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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7화 (7/140)

호위무사는 떠나야 하고 황제는 몰라야 한다 7화

기침은 확실히 잦아들었다. 이제 가끔 습관적으로 헛기침을 하는 정도였다. 역시 나 때문이었다. 자책하며 앞으로도 말을 줄이리라 다짐하는데 5황자가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느냐.”

“예?”

“여태 조잘조잘 잘만 떠들어대더니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냐는 말이다.”

그게 이상한 일인가? 갸웃하다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와서 국밥을 먹던 손님이 갑자기 백숙을 주문하면 의아해지는 주모의 심리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송구합니다. 제가 말이 많아 전하의 목에 무리가 갈까 염려하여 그랬습니다.”

“그게 무슨 뜻-”

말미를 늘이던 주모…… 아니, 황자가 입을 다물었다. 영민하신 분은 곧 내 말을 이해했다.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내게서 홱 돌아서며 말했다.

“대답하지 않을 테니 여태 해온 것처럼 멋대로 떠들어라. 내내 시끄럽게 조잘거리다 입을 딱 다무니 오히려 어색하다. 귀족들이 먹지도 않을 구관조를 옆에 두는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으니.”

……그러니까 내가 구관조라는 뜻이었다. 두 발로 걷고, 칼도 찼고, 벼슬도 있지만 구관조 신세구나. 서럽다 서러워. 누구 탓할 사람도 없었다. 이미 5년 전에 홀딱 반해 버린 내 죄다.

신세 한탄을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는 것은 어찌 된 연유인가.

“예, 전하.”

사르라니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리 더디고 더디더니, 이 내 마음에도 머지않아 봄이 올 듯하였다.

* * *

“……내 어지간하면 묻지 않으려 하였는데.”

거꾸로 선 5황자가 해괴한 것을 보는 것처럼 나를 봤다.

“게서 대체 무얼 하는 것이냐.”

“이 나라의 홍복을 뵙습니다. 이제 기침하셨나이까. 용태는 좀 어떠십니까.”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여라. 대관절 원숭이처럼 나무에 매달린 연유가 무엇이냐. 저 구석의 궁인들이 널 보고 웃는 게 보이지도 않더냐?”

“신이화를 따고 있었습니다.”

“이화?”

‘신, 이화를 따고 있었습니다’로 들은 모양이다.

“신이화입니다. 목련의 어린 꽃송이를 그리 부릅니다. 말려서 달여 마시면 기관지에 좋습니다.”

기관지에 좋다는 말에 무어라 말하려던 5황자의 입이 다물렸다. 나를 올려다보던 그가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갔다.

그대로 다리를 풀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아뿔싸, 도중에 가지가 발끝에 걸리어 몸이 크게 휘청하였다. 하나 무술 경연에서 우승한 것은 운이 아니라 재빨리 고양이처럼 몸을 틀었다. 그러곤 흐트러진 중심을 바로잡아 사뿐히 착지했다.

후- 긴 숨을 내쉬며 숙였던 허리를 바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 5황자가 보였다. 분명 등 돌려 가시는 걸 보았는데, 그는 당장에라도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올 것 같은 자세로 굳어 있었다.

머리칼과 옷깃의 먼지를 털어내며 ‘왜 그리 계십니까?’ 하고 묻자 그가 다시 몸을 팩 돌리어 멀어졌다. 오늘은 어째 평소보다 더 냉랭했다. 기껏 북궁을 찾아온 봄마저 물러갈 냉기였다.

손 안 가득 딴 신이화를 소중하게 쥐고서 그 뒤를 따랐다.

“어이하여 뿔이 나셨나이까.”

“뿔나지 않았다.”

“걸음이 거치십니다.”

“내 걸음은 원래 이러했다.”

나는 감탄했다. 한 번 물을 때마다 한 번의 대답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5황자가 그러하니 천지가 개벽할 일처럼 여겨졌다. 역시 그간 계속 말을 건 보람이 있었음이라.

신이 나 또 무어라 하려는데 황자가 작게 ‘콜록’하였다. 동시에 내 입이 딱 다물렸다. 애매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연못이 있는 방향으로 가던 5황자가 혀를 차더니 발길을 확 꺾어 궁으로 향했다. 궁 내부는 따뜻하다 할 순 없었다. 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아 바깥보단 확실히 온기가 느껴졌다. 그대로 처소까지 돌아온 황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명은 소목련인데 이름은 어찌해 ‘이화’인가 했더니. 목련에서 따온 게로구나.”

“당장 주방에 가봐야겠습니다.”

“갑자기 주방엔 왜.”

“조반이 아무래도 상했던 모양입니다.”

“…….”

5황자가 눈으로만 욕했다. 뭔가 할 말은 많은데 뭐부터 말하면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다. 노대에 걸터앉은 그가 한숨을 쉬었다. 긴 날숨에 체념의 빛이 어려 있었다.

“대답이나 하여라.”

“예. 맞습니다. 제가 아직 어머니 배에 있을 적, 거대한 백호가 꿈에 나타나 어린 목련 가지를 물어다 주었다 합니다.”

“태몽 한번 거창하구나.”

“감읍한 말씀입니다. 하나 부디 그만 말하십시오. 목이 상하십니다.”

잔에 물을 따라 마시는 5황자를 보며, 문 앞을 지키던 궁인에겐 따뜻한 차를 내오라 시켰다. 그러곤 복도로 나가 섰다. 여느 때처럼 위사장의 본분을 다하려 함이었다.

“이화.”

등지고 선 문을 닫으려는데 5황자가 나를 불렀다. 놀라서 고개만 돌리자 나만큼이나 놀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예, 전하.”

