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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60화 (60/140)

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60화

무륜이 입을 다물었다. 한숨을 쉰 그가 눈물로 엉망이 된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다 눈을 감았다. 무른 살덩이가 입술을 눌렀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분명한 위로가 전해졌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을 내던지지 말거라.”

무륜은 내 부탁대로 나를 안아줬다. 강인한 팔이 내 허리와 등을 휘감아 당겼다. 가슴이 맞닿았다. 내 슬픔에 슬퍼하는 무륜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상서령은 네가 도망친다고 책할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은 분명 호통을 칠 게다.”

“…….”

“내가 잘못했다. 네가 상서령을 잃은 마음에 상심하여 나를 좋아한다 한 것일까. 그저 충동적으로 한 말은 아닐까. 걱정되어 네 진심을 의심했다.”

그러니까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며 무륜은 내 등을 도닥였다.

“나중에 진정되고 나서도 지금의 일을 결코 자책하지 말거라. 차라리 내 탓을 하렴. 전부 내가 나빴노라고. 다 내 잘못이라고.”

나는 말없이 안겨 쓰다듬을 받았다.

“생물방에 일러 당과를 가져오라 하마. 약과도 식혜도 꺼내 오라 하겠다. 단 걸 먹으면 진정이 될 게야.”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내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군것질거리를 옮겨 온 건 몽휼이었다. 그는 조용히, 말없이, 침상 옆의 낮은 협탁 위에 그것들을 놓고 갔다.

약과를 몇 개 주워 먹고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천천히 등을 쓸다 도닥이는 손에 우습게도 졸음이 쏟아졌다. 몇 날 며칠의 강행군에도 멀쩡한 특급 무사의 몸이나, 정신은 얇은 설탕 과자였다.

무륜이 졸리면 이대로 자라고 속삭였다. 거짓말처럼 몸이 늘어졌다. 나는 반쯤 기절하듯 잠들었다.

* * *

무륜은 잠든 이화를 침상에 편히 눕혔다. 엉망인 얼굴도 사랑스러웠지만 짓무른 눈가가 못내 속상했다. 그는 몽휼에게 물에 적신 깨끗한 영건을 가져오라 일렀다.

몽휼이 잽싸게 대령했다. 무륜은 영건으로 친히 위사장의 면을 닦기 시작했다.

“몽휼. 해야 할 일은 알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무륜은 품 안에서 황금 패를 하나 꺼내 몽휼에게 던졌다. 몽휼은 그 패를 공손히 집어 제 품에 넣었다.

이걸로 어지간한 일은 몽휼이 수습할 것인즉, 무륜은 적어도 이화가 깰 때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곁을 지킬 참이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자신이었으면 했다. 아니, 자신이어야 했다. 적어도 상서령이 죽어 이화의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지금은 그래야만 했다.

무륜은 실소했다. 여율령의 죽음에 상심하는 이화가 안타깝고 안쓰러운 한편, 그가 어린애처럼 매달리는 것이 자신이라는 게 기꺼웠다. 그를 위로해 줄 사람 또한 자신뿐인 상황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이런 제 속내를 알게 된다면 이화는 분명 경멸하겠지. 기겁하여 도망할지도 모른다.

영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북궁에서처럼 친절하게 선택지를 제시해 줄 생각은 없다. 기회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아니었다. 무륜은 이제 이화가 없는 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폐하께 안기고 싶습니다. 이래도 착각인 것 같습니까. 아니면 절 좋아한다는 건 그저 해본 소리셨습니까.’

‘그럼 안아주세요.’

딱 한 발. 짐승과 인간의 경계가 딱 한 발자국이었다.

무륜은 젖 먹던 시절의 인내까지 긁어모아 그를 참아냈다.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이화를 다독여 안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 한마디에 소비한 인내심이 너무 컸다. 무륜은 색색거리며 지쳐 잠든 이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 * *

2황자의 습격과 여율령의 죽음에 대한 일은 바람처럼 금국 전역에 퍼졌다. 백성들은 경악했고 또 불안해했다. 무륜은 일을 수습하는 한편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문초는 짧았다. 2황자는 제삼세력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여태 여율령의 짓이라고 믿고 있던 자였으니 애초부터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처형됐다. 그의 목숨은 민심을 진정시키고 황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었다.

사절들은 현 상황과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무륜의 행보에 주목했는데, 무륜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고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나서서 신료들을 이끌고 금군을 진두지휘했다. 정무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사이 아주 조용히 여율령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나는 가장 먼저 문을 걸어 닫고 조문객 없는 장례를 준비했다. 그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는 자들은 문 안에 살던 자들. 여율령의 사람들뿐이었다.

동복이는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았다. 마당과 곳간, 주방까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암묵단은 단 한 명도 울지 않았다. 그들은 평소와 같았다. 담담했고 묵묵했다. 도열한 그들은 그 묵묵한 낯으로 죽은 여율령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상여는 깊은 새벽, 뒷문을 통해 나갔다. 상여꾼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조용한 행렬이었다.

