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22화 (222/275)

제222화

‘빌어먹을 무림맹 놈들!’

이미 검을 빼 들고 달려들기 시작한 놈들이 물러나 줄 거라는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음여랑이 재빨리 진법을 펼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신호가 끝나기 무섭게 타구진을 이루고 있던 개방도들이 사방에서 악기 소리를 내며 취한 듯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하나 무림맹도 더는 틈을 줄 생각이 없는지 수백 명의 무인이 그 사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시간을 주지 말고 바짝 밀어붙여라!”

카앙-!

“죽여도 좋으니 망설임 없이 싸워라!”

“예!”

쌔애액-!

대다수의 무인들이 절정 고수에 다다른 이들이었기에 타구진도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서걱.

“쿨럭…… 사, 사, 살려 주시오!”

“으흐흐흑……!”

털썩!

이 자리의 개방도들 대다수가 전쟁이나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평생을 정보를 나르고 밥 한 끼 얻어먹으며 살아온 개방도들에겐 너무도 힘겨운 전투였다.

‘밀려도 너무 밀리는구나. 역시 무리였나. 큭!’

음여랑이 주변을 살폈고, 그 광경은 몹시 처참했다.

개방도 중에는 눈앞에 서슬 퍼런 칼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변을 지리는 이들도 있었다.

스릉-

결국 음여랑이 손에 들고 있던 합죽선을 버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이를 본 편무량이 다급히 음여랑을 향해 외쳤다.

“여랑아!”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다 같이 죽자고 싸우는 판국에 자신들만 쏙 물러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도 모두 자신을 믿어서가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안 되겠소. 제대로 나서지 않으면 방도들이 전부 다 죽어! 오라버니는 빨리 몸을 피하시오.”

“내가 어찌 모두를 놔두고 혼자 대피한단 말이냐? 나 역시 개방의 장로니라! 어차피 이리된 것 죽어도 싸우다 죽는 편이 낫다. 그래야 먼저 가신 방주님의 얼굴이라도 편히 뵙지 않겠느냐?”

“하아…… 정말.”

편무량을 더 말리기에는 그를 알아 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알겠소. 하면 내 뒤를 부탁하오.”

타닷!

음여랑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부디 죽지 마라, 여랑아.’

스릉-!

그런 그녀를 처연하게 바라보던 편무량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낡은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편 장로님,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창 장로는 방도들을 보호하게.”

“하, 하지만 편 장로님……!”

자신을 늘 가장 잘 따르던 창월랑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시간이 없는 탓에 곧바로 고개를 주억였다. 어차피 그의 마음이 변치 않을 것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그것이 편 장로님의 뜻이라면 그리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장로들이 나서기 시작하자 전세가 조금씩 뒤바뀌기 시작했다.

타구진이 격파당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던 개방도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힘을 내라! 검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은 검을 들어라!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음여랑이 내공을 실어 외쳤고, 이는 곧바로 개방도들의 사기로 이어졌다.

“와아아아-! 싸우자!”

* * *

“허억…… 허억…….”

“헉…… 헉!”

약 한 시진 정도 지났을까.

얼마나 흘렀는지도 까맣게 잊을 시간 동안 어느새 수천에 가깝던 개방도들의 숫자가 절반도 안 되는, 칠백여 명만 남았다.

남은 이들도 이미 음여랑과 편무량.

그리고 남은 장로들이 간신히 무림맹의 무사들을 상대하고 있는 덕에 버티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개중에는 중간 중간 살기 위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몇 번이나 반복된 무림맹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넘어간 것이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어차피 일을 벌인 것은 칠 결급은 되는 장로들의 소행일 터인데, 굳이 정치놀음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하지 마라!”

몸이 성한 자가 많이 줄어들면서, 사기가 꺾였다는 것을 안 백무량이 이를 이용한 것이다.

“으…… 으으, 미, 미안합니다!”

챙그랑.

몇 번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한 개방도가 결국 들고 있던 무기를 버린다. 그러자 곁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자들 몇몇이 역시 무기를 버렸다.

텅, 터더덩-

그 행동에 큰 의미는 없었다.

단지, 죽음이 두려웠던 것일 뿐.

“저, 저 개자식이!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으며, 내력을 쓰면 쓸수록 점점 외모가 노화되어 가고 있던 음여랑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편무량이 그런 음여랑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그런 편무량을 핏발 서린 눈으로 음여랑이 날카롭게 째려본다.

원망.

슬픔.

비애.

고통.

온갖 어두운 감정들이 한군데에 똘똘 뭉쳐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왜, 오라버니도 그냥 항복하길 바라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소? 저 더러운 놈들에게……?!”

부들부들 떨려 오는 음여랑의 손끝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분노로 치를 떨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편무량이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내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 너 혼자 보낼 수 없으니 함께 하자는 뜻이다. 나는 너를 혼자 남겨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 오라버니.”

그런 편무량의 모습에 어색했는지 음여랑의 목소리가 잘게 떨린다.

“이미 돌아선 이상. 아니 처음부터, 나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네 편이었다. 걱정 말거라.”

잠시 분노에 휩쓸렸던 음여랑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마음속에 작게 싹트기 시작한 불안이라는 씨앗이 그녀를 잠시 격정에 휘말리게 한 것이다. 이를 가라앉힌 것은 편무량의 낮은 저음이었다.

‘참…… 참 이상하오. 오라버니는 어찌 이리 매번 나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지 모르겠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눈앞에 희뿌연 무언가가 차올랐다.

