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인 게냐!”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했던 양의문이 소리를 내질렀다. 하나, 그도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곽, 곽철우가 왔습니다.”
“……뭐라? 곽철우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에 눈을 게슴츠레 뜬 양의문이 되물었다.
무림맹에서 있는 채로 발각되었을 테니 당연히 죽거나 혹은 포로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이다.
그랬던 곽철우의 급작스러운 등장은 당연히 놀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거참 희한하군……. 상태는 어떠하더냐?”
“생각보다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번잡한 상황 속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상황인지라, 뭐라 해명할 새도 없이 쫓기다 간신히 살아 나왔다 합니다. 어찌할까요?”
말이야 하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작금과 같은 상황에 무림맹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 아니던가.
더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이는 곽철우의 사숙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주변에 있는 장로들의 표정은 탐탁지 않아 보였다.
‘적진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놈이라…….’
양의문 또한 장로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가 후기지수라 불리며 나이에 비해 굉장히 높은 실력을 지닌 건 사실이나, 상황이 과하지 않은가.
마치 곽철우의 대리인처럼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이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미덥지 않긴 하나, 손 하나 아쉬울 상황에 확인도 해 보지 않고 자기 식구를 내던지는 것도 그다지 좋지 못한 그림일 테니.
“쯧, 말이야 그렇게 못 할까. 데려와 보거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장문인.”
잠시 후.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곽철우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군데군데 옷깃이 찢어진 건 기본이고, 얼굴과 머리엔 딱딱하게 굳은 검은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이곳에 모여 있던 장로들 역시 모두 곽철우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린 채였다.
어찌 보면 무림맹 입장에서는 곽철우 역시 화산파의 사람이니 당연히 그를 해하려 했을 터다.
‘한데 어딘지 모르게 묘한 괴리감이 느껴진단 말이지…….’
양의문이 자신의 수염을 쓱 훑고 있자, 곽철우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모습조차 불편해 보이는 탓에 양의문의 마음이 덩달아 불편해졌다.
이윽고 메마른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소신 곽철우. 장문인을 뵙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대화는 형식적이었고, 짧았다.
딱. 딱.
양의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의자 팔걸이를 계속해서 내려찍었다. 그 소리에 맞춰 분위기는 점점 더 긴장감이 고조되고 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데, 내가 어찌 네놈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
곽철우에게 자신을 변론해 보라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 말에 곽철우의 동공이 아주 잠시 흔들렸다. 짧았지만, 양의문 외 다른 장로들은 그것을 읽어 냈다.
배신을 당한 자의 눈빛이다.
“……저에게는 일체 한마디 언질조차 주지 않으셨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려 왔다.
묘하게 흥분한 듯하지만, 억지로 가라앉히려는 노력이 얼핏 비쳤다.
“그랬지. 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무림맹에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었다. 또한 그편이 네놈의 마음도 더 편했겠지.”
“아무리 그러신다 한들, 이건 너무 잔혹하시지 않습니까? 덕분에 그 적진에서 저는 죽다 살아 돌아와야 했습니다! 쿨럭!”
과한 감정을 쏟아 낸 탓인지 그가 거친 기침을 뱉어 냈다.
이제는 완전한 분노다.
평소 곽철우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 생사를 오가는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에게 이성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그것도 생명이 오가는 진실을 감춘 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양의문의 눈썹이 한번 꿈틀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곽철우를 정면에서 맞받아치고 있었다.
양의문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우리 화산파에 들어와 키워진 지 어언 이십 년이 흘렀다. 네 성격 하나 파악하지 못했을 우리가 아니었지.”
“화산파가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퍼지고 난 후, 곧장 저는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아주 약간의 조언이라도 해 주셨다면…… 이 정도까지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는 분노도, 배신을 당한 자의 고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상처받은 짐승의 그것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못 했을 감정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들만이 그런 곽철우의 모습을 안타깝게 보고 있을 뿐, 누구 하나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때.
스릉-
“자, 장문인!”
양의문이 검첨을 곽철우의 결후 바로 앞까지 들이댄 것이다. 겨눈 검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양의문의 온몸에선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기는 전부 한곳. 곽철우를 향해 있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곽철우의 사숙, 장승표(張乘豹)가 외쳤다.
곽철우의 스승이자 그의 사형이었던 양의조가 죽기 직전 그를 끝까지 돌봐 주겠다며 약조했었기에 더더욱 급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놀란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곽철우를 이곳까지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던 장로들마저도 그의 돌발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찌 되었건 그는 화산파의 미래인 촉망받던 인재가 아니던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올 거라는 예측을 하지 못한 탓이다. 날카롭게 벼린 검은 당장이라도 곽철우의 뼈와 근육을 뚫고 목숨을 취할 것처럼 예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나, 정작 당사자인 곽철우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처럼 그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그래도 그 더러운 소굴 속에서 잘도 살아 돌아왔구나.”
