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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천작궁(天作宮) 미인(美人) 위씨(魏氏) (1/17)

一. 천작궁(天作宮) 미인(美人) 위씨(魏氏)

황제의 침전인 건녕전 처마에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휑한 바람이 부는 소리가 울리고, 묵묵히 상소문을 읽어 내리던 사내의 곧게 뻗은 눈썹이 슬쩍 꺾어진다.

숨을 죽이며 그의 옆에 시립해 있던 어전 태감이 흘끗 창밖을 바라보고 목을 가다듬었다. 궁궐에 사는 이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일정 시각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곤 했다.

태감이 마침내 느껴지는 문밖의 인기척에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해시(亥時)옵니다, 폐하.”

붓끝이 멈춘 순간이었다.

“패를 뒤집으소서.”

문밖에서 경사방(敬事房, 황제의 방사를 관리하는 환관 부서) 태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노란 비단 천을 덮은 은쟁반을 내민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진 나무패 여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바로 후궁의 이름이 적혀진 녹두패였다.

이날 밤 황제의 성총을 받을 후궁을 지목하는 성패성진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황제의 시선이 태감을 향하고, 그의 마음을 읽은 어전 태감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신호를 보낸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간 경사방의 태감이 쟁반을 내밀었을 때, 황제는 망설임 없이 제일 가장자리에 올려놓은 녹두패에 손을 뻗었다.

경사방 태감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잠시 스칠 때, 황제는 그 순간 입술 밖으로 냉소를 흘리며 짤막한 말을 내뱉었다.

“성은!”

그리고 부복한 어전 태감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때려 죽여라.”

“폐, 폐하!”

경사방 태감의 두 눈이 부릅떠지고야 만다.

“어, 어째…… 우웁!”

어전 태감은 노련한 자였으므로, 제 주인의 심기를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충격적인 명령에 항의하려는 경사방 태감의 입술을 막고 어전 태감이 눈짓한다. 시위가 경사방 태감을 향해 달려드는 그 순간 황제는 소매를 떨치며 건녕전 밖을 나서고 있었다.

* * *

황궁은 크게 외궁과 내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궁은 아침에 조회가 벌어지고 황제와 관리가 집무를 보는 장소였고, 내궁은 흔히들 후궁이라 불리는 여인의 공간이었다. 다른 말로 육궁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육궁은 황제와 황후의 침전을 가운데 놓고 동궁과 서궁으로 나뉘는데, 이중에서는 동궁의 서열이 높았고 개중에서도 중앙궁에 가까운 천작궁의 서열이 가장 높았다.

이 천작궁의 주인이 바로 미인 위씨였다.

황제가 망설임 없이 뒤집은 패의 주인.

황제의 어가를 호종하며 어전 태감, 성은자는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아무리 돈에 눈을 멀었다지만 위 미인이 성총을 독차지한 이 시기에 녹두패에 손을 대다니.

경사방 태감이 돈을 받고 녹두패의 순서에 손을 대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나, 그는 실로 눈치가 없어 안 좋은 시기에 뇌물을 받았다.

‘아니, 뇌물을 받기 좋은 시기가 있으려나?’

문득 그의 얼굴에 묘한 기색이 서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황후와 함께 지내는 보름을 제외하면 항상 천작궁을 찾는 황제를 떠올리고 있었다.

본디 한 궁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5등급 첩여부터이고, 사실 대부분은 4등급 소의가 되어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위 미인은 회임을 할 수 없는 몸임에도, 출신을 알 수 없는 천한 신분임에도 총애를 받고 육궁의 법도를 거슬러 궁을 하사받았다. 그것도 가장 높은 서열의 궁인 천작궁을 말이지.

위 미인을 향한 황제의 총애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므로.

그러니 어전 태감은 경사방 태감의 경솔한 행위를 비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총비가 선택받는 순간 얼굴에 실망을 드러내고야 말았으니, 죽을죄를 저지른 거지.’

하여간 경사방 태감은 제 경솔한 행위의 대가를 받았고, 이제 궁궐에서 위 미인의 입지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경사방 태감의 죽음이 육궁에 황제가 위 미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리니 더 그를 깎아내릴 사람이 있겠는가?

