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브] 터닝 포인트 : 건국을 향하여
남은 ‘전환점’ 기간 : 16시간
‘주몽’의 결심 수치 : ■■■■■■□□□□ 59%
나는 초조하게 손 안에 든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손을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잘 빠진 검신이 검집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길 반복했다. 검집에 양각으로 새겨진 화려한 문양과 칼 중앙에 파인 얕은 홈은 단검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나는 불안한 와중에도 만족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유명한 대장장이를 찾아 금덩어리를 잔뜩 안겨주고 의뢰를 넣은 보람이 있었다. 몰래 주문해야 하는 바람에 궁인 한 명만 대동하고 돌아다니느라 고생했지만.
그래도 기한 내에 나온 것이 제일 다행이었다. 설마 한 달 넘게 걸릴 줄은 몰랐지. 이럴 줄 알았으면 우선 한 자루만 주문할 걸 그랬다. 주몽만 주기엔 미안해 가람이 것도 동일한 칼로 주문했더니 단검이 완성되었을 땐 어느새 기한이 하루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 자루의 칼 중 하나만 들고 태자궁을 몰래 나섰다. 목적지는 북녘궁이었다. 낯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려는데 궁인들이 가득한 태자궁 침실을 쓸 순 없는 일이었다. 밤이 깊었지만 다행히 별빛과 달빛이 밝아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 길을 밟고 밤늦게 글을 가르치려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순진했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같은 길을 다른 목적으로 밟고 걸어가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주몽이 마구간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북녘궁은 아무도 오가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원래도 그리 좋은 궁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버려지다시피 한 이 궁을 우리의 만남 장소로 선정했다. 외지고 개미 하나 얼씬하지 않으니 그렇고 그런 짓을 저지르기엔 딱 좋았다.
“형님.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북녘궁 안에는 주몽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 있었는지 화로로 데워진 방 안이 따스했다.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돌렸다. 평소라면 반갑게 인사했을 테지만 상황이 이래서인지 익숙한 눈웃음도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일단 이거 받아.”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주몽이 묘한 얼굴로 검을 살펴보았다. 섬섬옥수가 그 못지않게 아름다운 단검을 매만지는 장면은 하나의 예술 같았다.
“아름다운 검이로군요.”
“그래. 마음에 들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접어 웃으며 건네는 감사 인사에 나는 눈을 빛냈다. 체면 차릴 것도 없이 바로 의도한 바를 꺼냈다.
“그럼….”
“설마 이걸로 넘어가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이지. 그건 그냥 새해 선물이야.”
첫 번째 전략, 뇌물 공세 실패.
나는 실망한 티를 애써 감추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변명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니 좋긴 했다. 비록 뇌물로 준비한 단검이었지만 목적이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거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의 되바라진 면모를 알게 되었지만 지난 이십 년 동안 기른 정이 사라지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괜히 볼을 한 번 훔치고 두 번째 전략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꼭 육체적으로 정이 통해야만 내 진실함이 증명되는 걸까?”
이번 전략은 논리적인 설득이었다. 내 진중한 눈빛에 주몽도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는 항상 형님을 마음속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플라토닉 러브라고, 정신적인 사랑을 나눌 생각은……?”
“태자궁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찔러본 말에 그가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서둘러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 알겠어. 알겠으니까…….”
내 간절한 손짓에 그가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보란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정말 같이 밤을 보내는 수밖에 없는 걸까? 아무리 고작 유사 성행위라지만 부담은 부담이었다. 물론 결심을 한 지는 오래였고 마음의 준비도 모두 끝마치고 온 상태였지만, 이렇게까지 하면 주몽이 다른 조건을 내세워주지 않을까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꼴을 묵묵히 지켜보던 주몽이 입을 떼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그런 제안을 하신 게 이해가 안 되시겠지요. 하지만 저로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형님께선 마음 없는 관계는 맺지 않으시지요. 그래서 혼인도 여태 하지 않으시고 때마다 들이는 여인도 모두 내치신 게 아니십니까?”
“…….”
“밤을 보내달라는 것은 그저…… 절 내치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가느다란 바람을 품고 있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감싸 들어 올렸다. 지난밤 검은 욕망으로 빛나던 두 눈은 외로움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 눈을 마주 보았다.
“…….”
……보다, 아니 듣다 보니 주몽의 말도 맞는 말 같았다.
혼인을 하지 않는 건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책임질 수 없는 연을 맺고 싶지 않아서였다. 태자궁에 억지로 밀어 넣어지는 여인들을 모조리 돌려보낸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녀들이 신을 벗기도 전에 태자궁에서 내쫓는다는 것은 이미 궁궐 내에서 유명한 소문이었다.
그러니 사정을 모르는 주몽의 입장에서는 내가 마음이 없는 사람과는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을 만도 했다. 그 생각은 자연히 밤을 보낸다면 변치 않는 마음을 얻는 것일 거라는 착각과 이어졌겠지.
그토록 내쳐질 것을 두려워하며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내 양심을 쿡쿡 찔렀다. 아주 어린 시절 그에게 저질렀던 냉대가 트라우마로 남은 걸지도 몰랐다.
“형님…….”
주몽이 눈을 내리깔며 내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허리에 둘러지는 팔과 내려앉는 숨결, 비스듬히 보이는 옆얼굴이 심장을 쿵 때렸다.
“해야…….”
그 일이 주몽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게 확실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그를 마주 안았다. 그의 서글픈 눈매와 처연한 얼굴을 보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마음에 맺혔던 괘씸함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사정을 다 알고 나니 그런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던 이유도 납득이 되었다.
그래, 어차피 많이 가봐야 손을 빌려주는 걸 텐데 괜찮지 않을까? 내가 덩달아 흥분할 일도 없고, 성교육 한번 진하게 시킨다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눕히며 길렀는데 성교육도 시켜줄 수 있지…….
무엇보다 나는 네 번의 밤을 채우고도 건너갈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네 번이 되기도 전에 주몽을 먼저 남쪽으로 보내고 난 집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몰랐다. 주몽의 애달픈 진심을 듣고도 변하지 않는 결심이었다.
그 생각만 하면 죄책감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원하는 것 하나 해주는 게 뭐가 대수랴.
그래. 우선 결심 수치부터 올리고 보자. 막상 닥치니 불안했던 마음이 점차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우선 남쪽에 새 나라를 건국하겠다고 약속부터 해줘.”
어차피 현실로 돌아가면 다시 쓰일 일 없는 몸뚱어리였다. 그걸로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몽은 곧장 대답하는 대신 기댔던 고개를 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뒷말을 기다렸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날카롭게 물었다.
“왜 그리 건국에 집착하십니까? 나라가 분열되고 반역자가 생기면 부여에도 좋을 일이 없을 텐데요.”
“……내가 말했잖아. 네가 왕이 되면 정말 멋있을 것 같다고.”
순간 말문이 막혔던 나는 토해내듯 지난번에 말했던 변명을 다시 불러왔다.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진심이었다. 나는 내가 배웠던 역사 속의 고구려를 떠올렸다. 삼국 중 가장 넓고 강대했던 나라.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그 나라를 세우고 지배할 거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분명 네가 건국한 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 부강하고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될 거야. 그 영광은 아주 오래도록 지속되겠지. 넌 분명 그럴 수 있어. 난 그 능력을 이 좁은 곳에서 썩히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이 나라의 태자 저하께서 하시기엔 적당하지 않은 말이로군요.”
[서브] 터닝 포인트 : 건국을 향하여
남은 ‘전환점’ 기간 : 15시간
‘주몽’의 결심 수치 : ■■■■■■■□□□ 72%
웃음기 서린 말과 달리 결심 수치는 착실히 그 점수를 쌓았다. 나는 조급함에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약조, 해줄 거지?”
조르는 모양새였지만 남은 시간을 보자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웃으며 나를 보던 주몽이 순간 입매를 굳혔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는 말없이 입술을 벌렸다가 닫았다. 그 사이로 붉은 혀가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허리에 느슨히 감겨 있던 팔이 천천히 조여왔다.
곧 닥칠 일을 예감한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몸이 점차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입술을 열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먼저 저와 네 번의 밤을 보내면 저를 따라 새 나라로 오시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얄팍한 양심이 무언으로 맺은 긍정이자 부정이었다.
조금은 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맞닿은 살을 통해 느껴졌다. 주몽은 갑작스러운 내 입맞춤에 당황이라도 한 건지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나 역시도 곧장 다른 행동을 이어나가는 대신 그대로 멈췄다.
짧은 찰나였다. 더 미루다간 내 결심마저 흔들릴까 봐 저지른 짓이었지만 수만 가지 생각이 낯선 긴장감과 죄책감에 섞여 엉망진창으로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무를까 하는 후회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띠링—
[서브] 터닝 포인트 : 건국을 향하여
남은 ‘전환점’ 기간 : 15시간
‘주몽’의 결심 수치 : ■■■■■■■■■■ 100%
[서브] 터닝 포인트 : 건국을 향하여 – 완료
축하합니다! ‘주몽’에게 성공적인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건국을 향한 ‘주몽’의 추진력이 상승됩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영웅 서사가 안정화된 궤도로 흘러갑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숨을 삼키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얌전히 떨어뜨려 두었던 팔을 들어 올려 머뭇머뭇 주몽의 목에 감았다.
