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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6)화 (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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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은 흡사 염라대왕에게라도 끌려가는 모양새로 몸을 옹송그린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화운은 경대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아진이 보기엔 그 모습이 꼭 황제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은 모양새라 마음이 또 덜컥 내려앉았다. 아진은 일단 무릎을 꿇었다.

“마마....”

“아진? 갑자기 왜 무릎을 꿇고 그러느냐. 어서 일어나거라.”

그제야 불현듯 정신을 차린 화운이 깜짝 놀라 말 하였지만 아진은 그대로 아예 머리까지 조아리며 말한다.

"마마... 소인이 방금 경사방 내관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경사방?”

순간 화운의 목소리가 명백하게 긴장으로 굳어지자 아진이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진은 더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마마의 몸을 염려하시어 당분간은... 마마의 패를 올리지 말라 하셨다고 하옵니다....”

말을 마치고 아진은 머리를 더욱 깊이 조아렸다. 곧 물건이 날아오는 욕이 날아오는 할 텐데 괜히 고개를 들고 있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더 성질을 부릴게 뻔했다.

그래도 아직 기력이 다 돌아오지는 않은 것 같으니 지금 맞으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아진이 꾸역 꾸역 그런 헛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엎드린 아진의 머리 위로 화운의 음성이 들렸다.

“그게 어디 내 몸을 염려하시어 한 것이겠니.”

“......?"

“내가 이리 못나게 굴어 애꿎은 시위만 목숨을 잃었으니 나를 탓하시는 것이지....”

“마, 마마!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어요. 마마께서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 것을요...!"

아진은 살기 위해 거의 본능적으로 화운을 감싸고 들었지만 화운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께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는 모양이구나.”

사실 화운이라고 황제와 생각이 다른 건 아니었다. 연못에 빠지기 전까지는 제 몸이 아니었으니 그가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황제가 저를 보던 눈빛이나 저를 대하던 태도를 생각해 볼 때 아마도 황제는 연빈이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연못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화운 역시 그가 그런 생각으로 연못에 빠진 것은 아니 리라 가정하기 어려웠다.

아진은 저의 예상과 달리 화운의 목소리에 분노도, 슬픔도, 아쉬움도 무엇도 없자 당황하여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화운의 얼굴은 담담함을 넘어서 안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진”

도대체 제 주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는 아진이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을 때 화운이 다시 아진을 불렀다. 여전히 다정하고 온화한 음성에 아진은 고개를 다시 숙이는 것도 잊고 '네...' 하고 대답했다.

“너는 내가 그 소식을 듣고 화가나 너에게 화풀 이를 할까 그리 겁을 먹은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마마! 겁을 먹다니요. 아닙니다, 마마....”

“당장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덜덜 떨고 있질 않았어.”

“그, 그것은 마마... 그런게 아니옵고....”

만약 이것이 단순한 변덕이라면, 혹은 연기라면, 아진을 한번 떠보려는 수작이라면 제 주인은 정말로 지옥의 악귀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일 거라고 아진은 생각했다.

아진은 아주 오랫동안 화운을 곁에서 모시며 누구보다 그의 본성을 가까이 접한 사람이었다. 아진은 화운이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수작이며 반성하고 변한척하는 연기를 누구보다 가장 잘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헌데 그런 아진을 이렇게까지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 정말로 변한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정도로 이리 다른 사람처럼, 이리도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를 낼 수가 있다면. 제 주인이 정말로 그 정도로 능숙하게 자신을 감추고 꾸미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다면 연빈은 아진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사람이었다. 이제 아진은 차라리 제 주인이 전처럼 다시 빤히 보이게 악독한 사람으로 변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사람이 변한 것을 어찌 단번에 믿을 수가 있겠니. 나는 너를 이해한다.”

“마마....”

“차차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폐하께오선 당분간 아니 오실 테니 오늘은 모두 일찍 쉬도록 하자.”

아진은 아주 작은 안도와 그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운의 머리를 치장하던 장신구를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긴 장하고 있던 사람처럼 한숨을 한 번 내쉰 화운이 말했다.

“그보다, 아진, 내일 아침에 정안궁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을 앞에 전부 모아 줄 수 있겠느냐.”

“전부요?”

