 거칠었어도 이전처럼 끔찍한 수준은 아니었다.

위희평은 요즘 몸이 편안했다.

마음은 불편해도 겉으로는 원선화와 연인처럼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선화는 위희평이 제게 화랑이라 부를 때마다 만족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선물을 안겼다. 가끔은 궁궐 밖으로 나가 야유를 즐겼고, 가끔은 함께 말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예전의 지옥보다는 적어도 덜 끔찍한 지옥.

‘편해지고 싶어. 옛날로 돌아가긴 싫어.’

끔찍한 일이지만, 위희평은 사실 요즘의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족하다. 이 정도면 만족했다.

‘이 길이 맞는 거겠지? 선화가 멀쩡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원선화는 죽지 않았고, 저는 그의 연인이 되어 더는 모욕을 받지 않았다. 몸은 평안하고, 마음 또한 정신을 조금 무너트리면 편안해졌다.

고연선.

불타오르는 오두막 안에서 웃고 있던 여인을 떠올리며 위희평이 지친 얼굴로 중얼거린다.

‘네가 나보고 그 애를 지켜달라 했지.’

지옥에서 그녀는 제게 무어라 할까?

‘……난 결국 이렇게 됐어.’

위희평은 그녀가 저를 비난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알면서도 위희평은 축생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비난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너무 지쳤어. 이제 너무 피곤해.

이보다 더한 지옥을 경험해 보았다.

이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어.

위희평은 더 이상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제가 어린 시절부터 키우다시피 한 선화에게 고분고분하게 굴어 그와 연인으로 지내길 바랐다.

마음의 고통이 몸의 고통보다 더욱 아픈 법이라고?

웃기는 소리! 그건 충분한 고통을 겪지 못한 자가 내뱉는 말이다. 바닥 아래에 지하실이 있음을, 그 땅 밑 지옥이 있음을 모르는 자가 내뱉는 말이다.

위희평은 충분히 고난을 겪었고, 영혼은 닳디 닳아 있었다.

그러니 그저 보신을 꾀할 뿐이었다.

현실을 외면하며 너른 사내의 품에 안긴 채. 원선화의 손에 빗질을 맡기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그의 성기에 꿰뚫려 밤을 끝내면서.

그는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또 만족해 왔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의 일.

“황후를 맞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와 타협하던 비겁한 사내에게 돌아온 하늘의 철퇴와 같은 사건이었다.

* * *

원선화는 굳은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사실 그 또한 이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태자 때도 정궁을 맞이하지 않는 일을 지탄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위희평은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에,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에 차로 입술을 축이며 침묵해야만 했다. 내리깐 속눈썹이 가늘게 떨려왔다.

“단지 스승님의 일이 발각될까 두려운 까닭입니다.”

제 눈치를 살피는 원선화의 앞에서 위희평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언짢으십니까?”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동요를 삼키려 위희평이 찻잔을 입술에 머금고 있었다. 원선화의 흔들리는 눈이 위희평의 무표정한 얼굴을 쓴다. 긴 침묵 끝에. 찻잔을 완전히 비운 위희평이 굳게 다물렸던 입술을 열었다.

“저는…… 그럼 어찌 되는 겁니까?”

잘게 떨리는 목소리에 원선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한다.

“당연히 후궁에 들어오셔야지요.”

바로 위희평의 몸을 굳게 한 말이었다.

목소리는 유려하게 이어졌다.

“황후가 없어 그간 눈을 피해 스승님께 적당한 지위를 주지 못했습니다.”

손을 뻗어 무릎 위에 얹어진 위희평의 손을 덮으며, 원선화가 마치 토라진 연인을 달래듯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허나 소평, 이제는 그대가 완전히 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진정한 제 사람이요.”

위희평은 목이 막혀 자연 떨리는 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제, 제가 후궁이 됩니까?”

그리 말을 내뱉은 후 그는 고개를 꺾어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피해 왔던 원선화의 눈을 응시했다. 새까만 유리알 같은 그것은 애정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순수한 사랑, 애욕, 정념…….

그 순간 위희평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무너트리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얼굴은 누군가를 몹시 닮아 있다. 사랑에 미쳐 제 인생을, 남의 인생을 망가트린 사내의 얼굴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소실이 싫으십니까?”

그리고 원선화는 제 앞에서 부들부들 몸을 떠는 위희평의 모습에 지레짐작하고 말을 이으려 들었다.

손에 쥔 위희평의 손을 꽉 부여잡곤 원선화가 몸을 기울여 속삭거린다.

“그럴 만도 하지요. 그대와 나는 사랑을 하는데, 부부로 이어지지 못하다니.”

아니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목구멍에 감도는 비명을 삼키며 위희평이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리려 파르르 떤다.

말은 유려하게 이어졌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스승님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어요.”

그리 말을 하곤 원선화는 손을 뻗어 위희평의 뺨을 손등으로 쓸어내렸다. 익숙한 감촉. 위희평은 구렁이가 피부를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창백한 얼굴에 비명이 스친다. 숨은 막혀 오고, 몸의 떨림은 진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검게 불타오르는 불꽃이 자리한 두 눈.

“염려치 마십시오. 황후는 투기를 하지 않는 여인으로 들이겠습니다. 그리고 황후가 당신께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원선화는 사내의 얼굴로 위희평에게 속삭거리고 있었다.

“짐은 그대만을 연모할 겁니다, 미인.”

위희평이 그 순간 두 눈을 흔든다.

미인…?

동요하는 그의 귓가로 다정한 설명의 말이 연이어 내려앉는다.

“이보다 높은 품계는 명가의 자제들에게 주어질 겁니다. 스승님의 신분을 확실히 밝힐 수 없어….”

그 말에 이르러 위희평은 다급히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다른 후궁도 들어옵니까?”

“…….”