그와 동시에 눈꺼풀 너머로 일렁이던 푸른 빛이 몸 위로 진 거대한 그림자에 가로막혔다. 허리에 얹혀 있던 주몽의 손이 등을 타고 올라오더니 내 뒷목을 움켜잡았다. 코가 부딪히고 고개가 비틀렸다. 머뭇거리는 내 입술을 뜨거운 혀가 난폭하게 벌렸다.
얌전히 입술을 맞대고 있던 게 거짓말인 양 그는 숨 쉴 틈 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혀가 문질러지고 바짝 말랐던 입 안이 타액으로 적셔졌다. 입술이 쉴 틈 없이 겹쳐지고 멀어지는가 싶으면 다시 다가와 삼키길 반복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의 목에 팔만 감고 있었다. 내가 시작한 행위였지만 정말로 우리가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나 질척이는 소리는 여과 없이 귓가에 꽂혔다. 입 안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자, 잠시… 윽…!”
“하…….”
그는 어딘가 조급한 사람처럼 내게 달라붙고 또 달라붙었다. 나는 당황하여 그의 어깨를 세차게 쥐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입맞춤을 나눌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떨어지라는 무언의 압박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꾹 눌러오는 입술은 내가 밀어내다 못해 퍽퍽 때리듯 밀치고 나서야 멀어졌다. 나는 틈이 벌어지자마자 부족한 숨을 들이켰다. 뜨겁게 달궈진 숨결이 우리의 얼굴 사이를 오갔다.
주몽이 이마를 맞대어 왔다. 나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차라리 가까우면 엉망으로 달아올랐을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거란 속셈에서였다. 대신 그가 다시금 입을 맞춰 오기 전에 허겁지겁 질문을 던졌다.
“너, 하아, 사내와 하는 법은, 알아?”
모를 게 분명하다고 확신하고 있어도 예방 차원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제발. 제발 모른다고 해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주몽은 멈칫하더니 다른 부분을 짚어냈다.
“형님께선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어쩐지 사나운 구석이 있는 말투였다. 그가 엄지로 내 목선을 문질렀다. 묘하게 힘이 들어간 손길에 나지막한 신음이 나왔다. 뭉근한 아픔이 맴도는 곳에 입을 맞춘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방법이 따로 있습니까? 물론 여인의 몸과 다르니 많은 제약이 있겠지요. 잘 아시는 형님께서 부족한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움찔거리며 올라갔다. 계획했던 대로 삽입이라는 절차 자체가 아예 없는 것처럼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나는 목을 따라 입을 맞추는 그의 두 뺨을 붙잡아 올렸다. 밤하늘을 닮은 검은 눈이 열기에 젖어 날 올려다보았다. 그가 나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내 손바닥에 뺨을 문질렀다. 그 작은 몸짓에 귓가에 열이 확 올랐다. 평소라면 귀여운 어리광이라 넘어갔을 동작이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이건 다 조금 전에 키스를 해서……. 나는 애써 느껴지는 감각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을 더 보고 있으면 그대로 홀려버릴 것 같았다.
주몽이 드러난 내 턱선을 따라 쪽쪽 입을 맞추며 올라왔다. 어린 게 벌써부터 발랑 까져가지곤. 나는 다시 맞부딪혀오는 입술을 두어 번 문질러주다 뗐다. 그리곤 순식간에 불퉁해지는 얼굴에 작게 속삭였다.
“침실로 가자.”
숨결이 닿은 그의 귓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순진해 빠진 모습에 이상하게도 기묘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래, 아무리 되바라진 말을 해대도 이 아이의 처음은 지금이었다. 나도 처음이었지만 지금 이 관계를 이끌어 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나였다.
난 나이도 여섯 살(사실은 그 이상)이나 많았고 상대방은 지식도 없는 어린애였다. 주몽이 소중한 첫 동정… 을 오늘 떼진 못할 테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성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이십 년간 육아에 시달린 나는 흡사 직업병처럼 이상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의 입가에 잘게 키스를 하며 침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곱게 깔린 이불에 눕히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을 크게 낸 덕에 침실 안으로는 밝은 달빛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하여 주몽의 뺨과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입맞춤을 이어갔다. 슬쩍 눈을 뜨자 그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이러면서 네 번의 밤은 무슨 얼어 죽을. 그 순진한 모습에 나는 속으로 웃음 지었다.
“…….”
그 순간 감겨 있던 그의 눈이 뜨이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움직임에 얌전히 맞추고 있던 혀가 순식간에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볼 안쪽과 입천장이 진득하게 핥아지고 목구멍 깊숙한 곳이 찔렸다.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마주한 눈은 미동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내 안을 샅샅이 훑고 말랑한 혀를 거침없이 빨아당겼다.
“아! 흐윽…….”
천천히 달궈지던 몸에 삽시간에 뜨거운 열기가 돌았다. 의식할 새도 없이 목구멍 안쪽에서 들뜬 숨이 흘러나왔다. 그가 멈칫하더니 더욱 거칠게 내 입을 벌렸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주도권을 빼앗겼다. 입천장 안쪽 깊은 곳이 쿡쿡 찔릴 때마다 허리가 움찔거려 내색하지 않기도 바빴다.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키스였다. 당황스러움으로 꾹 감은 눈꼬리 주변에 잔물결이 일었다. 고작 입 안이 문질러지는 것일 뿐인데 자극이 너무 강했다. 낯선 감각이 아랫배로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밀어냈다. 다행히 주몽은 순순히 떨어져 주었다. 그가 맞붙인 이마는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속삭였다.
“형님…. 입술이 부으셨습니다.”
“됐어.”
나는 입술을 부드럽게 만지는 손을 탁 쳐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나는 숨을 고르는 척 어둠을 빌려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더 이상 모르는 척 넘길 수 없을 만큼 아래에서 전해져 오는 감각이 선명했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섰다. 손수 키운 애랑 고작 키스하면서.
어쩐지 억울해졌다. 이 관계는 내가 주도해야 했고, 그게 당연했다. 나는 주몽에게 첫 경험을 시켜주러 온 것이지 나도 ‘밤’을 보내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키스는 상상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어느 부분을 찔리면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다.
원래 다 이런 건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첫 키스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런 감각을 처음 깨닫게 되는데 뇌리에 남을 만도 하겠지.
어느새 우리의 자세는 뒤집혀 그가 내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내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내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눈을 내리깔며 그의 바지춤을 힐끔거렸다. 나만 섰으면 그만큼 억울한 일이 또 없다. 그러나 어둠과 그늘에 가려진 그 부분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괜한 오기가 치솟았다. 내가 주도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대로 휘말리고 끝날지도 몰랐다.
나는 손을 뻗어 주몽을 밀어 눕혔다. 그리곤 그가 저항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타고 앉았다. 흡사 몸싸움에서 위를 점령한 듯한 우월감이 전신을 감쌌다.
그러나 그 감상도 한순간이었다.
“……어?”
나는 몸을 앉히자마자 그대로 멈춰버렸다. 엉덩이 아래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지만 그것은 다리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뜨겁고, 불룩 솟아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더듬었다. 사람이 미지의 것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가듯 매우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아, 형님…….”
그와 동시에 주몽이 낮게 신음했다. 나는 충격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정황으로 봤을 때 이… 이 낯선 생물, 아니, 물건… 은 거기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고? 나는 경악하여 후다닥 그의 허리 위로 옮겨 앉았다.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크기가 천 아래에 도사리고 있었다.
“너 혹시…….”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조상을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핏줄은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그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신의 위엄이라는 건가……. 신의 위압감을 이런 식으로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나만 선 게 아니라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허리에 앉아 고민했다. 손 한 번 빌려줬다가 오늘 밤 손목 나가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건 그 정도로 충격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몽은 굳어버린 내 손을 겹쳐 쥐고 자신의 옷고름으로 이끌었다. 손을 빼낼 새도 없이 매듭이 풀리고 앞섶이 벌어졌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 손을 끌어 속적삼까지 풀어냈다. 나는 손에 그의 옷자락을 쥐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수줍은 듯 속삭였다.
“형님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말이 내 손으로 푼 것이지, 직접 풀어낸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황당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그의 드러난 상체에 시선을 빼앗겼다. 기본적으로 활을 쏘는 몸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균형이 매우 잘 잡혀 있었다. 어둠 사이로도 슬쩍슬쩍 드러나는 복근과 떡 벌어진 어깨, 흠집 하나 없는 피부가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주몽은 아직 놓지 않은 내 손을 그의 목으로 이끌었다. 목부터 가슴 아래, 배까지 쓸어 내리는 손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저는 배울 준비가 모두 되었습니다.”
그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은 내가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음란한 무언가였다.
덕분에 주몽이 판을 깔아줬음에도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경험이라도 있으면 긴장도 덜 하련만, 나도 오늘이 첫 경험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선뜻 아래로 손을 뻗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건 지난 삼십 일간 찾은 마음의 평정을 단숨에 깨 버릴 만한 위용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선 하던 대로 입을 맞췄다. 그동안 주몽은 슬그머니 손을 뻗어 내 허리를 감쌌다.
