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51화 (251/275)

제251화

第一章. 경시(更始)

고요한 장원 안.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지붕 위에 나란히 착지했다. 얼굴과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러싼 탓에 얼굴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두 그림자는 주변을 한참 살펴보더니 이내 쥐새끼처럼 벽 틈 사이로 최대한 파고들었다.

“저…….”

“쉿- 지켜만 보는 겁니다.”

두 그림자 중 한 명이 입을 막았다.

그들 시야의 끝에는 처마 아래로 경비병으로 보이는 두 사내가 지나가고 있었다.

신장이 큰 사내 한 명과 덩치가 우락부락한 사내 한 명이었다.

저벅저벅.

점점 두 그림자가 있는 쪽으로 가까워질 무렵, 몰래 잠입한 만큼 아주 작고 여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로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말이다.

“……만약 놈들이 먼저 우릴 치면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정세만 확인하라 하셨으니 싸워선 안 됩니다.”

두 그림자는 바로 황보운룡과 송하였다.

송하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원래라면 이 자리에 조총과 적돈이 있어야 했지만, 그들은 다른 쪽으로 손을 보태기 위해 황보운룡, 송하와 서로 자리를 바꾼 것이었다.

황보운룡과 송하는 더욱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적진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온몸이 근질거리긴 했지만, 여기서 소란을 일으켜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송하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숨을 죽이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신장이 큰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구먼.”

“그러게 말이야. 하긴,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이 시간까지 누가 얼마나 돌아다니겠어?”

“낄낄! 자네랑 내가 지금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래 봤자 이미 혈교는 다 죽은 놈들인데 말이야. 겁쟁이들 투성이지. 그 덕분에 우리의 세상처럼 누려 볼 수 있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에잉, 하나 아직 공손욱인가 뭐신가 하는 놈은 안 잡혔다며? 강시를 조종하는 놈이니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

덩치 큰 사내의 말에 신장이 큰 사내가 동조하는 듯했다.

“뭐, 그것도 그렇긴 하다만은…… 아무튼 오늘 내일로 그자들이 올 거라고 하더군.”

송하와 황보운룡의 눈빛이 동시에 마주쳤다.

‘그자들?’

‘설마?’

하나 그 이상의 정보는 더 들을 수 없었다.

둘의 경비 근무가 끝났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우리에게 손을 보탠다고 얼마나 차이가 생길까가 의문이군.”

“그거야 높으신 분들이 다 알아서 할 텐데 뭔 걱정이야? 이쪽도 다 돈 것 같네. 혹시 누가 아나? 강시가 나타날지.”

“허, 못 하는 소리가 없구만? 재수 없는 소리 말고 들어가자고.”

* * *

태원상가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전 장주의 장례식 역시 어제 끝이 났습니다.

다른 특이 사항은 내일 중 누군가가 태원상가를 방문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진 점이 없으나, 알아내는 대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룡 -

아침부터 날아든 전령조의 서신에 양조광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룡이라는 글씨가 진하게 새겨져 있는 걸 보아 황보운룡의 것이리라.

“설마하니 아버지의 장례조차 이렇게 속전속결로 끝내 버릴 줄이야…….”

양조광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서신을 꾸겼다.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하게 떠오르는 아버지와 몇 해 전 송운이 직접 지어 줬던 영약을 먹어 몸이 나으신 어머니를 떠올리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그다.

한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자신의 욕심이 최우선이라니.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소식은 하나 더 양조광을 찾아왔다.

쾅-!

그의 서재를 이리 과격하게 드나들 이는 단 한 명뿐이다.

“강아, 그리 문을 여닫으면 문이 부서진다 하지…….”

조금은 엄한 목소리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내뱉으려던 양조광의 입이 들려온 소식으로 인해 절로 막혔다.

“단주님! 운 공자님께서 돌아오셨답니다!”

“……그게 사실이냐?”

“예! 두 시진 전에 황궁에 막 도착하셨다 합니다!”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야. 하아…….”

털썩.

“단주님!”

그 소식에 양조광의 양다리가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위강이 부축하려 들었지만 양조광이 거절했다.

“나는 괜찮다. 잘된 일이구나. 하나 기별 한 통 없이 이리 오시다니 참으로 너무하시구나.”

하나 양조광의 안면은 그가 한 말과는 달리 웃음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 * *

“아버지. 어머니. 장남 송운.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마당에 선 송운과 평서란이 송악과 홍예령이 있을 집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곤 일어나 집 안을 한번 쓱 훑었다.

집을 나선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집은 포근했다.

‘드디어 다시 돌아왔구나.’

황궁의 사람으로서 나갔던 것이기 때문에, 송운은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황궁에 들러 황제에게 먼저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송악과 송운이 마주했을 때도, 눈으로만 인사를 전하기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대전에서의 시간이 마치 억겁처럼 느껴졌다.

해서 최대한 빨리 황제에게 보고를 끝마치고선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송운의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자, 홍예령이 집에서 하던 바느질을 멈추고 그대로 달려 나와 송운을 와락 끌어안았다.

“운아.”

“어머니…….”

나이를 이렇게 먹었음에도 안긴 어머니의 품은 그 어떤 침상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어릴 적 맡던 그 냄새가 그대로 품에 배어 있었다.

