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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66화 (266/275)

제266화

화산파를 굴복시킨 무림맹 무인들은 절반은 남아 경비를 세우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쑥대밭이 된 화산파를 어찌할지 논하기 위함이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처리하기엔 화산파는 너무도 거대한 존재였다.

최근의 행보에는 말이 많을지언정 지금껏 중원을 지켜 온 그들의 역사가 너무도 길었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화산파 덕분에 먹고살고 있었으니 그 근간을 흔들기에는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폐하, 폐하께서 내리신 명을 수행하고 돌아왔사옵니다.”

평서란을 포함한 황궁의 군사들 역시 황궁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곤 황제 앞에서 대표로 평서란이 보고를 시작했다.

“그래. 말하라.”

“폐하의 명에 따라 무림맹을 도와 화산파를 제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폐하의 소중한 백성을 잃었습니다. 그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폐하! 부족한 소신을 벌하여 주십시오.”

평서란의 목소리가 황궁을 울렸다.

이에 황제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그들은 자칫 이 나라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였느니라. 가뜩이나 흉흉했던 혈교대전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였을 텐데, 또다시 큰 전투에 내보내 짐의 마음이 참으로 좋지 못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짐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라는 바이다. 또한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전보를 울렸으니 이를 어찌 죄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짐은 너희의 공을 잊지 않고 반드시 후한 보상을 내릴 것이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한데 같이 간 송운은 어디로 간 것인가?”

황제의 질의에 서 있던 송악의 안색이 변했다.

설마, 이번에도 또 일전과 같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큰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매우 급한 일이 있어 곧바로 돌아오지 못함을 이르러, 불충을 용서해 달라 하였습니다.”

“으음…… 알겠다. 그 아이대로 연유가 있을 터. 많이 지쳤을 터인데 이만 물러가 쉬라.”

“황송하옵니다, 폐하. 하면, 소신은 이만 물러나겠나이다.”

* * *

“새아가!”

“아버님.”

황궁을 나서는 평서란을 따라온 송악이 다시 조용히 물었다.

“새아가, 운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너는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일이 조금 불안하시다며 서둘러 산서성으로 가신다고 후일을 부탁한다 하셨어요.”

평서란의 입에서 뜻밖의 지명이 튀어나오자, 송악이 놀라며 다시 되물었다.

“산서성……? 산서성이라면 어찌하여?”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파와 관련된 일 같아요. 큰일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아버님. 운 가가시라면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실 거예요.”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험난한 일을 하고 이제 막 귀환한 아이를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송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부디 그래야 할 터인데…… 그래. 알았다. 이만 집으로 가자꾸나. 너도 쉬어야지.”

“네. 아버님. 어서 가요. 저 배도 엄청 고파요.”

평서란이 자연스럽게 송악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그래, 아마 지금쯤이면 점심이 다 차려졌을 것이다.”

* * *

‘이건 뭐…… 난감하군.’

낙월추가 도착한 곳은 온통 살기로 가득 차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혈사련끼리 의견이 분열되어 정돈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월추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장 먼저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정무봉이었다.

마치 사나운 들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그의 표정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내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건방진 년이……!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 않았느냐? 냉가혜, 네년이 우리 아버지를 어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나 이미 연세가 제법 드신 분이다. 그런 분을 가지고 놀아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그런 정무봉을 더 열받게 하는 건 냉가혜의 태도였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녀는 도발에 걸려들거나 흥분을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하여 적을 살려 준단 말이냐!”

추일공이 거들었지만 이번에도 똑같았다.

“적을 앞에 두고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신세가 되었구나. 네놈들은 정녕 사내로서 쪽팔리지도 않느냐? 혈사련이 크기 위해서는 인내심도 필요한 것이거늘!”

날 선 분위기 속에서 낙월추는 송운을 바라보았다.

꽤 오래전에 봤던 얼굴인 데다 기세 역시 달라져 있어 자칫 못 알아볼 뻔하였다.

하나, 그의 몸은 정확히 상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사이 엄청나게 성장했군. 송운.’

두근두근.

점점 혈사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낙월추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몸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면서 피가 끓어오르는 걸 낙월추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의 뼈아픈 패배 이후로 송운을 이겨 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다.

한데 그럼에도 송운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이는 금방 가라앉았다. 실력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겪어 보면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실로 얼마 만에 느껴 보는 호승심이란 말인가!’

오늘이야말로 생과 사를 가르는 진정한 승부가 펼쳐지리라.

그 직감이 머릿속을 맹렬히 두드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구나!’

쌔애액-!

결국 흥분을 참지 못한 낙월추의 검이 송운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카앙!

“웬 놈이냐!”

이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혈사련이었다.

검을 날린 이가 낙월추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더욱 당황하는 눈치였다.

송운이 검을 쳐 내고선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검날이 날카롭고 검기가 섞여 피하지 못했더라면 제법 큰 상처를 입었을 터.

하나 놀란 이유는 따로 있는 듯했다.

‘검기를 이용해 검을 정확히 날렸다?’

송운의 눈빛이 처음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일반적인 것처럼 검을 쥐고 달려든 것이 아니라, 검이 마치 자신의 길을 가르듯 먼저 날아왔고 후에 낙월추의 몸이 달려들어 검로를 비틀며 파고든 것이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졌다.

