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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전생-231화 (231/275)

제231화

송운이 발걸음을 했을 땐 역시나 제갈염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의 표정이 묘했다.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송운이 말하자 제갈염이 고개를 주억였다.

하나 표정대로 뭔가 시원찮지 않았다.

“맞네. 진법이 통해 참으로 다행일세. 다만…… 일단은 한차례 물러나긴 했으나, 혈교가 여기까지 와서 결코 완전히 물러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구먼. 조만간 다시 공세가 펼쳐질 텐데……. 게다가 아미파와 사천당문이 있는 쪽까지는 지원이 불가하니 걱정이 드는구먼.”

다행이라면 아미파에 사천당문이 합세하면서 혈교의 기세가 살짝 기울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저 역시도 동일한 생각입니다. 여기서 물러날 거였으면 혈교가 그리 큰 판을 벌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 반증으로 아직 귀마병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요.”

“그렇지. 더불어 일전에 말했지만 귀마병은 진법에 통하지 않을 걸세. 어떻게든 우리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하네. 오롯이 혈라강시를 겨냥해 만들어진 진법이니 말이야.”

제갈염의 말에 송운이 입가에 고소를 머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늘 변수란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그건 어떻게든 저희가 막아 보아야지요. 아마 혈교도 생각이 있다면 이곳까지 오기 전에는 귀마병을 꺼내려 하지 않을 겁니다.”

본디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마지막에 내놓는 법이다.

“부디 그러길 바라야지.”

애꿎은 이들이 희생당하지 않기를.

그것만이 작금 송운과 제갈염, 그리고 백능이 바라는 것이리라.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총군사님. 그래도 강시만 해치우고 난다면 이번 전쟁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제갈세가가 아니었다면 이미 사천성도 밀렸을 거구요.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 그러한가. 송 소협,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맞는 것일 터. 어서 이번 전쟁이 끝을 맺었으면 좋겠군.”

“다들 힘을 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이번 전쟁으로 반드시 혈교를 완전히 와해시킬 겁니다.”

송운의 목소리에 굳은 의지가 깃들었다.

“그래, 내 송 소협이 있어 참으로 든든하군. 고맙네. 이토록 진정한 협을 아는 무인이 있으니 말이야.”

제갈염의 두 눈이 송운을 향해 반짝였다.

진실된 눈빛이었다.

계속해서 가족만을 생각하던 송운이 조금은 부담이 되었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중원이 혈교의 손에 넘어가면 가족들이 다치게 된다.

결국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다.

가족에 위협이 되는 것은 모두 쳐낸다.

그것이 혈교보다 더한 놈들이어도 반드시 말이다.

하나, 만일 가족이 없었더라면?

‘이 정도까지 용을 쓰진 않았을 테지.’

송운이 민망함에 고개를 내저었다.

“과찬이십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 이번 전쟁에서 한 것이 없습니다. 전쟁은 다른 많은 무인의 희생으로 치르고 있지요.”

그러자 이번엔 도리어 제갈염이 고개를 내저었다.

“허어, 아니지. 그리 말하면 섭하네. 이미 부족할 뻔했던 전쟁 물자가 자네로 인해서 넉넉히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황궁과 연락을 잘 취해 준 덕에 황궁과 무림맹이 잘 화합하여 싸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는가? 맹주님께서도 자네에게 굉장히 감사를 전하고 계시다네. 그런 의미로 내일 조식은 같이 들지 않겠나?”

“그럼, 내일 아침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제갈염이 환히 웃어 보였다.

“알겠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게. 내일 보세.”

* * *

“제발 날 내려놔라, 월랑아. 난 다시 가야 한다. 이대로 갈 수 없어.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싫습니다.”

“월랑이, 이놈! 내가 이 꼴이 되었다고 이젠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게냐!”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고얀 놈. 알긴 뭘 알아? 지금 네 태도가 딱 그러하지 않으냐!?”

“안 됩니다. 저를 욕하고 때리셔도 저는 음 장로님을 절대로 내려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음여랑이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어르기도 하고 화도 내 보았지만 그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월랑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오는 길 내내 서로 말싸움을 끊임없이 하며 달리는 두 사람의 눈가는 그야말로 눈물범벅이었다.

무작정 호남성을 향해 달리는 창월랑도, 거의 반강제로 둘러 업혀진 음여랑도 말이다.

결국 체력이 모두 탈진 상태에 접어든 음여랑이 먼저 떨어져 나갔다.

“……망할 놈.”

“예. 욕하십시오. 욕하셔도 되니 부디 안전한 곳에 도달할 때까지 버텨만 주세요.”

“독한 놈.”

“예.”

“썩을 놈.”

“예.”

“……염병.”

계속해서 같은 형태의 대화가 반복되고 있었다.

중경시로부터 얼마나 달려왔을까.

창월랑이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곁눈질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둑하고 칙칙했지만, 적어도 오시를 넘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꼬르륵-

‘미안하다, 배야.’