“저는, 저는 그럼…….”

위희평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이건, 이건.

그 말만을 반복하는 위희평의 마음속에 그 순간 풍랑이 불고 있었다. 망연한 시선으로 원선화를 바라보며, 위희평은 그 순간 외면했던 현실을 깨닫고 있었다.

건녕전 쪽방에 기거하여 원선화의 애정을 받고 살아가고 있었지. 사랑을 속삭이는 원선화와 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허나, 그게…… 그게 아니지.

원선화의 손에 부여 잡힌 위희평의 손이 잘게 떨린다. 순간 위희평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실상을 깨닫고 있었다!

그가 사실 연인으로 포장된 황제의 노리개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황제는 국혼을 피할 수 없고, 원선화는 명가의 번듯한 여인을 황후로 들여야 했다.

그러면 이제 위희평의 처지는 둘 중 하나였다. 액정(掖庭, 하급 후궁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궁)에 기거하여 황제의 총애를 기다리는 후궁 중 하나가 되거나, 혹은 아무런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침실을 달구는 침노로 살거나.

그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연인, 사랑?’

허튼소리!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될 리가 없잖아?

위희평은 지금껏 현실을 기피해 왔을 뿐이다. 이제 제가 원선화의 총애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액정에 갇힌 후궁 중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미래를 외면했을 뿐이다.

특별한 관계?

아니, 원선화는 위희평을 총애하는 후궁 이상으로 대접하지 못한다. 사내와 사내는 이어질 수 없으니까.

위희평은 그저 그의 무수히 많은 후궁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저 조금 더 총애를 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 그런 소실 말이다.

“스승님.”

창백해진 위희평의 얼굴에 원선화가 다급히 말을 내뱉는다.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 맹세합니다.”

그는 위희평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것을 깨닫고 그 불안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 상심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착각하고 있었으나, 어찌 되었건 후궁이 되라는 말이 그에게 충격을 안긴 줄은 알고 있다.

“총애는 오로지 당신의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그대를 보호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원선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위희평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에게 연신 속삭였던 것이다. 나는 스승님을 영원히 버리지 않겠습니다. 후궁들은 감히 그대의 지위를 범접하지 못할 겁니다. 총애는 오로지 당신의 몫입니다.

그 말의 잔혹함을 모른 채 그렇게 원선화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의 말을 위희평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희평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대던 때 흐른 한마디.

“그리고 입궁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멈칫한 위희평이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그곳에는 묘한 표정을 짓는 원선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손을 부여잡으며 원선화가 조용히 속삭이기를,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위희평은 그 말에 도리어 더 불안함을 느꼈고, 그 불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 * *

어찌 몰랐을까?

짐승의 피를 물려받은 그가 짐승에게 짐승으로 크도록 길러졌다는 것을.

* * *

“아, 안 돼!”

높게 찢어지는 목소리였다.

“나, 나는, 나는 싫어요!”

시위에게 양팔이 부여잡힌 사내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처절히 울부짖고 있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비참한 일을 겪었다. 이젠 웬만큼 굴욕적인 일이 아니면 동요를 하지 않는 위희평은 이 순간 미친 듯이 사지를 버둥거리며 저를 옥죄는 손길에 저항하고 있었다.

“태자, 태자. 나는, 나는 싫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위희평이 방 안으로 다시 끌려가려는 몸을 비튼다. 제 팔을 잡아당기는 손길을 기둥을 끌어안아 저항하며 그가 서러운 눈물을 터뜨린다.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가로지르고, 위희평이 펑펑 눈물을 흘리며 갈라지고 쉬어빠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 나는 안 할 거예요. 나, 날 거세하지 마세요.”

울부짖는 사내 앞에 원선화가 뒷짐을 진 채 자리하고 있었다. 시위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저항하기 위해 위희평은 말 그대로 광인처럼 날뛰고 있었다.

싫어, 싫어!

방 안으로 들어가기 싫어!

처절한 비명이 연신 튀어나온다.

“제발, 제발, 태자……제발!”

산발이 되어 날뛰는 위희평을 묵묵히 바라보던 원선화는 어느 순간 문득 입술을 열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후궁에 사내의 상징을 지닌 채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여인에게 양물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발악하던 위희평의 몸을 우뚝 서게 만든 말이었다.

그의 핏발 선 두 눈이 부릅떠지고, 몸을 충격으로 잘게 떨리게 한 말.

…지금 뭐라고?

불신 어린 시선이 황제에게 닿는다. 원선화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사랑을 받는 데 그 물건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시선이 흔들거리고, 경악이 얼굴 위로 물결치고 있었다.

도저히 그 말이 믿기지 않아, 위희평은 한참을 멍한 얼굴로 원선화를 바라봐야만 했다. 그는 충격에 피가 얼어붙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지금 그가 제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그는 제게 말했지 않던가?

더 이상 제게 고난이 없을 거라고.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없을 거라고!

더 이상 저는 모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원선화의 연인으로 안온하게 살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원선화는 마치 위희평의 발악을 탕약을 먹기 싫어 떼를 쓰는 어린아이의 것처럼 흘려넘기고 있다. 차분한 눈빛에 소름이 끼쳐, 배신감을 금치 못해 위희평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의 일이었다. 그의 머리 위로 문득 나직한 말이 내려앉은 것은.

“그리고 저는 태자가 아닙니다.”

그 조용한 목소리로 흐른 말의 무게가 무겁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올린 위희평이 그 순간 잔떨림이 잔재한 몸을 굳히곤 숨을 멈추고야 만다.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뒷짐을 진 채 저를 평온히 바라보는 원선화의 눈과 마주한 탓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흘러나온 음산한 목소리.

“이 나라의 천자이지.”

그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황제의 눈에서 위희평이 마주한 것은….