위시한 인원도 적었다. 문관들의 필두라고 할 수 있는 여씨 가문의 가주이자 상서령의 마지막 가는 길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든 것이 여율령의 뜻이었다.

여율령의 죽음 후, 나는 암묵단에게서 목함을 하나 받았다. 그가 아들인 내게 남긴 것이라 했다.

함을 열자 접힌 종이 한 장만이 덜렁 든 것이 보였다. 절반은 유언이었고 나머지 반은 지시서였다. 거기엔 자신이 죽고 난 후 남은 자들이 해줬으면 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뜻을 그대로 따라 저택을 봉쇄하고, 새벽에 상여를 내보냈으며, 명의를 빌린 아무도 모르는 땅에 여율령의 관을 묻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매끈한 비석을 세웠다.

지시 다음은 당부의 말이었다. 조언과 염려가 빼곡했다. 글에서 여율령이 보였다. 흘러내리는 필체는 유려했고 내용은 담담했다. 그를 쭉 읽어 내리는데, 마지막쯤 암묵단과 나를 콕 짚어 남긴 말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죽어도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며, 나로 인해 너무 많이 슬퍼하지도 마라.]

나는 고개를 들어 목함을 전해 준 암묵단원을 봤다. 그는 여전히 담담한 신색이었다. 그 안에 억누른 것을 보고자 한다면 눈을 보면 된다. 그는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저 여율령의 마지막 유언을 충실히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내 진짜 어이가 없어서. 누가 그 주인에 그 수하 아니랄까 봐!

“흐윽.”

유언장 위에 물기가 떨어져 먹이 번졌다. 나는 끝내 담담하지 못했다. 유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은 나뿐이었다.

* * *

사절들은 불미스러운 일을 핑계로 궁에 감금되다시피 했다. 이번 일에 대한 주모자는 이미 잡혔고, 일은 다 정리된 것이 아니냐며 그들이 항의했다.

무륜은 혹시 모를 또 다른 사태에 대한 보호라며 대답을 일축했다. 대신 사절들의 귀국 일정을 앞당길 것이며, 현 사태에 대해선 금국에서 충분한 보상을 할 것이라 했다. 사절들은 더 말하지 못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르고 그들의 귀국 일정이 잡힌 날. 나는 저택의 봉문을 풀고 궁으로 돌아왔다. 여율령의 죽음 이후 일주일 만이었다.

나는 마음을 추슬렀다. 여율령이라면 내게 무어라 말했을지 상상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

‘나 죽은 게 뭐 대수라고 늘어져 있느냐. 그만 일어나 밥이나 먹어라.’

‘또 우느냐. 거 닭살이 다 돋으니 슬슬 그만둬라.’

그러고 나면 그만 피식 웃고 만다. 그렇게 서서히 괜찮아졌다. 무엇보다…… 아니, 이건 일단 그만두자.

여율령에게서 줄곧 받은 기이한 감각. 그것만큼이나 기이한 유언. 허무맹랑하다 못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망상이라도 질이 나빴다. 그러나 강렬한 예감이자 확신이 드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우선 그 느낌을 잊지 않고 마음에 묻어뒀다.

무륜은 저택의 정문이 닫힌 이후 계속 사람과 서신을 보냈다. 나는 받지 않았다. 그들은 문 앞을 서성이다 그대로 돌아갔다.

몽휼이나 밀영군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안으로 들어올 능력이 있는 이들 또한 문을 두드리다 반응이 없자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건 나에 대한 무륜의 배려였고 마음이었다. 본래라면 일개 위사장이 황제를 무시했다며, 금군을 이끌고 와 문을 부수고 추포하여도 감히 뭐라 항변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집무실로 향하는 길은 고요했다. 가끔 마주친 궁인들이 고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나는 가벼운 눈짓만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선 금군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거기 담긴 의미까지는 읽어낼 수 없었다.

집무실 문 앞에는 내 휘하의 위사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고개만 숙여 예를 갖췄다. 문 앞에 서서 옆의 내관을 봤다. 그가 안을 향해 고했다.

“폐하, 위사장께서 오셨습니다.”

내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부스럭거림이 멎었다. ‘들라 하라’는 명 대신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이화!”

문이 벌컥 열렸다. 그래. 문이 열리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황제씩이나 되시는 분이 이렇게 망아지처럼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퍽! 그의 턱과 내 이마가 부딪혔다.

나는 이마를, 그는 턱을 쥐고 같이 고개를 숙였다. 찌르르한 아픔보다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해도, 와서 박은 게 무륜인지라 조금 덜 창피한 내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금군과 위사의 면면이 보였다. 바로 후회했다. 그냥 계속 숙이고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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