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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44화 (44/140)

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44화

사냥 놀이는 세 판씩 총 3회로, 전부 해서 아홉 판이었다. 놀이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작 전에 모든 사람이 제비를 뽑아 그 역할로 한 회를 진행한다. 구성은 ‘사냥감’, ‘사냥꾼’, ‘신수’다. 신수는 다시 흑색의 ‘사월린’과 백색의 ‘천태백호’로 나뉜다.

단, 시작할 때 사월린은 ‘사냥감’의 띠를 매고, 천태백호는 자신이 직접 어느 띠를 맬지 선택할 수 있다. 보통은 ‘사냥꾼’을 많이 고른다.

승자를 가리는 방법은 점수제다. 사냥감은 한 판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으면 1점. 사냥꾼은 개인적으로 잡아들인 사냥감의 수당 1점. 이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의 사월린과 천태백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둘의 본격적인 활동은 정체가 밝혀진 후에 가능하다.

사월린의 경우 사냥꾼에게 잡혔을 때. 그럼 그 즉시 띠를 붉은색에서 흑색으로 바꿔 달고 ‘사월린’이 된다. 잡은 사냥꾼은 타락한 신수를 깨운 죄로 점수를 두 점 빼앗기고, 관에 들어간다.

사냥터 한복판에는 안전지대인 ‘선계’가 만들어진다. 크기가 매우 좁아 선착순 여섯 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다.

놀이가 재개되면 사월린의 세상이다. 본색을 드러낸 빙설기린은 사냥감과 사냥꾼에 상관없이 싹 다 잡아다 관에 넣어 점수로 바꿀 수 있다.

“……관이요.”

“잡힌 사람들을 넣는 곳입니다.”

“감옥도 아니고, 원도 아니고, 왜 하필 관입니까.”

불길하다 못해 살벌한 명칭이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대게 이런 놀이가 그렇잖습니까. 아무튼 관입니다.”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사월린을 막는 방법은 딱 하나, 천태백호뿐이다. 사월린이 실수로 숨은 천태백호를 잡으면, 천태백호는 ‘어흥’ 하고 외치고 사월린은 그 즉시 관짝행이다.

이때 천태백호는 죽지 않은 것으로 치며, 3점을 얻고 해당 회는 즉시 종료된다.

“……어흥이요.”

“예. 제대로 소리 내지 않으면 무효 처리됩니다. 또 만약 천태백호가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을 선택해 놀이를 시작했다가, 사월린이 아닌 다른 사냥꾼에게 잡히면 마찬가지로 관에 들어갑니다. 천태백호여도 평범한 사냥감으로 죽는 거죠.”

“…….”

“신수들이 ‘인간’의 몸에 봉인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둘 다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신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이화의 낯이 어두워졌다. 무륜은 그런 이화가 귀여워 흐뭇하게 웃었다.

크흠. 기침한 몽휼이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사냥감이 사냥꾼과 마주했을 때 살아나는 방법인데, 이는 총 두 가집니다.”

하나는 ‘나 사월린이다’ 하고 허풍을 떠는 것. 실제로 빨리 잡히는 것이 이득인 사월린은 어수룩한 척을 하며 일부러 사냥을 유도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상선 희 견차처’라고 말할 것. 그럼 딱 한 번 사냥꾼이 모르는 척해주는 규칙이다. 아홉 판 중 딱 한 번만 쓸 수 있고, 사용하면 띠 말단에 검은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해 둔다.

무려 상선에 관한 일화가 유래로 있는 방법이었다.

아직 연 대륙이 있기 전, 고대의 한 마을에 나무꾼이 살았다. 나길 천하게 태어나 일자무식이었으나,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상선을 공양할 만큼 그에 대한 믿음과 추앙은 대단한 자였다.

그런 나무꾼의 마을이 어느 무뢰한들에게 습격당했다. 나무꾼은 간신히 도망하였으나 그 앞에는 거칠게 요동치는 주문강이 있었다. 건너편이 잘 뵈지 않을 만큼 넓은 강에 절망한 나무꾼은 하늘을 향해 ‘상선(上仙) 희(希) 견차처(見此處)’라고 외쳤다.

‘상선이여, 바라건대 나 있는 곳을 봐줍시오.’

그 부름에 아래를 굽어본 상선은 나무꾼을 안타깝게 여겨, 하늘 기둥의 일부를 떼어 만든 조각배를 내려주었다. 나무꾼은 그 조각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대로 무사히 건너편까지 갔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무꾼은 뒤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가 죽자 그를 옮기던 배도 힘을 잃고 그대로 주문강 바닥에 가라앉았다…… 는 이야기다.

어쨌든 이러한 유래 탓에 과거엔 전쟁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장수가 쓰는 말이었다. 상선도 살려준 사람을 감히 인간이 해할 순 없음이라. 쉽게 말해, 우아한 목숨 구걸이다.

굉장한 꼴불견이지만 영물과 신에 대한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고대에 그리 말하면, 어지간해선 죽이지 못했다고.

‘지금은 고작 사냥 놀이에서 기사회생 1회의 뜻 정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말이지.’

같은 맥락으로 후계를 정하기 위한 시험에서 시작 신호도 같은 것을 쓴다. 바라건대 상선께서 직접 굽어보시고, 공정한 시험을 주관해 주십사 하는 의미였다.

“총 아홉 판을 통틀어 딱 한 번만 쓸 수 있습니다. 또 그 대신으로 자신을 잡은 사냥꾼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어야 합니다.”

