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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154)화 (15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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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화운의 입술 사이로 이한의 혀가 성급하게 밀고 들어왔다. 화운이 놀라 긴장한 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도 이한은 외려 화운을 더 몰아붙이듯이 다른 손으로 허리를 강하게 붙들어 당겼다. 그리고 그의 안쪽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여린 살을 남김없이 핥았다.

“폐, 폐하… 읏…!”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화운의 손이 다급하게 이한의 어깨를 밀어내며 고개를 떼려 했지만 황제는 결코 그 틈을 봐주지 않았다. 아주 잠시 떨어졌던 입술을 다시 붙여온 이한이 화운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처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릿한 아픔이 느껴질 만큼 강한 힘이었다. 화운이 아, 하고 외마디 신음을 흘리자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다시 뜨거운 살덩이가 엄청난 열기와 함께 파고들었다. 이한의 몸짓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몹시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화운은 어쩐지 황제가 절박하게 제게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폐… 으읍! 폐하, 잠… 잠시…!”

화운은 연신 이한을 밀어내고 말을 꺼내려 했으나 이한은 마치 그 말을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파고들며 화운을 침대로 밀어붙였다. 이윽고 침대에 다리가 걸린 화운이 뒤로 쓰러졌고 황제가 그 위를 덮쳐눌렀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두 사람의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덜덜 떨리는 화운의 손이 애달프게 이한의 옷자락을 쥐었다.

“폐하, 제 말을… 제 말을 먼저 들어 주세요….”

꼭 겁을 먹은 것처럼 들리는 화운의 목소리에 이한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이렇게 억지로 몰아붙이고 무서워하게 만들려던 건 절대로 아니었는데.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연화운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들어오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이한은 그를 겁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깟 후궁의 거부 따위는 무시하다 못해 단죄할 수 있는 힘이 황제에게는 있었다. 명이라 하면 그는 그저 따라야 할 것이고, 힘으로 찍어 누르면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내가 미안하다….”

하지만 이한은 그러는 대신 허물어지듯 말하며 몸을 물렸다. 오히려 제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황제가 후궁을 취하려 했던 건 결코 잘못된 일이 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화운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더없이 작아진 이한이 화운의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러려던 것이 아닌데… 내가… 내가 잘못하였다….”

황제로서는 결코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말이지만 이한은 몇 번이나 화운에게 그 말을 했다. 그건 황제가 후궁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성이한이 자신의 정인인 연화운에게 하는 말이었다. 낯이 뜨겁고 죄책감이 밀려와 화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스스로 연모한다 고백한 이에게 이토록 무도하게 굴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폐하.”

고개를 숙인 이한에게 화운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겁먹은 듯 떨고 있었던 걸 떠올려 본다면 믿기 힘들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든 이한의 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운의 얼굴이 보였다. 또다시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괜찮습니다, 폐하.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

“다만… 제가 폐하께 꼭 드려야 하는 말이 있으니… 길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겠으나 폐하께서 귀 기울여 들어 주시길 간청드리옵니다.”

그때 이한은 귀를 막고 싶었다.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오늘 서정궁의 뜰에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느끼고 있던 일종의 경고가 폭발하듯 이한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이한은 결코 강제로 연화운을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가 이토록 하고자 하는 말을 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하여 외면할 수 있는 그런 사내는 아니라서.

“……말해 보거라. 내가 들을 것이니.”

결국 오늘도 지고 만 이한은 잔뜩 겁이 난 마음을 꽉 쥔 두 주먹 안에 감추고 말했다. 화운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이한의 앞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폐하. 제가 연못에 빠져 한 시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일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마침내, 하운의 이야기였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하고서도 믿기 힘들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따금 화운은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을까. 정말 조금도 원하지 않았던 일이 천재지변처럼 갑자기 나를 덮친 것인가.

