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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43화 (243/275)

제243화

송운이 잠시 고개를 비틀어 뒤를 향하니, 눈에 무림맹 무인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이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방금 자신을 부른 자 역시도.

제갈염에게 가는 길, 평서란과 송운의 눈이 마주쳤다.

‘다치지 마세요, 가가.’

평서란의 입매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송운이 아까의 전투에서 스쳤던 소매를 슬그머니 뒤로 감추었다.

‘알겠소. 란 매도 조심하시오.’

그러곤 말 한마디를 덧붙인 뒤, 제갈염의 곁에 당도했다.

“총군사님.”

“우리가 좀 늦었네. 미안하이. 상황은 대충 묻지 않아도 알 것 같군.”

“예, 혈대주는 대다수 죽었거나 반불구가 됐긴 한데…… 강시가 아직 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들 모두가 독과 관련된 듯하니, 더더욱 조심하셔야 할 듯싶습니다.”

“강시는 최대한 민가 피해를 막으면서 그 시전자를 죽이면 끝이 날 걸세. 이 정도 규모라면 강시를 직접 죽이는 게 아니더라도 해 볼 만할 거야.”

아직 천 구는 더 남은 강시를 모두 죽이는 것보다 어쩌면 그 방법이 더 빠를지도 모르니 말이다. 당금 무림맹의 무인들도 손에 꼽는 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만큼, 아예 실행되지 못할 정도의 것은 아닐 터.

그 말에 송운이 고개를 주억였다.

“좋은 방법입니다.”

“한데, 그렇게 하려면…… 혈교의 교주. 혈마가 가장 큰 난관이겠군.”

저 멀리서 주변 상황을 훑고 있는 진천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좀 전까지 잃었던 이성을 찾은 듯했다. 아마 잠시 주춤한 정도일 뿐, 결국 곧 다시 달려들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남은 혈대원들과 혈대주, 그리고 강시를 맡아주십시오. 혈마는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자네, 괜찮겠나?”

“죽이지 못한다면 제가 혈마의 발목이라도 붙잡고 있을 테니, 그사이 나머지를 정리해 주십시오. 시전자는 공손우경입니다. 허리가 굽었고, 신장이 작은 자입니다. 워낙 눈에 띄는 자니 찾는 데 그리 힘들진 않으실 겁니다.”

“으음…… 알겠네. 부탁함세.”

제갈염이 송운의 손을 한번 맞잡으며 말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허허, 자네 역시 무운을 비네.”

타닷-!

마지막 인사를 나눈 송운이 빠르게 진천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인생의 마지막 작별 인사는 다 나누었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송운을 향했지만, 큰 위협이라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송운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진천후의 살기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사방에 흩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잡담 나눌 필요가 있을까?”

“너야말로.”

마지막 말을 끝으로 둘 사이의 묘한 기류가 난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 * *

송운이 가자마자 제갈염이 곧장 평서란에게 다가갔다.

“평 소저, 공손우경이라는 자가 강시를 조종하는 자인 것 같습니다.”

단박에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평서란이 답했다.

“그럼 그자를 죽이면 강시 쪽은 해결이 완만해지겠군요.”

제갈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의 특징은 나이가 제법 있으며 허리가 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조금 난잡하긴 할 테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최우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대한 우리가 강시들의 관심을 끌 터이니 그사이 평 소저가 그자를 찾아 죽여주었으면 하는데…….”

어딘지 난감하고 민망한 듯 보이는 제갈염의 모습에 평서란이 응답했다.

“걱정 마세요. 반드시 그리하도록 할게요.”

그제야 제갈염이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무림맹에 인재가 아예 없어서는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구주칠대무신에 속하는 무인은 총 다섯이었다.

아니, 이제는 네 명이었지만.

‘……양의문.’

형이 의문사로 돌연 세상을 뜨고 난 후 화산파를 집어삼킨 자.

‘그토록 야욕이 큰 자였을 줄이야.’

문득 제갈염의 입매가 씁쓸해졌다.

동시에 화도 끓어올랐다.

화산파의 배신을 일찍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이 낱낱이 드러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구주칠대무신 중 한 명이 화산파에 속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력이 이곳에 있었다면 조금 더 수월했을 테지만, 이미 배반한 자에게 아쉬움을 갖는 건 미련한 짓임을 알기에 제갈염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제치고도 평서란에게 부탁하는 가장 큰 연유는 날쌔면서도 적의 의심을 쉽게 피할 수 있는 자가 황궁의 독특한 무공을 익힌 평서란뿐이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정파의 무공을 익혀 정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기에 광명정대한 기운에 민감한 마인들을 상대로 조용히 접근한다 하더라도 들킬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평서란의 도움은 무척이나 큰 힘이 되어 주리라.

“이거 황군이 참으로 든든한 인재를 두었습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뒤를 잘 부탁드려요.”

말을 마친 평서란이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여무인임에도 그녀의 실력은 상당히 높았다. 무력, 두뇌 모두 어지간한 사내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과연 평씨 무가인가.’

이미 몇 대를 걸쳐 황궁의 수호를 도맡아 온 평씨 무가는 무림에도 소문이 자자했다. 이번 대에는 남아가 없어 혹시나라는 생각을 했으나, 평씨의 피를 타고난 평서란의 실력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든든해 보이는 뒷모습이다.

제갈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운 채 고개를 돌려 외쳤다.

“모두 제 위치로! 우리는 강시를 맡는다! 놈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해야 할 것이다!”

