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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55화 (255/275)

제255화

이젠 정말 춥다고 느껴질 만큼의 초겨울 바람이 불 무렵. 치열했던 지난 몇 달간을 치유라도 하려는 듯 적당히 져 가는 오후의 햇볕이 세상을 따사로이 감싸 안았다.

그건 송씨 가문의 장원에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어우러지는 가족의 포근함은 일석이조였다.

송운이 집에 돌아온 지 이제 삼 주야째였다.

“짠! 오늘 저녁은 둥포러우와 청경채 볶음이에요.”

홍예령이 갓 지은 쌀밥과 함께 요리를 들고나왔다.

하얀 밥은 뭉게뭉게 수증기를 내뿜으며 윤기가 좌르르 흘렀고, 둥포러우의 진한 색이 시야를 자극시키고 깊은 향이 모두의 코끝을 자극해 침샘이 고이게 만들었다.

거기에 얹어진 청경채 볶음은 한 손 더 거들며 어서 먹어 달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색과 향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홍예령의 음식 솜씨는 어지간한 숙수들 못지않게 뛰어났기에 맛 역시도 뛰어날 터였다.

물론 매일 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맛있는 음식이다.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송악이 말했다.

“오늘 저녁도 정말 맛있겠구려, 부인. 만드느라 고생했소.”

“후후. 별말씀을요, 가가. 가가야말로 오늘 하루도 일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와……! 정말 맛있겠네요. 어머님.”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어머니.”

“어머, 우리 사랑스러운 아드님들도, 그리고 새아가도 모두 고맙구나. 자자, 어서 식사들 하자꾸나. 음식 앞에 두고 딴짓하면 못 쓴단다. 어서 드세요, 가가. 따뜻할 때 먹어야 정말 맛있어요. 아이들도 배고프겠어요.”

“허허. 암, 그렇지. 그럼 먹어 볼까?”

말을 마친 송악이 숟가락을 가져가 둥포러우의 국물을 조금 떴다.

그리고 입에 가져다 넣는 순간.

후릅!

짜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국물은 입안에 감칠맛을 더해 준다.

“오오! 역시 부인의 솜씨는 변칠 않는군.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늘어가는 느낌이라오. 참으로 맛있구려.”

이제 겨우 국물만 맛을 봤음에도 송악의 표정이 환해졌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송악이 숟가락을 들자 온 가족의 식사 역시 시작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어머님.”

송운과 송후. 그리고 평서란이 차례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먹기 시작했다.

“후우……!”

뜨거운 밥을 입으로 호호 식히며 밥을 먹기 전에 먼저 돼지고기를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선 온갖 풍미가 펼쳐졌다.

‘아……! 정말 맛있다.’

적절히 가미된 돼지의 비곗살과 살코기는 서로 입속에서 버무려져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거기에 뜨거운 밥과 적당히 아삭하게 씹히는 청경채 볶음이 함께 입 속에서 어우러지는 맛은 더더욱 일품이었다. 이미 충분히 느끼하지 않은 돼지고기지만, 야채와 고기의 조합은 정말로 훌륭했다.

그뿐이랴?

어머니 홍예령의 가족을 향한 애정까지 녹아들었기에 더더욱 훌륭한 요리이리라!

‘정말 언제 먹어도 참 맛있는 밥이구나.’

아마 평생 죽을 때까지 이 맛은 잊지 못할 터다.

그렇게 한번 시작된 숟가락질은 곧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화 소리로 시끌벅적했던 식탁이 먹는 소리로 가득 들어찼다.

그 모든 게 멈추는 건 식탁에 놓인 음식이 모두 사라진 순간이었다.

달그락.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아, 정말 맛있네요. 어머님. 다음에 꼭 요리를 제대로 배워 보고 싶어요.”

“호호, 이렇게 맛있게 먹어 주니 참으로 좋구나. 새아가, 네겐 나중에 특별히 요리 비법을 알려 주도록 할게. 그나저나 송하도 함께 있었으면 더 맛있게 먹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긴 하구나.”

송운과 송후, 평서란과 송악 모두가 홍예령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홍예령의 말처럼 항상 조그마한 몸집에 먹는 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먹성을 보여 줬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활기차고 먹는 걸 밝히는 송하가 있는 밥상은 늘 두 배는 더 입맛이 돌곤 했었다.

“운아. 그러고 보니 송하는 언제쯤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더냐?”

송하가 운양 상단에 있다는 소식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소식이다.

하나, 운양 상단과 직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송운뿐이었기에 가족들 모두의 고개는 곧 송운에게로 쏠렸다.

그것은 곧 온 가족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 시선을 느낀 송운의 얼굴에 아주 찰나의 순간, 난감한 표정이 머물렀다 사라졌다.

최대한 겉으로 태를 내고 있지 않지만, 분명 송악과 홍예령의 표정에 걱정이 서리는 것을 몇 번 목격했던 것이다. 아무리 송하가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지만, 부모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호호백발이 되더라도 평생 아이일 터.

더군다나 송하는 아무래도 여식인지라 그 걱정은 더할 것이 뻔했다.

워낙 험난한 세상이 아니던가?

하나 송운이 받은 소식은 그 역시도 참으로 난감한 것이었다.

‘으음. 요 녀석, 기어코 일을 벌였구나.’

송하가 부득불 우겨 사파가 있는 곳으로 직접 나아갔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조광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송운도 송하의 부탁을 쉽사리 거절하기 힘든데, 양조광이라고 달랐을 리는 없으니.

