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24화 (224/275)

제224화

스르륵.

늦은 저녁.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송운의 방에 잠입했다.

하나 송운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기척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후, 송운 앞에 무릎 꿇었다.

“주군, 개방이 잡혔다 합니다.”

송운은 가부좌를 틀었던 자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개방이 말입니까?”

두 눈동자 속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개방이 무림맹의 징치를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기가 예측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더 발 빠른 무림맹의 처사에 놀라고 있을 무렵, 대오가 계속 말을 이었다.

“중경시로 향하던 백무량이 이끄는 무인들과 마주쳤다 합니다. 편무량은 싸우다 그 자리에서 사망했으며, 창월랑이 음여랑을 업고 도주 중이긴 한데…… 창월랑 역시 부상을 입은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힐 것 같습니다.”

“허, 개방 입장에선 운이 없었군. 하필 향한 곳에서 백 군사와 마주할 줄이야. 결국 개방의 몰락인가…… 하면 다른 장로들은 어찌 되었다 합니까?”

“몇몇은 애당초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 합니다. 주변 상황으로 보아선 호남성이 가장 유력합니다. 개방의 거지들이 남쪽으로 향했다는 목격담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형세인지라…….”

“하면 창월랑은 호남성으로 향하겠군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아군이 있는 곳이고, 아래 지방은 한참 전쟁으로 피를 보고 있으니 그곳까지 쫓아오긴 힘들 것이라 판단했을 테지요.”

연달아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중에서도 송운은 언제부턴가 말 더듬는 버릇을 고친 대오의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그뿐이 아니다.

냉철하게 세상을 파악하는 눈 또한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잠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던 송운은 칭찬하고자 했으나 괜히 의식하면 다시 더듬을까 싶어 말을 돌렸다.

대오가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단순히 개방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테니까.

“동쪽 지방은 요새 어떠합니까?”

“아래 지방이 떠들썩한 것에 비하면 아직까진 잠잠하긴 합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잠시 머뭇거리는 대오의 모습에 송운이 짐작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이군요.”

송운의 말에 대오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그간 잠잠했던 중소 사파들이 최근 들어 잦은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혈교가 동쪽을 피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싶습니다.”

“사파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단 말입니까? 허어…… 사파, 사파라…….”

송운이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하필 이러한 시기에……. 그것 참 난감하게 되었구나.’

이 난세에 또 다른 세력이 꿈틀대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당금 정파에 무림맹이 있다면 한때 사파에는 혈사련(血死聯)이 있었다.

하나 혈사련이 내부의 분열로 인해 붕괴되면서 사파는 뿔뿔이 흩어졌다.

각기 지닌 힘은 있을지언정 대외적인 힘이 약해진 사파와는 달리, 차근차근 힘을 키워 온 무림맹에 맞서기 힘들었고, 사파가 몸을 사린 지도 어느덧 이십 해가 흘렀다.

혈교는 오롯이 무림맹을 향해 직진 중이며, 정파가 눈을 돌린 틈을 타, 지난 몇십 년간 와신상담하던 사파의 세력을 크게 키우려 드는 것이리라.

제법 골치 아픈 일이다.

이미 이쪽은 혈교를 막는 데 거의 모든 인원을 쏟아부은 상태인 탓에 신흥 사파들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지방의 중소문파들뿐이었다.

“그 수가 얼마나 됩니까?”

송운이 묻자 잠시 주춤하던 대오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세는 듯싶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하북성에 하나, 하남성에 하나, 그리고 산서성에 셋. 그렇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남성이 가장 큰 무리를 일구고 있고 그다음이 산서성, 그다음이 하북성입니다.”

산서성에 유독 숫자가 많은 것은 그곳에 이렇다 할 큰 정파가 없기 때문이리라.

‘혈교가 동쪽을 피해 서쪽으로 올라온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하고 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놈들이 날뛸 줄이야.’

송운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그쪽이라면 가족들이 있는 북경과도 가깝지 않은가?

작금 황궁도 혈교의 움직임에 따라 최소한의 군력을 제외하고 모두 지방으로 파견 나가 있는 상태다.

즉, 이는 동쪽의 방어력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산서성의 거래권 절반을 가진 운양상단이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송운이 급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오사달이 최근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했던가.’

얼마 전 오사달의 병세가 악화되어 거의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상황이다. 하루하루가 고비라고 하니 언제라도 숨을 거둔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았다.

만일 오사총이 그의 뒤를 이어받아 조금이라도 헛된 마음을 먹고 사파와 손을 잡는다면 일이 복잡하게 꼬이게 될 터.

사파에 굳이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나, 운양상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리들이라면 일찌감치 그 싹을 자르는 것이 맞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운양상단의 표사들에게 그가 만든 무공이 무사히 전달되었다는 사실이다.

얼마의 침묵이 흘렀을까.

송운이 깊게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었다.

