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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141)화 (14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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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에 엎드린 몸을 황당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이한이 이내 풀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자보자 했던 서정궁의 아랫것들이 여간 방자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설령 이한이 오늘 연빈을 취하려 왔다고 한들 어디 한낱 종이 감히 황제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그야말로 이대로 끌려가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죄였다.

“너희가 아주 나를 우습게 보는 게지.”

“…폐, 폐하…….”

“되었다. 일어나라.”

하지만 이한은 아진을 벌하는 대신 그렇게 말했다. 심지어 황제의 표정은 아진을 나무라기보다는 어쩐지 대견해하는 것 같기까지 했다. 비록 불경하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으나 내심 연화운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화운은 좀처럼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니 이한은 아진 같은 이가 곁에서 화운을 챙기는 게 다행스러웠다.

게다가 이한이 정말 아진을 벌하기라도 한다면 연화운이 달려와 제가 대신 벌을 받겠다고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게 뻔했다. 이한은 그런 모습 같은 건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가장 깊은 마음속에는 연화운에게 미움받을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황제의 체통을 생각해 그런 것쯤은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

이러니 한낱 종이 황제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한들 달리 반박할 말이 있을까.

이한은 그저 자신을 탓하며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민망한 표정으로 따라오는 아진에게 이한이 물었다.

“아직 잠들지는 않았느냐.”

“예, 폐하. …혹시나 싶어 소인들이 아직 폐하께서 오셨다는 말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진의 말을 들은 오 태감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이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너희들은 더 따라올 것 없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마.”

“예, 폐하.”

침전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표정이며 목소리가 눈에 띄게 들뜬 황제는 아진과 오 태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충 손을 휘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보통 폐하께서 밤에 오시면 술상이며 무어며 들여갈 것이 많았으나, 그분이 한 사내를 제외하곤 당장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시니 아랫것들은 그저 미소를 감추며 조용히 물러날 뿐이었다.


“몸은 좀 어떠냐.”

인사를 올리려던 화운을 재빨리 붙들어 꿇지 못하게 막은 이한이 그대로 그를 침대에 앉히며 물었다. 목소리는 답지 않게 주눅이 들어 있었다. 화운이 오늘 무엇 때문에 정신을 잃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운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폐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괜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옵니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

“내가 미안하구나.”

하지만 황제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과의 말이 흘러나왔을 때는 화운의 얼굴에 어려 있던 미소도 단숨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이한에게 조금 더 다가가 앉은 화운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나는 정말 네가 그렇게까지… 힘든 줄은….”

“아….”

“그런 줄은 정말로 몰랐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이한이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그제야 황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챈 화운이 얼굴을 화라락 붉혔다. 이한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쓰러진 연유는 이미 아진을 통해 들었다. 그때에도 영 민망하여 차마 아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황제의 입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화운은 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 속으로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몸이 약하기로서니 과한 색사 때문에 기절을 했다니. 화운은 만약 이 일이 황궁에 소문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녀야 할지 막막하여 오후 내내 서정궁의 아이들과도 은근히 내외를 한 참이었다. 제 자신이 폐하의 앞에서 정말 별 추태를 다 부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덩달아 고개를 숙인 화운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은 제 몸이 지나치게 약한 탓이지 폐하께서… 그….”

“흠흠….”

“하여간에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민망함이 커졌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로 지엄하신 황제 폐하께서 자신 같은 것에게 사과하는 일이란 있어서는 아니 되었다. 화운은 뜨거워지는 얼굴을 모른 척하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도… 저도 싫지 않았기에….”

그것은 단지 이한의 기분을 가볍게 해주려 꺼낸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아도 이한과 함께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말랑해지는 틈으로 스며나오는 화운의 진심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황제 폐하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수도 없이 자신을 다그치면서도 그분이 다가오면 도무지 밀어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자신이 후궁이기 때문에, 황제를 거부하는 건 예법에 어긋나기 때문에는 아니었다.

사실은 밀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죄책감이라든가 하는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들을 전부 다 거둬내고 나면 언제나 화운의 마음 안에 남는 건 황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었다. 그분께서 주시는 온기가 기꺼웠고, 못 이긴 척 그 품에 안기고 나면 마치 자신의 생도 세상에 어떠한 가치가 되어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매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황제의 용안이 저로 인해 더운 숨을 터트리며 흥분하는 것을 마주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을 만큼 거대한 충만함이 가슴을 가득 채우곤 했다. 그러니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매일 밤 기꺼이 황제를 모신 일을 두고 화운이 이 모든 게 그분의 탓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제가… 제가 기꺼이 한 일이니 폐하께서는 제게 사과하실 일이 없…!”

하지만 용기를 내 더듬더듬 이어 가던 화운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떨리는 눈으로 화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이한이 이내 참지 못하고 화운의 목을 끌어당겨 깊이 입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이한은 이것만큼은 전적으로 연화운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두 뺨을 발그레하게 붉힌 채 폐하께 안기는 것은 제게도 기꺼운 일이었다 말하는 정인을 본다면 그 누구라도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침범에 바르작거리는 화운의 몸을 달래듯 이한이 다른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아 당기며 등줄기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흐으…!’ 하는 화운의 숨소리가 흘러나왔으나 이한은 그마저도 제가 전부 삼켜 밖으로 흩어지게 두질 않았다.

“아…… 폐… 흣…!”

“……!”

결국 숨이 차오를 대로 차오른 화운이 버거운 신음을 토해내며 이한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꽉 쥐어 매달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황제가 화들짝 놀라 제게서 화운의 몸을 떨어트렸다. 크게 들썩이는 어깨와 숨을 헐떡거리는 젖은 입술을 보고서야 이한은 또 자신이 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를 괴롭혔음을 깨달았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이렇게 이성을 잃을 만큼 욕정해본 적이 없는 이한은 자신이 정말 미친 것은 아닌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래서야 아진에게 나를 뭘로 보는 것이냐 성을 낼 자격이 없었다.

“미안… 미안하다….”

결국 또다시 사과를 하고 마는 이한을 보며 화운은 ‘아닙니다!’ 하고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사과를 하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운은 그제야 제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진의 마음을 이해했다. 화운이 숨을 마저 고르며 이 일 또한 폐하께서 사과하실 일이 전혀 아니라고 말을 덧붙이려 했을 때, 그보다 조금 더 먼저 이한이 말을 꺼냈다.

“태의가 말하길 당분간은 네가 정양하여야 한다고 했으니 이제는 정말, 정말로 너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걱정 말거라.”

“아… 허면 이제 돌아가십니까?”

황제께서 자신의 몸을 이리도 염려해 주시는 일은 당연히 기쁘고 감사할 일이건만 더 이상은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을 서운하게 만드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 화운은 제 안에서 고개를 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물었다. 워낙에 변변치 않아 쓰러지는 것이 일인 자신을 위해 예까지 병문안을 와 주셨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과분한 일이다. 화운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눈가에 어리는 미미한 아쉬움마저 전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때, 영문 모를 얼굴을 한 이한이 눈을 꿈뻑거리며 되물었다.

“어딜 돌아가?”

마찬가지로 눈을 깜빡거리며 화운이 다시 말했다.

“…수침에 드셔야 하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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