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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7)화 (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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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간밤에는 또 얼마나 난리를 피웠다더냐?"

청건전에서 조회를 마치고 다른 후궁의 처소로 가지 않은채 침궁인 안정전으로 돌아온 황제, 이한이 오 태감이 올린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선 다짜고짜 물었다.

“난리라 하심은....”

“뭘 물어, 정안궁 얘기지. 이 황궁에서 난리가 벌 어질 곳이 거기 말고 또 있다더냐.”

이한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떫지도 않은 차를 두고 연신 미간을 찌푸린다. 그를 찾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패를 빼버리라 하였으니 그 대단한 연화운의 성격이라면 지난밤 정안궁에서는 밤새 소란이 그치질 않았을터다.

연화운이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야 하루 이틀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 딱히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으나 시위가 죽은 일로 자중을 명하였는데도 고새를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렸다면 이한으로서도 더 참아줄수가 없는 일이다.

“그게... 지난밤 정안궁은 별다른 일이 없이 아주 조용했다고 합니다.”

“뭐?”

하지만 이어진 오 태감의 대답은 이한이 예상하였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황제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되물으며 눈을 크게 뜨자 태감이 허리를 더 굽히며 말을 잇는다.

“정안궁은 어젯밤 일찍 불이 꺼진 채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

“말도 안돼!”

이한은 어찌나 놀랐는지 태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체통도 잊고 목소리를 높였다. 크게 양보하여 화운이 설령 황제의 눈치를 봐 죄없는 궁인들을 매질하는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격이라면 분명 온갖 장신구며 유리병 등을 집어 던지고 울며불며 내가 지금 죽을 것이니 당장 폐하를 모셔오라 난리를 부렸을 게 분명했다.

태감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이한이 다시 바른대로 고하라 하려 했을 때 그보다 조금 앞서 오 태감이 하온데....' 하고 말을 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한 황제의 앞에 태감이 말했다.

"연빈께서 오늘 아침에 정안궁의 모든 궁인들을 전부 모아 말씀하시기를.....”

“전부? 궁인들을 전부 모아 하나하나 매질이라도 했다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옵고 연빈마마께오서....”

무슨 엄청난 말을 하려는지 태감은 감히 황제의 앞에서도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죽다 살아나더니 설마 그 성격이 더 지독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싶어 이한이 막 마른침을 삼켰을 즈음 태감이 겨우 말을 이었다.

“연빈께서 그동안 당신이 너희들에게 너무 못되고 잔인하였다고 하시며....”

“.......뭐?”

“지난날 고약하게 군 일이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으나 주인이 되어 그간 해온 행동들을 들으니 마음 이 몹시도 괴로웠다시면서...."

“...뭐?”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당장에 믿기는 힘들겠으나 이제는 정말 그러지 아니하겠다고 약속을 하셨다고... 하옵니다....”

이한은 다시 한 번 황제의 체통에 맞지 않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돼!”

"언니! 아진언니!”

구석에 모여서 저마다 소리 죽여 수군거리고 있던 궁녀들 중 하나가 막 연빈의 식사를 챙기고 나오는 아진을 부리나케 불렀다. 어딘지 모르게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나오던 아진이 그 부름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자 아진을 중심으로 모여든 입들이 시끄럽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도대체 마마께서 왜 저러시는 거예요?”

"또 뭔가 저희를 호되게 혼내시려 시험을 하시는 건가요?”

"언니는 뭐 아는거 없으세요?"

그들이 아진에게 모여들어 하나같이 하는 말들은 전부 갑자기 태도가 너무나도 달라진 저들의 주인, 연빈마마에 관한 이야기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 아침 연빈이 정안궁의 모든 궁인들을 모아놓고 한 이야기로 식사 시간이 내내 소란스러웠다. 당연한 일이다. 그간 그들의 주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궁인들을 죄다 쥐 잡듯이 잡아대길 밥 먹듯이 한 이다.

왜 정안궁에는 수령태감이 없이 견습 내관들만 있을까. 왜 정안궁에는 아진을 제외하면 다른 궁에 비해 턱없이 어린 궁녀들만 오고 갈까.

수령태감이 없는 것은 황제의 명 때문이었다. 정안궁의 수령태감은 연빈이 궁의 주인이 된 후 여러 번 바뀌었다. 수령태감이 새로 들 때마다 연빈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몇 번이나 그들을 쫓아낸 탓이다. 그 일이란 황제를 정안궁으로 모셔오는 일 이었는데, 그에 화가 난 황제는 이리 태감들을 쫓아 내는 걸 보니 정안궁에는 태감이 필요 없는 모양이 라며 아예 수령태감 없이 지내라 명을 내려버린 것이다.

