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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45화 (45/140)

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45화

금군 내 부대장급인 사내가 음습하게 말했다.

“구준이는 어디 있나. 추적은 녀석이 전문인데.”

“홍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번 회엔 사냥감입니다.”

“쯧.”

그들이 행사에 차출됐을 때, 위수혁이 말했다.

‘진심을 다해 임하라. 폐하께서 직접 주최하신 행사이니.’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즉위식 이후의 첫 공식 행사. 그것도 황제 폐하 주관 행사였다. 그를 함께할 수 있는 걸로 모자라 판을 위한 주춧돌이 되다니.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광영인지라 금군과 밀영군은 의지를 불태웠다. 그들은 그 어떤 일이라도 목숨 걸고 임할 것을 다짐했다.

이미 ‘사냥 놀이’에서 ‘놀이’라는 글자는 지워졌다. 그들의 올곧은 충정은 전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쪽에도 붉은색이 얼핏 보입니다.”

“나도 봤다. 어쩔 수 없군. 이 임무의 목표는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수의 적을 사냥하는 것. 그러니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그림자는 포기하고 저쪽을 쫓는다.”

임무가 아냐. 적도 아냐. 사냥은 맞는데, 너희가 하려는 그 사냥은 아니야! 몽휼은 울고 싶었다. 딴지를 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다 셀 수도 없다.

파사사삭.

신속한 움직임으로 금군 사냥꾼들이 멀어졌다. 나무 위 그림자에 숨은 몽휼은 준비할 때부터 스멀거리던 불안의 정체를 뒤늦게 깨달았다.

문제는 위중혁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가 의도하고 기획한 놀이판이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모하려 함을, 몽휼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시각, 무륜은 이화와 헤어져 홀로 숲을 거닐고 있었다. 가능하면 붙어 있으려고 했는데 신법이 어찌나 고강한지. 아차 하는 새 찢어지고 말았다.

‘못하는 게 대체 무엇인고. 누구 위사장인지 참 잘나기도 하였다.’

무륜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 무척 기분이 좋았다. 가장 기대하는 건 이화가 사냥감, 저가 사냥꾼인 판이었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이화가 즐거워하고, 그런 이화와 함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이쪽에 홍대가……!”

그렇게 외친 두 명의 금군이 수풀을 헤치며 나타났다. 무륜과 금군의 시선이 마주쳤다. 소리치던 사내의 입이 딱 다물렸다. 무륜이 께느른히 웃었다.

“뭘 멀뚱히 섰느냐. 가던 길 안 가고.”

“…….”

푸른 띠의 금군들이 삐걱거리며 무륜의 옆을 지나쳤다.

그렇게 무륜은 ‘홍대가 살아남는 법’ 중 어느 것도 쓰지 않은 채 설렁설렁 사냥터를 활보하며 이화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무륜이 간과한 게 있었으니. 이 놀이에 위중혁도 참가했다는 점이다.

수풀이 재차 파삭하더니 몽휼이 튀어나왔다.

“폐하, 여기 계셨습니까.”

“오냐. 예 있다. 봤으면 네 갈 길 가거라.”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폐하의 그림자입니다. 놀이판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나오라는 이화는 안 나오고 평소 질리도록 달고 다닌 놈이 또 붙었다. 혀를 찬 무륜이 재차 꺼지라며 손을 내저었을 때, 나무 뒤에서 청대의 위중혁이 나타났다.

그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지엄한 황제의 홍대를 덥석 쥐었다. 그리고-

“잡았습니다, 폐하.”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투구벌레는 기어이 사고를 쳤다.

무륜은 위중혁을 보는 게 아니라 몽휼을 봤다. 그렇게 가래도 안 가던 몽휼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했다.

허. 오냐. 너는 나중에 보자. 이를 간 무륜이 위중혁에게 물었다.

“그래. 소원이 뭐냐.”

“속하에게 위사장직을 하사해 주십시오. 어차피 여이화는 한 번 사임하지 않았습니까.”

“…….”

무륜은 첫 회, 첫판의, 첫 탈락자가 되었다.

사냥꾼들이 살벌하게 돌아다닌다곤 하나 실력이 쟁쟁한 건 사냥감도 마찬가진지라, 관 앞에 와보니 탈락한 건 그 하나뿐이었다. 무륜은 하얀 그늘막을 노려봤다. 지옥의 수문장처럼 서 있던 금군들이 꼬리 만 개가 되어 황상의 눈치를 봤다.

혀를 찬 무륜이 준비된 자리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내관들이 서둘러 다가와 차게 식힌 식혜와 수정과를 권했다. 식혜를 벌컥 들이켠 무륜은 들썩이는 숲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황제의 탈락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사냥감들은 희게 질렸다. 그렇다면 이다음에 잡히는 자는 필히 그분과 단둘이 천막 밑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옥이 달리 있나. 게가 바로 지옥이지. 몰이를 피해 모인 붉은 띠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하나같이 비장한 각오가 서린 눈빛이었다.

그렇게, 지옥의 놀이판의 막이 올랐다.

* * *

어쨌든 황궁의 행사인지라 주최는 예부에서 맡았다. 유약한 문관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살벌한 풍경에 말을 잃었다. 그들이 보는 건 대부분 도망치고 도망치다, 결국 가장자리까지 밀려 나온 홍대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보라. 경계의 끝에서 더 도망갈 곳이 없음을 확인한 홍대의 낯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퍼억!

옆구리에 진각을 맞은 홍대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몇 바퀴나 구른 몸이 나무둥치에 퍽 하고 부딪혀 멈췄다. 낙법을 하긴 했으나 완전히 무사할 순 없었다.

