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화
파밧!
송운이 다시 나타난 곳은 독고백의 두상(頭上)이었다.
키아아아-!
환성이 괴성을 지르며 독고백의 두상을 찔러 들어갔다.
아니,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분명 가르는 느낌이 났으나 독고백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것은 독고백이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진짜는 몇 장은 더 물러나 송운에 대한 감상과 상황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하나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하던 바였다.
겨우 이러한 검에 당했다면 믿지도 않았을 터.
“아무리 내가 꼴 보기 싫어도 머리에 검이라니…… 그건 너무 끔찍하지 않느냐? 적어도 여기, 심장 정도는 찔러 줘야지.”
독고백이 자신의 심장을 쿡쿡 찌르며 말해 왔다.
까득-
송운이 이를 갈았다.
찌를 수 있었다면 진작 수백 번이고 더 찔렀을 곳이다.
그의 이기심으로 인해 너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자연의 동식물들 역시 훼손되었다.
아무리 그를 이해해 보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운은 더는 그의 말에 답하는 걸 포기했다.
입 실랑이로 심력 소모를 하고 싶진 않았다.
송운이 상단전과 중단전까지 모두 개방시켰다.
그러곤 곧바로 환성에 검강을 모았다.
파앗-!
푸르스름하면서도 밝은 빛이 터져 나오듯 번쩍하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불기둥처럼 솟아오른 그것은 족히 이 장은 되어 보이는 길이였다.
송운은 곧바로 그 거대한 것을 들고 독고백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독고백도 마냥 피하지만은 않겠다는 듯 몸을 틀며 송운을 향해 파고들었다.
캉-!
카가가각-!
독고백과 송운의 검이 서로 충돌하며 검을 주고받는다. 그로 인해 사방으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송운의 밝으면서도 차가운 성질의 내기와 독고백의 차면서도 뜨거운 성질의 내기가 충돌한 것이다.
“크으으……!”
검을 쥔 양손이 마치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검을 놓지 않으면 정말로 온몸이 타 버릴 것 같은 뜨거움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치지직- 치직-
독고백의 검을 타고 들어온 기운이 송운의 손목까지 타고 들어왔다.
그에 머리가 어지럽고 세상이 빙 도는 듯했다.
‘정신 차려, 송운!’
속으로 외친 송운이 손목에 더더욱 강하게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으아아!”
이내 밀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송운의 내기가 독고백의 그것을 밀쳐 내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두 내기의 충돌로 지면이 흔들리고 대기가 준동한다.
주변의 기운들이 멋대로 쏠리며 마구잡이로 폭주한다.
“아아- 몹시 즐겁구나, 재밌어!”
그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독고백의 입에서 환호성에 가까운 탄성이 새어 나왔다.
진정 광기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파아앗-!
머지않아 송운과 독고백의 기운이 충돌하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변에 폭발이 일었다.
퍼버버벙!
콰광!
참으로 엄청난 기파였다.
송운도 독고백도 서로 멀찍이 몸을 날렸다.
그 여파로 주변의 땅들이 모조리 파여 나갔다.
반경 십 리가 넘는 곳이 모조리 폐허로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많은 자연이 생기를 잃고 쓰러져 갔다.
마치 무언가 땅을 잔뜩 파헤쳐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쿠웨엑-!”
송운의 몸 역시 멀쩡하진 못했다.
마지막 기운이 폭발하며 송운의 몸을 헤집어 놓은 탓이다. 밀어 냈지만 결국 내부까지 한번 침투한 독고백의 내기는 꽤나 치명적이었다.
그때였다.
쩍- 쩌적-
쩡-!
“환…… 성이 깨졌어?”
피를 토해 내던 송운의 표정에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기색이 맴돌았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과 함께한, 평서란이 선물해 준 귀한 검이었다.
비록 무림의 칠대 보화에 들어갈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나 명검이었다.
한데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던 환성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난 채 허공에 흩날렸다.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그 검, 제법 좋은 검이었는데 아쉽게 됐구나. 아, 그러고 보니 운이 너. 내가 만든 시공 검을 거의 네 것처럼 만들었던데? 그건 좀 많이 놀랐었다. 설마하니 그걸 소화해 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쿡쿡.”
그러곤 그를 향해 비웃음인지 칭찬인지 모를 미소를 사뿐히 지었다. 마치 자신을 가지고 놀기라도 하는 듯 비웃는 그의 웃음이 미치도록 몸서리쳐졌다.
그의 기운이 몸을 한번 헤집고 난 후에 보인 것은 시공 검과 같은 성질의 무언가였다.
시공 검의 본 주인은 독고백이다.
그래서인지 되레 지금까지 그에게서 들은 말 중에선 가장 놀랍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공 검이 지닌 혼돈과 파괴, 그리고 어둠.
