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44화 (244/275)

제244화

각기 평서란과 홍예예를 둘러싼 채 서로 마주 보고 있던 송운과 진천후가 서로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다.

“이곳은 내가 맡을 터이니 란 매는 곧장 공손우경을 찾으러 가도록 하오.”

“하오나, 가가.”

진천후의 기세가 여간 만만치 않으니 평서란도 송운이 걱정되어 쉽사리 물러서지 못하는 것이다.

“어차피 놈은 처음부터 내 상대였소. 걱정 말고 가시오.”

두 사람의 대화에 어이가 없다는 듯 진천후가 살벌하게 노려봤다.

“누가 보내 준다 했나? 감히!”

기절하듯 쓰러진 홍예예를 품에 안은 진천후가 일갈을 내뱉는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공손우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시간이 없소.”

“……알겠어요.”

타닷!

결국 평서란이 몸을 뒤로 뺐다.

“어딜!”

파바박!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진천후가 아니기에 송운이 그 뒤를 받쳤고, 결국 두 사람의 싸움이 재개됐다.

“……컥, 쿨럭……!”

둘의 싸움이 막 펼쳐질 찰나, 진천후의 품에 안겼던 홍예예가 피거품을 뱉어 냈다. 곧장 송운을 향해 들이받고 싶어도 쉽게 들이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진천후가 반 박자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송운이 주변을 살펴보자, 이미 평서란은 이곳을 떴는지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주변에 점점 부상자가 늘고 있었다. 아무리 잘 피해 낸다고 한들, 한 번이라도 스친 강시의 독은 여간 만만치 않은 것이리라.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상황 파악을 끝낸 송운이 더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걸 느꼈는지 곧장 진천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만 여기서 끝을 내자.”

쿠구구구-

엄청난 기의 파동에 놀란 진천후가 몸을 뻗어 자리를 박차 올랐다. 그러곤 곧바로 송운을 향해 검을 내지르려 하였으나, 그 순간 진천후의 동공이 솔방울만 해졌다.

모든 건 눈 한 번 깜빡할 새도 없이 일어났다.

송운의 진짜 표적은 진천후가 아니었다.

푹.

다름 아닌 홍예예였다.

날카롭게 벼린 환성은 정확히 홍예예의 목을 향해 박혔고, 그 자리에서 홍예예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질러 보지 못한 채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하고 이승과 작별해야 했다.

“네이노오옴-! 내 필히 네놈의 피와 살을 뽑고 뜯어 만천하에 알리리라! 크아아아!”

마지막으로 홍예예마저 잃게 되자 진천후는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놓았다.

전신에서 핏줄이 도드라지고, 근육이 과도하게 커지면서 입고 있던 옷들이 뜯어졌다.

쿠과과가-!

퍼버벙!

폭주하는 진천후의 주변으로 땅이 울리고 갈라지며, 동시에 주변에 있던 생명의 기운이 모두 사그라졌다.

‘끝이다.’

흥분하는 적은 제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 하여도 망가지기 마련이다.

쐐애애액-!

캉!

카가가각!

진천후가 온 힘을 담아 송운을 향해 날렸고, 서로의 검이 맞부딪혔다.

콰쾅!

진천후와 송운의 검이 서로 밀리지 않겠다는 듯 밀어붙였고, 조금 버거워 보이던 송운의 표정이 순간 평온해졌다.

‘이 주변의 모든 것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송운의 감겼던 눈이 번뜩 뜨였다.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며 주변의 것들을 몸에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갇힌 듯 뭉쳐 있던 선천지기가 송운의 검에 마치 실타래처럼 가느다랗게 둘러쌌다.

웅웅- 우우웅-!

그러곤 환성은 송운의 부름에 답하듯 공명하기 시작했고, 절반의 기운이 송운의 전신을 감싸냈다.

좀 전까지 맑던 주변의 하늘이 흐려지며 동시에 실낱같이 잡힐 듯 달아날 듯 보였던 기가 점점 단단히 굳어지고, 그것이 곧 송운과 한 몸을 이루기 시작했다.

‘자연과 내 몸은 모두 혼연일체(渾然一體)라.’

번쩍-!

송운이 육성으로 조용히 말을 읊조리자, 일순간 엄청난 빛과 함께 그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

진천후가 당황할 무렵.

송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진천후의 코앞이었다.

콰아아앙!

* * *

반경 몇 장 이상을 전부 집어삼킨 두 무인의 충돌은 주변에 싸우고 있던 강시들에게까지 피해를 미쳤다.

여파에 휘말린 강시들은 모두 붕괴되어 힘을 잃고 쓰러졌다. 일찌감치 위협을 감지한 무인들은 멀리 떨어졌지만, 공손우경도 스스로의 목숨이 위태한 시기인 만큼 강시들을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휘이이잉-

평서란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숨을 죽이고 충돌이 일어난 지점을 주시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기의 파동은 주변을 풍비박산 내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가라앉았다. 동시에 허공을 떠다니던 모래까지 완전히 걷히고 나서야 마침내 한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미끄러져 내리고 있는 진천후의 모습이었다.

“감……히…… 네놈…… 따위가……!”

털썩.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린 와중에도 말을 이어 나가던 진천후가 끝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의 눈은 끝까지 감지 못하고 부릅떠진 채였다.

오랜 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온 혈교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가가!”

“송 소협!”

진천후가 쓰러지기 무섭게 송운의 곁으로 평서란이 급히 달려갔다. 양측이 주고받은 것이기에, 진천후에게만 충격이 갔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난 ……괜찮소.”