들러붙기 일보 직전인 뱃가죽은 먹을 것을 넣어 달라며 아우성쳤으나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쫓기는 처지인지라 당연하게도 먹을 것도 없고 다리는 후들거려 몇 번이나 엎어질 뻔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오롯이 무림맹의 포획에서 벗어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물론 중간에 다 포기하고도 싶었다.

배곯는 데엔 이미 수많은 경험을 해 보았고 익숙해졌다 생각했건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대로 지쳐 쓰러져 땅바닥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이불 삼아 몇 날 며칠이고 잠만 자고 싶은 마음이 그 어느 무엇보다 간절했지만,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여기서 쓰러지면 죽을지도 모른다.

‘더 가야 한다. 힘을 내자, 창월랑!’

어느 순간부터는 따라붙던 이들의 기척조차 사라졌으나, 그간 개방도로 살아오면서 무림맹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겪어 온 창월랑이다.

아직까진 결코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없었다.

마음이 약해지고 몸이 무너질 때마다 창월랑의 눈앞에 편무량의 마지막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를 제법 오랜 세월을 곁에서 봐 왔지만 그때만큼 간절해 보이는 눈빛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애당초 개방의 거지로 살아왔으나 편무량은 평생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편 장로님…….’

편무량이 과연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몇백 명의 적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다. 창월랑 역시 그가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터다.

정말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봐야 포로 생활이다.

그러나 배신자에게만큼은 철저한 무림맹이 사로잡힌 그를 살려 두었을 리 만무하다. 이미 일전에 있었던 다수의 크고 작은 배신자들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으득.

창월랑이 속으로 다시 한번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이를 악다물며 내리눌렀다.

그런 편무량의 마지막 부탁만큼은, 반드시 들어 드리고 싶었다.

최소한 호남성에 근방에 삶의 터전을 쌓은 개방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니,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개방도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가자면, 그쪽이라고 멀쩡할지가 먼저 관건일 터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의 흐름이 묘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월랑 본인도 이래저래 입은 상처에, 홑몸이 아닌 탓에 이제야 간신히 중경시를 벗어나 호남성에 들어선 듯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때였다.

“어엇……?!”

잠시 딴생각에 잠겼던 창월랑이 발을 헛디뎠고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죄, 죄송합니다! 음 장로님.”

“……잠깐.”

“예?”

연신 사과하기 바쁜 창월랑을 뒤로한 채, 음여랑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여태껏 들려왔던 말과는 묘하게 어감이 다르다.

내려 달라거나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중압감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래서일까.

동시에 저도 모르게 여태껏 쉬지 않고 달리던 창월랑의 다리가 제자리에 처음으로 우뚝 섰다.

“그렇게 졸졸 따라다닐 생각이면 차라리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라.”

음여랑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뭐 하시는…….”

허공에 대고 혼자 말하는 듯 보이던 음여랑과 이를 의아해하던 창월랑의 눈앞에 낯익은 신형이 드러났다.

“헙!”

그 모습에 놀란 창월랑이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헛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너무도 익숙해서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이.

거지 복장에 퀭해 보이는 안면.

누가 보아도 확실한 공대복이었다.

“……들켰습니까.”

모습을 드러낸 공대복이 마른 목소리로 힘겹게 답했다. 염치없다는 걸 자신도 잘 알기 때문일 터다.

“이…… 모자란 놈아.”

“죄송합니다.”

평소 음여랑의 성격이라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으리라 생각한 공대복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나, 들려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감추려면 확실히 감춰야지. 어제부터 느껴지긴 했지만 미세해서 너인 줄은 몰랐다. 방금 전 네놈의 감정선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면 나라도 계속 몰랐을 게다.”

음여랑의 말이 맞았다.

곁에서 계속해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공대복이, 크게 넘어지려던 창월랑을 보고 걱정이 되는 것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음여랑도 처음부터 완전히 느낄 수는 없었다.

마치 보쌈해 가듯 업고 달리는 창월랑에게 내려 달라 발악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싸우느라 몸에 내기가 많이 빠져나간 탓이었다.

단지 오랫동안 지속해 온 무인의 기감이 누군가 계속 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을 뿐이다.

더불어 창월랑이 열심히 뛰고 있다곤 해도, 결코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대복이 뒤에서 청성파 무인들을 쳐내고 있었던 덕이다.

음여랑의 말에 공대복이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차라리 평소처럼 욕을 먹고 맞았으면 속이 시원했을 것을, 오히려 담담한 음여랑의 모습은 공대복을 더욱 미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공대복을 바라보는 음여랑 역시 마음은 편치 않았다.

늘 밝고 선했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어쩐지 측은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음여랑이 창월랑의 어깨를 툭툭 쳤고,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갤 들거라.”

음여랑이 차분히 그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공대복은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첫째로는 면목이 없었다.

애당초 자신이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도, 당금 개방은 원래의 사명을 다하며 열심히 정보를 나르고 무림맹과 함께 혈교와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편무량의 마지막을 공대복이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이 도착했을 때에는 너무 늦었던 상황이라 손쓸 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둘의 사이가 어떤지 온몸으로 보고 느끼며 자라 온 공대복이기에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를 어찌 말해야 할지도 너무도 난감했다.

그래서일까.

공대복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모기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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