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어둡다.
송운이 처음 눈을 떴을 때, 주변은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작은 빛 조각 하나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죽음에 맞닿은 사람처럼.
그렇다고 해서 죽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선천지기의 생명력이 자신의 온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데 어딘지 모르게 이 공간에 대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언젠가 한 번쯤 겪어 보았던 일이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육체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또다시 그 속에 갇힌 것인가?’
송운은 백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온몸이 만신창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송운이 조급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그의 의지대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에 차례대로 주먹도 쥐어 보고, 발끝에도 힘을 줘 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도 틀어 봤지만 모든 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적어도 온몸이 박살 나서 이곳으로 빨려 들어온 건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이것은 꿈일까?
분명 진천후의 몸을 벤 기억은 손끝에 세세히 남아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 기억은 평서란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송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민망함과 미안함, 각기의 감정이 섞인 탓이다.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송운이 잠시 멍해진 머리를 고개를 내젓고 정신을 다잡았다.
꿈도 아니며, 자신의 몸은 멀쩡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최우선이다.
밖에선 자신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기 때문에 몹시 걱정하고 있을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이번에도 빛이 내려온다면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똑같은 행운이 두 번이나 찾아오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더불어 그때와는 다르게 몸도 자유자재로 움직여지는 만큼 스스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해 내야 한다는 생각이 송운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송운은 우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같이 느껴지는 자신의 몸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다.
천의선천기공을 돌려 몸 상태를 제대로 확인해 보려 해도 몸이 계속해서 빙글 도는 상태였기에 조금이라도 더 안전성을 찾고 싶었다.
하나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치 물 위에 동동 뜬 채 앉아야 하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를 해 보아도 실패하는 건 여전했다.
이 정도쯤은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 판단이 빠르게 사라졌다.
실패가 계속되자 짜증도 치밀어 올랐지만, 마음을 다잡길 반복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바깥과는 너무도 다르다.
지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깨어나지 않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평서란을 생각하니 문득 속에서 힘이 솟아올랐다.
그가 아는 평서란이라면 아직 부모님께 구구절절 소식을 전하진 않았을 터다. 그저 자신이 어서 깨어나길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래. 차라리 모든 걸 비우자.’
송운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가뜩이나 컴컴한 세상이 더욱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체감상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듯했다.
쉽사리 따라 주지 않는 기 덕분에 송운은 보이진 않지만 땀으로 온몸이 젖어 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기가 제멋대로 날뛴 적이 있던가?
‘후욱…….’
적어도 수십 번은 넘게 실패하여 점점 몸에 힘이 빠질 때 즈음이었다.
송운이 깊은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몸이 서서히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반 각 뒤, 마침내 똑바로 앉는 게 가능해졌다.
‘성공인가?’
혹시나 단발성은 아닐까라는 조바심에 숫자를 열을 셀 동안에도 중심이 지속되자 송운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가만히 똑바로 앉아 있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줄이야!
주변에 널려 있는 기운들을 송운의 기와 동일시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고 난 후 미세하게 기를 조정하면서, 양측에서 자신의 몸을 받치고 있는 기운을 평행하게 만들어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더 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이곳에서 허공답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본인이 생각하고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속으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것이 가능한 연유는 기본적으로 이 공간이 자신을 허공에 붙잡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엔 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애당초 자신이 눈을 뜨기 직전엔 주변에 모인 기의 파동이 없었기에, 허공에 똑바로 떠 있을 수 있었던 터였다.
정신없이 둥둥 떠다니다 균형을 찾고 나니 한층 생각의 여유가 생겼다.
‘……돌이켜 보니 놀랄 일이군.’
놈을 잡기 위해서는 송운 역시 모든 걸 다 끌어 올려야 확률이 육 할 이상 올라간다고 판단을 내렸었다.
진천후는 분명 만만치 않은 적수라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이 시공검과 얼마 전 깨달은 무리를 접합시켜 검을 내지른 건 맞다. 거기에 시공검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점점 몸에 무리가 오지 않게끔 변한 점도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한들, 이 정도로 외상과 내상 양측 모두 크게 타격이 없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분명 일전엔 이곳에서도 겉으로 입은 외상과 내상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왔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한데, 그러고 나니 의문점이 또 하나가 생겨났다.
‘그렇다면 난 지금 왜 이곳에 들어와 있는 거지?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거늘…….’
송운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을 고뇌한 걸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송운이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재차 회상시켰다.
처음엔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으나 정신력을 좀 더 집중시키자,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듯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흐읍.”