이 모든 것이 독고백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애당초 처음부터 무황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먹는 괴물과도 같은 검법을 창조해 냈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살기 위해 꿋꿋이 익혔으나, 어차피 작금의 송운에게는 필요 없었다.
저벅.
송운이 다시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났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대론 저자를 못 이겨.’
이제 송운에겐 환성도 없다.
그저 자신의 손에는 환성의 검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찌하여야 하는가.
과연 그와의 싸움을 이겨 낼 수 있을까?
환성이 있다고 한들 시공 검조차도 그에겐 먹히지 않을 것이다.
대체 무엇으로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송운의 굳은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겨우 이런 나 따위가 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이토록 나약한데……? 대체 무엇을 위해서……?’
텅- 터더덩-
송운의 손이 힘없이 펴지며 검파마저 땅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 작은 진동이 지면을 강타했다.
스스로 희망을 놓으려 하자, 세상의 고통이 송운의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곧 그의 온몸이 욱신거리며 눈앞이 컴컴해져 왔다.
그런 송운의 모습에 화가 나는 건 독고백이었다.
그의 짙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뭐냐. 설마…… 이게 다인 거야? 이건 너무 싱겁잖아. 재미없어. 날 더, 더 재밌게 만들어 주란 말이다! 송운!”
콰과광!
독고백이 분노로 치를 떨자, 하늘이 온통 검게 물들었다. 그 스스로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쿠르릉-!
뚝. 뚝.
차가운 냉기와 함께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니, 가뜩이나 생명의 온기를 잃어 가던 땅에 저주가 내린 듯 더욱더 짙은 죽음이 맴돌았다.
동시에 생기를 잃고 서 있던 송운에게 그 죽음이 다가왔다.
스스슥-
꽈악-
“컥……!”
어둠의 그림자는 곧 송운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허억…… 흐읍……!”
송운의 숨이 가빠질 무렵.
팟-!
어머니와 아버지.
송후와 송하, 평서란, 양조광, 천조회.
그 외에도 수많은 이름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중원을 부탁한다던 소천광의 목소리도 송운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래.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정신…… 차려……. 송운.”
멍하니 사라져 가던 송운의 눈빛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건 그 순간이었다.
‘그래. 어차피 처음부터 내겐 무기가 없었다.’
무기라고는 자신의 몸뚱이뿐.
꽈악-
송운이 두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애당초 각과 권법으로 시작한 무인의 길이다.
어쩌다 보니 검까지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의 무공의 시초는 각과 권이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송운의 이성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하나다.’
송운이 독고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를 향한 온갖 잡생각들이 송운의 온몸을 내리누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지독한 배신감.
한편으로는 그리움.
그러나 그를 죽여야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지금까지는 그 모든 잡다한 생각들이 정신을 흩뜨려 놓고 있었다.
하나 이제는 다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조금은 조급하던 마음을 비우고 송운은 눈앞이 아닌 저 먼 곳까지 내다보았다.
그러곤 천천히 대기의 청명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웅- 웅웅-
곧 대기에 남아 있던 맑은 기운이 곧 그의 몸을 통과하며 함께 공명한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와 같았던 것처럼 말이다.
“흐읍…….”
송운이 천천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렇게 속을 채운 숨을 굴리니 내부에서 선천지기가 응축되면서 무너졌던 몸의 균형을 맞추기 시작한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이를 독고백이 모를 리 없었다.
송운의 변화에 독고백의 입가가 오히려 더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웅웅-
공기를 타고 흐르는 대자연의 기운을 있는 힘껏 빨아들인 송운이 두 주먹과 두 발에, 절반에 가까운 선천지기가 전부 쏠렸다. 누군가 보았다면 크기만으로 압도될 정도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독고백의 새빨간 혀가 어느새 마른 입술을 축였다.
“……재밌겠네.”
우웅-
동시에 독고백의 뒤로 거대한 원형의 응축된 내기가 만들어졌다.
그를 닮아 새카맣게 어두운 농도 짙은 암흑이었다.
“후우…… 여기까지 하자. 독고백.”
고요함 속에 찰나의 순간.
둘의 신형이 맞부딪혔다.
퍼엉-!
동시에 엄청나게 응축된 그 기운이 파직거리며 밝은 불꽃이 주변에 퍼져 나갔다. 송운의 선천지기와 독고백의 내기가 부딪히며 아까와는 비견할 수 없는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번쩍!
콰르르르릉-!
세상이 붉은빛으로 삼켜지는 듯했다.
* * *
깜빡.
송운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어두운 구름이 모두 가신,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짹짹-
맑은 새소리도 들려온다.
“독고백!”
송운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은 온통 폐허였다.
새소리 역시 환청에 불과했다.
