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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13화 (13/140)

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13화

서한의 내용을 확인한 몽휼의 낯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그는 그길로 줄달음쳐 5황자의 처소로 향했다. 안에선 5황자와 위사장이 아직도 도란도란 말을 나누고 있었다.

“당과는 아직 좋아하느냐.”

“예. 좋아합니다.”

“그럼 주방에 말을 넣어두어야겠구나. 나는 단것은 영 맞지 않아 설탕이고 꿀이고 준비된 게 없을 테니.”

“괜찮습니다. 이제 더는 비루한 평민 아이가 아닙니다. 상서령을 아비로 둔 귀족인지라 당과쯤은 저택에서 실컷 먹을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거기서 싸 오면 됩니다.”

맞다. 지금 당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하.”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이 왔느냐.”

냉정한 시선이 정수리에 꽂혔다. 몽휼은 갑자기 서러웠다. 십 년을 넘게 한마음으로 섬기었으나 다 부질없었다. 굴러온 돌을 질투하는 박힌 돌이 되고 싶진 않으나, 서러운 건 서러운 거였다.

“왔으면 말을 하거라. 네가 허락도 없이 왔다는 건 급한 일이 있는 게 아니냐.”

이것도 맞다. 지금 제 서러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금 황태자가 칼에 맞아 절명했다 합니다.”

“……네 지금 뭐라 했느냐?”

“그 일각 후, 황제 폐하 또한 서거하셨습니다.”

놀람 짙던 5황자와 위사장의 안색이 대번에 바뀌었다. 서로 맞춘 듯 눈이 서늘해지고 기세는 날카로워졌다.

몽휼은 혀를 찼다. 그렇게 투닥거리시더니 일단 마음이 맞자 세상에 이리 잘 맞는 주종도 없음이라. ……주종이 맞긴 하겠지?

“의관 정제하십시오. 당장 본궁으로 가셔야 합니다.”

<2장 화톳불 완결>


황궁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황태자가 음해당한 것만도 큰일인데, 뒤따라 황제까지 서거하였으니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곧바로 계령(戒令)이 선포됐다. 금군이 온 사방에 진을 쳤다. 숨어 있던 밀영군도 죄 양지로 튀어나왔다. 하루아침에 모시던 주인도, 모셔야 할 주인도 잃은 그들이 흉흉한 기세를 흩뿌리며 황궁을 둘러쌌다.

소심한 궁인들이 기겁을 했다. 그들 눈에 비치는 금군과 밀영군은 직부사자 그 자체였다. 혹 눈이라도 마주칠까, 몸을 잔뜩 옹송그린 궁인들이 발발거리며 보랑을 지났다.

웬만큼 담력 있는 병사들도 해쓱한 낯으로 자리를 지켰다. 위세가 드높은 고관대작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항시 당당하게 폈던 어깨를 움츠린 그들은 염소수염을 연신 초조하게 쓸어내렸다.

그 사이에서 태연한 건 단 한 사람, 상서령 여율령 정도였다.

3장 동경(銅鏡)

2황자와 3황자, 그리고 유폐 당했던 5황자가 동시에 등청했다. 광실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황자 셋이 걸음도 당당하게 내부로 들어섰다. 안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읍하였다.

2황자는 올해 마흔이었고, 3황자는 서른둘이었다. 황제가 천수를 누리도록 살아 황좌에 엉덩이를 비빈 세월만 오십 년이라. 그들은 황제도 공왕도 되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었다.

2황자는 6척 장신에 재능 없는 무인이었다.

모친은 남방 5국 중 한 곳인 수백에서도 내로라하는 가문 출신이었다. 그녀가 데려온 가신들은 자연히 무기와 암기, 그리고 체술에 능했다. 그 사이에서 자란 그는 열등감만 가득 찬 반쪽짜리 무인이 됐다.

오히려 붓을 들었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 여율령은 냉정하게 평했다.

3황자는 매부리코에 왜소한 사내였다.

안하무인에 거드름 피우길 좋아했고 성격은 음습했다.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앞에선 대인배인 양 웃고 뒤에서 온갖 수를 쓰기로도 유명했는데, 안타깝게도 머리가 받쳐주질 못했다.

여율령을 따라 하긴 하는데 참새가 황새 따라가는 꼴이라 그가 저지른 일의 태반은 들통났다.

몇 번이고 유폐당할 뻔한 것을 황제가 그냥 두라 하여 어찌어찌 무사했다. 애초에 황제는 뛰어난 5황자보단 멍청하여 제게 해가 될 여지가 없는 3황자를 더 낫게 여겼다.

두 황자는 각자 착석하자마자 기 싸움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말이 서로를 난도질했다. 그러나 쉼 없이 혀를 휘두르는 와중에도 결코 황태자에 대한 것만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남방의 혈통을 보았다.

남방 5국은 수백, 무진, 기무진, 그리고 온조와 남조를 이름이었다. 2황자의 모친은 5국 중에선 가장 위세가 크다는 수백 출신이고, 3황자의 모친은 땅의 대부분이 밀림인 무진 출신이다.

2황자는 뛰어난 전투 민족으로 이름 높은 자국에서 사병과 암살 부대를 들여와 거느렸고, 3황자는 약과 독을 다루는 술사들을 휘하에 두었다.

온갖 기기괴괴한 것이 들어찬 밀림의 재료로 만든 무진의 약과 독은 대륙에서도 유명했다. 약은 어떤 중병도 고칠 수 있다 했고, 독은 어떤 신의가 와도 손쓸 수 없다 하였다.

