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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65화 (265/275)

제265화

계속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바위처럼 꿋꿋이 버티던 황보운룡의 어깨에도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정녕…… 정녕 모두 틀린 것인가……?’

남은 힘으로는 귀마병을 한 구도 막기 버거운데 열 구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전력이 발목을 세게 붙잡는다.

상대하기는커녕 죽지 않으면 선방일 지경이었다.

장명도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곳에도 이미 혈사련의 무인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갈수록 첩첩산중이구나. 우리가 당했다. 제대로 걸려들었어.’

실수에 자책하고 있을 무렵.

“모두 잡아라.”

“예!”

추일공의 명에 동시에 혈사련의 무인들이 달려들었고, 다시 싸움이 재개됐다.

채쟁-!

카가가가각!

싸움은 아까보다 더 격렬했지만, 끝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이미 공손우경이 주변에 귀마병들을 여유롭게 배치해 둔 것이다.

이제는 마치 싸움이 아니라 몰이사냥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장명도 휘하의 무인이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가주님, 이곳은 저희가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하니 다른 두 분을 이끌고 몸을 피하십시오.”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다.”

“하오나 여기 있다가는 다 같이 죽습니다! 저희는 본디 소가주님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어서 상황을 보아 빠져나가십시오!”

“어차피 이미 우리가 빠져나가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난 그렇게는……? 송하야!”

조용히 말을 주고받던 장명도의 눈에 송하의 뒤로 날아오는 귀마병의 모습에 성급히 몸을 날렸다.

하나 황보운룡이 조금 더 빨랐다.

푹-

촤악-!

“끄윽……!”

“황보 소협-!”

찰나의 순간, 송하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귀마병의 날카로운 손톱을 황보운룡이 막아서면서 정확하게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이때다 싶었는지 코앞까지 다가온 곽태보의 검날이 피를 토해 내고 있는 황보운룡의 목을 겨누었다.

“난 말이야, 네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켜라. 곱게 비키면 네가 그토록 지키려 하는 계집년의 목숨만큼은 살려 주도록 하지. 아, 물론 내 밤 시중을 들 경우에 말이야. 큭큭.”

순간, 곽태보의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쿨럭…… 닥쳐라! 너 따위에게 송 소저를 넘길 성싶으냐? 이런…… 미친 자가! 크윽!”

그런 황보운룡을 무시하며 곽태보가 점점 송하에게로 다가갔다.

“하아, 이건 넘기는 게 아니라니까. 상납하는 거다. 이미 너희는 모두 죽은 목숨이지만, 혹시 알아? 그냥 계집만 잘 넘기면…….”

하나 그렇다고 송하 역시 만만치 않았다.

“퉤! 개자식…… 꺼져!”

어느덧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곽태보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다.

스릉-!

“이년이 감히 어디라고!”

송하의 행동에 곁에 있던 무인 하나가 검을 빼 들었다. 당장이라도 송하의 목을 노릴 것 같은 흉흉한 살기였다.

“모두 멈춰라.”

한창 긴장이 커질 때, 누군가 조용히 읊조리자 주변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냉가혜였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던 냉가혜가 직접 나선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면 네놈들 모두 당장 죽이지는 않겠다.”

추일공과 정무봉, 그리고 곽태보까지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순간에도 냉가혜는 멈추지 않았다.

“그걸 우리가 어찌 믿느냐?”

장명도가 으르렁거리며 말했지만 냉가혜는 여전히 침착하며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나 냉가혜의 이름 석 자, 그리고 우리 혈사련의 명예를 걸고 직접 약조하지.”

“……누님?”

“냉가혜! 이리 중요한 순간에도 네 멋대로 결정하게 놔둘 것 같으냐? 이건 우리 혈사련 모두의 일이다.”

계속되는 냉가혜의 언행에 정무봉이 눈알을 부라리며 분노를 표출했으나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되레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무봉, 네놈은 언제까지 머리를 쓰지 않을 것이냐? 놔두면 놔두는 대로 다 쓸모가 있을 놈들이다. 상대와 거래를 하려면 상대보다 좋은 패를 쥐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저 녀석들이 송운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필히 운양상단의 사람들일 테지. 그렇다면 저들을 더더욱 살려 두어야 한다. 죽일지 말지는 협상을 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아.”

“그런 협상 따위에 누가 동의했느냐! 냉가혜, 우리를 죽일 작정으로 들어온 놈들이다. 그럼에도 살려 둔다면 우리가 우습게 보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냐! 협상 같은 얄팍한 수작은 더러운 정파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나 그런 냉가혜의 말이 오히려 정무봉을 더 자극했는지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추일공 역시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자신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있는 혈사련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쾌재 아닌 쾌재를 부른 것은 다름 아닌 황보운룡 일행이었다.

‘사파는 다들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니, 어쩌면 혈사련이 이곳에서 자멸될지도…….’

냉가혜의 독선을 참지 못한 정무봉이 검을 뽑아드는 순간.

척-!

귀마병 열 구가 정무봉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미 그들의 위용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정무봉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슬쩍 뒤로 물러섰다.

얼핏 고개를 돌려보니 공손우경이 어느새 냉가혜의 곁으로 가 있었다.