“아무래도 회원장가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듯싶습니다. 대오 형님께서는 곧장 이 길로 회원장가에 좀 들러 주십시오. 이쪽은 당장 혈교를 막기에도 급급하니 회원장가를 주축으로 한 힘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적돈이와 조총이를 산서성으로 보내 주세요. 가장 먼저 놈들의 규모부터 파악해야겠습니다.”

“예, 주군.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대화가 끝나고 사라지려던 대오가 다시 등을 돌렸다.

“저…… 주군.”

“말씀하세요, 형님.”

짐짓 멈칫거리던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는 그였으므로 무림이 얼마나 큰 위협에 빠져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이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송운에 대한 걱정이 앞선 듯했다.

“혈교와 접전지들이 전부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놈들은 정말 위험합니다. 그러니 항상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송운은 그런 대오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달래듯 잔잔히 미소 지었다.

“제 걱정은 마세요. 제 무공 실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송운이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알고 있다.

이미 그는 수많은 죽음과 위협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으니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송운의 무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투는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어쩐지 마음 한편이 영 불편했다.

‘부디 제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그때, 송운이 대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하, 반드시 혈교를 때려잡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할 겁니다. 그럼 사파를 부탁드립니다.”

송운이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자, 대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만…….”

마지막 말을 남긴 대오가 그림자와 함께 사라졌다.

홀로 남은 송운의 표정이 신중하게 바뀌었다.

“부디 아무 탈도 없어야 할 터인데…….”

* * *

똑똑.

날이 밝는 대로 송운은 제갈염의 방에 찾아갔다.

그 역시 이미 소식을 접한 것인지 표정 한구석이 어쩐지 찜찜해 보였다.

“개방이 잡혔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과연 송 소협. 소식이 빠르군.”

“과찬이십니다. 새로운 소식은 없습니까?”

“으음…… 개방이 전부 잡힌 건 아닐세. 절반만 잡혔다고 하더군. 더군다나 아무래도 창월랑과 음여랑을 놓친 듯싶네. 쫓아가던 길 도중에 사라졌다고 했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말이네. 남은 개방도들은 죄다 항복하기 급급했고…… 오늘 아침에 막 그들이 무림맹으로 압송되어 왔네.”

제갈염은 최대한 덤덤히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절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도 그러할 것이 한때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편이었던 개방이었다.

한데 순식간에 이러한 꼴이 되었으니 대내외적인 시선도 시선일 테지만, 함께 해 온 세월이 있는 만큼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하면 압송된 자들을 심문(審問)해 보면 뭐든 나오지 않겠습니까?”

“수뇌부들은 앞에서 싸우다 다급하게 도망갔네. 아마 애당초 우리와 마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더구먼.”

“계획이 있어서 도망간 것이 아닐 거란 말이시군요.”

“정확하네. 만일 계획이 있었다고 치고, 도망갔다고 한들 가장 압송된 하급 개방도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기대하기엔 기대치가 너무 낮지. 아마도 호남성으로 갔을 거라는 추측이네. 호남성으로 가는 거지 무리를 보았다는 정보가 있었어.”

그의 말에 송운이 고개를 주억였다.

‘호남성. 역시 대오 형님의 말과 일치한다. 양측의 정보가 모두 그곳으로 향한다면 호남성이 확실하겠군.’

송운이 이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저도 그리 들었습니다. 하나, 호남성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쫓아가기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일단은 혈교가 먼저일세. 놈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이미 개방은 쓰고 버린 패야. 놈들이 뒤를 봐주었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 다 잃고 도망가진 않았을 걸세. 더 쫓아 봐야 의미가 없지. 이미 장로인 편무량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하니 말일세. 물론, 개방의 후개인 공대복이는 코빼기도 비치질 않고 있는 것을 보아선 개방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차라리 이리될 것 혈교와의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을…….”

제갈염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총군사님…….”

“이거…… 참으로 처참하구먼. 무림맹의 꼴이 우스워지겠어.”

“우선은 혈교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네. 혈교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 무림맹의 미래는 없겠지.”

“한데…… 이런 상황에 안타깝지만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 말인가?”

“사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정말 의외의 단어에 제갈염의 두 눈이 솔방울만 해졌다.

“허?! 그 말이 정녕 사실인가?”

“이미 하북성과 하남성, 그리고 산서성에서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해서 그쪽은 제 나름대로 손을 써 볼 생각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송운이 조심스레 묻는다.

사파는 혈교와 달리, 무림의 일이니 자존심상으로도 황궁에서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를 보일 수도 있었다.

당금처럼 급박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송운의 작은 걱정과는 달리 제갈염은 흔쾌히 고개를 주억였다.

“괜찮고말고. 나쁠 건 또 뭔가? 그쪽은 아무래도 황궁과 자네의 사람들이 더 가까울 테니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하남성에는 소림사가 있으니 소림사에 내 미리 서신을 넣어 두겠네.”

생각보다 쉬운 허락에 더불어 송운의 원래 계획대로 소림사의 협조 역시 자연스럽게 얻어 낼 수 있었다.

‘바로 서신을 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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