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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46화 (246/275)

제246화

둥둥.

송운은 이젠 이 공간에 제법 적응된 몸을 허공에 붕 띄웠다.

그의 생각대로 역시나 기의 조절을 통해 몸을 띄우는 것뿐만이 아닌 다른 동작들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십팔, 구십구, 백.’

처음에는 정말 정밀한 조정 탓에 오래가지 못했는데, 점점 그 시간이 늘고 있었다.

숫자를 세고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송운의 입가엔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작은 미소가 걸렸다.

‘이대로라면 잘하면 깨어나고 난 후에도 기를 다루는 데 더 능숙해질 수 있겠어.’

어차피 이곳에선 남는 게 시간인지라 육체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선천지기가 어느 정도 충만해져야 할 때임을 깨달은 송운은 조급한 마음을 지운 것이다.

어차피 때가 오면 반드시 이곳에선 벗어나게 되어 있다. 심지어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거나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롯이 완연한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반복적인 시도로 땅에 손을 짚듯 물구나무를 서는 자세로도 송운은 천의선천기공을 돌릴 수 있었다.

천의선천기공 자체가 꽤 안정적인 호흡법이기에 가능한 점도 있었지만, 다른 걸 하지 않고 수련만 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오롯이 수련에만 쏟아부어 보았던 게 언제인가?

천성이 무인인 송운으로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조금 견디기 힘든 점이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라는 사실 정도였다.

하나, 그것도 일종의 폐관수련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이 걱정되긴 했으나 걱정한다고 해서 변할 건 하등 없었다.

그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최대한 많이 무공을 수련하고 선천지기를 다시 늘려 안정을 찾는 게 급선무일 터.

송운은 그날의 전투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진천후는 강했지만, 결국 송운에게 목숨을 잃었다.

정말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걸 퍼부었을 때 송운의 승률은 제법 높은 편이었다.

한데,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백 형.’

그는 송운이 살면서 만난 최강자였다.

아직도 독고백과 한 수 겨루었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그가 보여 준 무위는 놀랍고, 암담했다.

이긴다는 생각 자체를 뭉개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이다.

작금의 자신이라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송운의 고개가 좌우로 내저어졌다.

온 힘을 다한다면 일 할?

혹은 이 할 정도의 승률을 예상할 수 있는 정도였다.

만일 그가 직접 나섰다면 진천후를 더 쉽고 간단하게 죽였을 것이다.

그런 실력을 지녔음에도 그는 끝끝내 이번 전쟁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듯 독고백과 눈이 마주쳤다 생각했던 것은 허상이었으리라.

왜 하필 그곳에서 그의 환영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그곳에 굳이 백 형이 나타날 연유는 없지.’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지만 송운은 습관처럼 고개를 주억였다.

그가 살던 곳은 이미 세상과 많이 거리가 있는 한적한 산골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 나올 때도 한참을 걸어 나와야 사람들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대대적으론 혈교가 수많은 일반 백성들의 목숨까지 취하긴 하였으나, 송운이 본 독고백 역시 그중 한 명일 뿐.

그를 원망하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그는 환골탈태를 겪고 홀로 은거에 들어간 노고수일지도 모른다. 세상과 연을 끊고 우화등선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면 자신이 그에게 피해를 준 셈이다.

혹여나 싶은 마음에 우연의 만남 이후 그가 살던 집에 사람을 보내 보았으나, 이미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사유에서건 등지고 돌아선 세상을 구해 달라고 손을 내뻗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결국 이 싸움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냈다.

그것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간 또 볼 수 있게 되겠지.’

어차피 이곳에선 필요 없는 잠이지만, 습관처럼 송운이 몸을 허공에 누인 채 눈을 감았다.

잠시, 쉴 필요가 있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 송운이 간단히 몸을 풀고 난 후, 곧바로 기수식을 취했다.

자세를 잡는 게 익숙해지니 기수식 역시 순식간이었다.

그러곤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내 그와 한 수 한 수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파바밧-!

탁!

송운이 상대방의 목을 파고들려 하자 상대방 역시 이를 유연하게 쳐 내고 송운의 목을 노렸다.

이에 송운이 허리를 꺾어 피해 낸 후, 허공을 밟고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곤 곧바로 상대방의 등 뒤를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파앙-!

손끝이 닿기 직전이었지만 이는 곧 상대방의 눈치가 더 빨랐다.

대기를 찢어 버리는 파공음이 들림과 동시에 송운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가상임에도 송운의 몸은 그대로 뒤틀려 쓰러졌다.

‘크읏……!’

순식간에 대련은 종료되었고, 가상의 상대는 사라졌다.

송운이 허공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저앉았다고 한들 기 위에 둥둥 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바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런 게 가능했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을 비우는 건 수월한 편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비워서인지, 점점 가상의 존재가 생생해지고 있었다.

마치 정말 눈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혼자서 쓸쓸한 수련은 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 점점 송운을 흥분시켰다.

