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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11)화 (1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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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저의 몸에 대해 떠올렸던 것이 문제였다. 괜히 주제도 모르고 폐하께서 보시기에 좋으니 안 좋으니 하는 생각하고 나니 어쨌든 자신이 황제의 ‘후궁’이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궁의 본분인, 잠자리에서 황제를 모시는 일에 대해 떠올리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떠올린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고 다시 숨이 가빠졌다. 비록 연화운이 황제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후궁으로 들어와 산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 분명 시침을 든 일이 있으렷다.

화운은 거기에 앉아 저에게는 남아 있지 않은 그 밤들에 대해 생각한다.

여인 후궁에 비해 그 수가 많지는 않으나 안국은 오래 전부터 계속 남후궁이 있어왔고, 그러다 보니 황궁 밖에서도 사내와 사내가 정을 나누는 일을 딱히 금지하지 않았기에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사내끼리 혼인을 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안국의 분위기가 그러한 것뿐 화운은 이전엔 단 한 번도 사내에게 몸이든 마음이든 동해 본 적이 없어 저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래왔는데.

잠자리에서의 폐하는 어떤 분이실까. 생각은 화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갔다. 시선을 들어 저만치 침상을 바라보려니 그 위에서 몸을 겹치는 황제와 지난날의 연화운이 보이는 것 같아 절로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다정하실까. 비빈들에게 온화하기로 소문이 난 분이시니 잠자리에서도 다정하고 따스한 얼굴을 하실까.

정해진 수순처럼 그날, 그 거리에서 보았던 황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운이 사내의 얼굴을 보고 아름답다 여겼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도 처음이다. 먼발치에서나마 그분을 보고 모실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다고 생각했다. 감히 꿈꿀 수도 없는 일을 그리 욕심내었던 것도 하운에게는 그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허면 그때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이전의 연화운이 폐하께 가지고 있던 감정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몸이 편하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하지만 화운은 이내 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삿된 생각들을 애써 흐트러트리며 중얼거린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수우면 주제넘는 생각을 하게 된다더니 제가 딱 그 짝이었다.

이전의 연화운이 황제의 시침을 들었든 그렇지 않든. 이전의 하운이 황제를 보고 감히 불경한 감정을 품었든 아니든. 그건 지금 화운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하운은 이미 죽어 세상에 없고, 자신은 연못에 빠진 일로 더더욱 황제의 경멸을 사게 되어버려 패까지 빠지게 된 이상 다시 황제를 모시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전의 연화운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제를 제 처소로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겠으나 지금의 화운에게는 그럴 생각조차 없어 아마 그분을 뵙는 일조차도 앞으로는 요원할 게 분명할 테니.

황제의 친밀한 다정함이란 어떤 빛깔일까. 그분의 따스한 눈빛을 받는다는 건 어떠한 기분일까. 그런 건 아마도 영영 알지 못할 터였다.


“…….”

이한은 제게 내밀어진 후궁들의 패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황제는 길게 늘어선 패에 적힌 비빈들의 이름 사이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 자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 연빈이 정안궁에 틀어박혀 자중한 것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정안궁에서 기별이 온 것이 있느냐.”

이한은 패를 뒤집는 대신 제 앞에 무릎을 꿇은 채 패를 보이고 있는 경사방 위 총관을 향해 물었다. 위 총관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답을 망설이는 게냐.”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망설이던 위 총관은 오 태감이 낮게 호통을 친 다음에야 입을 연다.

“정안궁에서는 아무런 기별이 없었습니다, 폐하.”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예, 폐하. 전에는 매일같이 찾아와 닦달을 하던 궁녀도 지난주부터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총관의 대답에 이한은 말이 없이 책상 위를 손가락을 톡, 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다.

연빈이 황제를 어떻게든 정안궁으로 들게 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경사방에 사람을 보내었던 것은 이한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경사방 총관의 자리가 오로지 정안궁 하나 때문에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되었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황제가 연빈의 패를 빼라 명을 내렸던 그날 위 총관은 제가 감당해야 할 뒷일이 걱정되어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지난번 미련 하나 없는 몸짓으로 제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연빈의 모습이 또다시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그때 이한은 그가 물러가다 쓰러지는 척이라도 하여 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까 예상하였으나 연빈은 행여나 황제와 더 눈이 마주칠까 두려운 사람처럼 서둘러 물러나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황제의 손끝이 이번에는 제 앞에 놓인 패를 하나하나 스치듯 매만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한은 당장에 정안궁으로 가고 싶었다. 그와 동침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한은 그저 정안궁으로 가 연빈에게 도대체 네 속셈이 무엇이냐 따져 묻고 싶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이런 식으로 내 속을 뒤집느냐 성을 내고 싶기도 하였다.