그런 그의 귓가에 아주 작고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였다.
“송…… 운…….”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삼 장 넘어 멀리에서 독고백이 보였다. 만신창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채였다.
“……독고백.”
송운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마침내 송운이 독고백의 앞에 선 순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독고백이 송운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참으로…… 재밌는…… 삶…… 이었다.”
툭-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멋대로 휘둘렀던 일무신 독고백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
일무신 독고백이 죽었다.
짧은 시간 동안 공포를 심어 주었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곧 일파만파 퍼져 나가 전 중원에 평화를 불러왔다.
무림맹에는 새 맹주로 남궁진혁이 추대되었다.
애초부터 내정되어 있던 수순이었다.
백능이 전투에 나가기 직전, 제갈염으로부터 직접 남긴 마지막 명이었기 때문이다.
맹주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이들은 대다수 힘을 잃었고, 반대할 자들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더구나 백능이 스스로 목숨까지 내던지며 지켜 낸 무림맹을 빼앗을 권리 따위는 그들에겐 더더욱 없었다.
무림맹이 다시 자리를 잡아 나가듯, 황궁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쁨으로 뒤덮였다.
황제는 궁의 곡식을 풀어 만백성을 두루 살피라 명하였고 대신들은 그 뜻을 따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보았고, 죽은 자들을 기리며 다시 살 곳을 일구기 시작했다.
몇 해 동안 수많은 상처가 할퀴고 지나갔으나, 그 자리엔 또다시 새로운 살이 돋으며 새 시대를 일궈 나갈 것이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그해 겨울이 물러가고, 몇 해를 돌고 돌아 또다시 만물이 새싹을 틔우는 봄이 찾아왔다.
* * *
“아바바-!”
“아? 가가! 현(晛)이가 아빠를 찾아요!”
“허…… 차, 참으로 날 부른 것이오?”
“현아 아. 빠. 해 보렴. 응?”
“아- 바-!”
아기는 입에 붙었는지 곧잘 여인을 따라 외쳤다.
“오오! 참으로 그러하구려!”
신기해하는 여인보다 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내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여인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들어 안았다.
짙은 눈썹에 똘망똘망한 눈을 지녀 아기임에도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여인과 사내를 반반 뚝 떼어다 닮은.
송운과 평서란의 첫째 아들.
송현이었다.
“호호, 그리도 좋으니?”
“하하, 어머니께서도 제가 처음 입을 뗐을 때 기쁘지 않으셨습니까?”
“얘는, 참. 당연한 걸 그리 물으면 어떡하니? 정 그리 궁금하면 현이 할아버지께 여쭤보렴.”
어느새 반 백발에 눈가에 주름이 진 홍예령이 슬며시 송악의 옆구리를 찔렀다.
괜스레 가만히 있던 송악의 눈이 난처해진다.
여섯 명의 시선이 동시에 모두 자신에게로 시선이 몰리자 민망한 듯했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아직도 어색한지 어느새 귓불이 붉어진 채, 헛기침을 내뱉었다.
“커, 커흠! 그거야 당연하다면서 뭘 그리 또 물으시오, 부인.”
그러자 곁에 있던 송하가 혀를 쏙 내밀며 웃는다.
벌써 삼십에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귀여움을 담당하는 듯했으나, 그녀의 배는 조금 불룩 솟아 있었다.
“헤헤- 황보 소…… 아, 아니, 가가. 우리 아빠 너무 귀여우신 거 같지 않아요?”
그런 송하의 곁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황보운룡이 서 있었다.
그는 어색한 목소리로 어색하게 말을 이어받았다.
“하…… 하하. 자, 장인어른께선 항상 젊으신 마음으로 사시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황보운룡의 곁에 서 있던 송후에게 넘어갔다.
송후는 억울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전 혼자인 것도 외로운데 다들 이리 저한테 떠넘기시다니…… 정말 너무합니다.”
송후의 한탄을 받아 준 건 송운이었다.
송운이 자신의 아들 송현을 평서란에게 다시 안긴 채, 송후의 어깨를 다독였다.
“하하! 그래. 다들 너무했습니다. 자자, 이러지들 마시고 가서 점심이나 함께하시죠.”
“자, 그럼 어서들 가서 식사하자꾸나. 간만에 식구들 모두 모였으니 밥이 더욱 맛있겠어. 호호.”
“와-! 밥이다! 얼른 가요, 가가!”
“어어? 처, 천천히 가십시오, 부인! 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식탐 많은 송하가 무거운 몸으로 뛰기 시작하자, 황보운룡이 황급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하하하!”
“호호호!”
“큼, 허허!”
그렇게 행복이 가득한 목소리가 송씨 가문 전체를 가득 메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듣던 송운의 눈가에 절로 깊은 호선이 그려진다.
유난히도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