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10화
사방이 막힌 좁은 궤짝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꿈이었다. 짐마차에 실린 터라 궤짝이 심히 덜컹거렸다.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낮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움직이던 신체가 밀랍처럼 굳었다. 펄떡이는 혼이 시체에 든 것처럼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끔찍한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꿈은 길기도 길었다. 변하는 것도 없이 계속 그 궤짝 같은 자개함 안이었다.
온갖 욕설을 쏟아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거인이 되어 자개함을 부수고 튀어 오르는 상상을 했다. 꿈이라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져도 좋으련만.
모래를 한 움큼 삼킨 듯 목이 탔다. 숨쉬기가 점점 힘들었다. 여율령의 저택에선 흑월이 깨워주곤 하였으나, 여긴 5황자의 궁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머무는 방은 5황자의 처소와 가까웠다. 그 말인즉,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지 않는 구석진 곳이라는 뜻이다.
아니, 설령 궁인들의 숙소 한복판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일개 궁인이 문간 너머의 희미한 신음을 들을 수 있을 리 없다. 설령 신묘한 우연으로 듣는다 하여도, 감히 위사장의 처소에 허락 없이 들어올 간 큰 궁인은 없다.
결국 이대로 아침이 올 때까지 견딜 수밖에. 체념하고 고통을 감내하는데 어쩐지 이마가 간지러웠다. 뭐지. 벌레인가.
이젠 확연히 무언가 느껴졌다. 약간 서늘하고 말랑한 듯 단단했으며 다리는 다섯이었다. 미간을 찌푸렸다. 이 해괴한 벌레가 꿈속의 벌레인지, 현실의 벌레인지 알 수 없는 탓이다.
그런데 느리게 움직인 벌레가 위로 오르더니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음. 이거 벌레라기보단…….’
누군가의 손 같았다. 서늘하고 길고 마디진 손.
“어찌 악몽을 꾸느냐.”
익숙한 옥음이었다. 머리맡에서 들리는 것도 같고, 자개함의 뚜껑 너머서 들리는 것도 같았다.
“네 아직도 거기 있더냐.”
예. 아직도 예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꿈쩍을 않더이다. 금군대장과도 검을 나눌 강인한 이 내 팔이 이곳에만 들어오면 똑 부러질 가지처럼 가늘어져, 어쩔 도리가 없음이니.
물속에서 들려오듯, 아련하고 먹먹하던 목소리가 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나직한 한숨이 내려앉았다. 애가 달아 손끝을 움직거리자 손가락에 무언가 걸렸다. 걸린 것을 구명줄처럼 움켜쥐었다. 사내의 손이었다.
어찌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아십니까. 금이야, 옥이야, 품에 안고 어르시더니. 제가 시커먼 사내가 되어 그렇습니까. 그때처럼 아해 같은 비단옷 입고 당과를 달라 헤실헤실하면 돌아봐 주시렵니까.
원망을 읽었음인가. 얌전히 쥐어져 있던 손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나는 다급히 몸을 뒤쳤다. 하나 여태 자개함에 갇힌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탓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으니-
“-가지 마십시오.”
“…….”
“못내 가시려거든 저도 데려가십시오, 나리.”
몸이 작아지자 마음도 작아졌다. 작아진 마음이 곧 부서질 듯 연약했다. 목이 메고 눈가가 달아오른다 싶더니 기어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소리도 없이 울었다. 대답이 없는 것이 서러워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뚫린 구멍에 한풍이 들이쳤다. 세상의 계절은 이제 완연한 봄이건만, 어찌 내 계절은 아직도 겨울인가. 천태백산 너머 북쪽 설원도 이보단 온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한숨 같은 말이 귀에 들리었다.
“가지 않으마. 내 예 있을 테니 울지 말거라.”
열아홉의 나리면 모를까. 스물넷의 5황자는 절대 해줄 리 없는 말이었다. 역시 나는 여태 몽중에 있음이라.
허망하고 서글퍼 눈물 줄기가 굵어졌다. 그러자 잠깐 가셨던 손이 되돌아와 내 손을 잡았다. 행여나 놓칠세라 꾹 움켜쥐자 자개함이 덜걱 열렸다. 그 사이로 영웅건을 쓴 사내가 나를 답삭 안아 올렸다. 꿈에서도 잊지 못한 품이었다.
새벽이 저물어갔다. 악몽이 물러난 자리엔 그리운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 * *
그날. 5황자가 평소 가지 않던 길로 걸음 한 것은, ‘원숭이’라며 기둥 뒤에서 키들거리는 궁인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원숭이는커녕 그 흔한 강아지 한 마리 키우지 않는 북궁이었다. 의아함에 가까이 갔다가 5황자는 그대로 넋을 잃었다.
원숭이라니. 저 궁인들은 눈이 엉덩이에 달린 모양이었다.
목련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사내는 목련의 화신 같았다. 양손 가득 못다 핀 꽃송이를 가득 안은 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꾸러진 그 환한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뒤집힌 탓에 상의가 조금 흘러내려 맨살이 살짝 드러났다. 단련된 무인의 배는 탄탄했고, 하얬다. 손바닥만큼 드러난 그 피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신, 이화를 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품에는 어린 목련의 꽃송이가 가득했다.
‘신이화입니다. 목련의 어린 꽃송이를 그리 부릅니다.’