다행인 점이라면 가상은 가상일 뿐.

몸에 직접적인 타격이 없으면서도 생생한 적의 모습은 송운에게 더욱 대련의 희열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은 곧바로 무공에 대한 문제점들을 고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번 대련에서 진 건 아무렇지 않았다.

애당초 상대방의 무공 실력을 독고백 수준으로 정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무공도 끝이 보이지 않는데 상상으로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쉬울 거라는 판단은 오산일 테니.

더구나 대련은 지는 걸 화내기보다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받아들이고 얼마나 고치느냐에 진전이 달렸다.

하나, 만일 그 정도의 적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그때야말로 정말 죽는 건 순식간일 거란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번은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기 때문에 혈교 정도로 그친 거다.’

인생은 길고, 아직 다가올 적이 얼마나 어디에 더 남아 있을지 모른다.

혈교와 흑야가 동일 집단이라는 근거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좌절할 시간에 이곳에서 하나라도 더 완성해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송운의 마음을 마구 찔러 대고 있었다.

‘진작 이리해 볼 걸 그랬나?’

송운이 입맛을 다셨다.

이미 바깥세상에서는 몇 주야의 시간이 흘렀을지 모르는 일이다. 언제 깰지도 모르는 상황에 촌각이 아쉬워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송운의 대련은 수도 없이 그 숫자를 늘리고, 또 늘려 가기 시작했다.

* * *

“오늘까지 깨어나지 않으신다면 송 소협의 집안에도 소식을 알려야 할 듯싶습니다. 이미 황궁에서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겁니다.”

장로들과 대화하던 제갈염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제갈염도 그 사실은 몹시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칠 주야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이다.

아무리 무림맹이라고 한들 더는 송운의 상태를 숨길 수 없다.

여태껏 송운이 맡은 임무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자리를 비웠다고 변명했으나,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간다면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송운은 황궁의 사람이며, 이번 전쟁의 크나큰 공을 세운 자가 아닌가.

맡은 임무가 끝났으니 응당 원래 속해 있던 황궁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았다.

상황을 난감하게 만드는 건 황궁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큰 전투가 있을 때마다 이렇다더라 하는 영웅 목격담들이 수십 개가 일파만파 전해지는 건 당연지사.

그중 송운이 정신을 잃고 혼수 상태임을 알리는 호사가도 있었다.

그조차 거짓이라 우기고 있었으나, 황궁에서 알아내려고 했다면 진즉 사실을 알아냈을 터였다.

한 발 더 나간 자들은 송운이 이미 전쟁에서 죽었다고 주장했다.

일명 ‘영웅의 종신’이라는 제목으로 장렬한 전사(戰史)를 표현해 냈다고 한다.

물론 이 허황된 말을 믿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어느 때보다 손을 일찍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황궁이 가만히 있는 건 송운의 가족이 걱정할 것을 알기에 아직까지는 알면서도 모른 체해 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 그것도 이대로 차도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차라리 황궁으로 돌아가 더 실력이 높은 어의들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거라는 의견들도 무림맹 내부에서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말은 번지르르했으나, 결국 그들의 의도는 ‘차도가 없더라도 황궁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자.’는 책임 전가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주장이었다.

몇몇 장로들이 자칫 황궁과 무림맹의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게다가 괜히 송운을 더 데리고 있다가 상태가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지금처럼 무림맹의 힘이 많이 빠졌을 때 황궁마저 등을 돌린다면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제갈염이 깊은 번민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장로 중 누군가 일침을 가했다.

“아직 화산파도 잡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전쟁의 뒷수습을 하려면 양팔을 걷고 뛰어야 한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코가 석자 아닙니까?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총군사님.”

그의 말처럼 제갈염도 좋지 않은 상황을 잘 알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을 송운의 가족을 위해 지금까지 버텨 보았으나,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기 전에 무림맹을 챙겨야 할 때다.

더구나 몇 주야 전, 개방의 공대복이 제 발로 무림맹에 걸어 들어왔다.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무림맹에 충성을 다할 테니 다시 받아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다.

물론, 이 시점에 한 손이라도 거들어 줄 이가 있다면 편해진다는 사실은 그도 잘 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정말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것도 무엇 하나 쉽사리 결정 내리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끝끝내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 제갈염이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아침의 해가 떠오르고 있는지 푸르스름하던 새벽의 하늘이 점점 밝아 오고 있었다.

‘진말(辰末)이군.’

그렇다면 아직 오늘 하루의 여유는 남아 있는 셈이다.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은 제갈염이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여러 장로님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오늘 밤까지만 기다려 보는 것으로 하지요. 그때까지만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못해도 일곱 시진.

그 안에 송운이 깨어나길 바라는 게 최선이었다.

“크흠……! 뭐 그 정도쯤이야. 우리 총군사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리라 믿소이다.”

“그렇소.”

그렇게 새벽녘에야 무림맹 회의가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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