부들거리며 상반신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의 뒷머리를 청대가 움켜쥐었다. 거친 손길이 사냥감의 고개를 뒤로 젖혔다.

헉. 허억. 홍대의 목젖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청대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깨무는 홍대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을렀다.

“애먹이는군.”

“이렇게…… 헉, 잡히다니, 분하다.”

“뭐, 사냥감치곤 훌륭했다.”

“읏. 쓸데없는 말 따위 집어치워. 어서 죽여라.”

아니, 죽이면 안 되지!

“왜. ‘상선 희 견차처’라 외쳐보시지.”

“그딴 말로 목숨 구걸을 할 바엔 이대로 죽겠다!”

그딴 말로 목숨을 구하는 게 규칙이라고! 그리고 죽지 마! 소리 없는 아우성은 닿지 못했다. 청대가 픽 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럼 소원대로 해주지.”

퍽 소리가 났다. 문관들이 헉하며 소스라쳤다. 청대가 축 늘어진 홍대를 둘러메고 본진으로 왔다. 예부의 문관들이 달달 떨며 상태를 확인했다. 홍대는 기절한 것뿐이었다.

관 앞을 지키고 섰던 금군이 움직였다. 저승차사처럼 다가온 그들이 홍대를 질질 끌어다 관 안에 던져 넣었다. 문관들은 공포에 질린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던 중 두 사내가 본진으로 왔다. 하나는 싱글벙글, 다른 하나는 좌절에 빠진 낯이 서로 상반되었다. 사월린과 그를 신수로 각성시킨 사냥꾼이었다.

금군 사냥꾼이 관으로 들어가며 분해했다. 밀영군 사월린은 그런 금군을 향해 픽 웃어줬다.

“밀영군의 흔적을 금군이 그리 쉽게 포착할 수 있을 리가. 발견했을 때 함정임을 의심했어야지.”

관에 있던 밀영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반면 금군들의 낯은 무섭게 굳었다.

“내 귀가 잘못됐나.”

“저 시커먼 놈이 방금 무어라 한 건가.”

옆에 있던 밀영군이 담담한 척 이죽거렸다.

“다 사실인데 뭘 그리 열을 낼까.”

“잠행과 은신은 우리 밀영군의 특기인 것을.”

그 순간, 관 내부에 선명하게 패가 갈렸다.

“바퀴벌레 같은 것들.”

“겉멋만 든 노린재들이.”

좋지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를 잠재운 건 내도록 침묵하던 무륜이었다.

“거기 잠깐.”

단 한마디에 으르렁거리던 금군과 밀영군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렸다. 부디 손끝에 있는 것이 저만 아니길 빌면서.

무륜이 지목한 건 관 안에 없었다. 그는 밀영군 사월린이었다. 판을 휩쓸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던 그가 찔끔하여 부복했다. 어쨌든 이 사태는 자신의 시비가 시발점이었다.

“폐하의 심중을 어지럽혀 송구합니다.”

“아니. 그건 됐다.”

됐다뇨.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 잡혀 온 몽휼이 가슴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륜은 밀영군을 손짓하여 불렀다. 지엄하신 황상의 부름이다. 어찌 지체하랴. 밀영군은 슬금슬금 다가갔다. 하나, 아무리 다가가도 손짓은 계속됐다.

이, 이 이상 다가가면…….

결국 답답한 무륜이 관 밖으로 한 발 내밀었다. 수문장처럼 선 금군은 앞만 봤다. 정말로 앞만. 그에 항의하는 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무륜은 밀영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위사장 보거든 재게 잡아들여라.”

“……명 받들겠습니다.”

이화가 잘난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잘나도 너무 잘나서 3판째에 접어들었는데도 잡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륜의 기분은 순조로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밀영군과 금군은 그 순간만큼은 한마음이 되어 사월린을 봤다.

‘못 잡아 오면 뒈진다.’

‘그분을 놓치면 네 목숨도 놓치게 될 것이야.’

사월린은 아까보다 장렬한 기세를 품고 숲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일다경도 못 되어 이화와 함께 본진으로 귀환했다. 뒤로는 갑자기 회가 끝나 어리둥절한 낯의 무사가 줄줄이 따라 나왔다.

“아. 위사장이 천태백호였군요.”

예부 관리들이 호오, 하는 소릴 냈다.

“위사장께서 생각을 잘하셨네요. 천태백호는 보통 사냥꾼을 선택하는 게 이득이니 그를 역이용한 겁니다. 사월린이 되면 천태백호의 가능성이 있는 사냥꾼보단, 비교적 안전한 사냥감들을 먼저 노리니까요.”

하지만 관에 잡혀 있던 이들은 안다. 밀영군은 그냥 무륜이 잡아 오래서 무조건 이화만 노렸을 것이다. 무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임무를 훌륭히 마치고 돌아온 밀영군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가 진정 충신이다.’

‘황공하옵나이다.’

노린 것과 달랐지만 어쨌든 결과는 완벽했다.

“아, 하면 위사장께서 ‘어흥’이라 하셨나이까?”

……완벽할 뻔했다.

밀영군과 이화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밀영군은 안절부절못하다 부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관을 등지고 있어 뒤편에서 무슨 사달이 났는지 모르는 예부 관리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규칙에 따라 무효-”

순간, 엄청난 살기가 그의 등을 찔렀다. 흠칫한 관리가 삐걱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이지만 특별히 봐드리겠습니다.”

“그럴 순 없다. 규칙은 규칙이지 않나. 괜찮다.”

전혀 괜찮은 표정이 아니었다. 이화는 시무룩해서 휴식을 위한 자리로 이동했다. 관리가 황제를 봤다. 무륜은 빙긋 웃으며 엄지로 목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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