이름에 대한 의미를 듣기 전엔 몰랐는데, 듣고 보니 더더욱 그가 목련 같아졌다.
다가오는 방식도 비슷했다. 5황자에게 이화는 딱 제 이름처럼 스며들었다. 등을 기댄 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만개한 꽃송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심지어 그 꽃이 너무 아름다워 손을 뻗지 않곤 견딜 수가 없는 그런.
‘미쳤구나, 무륜.’
5황자는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때의 표정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 처음으로 북궁의 적막함에 감사했다.
이미 다가왔다는 걸 자각하고 나자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건 의지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다. 어느 고인이 그랬던가. 사람이 이성적인 척할 수 있는 건 마음이 그를 눈감아주기 때문이라고.
마음이 눈을 뜨고 그를 보기 시작하자, 5황자로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틈엔가 시선이 그를 좇았다. 그의 모습을 살피고, 그의 기척을 느끼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것이 의지를 벗어났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겉으로 태연을 가장하는 정도였다.
온 신경이 그를 향했다. 그래서 평소라면 듣지 못했을 그 애달픈 부름을, 그만 듣고 말았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곳은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북궁이었고, 자신의 처소는 그런 북궁에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었으니까. 한데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틀림없는 신음이라 5황자는 수려한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옆의 냉궁에서 죽은 폐비빈들의 원혼이라도 찾아온 것인가. 신경질적으로 침상에서 내려서는데 어째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여상한 낯으로 찾아와 오늘부터 내가 당신 위사장이오 했던 애송이.
흑신이 보랑을 가로질렀다. 5황자는 자신의 걸음에 초조함이 서린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신의 처소에서 건너 건넛방 앞에 서자 신음이 보다 선명해졌다. 그는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척을 죽이긴 했지만 명색이 위사장이라는 자가 눈도 뜨지 못했다.
대체 무슨 꿈을 꾸기에 이러나 했더니. 가까이서 본 모양새는 틀림없이 악몽보단 가위에 눌린 것에 가까웠다. 신음하며 괴로워하는데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손 하나 까닥이지 못했다.
새액, 색, 숨을 몰아쉬는 것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5황자는 위사장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생각하고 움직인 게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움직였다는 말을, 5황자는 방금 체감했다.
“……나리?”
꺼질 듯 힘없는 음성이 5황자의 심장을 끌어 내렸다. 잊고 있던 시간이 해일처럼 5황자를 덮쳤다. 짧고, 아름답고, 그래서 덧없는 나날이었다.
구하지 못한 여동생을 아이에게 겹쳐 봤다. 남아에게 성별 모호한 옷을 입히고 어화둥둥 품에 안고 살았다. 당과부터 곶감, 식혜, 오색 사탕까지. 여동생이 좋아했던 건 다 가져다 입히고, 먹이고, 손에 쥐여줬다.
부질없는 짓임을 아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며 옷자락을 쥐어오는 손과 목을 감아오는 가는 팔에 중독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나리’라 부르며 엉겨오는 가냘픈 몸짓에 몇 번이고 헛숨을 삼켰다.
그것은 그의 여동생과 여동생이 아닌 무언가를 오가며 5황자의 혼을 쏙 빼놓았다.
본래 관문에서의 일은 무진의 불법적인 입수품을 압수한 순간에 끝났다. 그때부턴 다시 황명을 받아 남방 오랑캐를 치러 갔어야 했다. 하나 5황자는 미루고 또 미뤘다. 제 손인 척하는 황제의 수족에게 지적받을 때까지 뭉그적거렸다.
품의 온기가 고픈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몰랐겠지만, 함께한 열흘은 5황자가 술 없이 지냈던 가장 오랜 시간이며, 술 없이도 깊이 잠들 수 있었던 유일한 날들이었다.
제 불찰로 여동생을 잃은 후, 5황자는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다. 어지간한 탕약은 듣지 않아 술에 만취하여 기절하듯 정신을 놓아버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간혹 들이켠 술이 부족하여 새벽에 깨는 날이면, 어김없이 옆자리에 누운 여동생의 사체를 보았다. 사랑스러운 얼굴이 까맣게 타서 어디가 눈이고 입인지 알 수 없는 덩어리가 ‘오라버니’ 하고 저를 불렀다.
그날은 유독 그 형상이 생생했다. 새벽 어스름에 5황자는 소스라쳐 일어났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검로는 올곧으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할 것이냐. 허공에서 검이 멎었다. 5황자는 검면에 제 얼굴을 비춰봤다. 땀을 줄줄 흘리는, 여동생을 불살라 살아남은 비루한 자가 낯을 일그러뜨렸다.
검을 역수로 잡았다. 여태 몇 번이나 죽으려다 그래도 여동생이 살린 목숨이라 자진하지 못했는데, 그날은 유독 심이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줬을 때였다.
수하가 5황자를 찾아왔다. 그는 역수로 쥔 검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5황자는 그를 향해 ‘보고’라고 툭 던졌다. 수하는 무표정하게 저 할 말만 줄줄 읊었다.
‘아침에 관문이 열리자마자 어영부영 통과하려던 것을 잡아냈습니다. 안에 든 내용물도 전부 확인했습니다. 다만 개중 안을 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쇠 비린내가 나는 시선이 수하를 향했다.
‘열쇠가 꽂힌 채 부러진, 궤짝 같은 자개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