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第三章. 격전(激戰)
두두두두-
섬서성의 남쪽 안강(安康) 의 어느 마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마치 말 수백 수천 마리가 달리는 듯한 소리가 지면으로부터 울려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작금 이곳의 상황을 모르는 자라면 모를까, 모두가 그 소리를 시작으로 공포에 물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작금 중원의 상황과 어디선가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혈교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그, 그들이 오나 봐요!”
툭-
챙그랑-!
몸집이 작은 소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고, 이에 점소이가 소녀의 손목을 홱 낚아채며 주방으로 끌어당겼다.
밥을 먹던 손님들도 그대로 전부 굳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구기 일쑤였다. 그들은 먹던 음식도 제쳐 놓고 식탁과 의자 아래로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이미 소문의 소문으로 전해들은 그들의 흉악무도함만으로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만큼 두려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쉿-! 조용히 해라. 숨을 최대한 죽여!”
“흡……!”
몸을 숨기는 자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집안이나 지하 창고로 몸을 피했고, 창마저도 천으로 뒤덮여 집안을 전혀 볼 수 없게 했다.
이미 배수의 진을 친 상황에 들키지 않으면 혹시라도 살 수 있을까 싶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쨍그랑-!
콰앙!
곧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가며 진동이 커졌고, 그 여파로 탁자 위 물건이 흔들리고 식기가 떨어져 깨져 나갔다.
꿀꺽.
‘부디……! 살게만 해 주십시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점소이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녀를 품에 꼭 안은 채 두려움에 떨며 그렇게 속으로 살려 달라고 간절히 빌고 있을 때.
두두두두…….
어느 순간, 굉음처럼 번졌던 소리가 점차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문과는 달리 화산파의 배반으로 인해 쉽게 길이 뚫린 섬서성은 혈교가 들이닥쳤음에도 주변의 민가는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림인뿐만 아니라 민가까지도 밥 먹듯 덮치던 혈교를 생각하면 낯선 모습이나, 갑자기 교화당해 마음을 고쳐먹은 건 절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의 목표는 오롯이 서안에 있을 무림맹이었으므로 코앞에 목표를 두고서 굳이 주변의 민가를 건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 컸다.
혈교는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반 사람들은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으로는 털끝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덜덜 떨리고,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하며 어서 저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간절히 빌고 있었다.
수많은 강시 무리가 지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제법 많은 강시를 잃어야 했지만, 울상을 짓는 건 공손우경뿐.
남아 있는 강시들도 결코 무시 못 할 숫자였다.
게다가 살아남은 강시는 대다수가 혈라강시가 아닌 광독강시.
그 위력은 더욱더 강하니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지나가는 곳마다 느껴지는 사람들의 두려움 섞인 표정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던 혈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가장 선두에 섰던 조도연이 앞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 과연! 저자들은 장남파인가?”
“……무식한 놈, 장남파가 아니라 종남파다.”
그의 말을 정정해 준 것은 냉용후였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표정은 덤이었다.
그리고 그때,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그 둘 사이를 누군가 파고들었다.
“또, 또 싸우는 거야? 적들이 코앞인데?!”
몸이 다 나은 홍예예의 등장이었다.
완전히 몸이 나았는지 팔팔한 표정으로 언제 아팠냐는 듯 둘 사이에서 깡총대는 홍예예는 진천후를 미소 짓게 하고 있었다.
아니, 조도연과 냉용후도 은연중에 그리 느끼고 있는 듯했다.
평소라면 이미 밉상이라 생각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끙끙대며 죽어 가는 그녀의 모습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구나.”
그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진천후의 기분을 깬 건 휘였다.
“뭐가? 꼬마 아가씨가 다 나아서? 아니면 종남파를 만나서? 흐흐.”
휘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진천후의 어깨를 찌르자, 진천후가 그를 잠시 째려봤다.
하나 곧 진천후는 눈빛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연정을 품은 여인의 생명의 은인에게 화를 내려는 건 아니겠지?”
“……알았으니 조용히 좀 해라. 제발.”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진천후의 모습에 재밌는지 이번에는 볼을 꼬집었다.
“헤에, 이거 진짜 신기하다. 역시 조른 보람이 있다니까? 헤헤.”
“무어슬 조랐단 마리지? 내 보를 마이냐?”
차마 더 화를 내진 못하고 볼을 잡힌 탓에 발음이 미묘하게 새는 진천후였다.
“푸하하하! 아이고 배야! 천후 너 발음 그렇게 하니까 제법 귀여운데? 역시…….”
퍽.
결국 한 대 맞고 마는 휘였다.
“아얏! 너무한다!”
그렇게 진천후와 휘, 홍예예와 냉용후, 조도연이 투닥거리고 있는 사이 여파달과 홍청염만이 적을 냉철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무림맹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종남파가 뿌리를 박은 종남산(綜南山) 앞을 반드시 거쳐 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 그 앞에는 이미 소식을 전해 들은 종남파가 무리 지어 나와 있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염자단도 있었다.
잠시 본문에 볼일이 있어 종남산에 들렸다 돌아가려던 중에 혈교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가던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덕분에 섬서성에서 혈교를 맞이하게 된 염자단이 눈썹을 찡긋거렸다.
‘……저들이 혈교.’