물론 황보운룡과 그 외로도 조총과 적돈이 곁에 있다고는 했다. 하나 이를 곧이곧대로 송악과 홍예령에게 말했다가는 당장 두 분 다 뒷골을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특히 마음 여린 홍예령은 더더욱.

송운 역시 황보운룡의 실력을 어느 정도 믿긴 하나, 아무래도 친동생의 일이다 보니 걱정이 태산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송운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오늘 밤 곧장 송하가 있는 곳으로 향하려고 했다. 한데 바로 오늘, 황궁으로부터 명을 받는 바람에 일정이 무산되었다.

내일 아침 평서란을 포함한 몇몇 이들과 함께 무림맹 측의 화산파 소탕 작전에 참여하라는 명이었다.

황궁의 명은 곧 황제의 명인만큼 거절을 할 수 있는 것도, 미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다행이라면 아직까지 소림사로부터도 큰 기별이 없는 걸 보면 사파가 그리 크게 견제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나마 그것이 송운의 마음을 가라앉히게 해 줄 뿐.

해서 자신이 갈 수 없는 상황이니, 더욱 유심히 지켜봐 달라는 서신을 다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송운으로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송운이 속으로 잠시 숨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송악과 홍예령, 그리고 송후의 관심이 급격히 송운에게로 쏠렸다.

“음…… 어제 받은 서신에 의하면 운양 상단에 좀 더 머물면서 무공 수련도 더 하고 세상에 대한 견식을 더 넓히고 싶다고 합니다. 어차피 조광이도 있고, 천조회도 모두 그곳에 함께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시지요. 어머니, 아버지.”

송운의 말에 곧 송악이 고개를 주억였다.

다 먹은 그릇을 치우는 것만큼은 시녀가 하도록 놔두라는 송악의 말에 잠시 앉아 있던 홍예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흠. 그래, 네가 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네 어미가 걱정을 하니 물어본 것뿐이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너도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할 터인데, 우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둘 다 어서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아직은 괜찮습니다.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겠습니다.”

송운이 괜찮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송악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다. 대사를 치르러 나가는 길인데 아비로서 어찌 붙잡고 있겠느냐.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거라.”

계속되는 송악의 말에 송운이 어찌할지 난감해하고 있자, 평서란이 그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그러자 송운과 평서란의 눈빛이 서로 맞닿았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말씀 들으세요. 그게 맞는 거예요.’

평서란은 직접 말로 하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될까?’

‘그럼요. 어머님 아버님께서도 마음 편치 않으실 텐데, 조금이라도 더 쉬고 나가는 모습 보여 드려요.’

서로의 눈빛 교환이 끝나고 난 후, 송운이 결국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알겠습니다.”

“저희 먼저 들어가서 죄송해요.”

“아니다. 먼 길 떠나기 전, 집에선 푹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

평서란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일으켰다.

“아버님. 어머님. 그럼 들어가 볼게요. 쉬셔요.”

“그래그래. 푹 쉬렴.”

홍예령이 평서란을 향해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 * *

푸드득!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실 무렵.

나무 위에서 잘 자고 있던 송하의 코끝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새는 코끝에서부터 마치 깨우려는 듯 그녀의 몸을 사뿐사뿐 밟으며 걸어 다녔다.

“우우…… 알겠어. 알았다구우…….”

덕분에 깊은 잠에서 깬 송하가 눈을 비비며 햇빛에 익숙해진 후, 곧바로 새의 발끝에 묶인 서신을 풀었다.

파닥!

그러자 얌전히 송하의 곁에 붙어 있던 작은 새는 힘찬 날갯짓으로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무슨 내용입니까?”

이미 일찍 일어난 듯 보이는 황보운룡이 송하의 곁으로 다가왔다. 골똘히 글을 읽던 송하는 곧 잠이 번뜩 깼는지 눈의 동공이 단숨에 커졌다. 그러고선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를 것의 기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함축하자면 오빠는 여기로 못 온대요.”

송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황보운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리 오래 알지는 않았지만, 황보운룡이 아는 송운은 결코 자신의 혈육을 위험한 곳에 혼자 내버려 둘 위인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입니까? 송 소협께서 오지 않으신다는 게?”

황보운룡의 말에 믿기지 않는다는 어투가 강했는지 송하가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에에! 내가 설마 그런 중대한 사항으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아무리 내가 철딱서니가 없다고 해도, 생사가 걸린 일에서는 절대로 농담 안 한다고요. 휴…… 곧바로 이곳으로 오려 했는데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서 다른 곳으로 파견을 나가야 한대요.”

생각보다 격한 송하의 반응에 황보운룡이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었다.

“음…… 그럼 우린 앞으로 어찌하면 된다고 합니까?”

“사파는 우리의 힘으로 처리해야 한다는데요?”

“……사실입니까?”

옛 혈사련이 주축이 되어 다시 활개를 친다고 하여 제법 걱정이 컸으나, 그간 그들이 지켜봐 온 사파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아마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구축하느라 힘을 분산시킨 것일 터였다.

하나 그렇다고 한들 사파는 사파다.

그들이 다시 세력을 일으키려 한 데에는 분명 무언가 믿을 만한 것이 있기에 움직인 것일 터.

실제로 혈교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서야 몇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가?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황보운룡의 귓가에 송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대신 곧 이쪽으로 지원군을 보내 준다고 쓰여 있어요. 믿음직한 사람으로요.”

“그게 누굽니까?”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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