혹 그새 마음이 변하실까 냉큼 안으로 들어가 노대 옆으로 다가섰다. 5황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여전히 무감각한 낯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체 알 수 없는 낯이기도 했다.

“이화야.”

“예, 전하.”

저리 부르시는 연유 역시 알지 못했다. 하나 그런 게 뭐가 중하랴. 그저 부르심이 달가워 가슴이 뛰었다.

“사내 이름치곤 곱고 유하구나. 싫진 않으냐?”

당신이 불러주시면 뭐든 좋습니다.

“싫지 않습니다.”

한데 막상 대답하고 나니 기억났다. 어릴 때는 싫어했다. 사내애 이름에 목련이 무어냐 울며 생떼도 부렸다. 그런 내심을 어찌 꿰뚫어 보셨을까. 눈을 가늘게 뜬 5황자가 말했다.

“어릴 적엔 싫어하였구나.”

별거 아닌 그 한마디로 나는 잠깐 옛 툇마루에 다녀왔다.

봄이었다. 햇살이 비친 자리마다 널브러진 어린 팔다리가 가득했다. 배 속에 막내를 품은 어미는 먼저 난 자식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목련이 피면 봄이 오는가. 봄이 오면 목련이 피는가. 네가 있어 봄이 오고 목련이 피누나. 북망산일랑 보지도 말고, 삼도천일랑 가지도 말고, 이리 오너라. 어여 어여 오너라. 네 따다 줄 산머루가 내 품에 있다.’

그건 자식이 무사히 어른이 되길 바라는 어미의 염원가였다. 모든 아이가 다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특히 못 먹고 못 입는 천것일수록 어릴 때 죽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이 노래는 기와지붕 밑으론 가지 않았다. 비가 새고 한쪽 구석이 내려앉은, 낡은 초가지붕 아래서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역광이라 얼굴이 가려진 어머니가 손을 뻗었다. 가물가물한 정신에 눈을 감았다. 서늘한 손의 감촉이 이마에 선명했다.

‘이리 오너라. 어여 어여 오너라. 내 귀여운 목련꽃아, 내 품에 자렴.’

다신 되돌아갈 수 없는 날의 향취에 젖어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다른 형제들과 비교가 되어 그랬습니다. 제 큰형은 연 대륙에서 가장 큰 산의 이름을, 둘째 형은 흐르는 구름의 이름을, 바로 아래 동생은 묵직한 바위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막내는?”

“막냇동생은 어머니의 이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름을 주기 전에 어머니께서 먼저 절명하셨으니까요. 아버지도 대충 ‘막내’라고만 부르셨지요. 그래서 상인의 손에 팔리는 날까지도 그 아이만큼은 눈에 밟혔습니다.”

담담하게 말했다. 실제로도 내 마음은 지극히 고요했다. 하나 듣는 5황자는 아니었다. 그의 입이 딱 다물렸다. 태연한 척하나 난감해하는 기색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괜찮습니다. 이제 와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아이가 눈에 밟힌 것은 팔려 나가던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상서령께서 저를 거두신 이후, 저는 여이화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다른 이화는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5황자에게 구명 받은 목숨으로, 이렇게 다시 5황자를 만났으니까.

5황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사색에 잠긴 듯하여 나도 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말하였다. 안 그래도 기침이 낫지 않아 걱정인 것을.

차를 내오라 한 궁인도 기별이 없다. 역시 직접 갈 것을 그랬다며 혀를 차는데 5황자의 입이 열렸다.

“‘신이화’라 한다 하였지.”

그의 시선이 내가 여태 손에 쥐고 있던 꽃 무더기에 닿아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예’ 하였다.

“그를 명명한 자는 필시 다 자란 목련들 사이에서 덜 자란 목련을 찾아 부르고자 하였을 것이다. 어린 목련에 의미를 주고, 애틋한 마음을 주고, 넌 특별하노라 그리 말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어디선가 굴러온 색실 공이 흑피를 신은 내 발을 툭 건드렸다.

‘어디 숨었느냐. 내 도저히 못 찾겠으니 이제 그만 나오거라.’

그리 부르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땐 필사적으로 숨었으나 그가 이미 내 있는 곳을 알았음을, 이제는 안다.

‘난감하고 곤란하다. 널 주려 당과를 가져왔는데 이를 어쩐다.’

지금 내 마음이 울컥함은, 그때의 그가 내게 의미를 부여했던 까닭이다.

‘음. 문 앞의 시비에게 주어야 하나.’

애틋한 마음을 주고,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었음이다.

‘예 있었구나. 하하, 그래. 이 당과는 네 것이다. 그리 안달 말고 천천히 먹거라. 다 네 것이래도.’

눈보다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 작은 방의 풍경이 지금도 눈꺼풀 안쪽에서 어른어른했다. 신이화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눌린 꽃들이 풀물을 뱉었다. 어린 목련의 향이 짙어졌다.

“그런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니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겠지. 그 이름을 준 네 어미도 그와 같은 마음 아니었겠느냐. 다른 이화가 없다는 말은 하지 마라. 네 어미가 슬퍼할 게다.”

목이 막혀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무겁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5황자가 장하다는 듯 흐릿하게 웃었다. 귀한 웃음에 정신이 팔린 순간-

콜록.

말을 마친 5황자가 기침을 하였다. 빈 물 잔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데 늦장이던 궁인이 차를 내왔다 문 앞에서 고하였다. 그대로 몸을 틀다 말고 멈칫했다.

손안 가득이던 신이화를 얼른 탁자에 쏟아내고 다시 문으로 가 차를 받아 왔다. 찻잔에 따라 내밀자 5황자는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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