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전생-221화 (221/275)

제221화

웅-

송운이 질의와 함께 자그마한 기막을 쳤다.

주변에 어떤 듣는 귀가 있을지 모르니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를 확인한 제갈염이 좀 전과는 달리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방금 전까지 차오르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가시는 듯했다.

“후. 맞네. 자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아. 진법을 익히는 것까지 완전히 끝이 났다네. 어마어마한 싸움이 되겠지. 그러나 여태 그랬던 것처럼 일방적인 전쟁이 되진 않을 걸세. 우리도 더는 피해를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데 아까는 어찌하여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까?”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밀정 때문이지.”

제갈염이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아직까지 의심하고 계시는 겁니까?”

“총군사 된 입장으로서 끊임없는 의심은 나쁠 게 없네.”

“그건 맞는 말씀이시죠.”

제갈염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개방의 배신이 드러난 마당이긴 하나, 더는 배신한 이들이 없을 거라는 판단은 섣부를 수 있었다.

실제로 송운 본인도 아직 믿지 못해 계속 기막을 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질 않은가.

“되도록 사천성에서 이 전쟁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일세. 그곳에서까지 막지 못하면…….”

제갈염이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한 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건 송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이 뚫리면 곧바로 무림맹이다.’

사천성이야말로 최후의 보루였다.

무림맹이 아무리 말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한들, 그래도 혈교가 중원을 장악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지옥처럼.

아니, 이미 저 아래 중원은 지옥일 테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이 이상 밀리면 북경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게 돼.’

송운 역시 사천성으로 곧장 출전하고 싶지만, 혹여나 혈교에서 전력이 부족한 후방을 친다면 당장 북경에도 위험해진다.

‘그곳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식솔들과 동생들. 장인어른이 계신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이 전쟁을 끝 내야만 해.’

송운은 당금이라도 당장 최전방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더구나 최근 몸에 익기 시작한 그것 역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부디 그러하길 바랍니다. 더는 전쟁에 피 흘리는 이들이 없어야겠죠. 그것이 바로 무림맹과 황궁이 존재하는 연유기도 하니 말입니다. 저희 황군 또한 이번 전투에 최대한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송 소협. 기필코! 이 전쟁이 더 커지는 것은 막아야지. 암.”

두 사람의 거센 마음이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무림맹과 개방이 마주한 건 중경시에 도착한 직후였다.

늦은 밤, 사천성으로 직진하기보다는 우회(迂回)하여 중경시를 통해 적을 급습하기 위해 떨어져 나온 백무량이 이끄는 무리였다.

굳이 사천성에 있는 무인들을 움직이는 것보다야 이미 움직이기로 한 무림맹에서 출발하는 이들이 급습하는 게 더 수월하다는 판단하에 내려졌던 행보다.

군사인 백무량까지 있으니 그 기세는 결코 낮지 않았다.

한데 그곳에서 개방과 마주할 줄이야!

얼핏 보아도 수천은 되어 보이는 개방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꼴이 딱 피난민 수준이다.

양측 모두 당혹스러움에 물들어 있을 무렵.

‘하……! 절대로 중경시로 내려올 일은 없을 거라더니. 감히 우릴 속여? 끝까지…… 끝까지 이 개방을 무시해!?’

까드득.

가장 선두에 섰던 음여랑이 이를 갈았다.

하나 그럼에도 그녀의 입가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분노가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처한 상황에선 분노보다는 이성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미 시간이 제법 흐른 이 시점에 아직까지도 무림맹이 개방이 돌아섰음을 모를 수 있을까? 더구나 앞 열에는 얼핏 보니 무림맹의 군사까지 끼어 있는 듯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야 하다 보니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많아 봤자 오백은 넘지 않겠군. 거기에 무림맹의 군사라…….’

음여랑이 반쯤 내려왔던 면사를 마저 내렸다.

그러자 햇빛을 반사하는 면사가 그녀의 작은 표정 변화마저도 모두 가렸다.

‘확률은 반반이다.’

보고 있다 참지 못하고 초조함에 창월랑이 음여랑의 귓가에 속삭였다.

“음 장로님, 이대로 있다간 싸워야 합니다. 알고 계시지요? 당금 우리가 싸우기에는 너무도 불리합니다. 먼 길을 오느라 지치기도 했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개방도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알고 있다. 너희는 우선 최대한 평상시대로 행동하도록. 최대한 모른 척하는 게 답이니라. 놈들의 반응을 보고 난 후에 싸울지 그냥 지나칠지를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내 말 알아들었느냐?”

“아, 알겠습니다.”

개방도들이 조용히 입을 맞출 무렵, 백무량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대열을 정비하라.”

“예, 군사님.”

허탈한 표정으로 개방을 바라보고 있던 백무량이 은밀하고 빠르게 대열을 정비시켰다.

서로 보이지 않는 기 싸움으로 팽팽히 분위기를 잡아당기던 그때.

음여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같이 색기와 여유가 넘쳐 보였다.

“중원에 전쟁이 한창입니다. 무림맹의 무인들께서 이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하나 그런 목소리와는 달리 웃으며 말하는 음여랑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 왔다.

최대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해도, 저들은 무림맹의 고수들이었다.

아무리 적의 숫자가 적다고 해도 결코 개방이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당금 개방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대응은 타구진뿐이고, 그나마 고수라고 부를 수 있는 이도 장로인 자신과 편무량, 그리고 창월랑까지 세 명뿐이다.