위희평의 몸에 다시금 동요가 자리한다. 관절이 뻣뻣이 굳고, 동공이 충격에 수축된 순간이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횡액을 당한 사람처럼 위희평이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꺽꺽거릴 때,

“끌고 가라.”

그리고 그 순간 매정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어, 어어…….”

힘이 빠진 위희평의 팔을 잡아당기며 시위가 그가 빠져나온 방 안으로 질질 끌고 간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위희평이 다시 몸을 허우적거리려 하나, 이미 상황은 끝난 후였다.

천자가 더러운 꼴을 보게 해서는 안 된다.

위희평이 방 안에 완전히 끌려들어 간 순간 내관은 침착하게 문을 닫았고, 그 순간 위희평은 경악에 차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 악, 안 안 돼!”

문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원선화의 차분한 얼굴이 보인다.

위희평은 더 무어라 말을 하려 입술을 열었으나, 침착한 도자장(거세를 하는 일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의 말에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음경을 훼손하지는 않습니다.”

그 청천벽력 같은 말.

“본디 환관을 만들 때는 음경마저 자르지만, 음경이 잘린 엄인이 소변을 볼 때 심히 고통스러워한다 하여 폐하께서 배려하셨습니다.”

그리 말을 내뱉곤 도자장은 그에게 다가가 안대를 씌웠다.

“고환만을 도려낼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고통은 잠시입니다.”

가려지는 시야에 위희평이 불안에 더욱 날뛰고, 도살당하기 직전의 돼지 같은 비명을 지른다.

“아, 아악! 싫어! 싫, 우우웁!”

그런 그의 입에 천 재갈을 물리며 도자장이 시위에게 눈짓을 한다. 그들은 위희평을 방 한가운데 자리한 의자에 묶고, 바지를 벗긴 후 넓적다리를 활짝 벌리게 만들었다.

의자에 꽁꽁 묶인 위희평이 안대를 축축이 적시며 우우웁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다. 절망과 분노가 서린 그의 얼굴에도, 그러나 도자장은 편안한 얼굴로 익숙한 일을 행할 뿐이었다.

“힘을 빼십시오.”

지이익, 불에 달군 단도가 물에 들어가는 순간 수증기를 뿜어댄다. 안대로 눈이 가려져 그 소리를 들은 위희평이 악을 질러대며 개구락지처럼 다리를 펄떡거렸다.

준비를 마친 도자장이 위희평을 향해 저벅거리며 다가간다. 그리고 넓게 벌려진 다리 사이에 붉게 달아오른 단도를 들이대곤….

그리고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 몸.

“우우우우우웁! 우우우우우우!”

장지문 밖, 돼지 멱을 따는 듯한 높고 긴 울음소리를 들으며 뒷짐을 진 사내가 조용히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귓전에 울리는 끔찍한 비명에도 그 얼굴은 명상을 하는 듯 평온할 뿐이다.

비명은 길게 이어졌고, 그동안 사내는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며 지은 희미한 미소.

새하얀 웃음을 지은 원선화가 뒷짐을 진 손을 풀며 손등으로 입술을 비빈다. 당황이 슬쩍 스치는 얼굴, 미간을 찌푸리며 그는 애써 제 얼굴 표정을 가다듬으려 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 순간 두 눈을 흔들며 원선화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혹감을 삼키며 그는 몸을 주춤거리고 있었다. 연원을 모르는 감정, 안도감, 짐승의 목에 목줄을 채운 희열에 휘말려 헤매던 원선화가 방황 끝에 떠올린 것은 바로 붉은 입술이었다.

* * *

“짐승의 자식은 짐승입니다.”

아, 그래.

그때 모후께서 내게 그리 말했던가?

* * *

그리고 방황의 끝에 흐른 답변.

“예, 모후. 짐승입니다.”

조소와 함께 흐른 말이었다.

“헌데, 왜? 짐승이어선 안 되는 겁니까?”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으며 사내는 흉광이 자리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비명이 서리는 문 안에 있을 사랑스러운 제 연인을 떠올리며 그는 비로소 완전한 죄책감을 버리고 만족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구나.

그것은 태생부터 불안을 겪었던 자가 처음으로 겪는 안정감이었다.

그 순간 사내의 불꽃이 튀기는 눈이 바라본 미래는….

‘제가 태어난 목적이 그에게 있는 거군요, 어머니.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저는 그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 그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주인으로서…….’

그럼, 그를 완전히 가져야겠다.

* * *

짐승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왜 내게 인륜을 들이대는가?

* * *

굳은살이 박인 사내의 손이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몸을 쓴다.

낭창한 몸은 반투명한 비단에 감싸져 있었다. 마치 햇볕이 반짝이는 파도와 같은 아름다운 비단을 걷은 원선화가 홀린 눈으로 제 앞에 드러난 은처럼 빛나는 몸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군.”

손은 몸의 능선을 타고 흘렀다.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거세를 한 사내의 몸은 그 예전보다 훨씬 유연해지고, 훨씬 더 가냘파졌으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그리하여 눈앞에 자리한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위희평의 몸.

기력을 잃고 침상에 축 늘어진 몸은 양껏 치장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같이 낭창하고, 또 위태로운 몸은 사내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사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물건에서 원선화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걸작품이요, 인공적인 아름다움의 극치.

생기란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죽은 듯 늘어진 그 모습 또한 그의 비정상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원선화가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미인(美人).”

위희평은 그때 침상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는 스승님을 위한 직첩 같습니다.”

답변이 돌아온 것은 꽤나 긴 시간이 흘러서였다.

“……어찌 제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끝이 갈라진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함께 묻어나왔다. 강렬한 배신감 또한.

동근 어깨 능선이 잘게 떨렸다. 원선화는 평온한 얼굴로 제 앞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위희평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네가, 내게….”

위희평은 한참 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 한마디 말만을 뇌까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이 악물어 내뱉은 말이었다.