처음으로 마주한 혈교의 모습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대부분이 강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그 사이에서 묘하게 서로 투덜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묘한 이질감을 만들어 냈으나, 그럼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지는 기운이 사람을 찝찝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자들이었다.
‘여기까지 도착할 정도면 이미 무림맹에도 서신이 도착했을 터.’
그렇다면 이곳에서 어떻게든 조금만 버텨 주고 있으면 곧 무림맹에서 무인들을 추려 보낼 것이다. 어차피 이곳에서 무림맹은 그다지 먼 곳도 아니니 늦어 봐야 반 시진이다.
그전까지는 길을 터 주어서는 안 된다.
염자단이 여전히 앞을 응시하며 질의했다.
“당금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몇이나 되느냐?”
누군가 그의 물음에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답했다.
“약…… 칠백 정도 됩니다.”
“일류까지 포함이냐?”
“그렇습니다.”
염자단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마른 입가에 고소가 걸쳤다.
생각보다 더 적은 숫자다.
원래 종남파가 제자들을 그리 많이 뽑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러한 상황에 닥치니 조금이라도 더 뽑아 두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많이 뽑는다고 하여 모두 높은 경지에 오르리라는 보장도 없긴 하다만…….’
반면 적들은 강시까지 모두 다 합쳐 대강 그 수가 이천 정도는 되어 보인다.
과연 이 숫자로 적을 막을 수 있을까?
사천성도 뚫고 지나온 저들을?
염자단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도 막는다.’
그러곤 비장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이에게 말했다.
“우리로는 부족할지도 모른…… 아니 부족하다. 은거에 들어가신 분들에게도 조용히 기별을 넣어 두거라.”
이미 후대에 자리를 넘기고 은거에 들어간 이들에게까지 기별을 넣으라는 것은, 본문에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과도 같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사내가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습니다.”
* * *
종남산을 뒷전에 두고, 강시들과 무인들이 대치를 이룬 지도 어언 일각이 흘렀다. 그럼에도 양측 모두 섣불리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혈교가 아무리 막가내하(莫可奈何) 안하무인이라고 한들, 적어도 이곳이 무림맹의 코앞이라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으아아! 더는 못 기다리겠습니다. 몸이 근질거린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출전 명령을 내리려던 참이다.”
“저, 정말입니까?”
끝내 터져 나온 조도연의 불만을 본 진천후가 조용히 읊조렸다.
좀 전과는 다르게 사뭇 진지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조도연의 눈가가 지나칠 정도로 반짝거렸다.
“기왕이면 놈들이 한 번에 다 덤빌 때 나서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기다린 것뿐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너, 너 이 자식 거기 안 서!”
살포시 고개를 숙인 냉용후가 조도연보다 앞장서 튀어 나갔다. 그 모습에 눈이 뒤집힌 조도연 역시 거대한 몸집을 앞으로 튕기듯 내던지며 사라졌다.
이에 홍예예 역시 지지 않겠다며 나서려 하자, 진천후가 그녀를 붙잡았다.
“너는 아직이다. 좀 더 몸을 추스르도록 해.”
“하, 하지만…….”
벌써 완쾌됐다는 듯 동그란 눈망울에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진천후를 바라보았으나,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진천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안 된다. 아직 진짜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동시에 여파달을 향해 바라봤지만,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치, 알겠어요. 대신 다음 전투엔 꼭 참여할 거예요.”
귀여움을 온몸으로 내뿜던 좀 전과는 다르게 독기를 품은 눈을 빛내는 홍예예였다.
* * *
“저기 보이는 초록빛이 나는 강시들은 몸에 독을 품었다. 특히 저들의 손톱 끝에는 치명적인 독이 묻어 있으니 다들 최대한 상처를 입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라! 알았느냐! 반드시 살아 돌아오라!”
“예, 장문인!”
“종남파를 위하여! 무림을 위하여!”
“위하여!”
“와아아아-!”
종남파의 장문인인 반철룡(班鐵龍)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남파의 무인들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도 마치 판을 짜기라도 한 듯 혈교가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카가가강-!
치이익!
어지간한 검기에는 잘리지도 않는 강시들의 손톱과 종남파 무인들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독에 의해 일부 검이 녹아내리기도 했으나, 구파일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종남파 역시 쉽사리 물러날 틈을 주지 않았다.
서걱-!
촤아아악!
“크아악!”
하나 그럼에도 일반적인 혈라강시보다, 독까지 피해야 하는 탓에 전투는 더욱 고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천성쾌검(天星快劍)을 주로 익힌 무인들이 많은 덕에 강시들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재빠르게 역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혈교인가? 과연 쉽지 않구나.’
싸우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던 그때.
강시 중 유독 거대한 덩치를 가진 강시가 염자강의 뒷덜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파밧-!
이를 노련하게 피해 낸 염자강이 아예 몸을 비틀어 허공에 날린 채, 강시의 머리통을 향해 검을 쥔 반대편 손을 뻗었고 곧바로 오뢰정인(五雷頂印)을 날렸다.
빠각-!
그러자 번쩍하며 허공에서 빛이 나더니 강시의 머리가 박이 쪼개지듯 터지면서 뇌수가 사방으로 비산(飛散)했다.
움직임이 멈추는 걸 확인한 후 잠시 숨을 돌리려던 그때, 이번엔 염자강의 삼면에서 강시가 날아들었다.
“염 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