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26화 (226/275)

제226화

第一章. 대 전투

“아야야, 아파라. 아이고, 내 머리. 후우, 후우-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매운 손길에 아직도 욱신거리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엄살을 피우는 조도연의 모습에 한마디 할까 하던 냉용후가 고개를 돌렸다.

휙-

‘……몇 각이나 지났다고.’

또다시 저기에 말을 섞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늘 휘말리지 않겠노라 다짐해 놓고선 조도연의 멍청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한마디를 하게 되는 탓에 이상한 꼴이 되고 만다.

당금은 혈대원들도 두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이다. 더는 그 사이에 껴 자신이 쌓아 놓은 점잖은 심상(心象)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자신들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는 진천후의 시선을 느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의 심기를 거스를 수가 있었다.

그때, 진천후의 곁에 있던 여파달이 조용히 질의했다.

“하면 교주님, 언제 사천성으로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놈들을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히 그러실 필요는 없지요. 하나 놈들의 동태 정도는 살피셔야 합니다. 사천성에 모인 놈들은 제법 강한 자들이 많습니다. 정파의 무림에서 구파일방이라고 불리는 문파가 세 개나 있는 만큼 말입니다. 우리 측 대다수가 강시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하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판단됩니다.”

여파달은 당시의 기억을 조심스레 떠올렸다.

상당히 질겼던 놈들이라는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게다가 사천당문은 중원에서 제일가는 독 전문가들이다. 강시도 아닌 주제에 사람이 온몸에서 독을 뿜어내는 모습은 세월이 이만큼 흘렀음에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정말 경이롭다 못해 지독한 모습이었지.’

만일 그때의 싸움에 강시들이 없었다면 혈교의 무인들은 그 독에 중독되어 대다수 사망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독은 치명적이었다.

‘아무리 우리 혈교에도 혈독강시가 있다곤 하나…….’

여파달이 잠시 혈독강시의 무리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 곧 그의 고개가 좌우로 작게 흔들렸다.

아직은 이르다.

정작 이를 만들어 낸 공손우경은 스스로에 심취해 거침없이 내지르고 있으나, 여파달은 그리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구파일방의 저력(底力)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사천당문은 오랜 세월을 걸쳐 이어져 내려온 명문 문파다. 아니, 사천당문 뿐만이 아니라 모든 구파일방이 그러했다.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무림에 뿌리를 박고 군림해 올 수 있었던 연유는 바로 그 저력에서 나왔다.

이제 겨우 세상의 빛을 본 지 달포를 조금 넘긴 신생 혈독강시의 독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작금 혈교에겐 귀마병이라는 최후의 병기까지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불안했다.

무언가가 끊임없이 여파달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천당가라고 해서 모두가 다 온몸에 독을 뿜어내지는 않을 테지만, 필히 그를 대적할 또 다른 후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터.

여러 의미로 구파일방이 여전히 조심해야 할 이들임은 틀림없으리라.

“여 대주께선 정녕 우리가 그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여파달의 귓가에 진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급작스러운 진천후의 역질문이다.

동시에 조금은 흥분이 가득했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예……?”

당황한 여파달 본인의 낯빛 역시 급격히 창백해져 갔다. 자칫 잘못 입을 놀리면 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 말이다.

“그, 그것은 아니오나…….”

답해야 할 말을 찾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그때.

진천후가 크게 파안대소했다.

“파하하하! 이런, 우리 여 대주께서 상당히 난감하신 모양입니다. 내 농이 조금 지나쳤습니다. 여 대주의 말에 의심하고 말고 할 게 무업니까? 이 중에선 중원을 먼저 겪어 보신 것은 여 대주뿐이니, 저는 여 대주만 믿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시지요.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겁니다.”

주륵-

잠깐의 짧은 대화였지만, 이를 듣고 있던 이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렸다. 자칫하면 완전히 얼어버릴 뻔한 분위기가 진천후의 말로 인해 다시 바뀐 것이니.

더구나 내일부터 바빠질 거라는 그의 말에는 은연중 전투를 다시 재기하라는 명령도 함께 속해 있었다.

‘머지않았다.’

다들 잠시 싸해졌던 심장을 움켜쥐고 돌아설 때, 그중에서 마음속으로 즐거움을 내뿜은 건 여파달 한 명뿐이었다.

‘역시 만만치 않은 분이시로다. 참으로 믿음직하구나. 흘흘!’

* * *

다음 날.

축말(丑末).

아직은 뜨거운 여름의 햇살이 들이닥치기 직전.

고현현과 흥문현(興文縣), 그리고 귀주성의 적수현(赤水縣) 사이로 혈교가 무리 지어 나타났다.

사방으로 진을 친 전장을 가득 메운 강시들과 무인들의 모습이 몹시도 경악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내며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대다수가 강시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실로 몸서리쳐질 지경이었다.

“허, 참으로 놀랍군.”

청성파의 장로이자, 이번 전투의 선두에 서게 된 장로 연기훈(延氣暈)이 놀라움을 그대로 표출했다.

이미 익히 들어 온 이야기나, 눈으로 직접 강시 무리를 보니 감회가 달랐다.

새벽부터 진을 치고 달려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시의 숫자에 벌써부터 질릴 것 같았다.

‘작정을 하고 달려들 기세구나…… 제길.’

물론 저 강시들의 취약점은 햇살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으나, 당금 날씨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곧 해가 떠 올 시간임에도 저리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리라.