비록 그가 대역 죄인이고, 사내일지라도 더 이상 비난할 이는 없으리라.

어전 태감 또한 이 순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위 미인은 육궁의 실세다. 황후 따위보다는 그에게 아첨하는 게 차라리 나아……. 아니, 애초에 폐하는 그분에게 후세를 얻기 위해……. 으음, 미친 짓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군…….’

먹구름에서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는 날, 육궁을 가로지르는 황제의 수레가 천작궁을 향하고 있었다.

* * *

황제의 나이는 실로 젊었다.

변고가 일어나고, 그가 반란을 일으킨 주체를 처단하고 황위에 올랐을 때가 성인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나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한 태자가 황위에 오른 후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기거나 얕보지 않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건장하고 강인한 몸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를 경외하는 까닭은 그 성정에 있었다.

태자 시절에 폭급한 성정으로 이름이 높던 원선화는, 황위에 오르고 난 이후로 선황을 빼닮은 모습을 보였다. 쉬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침착함, 잔인한 손속, 자비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 면모.

그리하여 선황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황제는 선황이 한 사람에게 집착했던 것마저 닮았다.’

천작궁 위 미인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천작지합(天作之合), 하늘이 맺어준 부부의 연이라는 글귀에서 따와 명명받은 천작궁의 삼중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순간 황제의 냉막한 얼굴에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고야 말았다.

방 한가운데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그 옆 의자에 다리를 꼰 채 앉아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밖을 유심히 보는 이가 있었다.

팔다리가 길게 뻗고 몸의 능선이 우아한 이, 바로 천작궁 미인 위씨였다.

그는 영락없는 총비의 자태를 뽐내는 이였다.

호리한 몸 위에 금사로 봉황을 수놓은 화려한 붉은 촉금 비단을 걸치고, 긴 흑발을 다발로 꼬아 한쪽으로 느슨히 수운계(随云髻)를 틀어 올린 차림새만 보아도 그러했으니까.

붉은 모란을 조각한 보석관과 구슬이 달린 화려한 비녀를 곳곳에 꽂은 머리, 어깨 능선에 가까스로 걸쳐 있는 무거운 옷, 옷자락 사이로 드러나는 주옥 신발마저 황제의 대단한 총애를 드러내고 있다.

그 무겁고 화려한 옷과 장신구는 본디 중성적인 외모의 그를 더욱 연약하고 위태롭게 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바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말이지.

무심한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는 위 미인은 확실히 그 용모만으로 미인이라 칭할 수 있었으나, 육궁의 내로라하는 미인에 비해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깨지기 직전 유리와 같은 아슬아슬하고도 처연한 분위기는 실로 시선을 사로잡는 기묘한 매력을 풍겼고, 심지어 환관마저 가끔 흔들리게 만들었다.

육궁의 사람들은 그가 그런 매력으로 황제를 홀렸다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는 천작궁 안에 들어선 순간 놀랄 만치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소평(小平).”

그 말을 내뱉은 후 그는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 열린 창문 앞에 다리를 꼬고 말없이 앉아 있는 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몸을 기울여 속삭이기를.

“미인은 추운데 왜 창문을 열어놓고 있지?”

귓전에 스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위 미인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실로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황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않았다.

드르륵. 천작궁의 문이 닫히고, 위 미인의 가는 허리에 굵은 팔이 둘러진다. 제 몸을 뒤에서 와락 감싸 들어 올리는 황제에 일말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은 채 위 미인은 그저 인형과도 같은 얼굴로 스산한 기운이 서린 창문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평.”

“…….”

“으음, 소평.”

그런 그를 제 커다란 품에 가둔 채, 황제는 그의 목덜미에 잠시간 얼굴을 비비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뜨거운 숨결을 내뱉고 마른침을 삼키며,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 그를 으스러지듯 껴안으며 말이다.

그러곤 어느 순간의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승냥이의 눈이 빛난다.

황제의 손이 위 미인의 붉은 궁장을 갈기갈기 찢은 순간이었다. 눈처럼 새하얀 나신이 빛나고, 황제는 시신처럼 제 팔에 늘어진 위 미인을 옆구리에 낀 채 침상으로 성큼거리며 다가갔다.