송운은 괜찮다고 했지만, 평서란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주륵-

송운이 입을 열기 무섭게 입 끝으로 피가 타고 흘러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第五章. 무의식

“우, 운 가가! 정신 차려 봐요!”

당황하는 평서란을 뒤로한 채 제갈염이 서둘러 송운의 진맥을 짚었다. 그의 상태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맥박은 정상이다. 외상도 크게 입은 것은 없으니…….’

그제야 당황하던 제갈염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송 소협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 가시지요. 저 역시 의원이 아닌지라 확실히는 판단할 수 없으나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평서란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이미 방금 전 기의 폭발로 인해 또다시 강시의 절반가량이 줄어든 상태다.

일반 무인들도 만일 그곳에 휩쓸렸다면 살아 있기 어려웠을 터.

이제 남은 잔당은 정말 그들의 힘으로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런 평서란의 생각을 읽었는지 제갈염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기도 민망하긴 하나, 무림맹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가서 송 소협의 상태부터 살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대로 곧장 무림맹으로 가시면 의원을 붙여 줄 겁니다.”

“그럼…… 뒤를 부탁드릴게요.”

제갈염의 말에 머뭇거렸던 평서란이 송운을 그대로 안아 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시야에서 점이 되어 사라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제갈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운이 혈교 무인들의 대다수를 처리한 덕에 남은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듯했다.

‘더는 무림맹의 이름에 먹칠을 해서는 아니 된다.’

이번 전쟁은 역사에 반드시 길이 남을 터.

두 번 다시 혈교가 판을 치지 못하도록 완전히 점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내 제갈염이 허공에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남은 강시들을 모두 소탕한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무림맹의 자랑스러운 무인들이여!”

“예! 총 군사님!”

* * *

“이,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는 게야!”

강시들 틈 사이에 간신히 몸을 숨기고 있던 공손우경이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극히 부정했다.

하나 눈으로 직접 본 일이 아닌가.

송운 역시 쓰러지긴 했지만, 죽은 건 진천후다.

오대혈대주들이 죽은 것도 모자라, 믿었던 진천후마저 눈을 감은 상황인 것이다.

공손우경의 전신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더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강시들조차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사, 살아야 한다. 절대로 잡혀서는 안 돼!’

그의 두 동공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살아남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와서 혼자 뭘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어찌해야 이 전쟁터 속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으로 점점 무림맹의 무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살자. 살아야 하느니. 공손우경, 이놈아, 머리를 굴려라!’

땅바닥에 잔뜩 엎드린 채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던 공손우경이 양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찰싹!

‘그래! 귀마병이 있었어!’

아무리 자신의 강시들이 뛰어나다고 한들. 귀마병보다 더 뛰어나지는 못하다.

귀마병의 신체 능력은 뛰어났고, 자신은 그런 귀마병들을 조종할 수 있는 환약을 먹은 상태가 아니던가!

공손우경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방법을 떠올린 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강시들의 틈 사이로 몸을 움직이던 그때.

공손우경의 눈에 익숙한 자가 들어왔다.

‘조익기?’

그는 온통 공포에 물들어 있었으나, 아직까지 죽진 않은 듯 보였다.

가진 무공도, 내공도 없는 자이기에 그 덕에 살아남았을지도 몰랐다.

그냥 지나칠까?

아니면 데려갈까?

‘내 코가 석자인데…… 빌어먹을!’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공손우경이 결국 마음을 정했다.

쉰 목소리로 최대한 조용히, 그러나 조익기의 귓가에 들릴 정도로 소리를 쳤다.

“이봐, 조익기!”

전쟁터의 구석에 처박힌 채 한참을 헛것을 본 미친놈처럼 고개를 흔들던 조익기가 마침내 공손우경의 눈과 마주쳤다.

“히, 히이이익! 귀, 귀, 귀신?!”

아무래도 혼이 반쯤은 나간 듯 보이는 그의 행태에 공손우경이 잠시 자신의 처지조차 망각한 채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놀랄 시간이 없다. 날 따라오너라. 그러면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해 주지.”

공손우경이 귀마병 한 기를 불러 그를 업게 시켰다. 그리고 자신 역시도 마찬가지로 업게 명했다. 강시보다 안전하고 튼튼한 귀마병은 손쉽게 그의 명을 따랐다.

혼란의 틈 사이로 그렇게 공손우경이 유유자적 사라졌다.

* * *

“으음…… 이미 몇 번 진찰을 해 보았으나, 확실히 외상으로 인한 건 아닙니다. 자잘한 상처는 많이 있지만 과다 출혈을 입은 부위도 없고…… 내기가 불안정하기는 하나 내상을 크게 입으신 것도 아닙니다.”

하얀 의복을 입은 노인이 맥을 짚고 있던 손을 떼면서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여전히 오리무중인 듯했다.

“하면 어찌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있단 말입니까?”

평서란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하며 물었다.

내상도, 외상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사람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정신을 잃고 있단 말인가.

벌써 마지막 전쟁이 있고 난 뒤로 삼 주야가 흘렀다.

주인을 잃고 힘을 잃은 강시들은 그간의 희생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그 과정에서 진천후의 시신이 사라지고, 공손우경을 끝까지 잡지 못하여 샅샅이 정찰을 해 나가며 조금씩 주변이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운은 아직까지 그 어떠한 의식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간혹 신음 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흘리는 게 전부였다.

만일 맥이 제대로 뛰지 않았다면 죽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송운은 아무 미동이 없었다.

“경과는 지켜봐야 알 터나, 약을 꾸준히 드시다 보면 곧 쾌차하고 일어나실 테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알겠습니다. ……나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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