물론 그랬다. 화운은, 아니 하운은 절대로 남의 몸을 대신 차지해 황제의 마음을 얻어내는 일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그는 다만 황제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을 뿐이지 그분의 정인이라든지, 연심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단 한 번도 바란 적이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 어느 날 문득.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 가만히 컴컴한 방에서 홀로 눈을 뜨고 있을 때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일까. 정말로 나는 아주 조금도, 티끌만큼도, 황제 폐하의 마음을 원하지 않았을까. 그분의 곁에 서서 그분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고, 그분의 다정한 품에 안기는 그러한 일을 정말 단 한 순간도, 원한 적이 없었을까.

황제의 말 한 마디에 구원 받을 때마다. 그분이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킬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명백하게 사이가 가까워지고 친밀한 서신을 주고받을 때마다 화운은 제 마음 한구석이 온전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죄책감이 아무리 커지고 또 커져 자신을 잡아먹어도 그 한구석에 아주 작게 머무르고 있는 기쁨을 침범할 수는 없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화운은 황제를 그리워했고, 이대로 그분의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랐으며, 끝내는. 결국에는.

주제도 모르고 그분을 마음 깊이 담아버리고 말았으니. 이 일을 두고 자신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폭풍이 휘말렸을 뿐인 가련한 사람이라고, 화운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자기 변명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괜찮을 것이다. 화운은 이제, 잘못된 그 모든 일을 바로잡을 것이다. 감히 황제의 마음을, 귀한 그 진심을 기만한 죄인은 죄인의 자리로 돌아가 두 번 다시는, 그토록 애틋하고도 다정한 폐하의 눈빛 같은 건 볼 수가 없을 것이다.

화운은 이제야 겨우 모든 것이 있을 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무슨……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한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채 앉아 있는 화운을 내려다보며 어울리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다만 화운이 꿇어앉은 게 걱정이 되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들을 테니 일어나 편안하게 앉아 이야기하라 거의 부탁을 하며 손수 화운을 일으켜 세우는 자신의 손길조차 거부하는 그가 염려되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화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믿을 수 없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차곡차곡 황제의 앞에 쌓여갔고 이한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그것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네가 연화운이 아니라….”

되묻는 이한의 음성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심지어 제대로 말을 끝마치지도 못했다. 스스로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꺼내고는 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납득할 수가 없어 그랬다. 화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 저는 연빈 연화운이 아니고… 연화운을 구하고 죽은… 죽었다고 폐하께서 생각하셨던 천민 출신의 시위, 하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기 힘드실 줄을 압니다. 허황된 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폐하… 이것이 진실입니다. 저는… 저는 폐하의 후궁인 연빈마마가 아니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더니 정신이 다 혼미해지는 것 같아 이한은 저도 모르게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황제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며 온갖 일들을 대처해왔지만 지금처럼 어이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이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네가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은 모양이다.”

“폐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헛소리를 한단 말이냐. 내가 곧장 태의를 불러주마. 그러니 우선은 일어나라. 찬 바닥에 그리 오래 꿇고 있으면 몸이 상한다. 응?”

더없이 혼란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이한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화운을 걱정하고 있었다. 화운은 그 말 한마디가, 그 애정 어린 기운 하나하나가 수백 개의 칼날이 되어 제 심장을 찔러오는 고통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분에게. 이토록 곱고 따스한 분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화운은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자신의 뺨을 밤새 내려치고 싶었다.

이한이 다시 한 번 화운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잡고, 황제의 특별한 애정을 온몸으로 느끼던 어느 날을 떠올리며 화운은 무릎을 기어 물러서서는 황제의 손길을 거부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운은 보지 못했지만 이한의 얼굴이 상처받은 듯 일그러졌다. 화운은 울음을 억누르며 다시 말했다.

“저는 천하게 태어난 노비입니다. 감히 황제 폐하의 손길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운아….”

냉랭하게 자신을 밀어내는 목소리에 이한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이리 따스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 언제나 울 것 같은 얼굴로 허물어져 저를 바라보던 화운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했다. 하지만 화운은. 자신이 화운이 아니라고 고하고 있는 눈앞의 사내는 이한의 부름에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저는… 저는 폐하의 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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