‘큭, 누님은 대체 언제 또 저놈을 끌어들인 건지.’

그러자 곽태보가 이번엔 한 방 먹었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된다면 혈사련의 주도권은 련주가 아닌 냉가혜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공손우경 이놈! 당장 이것들을 비키게 하지 못하겠느냐!”

정무봉이 고래고래 소리를 쳤으나 답은 공손우경이 아닌 냉가혜에게서 들려왔다.

“우리 혈사련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다. 한데 뒷골목 왈패들처럼 무식하게 죽이기만 해서야 무엇을 얻을 수 있지? 최대한 많은 패를 쥐고,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명분을 갖출수록 좋다. 그건 내 아버지께서도, 그리고 련주님께서도 이미 허락한 일이시다.”

냉가혜의 논리적인 말에 혈사련의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은 순간, 누군가 냉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건데?”

곁에서 냉가혜를 지키고 있던 무인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외쳤다.

“어느 누가 감히 소가주께서 말씀하시는데 토를 다느냐!”

이번에도 역시 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나다. 너희야말로 누구 마음대로 감히 내 동생과 친우들을 가둬 두겠다 말겠다 지껄이는 거지?”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금 장명도와 황보운룡, 그리고 송하의 귓전을 울렸다.

第六章. 구출

“오, 오빠!”

송하가 가장 먼저 외쳤고, 뒤로 황보운룡과 장명도의 눈이 동시에 솔방울만 하게 커졌다.

놀란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장내의 모든 사람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공손우경이었다.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매일 꾸는 꿈에서조차 선명하게 그려지던 그 얼굴을 말이다.

공손우경이 바라보고 있는 송운의 얼굴에는 작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저, 저, 저자가 대체 어찌 이곳에……?! 분명 화산파를 치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끼어들기 전까지 등장한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송운의 기척은 은밀했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그때, 어느새 송운의 발걸음은 송하의 곁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송하의 손을 부드럽게 쥐며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좀 늦었다. 미안하구나. 최대한 빠르게 온 것인데……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응. 화산파 일은? 다 끝난 거야? 난…… 난 정말로 괜찮아. 근데 황보 소협…… 황보 소협이…….”

송하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송운의 눈에 황보운룡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옷에 구멍이 뚫리고 붉게 물든 것이 제법 큰 상처 같았다. 다행히 혈을 짚어 지혈한 덕에 피는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황보운룡은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전 괜찮습니…… 쿨럭!”

“황보 소협께서는 조금 쉬고 계십시오. 이곳은 제가 마무리할 테니.”

황보운룡의 상태를 마저 확인한 송운이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주변엔 온통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이자들이 혈사련이라고 했지. 지금 뿌리를 뽑지 않으면 훗날 귀찮은 존재가 될 것은 명확한 사실. 오늘 이 자리에서 전부 죽여야 한다.’

더구나 송하를 탐낸 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금지옥엽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보다 소중하게 키워 온 동생이 아닌가.

여러모로 혈사련을 용서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송운이라, 송운……. 진짜 대단한 고수인지, 아니면 소문만 무성한 것인지 궁금하군.”

곽태보와 송운의 눈이 마주쳤다.

* * *

똑똑!

누군가 다급히 낙월추의 방문을 두드렸다.

“대주님.”

“끄응……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에 이리 급한 것이냐?”

자고 있었는지 나른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단잠을 깨워 귀찮다는 듯 휘적거렸다.

“그것이…… 송운이 직접 이곳에 온 것 같습니다.”

“방금 뭐라 했느냐? 송운이 직접?”

“예. 대주님. 양측이 서로 대치 중이라 합니다.”

수하의 말에 낙월추의 얼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 그려졌다.

운양상단에서 혈사련을 노리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송운은 분명 그 자리에 없다고 들었다.

하여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지켜보고 있던 것인데 송운이 올 줄이야.

더구나 워낙 기척이 없었던 지라 여기까지 잠입하였음에도 공이추 역시 알지 못했던 것이다.

‘화산파 사냥에 나섰다더니 생각보다 일찍 끝났나 보군. 하기야 혈교의 교주조차 그리 쉽게 무너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가? 일이 점점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공이추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물었다.

“그래. 그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누구라 하더냐?”

“정무봉과 추일공, 곽태보와 냉가혜, 그리고 공손우경이 이끄는 귀마병 오십 구, 백여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집결해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라면 얼마 가지 않아 끝나겠군.”

“예……? 하오나 귀마병만 오십입니다. 거기에 가주급 무인이 넷이고요. 더구나 안전을 챙겨야 할 이들도 있으니 움직임이 둔해지지 않겠습니까? 잘하면 이곳에서 송운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쯧, 한 몇 년 박혀 있더니 감이 많이 죽은 것이냐? 송운은 혈마도 죽인 자다. 그들 가지곤 어림도 없을 거다. 앞장서라. 내가 직접 갈 것이다.”

오늘 어쩌면 송운과 낙월추 중 한 명은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날을 얼마나 고대해 왔던가?

“대주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수하의 물음에 연신 묘하게 웃고 있던 낙월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위기를 알면서도 가만히 손가락이나 빨고 앉아 있다면 동맹을 맺은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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