키스에 정신이 팔린 나는 그 손이 옆구리를 쓸고 위로 올라오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소리 소문 없이 이어진 손길은 등을 지나 어깨를 타고 내려와 내 옷고름을 잡아챘다. 곱게 매인 매듭은 손짓 한 번에 간단하게 풀렸다. 나는 속적삼마저 풀렸을 때 그의 어깨를 짚고 몸을 바로 했다.
“너……!”
“왜 그러십니까?”
나는 입만 뻐끔대며 풀어진 상의를 애써 여몄다. 그러나 이미 풀어진 옷은 주몽의 간단한 손짓에 완전히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 가만히 계시니 스스로 배움을 추구할 수밖에요.”
그가 다시 입맞춤을 이어갔다. 또다시 혀가 빨리고 입 안쪽 깊숙한 곳이 찔렸다. 그때마다 나는 움찔거리는 몸을 애써 통제했다. 지금은 조금 전처럼 누워 있는 상태도 아니고 그의 위에 올라타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도 반응을 보였다간 단박에 들킬 게 뻔했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서기도 전에 주몽이 내 허리를 잡더니 다시 아래로 깔아 눕혔다.
내 위로 엎드린 그가 내 목과 어깨 사이에 얼굴을 비볐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신음을 뱉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형님, 하아… 너무 아픕니다.”
“어디가…… 아!”
놀라서 황급히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뜨겁고 묵직한 질량감이 내 허벅지에 와닿았다. 주몽이 허리를 낮게 내려 그의 고간을 내 다리에 짓눌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문지르기까지 했다.
나는 단박에 당황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 반쯤 얼굴이 묻힌 그는 낮과 달리 위험한 날 것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성기는 천 아래에서 착실히 크기를 키웠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까지나 피하고 있을 순 없었다. 차라리 한 발 빼주면 잠들겠지. 더 바라보고 있다간 내 몸에도 이상이 생길 것 같았다. 나는 머뭇거리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지 말고…….”
우선 바지춤을 파고드는 대신 천 위를 쓰다듬으며 그의 성기를 자극하기를 택했다. 손으로 길게 두드러진 모양만 따라 더듬어도 주몽은 습한 숨결을 내쉬었다. 하지만 두꺼운 겨울 바지는 자극에 한계가 있었다. 이러다간 날밤을 새워도 제대로 사정 한 번 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고민할 새도 없이 주몽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가 단단한 어조로 내게 속삭였다.
“분명 제게 먼저 손을 주셨습니다.”
“그거야 같이 밤을 보내겠다 약조했, 아!”
말을 끝낼 새도 없이 그가 움켜쥔 내 손을 내의 안으로 이끌었다. 순식간에 손바닥 위로 뜨겁고 단단한 기둥이 문질러졌다. 놀라 움츠러든 손가락이 다시 펴지기 전에 그가 신음을 닮은 한숨을 쉬었다.
“읏, 하아…. 형님…….”
쾌감을 닮은 오싹함이 등줄기 위로 내달렸다. 열감이 실려 낮아진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목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연신 나를 부르더니 손을 움직여 성기를 온전히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부피는 조금 전보다 부풀어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 손을 고쳐 잡고 그의 성기를 제대로 감싸게 했다. 어찌나 굵은지 한 손 가득 쥐어도 다 잡히지가 않았다. 길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두 손으로 잡아도 길이가 남을까? 하지만 궁금증을 해소할 틈도 없이 나는 남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그가 몸을 길게 빼더니 내 손 위로 빠르게 허리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의 여린 살 위로 뭉툭한 귀두가 문질러졌다. 질척한 액체는 다시 그가 퍽퍽 치대는 기둥 위에 쓸려 윤활제 역할을 했다.
그 모습이 하나의 꿈 같았다. 나는 그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입만 틀어막은 채 바라보았다. 쾌감에 들뜬 호흡과 흐트러진 얼굴이 너무도 음란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발가락이 곱아들고 아랫배에 선명한 열감이 뭉쳤다.
내가 기른 아이가 내 손을 붙잡고 자위를 한다. 배덕감과 닮은 흥분이 머릿속을 헤집고 아래로 몰렸다.
그동안 주몽의 성기는 완전히 발기했다. 손바닥에 그의 뜨거운 욕정이 쉴 틈 없이 비벼지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내 입술을 찾았다. 키스에 휩쓸리는 동안 주몽은 내 입을 막았던 손마저 이끌어 그의 성기를 쥐게 했다.
두 손으로 잡아도 남을 길이라는 내 추측은 맞았다. 그는 성기를 엇갈리게 찔러 벌어진 손가락 사이에 귀두를 비볐다. 어정쩡하게 성기를 감쌌던 엄지가 성기 끝의 갈라진 틈 사이에 진득히 문질러졌다.
그가 손을 놓아도 내가 그의 성기를 붙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의 손이 내 하의 속을 파고들었을 때였다. 낯선 손길이 반쯤 부풀어 오른 내 성기를 쥐었다.
입맞춤과 손바닥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던 나는 황급히 허리를 뒤로 물렸다. 그러나 바지 안에 갇힌 손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내 것을 가볍게 쥐고 쓸어 올리며 내 흥분을 유도했다. 이미 한 번 달아올랐던 몸은 너무도 쉽게 자극에 무너졌다.
뒷머리가 이불에 문질러지고 입술이 떨어졌다. 그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내 두 손은 그의 성기에 묶여 있었다. 쾌감으로 인해 힘이 들어간 손이 서로의 것을 자극했다.
“지, 지금, 뭐, 뭐 하는, 아읏!”
“제게 먼저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주몽이 짐승을 닮은 숨소리를 내며 내게 속삭였다.
“학습에는 마땅히 체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배웠습니다.”
“피, 필요 없…….”
힘겹게 입을 뗐지만 새어 나온 신음에 뒷말이 먹혔다. 그는 태연하게 손바닥을 펴 내 귀두를 둥글게 문질렀다.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소리 없이 신음을 삼켰다. 내 것을 붙잡고 두세 번 흔들던 그가 내 옷을 끌어 내리며 쐐기를 박았다.
“저를 게으른 제자로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그의 손과 내 성기로 가득 차 비좁았던 공간이 사라지며 그의 움직임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성기 밑동을 쥔 그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뜨거운 숨결이 민감한 부분에 훅 끼얹어졌다. 말릴 새도 없이 그가 내 귀두를 입 안에 머금었다.
“자, 잠깐, 해야! 아!”
신체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 뜨겁고 습한 입 속으로 미끄러지듯 빨려들어 갔다. 나는 속절없이 신음하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넓고 탄탄한 상체는 아무리 힘을 줘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주몽이 귀두를 세게 빨아들인 순간 힘이 풀려 떨어졌다.
내가 겪었던 모든 쾌락과는 비교도 안 될 자극이 나를 덮쳤다. 축축한 그의 혀가 내 성기를 감싸고 문질렀다. 고개가 왕복 운동을 하며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이끌었다. 부드러운 점막에 꽉 죄인 성기는 뇌 속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내, 내가 언제… 흣, 이런 걸 했……!”
“제가 하나를 가르쳐 주시면 열을 배운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잠시 고개를 든 그의 입가에서부터 내 선액이 진득하게 늘어져 성기에까지 이어졌다. 그 짧은 찰나마저 성기 아래를 잡은 손은 착실히 움직이며 흥분을 도왔다. 허리가 움찔거리고 몸이 절로 들썩였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혀를 길게 내어 내 귀두를 핥았다.
“아……! 하, 하지, 아윽!”
나는 내 손이 그의 선액으로 젖어 있다는 것도 잊고 신음이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바짝 마르는 입술을 적실 적마다 짭짤하고 비릿한 맛이 났다. 그가 샐쭉 웃으며 내 귀두를 몇 번 더 핥았다. 가해지는 자극이 시각적인 자극과 겹쳐져 너무 과했다.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떠는 동안 성기가 다시 삼켜졌다. 간혹 능숙하지 못한 송곳니에 스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더한 감각을 이끌어 낼 뿐이었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몰려오는 사정감에 골반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는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요도를 혀끝으로 쑤셨다. 번개 같은 쾌감이 머리끝부터 온몸을 꿰뚫었다. 나는 간신히 절정을 참아내고 그를 다급히 밀쳤다.
“해야, 아, 잠시만. 나, 나 나올 것 같…. 읏……!”
“…….”
“제, 제발, 놓아, 아!”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한 순간 주몽이 입을 떼고 물러났다. 차가운 공기에 닿은 성기가 그마저도 쾌감으로 인식하고 파르르 끝을 떨었다.
“하윽……!”
그대로 아무 자극 없이 사정했다. 하얀 백탁액이 성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명백한 절정이었다.
나는 사정 후 찾아오는 탈력감에 꼼짝도 못 하고 몸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수치심으로 두 볼이 달아오르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헐떡거리기만 했다.
그동안 내 정액을 긁어모은 주몽이 자신의 성기에 그것을 펴 발랐다. 그의 성기는 내가 손을 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조금도 시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자위를 돕겠다고 호기롭게 찾아온 주제에 정작 그는 한 번도 사정하지 못했다.
나는 조금 전처럼 손을 빌려주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차분히 성기를 적신 그는 아직 축축한 손으로 내 성기를 덥석 움켜쥐었다.