하나 여기서 연정을 나눌 시간 따위는 없다.

작금은 모두의 목숨이 더 중했으니까.

‘정신 차리자, 음여랑! 이성을 잃으면 정말 다 잃는다. 이곳에서 반드시 살아남아 행복해질 것이야.’

깊은숨을 들이마신 음여랑이 곧바로 거추장스럽다는 듯 이리저리 찢긴 면사를 거칠게 뜯어내며 팔로 눈 주변을 쓸어내렸다.

“……죽지 마오. 죽으면 절대, 절대 안 되오. 이대로 죽으면 나 음여랑이 용서하지 않을 게요.”

“걱정 말거라. 결코 너보다 먼저 가진 않으마.”

말을 마친 편무량이 이미 적의 피로 잔뜩 적신 검을 꽉 쥐었다.

‘이 몸이 부서져도 너만은 지켜 주마.’

그렇게 잠시나마 시간이 멈춘 것 같던 주변이 시끄러워지면서 전투가 다시 시작됐다.

* * *

전쟁 중 소식은 매우 빠르게 전파된다.

죄다 정보에 잔뜩 날을 세우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물론 가까운 호북성에 있던 양자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방이 격파당하고 있다 합니다.”

“……쩝쩝, 뭐라? 쩝…… 후룩! 개방이 말이냐?”

바깥이 전쟁통으로 난리이고, 죽음이 난무해도 전혀 관계없다는 듯 호화로운 음식을 차려 놓은 채 식사를 즐기고 있던 양자청이 고개를 들었다.

“예. 우연히 중경시에서 무림맹의 무인들과 마주쳤다 합니다.”

“흐음…… 결국 개방이 이리 끝나는 것인가? 이런 이런!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결국 제대로 써먹어 보지도 못하고 죄다 잃게 생겼군.”

하나 그런 말과는 달리 전혀 아쉬움이 없는 듯 보였다.

더 써먹을 수 있는 패이긴 했으나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중경시로 간 인원 중 절반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합니다.”

이야기를 듣던 양자청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마치 어린아이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오, 그 상대가 누구라 하더냐?”

“군사인 백무량과 낙수검(落水劍) 원도훈이 이끄는 대대라 합니다.”

“낙수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지. 원도훈에 백무량까지 있단 말이지…….”

가면 쓴 사내의 보고에 양자청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그때, 누군가 묵직한 무언가를 떨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더덩-텅!

“이게…… 이건 또 무슨 소립니까? 개방이…… 뭐가 어째요?”

공대복이었다.

“……꿀꺽, 뭘 말이냐?”

곤란한 표정인지 아니면 뭔가 즐기는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양자청이 되물었다.

어느새 입에 한가득 물고 있던 음식도 사라졌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악랄했다.

“무슨…… 개방이 누구와 만났다고?!”

“이런 시건방진 놈이……!”

“워워, 그만.”

곧바로 양자청의 곁에 있던 호위무사가 몸을 날려 막아서려 했으나, 오히려 흥미진진하다는 듯 마치 남의 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호위무사를 멈추었다.

쾅-!

그리고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공대복이 결국 참지 못하고 양자청의 멱살을 쥔 채 벽으로 몰아붙였다.

“저놈이!”

호위무사가 당황했으나, 여전히 양자청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됐다. 그냥 놔두어라. 그래, 이렇게 된 거. 까놓고 말하지. 다 들었다고? 그렇다면 네놈이 지금 넋 놓고 내 멱살을 쥐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 텐데? 이곳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있느냐?”

“으아아아! 이 개자식이!”

공대복이 괴성을 지르며 그의 목을 누르려 함에도, 여전히 양자청의 표정은 놀라우리만큼 평온했다.

아니, 어쩌면 그 모습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큭…… 쿨럭. 역시 개방 놈들은 죄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놈들이구나. 네 마음대로 해라. 당금 내 멱살을 잡고 나와 실랑이를 하며 날 죽이든, 아니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중경시에 갇힌 거지들을 구하든. 자, 어느 쪽이건 네 선택이다. 큭큭.”

“닥쳐!”

“허어? 조금이라도 늦지 않으려면 당장 출발해야 할 터인데? 쯔쯧, 이러는 사이, 거지들이 다 죽으면 결국 네 탓 아니겠느냐?”

양자청의 말은 공대복을 분노케 했지만, 점점 그의 손에 들어간 힘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스승의 죽음을 알고 난 후로 어쩌면 자신이 개방을 모두 망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다.

그런 그에게 개방의 위기는 쥐약과도 같았다.

“끄으으……! 돌아오면 반드시! 반드시 네놈의 혓바닥부터 찢어발겨 주마!”

콰앙-!

계속되는 양자청의 도발에 결국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가만히 서 있던 가면 쓴 사내가 물었다.

“그냥 둘까요?”

“뭐, 이제부터는 무림맹 놈들끼리의 싸움이다. 그리되면 우리야말로 일거양득. 일석이조! 아니겠느냐? 손 안 대고 놈들끼리 서로 머릿수를 줄이겠다는데 굳이 우리가 말려들 필요는 없지. 덕분에 하루 세 번뿐인 즐거운 식사 시간이 방해받았지만 말이야.”

양자청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베였다.

짝.

가면 쓴 사내가 손뼉을 쳤고, 그 소리에 시녀들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흘린 음식들을 전부 다 치우고, 식사를 다시 들여라.”

“예. 그리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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