* * *

‘허리가 휜 자가 공손우경…….’

평서란이 자신의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강시들의 틈 속에서 벗어났다.

아무래도 아무리 강시가 강하다고 한들 바로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강시를 조종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기척을 숨긴 채 멀찍이 떨어져 강시를 지켜본 결과, 강시들의 움직임에 일정한 경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 근처로는 절대로 강시들이 가질 않아.’

아무리 밀려도, 싸움의 장소가 옮겨져도 결코 그 자리를 향해 가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건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는 뜻 아닐까?

순간 평서란의 두 눈이 번뜩였다.

내기를 모아 안력을 키운 것이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역시. 저자가 바로 공손우경.’

안력을 높이자 그 속에서 평서란의 눈에 허리가 굽은 노인이 보였다. 교묘하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게 몸을 숨긴 상태였다.

확인을 끝낸 평서란이 드디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쌔액-!

캉!

“저곳으로 넌 못 가.”

여인치고는 신장이 큰 평서란에 비하자면 정말 자그맣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조금만 더 가면 공손우경의 목줄을 틀어쥘 수 있었기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군다나 웬 어린아이가 전장에 끼어들었는지 평서란이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검을 들어야 했다.

스릉-

“한눈팔지 마!”

한층 더 독해진 표정으로 달려든 홍예예가 정확히 땅을 박찬 후, 날아오를 듯 평서란의 목을 향해 검을 날렸기 때문이다.

카가각-!

평서란은 더는 의문을 품는 걸 포기하고 홍예예의 검을 쳐 냈다.

당장에 살기등등하게 날아오는 검을 보고만 있다가는 세상을 등지는 건 순식간일 테니까.

더불어 검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더럽고 찝찝한 그 느낌에 혹시나 했던 의문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혈교인이로구나.’

작고 귀여운 외관에 조금이나마 흔들렸던 평서란의 마음이 확고히 잡혔다.

적은 적일 뿐.

그간 혈교가 행해 온 악행들을 떠올리자니 마음에 열불이 치솟아 올랐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저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겉모습은 어려 보일지라도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자들이었다.

그때, 서둘러 분위기를 눈치채고선 안색이 파래진 공손우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런.’

갑자기 곁에서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공손우경이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쫓기 위해선 이 싸움을 먼저 끝내야 했다. 자신이 늦어질수록 무림맹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평서란이 검을 움켜쥐었다.

“타앗!”

카강!

평서란이 달려드는 홍예예의 검을 쳐 낸 후, 그대로 빙글 돌려 뒤로 몸을 틀자, 홍예예가 뒤로 물러섰다.

채채챙-!

하나 홍예예가 잠시 숨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평서란이 검을 매섭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양측 모두 그리 빠른 동작처럼 보이지 않았으나, 그 속에서 마구 뻗어지는 검초의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홍예예 역시 천심전(穿心箭)이라는 검이 주 무공인 데다, 평서란 역시 쾌검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평서란의 반응이 빠르자, 홍예예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치잇……!’

탁!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보이던 홍예예가 검을 비틀며 평서란의 몸을 향해 파고들었다.

순간 평서란의 반응 속도가 늦은 것인지 이번에야말로 정확하게 평서란의 복부를 겨냥한 검첨이 제대로 박혀 들어간다고 생각 한순간.

서걱.

챙그랑!

“꺄아아악!”

푸슈욱-!

평서란이 허리를 꺾은 채 홍예예의 검을 피하면서 그대로 오른쪽 어깨를 잘라 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주변에서 도와줄 틈조차 없었다.

오른쪽 팔과 검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홍예예가 엄청난 비명을 질러 댔다.

뼈와 근육이 잘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평서란의 검에는 자비란 없었다.

캉-!

이를 악물며 간신히 남은 왼손으로 검을 집어 들려던 홍예예의 검을 아예 멀리 쳐 낸 것이다. 그러곤 평서란의 검이 홍예예의 왼쪽 손목을 강타했다.

“아악!”

완전히 다시 붙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한번 잘렸던 손목이다.

그 일격은 홍예예를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양쪽 손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순식간에 평서란의 검이 홍예예의 목을 향했다.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갔더라면 홍예예의 목숨이 달아나는 상황.

“네가 진 것이다.”

“이이익……! 감히 네년 따위가!”

그때, 어디선가 엄청나게 거대한 기가 날아와 평서란과 홍예예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콰과과과-!

“……?”

차마 홍예예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던 진천후가 송운과 싸우고 있는 도중임에도 검기를 날린 것이다.

빠르게 피해 내지 않았다면 평서란의 몸에 직격으로 떨어졌을 터였다.

“란 매!”

이에 송운이 평서란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치 재밌는 극을 보듯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던 이가 있었다.

“쿡쿡. 역시 참으로 재밌어.”

“……무엇이 말입니까.”

함께 지켜보고 있던 휘의 몸이 계속해서 자꾸만 움찔거렸다.

어찌 되었건 정을 붙인 이들이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처음으로 명을 거부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함부로 나설 수 없는 건 결국 그는 독고백의 수하이기 때문이었다.

얼핏 고개를 들어 바라본 독고백의 표정은 어딘지 잔뜩 신이 난 듯 보였다.

“무림을 빼앗으러 모든 걸 바쳐서 여기까지 온 자가 자신의 것은 단 하나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고 있지 않느냐? 결국 저놈도 나약한 인간이었어. 더 많은 욕심을 부리려 했다면 더 강해져서 왔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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