귀찮게 달라붙고 행패를 부릴 때에는 그저 화를 내고 무시하며 돌아서 눈앞에서 그를 치워버리면 다시 생각나는 일이 없었다. 헌데 그가 스스로 물러나 눈앞에서 보이지 않자 어째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를 일이다. 이상했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이윽고, 황제의 손이 패 하나를 뒤집었다. 그것은 현재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후궁으로 꼽히는 숙비 현 씨의 패로, 그는 연빈이 가장 질투하여 미워하기를 서슴지 않는 후궁이었다.

“어디 이래도 네가 본색을 숨길 수 있나 보자.”

“폐하?”

갑작스러운 황제의 혼잣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총관이 반응을 하였으나 이한은 고개를 가만히 젓다가 이내 위 총관을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 내가 숙비의 처소로 갈 것이라고 정안궁에 전하라.”

정안궁에 이 소식을 가지고 갈 내관은 아마도 꽤나 수모를 당하겠으나 그것은 지금 황제의 머릿속에는 없는 일이었다.


“벌써 돌아왔느냐?”

위 총관은 정안궁으로 보낸 내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물었다. 잔뜩 겁에 질린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억지로 정안궁으로 향했던 내관은 어딘지 모르게 얼떨떨한 얼굴을 한 채로 ‘예….’ 하고 대답한다. 위 총관이 물었다.

“연빈께서 물건을 집어던져 황급히 돌아왔느냐?”

“아닙니다.”

“허면 돌아가 나를 불러오라고 화를 내셨더냐?”

“아니요….”

“서, 설마 여기로 오고 계신 것이야?”

내관이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할 때마다 위 총관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하게 굳어졌다. 당장이라도 연빈이 문을 발로 차고 안으로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연빈은 그가 황후보다도 더 어려워하여 피하고 싶어 하는 후궁이었다.

경사방의 총관 자리는 본래 황궁에서 그다지 권력이 두드러지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황제의 시침에 관여하는 자리인 만큼, 설령 그가 황제의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후궁들이 어떻게든 호감을 쌓으려 노력하는 자리였다.

사람의 선택이란 본디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 패를 들고 들어가는 총관이 어떤 태도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황제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후궁이라도 위 총관 앞에서는 늘 예를 차리고 웃는 낯으로 대하기 마련이거늘 정안궁의 연빈에게서는 도저히 그러한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경사방의 내관들은 물론이고 총관에게까지 윽박을 지르고 막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일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 혼이 나면 반성하기는커녕 그것을 두고 다음번 더 악독하게 구는 아주 지독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도무지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게끔 만드는 안하무인의 후궁이었다.

하여 안 그래도 이번에 패를 뺀 일로 언제 연빈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좌불안석이었는데, 이제는 굳이 폐하께서 다른 처소를, 그것도 연빈이 치를 떠는 숙비의 처소를 찾으시는 걸 정안궁으로 가 고하게 되었다. 이 일로 얼마나 연빈의 패악질을 받아야 할지 위 총관은 정말이지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위 총관의 물음에도 여전히 답답하게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내관은 이내 다시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연빈마마께서는 그저 알았다고 하시며….”

“알았다고 하시며 네 뺨을 쳤느냐?”

“아니, 그냥 알겠다고만 하시면서….”

“그럼 발길질을 하였어?”

“그것도 아니고….”

“어허, 이런 답답한 놈을 보았나! 어서 속 시원히 말을 하지 못할까!”

제대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계속 말을 끊는 내관의 답답함에 위 총관이 소리를 빼액 지르고 나서야 아직 어린 티가 다 가시지 않는 얼굴을 한 내관이 저 역시 정말 모르겠단 얼굴로 위 총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연빈마마께서… 폐하께서 숙비마마의 처소로 갔다는 소식을 들으시곤 잠시 말씀이 없으시더니 이내 알았다고 하시면서… 예까지 와 전하느라 고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뭐?”

“연빈께서 제게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해가 저물었으니 살펴 가라고 하셨습니다. 위 공공. 이것이 혹시 연빈께서 저를 밤에 죽일 거란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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