이는 생전 보지 못했던 독특한 검법이었다.

“동맹을 맺으신 분들이 싸울 생각은 안 하고 서로들 다투고 있어 안쓰러운 마음에 내 직접 나섰지. 난 말로 싸우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이라…….”

“이보시오. 저들을 어찌할지는 우리의 소관이오. 그러니 물러나 계시오.”

추일공이 제법 정중하게 말했지만 낙월추는 그러한 것은 상관치 않았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손님께서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고 계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은 건가? 네놈들, 정말 상대가 누군지 잊었나 본데 이 녀석은 송운이다. 그렇지?”

낙월추의 말이 계속될수록 송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설마 너는…… 그때?”

“크큭, 이제야 기억이 나는가 보군. 그래도 날 잊지 않고 있었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송운의 얼굴에 난색이 떠올랐다.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구도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곳에서 귀마병을 이끌고 왔던 놈이구나. 하면 이곳까지 온 것도 저놈들과 함께 나를 죽이기 위함이냐? 그때 다 죽인 줄 알고 있었거늘…… 역시 아니었군.”

“호오? 절반은 맞췄고 절반은 틀렸다. 저놈들과 함께가 아니라 난 나일 뿐이다. 그저 네놈과 마저 싸움을 끝내고 싶은 것이지. 그땐 나도 내 의지로 나선 게 아니었고, 너를 놓치기까지 했었다. 하여 지금이라도 만회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이는 생각보다도 더 깊게, 얽히고설킨 관계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저자가 끼지 않은 곳이 없다.

‘설마 여기까지 그들의 손길이 뻗쳐 있을 줄이야.’

송운의 표정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대체 무엇을 꾸미는 자들이기에 개파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혈사련에까지 뿌리 깊게 박혀 있단 말인가.

“오빠, 저놈 아는 자야?”

잔뜩 긴장한 듯 보이는 송하가 송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송하야, 지금부터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알겠느냐?”

“응, 알겠어.”

송하에게 신신당부를 할 무렵 낙월추가 곽태보의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

“이 싸움은 내가 먼저다. 송운은 오래전부터 내가 찜해 놓은 자란 말이다. 네 차례는 내가 끝난 뒤다. 물론 그때까지 송운이 살아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낙월추의 기세에 짓눌린 곽태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곽태보의 눈빛이 처음으로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 나를 눈빛만으로 물러나게 해?’

물러나고 나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치욕스럽다는 듯 분노로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낙월추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이다. 비겁하게 이기고 싶지는 않다. 모두 물러나라.”

척-

“이, 이……!”

하나 더는 그 어떠한 말로도 반박할 수 없었다.

낙월추의 말에 곁을 지키듯 서 있던 귀마병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탓이다. 추일공을 비롯하여 정무봉, 그리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냉가혜마저 숨을 죽였다.

덕분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던 공손우경이 화들짝 놀랐다.

‘서, 설마! 저자도 귀마병을 움직이는 환을 먹은 것이야……? 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그 역시 휘가 전해 준 환을 먹고 난 후 귀마병을 조종할 수 있었다.

한데 혈사련과 동맹을 맺은 자가 어찌하여 귀마병을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공손우경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나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낙월추를 비롯한 휘의 존재를 깨달을 수는 없었다. 그저 둘이 같은 주군을 모시는 자들이라는 것밖에는 말이다.

이렇게 되니 되레 더 큰 궁금증에 빠져 버렸다.

하나 궁금증에 빠진 것은 비단 공손우경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송운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한데 그때, 어떤 생각이 송운의 뇌리를 쏜살같이 스쳐 지나갔다.

‘……흑야? 이렇게까지 깊숙하고 넓게 퍼져 있을 수 있는 자들은 흑야뿐이다!’

송운이 조금 더 생각이 깊어질 무렵.

낙월추의 검이 송운의 코앞으로 날아들었다.

“정신 바짝 차려라, 송운. 오늘은 기필코 네놈의 목을 따 갈 터이니!”

낙월추의 입 꼬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가 작금 내뿜는 것은 순수한 투지였다.

* * *

송운은 달려오는 낙월추를 향해 환성을 뽑아 들었다.

하나, 그의 머릿속은 온통 흑야라는 단어로 가득 찬 상태였다.

‘만일 저자가 정녕 흑야라면 사로잡아 문초를 가해 그들의 근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 흑야가 모시는 그 주군이라는 자의 정체도?’

쐐애액-!

“지금 날 상대로 한눈을 파는 것이냐? 송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낙월추가 송운을 노려보며 검을 던지듯 찔러 들어왔다.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검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머리를 틀어 송운의 품을 다시 파고들었다.

퍼억-!

촤아악-

타다닥!

송운이 낙월추의 몸통을 걷어찼다.

송운의 내력이 실린 발에 얻어맞은 낙월추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하나 곧바로 다시 뒷걸음질을 치며 자세를 바로잡더니 검을 곧추세우고 달려들었다.

“몸풀기는 이 정도로 끝내라, 송운. 더는 한눈을 팔아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승부에 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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