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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46)화 (4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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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말에 송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그제야 주아가 안심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송현은 다시 특유의 눈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짓고 주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몸에 좋다는 차라도 보낼까...?”

주아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마. 연빈은 마마의 오라버니가 아니에요. 마마께서 오랫동안 오라버니를 보지 못하여서 그러시는 거지 괜히 정안궁에 뭔가를 보냈다가 꼬투리만 잡힐 수도 있어요.”

“하지만 황후마마께서는 정안궁에 다녀오셨는걸 ....”

“황후마마는 황후마마시니까요. 내명부를 살필 책임이 있으시지요.”

“으응....”

도대체 그날 마주한 연빈의 표정이 어떻게 제 주인의 마음을 뒤흔들었기에 연빈이라면 자다가도 인상을 찌푸리시던 분이 하루아침에 이리 변하였는지.

애초에 감히 연빈이 어찌할수 없는 황후마마도 아니고, 집안이며 가진 성격이며 연빈에게 지지 않는 숙비마마도 아니고, 힘으로도 말발로도 도무지 연빈을 당해낼 재간이 없는 제 주인 같은 사람은 애초에 그와 멀리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주아는 다시 한번 그것을 머릿속에 새기며 여전히 꿍얼대며 앉아 있는 송현을 단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만약 모두가 하는 말대로 연빈이 진짜 변 한 거라면...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러나 이어진 송현의 말이 어찌나 기가 차는지, 주아는 제 입에 멍청하게 벌어지는걸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다. 제 주인이지만 참으로 속도 없는 사람이었다.


“정안궁에서?”

“예, 폐하. 연빈마마께서 간식을 준비하여 보내셨습니다.”

정안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돌아가려고 하는 시선을 억지로 들고 있던 서간에 붙들어놓은 이한이 연빈이 간식을 보냈다는 소리에 슬쩍 시선을 돌려 오 태감이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떡과 당과가 색색이 어여쁘게도 담겨 있다. 이한은 곁눈질하였던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돌리며 말한다.

“흥, 그깟 주전부리로 내 마음을 돌려 보겠다니 꿈도 크구나.”

목소리에서는 괜히 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안 그래도 지난 새벽 정안궁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던 이한이다. 어디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나는 절대로 너에게 놀아나지 않을 것이니 실컷 뜻대로 해보라고 그리 말을 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아프다는 핑계에 두 번씩이나 정안궁을 찾아간 것이 여간 민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찾아가기만 했다 뿐인가. 무른 새벽의 감정을 틈타 다른 사람이 되었느니 어쨌느니 하는 연빈의 말에 제가 한 대답을 생각하면 체통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베개 아래 머리를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여 이한은 돌아오는 내내 이게 다 새벽의 괜한 공기 때문이다, 몸이 피곤하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격렬히 변호하였으니 이제와 그깟 간식 하나에 특별히 신경을 쓸 이유는 없었다.

옆을 돌아보지도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황제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오 태감이 말했다.

“하오면... 이것은 도로 정안궁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폐하.”

서간을 쥐고 있는 이한의 손이 한번 움찔했다. 오 태감이 몸을 살짝 돌렸다.

“폐하의 뜻대로 이런 간식거리는 다시는 보내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도록 하지요.”

오 태감이 거기까지 말을 이르고 나서야 이한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태감을 바라본다. 오 태감은 다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아예 그냥 내다 버릴까요, 폐하.”

“네가 아주 이제 나를 놀려먹으려 드는구나.”

“소인이 어찌 감히... 당치 않으십니다, 폐하.”

황제보다 이 황궁 생활을 훨씬 더 오래 한 사람이 쉬이 내보이지 않는 속을 어찌 다 알 수가 있겠냐마는 최근의 오 태감은 유독 능글맞아진 느낌이었다. 이한은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곤 그를 노려보다가 이내 말했다.

“이리 내.”

“.......”

“돌려보냈다가 또 무슨 사달을 겪으라고.”

이제는 그 자신조차도 속이지 못할 핑계를 습관처럼 대며 애꿎은 간식을 노려보는 황제에게 미소를 한 번 지었다 얼른 지운 오 태감이 답지 않게 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 연빈마마께서 그러지 않으실 거라는 걸 이미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폐하께서 연빈마마의 눈앞에서 이것을 버려 짓밟는다고 한들, 지금의 연빈마마께선 오히려 성심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죄를 청할 것이옵니다.”

