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
‘형님!’
‘해야. 글공부 잘하고 있었어?’
‘예, 여기… 오늘은 일곱 번 썼습니다.’
풀벌레가 우는 평화로운 밤이었다. 통통한 뺨을 발갛게 붉힌 어린아이가 주섬주섬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 들고 꼼꼼하게 살폈다. 저 조막만 한 손으로 얼마나 공들여 썼는지 적지 않은 글씨가 모두 정갈하게 쓰여 있었다.
칭찬해 달라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참지 못하고 뽀얀 뺨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
그러자 아이의 뺨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대부분의 시간이 외로워서인지, 아무리 틈이 날 때마다 애정을 퍼부어도 부끄러워하는 것은 여전했다.
그 뺨을 살짝 꼬집어주곤 작은 두 손을 잡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먹으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젖은 물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다 됐다.’
겨우 깨끗해진 손을 모아 잡자 가둬진 손이 꼼지락거렸다. 나는 눈을 접어 웃으며 그 손에 부우우 바람을 불어넣다 쪽쪽 입을 맞췄다. 아이가 간지럽다며 얼굴을 우습게 찌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또 손은 절대로 빼지 않는다. 그 간극마저도 사랑스러워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형님.’
그 순간 자그맣던 손이 쑥쑥 커지더니 내 손 크기를 뛰어넘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물러날 새도 없이 하얗고 길쭉한 그 손은 내 뺨을 붙들었다. 얼굴이 부드럽게 끌려갔다.
‘윽, 우읍…….’
나는 어느새 다 커버린 사내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감은 눈을 뜨자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에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나는 떨리는 팔을 들어 주몽의 눈이 있었을 부분에 갖다 대었다. 어느새 그곳에선 투명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저를 버리고 가셨습니까?’
‘……해야.’
짤막하게 부른 순간 흐르던 눈물에 피가 섞였다. 나는 눈가를 닦아주던 손을 멈칫했다. 그가 피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그러나 울부짖으며 물었다.
‘저와 함께하겠다, 떠나지 않겠다 그리 약조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나, 나는…….’
‘보십시오. 형님이 떠나간 뒤로 형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늑했던 북녘궁이 우르르 무너졌다. 잔해 뒤로 보이는 것은 불타는 태자궁이었다.
아니, 태자궁뿐만이 아니었다. 궐 곳곳이 무너지고 불씨가 휘날렸다. 궁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그 뒤를 군사들이 쫓아 칼을 휘둘렀다.
나는 까맣게 물든 흙바닥을 보다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무도 없었던 내 옆자리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알 수 없는 초조함이 감돌았다.
그의 등에 꽂힌 기다란 화살을 더듬다 가려진 얼굴을 모로 돌렸다. 엉망이 된 머리카락이 흩어지며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창백하게 질린 사내를 알아본 순간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아냐…. 아니야….’
‘…….’
‘가람아!’
나는 더듬더듬 그 얼굴을 짚었다. 핏기 하나 없는 피부 위로 내 손이 지나갈 때마다 진득한 핏자국이 남았다. 정신없이 가람이를 깨우려는 내 어깨를 누군가 턱 짚었다. 나는 소스라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주몽이 내 얼굴 가까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까워진 그의 공허한 얼굴에선 피 냄새가 났다.
‘나라를 세우면 그 곁에서 축배를 나눠 드시겠다던 약조를 기억하십니까?’
나는 그제야 그의 손에 술잔이 들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들린 술잔은 하나뿐이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건 독배다.
‘안 돼!’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막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잔을 단숨에 비웠다.
발치에 독배가 뒹굴었다. 주몽이 피를 울컥 토해냈다. 잔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세상이 우르르 진동했다. 서까래가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그 틈새로 물이 차올랐다.
나는 버둥거리며 두 사람을 껴안았다. 차가운 물 속에 그보다 더 차가운 피부가 손 안에 감겨들었다. 비릿한 내음이 나는 물은 순식간에 가슴, 목, 턱까지 차올랐다. 입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에 두 사람의 피가 섞였다.
우우웅, 우우웅. 물이 거세게 진동했다. 그 회오리 속에서 나는 누구 것인지 모를 피를 연신 삼켜냈다…….
***
우우웅-
“허억, 헉.”
머리맡에서 무언가 시끄럽게 진동했다. 숨을 헐떡이며 원인을 찾아 옆을 마구 더듬었다. 손끝에 휴대폰이 걸렸을 때는 이미 진동이 멈춘 뒤였다. 나는 단단히 굳은 몸을 억지로 돌려 액정을 마구 두드렸다.