그리고 황태자는 사냥 중 피를 토했고, 죽을 땐 칼에 맞아 죽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다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음이라. 게다가 저 둘 중 하나가 앞으로 이 나라의 주인이 될 텐데, 나서서 미운털 박히길 자처할 인사가 누가 있으랴.

물론 저 둘 외에도 후계의 자격을 가진 이가 하나 더 있긴 했다. 3년 전 유폐 당했던 5황자 무륜. 그는 다른 두 형제와 달리 조용했다. 담담하고 진중한 기색이었다. 언뜻 무감각해 보이는 시선이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들개들의 으르렁거림을 지켜보는 대호가 있었다.

여율령은 같잖은 개 두 마리와 우직한 대호가 보임에도, 대호 쪽이 불리한 이 상황을 재밌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본래라면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3도감-왕이 승하하면 설치되는 임시 기관-이어야 맞다. 국장을 맞았으니 3도감부터 발족함이 마땅할지니.

하나 이번만은 경우가 달랐다. 황제와 그가 낙점한 후계가 한꺼번에 급사한 비상시국. 그게 현 상황이었고, 그에 대한 대응책은 법률로 명시되어 있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법률에 따라, 세 황자분께선 지금부터 시험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 집행관 또한 법률에 명시된 대로 상서령인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2황자가 이의를 제기했다.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

어느 입이 지껄여.

남은 세 황자 중 가장 세력이 탄탄한 2황자가 말하니 그저 우스울 따름이라 3황자가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여율령은 예의 느른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사특한 마음 품으리까. 한 치 사심 없이 진행할 것입니다.”

“입으로는 태산인들 못 옮기고, 대해인들 못 건널까.”

“마뜩잖게 여기셔도 별수 없습니다. 시험의 집행을 맡는 것은 상서령입니다. 이는 상선께서 직접 비석에 적어 내리신 법률인즉, 불복하신다면 시험을 포기하고 공왕의 지위에 만족하소서.”

“네, 네 지금 감히-”

쩌정!

2황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실을 지키던 금군이 들고 있던 창을 일제히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 자리마다 작게 흠이 팼다. 하나하나가 일류 무사인 그들이 일제히 기세를 내뿜자 앉은 자리서 붓이나 놀리는 게 일이던 관리들의 낯이 하얗게 떴다.

2황자가 부릅뜬 눈으로 여율령을 보았다. 공손하게 읍한 그의 표정은 처음과 변함이 없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진 제가 집행관임과 동시에 황상의 대리인입니다. 영민하신 전하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화를 삭이지 못해 으르렁으르렁하면서도 2황자는 결국 자리에 앉았다.

이 시험의 기원은 연 대륙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신선, ‘상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선계의 주인이자 모든 신선 중 가장 높은 자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그 격을 높이어 ‘신계’로 갈 수 있는 자이기도 했다.

상선이 선계를 떠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하계에 대한 지극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 무렵 하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아직 바다가 손바닥만 하던 시절이었다. 대지는 인간이 다 밟아보지 못할 만큼 넓었으나, 애당초 땅의 넓이는 그리 중요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야욕과 투기에 삼켜진 인간들이 병장기를 쥐었다. 비옥한 땅에 핏물이 고여 썩고, 인간만이 아니라 온갖 초목과 동물이 죽어나갔다.

고심하던 상선은 하계의 내로라하는 영물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 중 셋을 뽑아 그 격을 높이어 지상을 보살피게 하려 하니, 너희는 속히 준비하여 시험에 응하라.]

상선의 시험은 백 일의 낮과 밤 동안 이어졌다.

무수한 영물이 중간에 낙방하고 포기했다. 꿋꿋하게 남은 영물들은 백 일째 되는 날, 상선이 세워둔 하늘의 기둥을 향해 경주를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세 영물이 가려졌다.

백호인 ‘천태백호’와 빙설기린 ‘사월린’, 그리고 흑룡 ‘진해’였다.

뭐, 그 후에 사월린이 미쳐서 하계를 멸망시킬 뻔하고, 그걸 막느라 천태백호가 죽고, 가장 어렸던 진해는 갑자기 넓어진 바다를 감당 못 해 잠들고…… 아주 개판이긴 했으나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중요한 건 상선이 후계위 계승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시험 방식을 도입하도록 말을 남겼다는 거다.

다만, 선행조건이 너무 말도 안 되다 보니 여태 이 시험이 실제로 시행된 건 금국의 기나긴 역사에도 딱 두 번뿐이었다.

하나는 우유부단함이 말도 못 했던 황제가 결국 태자 책봉을 하지 못하고 승하하여 벌어졌다. 다른 하나는 아직 갓난쟁이던 태자가 열병으로 숨이 다하고, 다른 황자를 태자로 봉하기 전에 황제가 급사하여 벌어졌다.

모두 당시의 상서령이 집행관을 맡았다. 그 또한 상선의 법률에 있는 내용이다.

“시험에는 5황자 전하께서도 응하실 것입니다. 일시는 국장이 끝난 두 달 후가 될 것이며, 내용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시험이 벌어진 연유는 달랐으되, 내용은 어느 시대라도 같았다.

[황궁에서 같은 날 같은 시에 출발한다. 이후 가장 먼저 천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하늘비석’에 손을 얹는 자가 황제가 된다.]

상선이 영물들의 마지막 시험에 썼던 ‘하늘 기둥’의 일부를 가지고 내려와 만들었다는 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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