놀라는 연기훈을 뒤로하고 눈살을 찌푸리던 백무량은 크게 한숨을 돌렸다.

“이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전투가 끝난 후 올 뻔했군요.”

백무량이 혈교를 노려봤다.

도착하자마자 혈교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막상 현실이 되니 썩 좋지 않은 상황임은 틀림이 없었다.

이에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지은 연기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밤새도록 달려왔을 터인데, 쉴 틈도 없다는 게 걱정이구먼.”

백무량의 사숙인 연기훈이나, 무림맹의 군사로서 그 자질을 인정받은 그를 대하는 모습은 조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숙으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직위를 무시할 수 없으니 조곤조곤 들어가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기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무량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조금씩 쉬면서 왔으니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연신 냉철한 백무량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듯 연기훈이 몇 시진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속으론 화가 들끓지만 참아야 한다.

‘불과 네 해 전까지만 해도 내 아래 있던 놈이……! 진정하자, 후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연기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어…… 오는 길에 개방과 마주했다는 정보가 있었네만.”

“아, 역시 소문이 빠르긴 한가 봅니다. 그깟 개방도들 좀 잡는다고 힘이 빠질 무인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 무림맹에서 정예로 꾸려 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래. 뭐,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느냐만은……. 큼. 아무튼 곧 전투가 시작될 것 같으니, 재정비를 한번 하는 게 어떠하겠느냐.”

“그리하도록 하지요. 이사흠(李査欽) 사숙께선 어디 계십니까? 아무래도 전투에 도입되기 전에 미리 이야기를 좀 나눠 보아야겠습니다.”

꿈틀.

‘……이젠 날 앞에 두고 굳이 이사흠을 찾아?’

잠시 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지만, 정말 잠시일 뿐이다.

‘참자. 참아야 뒷날이 있다.’

욱하는 마음을 재차 가다듬은 연기훈이 이내 다시 목소리를 푼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이리로 오게.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계시네. 내 직접 안내하도록 하지.”

* * *

“아이, 지겹다. 지겨워. 예예가 지겹습니다아-”

“…….”

“……나 진짜 심심한데. 으응?!”

“몇 시진 전까지도 날뛰었지 않았던가. 몸을 혹사시켰으니 조금 쉴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히잉…… 그래 봤자 대부분 먹지도 자지도 않는 강시들뿐인데.”

철퍼덕!

그의 계속되는 차가운 반응에 홍예예가 잠시 꼬리를 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주들 중 유일하게 그녀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이가 바로 홍청염이다. 이를 잘 아는 조익기가 미리 선두를 치고 굳이 홍청염과 함께 묶어 홍예예를 보낸 것이었다.

약 반 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참지 못한 홍예예가 다시 질의했다.

“오빠! 우리 도대체 언제 치고 들어갈 거야? 응? 교주님 쪽은 벌써 치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구우- ……우리 늦으면 혼나지 않을까? 응응?”

열심히 홍청염의 주변을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빙빙 맴돌며 그의 시선을 끌어 보지만 묵묵부답이다.

“나 저기에 들어가고 싶어어어!”

척!

홍예예가 작고 귀여운 손가락을 뻗었다.

그제야 잠시나마 홍청염의 눈이 떠지며 홍예예의 손끝을 바라봤다.

그녀의 아담한 손끝에는 아미파의 여 무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홍예예의 참고 있던 마음이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다. 워낙 교주인 진천후가 예뻐하는 탓에 오대혈대 대주 중 참을성이 가장 없는 그녀로서는 많이 참은 것이었다.

더불어 그들이 훑고 지나온 길에서 솔솔 풍기는 혈 향은 홍예예를 가만두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적들의 진영에 쳐들어가 휘젓고 싶은 본능이 몸 안에서 널뛰는 듯했다.

“…….”

하나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홍청염이었다.

그의 별호가 괜히 인폭광인(忍爆狂人)이 아니었다.

폭발할 땐 그 누구보다 과하게 터져 미친 사람처럼 굴지만, 인내할 땐 그 누구보다 인내심이 높았다.

게다가 그녀가 한 단어.

오빠.

홍예예와 홍청염.

그랬다.

이 둘은 남매였다.

“……아직.”

홍청염은 눈을 감은 채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흐에에! 하지만! 저기 저렇게 먹을 것이 많은데도? 오빠는 피가 막막 들끓어 오르지 않아?!”

사람을 먹을거리로 둔갑시키면서도 귀여움을 잃지 않는 홍예예는 두 눈을 반짝이며 홍청염의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곧, 준비가 끝나는 대로 교주님께서 직접 신호를 주신다 하였으니 차분히 기다리거라.”

“이…… 진짜 너무해! 흥! 치! 뿡!”

“홍예예. 대주로서 위엄을 지켜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의 심기를 긁어 보려 했지만, 여전히 홍청염의 반응은 무뚝뚝했다.

이미 오랫동안 봐 온 그의 모습에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찰그랑-!

홍예예가 결국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래. 내가 백기 든다, 들어. 이런 치사한 오빠 같으니라고.”

그러자 잠시 홍예예로 인해 떠들썩했던 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

“유향…….”

“안 됩니다. 대주님.”

진유향마저 홍예예의 간청을 단칼에 끊어 냈다.

“아…… 서럽다.”

홍예예가 서럽다는 듯 얼굴에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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