“소원이요?”

“예. 원래 규칙에는 없지만 제가 추가하였습니다. 전래 동화에서 착안했지요.”

맞다. 전래 동화에서 착안해 무륜을 위해 넣은 규칙이었다. 과연 규칙을 들은 무륜의 낯이 흡족해졌다. 나를 모신 세월이 헛되지 않았구나. 장하다. 무언의 칭찬에 몽휼은 가볍게 읍하는 걸로 응했다.

대강의 설명은 끝났다. 몽휼이 손짓하자 내관이 재빨리 제비 통을 대령했다. 이화는 제 순번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황궁에서, 그것도 황제까지 포함하여 하려니 민가의 놀이도 대대적인 행사가 되었다.

‘관’이라고 불린 곳은 하얀 그늘막 아래에 준비해 둔 자리였다. 얼마나 본격적으로 할 셈인지 두 명의 금군이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잡혀 들어갔다간 당장 금의부로 끌려갈 분위기였다.

‘하긴 분위기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지.’

호위의 문제로 모든 참가자의 무기 패용이 허용된 참이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도열한 일류와 특급 무사들은, 놀이가 아니라 일생일대의 전투를 앞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지금 서 있는 곳은 본진의 개념으로 꾸렸는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그늘막도 쳐놓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준비되어 있었다. 무수한 궁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감독은 예부에서 하였고, 총감독은 여율령이 하였다. 눈썹을 찡그린 무륜이 왜 상서령이 이런 행사까지 관여하냐 묻자 태연하게 ‘자문관 자격으로 왔습니다’ 했다. 몽휼이 사냥 놀이 규칙을 황실 행사에 맞게 수정하며 이것저것 물었노라고.

무륜의 살벌한 시선이 몽휼에게로 향했다. 전래 동화로 딴 점수가 도루묵이 됐다. 그는 등을 흠칫거리며 애써 모른 척했다.

“위사장, 뽑으시지요.”

이화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제 차례였다. 이화는 조심히 뽑은 제비를 확인했다. 백색. ‘천태백호’였다. 첫판부터 신수라니! 실수하면 어쩌지. 그래도 재밌겠다.

무륜이 알았으면 귀여워 죽을 생각을 하며, 이화는 애써 태연한 척 예부의 관리에게 제비를 건넸다. 색을 확인한 관리가 사냥감을 하실지 사냥꾼을 하실지 물어왔다.

잠깐 고민한 이화는 사냥감의 붉은 띠를 받아 허리춤에 맸다. 같은 붉은 띠를 맨 무륜이 이화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기대되느냐?”

“예. 이런 놀이는 처음입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있는지라 원치 않아도 황제와 위사장의 대화가 훤히 들렸다.

“어릴 적엔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느라 놀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고, 폐하께 구명 받은 후엔 다시 뵐 날을 위해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했으니까요.”

한 줄로 이화의 인생 단편을 엿본 이들의 낯이 묘해졌다. 의외. 연민. 안쓰러움. 존경. 여러 생각과 감정을 담은 눈들이 아닌 척 이화를 향했다.

무륜의 심사가 대번에 뒤틀렸다.

“준비가 끝났으면 어서 시작하지 않고 무엇 하나. 이러다 해 다 지겠군!”

아직 오전이었다. 하나 앞으로 아홉 판이나 할 걸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라, 예부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상서령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홍대(紅帶). 출(出)!”

첫 회가 시작됐다.

붉은 띠를 맨 사냥감들이 일제히 숲으로 뛰어들었다. 도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가의 사유지였다. 능선이 있긴 하나 완만하여, 산보단 숲에 가까운 지형이었다.

몽휼은 빠르게 내달리며 동료들의 면면을 훑었다. 우선 폐하. 그리고 이화. 다수의 금군. 소수의 밀영군. 위중혁과 흑월은 없었다.

‘이번 회는 글렀군. 하필 두 분이 같은 홍대라니.’

역시 조작을 했어야 했나. 몽휼은 혀를 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역할을 바꾸려면 다음 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관이 쉽게 차지 않으며, 술래잡기 놀이치곤 진행이 더디다는 점이었다. 사월린과 천태백호의 존재 때문이다.

사냥 놀이는 얼핏 단순한 술래잡기처럼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다. 놀이판에 참여한 자들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 외에 서로 많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었다. 홍대와 청대가 서로를 가늠하고, 의심하고, 진실과 거짓을 간파해 사냥하고 도망쳐야 한다.

“찾았다! 홍대다!”

그런데, 몽휼이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이 놀이에 참여하는 이의 절대다수가 뛰어난 무인들이라는 것. 개중 책사 부류는 전무하다는 것. 다시 말해, 전원 육체파다.

머리 아프게 왜 생각해. 그냥 다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혹은 끝까지 안 잡히면 되는 거 아니야? 이와 같은 생각으로 무식한 사내들이 소 떼처럼 날뛰었다.

“사라졌다.”

“은신?”

“폐하의 그림자라던 그놈이군.”

“일단 근처를 수색한다. 멀리는 못 갔을 터.”

몽휼은 소름이 돋았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차올랐다.

‘뭐, 뭐야 이거!’

그는 지금의 느낌을 알았다. 과거, 3황자의 처소에 숨어들었다가 들켜 간신히 도망쳐 나왔을 때의 그것이다.

“숨는 솜씨 하난 일품이군요.”

“쥐새끼가.”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더 살벌했다. 살을 엘 듯 서늘한 기세에 몽휼은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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