사정의 여운이 남은 몸이 다시금 퍼득 튀었다. 활을 다루느라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한껏 민감해진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또…. 마, 만지지, 하으……!”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말렸지만 그대로 두 손목이 붙잡혀 올려졌다. 그는 한 손으로 내 손목을 모아쥐고 자신의 성기를 내 성기에 문질렀다. 드러난 두 개의 성기가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부딪히는 감각은 손으로 훑는 것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반쯤 죽었던 내 성기가 다시 고개를 들자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성기를 겹쳤다. 커다란 손으로 성기 두 개를 함께 감싸고 문지르자 다리가 절로 모이고 발등이 찌릿했다. 그러나 어느새 내 다리 사이에 자리한 그에게 가로막혀 다리는 더 이상 오므라들지 못했다.
대신 주몽은 잡고 있던 내 손목을 내려 겹쳐진 성기를 쥐게 했다. 그리고 그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단단히 잡고 천천히 허리짓을 시작했다. 손바닥과 성기 모두에 뜨거운 마찰이 일어났다.
“아, 으…….”
거대한 성기가 내 것을 스치고 배를 찔렀다. 뭉툭한 끝이 와닿을 때마다 아랫배가 절로 움찔거렸다. 그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손바닥으로 판판한 내 배를 문질렀다. 그 손은 옆구리를 쓸고 늑골을 세어 올렸다. 남의 손을 탄 적 없던 몸은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가 내 가슴팍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형님께선 어찌 이곳에만 색이 있으십니까?”
“무슨……!”
“마치 꽃물을 들인 것 같습니다.”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은 주몽은 고개를 숙이더니 내 유두를 물었다. 평소 존재도 느끼지 못했던 작은 돌기가 혀에 문질러지고 씹혔다. 화끈거리는 감각이 몸을 꿰뚫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트는 사이 반대편도 그의 손에 붙잡혔다.
정액으로 젖은 손이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처럼 집요하게 문질러댔다. 그 와중에도 아래에서 찔러오는 성기는 쉬는 법이 없었다. 위아래로 몰아닥치는 자극에 나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흣, 하, 하지 마…….”
“그럼, 하아, 무얼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입, 입 맞춰 줘…….”
그가 말을 할 때마다 가슴팍에 숨결이 닿아 기분이 이상했다. 흐려진 머릿속에서 그의 입을 떼어놓는 방법은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애원에 가까운 내 부탁을 들은 그가 얼굴을 굳혔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몸을 일으켜 내게 입을 맞췄다. 나는 허겁지겁 혀를 밀어 넣었다. 원한 대로 되었지만 그가 급하게 허리를 치대기 시작하며 쾌감은 더욱 깊어졌다. 그가 토정을 했을 땐 나도 한 번 더 정액을 쏟아낸 뒤였다.
“하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연속으로 절정을 겪은 몸이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자괴감도 엄습했다.
대딸은 무슨……. 나는 과거의 나를 비웃었다. 생각해보니 부여에 떨어진 뒤로 제대로 된 성적 해소를 겪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자극을 받으니 서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는 흥분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 끝났으니까…….
나는 멍하게 생각하며 사지를 늘어뜨렸다. 앞으로 몇 번의 밤이 더 남아 있었지만, 시작하기 전처럼 그리 막막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한 번 해본 뒤라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뺨에 잘게 입술을 가져다 대는 주몽을 바라보다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인정하자.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 한몫했다.
거부감이 들 줄 알았던 키스도 해보니 혼이 쏙 빠졌고 자위행위도 손만 빌려주고 있으면 그가 알아서 다 했다. 오히려 오늘 관계에서 고생을 한 사람은 주몽이었다. 그는 입까지 쓰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런 유사 성행위에도 후희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다.
그러나 내버려 두었던 입맞춤과 은근히 몸을 쓰다듬는 손길은 다시금 집요해지고 있었다. ……설마 이거 후희가 아니라 또 다른 전희인가? 신빙성 있는 추측에 전신이 다른 의미로 오싹해졌다. 나는 자유로워진 손을 뻗어 그를 밀어냈다.
“그만해…….”
미약한 힘이었지만 내 어깨뼈에 입을 맞추고 있던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와 밤을 보내겠다 약조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이제 다 보냈잖아.”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의문에 가득 찬 채였다. 순간 불길함이 엄습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태연한 척 말을 뱉었다.
“사내들끼리 수음 말고 뭐가 더 있겠어?”
“구음은 왜 빼놓으십니까?”
“…….”
직접 받기까지 한 입장에서 할 말이 없었다. 설마 자신도 해달라는 건가? 나는 그의 성기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사정을 했음에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그것은 도저히 입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보이지 않았다. 밀어 넣었다가 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입꼬리가 찢어지는 건 아닌가 싶었다.
공포에 질린 내 얼굴을 본 주몽은 낮게 웃었다.
“그리 겁먹은 눈 하지 마십시오. 원치 않으시는데 해달라 조르지 않습니다.”
내 걱정을 종식시켜 준 것은 다행이었지만 여전히 손길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불행이었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작게 몸을 뒤트는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형님께선 이게 전부라는 것이지요…….”
“뭐?”
“좋습니다. 그럼 이번엔 제가 부족하나마 사내들의 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등허리를 지분거리던 손이 단박에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놀라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굳건히 버티고 선 그가 밀려날 리 만무했다. 나는 그의 팔뚝을 붙잡으며 낮게 소리 질렀다.
“너…! 분명 모른다고……!”
“모른다 답한 적은 없습니다.”
태연히 흘러나온 대답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기억을 되짚으니 그는 정말 ‘형님께선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라고만 말했지 한 번도 모른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당연히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 머릿속 우리 해는 순수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랬던 아이는 어디 가고 지금은 내 엉덩이를 탐하는 시커먼 사내만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당황한 나는 몸부림을 쳤지만 다가오는 입술을 피할 순 없었다. 또다시 입이 벌어지고 혀가 목구멍 깊숙한 곳을 찌르며 들어왔다. 흡사 성교라도 하듯 움직이는 모습이 식었던 성감을 이끌어 냈다.
한참을 입 맞추던 그가 주무르던 볼기에서 손을 뗐다. 그 손은 배에 그대로 고여 있던 정액을 떠내더니 내 뒤를 향했다. 닫혀 있던 입구가 축축한 액으로 적셔진 것도 잠시였다. 말릴 새도 없이 손가락 하나가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
“아프십니까?”
아직 하나인데……. 그가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더욱 깊게 밀어 넣었다. 그냥 하질 마!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밑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쏙 들어갔다. 입이 벌어졌지만 너무 놀란 탓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안에서 손가락을 문지르던 그는 두 번째 손가락을 밀어 넣으려다 실패했다. 내 아래에서 도저히 힘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악과 배신감, 당황으로 가득 찬 내 얼굴을 마주한 그는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는 내 허벅지를 주무르던 다른 손을 뗐다. 그제야 나는 삼켰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나 그 손이 내 가슴으로 향했을 땐 도로 숨을 들이켜야 했다. 비벼 올려진 작은 돌기에 열감이 돌고 미묘한 화끈거림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이상한 감각을 견디며 발로 연신 이불을 밀었다. 그가 문지르는 곳은 아프면서도 때론 가려웠다.
그래도 별다를 것 없는 남자 가슴인데 뭘 저리 만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가 손톱을 세워 끝부분을 강하게 긁어내렸다.
“흐윽……!”
“형님. 선 게 보이십니까?”
“네가, 흣, 계속 만지니까……!”
어느새 그가 계속해서 문지르고 빨아올린 유두는 뾰족하게 서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신체 변화에 나는 울먹이며 그를 탓했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아래 말입니다.”
“……!”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만지지도 않은 내 성기가 반쯤 일어서 있었다.
주몽은 충격을 받은 날 보더니 예의 그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내 가슴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때마다 내 성기는 움찔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어느새 힘이 풀린 내 아래에는 손가락이 세 개째 드나들고 있었다.
나는 아픔에 신음했다. 저렇게 압박감이 심한데 어떻게 몰랐나 싶을 정도였다. 다시금 죄어드는 입구를 그가 혀를 차며 바라보았다.
“형님…. 힘을 풀어보십시오. 이러시면 나중에 크게 아프십니다.”
“그럼 안 하면 될, 흣!”
그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다시 손가락을 쑤셨다. 윤활제로 쓰던 정액은 이미 말라 속살이 뻑뻑하게 딸려 내려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그가 다시 내 가슴을 갉작거리며 옆으로 손을 뻗었다. 딸려 온 것은 불을 밝힐 때 쓰는 등잔이었다. 그는 내 허리를 꺾어 밑을 위로 올리더니 그대로 미지근한 등잔 기름을 아래에 부었다.
“지금 이게 무슨…!”
“동백기름이니 몸에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그가 태연히 지껄이며 손을 다시 움직였다. 두어 마디만 얕게 찔렀던 손가락이 더욱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확실히 기름의 도움을 얻은 손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깊이, 능숙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그가 부어오른 유두에 입을 맞췄다. 끝이 핥아질 때마다 허리가 떨리고 밑에 힘이 풀렸다. 때를 놓치지 않은 손은 그때마다 푹푹 찔러 들어오길 반복했다.
“으응…. 하으, 흣!”