“절 아껴 주시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제가 누구의 손에 함부로 다뤄지는 일이 없을 거라.”

바로 산발이 된 머리카락 사이, 흉흉하게 빛나는 눈으로 원선화를 노려보며 한 말이었다. 비통함이 그곳에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곳에 있었다. 위희평은 차라리 칼을 물고 죽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괴로워했고, 그의 얼굴에 원선화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한 채 굳은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짧은 침묵 끝, 원선화가 내뱉은 변명은 이러했다.

“당신을 가지기 위해선 난 더한 짓도 할 수 있었어요.”

“흐, 흐흑.”

바로 위희평의 울음을 자아낸 말이었다.

그런, 그런 이유 때문에… 나를 거세를 해?

남성을 완전히 제거당한 분노와 슬픔. 순간 격정을 참지 못한 위희평이 침상에 몸을 웅크린 채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는 마치 이 생이 끝난 사람처럼 울어 재꼈다.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통곡했다.

울고, 울고, 또 울음을 터뜨려 마침내 꺽꺽거리는 소리만을 흘려냈을 때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원선화는 손을 뻗어 척추가 도드라진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울지 마십시오.”

그 다정하고도 잔악한 목소리.

“연모합니다. 연모합니다, 스승님.”

애가 타는 목소리를 들으며 위희평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기시감.

그래, 그 순간 사내의 몸을 타고 오른 것은 기시감이다.

“그대를 지독히 연모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선화는 애무에 가까울 정도의 부드러운 손길로 위희평의 등을 쓸어 그를 달래려 들 뿐이었다.

그다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인세지옥이었지.

* * *

간택령 후에 하급 후궁의 방이 늘어선 액정이 채워지고 육궁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꽃다운 나이의 여인들이 입궁하는 모습을 위희평은 처참한 얼굴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원선화는 그가 투기를 한다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려 했으나, 위희평은 그 말에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투기? 그러려는 게 아니다!

그저 그녀들을 가여워하고, 또 이 역겨운 상황에 마음이 울렁거릴 뿐이다. 짐승에게 인생을 맡기려는 그녀들을 동정했다.

그리고 황후.

그녀를 볼 때마다 위희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애틋함을 느꼈다.

‘불쌍한 것.’

소 황후가 저를 원망하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위희평은 그녀를 미워하지 못했다. 멀쩡히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는 여인이 짐승의 가문에 투신했다. 그런 그녀에게, 위희평은 우습게도 이 지경이 되어서도 마음이 기울어지고야 말았다.

그녀는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본래라면……가족이 되었어야 할 이.

어쩌면 저가 문안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 어쩌면 그녀와 사이가 좋았을 수도, 어쩌면, 어쩌면…….

하여간 위희평은 소 황후가 싫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제를 달래어 황후를 존중케 하고, 순진한 여인이 황실의 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투기 어린 시선에 스며드는 처참한 감정을 무시하며 그는 그저 남몰래 그녀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그러던 와중에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주제를 알아라, 위 미인. 나는 네가 훈계할 대상도, 가르쳐야 할 아랫것도 아니야.”

아직도 제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단 것을.

“날 며느리를 가르치듯 대하는군.”

왜 아직도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거지?

그저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심장을 찌르는 말에 번개가 정수리에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손을 늘어트렸다. 말을 내뱉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황후의 등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원앙궁의 텅 빈 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그를 과거의 기억에 잠기게 했던 그늘이 드리운 어두운 방을 응시하며 위희평이 칼 같은 미소를 잠자코 짓는다.

눈앞에 뱅글뱅글 회전하는 그 기억은 저 방에 남은 흔적이었다. 친구의 부인과 침상에서 뒹굴었던 부정한 사통의 기억, 그 죄의 대가로 부인의 대신이 되어 오랜 벗의 여인이 되었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흘러 이 순간에 이르렀건만….

‘무얼 미련이 남아서.’

그러나 위희평은 사람이기에, 아니 사람답게 살고 싶었기에 마지막 선을 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짐승이 된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돌아온 과거의 일부들.

* * *

“위 미인,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창백한 얼굴로 위 미인이 중얼거린다.

“나는.”

바구니와 대나무 대롱, 그리고 치자물이 든 대야를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잘게 떨리는 몸을 움츠리며 위희평이 중얼거린다.

“나는 혼자 할 수 있어.”

환관과 궁인이 그 물건을 든 채 위희평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저것은 옛날의 위희평이 가장 모멸적으로 느꼈던 행위였다. 동시에 ‘그날’ 이후로 그만둘 수 있던 것.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져 뒷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배변이 불가능했다. ‘그날’ 이후로도 새벽마다 위희평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항문을 물을 넣어 헹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몰래 홀로 처리하는 일이었다.

원선화가 노상궁을 죽인 이후 위희평은 더 이상 궁인의 손에 붙들려 관리당하지 않았다. 치부를 훤히 드러내어 어린아이도 보이지 않을 모멸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서,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날 이후 지금까지 위희평은 스스로 몸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실로 큰 차이였다.

실로 큰 차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냐 마느냐의 차이지.

“혹여 폐하께서 분노하시는 일이 있으면 천작궁 모든 궁인의 목숨이 날아갑니다, 마마.”

그리고 지금 궁인들은 사뭇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위희평에게 얼굴로 강요하고 있었다.

간절한 시선을, 그 이기심으로 차오른 시선을 받으며 위희평이 이를 꽉 깨물고야 만다.

그러곤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기를.

“너희는 내가 사람으로 보이느냐?”

그 허망한 말에 궁인들은 답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인의 말을 못 들은 척 위희평에게 다가갈 뿐이었으니까.