9:03
10월 30일 금요일
김우원 부재중 전화 (1)
시간까지 확인하고 나자 비로소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아직도 팔다리가 저릿저릿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축축한 이마와 목을 훔쳤다. 아니나 다를까 손등에 식은땀이 흥건히 묻어 나왔다.
“하아…….”
나는 손을 툭 떨어뜨리며 꽉 막힌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꿈이었지만 매번 깨어나서 바라보는 하얀 천장은 쓸모없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나무 살이 드러난 천장이 아닌, 시멘트로 이루어진 단단한 천장은 그 무엇보다도 이곳이 부여가 아니라는 증거였으니까.
육 년 전, 그날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오늘처럼 하얗고 매끈한 천장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느릿하게 눈을 끔벅였었다. 등에 닿는 촉감과 얇은 이불이 낯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곳이 어딘지 몰랐다.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일어났어?’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붙였다. 곁에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던 여자였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 천천히 입을 벌렸다. 의식할 새도 없이 마른 목구멍 사이로 어색한 부름이 튀어나왔다.
‘엄…마…?’
‘그래. 엄마가 학교에서 연락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엄마’는 괴물처럼 입이 찢어져 딱딱거리는 얼굴도 아니고, 더없이 다정하게 나를 부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살짝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흐릿했던 내 기억 속 얼굴을 그대로 덮었다.
그제야 나는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엄마구나. 정말 내가 돌아왔어.
고여 있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평생을 가슴 속에 품고 살던 말이 주인을 찾아 두서없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내, 내가 미안해……. 내가, 더 빨리 모, 못 일어나서, 야, 약속도 못 지키고…….’
‘얘가 왜 이래? 너 3시간밖에 안 잤어. 그리고 약속은 무슨, 내일 시험 걱정돼서 그래?’
엄마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내 귓가에 꽂혀 든 말은 달랐다.
3시간. 3시간이라고.
울음이 울컥거리며 목구멍 위로 올라왔다. 나는 정말 신이 장담한 대로 열여덟 살 그날로 돌아와 다시 눈을 뜬 것이다. 시험을 보고 내려오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모습 그대로. 마치 그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목숨을 좌지우지하던 퀘스트는 모두 사라졌다. 내가 책임져야 할 운명도 끝났고 귀족들 사이에서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 신이 보았다는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돌아갔다.
그렇게 내 20년의 세월은 기나긴 꿈을 꿨다 말하기에도 민망한 시간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참고 또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뛸 듯이 기뻐해도 모자랄 시간인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허무하고 서글펐다. 이제 그 간극의 증거는 오로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내가 놀라고 아파서 운다고 생각했는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달래다 끝내는 화를 냈다.
‘그러게 엄마가 뭐랬어. 계단 내려올 때는 휴대폰 보지 말라고 했지!’
그러나 그 와중에 쏟아지는 타박은 그저 기껍기만 했다. 나는 꺽꺽대며 눈물을 쏟아내다 기어코 탈수 증세까지 보이고 나서야 멈췄다.
그 뒤로도 꿈 같은 재회의 연속이었다. 나는 회사로 돌아간 엄마 대신 병원으로 온 동생을 껴안고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하나가 새로웠고 자동차 경적 소리에도 퍼뜩 놀랐다.
이게 모두 환상이라면 잠들었을 때 깨고 말 것 같아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이곳에 있었다. 나는 울음을 참으며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가고, 집에 와서 싫다는 동생을 붙들어 저녁을 먹고, 엄마가 올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렸다. 하루하루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꿈속에서 멸망하는 부여를 보았다.
비명을 지르며 깨자마자 장기가 뒤틀리고 배와 등의 일부분이 불타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신음하며 침대 위를 뒹굴다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나는 의사가 촉진을 위해 한 부위를 누르는 순간 이 고통의 원인을 깨달았다. 그곳은 넘어오기 직전 칼에 꿰뚫렸던 부위였다.
내가 예감했던 또 다른 고통의 굴레는 그렇게 극심한 환상통과 함께 찾아왔다.
“……음.”
그 뒤로 1년 정도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잠깐의 기쁨에 비해 남은 현실은 상상보다 길고 끔찍했다.
다행히 기억도 원래대로 돌아왔는지 수학 공식 따위는 기억이 났지만 부여에서 오랫동안 밴 습관이 어디 갈 리 없었다. 피자나 치킨 따위가 너무 먹고 싶어 욱여넣으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스란히 토해냈다. 기절하듯 잠들면 부여의 꿈을 꿨다. 그마저도 얼마 잠들지 못하고 새벽 5시 반이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매트리스가 불편하고 존댓말이 어색한 데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사소한 것에 속했다. 무엇보다 배 속을 칼로 휘젓는 듯한 환상통이 매일 같이 따라다니는데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다. 20년간 집을 그리워하며 가장 바랐던 것 중 하나가 다시 학교에 다니는 것이었다. 그걸 고작 이따위 나약함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학기 중 절반을 병결로 채우면서 2학년을 수료했지만 고통은 다음 해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그땐 어느 정도 현대에 적응을 한 터라, 죄책감이 더욱 심했다.