아진이 되묻자 화운은 면경에 비친, 여전히 어색 하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어린 궁녀들부터 시작해서 견습 내관들까지 빠짐없이 전부 모이라고 해줘.”

화운의 명으로 오늘은 최소한의 장식만을 하였으나 얼핏 보기에도 화운이 가진 장신구들은 보통 화려한 것들이 아니었다. 사내로 태어나 사는내내 끈 하나로 머리를 동여매고 다니던 이에게는 무엇 하나 만만한게 없었다. 꼿꼿하게 앉아서 여인들이 제 머 리에 비녀며 무엇이며 날카로운 것들을 꽂아대는걸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어야 했던 시간을 떠올리자 절로 막막함이 밀려와, 화운은 애써 쓸데없는 생각을 떨치려 애쓴다.

어쨌든 가장 걱정이 되었던건 황제를 마주하는 일이었는데 다행히도 황제는 당분간 저를 찾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당장에 마주하고 있는 정안궁의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화운은 이내 면경을 통해 불안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아진과 눈이 마주치곤 이내 말을 이었다.

“누굴 때리거나 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걱정 말고.”

제 말을 들은 아진의 얼굴이 놀라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화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갈 길이 아주 먼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족히 눕고도 남을 넓은 침대에 홀로 누워 화운은 가만히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키는 저곳의 절반에도 가닿지 못하는데 천장은 어찌 저리 높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또한 저 높은 천장은 누가 쉬이 보지도 않을 텐데 또 왜그리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건지 화운으로서는 모를 일이다. 그저 높으신 분들께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인가 할 뿐.

사위가 밤의 고요로 잠겨들자 생각은 더없이 깊어졌다. 깨어 있을 땐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는 상황 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리 혼자가 되고 나니 제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가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랐다.

얌전히 이불 안에 넣고 있던 손을 꺼내 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이불의 감촉은 부드럽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을 만큼 고왔다. 지푸라기 같은 얇은 이불 한 장으로 사시사철을 보냈던 밖에서의 생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운과 같은 말단 시위들이 머물렀던 관사에 있는, 하운으로서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붉어지게까지 만들었던 이불도 지금 덮고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좋아해야 하나 싶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하루 아침에 팔자가 편 것이니 좋아해야 하려나 하고,

비록 저의 본래 몸은 죽어버리고 말았으나 따지고 보면 아쉬울 것도 없는 생이긴 하였다. 하운에게는 부모는커녕 일가친척 하나 없었고, 저를 고용해 주었던 객잔의 주인을 제외하고는 달리 함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지내는 이도 없었다. 그나마 하운을 아껴주던 스승 역시 이제는 먼 곳에 있어 근래에는 서신조차 몇 번 주고받지 못했으니 밖에는 그가 죽었다고 하여 딱히 명복을 빌어 줄 이조차도 없다.

황궁 생활을 시작하면서 저와 같은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시위 몇과 친우처럼 가까워지긴 하였으나 그들과는 함께한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잠시는 안타까워할지언 정 오래 저를 기억하고 그리며 슬퍼할 이는 역시 없을 터다.

허니 사정을 아는 이는 분명 잘된 일이라 할 것이다. 비록 평판이 좋지 않고 황제에게는 경멸을 받고 있다 한들 그는 당당한 안국의 후궁이고 그의 아비는 감히 누구도 견줄 수 없이 인정받고 있는 공신이자 황제의 충신이다.

제 아무리 전장에서 날고 기며 공을 세운다고 한들 지금 하운이 이룬 것처럼 대단한 신분상승을 하는건 누구도 불가능할 터였다.

“그래. 내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 보겠어.”

화운은 마치 자신을 타이르듯 그리 중얼거리며, 애써 텁텁한 마음을 외면하며 눈을 감았다.

어두워진 시야로 제가 그날 그 거리에서 처음 보았던 황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록 저 하나만을 위한 시선은 아니었으나 백성들을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은 소중한 자식을 대하듯 더없이 따사롭고 자애로웠다.

한숨을 쉬며 모로 돌아눕자 이번에는 저의 앞에 서있던 황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의 따스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황제는 경멸 가득한 음성을 숨기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좋아. 좋은 일이지.”

자꾸만 서러워지려 하는 마음일랑은 모른 척을 하고 마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몇 번이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화운은 잠을 청했다.

오늘 밤은 아주 오랜만에, 그날의 꿈을 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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