“의, 의원님! 송 소협께서 갑자기 호흡이 가팔라졌습니다!(소협의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송운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병인이 송운의 변화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며칠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송운의 곁을 지킨 탓에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던 평서란 역시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신음을 흘리며 식은땀을 흘리긴 했어도, 호흡이 급격히 달라진 적은 없었다.
송운이 쓰러진 지 사 주야 사이 처음 벌어진 변화였다.
간병인의 고함을 들은 호호백발(皜皜白髮)의 의원이 헐레벌떡 달려와 송운의 맥을 짚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주체하며 평서란이 물었고, 맥을 다 짚어 본 의원이 천천히 입을 뗐다.
“으음…….”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한 의원의 모습에, 더욱 평서란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이 지긋이 먹은 의원은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장시간 정신을 잃고 있다 보면 간혹 있는 발작 같은 겁니다. 처음에 비해 점점 더 몸의 상태가 좋아지고 계시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무림의 은인이시니 반드시 책임지고 깨어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평서란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긴 하였으나, 작금의 상황에선 의원의 말을 믿는 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에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하아…… 깨어나실 수는 있겠죠?”
“지난번에도 설명해 드렸다시피 생명에 지장이 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송 소협을 믿고 기다리시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크흠…… 그보다…… 평 소저.”
“말씀하세요.”
의원의 말에 대답하는 평서란의 시선은 어느덧 다시 송운에게로 옮겨 가 있었다.
“이런 말씀드리는 건 조금 불쾌하실 수는 있으시겠지만, 먼저 본인의 건강부터 챙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평 소저께서도 큰 전투를 치르시고 아직까지 제대로 쉬지 못하셨으니, 몸 내부가 썩 좋은 상태는 아니실 겝니다. 안색이 영 좋지 않습니다. 이리되시면 송 소협께서 깨어나시기도 전에 먼저 쓰러지십니다.”
의원이 안쓰러운 듯 평서란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쓴웃음만 지을 뿐,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간간이 운기조식까지 하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버틸 만하다고 여긴 것이다.
언제라도 그가 눈을 떴을 때 자기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주고 싶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요.”
“하면 이 탕약을 두고 갈 터이니 부디 끼니 거르지 마시고, 식후에 꼭 드십시오.”
노의원은 작은 약그릇을 내밀었다. 짙은 갈색빛이 도는 액체는 은은한 약재의 향이 더해져 평서란의 코끝을 찔렀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바깥 세계 역시 길고도 긴 하루가 지고 있었다.
* * *
‘……선천지기였어.’
상황을 파악해 낸 송운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었다.
주변에 있던 무인들은 느끼지도 못할 만큼 송운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엄청난 속도로 선천지기가 뿜어져 나와 송운을 감싼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호받지 못한 채 다친 부위는 또다시 선천지기 스스로 송운을 자가 치유한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싸움에서 상단전이 개방된 점도 한몫했으리라.
‘선천지기가 공방을 모두 해낸 것인가.’
일반적인 선천지기라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애당초 일반 사람들에겐 일생에서 딱 정해진 만큼의 선천지기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이외에는 아주 귀한 약초 등으로 아주 조금 늘릴 뿐. 만일 그 정도의 보호막에, 가진 선천지기를 모조리 사용했다면 당장의 목숨은 구했을지언정, 앞으로 살날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을 터.
송운이 계속해서 선천기공을 수련하고, 그로 인해 선천지기를 움직이고 불려 내는 노력을 한 덕분이었다.
송운이 가부좌 자세를 튼 채 그대로 천의선천기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공은 절반 정도밖에 소모되지 않았어. 하나 대다수의 선천지기가 사라졌다.’
그간 그가 모아 온 선천지기의 양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내공에 비해 모아지는 양이 적을 뿐이지, 같은 양이라면 내공보다 훨씬 많은 효율을 내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송운은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천의선천기공이 날 또 살렸구나.’
애당초 천의선천기공이 없었더라면 전생에서의 무공 전진 속도보다 조금 더 빨라졌을 뿐, 작금 이 정도의 무위를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가족의 곁에 있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일들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쯤 되니 오랫동안 잊고 마음속 깊이 묻어 둔 의문이 떠올랐다.
자신은 천운을 타고난 것일까.
그랬다면 어째서 죽음을 직전에 두고 선, 삶을 되돌아와 살고 있는 것일까.
자신 외에도 이런 이들이 있을까?
어릴 적엔 제법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결국 내려진 결론은 ‘알 수 없다’였다.
어둡고 홀로 남겨진 곳에 덩그러니 남으니 머릿속이 자꾸만 복잡해졌다.
지금이라고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송운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