안배된 운명이 너희를 잘 살게 하고 있겠지, 부여는 신에게 부탁도 했으니 멀쩡하겠지.
아무리 스스로를 달래도 가슴 속 깊이 자리한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밝은 낮이면 내가 떠나온 모든 것들이 곳곳에 겹쳐 보이며 나를 그리움에 빠지게 했고 깊은 밤이면 내가 버린 모든 것들이 소리 높여 나를 원망했다.
그쯤 되자 엄마와 동생의 얼굴을 보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 얼굴들이야말로 내 이기적인 선택의 가장 큰 증거였으니까. 나는 잠에 취한 채 동생의 이름이 붙은 모든 공책과 교과서, 펜 하나까지 모두 잘라 모은 다음에야 깨달았다.
내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결국 또다시 나를 잠식했구나.
그 뒤로는 제법 빠른 대처가 이루어졌다. 부여에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으면 온 궁인이 안달복달 읍소만 해댔지만 여기선 학교 폭력을 의심한 엄마가 선생님과 상담한 끝에 정신병원을 예약했다.
그 무엇도 이 그리움을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뿌리 깊은 경험에 취해 있던 나는 순순히 심리 검사에 응했다. 그간 학교에서 복통으로 쓰러졌다고 하면 몇 번 내과에 다니게만 했던 엄마는 결과지를 보고 뒤로 넘어가셨다.
혼자 삭일 줄만 알았던 감정들에도 다 정확한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더불어 한결 견디기 쉽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몇 달은 병원에서, 몇 달은 집에서, 다시 몇 달은 병원에서. 심하면 입원을 했고 괜찮아지면 약을 타왔다. 약을 먹으면 번잡하던 감정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던 중 의미 없는 움직임에 의지가 섞여든 것은 티비에서 하는 SF 영화를 보았을 때였다. 그들은 우주선으로 시공간을 건넜고, 나는 믿을 수 없게도 희망을 얻었다.
저게 있다면 나도 언젠가 다시 주몽을 만나러 갈 수 있겠지.
그날 나는 던져두었던 물리책을 찾았다. 다행히 다음 해가 되자 유급했던 고등학교 3학년도 다시 다닐 수 있었다. 모두가 차라리 검정고시를 치라며 만류했지만 꼭 학교를 다니며 마무리하고 싶었다. 학교생활은 내가 오랫동안 바랐던 것들 중 하나였으니까.
결국 최고의 물리학과가 있다는 대학에 합격했을 무렵에는 주몽만 나오는 꿈만이 드물게 찾아왔다. 그 꿈은 전과 달리 얼굴 부분이 뻥 뚫려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를 볼 때면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약만 먹으면 사그라졌다.
그것도 ‘그날’ 모조리 무너지고 말았지만…….
기억을 훑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지금은 버티고 버텨 어느새 3년이 또 흐르고,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있었다.
“약을 먹을까…….”
나는 약이 들어 있는 침대 옆 서랍을 뒤적였다. 종종 견딜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거나 불안한 상황이 생기면 먹으라고 처방된 약이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다행히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니까. 3년 전부터 약에 의존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스스로를 토닥이는 사이 진동이 짧게 울렸다. 마침 조금 전 부재중 전화의 주인공이었다.
[김우원] 야 자냐?
[김우원] 나 옷 한번만 빌려주라ㅠㅠㅠㅠㅠ
[김우원] 후드티나 맨투맨 같은 거 암거나
[김우원] 지하철 탓는데 누가 커피 쏟음ㅅㅂ
김우원은 대학에 와서 사귄 친구였다. 원체 활발한 그의 성격과 반수를 해서 나와 나이가 같다는 점은 우리가 가까워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남에게 적당히 무심하고 무던한 그의 태도는 때에 따라 기복이 심한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1학년 말, 내가 갑작스럽게 휴학을 했을 때도 유일하게 캐묻지 않고 기다려준 친구였으니.
[나] 맨투맨 들고갈게
[김우원] ㅇㅋㅇㅋ 땡큐
[김우원] 내가 이따 맛있는거 사줄게
그러니 경기도에서 통학을 하는 불쌍한 그에게 옷 정도는 흔쾌히 빌려줄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온 답장을 보곤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부산하게 침대를 정리하고 세수를 했다.
오늘따라 꿈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사라지질 않았다.
5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