“죽이시려거든 죽이십시오. 어차피 화산파에서 거두지 않으셨다면 이미 오래전 죽었을 몸입니다. 이제 와서 목숨을 거두신다면 그에 응하겠습니다. 저라도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의심했을 테니까요.”
“날 원망하진 않느냐?”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곽철우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만큼 덤덤했고, 두 동공은 마치 잔잔한 호숫가 같았다.
눈앞에 닥친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이토록 의연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은 중이라고 해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터.
그것도 자신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뭔 일을 해도 해낼 놈이다.
양의조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본 것이다.
‘……무서운 녀석 같으니라고.’
탁.
“형님이 살아 계셨다면 네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것을……. 쯧. 우선 들어가 쉬어라.”
마침내 양의문이 검과 함께 살기도 거두어들였다.
“후읍……!”
“……파하.”
동시에 장로들 모두 숨 막힐 듯 갑갑했던 공기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장문인.”
“감사할 것 없다. 내가 널 들인 걸 후회하게 한다면 그날은 가차 없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테니.”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일어나거라, 철우야.”
“……예. 사숙.”
* * *
“대체 ……우물우물. 그들이…… 누굴까요.”
송하는 앉은 채로 눈앞에 놓인 잘 익은 토끼 고기를 뜯고 씹으면서도 쉴 새 없이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굳이 객잔을 두고서 야외에 있는 연유는 아무래도 이곳이 산서성이기 때문이다.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는 만큼 놈들도 필히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을 터.
어디서 어떻게 누가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르니, 대놓고 돌아다니기보다는 한적한 숲길로 들어서 끼니를 때우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미 지난 여정으로 인해 서로의 손발이 잘 맞는 둘은 척하면 척이었다.
마지막 남은 토끼의 가죽을 다 벗긴 황보운룡이 송하를 향해 건네자, 송하가 신난 표정으로 긴 쇠꼬챙이에 쑥 꽂아 넣었다.
송하가 맛있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보이는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황보운룡이 슬쩍 미소 지었다.
“글쎄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아마도 당금 손발이 간질거리고 있을 사파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겁니다.”
“역시 그렇겠죠? 아직 전서구가 오려면 조금 더 걸릴 거 같은데…… 아, 황보 소협. 이거 먹어요.”
송하가 먹고 있던 토끼 고기 반절을 불쑥 내밀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짐승의 냄새는 제법 맛이 있어 보였지만, 황보운룡은 송하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절했다.
“전 괜찮습니다. 송 소저 마저 드시죠.”
“에……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까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있잖아요. 나만 돼지처럼 계속 먹고 있다고요. 이거 나 혼자 다 못 먹어요. 알잖아요?”
별다른 도구 없이 구워 낸 토끼 구이인지라 불에 그슬린 것들을 입에 잔뜩 묻힌 송하의 말은 썩 신빙성이 없는 듯했다.
‘큼…… 아무래도 다 먹을 것 같은데.’
황보운룡이 속으로 내뱉지 못할 말을 삼켰다.
예전부터 의문이긴 했지만 저 가녀린 몸에 뭐가 이리도 많이 들어가는지, 송하는 늘 일반 여인들이 먹는 것의 배는 먹었다.
즉, 저기 놓여 있는 불쌍한 토끼 세 마리는 모두 송하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 사실로 말하기에는 황보운룡의 용기가 부족했다.
만일 이 말을 했다면 분명 송하의 작은 손바닥이 자신의 등짝을 내려쳤을 테니까. 이미 일전에 몇 번 입을 잘못 놀린 죄로 맞아 본 경험이 있는 황보운룡으로서는 절대적으로 사양이었다.
송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다.
“머리를 굴려야 할 땐 배 속이 비어 있는 쪽이 훨씬 더 편합니다. 생각을 마저 마치고 송 소저가 남기면 그때 먹으면 되겠군요.”
황보운룡의 말에 송하가 볼에 바람을 넣고선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그렇지……. 공짜로 일하는데 밥도 못 먹으면 서럽잖아요? 황보 소협은 사람이 살려고 먹는 줄 알아요? 틀렸어요! 먹으려고 사는 거라고요.”
송하는 솔직하다.
여인들이 흔히 하는 내숭 같은 거라곤 일체 거리가 먼 여인.
‘귀엽구나.’
그게 송하의 매력이었다.
처음엔 일부러 사내 행세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꾸밈이 없지만, 그 꾸밈없는 모습조차 예쁜 여인이다.
황보운룡은 빤히 송하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시 든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갑작스런 황보운룡의 모습에 송하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한 마리의 사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왜,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한 거예요? 아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그런 송하의 모습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황보운룡이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그슬린 게 좀 묻었군요.”
“꺅! 그런 걸 왜 이제야 말해 줘요? 일부러 묻힌 건 아니에요, 알았죠?”
민망했는지 송하가 크게 소리쳤다.
‘……아.’
순간, 황보운룡이 송하의 얼굴로 향하려던 손을 거두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