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124화
예상대로 신료의 입에선 금제국의 기둥이 어쩌고저쩌고, 이번 전쟁에서 느낀 바가 어쩌고저쩌고, 결국 후사가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개소리들만 나왔다. 잘못하면 지한국 꼴 난다는 말도 은근히 덧붙였다.
타낙한이 죽어 적통이 사라진 것을 언급한 것이었지만, 겨우 잊어가던 이름을 들은 탓에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어디 무륜만 할까. 울컥하여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목을 날릴 성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는 영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지껄이는 것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마침내 이상함을 느낀 신료가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집무실엔 기묘하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음. 사실 내가 그간 감추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뇌가 많았는데, 이리 먼저 말을 꺼내주어 고맙구나.”
불길함이 짙어졌다. 무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서질 않아.”
“……예?”
그가 검지로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짐이 고자란 말일세.”
무륜. 고자의 난이었다.
* * *
황궁이 들썩이고 수도가 뒤집혔다. 가장 크게 경악한 건 단연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황제를 찌를 순 없으니 만만한 주변인을 찔렀다.
온갖 미사여구가 붙은 안부 인사로 시작해,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묻는 말로 마무리되는 수십 통의 서찰이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것들을 불쏘시개로 쓰며 생각했다. 올해 철쭉 보긴 글렀다고.
황궁의 앞뜰이 아니라 청운관 안뜰에서 수련만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득달같이 달려오는 귀족들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며칠 새 한숨의 빈도수가 급격히 늘었다.
업무를 위해 무륜을 찾아가는 그 짧은 길. 벌써 두 명의 귀족을 만났다. 차라리 적과 칼부림을 하는 게 나았다. 그들은 교묘하면서도 날카로운 말로 나를 몰아쳤다.
인내의 끈이 간당간당해지자 가장 먼저 눈이 반응했다. 짐승의 것처럼 변한 눈동자가 세로로 쭉 찢어졌다. 흠칫한 귀족들이 발을 뒤로 물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일에 늦겠다며 얼른 도망쳐 집무실로 왔다.
내부에선 먼저 도착한 몽휼이 무륜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상대’ 같은 고운 말로 표현할 상태는 아니었다. 그보단 ‘드잡이질’이 어울렸다.
“미치셨습니까.”
몽휼이 험한 소리를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나도 그의 편이었다. 요 며칠 시달린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때, 열린 문으로 위중혁이 뛰어들어 왔다.
“폐하, 고자라는 말이 사실입니까.”
그렇게 묻는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폭발한 몽휼이 위중혁의 멱살을 덥석 잡았다.
“그놈의! 눈치는! 장에 가서라도 좀 사 오란 말이다!”
“갑자기 뭐냐. 미쳤느냐?”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옥신각신. 티격태격. 두 사람은 곧 서로의 멱살을 잡고 문지방 너머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다 태연하게 귤을 까 잡수는 무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계절에 웬 귤인가 하였더니 온조에서 보내온 공물이라 했다. 미간을 팍 찌푸렸다. 공물이 온 것이 온조만은 아닐 터다.
“그것들은 염치도 없답니까.”
“없다. 진작부터 없었다.”
“그건…… 예. 그렇군요.”
하긴 그런 게 있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아니, 이게 아니지. 하마터면 말려들 뻔했다. 정신을 다잡고 무륜을 불렀다.
“폐- 합.”
부르려 했다. 상큼한 향과 함께 단내가 물씬 풍겼다. 입에 넣어진 귤을 오물오물 씹었다. 먹으면서 말을 하는 건 황제의 앞이 아니더라도 예의가 아니었다.
뭐, 맛있긴 하네.
얼른 다 먹고 다시 부르려 했을 때, 무륜이 또 순간을 잘 맞춰 내 입에 귤 알맹이를 밀어 넣었다.
오물오물.
“맛있느냐?”
맛있었다.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무륜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다 먹었으면 다시 아, 하거라.”
아.
무륜은 내게 귤을 먹이며 자신의 고자설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내가 고자라고 했지만, 그것이 진짜 고자는 아니지 않느냐. 사람의 체면과 체통, 위엄이라는 것이 신체의 결함에서 좌지우지되는 것이더냐? 당장 내가 손이 하나 없다고 내게서 돌아설 자가 누가 있겠느냐.”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듣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서, 그가 넣어주는 귤을 얌전히 받아먹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 누가 감히 내 앞에서 후와 비에 대한 말을 꺼내겠느냐.”
오. 이번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미 고자에, 날 때부터 가진 결함이라 어떻게 고칠 방도도 없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다. 그런 상황에서 감히 비와 후를 들이라 간언을 한다? 감히 황제를 우롱하는 놈이라며 당장 참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귀찮은 건 잠깐뿐이다. 혹 누가 네게 그에 관한 것을 묻거든, 그냥 사실이라 하거라.”
“궁의원들은 어찌하실 겁니까. 진맥을 보면 바로 알 텐데요.”
“뭐, 죽기 싫으면 알아서 하겠지.”
“…….”
우문현답이었다. 무륜이 여섯 개째 귤을 까며 말했다.
“내 일을 해결했으니 다음은 네 일을 해결해야 할 것인데.”