이한은 오 태감의 말을 듣는 순간 순순히 제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는 연화운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눈에 본 듯이 선명한 모습이다. 연화운이 그리 달라진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벌써 그런 모습이 이토록 익숙한지 모를 일이었다.

누가 보아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색을 골라 놓은 것이 빤히 보이는 간식들을 바라보며 이한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새벽녘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들을 천천히 입 밖으로 내었다.

“그래. 그게 문제인 거야.”

"자꾸만 신경 쓰이고, 자꾸만 눈에 밟히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자꾸만 관심을 두게 되는 건 생전 얌전한 적이 없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리 변한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아 그러한 것이지.“

이한은 천천히 한 손을 뻗어 색이 고운 꽃잎이 하나 올라 있는 하얀 떡을 집어 들어선 마치 그게 연화운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태연해지면 될 것이다. 괜히 속느니 마니 부산 떨 것도 없이 그냥 변한 연화운을 인정해버리고 적응하면 지금처럼 마음이 널을 뛰듯 하는 것도 찾아 들겠지.”

굳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를 쓰다 보니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지금 보이는 행동이 거짓이라는걸 찾아내려 매번 들여다보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살피니 어찌 일상이 연빈으로 가득 차지 않을 수가 있을까.

차라리 받아들이면,

그래, 연화운이 변했구나. 예전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 사람이 되기로 하였구나. 그리 속편하게 받아 들여버리면,

“그러면 더 이상 지금처럼 사사건건 연민을 생각 하며 속을 쓰는 일도 없을 것이야.”

“아니 그러냐?”

“.....예. 그럴 것이옵니다, 폐하.”

새벽이 가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시나 걱정하게 하였던 황제께서 그리 답을 내렸다고 하니, 오 태감은 감히 황제의 말을 반박할수 없음이었다.


“아니 글쎄, 속고만 살았니?”

주방으로 들어서던 아진의 발이 멈춘건 안에서 심상치 않게 들려오는 서서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소리를 죽이고 고개만 슬쩍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니 서서를 중심으로 정안궁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정말 마마께서 우리를 두고 내 사람들이라고 하셨다고?”

“그렇다니까? 내 귀로 똑똑히 들었고 아진 언니도 같이 들었어!”

“말도 안 돼....”

거듭 묻고 또 물어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더 높아지는 서서의 목소리에 다른 아이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황궁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자애롭게 대해 주시는 윗전은 종종 보거나 들은 적이 있어도 측근 궁녀쯤 되는 사람도 아닌, 일개 궁인들에게 대놓고 내 사람이라 칭했다는 주인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긴... 얼마전 정이네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도 마마께서 약값이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잖아. 걔는 정안궁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진 언니한테 들었는데 무더위가 오기전 우리들 관사에 필요한 게 없는지 미리 살펴보라고 하셨대.”

수군거리는 말들 속에는 각자 최근에 겪었던 제들의 주인에 관한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연빈이 정안궁의 모든 궁인들을 불러 모아서는 다시는 이전처럼 너희를 괴롭히는 일이 없을 거라 약속을 하였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안궁에서 그의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주인이 이번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여 자신들을 괴롭힐까 두렵기만 하였을 뿐.

하지만 그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연빈은 그 자신이 약속한대로 단 한번도 궁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일이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나가는 말조차도 언제나 봄의 아침햇살처럼 부드럽고 다정하기가 이를 데 없어 이분이 정말로 지난날 그토록 악귀 같았던 주인과 같은 분이 맞는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허니 처음에는 절대로, 조금도 믿을 수 없다고 그렇게 몸을 사리던 이들도 이제는 언제 한 번 마마와 마주칠 수 있을까 괜히 정안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소란스러운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서서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알아들어? 마마께서 이제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데 우리도 마마를 위해 무엇이든 더 잘해야 한다, 이 말이야.”

이번에는 아주 두 주먹까지 야무지게 쥐고 비장한 목소리를 내는 서서의 모습에 이내 다른 이들의 눈빛 역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정안궁 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내무부며 어디며 황궁 어디를 가도 매번 자신들을 동정하거나 비웃는 눈길에 몇 배로 더 마음고생을 했는데 앞으로는 어딜 가든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괜히 들떴다.

게다가, 이번에 마마께서 쓰러지시자 폐하께서 두 번이나 정안궁에 다녀가시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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