어느 순간 나는 찌릿거리는 감각이 가슴에서만 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깊게 들어온 손가락이 내벽을 문지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각이었다. 저릿하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에 몸이 저절로 웅크려졌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집요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안에서 가위질을 치며 속을 벌릴 때마다 공중에 뜬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러다 끝까지 밀고 들어온 손가락이 어느 지점을 스친 순간 눈앞에서 불이 튀었다.
내벽이 마구 조여들고 성기가 바짝 서서 배에 부딪혔다. 이전까지의 자극이 간지러움을 동반했다면 이번 것은 날카롭게 꿰뚫는 듯한 쾌감이 함께였다. 내 이런 이상을 주몽은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이 부분이 좋으십니까?”
“아, 아니, 으응! 흐윽, 흣.”
주몽이 푹푹 소리가 날 정도로 손가락을 쑤셨다. 얇고 뾰족한 손끝이 아까의 극점을 노골적으로 찔러 들어왔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신음을 흘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뒤로 느끼다니, 음담패설에서만 들었지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곤, 그것도 내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주어지는 자극은 너무도 선명해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미 녹진하게 풀린 뒤로는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이 드나들고 있었다.
내 성기에서 흘러내린 선액이 배에 고일 때쯤 그는 손을 빼냈다. 그가 다시 등잔 기름을 내 밑에 부었다. 채 닫히지 못한 입구 안으로 기름이 스며 들어오는 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남은 기름을 손에 쏟더니 제 성기에 펴 발랐다. 그의 성기는 두어 번 문질렀음에도 뻣뻣하게 서서 꺼덕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마주한 그 위용에 절로 허리를 뒤로 물렸다. 저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였다. 끝까지 밀어 넣는 건 물론이거니와 귀두부터 들어가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주몽은 이런 내 생각은 알아차리지도 못한 듯 자꾸 뒤로 빠지는 내 골반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말릴 새도 없이 끝을 뒤에 밀어 넣었다. 입구가 벌어지며 묵직한 것이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 선명했다. 나는 낯선 감각과 고통에 다급히 말했다.
“아, 아, 안 돼. 안 들어가. 정말이야.”
“해보지도, 하아, 않고. 어찌 아십니까.”
“너무, 너무 커…. 커서, 윽!”
순간 느리게 침범하던 그의 성기가 안쪽을 쿡 찔러 들어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삽입에 놀라 내벽을 바짝 조였다. 그가 낮게 신음하며 허리짓을 멈췄다. 그러나 물러나진 않았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밀며 내가 아픔에 몸을 말 때마다 내 성기를 만졌다. 공포심에 힘을 잃었던 내 것은 그 손길에 맞춰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미처 열지 못했던 내벽 깊숙한 곳까지 억지로 열긴 무리였다. 몇 번 쿡쿡 찔러보던 그는 내가 연방 도리질을 치며 겁에 질리자 한숨을 쉬며 진입을 멈췄다. 나는 그가 멈추자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고 조심스레 물었다.
“다, 다 들어왔어?”
“이제 절반입니다.”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나는 경악한 낯을 숨기지 못했다. 분명 체감상 더 들어올 수 없는 곳까지 들어온 것 같은데. 게다가 내려다본 그의 성기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내가 패닉이라도 일으킬까 봐 하얀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내 성기를 두어 번 훑더니 고개를 양쪽으로 꺾었다. 내 성기가 더 이상 힘을 받지 않는 걸 확인한 그는 허리를 뒤로 물렸다. 빠듯하게 차올랐던 성기가 느리게 뒤로 물러났다.
“일단…….”
“……흣!”
“밤은 기니까요.”
이번은 여기서 끝내려나 보다. 안도의 숨결이 폐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그가 다시 성기를 들이밀었다. 눈앞이 번쩍 튀었다가 하얗게 점멸했다. 뭉툭한 끝이 내 반응이 유독 거셌던 그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가늘었던 손가락이 바늘로 찌르는 느낌이었다면 굵고 큰 성기는 망치로 쾅쾅 때리는 것 같았다.
“아, 하윽! 싫, 아! 아니…! 하으…!”
나는 마구 도리질을 치며 그를 밀어냈다. 단박에 성기가 일어서고 내벽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허리짓을 멈추지 않으며 내게 입을 맞췄다. 나는 새어 나오는 신음을 막기 위해 입술을 더욱 다물었다.
극점을 스칠 때마다 이전까지 한 번도 겪지 못한 쾌감에 몸이 떨렸다. 아무리 성기를 만져도 풀리지 않았던 안쪽이 서서히 공간을 벌려냈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성기를 진입시켰다. 깊은 속살이 그의 성기 모양을 따라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낯선 감각에 벌벌 떨며 그의 입술을 삼켰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린 뒤 그가 숨을 내쉬며 내게 속삭였다.
“하아……. 거의 다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흑, 다 안 들어갔다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달래려는 듯 가벼운 입맞춤을 내리 앉혔다. 그러나 이미 배신감에 가득 찬 나는 고개를 돌리며 그의 입술을 피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이상 들어가면 형님께 무리가 갈 듯합니다.”
“그럼, 빼…. 흑, 아…….”
내 재촉에 그가 느리게 허리를 뒤로 물렸다. 그러나 반쯤 빼기가 무섭게 다시 짓치고 들어왔다. 성기를 빼자마자 오므라든 내벽은 다시 밀고 들어오는 것에 자리를 벌려줘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신음하며 떨리는 허리를 애써 통제했다. 성기가 움직일 때마다 내벽 안쪽이 스치며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흐응, 흣, 그만…….”
“이렇게 느끼시면서… 정녕 손장난으로만 만족하려 하신 겁니까?”
“아니야, 아, 싫, 으응……!”
내 부정에 그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내 성기를 쥐었다. 배에 붙을 듯이 선 그것은 이미 한껏 달아올라 선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귀두를 비비는 손길에 나는 허리를 파드득 떨었다.
손, 아니, 입으로 받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쾌감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가 방울 져 떨어지는 액을 검지로 훔쳐 내 유두에 문질렀다. 부풀어 오른 그것은 작은 손짓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꾹 조여서 요동치는 내벽에 그의 성기가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그가 숨을 집어삼키더니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세게 파고들었다. 빠르게 이어지는 허리짓이 부푼 내벽을 때리고 비틀었다. 나는 그의 팔뚝을 긁어내리다 입을 막고, 입을 막다가도 참을 수 없는 쾌감에 내 성기로 손을 내렸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위를 하는 내 손 위로 손을 겹쳐 쥐고 빠르게 흔들어주었다.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아아! 흐윽!”
“하, 후우…….”
그가 귀두를 입구 끝까지 뺀 다음 한 번에 파고든 순간, 나는 사정했다. 전에 없이 강렬한 쾌감의 파도가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발가락이 저절로 곱아들고 내벽이 물결치듯 요동치며 그의 성기를 쥐어짰다. 몇 번 더 밀고 들어오던 그도 이윽고 내 안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깊이 파묻힌 성기가 벌컥거리며 뜨거운 액체를 뱉어냈다.
나는 그가 성기를 빼낼 때까지 움칫거리는 몸을 달래며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주몽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쪽쪽거리며 내 손등에 입을 맞췄지만 방어는 굳건했다.
그러나 그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성기를 다시 내 뒤에 비볐을 땐 서둘러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무슨, 아! 나 더는 못 해!”
“학습에는 체화가 필요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드디어 드러난 내 입술에 입을 맞추며 태연히 말했다. 같잖은 소리였다. 연속으로 세 번이나 사정한 나는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게다가 안에 고인 정액이 느릿하게 빠져나오는 감각이 선명했다. 나는 피하려 몸을 뒤채며 외쳤다.
“난 필요 없…!”
“그럼 복습이라 생각하십시오.”
그는 누가 봐도 건성으로 대꾸하며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나를 가뿐하게 뒤집었다. 마침 잘 되었다는 태도였다. 몸을 돌린 죄로 나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세우며 그를 한 번 더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구두 약속인 거, 퀘스트 완료 창이 떴을 때 못 하겠다고 배 쨀걸…….’
또 한 번의 토정이 끝난 뒤 나는 정신을 잃으며 건국을 하겠다는 말에 넘어가 함부로 약속을 해버린 나를 저주했다. 완전히 기절하는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알림음이 울린 것 같았지만, 이미 시야는 닫힌 뒤였다.
***
“으…….”
“정신이 드십니까?”
내가 깬 것은 희미하게 비치던 달빛도 모두 사라져 버린 시간이 되어서였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만 들었다가 놓았다.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둔통 때문에 허리 아래로 전혀 몸을 쓸 수가 없었다.
두들겨 맞긴 맞았지, 저놈 몽둥이, 아니 좆으로.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그 거대한 것을 내 조그만 곳에 밀어 넣을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양심적으로 그 정도 크기면 수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오죽하면 결국 마지막에 한 번 더 할 때까지도 그건 다 들어가지 못하고 끝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때도 내가 절대 못 한다고 말했는데. 조금도 봐주는 기색이 없었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가 벅벅 갈렸다.
머리 좀 컸다고 죽을 둥 살 둥 키워준 형을 잡아먹는 꼴이라니.
하지만 무작정 탓하기도 좀 뭐한 게, 싫다던 사람치곤 좀 너무… 느꼈다. 살면서 자위밖에 해본 적 없던 나로선 충격적일 정도의 쾌감이었다. 물론 아픔도 있었지만 완전히 싫기만 했냐고 물으면 떳떳하게 그렇다고 답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음엔 저걸 다 밀어 넣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도망갈 테지만.
