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0화 (1/27)

해연정기 1권

목차

0.

1.

2.

3.

4.

5.

0.

찬바람이 복도를 한 바퀴 휘돌고 지나갔다. 나는 시험지를 한 손에 쥐고 앞문을 잠갔다. 생명과학은 그럭저럭 봤지만 국어를 망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동명왕편’에서 서술형이 2개나 나올 게 뭐람. 다 아는 내용이라고 설렁설렁 공부한 대가였다. 망할 주몽. 소설을 쓴 게 그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주몽을 원망했다.

“아…. 배고파.”

기분도 안 좋은데 배까지 고프기 시작했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주지 않았다. 집에 가도 먹을 거 없을 텐데. 나는 텅 빈 냉장고를 떠올리며 계단을 밟았다.

동생에게 전화나 해보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릴 때였다. 또다시 찬바람이 뒷목을 선득하게 훑고 지나갔다.

“열린 창문도 없는데 어디서 찬바람이 자꾸…….”

투덜거림을 멈춘 것은 비단 섬뜩한 느낌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내 등을 밀었다. 나는 순식간에 저 계단 끝까지 굴러떨어졌다.

분명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누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행동을 할 만큼 원수진 사람도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 해 봤지만 엎어진 상태 그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 끙끙대며 힘만 주는데 등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뒷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서늘한 손이 내 뒷목에 닿았다. 반항할 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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