‘일’이라 함은 역시 여율령의 저택에 부나방처럼 날아드는 매파를 이름이었다. 다 씹은 귤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뭐, 어떻습니까. 제 마음은 어디 갈 곳 없이 이미 폐하께 붙박여 있는지라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잠잠해지겠지요.”
“그래.”
영 시원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불안하십니까.”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무륜이 내 눈치를 살피며 변명처럼 말했다. 그 뜻을 안다. 생 하나를 거쳐 돌아온 나를 믿는 것과 내 주변에 날파리가 알짱거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빙긋 웃으며 까진 귤을 하나 입에 넣었다. 그 상태로 무륜의 입에 접문했다.
갑작스러운 행위에 놀란 무륜이 멈칫했다. 망설임은 짧았다. 곧 그의 팔이 능숙하게 내 허리를 휘감았다. 단단히도 힘을 주는 것이, 만족할 때까진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읏.”
뭉개진 귤 알맹이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귤이 어느 목으로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새콤한 향이 흐려질 때까지 서로를 탐했다.
“다 폐하께서 알려주신 겁니다.”
순진한 척 웃으며 속살거렸다.
“춘화집 한 번 본 적 없던 제게 별의별 망측한 행위를 가르쳐 주셨지요. 이제 평범하게 몸을 섞어선 만족하지 못할 듯하니, 폐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이렇게 예쁘게 조르는 법은 가르친 적이 없는데.”
“그는 타고났습니다.”
“빌어먹을. 네가 나를 아주 잡으려 드는구나.”
“예. 잡아먹을 겁니다.”
눈을 휘며 웃었다.
“한입에 꿀꺽 삼켜선 다시 뱉지 않을 셈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무륜의 손이 내 옷을 잡아 벗기고, 나는 무륜의 옷을 찢었다. 무륜이 감히 황제의 의복을 상하게 하였으니 그 죄를 어찌 갚으려느냐 물었다. 나는 당당히 몸으로 갚겠다 했다.
“그것 참 비싼 몸이로구나.”
곧 기름에 적신 손가락이 엉덩이 골 사이를 밀고 들어왔다. 끈적하면서도 질척한 소리가 귀를 희롱했다. 입술을 잘게 물자 무륜의 시선에 열기가 서렸다.
“네가 지금 어떤 낯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흐윽.”
“사내를 달뜨게 하는 표정이다.”
그가 깊이 넣은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그 표정을 아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에 더욱.”
흥분되는구나.
한숨처럼 흩어진 말이 구멍에 닿았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자리를 혀가 채웠다.
눈을 홉떴다.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겨우 잡은 것은 내 허리 밑에 깔린 방석이었다. 방금 전까지 무륜의 엉덩이 밑에 있던 것이 언제 내 밑에 왔나 의아해할 겨를도 없이, 초장부터 교성을 높였다.
“쉬잇. 예는 내 처소가 아닌지라 밖에 내관도 다니고, 관리도 다니고, 허드렛일하는 시비들도 다닌다.”
“흑. 윽.”
손등으로 입술을 막았다. 어느새 상체를 일으킨 무륜이 칭찬하듯 내 가슴팍을 길게 핥았다. 까끌까끌한 혓바닥에 유실의 끝이 쓸렸다. 등이 활처럼 휘고 배가 튕겨 올랐다.
“이리 몸에 야해서 어이할꼬.”
위사장으로 번을 서다가도 날 보고 홀로 흥분하는 것 아니냐. 응?
지엄하신 황상의 물음에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귀에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나더러 흥분했다 책하시면서, 정작 당신이야말로 아랫도리에 달린 용이 용트림 중이었다.
대답 없이 몸만 떨자 그가 골 사이로 성기를 문질렀다. 크기도 장대한 그것이 미끄러지듯 안을 파고들어 왔다. 내벽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절로 헉, 소리가 났다. 부들거리며 버티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무륜이 뻣뻣하게 굳은 내 몸을 보듬어 안았다. 등줄기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다정했다. 그는 괜찮다며 달래는 대신 미안하다 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곤 미친 망아지처럼 허리를 추어올렸다. 눈앞에서 불이 튀었다. 위에선 연신 다정하게 속살거리고, 입을 맞추고, 유실을 지분거리면서 아랫도리는 철퍽거리며 공이질을 쳤다.
“아윽, 흑.”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맨살에 땀이 차오르고 연한 머리칼이 온몸에 휘감겼다. 무륜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차마 입에 올리기도 뭐한 망측한 자세로 몇 번이나 바꾸는 와중에도, 내 안에 저를 밀어 넣길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 샅에 멍이 드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망치로 내려치는 정처럼, 안을 쾅쾅 두들기는 것에 머리에서 천둥이 쳤다.
“폐, 페하. 제발……. 제발.”
앞을 만지지도 않았는데 울컥 토정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시달린 성기에선 이젠 말간 액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울먹이며 애원했으나 무륜은 듣지 않았다.
“오냐. 내 예 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 나도 좋구나.”
일부러다. 저거 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다!
“제발 그만- 읍.”
그만은 무슨 어림도 없는 소리. 말하지 않은 말이 들린 것도 같았다. 입으로 내 입을 틀어막은 무륜이 재차 허리를 추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