나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는 주몽을 노려보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노려본다 한들 너무 어두워 그에겐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주몽이 더없이 밝은 얼굴로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나에게 어둠도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고, 눈앞에서 익숙한 시스템 창이 옅은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히고 있는 덕분이었다.
기절하기 전에 들었다고 생각했던 알림음이 정말이었나 보지.
다음 퀘스트라기엔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서브 퀘스트를 질질 끌었던 기간을 생각해보면 지금 나와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이번엔 역시 메인 퀘스트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애써 두근거림을 감추며 서둘러 창에 적힌 내용을 읽어내렸다.
[이벤트]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 – 목표 달성
축하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목표 경험치를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특별한 선물’이 제공됩니다.
‘우편함’으로 가서 주어진 마지막 보상을 확인해보세요.
“어?”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잊고 지내던 이벤트 창이었다.
몇 년 전 주어진 이 이벤트는 ‘경험치’와 ‘보상’을 운운하며 주몽의 평판이나 능력을 올리길 종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보상이 궁금해 열심히 했었지만 첫 보상으로는 사탕을 얻고, 그다음 경험치가 몇 배로 뛰자 의욕이 확 꺾였다. 그렇게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낸 지 오래였다.
그러나 내가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다방면에서 뛰어난 주몽은 알아서 착착 경험치를 쌓아왔다. 그래서 몇 년 전 사냥 대회가 끝났을 때도 이렇게 불쑥 이벤트 목표 달성 창이 떴던 기억이 난다. 필요한 경험치가 몇 배로 뛴 것치고 생각보다 금방 목표를 달성해서 놀랐었는데.
물론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때도 어김없이 필요하지만 쓸데없는 보상이 주어진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말을 타 삭신이 쑤셨던 건 맞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이 만든 파스’ 따위를 준 건 너무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아마 그게 내가 받은 마지막 보상이었지.
그다음으로 요구한 목표 경험치가 너무 높아서 기겁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실제로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는데도 달성했다는 알림이 한 번도 뜨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야심한 밤에 그 남은 경험치가 모두 찼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꺼두었던 알림 기록을 불러왔다. 자잘한 경험치 수백 개가 쌓인 것은 무시하고 가장 최근 알림만 열어보았다.
[이벤트]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
경험치 5000을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획득 경험치 : 8000 / 8000
오천?!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집어삼켰다. 곁에서 주몽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알림 창을 보니 목표 경험치는 8000이었다. 그럼 지난 몇 년간 고작 3000밖에 못 채웠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인 5000을 어떻게 단숨에 얻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완료 창이 뜨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주몽은 나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르륵 얼굴이 불타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둘러 이벤트 진행 창을 띄웠다. 그곳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경험치는 ‘주몽’의 평판이 올라가거나 히든 능력을 개방하면 올라갑니다.’
이 새벽에 평판이 올라갈 일은 없으니 ‘히든 능력’이 주범일 터였다. 이 능력에 잠자리 능력까지 포함될 줄은 몰랐지……. 나는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확실히 남다른 능력이긴 했지만 유례없는 경험치 수치로 두 번 확인하니 부끄러움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형님, 혹시 불편하신 곳이라도…….”
“아냐. 신경 쓰지 마.”
몸이 아파 움직임이 크지 않았는데도 주몽은 내 이상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나는 걱정스러운 물음에 대충 대꾸했다. 네 잠자리 능력이 개방되어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
떨떠름한 내 태도에 주몽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는 달랠 정신조차 없었다. 이러다 보상으로 아래에 바르는 화상 연고나 나오는 거 아니야? 소름 돋게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우선 나는 창을 조작해 우편함으로 이동했다.
[우편함] 이벤트 보상
- 특별한 선물로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을 드립니다!
□ 신이 만든 계약서 X 1 개 ▼
아이템 발동 즉시 대상자의 ‘말’이 고스란히 계약의 내용이 됩니다.
이 언약은 영혼의 숨을 묶는 ‘신의 언약’으로, 지키지 않을 시 영혼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편함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템이었다.
이 계약서가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라고?
아니, 이벤트 경험치를 달성한 것은 한창 관계를 하던 도중이었으니 그때 가장 원하던 것이 나왔을 확률이 높았다. 다소 섬뜩한 내용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지만 그래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라곤 칠 할이 후회와 욕설이었고 나머지 삼 할이…….
“이제 제가 미워지신 겁니까?”
그때 주몽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꿈질거리며 다가온 그가 내 어깨에 이마를 묻은 바람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시무룩하게 말을 이었다.
“송구합니다. 저는 그저 형님과 밤을 보낸다 하니 너무 기뻐서…. 그만 마음이 조급해졌나 봅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한 얼굴로 날 바라보던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비 맞은 강아지 한 마리만 놓여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나는 시스템 창에 비쳐 푸른 빛을 띠는 그의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리 아래로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목은 깔깔한 데다가, 아래는 어떨지 몰라 두려웠다. 그럼에도 그를 탓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뭐래도 결국 밤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한 사람은 나였다. 생각해보면 주몽은 단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상황이 문제였다. 그는 내게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사정을 몰랐고 항상 그렇듯 상황이 나를 칼날처럼 겨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탓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미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재차 내게 속삭였다. 푸르게 젖은 머리칼을 하고, 긴 속눈썹을 사락거리면서.
문득 그가 가여워졌다. 애초에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관계를 요구한 아이였다. 그런데 밤을 함께 보낸 뒤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을 들어 그를 껴안았다.
“그런 거 아니야.”
“…….”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이 모든 퀘스트가 끝나는 순간, 나는 결국 그를 버려야 했다. 그런 내가 감히 이 아이를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내가 행할 배신보단 덜할 것이었다. 그러니 힘이 닿는 데까지 그를 아껴주고, 그가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싶었다. 이 결심이 미래의 그에게 사죄로 닿을진 모르겠지만. 이기적이게도 나를 되새길 때 아픔보단 추억이 더 가득했으면 했다.
“……그러니 너도 날 너무 미워하진 말아줘.”
내밀한 행위를 한 뒤여서일까. 평소라면 입 안에 가두었을 말이 작게나마 흘러나왔다.
주몽이 움칫하더니 기댔던 머리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들어 방을 밝혀주던 시스템 창을 치웠다. 난데없이 이벤트 보상으로 주어진 ‘계약서’에 대해 생각이 많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결만 느껴졌다.
“…….”
나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풀벌레조차 없는 고요한 한겨울 밤이었다. 인공적인 빛에 노출되었던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든 시야를 차단했다.
그 속에서 나는 깨어나자마자 온 신경을 가져간 창 덕분에 밀어두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느꼈다. 이를테면 허리에 단단히 감긴 주몽의 팔이라든가, 둔통 사이로 느껴지는 미세한 이물감이라든가.
“……씻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채비를 해오겠습니다.”
작게 달싹거린 말에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겉옷을 걸치는 기척이 났다. 나는 민망함에 이불만 끌어모았다.
잠시 기다리자 그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초라도 켤까 싶었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끙끙 앓는 나를 제지한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곧 따뜻한 물수건이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닦기 시작했다.
섬세한 손길에 긴장했던 몸이 천천히 풀어졌다. 그가 내 손바닥을 주무르며 조곤조곤 말을 건넸다.
“형님께선 제가 신의 아들이라는 걸 믿으십니까?”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화제에 놀라서 물었지만 주몽은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문자답을 했다.
“아, 형님이시라면 제가 알일 때부터 보셨으니 믿으시겠군요.”
마치 그걸 기억이라도 한다는 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에서 깨어나기 전부터 봤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도 주몽은 차근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어릴 때 그게 그저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내는 곳은 낡았고, 궁인들은 저를 쉬쉬했으며 찾아와주는 사람이라곤 형님뿐이셨으니까요.”
“그건…….”
“아버지는 뵌 적도 없고 어머니는 한 해에 한 번 보기도 힘들었으니 제 핏줄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나는 열었던 입을 조용히 닫았다. 유화를 탓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얘기하듯 담담한 태도였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물수건은 팔꿈치를 지나 어깨로 올라왔다. 그가 차가워진 수건에 다시 물을 적셨다.
“처음으로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보통의 아이는 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그가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내겐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모든 아이는 알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 역시도. 자연히 주몽이 단 한 번도 이런 것으로 고민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무신경함이 불러온 불필요한 상처였다.
“지금은, 괜찮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입니다. 남이 알려주지 않아도, 커가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었거든요.”
돌연 어깨 위를 부드럽게 훔치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더니 스릉— 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 피에 흐르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신의 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건, 검을 뽑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더듬더듬 손을 뻗자 그의 무릎이 잡혔다. 나는 그것을 꼭 잡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치웠던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희미하게나마 방 안이 밝아지며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선물한 단검을 뽑은 주몽이 날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에겐 이 빛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해야.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어두운데 칼을 다루다간 다치기 십상이야.”
“괜찮습니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무사라 해도 지금은……. 해야!”
말을 잇던 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허리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지금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주몽이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팔을 긋고 있었다.
날카롭게 선 날은 소리 없이 살을 갈랐다. 푸른 빛을 반사한 칼이 차갑게 빛났다. 서둘러 칼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내 손을 걷어냈다. 그가 칼을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누워 계십시오.”