넓적다리를 부여잡고 여는 손에 위희평이 체념하여 눈을 감는다. 이어지는 이물감에 위희평은 저항하지 않고 몸을 늘어트릴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고, 궁인들은 위희평의 몸을 ‘그날’처럼 다루었다.

이게 그때와 다를 게 뭐지?

일상은 반복되고야 만다.

똑같은 나날.

똑같은 일상.

아침이면 일어나 궁인들에게 관리를 받고, 원선화를 배웅한다. 그는 위희평을 끌어안고 저녁까지 잘 지내라 말을 하며 입을 맞추었다. 그를 배웅하고 위희평은 천작궁에 앉아 시간을 무료히 흘려보냈다.

가끔은 제 궁을 방문하는 후궁들을 맞이하곤 했다. 그녀들은 위희평의 앞에서 재잘대며 떠들었으나, 위희평은 그 시간 동안 입술을 꼭 다문 채 침묵했다. 그녀들에게 무언가의 껄끄러움을 느낀 채 더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 그래도 그가 받는 총애 때문에 좋지 않은 제 소문을 악화시킬 것을 알면서도. 위희평은 심지어 저를 모멸적으로 조롱하는 말에도 대꾸하지 못했다.

“남성을 버리고 권세를 누리다니. 수치도 모르는 자 같으니라고!”

황제에게 말을 하라고?

그녀들이 무슨 틀린 말을 했지? 그녀들의 비난이 무에 틀렸지?

위희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암암리에 제게 쏟아지는 비난의 시선들은 모두 합당한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영화로운 삶을 위해 저는 몸을 팔았다.

그 모든 비난은 마땅히 제 몫이었다.

그러니 위희평은 날카롭게 웃을 뿐이었다.

누가 그 죗값을 부정하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금수처럼 살았거늘….

그리고 가끔씩 밤에 찾아오는 지독한 악몽.

“평아.”

손은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발은 땅 아래 깊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위희평은 숨을 죽이고 눈을 감고, 감각을 차단하며 그렇게 몸을 구렁이처럼 타고 오르는 목소리를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위희평은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발목을 감는 목소리에 휘감겨 영혼이 진창에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지옥을 두려워하느냐?”

이 악몽은 언제 끝날까.

“이 아늑한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위희평은 그저 바라고 바랄 뿐이었으나, 사실 알고 있었다.

“언젠가 깨닫게 될걸?”

눈을 뜨며 마주하는 현실이야말로 진정한 지옥임을.

차라리 지옥으로 떨어지길 바랄 뿐이다.

현세는 그보다 더한 악몽이었으니까.

* * *

“스승님.”

그 목소리가 언제부터 끔찍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 * *

깍깍깍.

옅은 햇빛을 받으며 나뭇가지 위의 까마귀가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아침에, 천작궁의 귀인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하얀 손이 오동나무 빗으로 까마귀의 푸른 깃과 같은 가지런한 모발을 빗겨 내리고 있었다. 동경 속의 창백한 얼굴은 먹으로 눈썹을 가지런히 그리고, 섬세히 치장을 한 것이었다.

붉게 연지를 바른 도톰한 입술, 연꽃 화전(花钿, 이마에 꽃을 그리는 화장법)을 장식한 새하얀 이마, 향유를 먹인 머리카락을 포가계(抛家髻)로 묶어 종달새 보요와 매화 비녀를 꽂은 모양새.

영락없는 천고의 미인(美人)이 동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천산의 비취를 조각한 듯한 은은한 기품을 흘리며 가늘게 눈을 뜬 모습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에도 사람의 넋을 홀릴 만큼 매혹적이었고, 고즈넉한 운치를 자랑했다.

미인이 눈썹을 그리고, 머리를 빗고, 치장을 하는 모습은 천하의 절경이라 했던가.

몸을 가다듬고 화장을 하는 이 순간 동경에 비친 그의 모습이 그러했다.

위희평은 동경 속 그 미려한 얼굴에서 한참을, 한참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느 순간 비틀려 잘게 떨리는 동경 속 붉은 입술.

그리고 동경 속의 사내는…….

높고 예민한 웃음이 흐르고,

쨍그랑!

파국을 알리는 불길한 소리가 천작궁 안에 날카롭게 울렸다.

* * *

“꺼져.”

어느 날, 천작궁에 파란이 일었다.

“미, 미인!”

하!

입술 끝이 일그러지고, 높은 조소가 흐른다.

마침내 얼굴을 무너트린 사내의 얼굴에 서린 절망!

궁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깨져 나간 거울이 있던 자리에 엎드려 사내는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꺼지라고!”

번져 나가는 울음이 방 안을 채운다. 화장이 지워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며, 당황하여 제게 달려오는 궁인의 다급한 말을 듣지 않으며.

위희평은 그렇게, 그렇게 서러운 울음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만, 이제 그만해!”

이제 너무 지쳐 버렸지.

그날에 고요하던 천작궁에는 소란이 일었다.

궁의 주인이 절규한 날이었다. 궁인들은 갑작스러운 위 미인의 발작에 경악하여 그를 진정시키려 들었으나, 뜻밖에도 그는 천작궁 안에 있는 물건들을 내던지며 울부짖고 발악했다.

“오지 마! 내게 오지 마!”

“미, 미인.”

마치 새끼를 잃은 짐승같이 처절히 울부짖는 그를 사람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들은 문밖에서 곤혹스러운 얼굴로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주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 해가 저물 때까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천자가 귀환하는 때가 찾아오고야 만다.

황혼의 때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연극의 절정.

‘금수가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살았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겠지. 허나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는 게 아니겠느냐, 평아?’

악몽이, 아니 그의 내면이 예고한 미래가 도래한 순간.

“더 이상은 못 해, 나는.”

그를 여는 비참함에 젖은 목소리였다.

멍하니 방 안을 바라보던 원선화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렀다.

“이게, 무슨?”