궁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연빈의 패악질이 하도 심하다 보니 바로 곁에서 수발을 드는 경험 있는 궁녀들은 매번 혼쭐이나 신형사는 어디든 쫓겨나기 바빴고 그렇게 악명이 자자해지자 궁에서 생활한 기간이 조금찼다 하는 궁녀들은 제발 정안궁으로 자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 내무부에 청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보니 정안궁으로 가는 궁녀들은 자연히 아직 경험이 없거나 청탁을 할 만한 사정이 되지 않는 어린 궁녀들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리 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기분에 따라 아랫것들에게 화풀이를 하던 연빈이. 저들의 주인이. 오늘 갑자기 그들을 모두 모아 내가 그동안 너희에게 모질게 대한 것이 몹시도 괴롭다 하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약조를 해왔다.

궁인들로서는 당연히 그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숨겨진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장에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는 듯 맹렬하게 타오르는 눈동자들을 가만히 마주하던 아진이 이내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그게...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니요! 그래도 마마께서 언니에게는 이것저것 말씀을 하시는 편이시잖아요."

“맞아요. 적어도 언니는 마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뭔가 달리 느낀 거라도 있지 않아요?"

이제 다른 궁인들은 숫제 아진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매달린다. 평소에는 아진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들이었지만 오전 내내 연빈이 도대체 저들을 어찌 괴롭히려고 이런 걸까 두려움에 떨었던 탓 인지 아주 눈에 뵈는게 없는 얼굴이었다.

아진이 버럭 짜증을 내며 말했다.

"글쎄, 나도 진짜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지난번에는 마마께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신 것을 알아?”

아진의 말에 여기저기서 히익! 하고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직접들은 아진도 여전히 그 일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지경인데 당연한 반응이다. 아진이 말을 이었다.

“기억을 잃으시기도 하셨고, 죽다 살아나니 생각이 많이 달라진 모양이라 말씀은 하셨는데 어디 그 말을 믿을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요!”

“저희 말이요!”

연신 맞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진은 잠시 입을 다물고 저만치 주인의 침소가 있는 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장에 오늘 아침에도 저 침소 안에서 아진은 믿기 힘든 일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다.

연빈은 아침잠이 무척이나 많아 깨우는 일도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억지로 눈을 떠 기분이 좋지 않은 연빈은 평소의 그보다 다섯 배는 더 다루기 힘들 었고, 그런 주인에게 욕을 먹어가며 어르고 달래 아침 문후를 드릴 상태로 만들기까지 아진이 겪어야 하는 수모는 당연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헌데 오늘 아침에는 어떠했나. 그의 주인은 아진이 깨우러 들어갔을 때 이미 일어나 있는 것으로 아진을 경악하게 만들더니 들어오는 아진을 보고 살며시 웃곤 '잘 잤니?' 하고 물어 아진을 거의 기절할 뻔하게 만들었다. 아진은 이제 정말 제 주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진은 복잡한 심경을 겨우 겨우 다스리며 낮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마마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우리가 안다고 뭘 어찌할 수 있겠니. 다들 하던 대로 자기 맡은 일 잘하고, 마마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도록해.”

결국 아진의 말은 연빈이 하는 말을 여전히 전부 믿을수 없으니 괜히 꼬투리 잡혀 더 크게 야단이 나기 전에 몸을 사리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저마다 시무룩하게 바뀐다. 안그래도 살얼음판인 정안궁 생활이 혹여라도 더 고달파지진 않을까 염려가 되는 탓이다.

허나 아진에게도 그들을 위로할 만한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그저 손을 휘휘 저어 아이들을 모두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 말고는 달리 더 할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혼자가 된 아진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연빈이 홀로 앉아있을 그 방을 바라본다. 어제 밤부터 내도록 아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물음 하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만약 제 주인이 한 말이 진심이라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바람에 이제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과연 자신은 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잊고 진심으로 제 주인을 섬기어 모실 수 있을까.

아진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이르고 섣부른 고민이었다.


"폐하, 찾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이한은 가마에 오르다 말고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오 태감이 함께 주위를 살피며 묻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이한이 물었다.

“연빈은 오지 않았느냐?"

그제야 오 태감은 지금 황제가 느끼고 있을 위화감을 알아챘다.

연빈의 패가 빠졌다. 이건 황궁의 어떤 후궁에게도 날벼락 같은 일이겠지만 연빈만큼 이 일을 청천 벽력으로 여길 이는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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