“너,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의원을…….”
“아. 작은 상처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할 만큼 태연한 목소리였다.
“이리 피…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작은 상처야!”
하마터면 피가 난다고 할 뻔한 말을 서둘러 고쳐 뱉었다. 피 냄새는 생각지 못했는지 주몽이 짧게 깨달음의 소리를 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척 무릎을 잡은 손을 타고 올라가 다친 그의 팔을 잡았다. 피는 쉴 새 없이 솟아올라 대충 걸쳐 입은 겉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내 손을 보며 난감하다는 듯 웃더니 칼날을 비스듬히 눕혀 떨어지는 피를 받았다. 순식간에 칼날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칼을 멀리 치우고 내 팔을 더듬어 올라와 순식간에 목 뒤를 움켜쥐었다.
말릴 새도 없이 입술이 맞닿았다. 주몽이 송곳니를 세우더니 내 입술 안쪽 여린 살을 강하게 깨물었다.
“윽!”
나는 아픔에 신음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은 그 시작만큼이나 빠르게 떨어졌다. 그 짧은 새에 어찌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금세 입 안에서 피 맛이 감돌았다.
작게 사과한 그가 손가락으로 상처를 매만졌다. 단단한 살에 문질러진 상처가 따끔한 아픔을 일으켰다. 그는 피와 타액으로 축축이 젖었을 게 분명한 손가락을 단검에 문질렀다.
그 알 수 없는 행동보다 아직도 피가 떨어지는 그의 상처가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답답함에 더 참지 못하고 그를 다그쳤다.
“너 대체 지금 뭐 하는….”
“보십시오.”
그가 내 말을 끊더니 조용히 말했다. 보라니, 우리를 둘러싼 어둠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반문할 새도 없이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피에 젖은 채 쇠 특유의 둔탁한 색만 비추던 단검이 천천히 피를 ‘먹었다’.
그러더니 곧 남김없이 깨끗해진 날이 웅웅거리며 잘게 진동했다. 대여섯 번 몸을 떨던 그것은 가운데 파인 얕은 홈에 천천히 먹었던 피를 채웠다. 홈 끝까지 차오른 피는 잠시 후 옅은 하늘빛을 띠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작지만 분명 주변을 비추는 빛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벌어진 입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칼이 스스로 빛을…….”
“제가 가진 신의 힘 중 일부일 뿐입니다.”
그가 태연하게 말하며 단검을 들어 올렸다. 언제 피가 묻었냐는 듯 깨끗해진 날은 곁에 놓인 시스템 창과 비슷한 빛을 내고 있었다.
“아직 힘을 꺼내는 것에 미숙하여 직접 제 피를 섞어야 합니다. 형님의 피는 이 단검과 영혼의 끈을 묶기 위해서이지요. 형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이 검은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고 저 역시 이 빛이 살아 있는 한 형님을 미워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가 작게 속삭이며 눈을 맞췄다. 나는 그 눈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진심을 보았다. 검은 욕망과는 다른, 그가 날 고구려로 데려가려 하는 속뜻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외면한 채 고개를 돌려 검을 바라보았다. 내 영혼과 묶여 내가 살아있는 한 빛이 꺼지지 않을 거라는 이 단검. 푸른 빛이 그 안에 담긴 신의 힘을 증명하고 있었다.
“윽…….”
몸이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이 치솟았다. 외면하려 해보았지만 그가 가진 신의 힘은 날 이곳으로 떨어뜨린 절망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신은 고작 나를 계단에서 밀치는 것만으로 내 영혼을 꺼내 태자의 몸속에 넣었다. 주몽은 피를 섞는 것으로 단지 몇 분 만에 내 영혼의 끈을 단검에 묶었다. ‘신이 만든 계약서’는 누르는 것만으로 언약을 영혼의 숨에 새겨 넣는다고 한다. 신의 힘은 이토록 쉽게 내 영혼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그런데 주몽이 고작 내 영혼 하나를 이 땅에, 그의 곁에 묶어 놓을 수 없을까?
누군가 내 머리를 내려친 것 같았다. 그는 그저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은연중이라도 내가 떠날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시에 설사 내가 떠날 마음을 먹더라도 막을 힘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만약 내가 그를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나와 떨어지기 싫어 부여의 태자인 나를 고구려에 꿋꿋이 데려가겠다는 아이였다. 그런 그가 나를 순순히 집에 돌려보내 줄 리가 없었다. 이번엔 단검이 아니라 그의 영혼에 내 영혼의 끈을 묶어버리거나 심하면 나와 신과의 소통을 알아차리고 ‘퀘스트 창’마저 부술지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갈 길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짐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결심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설령 들키더라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나는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아까 닫았던 상태 그대로 연 탓에 눈앞에는 우편함이 펼쳐져 있었다.
□ 신이 만든 계약서 X 1 개 ▼
아이템 발동 즉시 대상자의 ‘말’이 고스란히 계약의 내용이 됩니다.
이 언약은 영혼의 숨을 묶는 ‘신의 언약’으로, 지키지 않을 시 영혼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오래전 보았던 신이 떠올랐다. 눈빛 하나로 내 몸 안의 모든 피를 역류시키고 손짓 하나로 해와 바람을 다루던 그 모습. 그에 비해 갓 성년이 된 주몽은 작은 술법에도 피를 흘려야 할 만큼 미숙했다.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가 고구려를 건국하면 발동될 마지막 퀘스트의 보상은 미처 막지 못할 것이다.
건국. 결국 건국이 답이었다.
그가 내 배신을 짐작하더라도 건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의 정통을 이은 주몽이 언제까지고 신보다 약할 리 없었다. 만약 모든 걸 알아차린 그가 힘이 강해질 때까지 건국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버틴다면?
운이 좋아 그가 내 배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위험은 여전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건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결심 수치가 100%가 되었다지만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게 사람 마음이었다. 하물며 나도 4번의 밤을 보내고 나면 고구려로 건너가기로 약속해놓고 지킬 마음이 없지 않은가.
솔직한 심정으로, 내 강요가 아니라면 그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이유는 없었다. 이게 보드게임에서 나라 하나 세우는 것도 아니고 고구려를 건국하려면 수많은 위험과 부담을 져야 하는데.
전에는 의심조차 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마음이 초조해지니 별의별 가능성이 다 떠올랐다.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건국을 하지 않을 위험은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건국을 하지 않는 이상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가 건국을 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구두 약속보다 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나는 그가 내려놓은 물수건을 집어 들고 따뜻한 물에 적셨다. 빛을 내는 단검을 손전등 삼아 비추고 자세히 들여다본 상처는 다행히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의 팔을 적신 피를 부드럽게 닦아내었다.
환부마저 씻은 뒤엔 새 수건을 펼쳐 상처를 동여맸다. 피가 그 위로 금세 배어 나왔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나는 마무리 매듭을 지으며 차분하게 말을 뗐다.
“해야. 나랑 약조한 거 다시 한번 말해줘.”
“방금 드린 약조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거 말고. 남쪽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 세우기로 한 거. …정말 약조한 거다?”
뜬금없는 말에 그가 경계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매듭을 살피는 척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주의하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내뱉었다.
“주변 정리를 하기 전에 다시 확답을 듣고 싶어서 그래. 어려운 일 아니잖아. 한 번만. 응?”
나는 처치를 마친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자연히 상체가 가까워지고 코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을 주의 깊게 살피다 짧게 입을 맞췄다. 건국 결심을 100%까지 채울 때도 먼저 입을 맞췄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몸을 섞은 뒤라 그런지, 지금의 내가 절박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효과는 뛰어났다.
“……좋습니다.”
내 의중을 살피듯 대답을 망설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상체를 물리며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진 팔을 올려 조심스럽게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그가 입을 떼는 순간, 작은 두루마리가 그려진 그림을 눌렀다.
아이템이 사용될 때면 으레 그러듯 나만 볼 수 있는 빛이 짧게 뿌려졌다. 이제 주몽이 새 나라를 건국하겠다는 말만 꺼내면…….
“다만 형님께서도 저와 네 밤을 보내면 영영 제 나라로 건너오셔야 합니다.”
띠링—
[신의 언약]
‘주몽’과 네 번의 밤을 보내면 영원히 그의 나라로 건너가야 합니다. (1/4)
이 언약을 지키지 않을 시 양측 계약자의 영혼이 소멸됩니다.
“이, 이게 뭐야…….”
충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는 그가 다시금 맞부딪쳐 온 입술에 먹혀 사라졌다. 그가 짧게 끊어 입을 맞추며 다정히 속삭였다.
“남쪽에 건국은 꼭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먼저 뱉은 말을 주워 삼킨 계약서의 내용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었다. 아니, 되로 주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나는 허허, 헛웃음을 터뜨리다 그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그냥 얌전히 있을걸…….’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꾹꾹 눌러두었던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모조리 밀려왔다. 금방이라도 몸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대로 다시 정신을 잃었다. 바야흐로 사람을 믿지 않은 자의 최후였다.
***
“…….”
나는 방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 한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끔뻑였다.
이렇게 해가 높이 떠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은 아주 어릴 적 아팠을 때 빼고 없던 일이었다. 평소라면 궁인이 깨우러 왔을 텐데. 그러나 주변은 소음 하나 없이 고요했다. 태자궁에서는 항상 누군가 궁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낯설기만 했다.