사내는 천작궁에 들어오려던 중이었다.

문턱에 부딪힌 화병에 주춤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문가에서 멈추어 선 채 원선화가 멍한 얼굴로 어지러워진 천작궁 내부, 바닥에 머리를 반쯤 풀어헤친 채 우는 위희평을 바라본다.

“왜.”

아이처럼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위희평을 망연히 바라보던 원선화가 침묵 끝에 조각조각이 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내뱉는다.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돌아온 울음 섞인 비명이었다.

“못 하, 못 하겠다고!”

산발이 된 채 바닥에 몸을 엎드려 울던 이는 말을 듣는 순간 폭발한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벼루를 쥐어 벽에 던졌다.

퍽! 소리가 흐르고, 벽 위를 물들이는 먹물을 내뿜으며 산산조각 나는 벼루에 원선화는 순간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난 못 하겠어. 난, 난…….”

처절한 울음이 이어져 나갔다. 벼루를 던지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위희평은 손톱에 피가 나도록 바닥을 긁으며 사지를 뒤틀고 울부짖었다.

“난 죽고 싶어요.”

그 처참한 꼴을, 원선화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얼어붙어 바라보고 있었다. 부릅떠진 두 눈 위로 비참하게 흐느끼는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폐하, 폐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부드러운 가슴을 할퀴며. 화려한 당의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처절히 우는 사내가 말이다.

“난 죽고 싶어요. 더 이상 못 하겠어요.”

벌어진 입술 사이로 느릿하게 숨결이 흘러나오고.

“미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후궁에 들어가기 싫습니다.”

위희평이 어느 순간 울부짖던 것을 멈추고 얼굴을 손에 묻은 채 몸을 웅크린다.

“더, 더….”

그런 그를 자리에서 굳어진 채 바라보던 원선화가 그 순간 무거운 발걸음을 느릿하게 뗐다.

“더는 싫어……”

바로 사내의 얼굴에 균열이 서리게 한 말이었다.

“나는 사내야! 사내라고…….”

“스승님.”

“……왜 나를 보고 여인이라 합니까. 나는, 나는 사내입니다.”

짐승처럼 바닥에 네발로 선 채 몸을 웅크려,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하기를.

“내가, 내가 대군을 이끌고 북제를 멸망시켰는데. 군대를, 내가 군대를 이끌었어. 나는 대위의 상장군이었어….”

문가에 묵묵히 서 있는 사내의 얼굴이 서서히 식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공을 세우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내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살필 정신도 없이 위희평은 어깨 능선을 따라 옷이 흘러내리는 것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헐벗은 차림으로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한낱 첩실이 되어야 합니까…!”

이 악문 사내의 입술 밖으로 흐른 비통한 목소리.

산발이 된 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리며, 위희평이 문가에 자리한 원선화를 노려보며 악다구니를 썼다.

“왜 내가 사내에게 아양을 떨며 살라 하십니까! 왜! 왜!”

원선화의 얼굴에서 깊어져 나간 균열. 그 사이로 보이는 뜨겁게 타오르는 용암을 위희평은 모르고 있었다.

“더는 모욕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이리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속에 있는 울화를, 울분을 토해 내며 절규할 뿐이었으니까. 위희평은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있었고, 제 절절한 한을 토해 내며 진심을 내뱉고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후궁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그러나 황제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짧고 높은 고소가 흐르고, 산처럼 우뚝 서 있던 사내의 몸이 빠르게 움직인다.

“나를 차라리 죽여 주세요, 날 차라리 죽… 아악!”

그리고 비산하는 비명.

“못 하겠다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사내의 비틀린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위희평의 머리채가 틀어 잡혀 목이 꺾인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변한 시야에 위희평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야 만다. 시야에는 성큼거리며 방 안에 들어와 위희평의 머리채를 움켜쥔 사내가 싸늘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허공에 치켜떠지는 주먹. 위희평의 동공이 확장되고야 만 순간이었다.

그리고.

“악, 폐하! 악!”

퍼억!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못 하겠다고?”

잔혹한 폭력이었다.

“악! 악!”

“네년 때문에 망가진 내 모든 인생을 알고서도 못 하겠다고?”

주먹이 움직였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시퍼런 살기가 목소리에서 뚝뚝 흐르고, 주먹에서 피가 묻어 떨어지고 있다. 위희평의 긴 머리채를 부여잡아 얼굴을 고정하곤 원선화는 그 안면에 주먹을 내리꽂고 있었다.

“네년 때문에 만들어진 내 삶을 알면서도 못 하겠다는 소리가 나와?! 어?”

“억! 억!”

정면을 강타하는 억센 주먹질에 위희평이 순간 모든 것을 잊고 손발을 휘젓고야 만다. 그는 폭력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으나, 황제에게 정강이를 후려치는 손길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두 눈에 활활 억겁의 분노를 불태우며 팔꿈치를 깊게 당겨 우악스러운 폭력을 이어 나갈 뿐이었으니까.

“네년 때문이잖아! 다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

째지는 목소리와 함께 주먹이 광대에 내리꽂힌다. 피가 허공에 후드득 떨어지고, 비명이 높게 솟은 때였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몸을 머리채를 틀어쥔 손에 단단히 힘을 줘 지탱하며 황제가 날카로운 고소와 함께 증오 섞인 말을 내뱉었다.

“네년이 나를 만들었는데, 네년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그렇게 편히 도망가겠다고?”

정신을 차리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위희평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황제가 음울한 목소리를 흘린다.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곤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위희평의 덜렁거리는 몸을 허공에 들어 올린다. 원선화는 고정된 얼굴을 노려보며 다시 주먹을 뻗었다. 위희평의 얼굴에 다급함이 스친다.

“잠깐, 잠깐 태자!”