침상으로 도착한 황제가 제 총비를 거칠게 침상에 던진다. 무기력하게 침상에 떨어진 위 씨가 침상 위에 엎드린 채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황제의 목울대가 떨리고 있었다.

화려한 궁장, 찢겨진 옷 사이로 얼음처럼 투명한 몸이 빛나고 있었다. 선정적인 붉은색과 대비되는 눈처럼 새하얀 살결, 그 부드러운 몸은 어둠 속에서 아슬한 매력을 풍겼고 사내의 시선을 홀렸다. 길게 쭉 뻗은 팔다리, 한 품에 안기는 가는 허리, 곡선이 도드라진 둔부.

마지막으로 시선은 우윳빛 가슴에 자리한 반짝거리는 장신구에 향했다.

그것은 뾰족하게 솟아오른 유두를 꿰뚫어 장식한 것이었다. 금강석으로 작은 새를, 청옥(사파이어)으로 새가 앉은 패랭이꽃을 조각한 한 쌍의 장신구는 서로 얇은 은색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무게로 유두를 아래로 당겨 가슴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칼날같이 날카로우면서도, 무료한 눈. 붉은 화장을 한 눈매에 감도는 요사스러운 기운.

황제의 얼굴이 돌연 일그러지고, 부득 살벌한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이성을 잃은 사내가 침상 위 고혹적인 자태의 총비를 향해 달려들고야 만다.

“흐음!”

뜨겁게 흘러나오는 숨소리.

사내는 충혈된 눈으로 손을 놀렸다.

욕망으로 짙게 물든 손이 아슬하게 몸에 걸쳐진 붉은 비단을 벗겨 내린다. 백 명이 넘는 궁인들에게 관리되는 총비의 살결은 먼지가 앉지 못할 만큼 매끄러웠다. 그런 살결을 타고 옷은 훌훌 흘러내렸고, 그렇게 발가벗겨져 완전히 우아한 나신을 드러낸 위 미인은 연이어 우악스러운 손길에 뒤집어졌다.

풍요로운 둔부가 하늘 위로 높게 솟는다.

기름진 살을 마디가 굵은 손이 붉은 자국이 날 만치 거칠게 비틀고 있었다. 마치 잘 익은 과육을 으깨는 듯한 손길에 살이 뒤틀려 벌어지고, 위 씨는 익숙하다는 듯이 순순히 엉덩이를 치켜뜨곤 상체를 납작 엎드렸다.

황제는 화려한 용포를 헤쳐 그 사이로 푸른 핏줄이 거미줄처럼 얽힌 물건을 빼냈고, 그러곤 제 앞에 엉덩이를 치켜뜬 미인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핏발이 선 눈에 비친 것은 오로지 달처럼 새하얀 엉덩이뿐이다.

그를 본 순간 사내는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들었고, 뜨겁게 솟은 검붉은 물건을 새하얀 엉덩이에 꽂았다.

그리고 흘러나온 위태로운 교성!

“아, 음!”

위 미인의 몸이 굴곡이 도드라지게 휘어지곤, 달큼한 목소리가 길게 흘러나온다. 둔부를 위로 치켜뜨며 하악 떨리는 숨소리를 내뱉는 위 씨의 둔부를 부여잡고 사내는 개가 흘레붙듯 허리를 털기 시작했다. 위 씨는 괴로운 듯 혹은 즐거운 듯 둔부를 흔들었고, 사내는 그런 그의 골반을 부여잡고 거칠고 어수선한 허릿짓을 이어갔다.

이어진 짐승의 정사는 뜨겁고 진득한 것이었다.

허억, 허억.

숨소리가 울리고, 콰과광, 번개가 내리치는 굉음이 이어진다.

빗줄기가 거세져 마침내 소나기가 이르고, 사방천지에 울리는 빗소리가 뒤를 잇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이로 고혹스러운 신음이 섞여 들어갔다.

그것은 구중궁궐의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를 가득 채운 화음의 도입부였다.

……바로 축생도(畜生道)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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