“아.”
하지만 낯섦을 느끼기가 무섭게 어젯밤의 일이 우르르 떠올랐다. 건국 결심을 시키겠다고 찾아간 일과 밤새 몰아붙여졌던 일, 중간에 잠시 깨서 나눴던 대화들까지도.
고개를 돌리니 지난 세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어 익숙한 방이 보였다. 다시 기절하듯 잠든 이후로 계속 북녘궁에 누워 있었던 모양이었다. 북녘궁에는 궁인 한 명 없었으니 이토록 조용한 게 당연하지.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주몽마저 없다는 것은 조금 의아했지만, 나는 금세 생각을 그만두었다. 지금으로선 아무도 없는 것이 도리어 고마울 지경이었다. 이미 내가 저지른 일들로 충분히 이불을 뻥뻥 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새벽보다 허리 상태가 나아졌다지만 운신을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숨만 헉헉거리다 몸을 축 늘어뜨렸다. 대신 팔을 들어 스스로 머리를 퍽퍽 때렸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정말 미쳤다는 말만 나왔다. 환한 햇살을 받으니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던 새벽과는 달리 머릿속이 명료하게 깼다. 대체 저지른 일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고는 말할 것도 없이 이거겠지.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미처 닫지 못한 알림창은 아직까지도 눈앞에 둥둥 떠 있었다.
[신의 언약]
‘주몽’과 네 번의 밤을 보내면 영원히 그의 나라로 건너가야 합니다. (1/4)
이 언약을 지키지 않을 시 양측 계약자의 영혼이 소멸됩니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그걸……!”
타이밍도 참 얄궂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나와의 약조를 이야기할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이 억울함을 어디다 토로할 곳도 없었다. 나는 답답한 속을 퍽퍽 두드리다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정도면 온 세상이 나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누가 나 집에 가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우연도 이렇게 겹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고사를 지내고도 남을 놈이 곁에 있긴 했지만…….
나는 열리지 않는 문을 힐끔대다 찌르르한 허리를 일으켜 앉았다. 뜨거운 이불 속에서 자고 일어났음에도 차가운 손도 꾹꾹 주물렀다.
차분히 생각을 해보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수많은 퀘스트들을 해결하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나 있는 나였다. 여태껏 ‘세계 멸망’과 같은 무시무시한 결말도 용케 피해오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분명 솟아날 구멍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차가운 발도 주무르며 ‘신의 언약’을 반복해 읽었다.
[신의 언약]
‘주몽’과 네 번의 밤을 보내면 영원히 그의 나라로 건너가야 합니다. (1/4)
이 언약을 지키지 않을 시 양측 계약자의 영혼이 소멸됩니다.
마지막 문장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양측 계약자의 영혼이 소멸된다면 나뿐만 아니라 주몽도 영혼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나는 지키지 않을 터이니 배 째라 하려던 계획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죽으면 집에 갈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애꿎은 주몽도 변을 당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물론 4번의 밤을 보내고 모른 척 고구려로 따라갔다가 주몽이 반응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계획도 당연히 무산되었다. ‘영원히’. 저 말만 없었으면 어떻게든 우겨봤을 텐데, 그 틈에 어찌나 꼼꼼하게 말을 뱉었는지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그래도 날치기 계약이니 분명 틈이 있을 텐데……. 나는 다시 계약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다행히 앞 문장에도 내 눈을 사로잡는 단어가 있었다.
“네 번이라…….”
나는 그 구체적인 숫자를 곱씹어보았다. 이 말은 즉 네 번이 채워지지 않으면 언약이 발동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럼 세 번, 혹은 그 이하로 밤을 보내고 고구려를 건국한다면?
나는 순간 스쳐 간 생각에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네 번의 밤’이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의 나라로 건너갈 필요가 없었다.
정말 통할까 하는 의심은 필요 없었다. 나는 이미 퀘스트의 내용을 정직하게 따르기보다 빈틈을 찾아 우회하는 데 도가 텄다. 그간의 성공이 내가 성공할 미래를 증명하고 있었다.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시스템 창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더 좋은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노려볼 만한 것은 ‘그의 나라’를 언급한 부분이었지만 금세 생각을 접었다. 이건 고구려가 없으면 건너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지만 어차피 ‘그의 나라’를 세우지 않으면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관건은 하나였다. 앞으로 세 번의 밤을 보내기 전에 주몽으로 하여금 건국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약조는 내가 그와 네 번의 밤을 보내야 건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걸 깨부술 방법은 차차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그래도 구멍을 찾아놓으니 숨통이 트였다.
‘신의 언약’은 정말 날벼락 같은 일이었지만 어차피 이런 최악의 상황 같은 퀘스트를 한두 번 받은 것도 아니었다. 부여에서의 삶은 매 순간이 억지스러운 ‘실패 시 결말’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번 역시 그런 페널티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했던 속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스스로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빠른 체념이었다. 부당한 대우도 계속 받으면 아무렇지 않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그러나 자조도 오래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시 눕기가 무섭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들어오던 주몽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환하게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일어나셨습니까.”
“아.”
그를 보니 내가 간밤에 저질렀던 또 다른 일이 생각났다. 밝은 그 얼굴과 달리 내 얼굴은 점차 어두워졌다. 자위나 좀 도와줄까 하고 갔다가 끝까지 자버린, 어디다 말하면 자업자득이라고 도리어 욕이나 먹을 것 같은 그런 일이었다.
“너무 오래 주무시는 것 같아 걱정이 들던 참이었습니다.”
대답이 없는 내게 주몽이 부드럽게 말하며 다가왔다. 가까워진 옷자락에서 겨울바람 냄새가 났다. 나는 찬바람을 피하는 척 이불을 올리고 등을 돌렸다. 아무리 마음에 큰 파동이 일지 않았다고 해도 막상 대낮에 당사자와 얼굴을 마주하니 영 껄끄러웠다. 계약을 생각하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고.
“형님…….”
그러나 그가 눈꼬리를 내리며 말을 늘어뜨리자 새벽에 있었던 또 다른 속삭임이 그 위로 겹쳐 들렸다.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그 간절한 애원.
“아니야. 너도 잘 잤어?”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다. 그때도 했던 생각이지만 주몽을 탓하기에도 참 애매했다. 항상 최선을 다한 결과가 그렇게 돌아올 줄은 너도 몰랐겠지.
얼떨결에 정말 자버린 것도, 뭐, 그가 미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가끔 속에서 울컥하는 이 감정은, 그에게 쏟아내서는 안 될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그 정체를 애써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대신 저 깊이 묻어두었다. 어차피 앞으로 세 번, 아니 최대 두 번은 더 그와 밤을 보내야 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내 물음에 걱정으로 일그러졌던 주몽의 미간이 다시 펴졌다. 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내 달램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어리광을 피우던 그가 화로를 내 곁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식사를 준비해 두었는데 조금이라도 드시겠습니까?”
“아…. 근데 나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다들 걱정하고 있을 거야.”
그제야 유모와 궁인들이 밤사이 사라진 나를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잠깐이면 끝날 줄 알고 몰래 나온 것이었는데 해가 중천에 뜨도록 못 돌아갈 줄은 몰랐지. 새벽에 나를 깨우러 들어온 궁인이 이미 내 부재를 알아채고 궐을 한바탕 헤집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나는 주몽의 도움을 받아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럭저럭 걸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몸 안에서 느껴지던 이물감은 물론이고 땀에 젖어 찝찝하던 피부도 말끔했다. 옷도 입혀져 있었지만 누가 입혔는지까지는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저를 키우면서 들어준 수발을 지금 돌려받은 셈 치자. 그렇게 이성을 누르니 마음만은 편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오늘은 여기 계시지요.”
“아니야. 내가 이곳에 있으면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어.”
나는 그의 권유를 물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 북녘궁에 남아 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둘러댈 말이 없었다.
사라진 태자가 주몽과 단둘이 버려진 궁에서 발견됐는데 태자는 허리를 못 가누더라……. 이 소문이 궐에 돌기라도 하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물론 저 업어 키운 애가 제 형님을 잡아먹었을 거라곤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테지만, 그랬던 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주몽은 뭔가 마뜩잖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그는 우선 어디서 가져온 건지도 모를 침의를 입고 있는 내게 두꺼운 옷을 건넸다. 그리고 내 착의를 도우며 여상히 말을 꺼냈다.
“사실은 이미 태자궁에 글을 남기고 오는 길입니다. 궁인들이 우려할 것 같아 지난 밤 저와 저잣거리를 나갔다 둘러댔습니다.”
“뭐?”
나에게 언질도 없이? 내가 황당하다는 낯을 하고 있자 그는 내가 일어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했다. 미리 말을 하지 않아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디선가 형용하기 어려운 위화감을 느꼈다.
“혹 오늘 다른 중요한 일정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크게 맡은 일은 없지만……. 가람이랑 석반을 들기로 했는데.”
“역시 오늘은 이곳에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내 손을 한 번 꽉 쥐더니 해사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와 다름없는데 미묘한 위화감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곧 늦은 조반을 들며 그 생각을 잊어버렸다. 생선 살을 다 뭉개 놓고 울상을 지으며 나를 보는 그는 여전히 내 작고 여린 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