“그래, 운아. 내 아들 운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주어 참으로 고맙구나. 혈교와의 대전이 끝난 지 제법 지났는데도 네 소식이 들리지 않아 걱정 많이 했단다.”

말을 마친 홍예령이 송운의 몸 곳곳을 살펴보았다.

혹여나 다치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한 행동이었다. 하나 걱정과는 달리 어느 곳 하나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홍예령은 항상 뭐든지 솔직했다.

송악이 무엇이든 감정을 최대한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삼킨다면, 홍예령은 당금처럼 솔직하게 감정을 말했다. 그 성격을 빼닮아 송하 역시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송악 역시 홍예령 못지않은 걱정을 했을 테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홍예령의 마음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걱정시켜 드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송운은 제법 주름진 어머니의 손을 맞잡았다.

“아니야. 되었다.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돌아왔잖니? 몇 번씩이나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주어 이 어미는 너무 고맙고 기쁘단다.”

홍예령과의 감격적인 재회가 끝나자, 송후 역시 송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으신지요?”

“그래. 없다. 너는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

“예. 제 걱정은 마십시오. 아직 한창일 때가 아닙니까?”

형제끼리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송악과 홍예령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부모 자식의 정도 중요하지만, 형제지간의 정 역시 소중한 것이다. 이리 반듯하게 잘 자라 준 아들들을 보고 있으니 그저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데 송하는 어디 있습니까?”

송운이 송하를 찾자 송후가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송후가 그러한 미소를 보낼 때는 연유가 있는 법.

“……설마?”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었다.

답은 송악에게서 들려왔다.

“아직 운양상단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배울 게 많다고 하더구나. 워낙 어릴 적부터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이기도 하고, 조광이가 곁에 있으니 굳이 부르지 않았던 것인데……. 네가 오늘 돌아올 줄 알았다면 불렀을 것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송악조차 아쉬움을 내비쳤다. 송운은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꺼낸 듯하여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갑자기 온 탓이 크지요. 아버지, 어머니. 우선 들어가서 마저 대화를 나누시죠. 이젠 날이 제법 쌀쌀합니다.”

송운의 말에 홍예령이 맞장구쳤다.

“어머, 그러고 보니 새아가도 있는데 일단 들어가서 대화를 이어 가자꾸나. 가가, 어서 들어가요. 새아가도 큰일 치르느라 고생했어.”

“별말씀을요, 어머님.”

홍예령이 평서란을 안았다.

아주 오랜만에 송씨 가문의 집안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 * *

“장문인. 송운 그자가 북경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드디어 갔다 하더냐?”

염의문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드러누워 있던 자세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예. 장문인.”

“확실한 게지?”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을 고합니까? 확실한 정보통이니 믿으시지요.”

여러 번의 추궁 끝에 확신을 가진 염의문의 두 눈이 번뜩번뜩 빛이 났다.

꼴 보기도 싫던 송운이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송운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혈교가 박살 나지도 않았을 터. 그리되었다면 지금쯤 화산파는 무림맹을 탈환하고 무림을 새로 재정비해 나갔을 시기다.

다시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뒷골이 쫙 당겨 왔다. 하나, 이제 무림맹엔 그놈도 없다.

그렇다는 건…….

“그자만 무림맹에 없다면 작금 무림맹은 그냥 속 빈 강정일 뿐이다. 그놈들에겐 남은 게 별로 없단 말이지. 이번 혈교와의 전쟁이 놈들의 많은 걸 앗아 간 것은 분명하다. 이미 수많은 문파가 격파당했지.”

마침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섭위문이 입을 놀렸다.

“당분간 귀주성과 운남성, 그리고 광서성과 광동성 일대는 봉문에 들어간다고 보면 될 듯싶습니다. 그리된다면 무림맹의 힘 절반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까?”

“그리되겠지. 더더군다나 무림맹은 당금 우리가 아니어도 제법 분산되고 있을 터.”

때문에 배신자를 척결하기에 당금 그들의 힘은 약할 것이다.

콰직!

염의문이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뭉갰다.

“장보흠!”

“예, 예?! 말씀하시지요. 장문인!”

간밤까지 꼬박 일을 한 탓에 잠시 졸고 있던 장보흠이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고 화들짝 놀라 답했다.

“이번이야말로 우리 화산파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다. 자금은 어찌 되어 가고 있느냐?”

염의문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노려보았다. 목이 바싹 타 오는 탓에 입술을 혀로 적신 다음에야 장보흠이 말을 이었다.

“장문인의 예상대로 타구봉의 가격은 꽤나 후했습니다. 금 오백 냥은 기꺼이 내준다고 하더군요.”

“설마 그것밖에 못 받아 온 것은 아니겠지?”

“그 정도로 절 못 믿으십니까?”

염의문은 고개를 절로 끄덕이고 싶었으나, 가뜩이나 서로 뭉쳐야 할 판국에 사기를 꺾을 수는 없어 그저 손을 까딱였다.

“당연히 아니지요. 크흠. 추가로 금 이백 냥을 더 받기로 했습니다. 하니, 자금 쪽은 너무 걱정 마시지요.”

말을 마친 장보흠의 어깨가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던 염의문이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어쨌건 칠백 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이번 혈교와의 전쟁에서도 사용된 금액은 금 오백 냥을 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정도라면 식량도 넉넉히 챙길 수 있을 터.

“앞으로 늦어 봐야 삼 주야다. 모두 집결시켜라.”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장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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