두피가 당겨지는 고통에 신음하던 위희평이 순간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한다. 태자라, 과거의 호칭을 말하던 그는 그러나 턱을 강타한 주먹에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했다.

“억! 어억!”

황제는 더 이상 분노가 절절히 묻어나오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두 눈에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분노를 폭력으로 풀었고, 위희평은 그에 시달려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골이 울리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한참을 억억거리던 위희평은 결국에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야 말았다.

“그만, 그만…….”

그 말을 내뱉을 때 사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일그러져 있었다. 입술에는 피가 흐르고, 눈두덩이에는 시뻘건 자국이 나 있다. 황제의 억센 손길에 잡혀 흔들렸던 머리채가 일부 뽑혀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그만 때려…… 욱!”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황제의 날카로운 시선이 미목수려한 얼굴을 훑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울음에 찬 목소리.

“아, 아, 잘못… 잘못했어요…….”

그 순간 위희평은 고통에 굴복하여 어린아이처럼 빌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했, 윽, 잘못….”

이제는 너무나 폭력에 굴종하는 삶이 익숙하다. 안온한 평화의 맛을 즐긴 후였다. 잔인한 폭력을 이기지 못한 위희평이 펑펑 눈물을 흘리며 원선화의 앞에서 손바닥을 비비며 애원하고야 만다.

“폐하의, 폐하의 여인이 맞습니다.”

자존심?

그걸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제, 제가 화랑의 계집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는 저를 차갑게 내려다보는 그 익숙한 눈을 두려워할 뿐이었다. 제가 누구에게 빌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굴욕감도 모르고 그는 그저 제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내에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간원하며 회유하려 들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위희평은 숨을 멈추고야 말았다.

잔인한 기운이 일렁거리는 눈은 너무나 익숙하다.

원선화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심장이 그 순간 철렁 떨어져 내리고 피가 차갑게 식었다. 늪 아래로 빠져드는 기분에 휘말려 위희평은 숨을 헐떡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눈은, 그래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

그렇게 그가 무언가의 환상에 빠져 멍한 얼굴로 황제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던 황제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내리쳤다.

짜악!

얼굴이 돌아간 순간 위희평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흑, 흐윽…….”

처연히 눈물을 흘리며 위희평이 돌아간 뺨을 손으로 쓰다듬고 가늘게 몸을 떨었다. 짝, 짝 소리가 흘렀다. 황제는 몇 번을 더 그의 뺨을 모욕적으로 후려갈겼고 종국에는 그를 바닥에 패대기치듯 내팽개쳤다. 위희평은 제 허리를 걷어차는 발길질에 시달려 바닥에 벌레처럼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팔로 가려야만 했다.

“악, 그만, 그만!”

그러나 황제는 그의 말을 들지 않았고,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발길질을 이어 나갔다.

그만, 억, 그만해!

머리에, 허리에, 등에, 엉덩이에 쏟아지는 발길질을 손으로 막던 위희평의 얼굴이 새하얬다. 억억 소리를 내지르며 버둥거리던 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을 피하려 했고, 종국에는 이성을 잃고 행동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행동은 그를 때리던 발길질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위희평이 더듬거리며 몸을 돌이켰다.

황제의 몸이 우뚝 선 순간이었다.

“흐윽, 흐윽…….”

떨리는 숨결이 흐른다. 바닥에 뜨거운 입김이 스치고,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짧은 침묵 끝에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천작궁 안에 흐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황제의 얼굴에 고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불그스름한 고깃덩어리가 보였다. 그것은 살집이 있는 새하얀 엉덩이를 양껏 벌리면 보이는 것이었다. 황제는 그것을 지금껏 수없이도 많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자리한 저 붉은 속살은 황제의 어이를 앗아 가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폐, 폐하…… 분노를….”

“…….”

“……화를 푸, 풀려고.”

위희평이 바닥에 꿇은 채 부들부들 떨리는 엉덩이를 양껏 벌리며 구멍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얻어맞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악악 소리를 내던 위희평이 문득 비틀거리는 몸을 황급히 일으키고 황제의 앞에 등을 내보인 채 무릎을 꿇은 것은.

그러곤 그는 제 바지를 벗어내려 엉덩이를 까 내렸고 상체를 숙였다. 치켜뜬 둔부를 손으로 부여잡은 위희평은 달덩이같이 둥근 제 엉덩이를 양껏 벌려 제 수치스러운 부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렇게 마치 여보라는 듯이 새하얀 둔덕을 사과 쪼개듯 벌리며 속살을 보여 주곤, 그는 비굴한 목소리로 말을 잇고 있었다.

“그, 그만 때리시고.”

마치 아양을 떠는 것처럼, 그는 제 뒤를 황제의 시선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더듬더듬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꾸물거리는 속살을 잠시간 응시하던 황제의 입술 밖으로 고소가 흐른다. 바로 조롱과 멸시가 섞인 것이었다.

위희평은 그 비웃음을 못 들은 척 억지로 말을 잇고 있었다.

“제, 제 안에 폐하의 옥근을 넣, 넣어서…… 화를.”

그러나 그 대목에 이르러선 위희평도 울컥함이 치밀어올라 입술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흐윽, 화, 화를…….”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순간 서러움이 밀려와 위희평이 잘게 몸을 떨고야 만다. 뒤늦게 제가 하고 있는 짓이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한 굴욕적인 행위란 것을 깨닫고 있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고동색으로 적셨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거잖아.

그러나 위희평은 너무나도 굴욕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방식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피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세상 다른 사람에게 그러할지라도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단 한 사람에게.

그를 깨달은 사내의 얼굴에 암연이 도래한다.

붉은 속살을 내보이며 쪼개진 둔덕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윽, 윽 죽은 신음이 흐르고 나무 바닥에 눈물이 스며든다.

“정신을 이제 차렸군.”