타구진의 위력이 결코 낮지 않다고 하나, 상대는 노련한 무인들인 데다 같은 정파로서 서로의 실력을 잘 아는 이들이었다.

결코 당하고만 있진 않을 터.

이런 상황에선 되도록 피를 보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 좋은 게 당연했다.

‘부디, 부디 그냥 넘어가자. 무림맹의 멍청한 무인 놈들아.’

속으로 염불을 외우듯 외치는 음여랑의 마음이 어느 정도 먹힌 것일까.

아직까진 적대감은 없어 보이는 백무량이 의구심 가득 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는 지금 급한 일 때문에 이곳을 지나가던 참이요. 한데…… 개방이 어쩐 일로 이리 모여 있는지 모르겠군. 중경시에 원래 개방도들이 많았던가?”

“때가 때인 만큼 우리 개방도 힘을 뭉쳐야 살아남지 않겠습니까?”

음여랑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그 말만큼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배신했나?”

“호호…… 예?”

모든 남성이 설레어하며 넘어왔던 고혹스런 미소를 짓던 음여랑의 입꼬리가 삽시간에 굳었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곁에 있던 다른 개방도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내뱉었지만, 이미 음여랑의 머릿속에선 외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역시 이미 눈치챘구나. 절대 안 돼.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음여랑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정의를 배반하고 오직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버티면 곧 편무량과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음여랑이 여전히 앞을 주시하며 옆에만 들리도록 조용히 읊었다.

“타구진을 갖추라 일러라.”

“예. 음 장로님.”

그때, 엄청난 기파가 주변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왜…….”

꿀렁-

“왜 무림맹을 배신한 것이냐. 어찌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고 무고한 자들까지도 죽게 하였느냔 말이다!”

백무량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일갈을 내지른 것이다.

침착함을 잃으면 안 되는 직책임에도 평소 기개가 올곧고, 악한 행동을 참지 못하며, 오롯이 곧은길만 걷는 그로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를 수밖에 없었다.

‘……흥. 백날 무림맹 내부의 싸움으로 주변이 죽어 나가던 시절은 이미 까맣게 잊었나 보구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음여랑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설령 무림맹 무리와 싸워야 한다고 한들, 군사인 백무량만큼은 이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 그렇다면 시간을 벌어야 해.’

타구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놈들이 비키려 하지 않는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어쩌면, 아주…… 운이 더럽게 없다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겠구나.’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음여랑이 이내 커다랗게 웃기 시작했다.

하나 웃음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는 새파랗게 분노가 어려 있었다.

“하…… 하하! 아하하하! 무림맹이 우리 개방을 위해 해 준 것이 무엇이냐? 평생을 개처럼 부려 먹었지! 그저 돈만 주면 좋아하는 거지라고, 더러운 놈들이라며 툭하면 무시하지 않았느냐? 우리 방주님이…… 방주님이 죽었을 때! 네놈들이 해 준 게 뭐가 있어! 원수를 찾아주길 했느냐? 아니, 애당초 관심이라는 것이 있긴 했느냔 말이다!”

“공 방주의 죽음은 무림맹으로서도 참으로 애석한 사건이었다. 하나, 때가 때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는 건 개방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총군사께서 조사를……!”

“닥쳐라! 그 더러운 입에 방주님의 존함 한 자 올리지 말거라. 비겁한 무림맹의 똥개들 같으니라고…… 어쭙잖은 위로 한마디라도 해 주었다면, 개방을 그딴 취급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리 변심하진 않았을 게다. 우리도 혈교와 얽힐 일은 더는 없으니 그저 보내만 준다면 네놈들 눈앞에서 조용히 꺼져 주마. 썩 길을 비켜라!”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음여랑을 보며 백무량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회유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가버린 그들이다.

“……백 군사님, 어찌할까요.”

무림맹 측 무인 중 백무량이 머리로 가장 높은 지위라면, 가장 높은 무위를 지닌 대주 원도훈(袁挑勳)이 조심히 물어 왔다.

“개방을 치고 나아간다.”

백무량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에 원도훈이 고개를 숙였다.

한시가 급한 만큼 그대로 무시하고 갔으면 했지만, 배신을 한 개방과 마주한 이상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는 무림맹의 자존심이며 당연한 처사다.

게다가 사천성으로는 이미 또 다른 무림맹 무인들이 파견되었으니 이 정도 지체는 괜찮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저, 정말로 개방과 싸웁니까? 대주?”

“방금 저희가 들은 게 정말 사실입니까?”

아직까지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러 무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개중에는 개방도들과 친하게 지내 왔던 무인들도 제법 많기에 분노보다는 어리둥절함이 강했다.

모두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나 이런 혼란은 얼마 가지 않았다.

시간을 끄는 사이 백무량의 눈에 타구진을 펼치는 개방의 움직임이 들어온 것이다.

백무량이 원도훈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원 대주, 놈들이 타구진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귀찮아질 게요. 서두르시오.”

“다들 눈으로 보았으니 더는 묻지 마라. 언제부터 무림맹의 무인들이 명령에 의문을 가졌는가? 개방은 이제부터 우리의 적이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라!”

“예! 대주님!”

그 한마디에 아직까진 잠잠했던 중경시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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