그런 그를 바라보던 황제의 입에서 나직한 말이 흐르고, 위희평이 그에 완전히 몸을 무너트리며 펑펑 눈물을 흘린다.

“흑…… 흐윽.”

그러면서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둔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황제는 기묘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뒷짐을 지고, 허리를 바로 세우며 황제는 그 창백한 얼굴 위에 족쇄에서 풀린 죄수가 지을 법한 홀가분한 웃음을 흘렸다.

하늘 위로 멀리 날아갈 듯한 파랑새와 같은 웃음이었다.

“더.”

이제야 우리가 나아갈 길을 깨달았지.

감미로운 목소리가 흐른다.

“더 아양을 떨어.”

황제는 더 이상 얼굴 위에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위희평에게 분노를, 의심을, 불안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다정다감한, 혹은 비정한 눈으로 제 앞에 치부를 드러낸 사내를 응시할 뿐이었다.

천박하고, 또 천박한…… 나의…….

황제는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얻어맞기 싫어서 네가 그 엉덩이를 내게 들이댄 거면, 내 주먹이 두려워서 지금 네 천박한 뒷구녕을 벌려서 내게 보인 거면 제대로 해.”

“…….”

“네가 잘하는 일이잖나?”

위희평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감싸며 절망에 몸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위로 떨어진 냉담한 목소리.

“쑤셔라!”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떨어진 문진(文鎭)을 위희평은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 *

꿈이 예견한 축생도(畜生道).

그 짐승이 사는 지옥.

“아, 아.”

황제는 침상 위에 나른히 누워 쟁반 위의 포도를 입술에 밀어 넣고 있었다. 교태로운 신음이 천작궁 안에 스며든다. 그것은 바로 귀에 감겨 사내의 애간장을 녹이는 끈적한 목소리였다.

“음, 아.”

신음은 탁자 위에 쪼그려 앉은 사내가 흘린 것이었다. 봉황비녀가 대롱거리는 산발이 된 머리를 늘어트린 채, 사내는 바지를 반쯤 벗어내려 발목에 걸친 채 제 치부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높고 가는 신음은 밀가루 반죽 같은 둔덕에 길쭉한 검은 물체를 쑤실 때마다 흐르는 것이다.

탁자 위에 올라가 쪼그려 앉은 위희평이 문진으로 제 뒤를 쑤시는 광경을 황제에게 내보이고 있던 것이다. 그는 황제의 눈요깃거리가 된 채 그의 즐거움을 위한 행위를 이어 나갔다.

“흐응, 응.”

반쯤은 꾸며내고, 반쯤은 진심으로 흐르는 신음을 흘리며 위희평이 화려한 무늬가 양각되어 금칠을 한 오동나무 문진으로 열심히 아래를 쑤신다. 황제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에 찌걱거리는 소리가 신음과 함께 울려 퍼졌다. 위희평의 얼굴은 발긋하게 달아오른 상태였으나 그것은 그가 고개를 푹 숙인 순간 흘러내린 폭포수 같은 머리에 가려진 지 오래였다.

황제의 시야에 드러난 것은 오로지 살짝 벌려져 타액을 흘리는 발긋한 입술뿐이었다. 색욕을 돋우는 신음을 흘리는 그 음구(淫口) 말이다.

“네년이 누구라고?”

아, 음.

이성을 잃고 뒤를 쑤셔대던 위희평은 그 질문에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친년. 비웃는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위희평이 발긋하게 뺨을 물들인 채 입술을 연다.

“화랑, 화랑의 계집…….”

금박으로 덮인 문진이 그 순간에도 새하얀 둔덕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네년이 누구야?”

“소, 소평…… 폐하의, 폐하의 양물을 품는…… 소, 소평.”

“네년의 이름이 뭐지?”

위희평이 아스라한 한숨을 흘리며 몸을 뒤튼다. 둔덕이 흔들리고, 쪼그려 앉은 몸이 기우뚱하고야 만다. 위희평이 가까스로 무너지는 몸을 되잡았을 때 문진은 둔덕 안에 깊게 꽂혀 눈에 보이지 않는 채였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엉덩이에 꽂힌 문진을 빼내며 위희평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미인(美人). 미인 위씨.”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내뱉고 그는 구멍에 박힌 문진을 빼내려 끙끙거렸고 그의 그런 모습을 안주 삼아 황제는 술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 황제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리고, 그 사이로 부드러운 음성이 흐른다.

“현명해졌구나. 미인.”

황제는 위희평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달덩이 같은 엉덩이에 못처럼 박힌 문진 끄트머리가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결국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문진을 빼내려 위희평이 아랫배에 힘을 주고야 만다. 익, 윽 소리를 흘리며 길쭉한 문진을 느릿하게 배출해 내는 위희평을 바라보며 그 순간 황제가 두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윽, 으윽!”

살집 사이로 빠져나오는 번들거리는 문진이 꼬리처럼 위희평의 엉덩이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문진과 사투를 벌이는 위희평. 목에 핏줄이 드러나게, 얼굴이 벌게지게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끄응 소리를 흘리는 위희평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응시하며 황제가 희미한 잔웃음을 흘린다.

“진즉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을….”

그 누가 하늘의 아들을 비난하겠는가!

그 고귀한 존재가 하지 못할 짓이 무에 있는가?

비로소 족쇄에서 벗어나 완전히 하늘의 아들이 된 사내의 얼굴에 희열이 스친다. 그 순간 위희평의 벌건 구멍이 입을 크게 벌리며 문진을 투욱 뱉어내고 있었다.

바닥 아래로 데구루루 굴러떨어지는 문진에 황제의 입술 밖으로 결국 커다란 광소가 흐르고, 그를 듣는 위희평의 흐느낌은 짙어져 갈 뿐이었다.

그날로부터 반년 후, 황제는 천인을 손에 넣게 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